지혜의 부름에 응답하는 자녀들

[누가복음 7장 31절~35절]
31절 -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32절 -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절 -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절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절 -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나무는 열매로 안다

[누가복음 6장 43절~45절]
43절 -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절 -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절 -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

[누가복음 19장 1절~10절]
1절 -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절 -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절 -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절 -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절 -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절 -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절 -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절 -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절 -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참된 지도자입니까?

[누가복음 22장 24절~30절]
24절 -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절 -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절 -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절 -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절 -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절 -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씨앗 속의 미래

[누가복음 13장 18절~21절]
18절 -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절 -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절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절 -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은혜를 받은 사람, 말씀을 이루는 삶

[누가복음 1장 26절~38절]
26절 -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절 -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절 -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절 -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절 -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절 -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절 -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절 -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절 -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절 -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절 -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절 -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절 -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하나님이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셔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해 예수라는 이름의 아들을 낳을 것임을 전하게 하십니다. 예수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리며 다윗의 왕위를 이으니, 그 나라가 영원무궁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의 여종인 자신에게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 은혜를 입은 마리아 (26~30절)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일방적 호의입니다. 마리아는 나사렛에 살고 있던, 다윗의 자손 요셉의 약혼녀입니다. 특별히 내세울 조건도 없는 평범한 처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여인을 주목하십니다. 수많은 여인 중에서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로 하나님께 선택받은 단 한 사람이 바로 마리아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녀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었음을 강조합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천사로부터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소식을 듣는다면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놀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평안을 전하며, 주님이 그녀와 함께하심을 알려 줍니다. 주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선택되어 어떤 도구로든 쓰임받는 것은 무한히 감사할 은혜요 영광입니다.
* 마리아에게 찾아온 천사는 그녀를 어떤 사람이라고 부르나요?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인정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2. 수태 고지 (31~38절)
세상에는 기적이 없다는 사람, 기적만 바라는 사람, 기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처녀인 자신이 아들을,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습니다. 당시에 처녀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마리아는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기에 '주의 여종'이라 고백하며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며 말씀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순종의 태도를 보입니다. 자신이 누구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하나님 말씀이 삶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사람은 기적을 경험합니다.
* 천사가 전한 말씀 앞에서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무리한 요구처럼 생각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 주어질 때 나는 어떤 태도를 보이나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뜻을 순전히 받아들이고, 장래의 수모와 고난도 기꺼이 감수한 마리아의 믿음을 닮길 소망합니다. 보편적인 은혜를 순종의 그릇에 담을 때 특별한 은혜가 됨을 깨닫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날마다 간구하는 종으로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재물의 정체

[누가복음 1213~21]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여러분은 지난 일년동안 얼마만큼의 재물을 얻으셨습니까? 그 재물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을 쏟으셨습니까? 그런데 재물을 돌아보았을 때 그것이 진정 여러분들이 기대한 만큼의 만족과 기쁨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스스로 보기에도 남이 볼 때에도 엄청난 재물을 쌓은 분일지라도 아마 재물로 인해 참된 만족과 기쁨을 얻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재물의 정체는 결코 우리에게 참된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부 호주, 퍼스는 호주의 부자 3분의 2가 와서 산다는 곳입니다. 그곳에 제가 아는 전도사님의 딸 부부가 사는데, 한 번은 그곳에 부흥회를 하러 갔다가 그 사위되는 장기수 목사님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장목사님이 종종 놀러 가던 큰 호화 별장의 주인이 일본 사람인데, 그는 부자 아버지 덕에 퍼스에다가 집도 몇 채 사고 200만불짜리 호화 별장을 바닷가에 지었는데, 그는 일도 안하고 매일 같이 파티를 열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부인을 두고 다른 애인을 사귀다가 그 애인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하던 중 싱가포르에서 자동차 안에 들어가 둘이 약을 먹고 그 자동차 뒤에서 나오는 가스를 호스로 연결해 그 차안에 가득 차게 하여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이는 결국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참된 만족과 기쁨을 얻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바로 재물 자체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재물만 의지하고 사는 자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오늘 우리는 재물의 정체에 대해 바로 알아 그 재물에 헛된 기대를 하지 않는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1. 재물은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 돈만 많으면 행복한 줄 알지만, 하나님을 떠나서 돈만 많다고 행복한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못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 오스트리아 빈에 갔을 때에도 싸켈(Sacher)이라는 한 호텔을 보여주는데, 그 호텔 주인은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가 내리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최근에 자살한 그 손자는 유서에 '나는 돈도, 명예도 얻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고, 나의 아내와 친구도 나의 고독을 위로해 주지 못했다. 나에게 위로가 된 것은 개뿐이었다'고 써 놓고 자살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이 많다고 행복할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재산 분배 문제로 다투다가 예수님께 와서 해결해 달라고 할 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삼았느냐?"라고 핀잔 주듯이 말씀하시고 참된 해결책을 말씀하셨는데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이 길고 짧은 것, 사람이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돈의 많고 적은 데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세계를 다녀보면 돈 많고, 잘사는 나라에 자살자가 더 많고 정신병 환자가 더 많습니다. 부자들 중에 노이로제 환자나 자살자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이 이어서 한 부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재물만 많으면 행복한 줄 알았던 이 부자는 곡식을 다 쌓아둘 곳이 없는 것을 고민하다가 곡간을 헐고 크게 지으면서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기를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시고, 그 영혼을 불러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이 부자는 어리석은 바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상태를 자기 마음대로 세상의 것들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줄 알고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기를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문제는 하나님만이 다루실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 부자는 재물만 많으면 평안하고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이 부자는 크게 착각을 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모르고 천국과 지옥을 모르는 사람들, 때로는 믿는다는 사람들도 그런 착각 속에 살기가 쉽습니다.
세계적인 부호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웃음을 가진 부자는 거의 없다. 내 경험으로는 부가 웃음을 몰아낸다'고 했습니다. 또한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내가 아는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밖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로버트 홀턴(Robert Horton) 이란 사람은 '내가 인생에서 배운 가장 큰 과제는 사람들이 마음과 정신을 돈에다 둘 때, 그것을 얻어도 실망하고 못 얻어도 실망한다는 사실이다. 결코 재물이 많다고 장수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행복이란 너무 많이 가진 자와 너무 적게 가진 자 사이에 있는 정거장이다'(Channing Pollock)라고 한 말은 참으로 의미 깊은 말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에 '자녀에게 행복을 가르치려면'이라는 글이 있는데, 거기 보면 자녀에게 장난감을 너무 주거나 돈을 많이 주는 것이 도리어 그 아이를 장차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몇 개만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하게 해야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글에서 데니스 플레이거씨는 '사실, 고통과 좌절을 모르는 어린 시절은 불행한 성인 시절을 불러오는 거의 완벽한 처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와 메사추세츠 대학교의 연구팀이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되지 않은 사람들보다 결코 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의 존 리치 교수는 '복권이라는 것은 외부적인 사건입니다. 복권에 당첨된다는 것은 스스로 힘들여 성취하거나 정복한다는 것과는 다른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녀에게 용돈을 많이 주거나, 장난감을 많이 주거나, 커서 재산을 많이 주는 것이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고난과 싸우기도 하고, 자기를 통제하기도 하면서 보다 바른 뜻을 성취하고 정복하는 데서 행복과 기쁨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미국의 큰 백만장자에게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그 백만 장자는 아들을 너무 귀여워한 나머지 18세 되던 생일날 엄청난 재산을 전부 유산으로 주었습니다. 그 아들은 그 다음부터 술 먹고, 도박하고 음란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30살이 되어서는 완전히 거지가 되고, 온몸이 성병과 기타 온갖 질병으로 죽게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의 부모가 차라리 나에게 1달러도 주지 않고 내어 쫓았던들 내가 이모양 이 꼴이 되지 않았을텐데'하고 후회하고 원망하더랍니다.
LA에 있는 임장로란 분은 세계 10대 무기상 중에 하나로 꼽히는 어마어마한 부자이지만 자식들 공부시킨 다음에는 3개월 먹을 양식만 줘서 내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3일 굶으면 도둑질을 한다'고 하니, 석달치만 주면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식들이 정신차리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더라는 것입니다. 실은 재물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2. 재물은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재물이 많으면 행복할 줄 알지만 그것도 착각이요, 또한 재물이 많으면 오래 살고 죽음도 막을 수 있는 줄 알지만 그것도 오해입니다. 오늘밤이라도 하나님이 생명을 불러가시면 가야지 안죽는다고 버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부자는 죽지 않을 것처럼 큰 소리를 쳤습니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라고 큰소리 쳤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하시고 그 생명을 불러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역대 왕들도 죽었고, 대통령 죽었고, 영웅호걸, 열사들도 죽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육신은 죽습니다. 그러므로 돈을 믿지 말고, 죽음을 준비하며 하늘 나라에 보화를 쌓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삶과 죽음)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욱 유익하리라'고 하면서 죽음을 생각하며 천국에다 더 큰 삶의 비중을 두고 준비하며 살다가 하늘 나라에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어도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한 것도 없고 하늘에 보화를 쌓은 것도 없을 때는 세상의 모든 업적이나 공적은 다 심판의 불에 타서 없어지고 영원한 나라에서는 아무 상급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고로 우리는 결코 생명을 주지 못하는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영생을 주시는 주님만을 의지하며 그분을 위해 살아감으로써 영원한 나라에서 큰 영광과 상급을 받아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재물은 선용할 때 유익이 되기도 합니다.
재물이 그렇다고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올바른 재물관을 가지고, 바르게 사용하면 선하고 유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재물을 이용할 때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첫째,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물질에 지나친 욕심을 가지면 도리어 만족이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재산 분배를 해달라는 자들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딤전 6:9, 10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탐심 때문에 재물이 해악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둘째,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영적인 면이나 도덕적인 면에서는 늘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늘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올려다 보며 겸손하게 사는 것이 복된 일이지만, 물질적인 면에서는 올려다 보지 말고 내려다 보면서 나만 못한 사람을 생각하며 만족하고 감사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딤전 6:6-8절에 보면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온 지구를 다 집어 넣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탐심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재물을 선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 죽음을 대비하여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재물을 많이 쌓아 두면서 오래오래 살며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하리라고 하는 부자의 생명을 주님께서 그날 밤에 불러 가시면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경고 했습니다. 우리의 재물은 죽을 때는 못가져가도 미리 하늘 나라에 보내둘 수는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의하여, 구령 사업을 위하여 재물을 써두는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도 않고 도둑을 맞지도 않는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마 6:19-2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면 불타지도 않고 부도 나지도 않고 도둑 맞는 일도 없습니다. 또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에 힘쓰게 되면 하나님보다 이 땅의 헛된 재물을 더믿거나 의지하는 죄를 범하지도 않습니다. 재물이 가져오기 쉬운 해악성을 막고 진정 재물을 유익하게 선용하게 됩니다. 실로 이땅의 재물을 선용하여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이 가장 현명한 일입니다. 할렐루야!
-아 멘-

부르짖는 기도의 결과

[누가복음 18장 1절~8절]
1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절 -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절 -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절 -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절 -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절 -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절 -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기도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신자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신자거나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위급한 상황에서 기도하여 하나님께 응답받는 것을 알지 못하면 영적인 능력을 소유한 신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흔히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귀가 잡수신 줄 아느냐고 비난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는데, 이는 능력있는 기도의 비결을 알지 못한 소치입니다.
물론 기도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영적인 교제이므로 육신의 몸가짐이나 육신의 음성이 꼭 이래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가령 누워서도 기도할 수 있고, 길가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눈을 뜨고도 할 수 있고,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으며, 입으로 소리를 낼 수도 묵상하며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간절한 기도는 그 기도하는 모습에까지도 영향을 미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 사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들어갈 운명인데도 하루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하여 그 무서운 시험을 이겼고(단 6:10), 엘리야는 비오게 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심지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기도하기를 한번 두번 세번, 일곱번까지 기도하여 마침내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왕상 18:42). 간절히 그리고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여 땀방울이 땅을 적신 다음에 빗방울이 떨어진 줄 압니다. 바울도 무릎꿇고 기도했고(행 20:36, 행 21:5, 엡 3:15) 베드로도 무릎꿇고 기도했고(행 9:40)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원수들을 위해 기도할 때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실 일을 앞에 놓고 무릎꿇고(눅 22:4) 간절히 기도하시되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으면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떨어지도록 육신의 온 힘과 정력을 기울이셨겠습니까?
이렇듯 간절한 기도는 육신의 태도나 음성에서도 그 간절함이 표현되게 됩니다. 긴절한 기도, 뜨거운 기도, 위급한 상황에서 하는 기도는 온 몸의 힘을 다하고 목소리를 높여서 부르짖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시 3:4절에서는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라고 했고, 시 18:6절에서는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으며, 시 34:15절에서는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시 55:16절에 보면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리로다"라고 하였고, 시 77:1절에서는 "내가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 88:1, 2절에서도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서 부르짖었나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끈질기게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신 사실을 볼 수 있는데, 막 10:4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의 일행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질렀더니 예수께서 그 소경을 고쳐 주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부르짖지 못합니다. 더욱이 마귀에 눌린 사람은 기도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심령의 문이 열리고, 확신에 찬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서는 이러한 부르짖는 기도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1. 문제 해결의 응답을 받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 재판관을 찾아가서 하소연했는데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 가난한 과부의 소청을 들은척 만척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낙심치 않고 집으로 재판소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끈질지게 찾아갔더니 마침내 그 재판관이 번거롭고 괴로워서 들어주고야 말았다는 말씀을 하시고, 불의한 재판관도 하도 졸라대니까 들어주었는데 의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밤낮으로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왜 안들어 주겠느냐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낙망치 않고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는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 받게 합니다.

2.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원받습니다.
파사 나라 아하수에로 왕 때에 그 나라의 모든 유다 백성이 하만의 간계로 말미암아 꼼짝 못하고 떼죽음 당하게 됐을 때, 에스더 왕후와 모든 백성이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각오로 "금식하며 부르짖어"(에 9:31) 기도하여 그 위기의 상황에서 건짐 받게 되었습니다. 앞길이 막혀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구원받게 하십니다.
시 50:15절에도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3. 승리하게 됩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이스라엘 나라가 극도로 부패하고 무기 하나 변변한 것이 없을 때 막강한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오자 사무엘과 백성들이 먼저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셨습니다.
사무엘하 22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노래하기를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습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유다 나라 여호사밧 왕 때 모압과 암몬과 마온 연합 군대가 쳐들어오자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금식하며(대하 20:3, 4) 부르짖어 기도했더니(대하 20:9) 하나님께서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15절)고 말씀하시고 큰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부르짖는 기도는 이 세상의 전쟁과 같은 치열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 우리를 승리케 합니다. 또한 영적으로도 우리를 대적하는 어두움의 세력들에 대해 승리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큰 일을 앞두고 그 일을 회피하라는 마귀의 유혹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만은 예수님께서는 피땀 흘리는 간절한 기도로 끝내 승리했습니다. 히 5:7절에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렇게 부르짖으며 기도하여 승리하셨거늘 우리 연약한 인간이야 승리하기 위해서 얼마나 더 간절하고 소리 높여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4.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스스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자위하면서 체험없이 다니는 신자가 많습니다. 과연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누구나 하나님 만나는 체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피땀어린 기도,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렘 29:12,13절에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만난다고 해서 흰 수염이 달린 할아버지 같은 분을 이 육안으로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심령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영을 받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5.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밤중에 굶어 죽게 된 손님이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서 벗을 찾아가서 떡 세덩이를 빌려 달라고 하니까 들은 척도 않고 문도 안 열어 주었습니다. 계속 두드리고 소리지르고 흔들어 댔더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듣기는 듣고 있었구나' 하고 또 계속 부르짖었더니 마침내 그 벗이 일어나 소원대로 떡을 주면서 '벗됨을 인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강청함을 인하여 준다'라고 했는데 그 강청함이 무엇입니까? 낙담하지 않고 부르짖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수께서는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르짖는 자가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4:24절에 보면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lifted ther voices together to God)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4:31절에서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했습니다. 조용히 기도해도 성령을 받겠지만 불같은 성령, 성령 충만함을 더 크게 체험하려면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르짖는 기도가 목소리만 높이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 마음에 간절함을 가지고 애타게 기도할 때 자연스럽게 소리가 높아져 하늘 보좌를 울리게 되는 기도가 진정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르짖는 기도가 앞서 살핀 여러 유익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러분들 모두 진정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이러한 결과들을 체험하시길 축원합니다.
-아 멘-

칭찬 받은 지혜

[누가복음 16장 1절~13절]
1절 -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절 -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절 -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절 -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절 -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절 -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절 -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절 -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절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절 -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절 -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절 -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절 -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여러분 지식(Knowledge)과 지혜(Wisdom)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국어사전에 보니까 지식은 "어떤 대상을 연구하거나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얻은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고 했습니다. 즉 물질이나 사물의 원리와 이치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일체의 제법(諸法)에 통달하여 득실사정(得失邪正)을 분별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인생의 삶에 있어서 참으로 얻는 것과 잃은 것이 무엇임을 아는 것이며 그른 것(邪)과, 바른 것(正)을 바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지혜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옳은 생활의 원칙을 아는 것이며 참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함'(잠 1:7)으로서 얻는 것이며 경험과 통찰로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통해서 얻는 지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지혜가 있어야 영원한 차원에서 이해득실(利害得失)이 무엇임을 아는 것이며 참으로 행복하고 성공적인 생활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지 않았지만 명철과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혜를 대단히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으며 금, 은, 보화보다도 지혜를 얻기에 힘쓰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사는 일류 대학을 나오고 천재적인 두뇌를 가져서 지식은 많지만 자기 제자를 농락하다가 붙들려 극형을 받은 사실만 보아도 지식보다 지혜가 더 중요하고 차원이 높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식은 아무리 많아도 지혜가 없으면 참으로 유익한 생활이 무엇이며 참으로 성공적이고 행복한 생활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한 청지기의 지혜를 칭찬하면서 빛의 자녀들도 이 세상 사람의 지혜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청지기란 주인의 재산을 맡아서 쓰는 사람인데 한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맡아서 주인의 뜻대로 쓰지 않고 쓸데없이 허비한다는 말을 듣고 "청지기 사무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이 청지기가 직분을 빼앗길 것을 생각하니 큰일 났습니다. 이제와서 땅을 파먹자니 그럴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워서 못할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여 근심하다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청지기 직분을 빼앗기기 전에 아직 청지기로 재물을 맡아 쓸 수 있을 때 주인에게 빚진 자를 다 불러다가 빚을 탕감해 주면서 인심이나 써두자. 그러면 내가 청지기 직분을 빼앗긴 다음에 빚을 탕감해 주면서 사귀어 둔 그 친구들이 나를 영접해 주면서 나의 생활을 돌봐 줄 것이 아니냐?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기름 100말 빚진 사람은 50말로 탕감해 주고, 밀 100석 빚진 사람에게는 80석으로 탕감해 주었습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처리하는 것을 보고 칭찬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이 세상 사람들이 사실은 빛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있게 행동한다고 그 지혜를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 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가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칭찬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주인의 것을 횡령한 것입니까? 공문서를 위조한 행위입니까? 아닙니다. 이 청지기가 청지기 직분을 빼앗길 것을 미리 알고 지혜롭게 행동한 그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으면 예수님이 도적이란 말입니까? 예고없이 갑자기 뜻하지 않는 때에 오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 청지기는 무엇을 알았기에 그 지혜를 칭찬했습니까? 결국 지혜란 옳고 그른 것을 바로 아는 것이며 무엇이 참으로 얻는 것이며 무엇이 참으로 잃는 것인가를 바로 아는 것인데 이 청지기는 무엇을 알았다는 것입니까?

1. 자기 죄를 알았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알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에게 허비한다는 책망을 듣고 청지기 사무를 그만두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솔직히 인정하고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땅을 파먹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하고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폭풍을 만났을 때 자기의 잘못과 죄를 순순히 고백하고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은 내 까닭이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결국 요나도 다시 살길이 열렸고 그 배에 탄 사람도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유명한 선지자 사무엘의 책망을 듣고도 끝까지 변명하고 부인하다가 결국 그와 그 가문이 망했습니다. 결국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이름도 없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도 푹 거꾸러져 회개하면서 자기의 죄를 인정하며 고백했습니다. 결국 훌륭한 왕으로 하나님의 총애를 받으며 일생을 마쳤습니다. 참 지혜는 자기의 잘못과 죄를 깨달아 알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2. 빼앗길 날을 알았습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이 청지기직을 빼앗으면 별 수 없이 빼앗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결국을 알았기 때문에 지혜롭게 행동한 것입니다. 우리도 다 청지기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참 주인인 줄로 착각하고 어리석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의 물질도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 중에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생명도, 물질도, 사업도,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내 놓으라고 하면 내 놓아야지 "안됩니다. 못 내 놓겠습니다."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이 우리 생명을 불러 가시면 가는 거지 "하나님 조금만 더 참아 주십시요, 환갑이나 차려먹고 가겠습니다. 혹은 계하던 것 있는데 그것마저 탄 다음에 가겠습니다."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 청지기로서 죽음의 날이 올 때 빼앗깁니다. 언제인가는 세상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되는 때가 옵니다. 사장 자리, 회장 자리, 부귀영화 다 버리고 떠나야 될 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란의 팔레비 왕이 죽을 때 얼마나 가지고 가던가요? 물질도 건강도 명예도 다 빼앗길 날이 반드시 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느 분이 안 먹고 안 쓰며 뼈 빠지게 일하면서 고생을 많이 하면서 자식들 대학 공부를 시키고 미국 유학까지 시켰더니 결국 시집 장가가더니 미국에서 1년이 넘어가도 X-mas때나 부모 생신 때 선물 하나 카드 하나 보내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부모가 편지로 몹시 책망을 하면서 "모진 고생을 다해 가며 공부시켰더니 부모도 못 알아보고…, 너희들이 그럴 수 있느냐?"고 했더니 회답이 오기를 "아버지 지금도 효도 받겠다는 봉건적인 사상 버리십시요. 지금이 어느 때라고 그런 말씀하십니까?"라고 왔더랍니다. 그것을 읽고 편지를 찢어버리고 땅을 치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자식도 믿지 마십시요, 물질도 믿을 것 못됩니다. 지위도 믿을 것 못됩니다. 언젠가는 다 떠나는 때가 옵니다.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는 때가 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것은 "있어도 없는 것 같이"하고 살라고 했습니다. 세상 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고 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다음의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에 부자와 나사로 비유가 나옵니다. 그것도 부자는 죽는 날이 올 것과 빼앗길 날이 올 것을 몰랐기 때문에 비극에 떨어졌습니다. 나사로는 비록 거지로 살았으나 모든 일의 결과를 알고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빼앗기기 전에 내가 아직 청지기로 있을 때 참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뜻대로 힘껏 써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빼앗기지 않고 내 것이 됩니다. 어렸을 때 땅 따먹기 하던 생각이 납니다. 뼘을 크게 벌려가면서 합니다. 많이 딴 아이는 좋아하고 잃은 아이는 울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해가 질 무렵에 어머니께서 "얘들아 밥 먹어라"하면 많이 딴 아이나 잃은 아이나 다 버리고 손을 툭툭 털면서 돌아갑니다.
해가 지기 전에 하나님의 뜻대로 힘껏 써두고 불쌍한 사람에게 인심을 써 두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3. 이제부터 할 일을 알았습니다.
이 청지기는 빼앗길 날을 알았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이제부터라도 할 일을 알았습니다.
전에 한국신학대학장으로 계시던 김정준 박사님이 젊어서 폐결핵으로 죽게 돼서 의사의 진단으로는 몇 달 밖에 못산다고 사형 선고를 내렸을 때 그 때부터 그는 병원에서 남은 몇 달이라도 보람있게 살려고 자기 몸도 아프지만 밤에 환자들의 이불을 덮어주고 가래침 심부름을 해주면서 생명까지 완전히 맡기고 살 때 죽는다는 기간이 지나도 죽지 않고 점점 밥맛이 좋아지면서 다시 건강을 되찾고 그 다음부터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다는 글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이 청지기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로 그때부터 선을 베풀었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여러분 금년 남은 시간이라도 보람있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성공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업에 다 망했을지라도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새 출발할 수가 있습니다. 실패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절망과 자포자기가 나쁜 것입니다. 절망은 하나님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4. 예비할 줄 알았습니다.
주인의 것을 허비하다가 빼앗길 날이 온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 장래를 위해서 예비했습니다. 어차피 빼앗길 물질 좋은 일에 투자했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핵심적인 교훈은 잠깐있다가 없어질 물질인데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써두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없어질 물질 어차피 떠날 세상인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투자하며 살아두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 그 생명 다하도록 미리 미리 내세를 준비하며 값있게 살라는 것입니다. 물질, 명예, 지위, 인간의 영광이 영원한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내게 있는 동안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동안 값있게 써두라는 것입니다.
알렉산더(Alexender) 대왕의 아버지 필립(Philip) 2세는 이상한 종을 하나 두었는데 그는 아침마다 인사하면서 "왕이여 폐하도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요"(Remember that you must die)라고 했다고 합니다.
물질도 죽을 때는 못 가져가도 미리 보내둘 수는 있습니다. 빼앗길 날이 옴을 알고 미리 준비할 줄 아는 것이 참 지혜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죽을 날을 모르고 곡간만 늘이고 큰 소리만 쳤습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여러 해를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할 때 하나님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11)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면 안 빼앗길 자가 없습니다. 물질도, 생명도, 명예도, 지위도, 사랑도, 하루 아침에 다 없어질 수 있습니다. 어차피 없어질 것 가지고, 어차피 떠날 세상, 없어지기 전에 그것을 사용해 영원한 보화를 하늘 나라에 쌓아 두고 예비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로부터 오는 참 지혜를 소유한 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다함이 없는 축복으로 채워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오늘 본문의 청지기와 같이 하나님께 칭찬 받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불가능해 보일 때에라도...

[누가복음 8장 22절~25절]
22절 -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지 하시매 이에 떠나
23절 -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절 -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절 -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수종하는가 하더라

인간 편에서 절망을 당할 때, 하나님 편에서는 구원을 베푸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고 했고,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문제가 심각하니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평범한 때보다 믿기 어려울 때 믿어야 기적이 나타나고, 순종할 수 없을 때 순종해야 놀라운 축복이 나타나고,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므로 엄청난 기적과 응답이 나타난 것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가능해 보일 때에라도 신앙 자세를 결코 흐트러뜨려서는 안되는데,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신앙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일까요?

1. 믿을 수 없을 때 믿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거나 우리의 신앙 생활을 살펴볼 때, 믿을 수 없을 때 믿어야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이 더욱 크게 나타남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널 때 예수님은 잠이 드셨는데, 큰 광풍이 일어나서 배에 물이 가득하게 차서 대단히 위태하게 되었습니다. 금방 배가 뒤집혀 죽을 것 같이 되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부르짖을 때 예수님이 깨어 일어나셔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니까 호수가 잔잔해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꾸짖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탄 배가 뒤집히겠습니까?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인데, 광풍인들 예수님이 탄 배를 침몰시키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믿음이 없어서, 죽을까봐 두려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위태할 때, 믿기 어려울 때 더욱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 절망과 공포에 싸인 무리들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눅 8:50)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환난을 당할 때, 위태한 일을 당할 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애굽에서 탈출해 나오기는 했으나, 얼마 안가서 절망에 부딪혔습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 막혀 건널 수가 없는데다가, 뒤에는 애굽 군사가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때,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면서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 끌어내서 죽이려고 하느냐?'고 절망 가운데 울부짖었습니다.
이때, 믿음의 사람 모세는 담대히 말하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했습니다.
과연 홍해 바다는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고, 그들을 흑암 가운데 가두어 두었던 애굽 군사가 뒤따라 바다에 들어간 다음에는 다시 바닷물이 합쳐져서 전부 수장되었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기 쉬운 위태한 일을 당할 때, 적극적으로 믿어야 놀라운 기적과 구원이 나타납니다. 믿기 어려울 때 더욱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2. 순종할 수 없을 때 순종해야 합니다.
누구나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순종하기도 쉽고 별 큰 기적과 축복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순종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써 보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고기잡는 기술이라고는 하나도 알지 못하는 목수의 아들 예수님께서 '깊은데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어느 면으로 보나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로서는 그 말씀대로 따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경험이나 고집을 버리고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혔습니다.
어떤 분은 10년, 20년 예수님을 믿어도 자기 판단과 자기 상식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제멋대로 예수님을 믿는 이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의 참된 의미는 자기의 경험이나 상식을 버리고 불합리해 보이지만, 믿고 순종하는 데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도록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얻은 독자 이삭, 그것도 하늘과 별과 같이 번창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해 주신 그 아들을 번제로 잡아 바치라고 한 것은, 열이면 열 가지 다 불합리한 일이며 순종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브라함이 무조건 순종했을 때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하는 하나님의 칭찬과 더불어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남달리 뛰어난 신앙은 바로 보통 사람으로는 순종할 수 없을 때,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아람 나라 장군 나아만이 문둥병의 고침을 받은 것도,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람 나라의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으로서 요사이로 말하면 별이 네 개나 달린 참모 총장쯤 되는 높은 사람이었으나, 문둥병에 걸려 시시각각 몸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 문둥병자였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그 집에 종살이 하고 있는 계집아이의 말을 듣고 엘리사에게 왔더니 요사이로 말하면 안수를 하든지 안찰을 하든지 해줄 줄 알았는데, 엘리사는 내다 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목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람 나라에는 요단강보다 더 크고 넓은 강이 얼마든지 있는데 목욕물이 없어서 온줄 아느냐고 자존심이 상해서 나아만 장군이 돌아가려고 하는데 옆에 섰던 시종 하나가 만류하기를 '주님,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해도 할 터인데 그까짖 것이 무엇인데 못하겠습니까? 병 고치려고 왔지, 존경받으려고 왔습니까?'라고 말을 하니까 그만 교만을 버리고, 그 계급장 붙은 옷을 다 벗어버리고 썩고 냄새나는 몸을 드러내 놓고 일곱 번 목욕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위신과 체통으로는 도무지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순종한 결과 깨끗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어려운 명령에도 순종하느냐를 보아서, 그만큼 큰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남이 다 하는 것 가지고는 큰 축복을 못 받습니다.
종종 간증합니다마는 제가 하나님의 살아계신 체험을 제일 처음 한 것은 6.25동란 때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보리겨, 쌀겨를 먹고 술 찌꺼기를 물에 풀어먹는 형편에 십일조를 하다가 어려우면 못하고, 또 어려운 일을 당하면 못하고 하다가, 일곱 식구가 굶으면서도 십일조를 하니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오늘날의 축복된 목회 생활도 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일곱 식구가 굶어 가면서까지 어려운 처지에 십일조를 할 수 없을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기적과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자기와 자기 아들이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던 것, 두 식구의 생명과 같은 것을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비 한방울 오지않는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과 짐승들이 굶어 죽는 가운데서도 평안히 살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정말 십일조를 할 수 없는 형편일 때야말로 더욱 열심히 십일조 생활을 해야 기적을 체험하고, 주일을 지킬 수 없을 때 지키면 더 큰 은혜를 받고, 교회에 나오기 싫고 나오기 어려울 때 시험을 이기고 교회에 나오면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보통 사람이 순종할 수 없는 일에 하나님께 순종하면 큰 축복을 받습니다.

3.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기도한 것을 보면, 사자굴 속에 집어넣어 죽인다는 어명이 떨어졌는데도 목숨을 내걸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잡아먹지 못하게 했고, 도리어 모함했던 무리들이 사자굴에 들어가 잡혀 먹히고 말았습니다. 목숨 걸고 기도하여 다니엘은 놀라운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래전에 광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예수를 잘 믿는 신자가 있었는데, 점심 때가 되어서 도시락을 동료들과 함께 둘러 앉아서 먹을 때면 꼭 식사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안믿는 짖궂은 사람들이 이 사람 기도하는 동안에 도시락을 감추어 놓고는 '야!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도시락을 없애버렸다. 좀 더 기도해서 도시락을 찾아달라고 해라 야! 이 예수장이야!' 하면서 곯렸습니다. 그러고나면 이 사람은 '이리내놔! 이리내놔!' 하면서 도시락을 찾아서 먹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기도하는 동안에 굴 밖에다가 도시락을 감추었습니다. 기도하고나니까 또 없어졌을 때, 옆에 있던 동료들은 전과 같이 계속해서 비양거리고 조소를 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리저리 굴 안에서 도시락을 찾기 시작하다가 아무리 뒤져도 안나오니까, 동료들이 굴 밖에 바윗돌 뒤에다 감추었으려니 생각하고 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로 그때 그 굴은 '꽝' 소리를 내면서 무너져 그 굴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놀림받은 것이 싫다고 기도 안하고 적당히 먹어버렸다면 이 사람도 죽었을 것입니다.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해야 더 큰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울이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옥에 갇혀서 쇠고랑을 차고,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기는 쉬워도 기도하고 찬송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때에 기도했더니 옥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풀리고, 옥사장에게 전도할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여러분! 피곤하고 바쁘고 시험이 많아서 기도할 수 없을 때 그 시험을 이기고 기도하면 더 큰 은혜와 응답을 받습니다.
환난, 시험은 기도하라는 신호입니다. 기도할 수 없을 때 더욱 기도해야 마귀를 이기고 승리합니다. 기도가 막힐 때는 포기하지 말고, 기도로 뚫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매일 두 시간씩 규칙적으로 기도했는데, 바쁜 일이 생기면 빼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시간을 내어 세시간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마귀가 기도를 못하게 할 때, 기도할 수 없을 때에 더욱 기도하면 더욱 큰 응답과 은혜를 받습니다.

불합리해 보이고, 의심이 나고, 믿을 수 없을 때 더욱 적극적으로 믿고,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기도하기 어려울 때 더욱더 열심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큰 축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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