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세례
[누가복음 3장 15절~20절]
15절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절 -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절 -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절 -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절 -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절 -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세례 요한이 전한 좋은 소식
16절 : 세례 요한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나타나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심
17절 : 그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는 심판 선언
18절 : 기타 여러 가지 권면의 말씀
* 도움말
1. 물(16절) : 성경 전체에서 물은 창조 및 새 창조와 관계가 있다. 율법적인 차원에서 물은 의식적인 성결 혹은 법정적인 의를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요 2:6).
2. 성령과 불(16절) : 물이 율법적이고 의식적인 순결을 가져다주는 반면 성령은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설명된다(겔 11:19, 36:26).
3.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18절) : 원문에는 이 구절이 ‘복음을 전하다’는 뜻을 가진 “유앙켈리조”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어 있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좋은 소식이란 복음을 뜻한다.
* 말씀묵상
1. 물 세례
요한은 자신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를 대조적으로 비교하며 설명했습니다. 성경에서 물은 항상 창조 및 새 창조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말하는 정결수나 신약의 세례는 물이 갖고 있는 새 창조의 의미를 적용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이 율법적인 차원 혹은 결례적인 차원에서 사용될 때는 일반적으로 의식적인 성결이나 법정적인 성결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과 대조해 볼 때, 물은 성화가 있기 전에 먼저 받은 칭의처럼,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 전에 성결하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해 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여기까지만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2. 성령 세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는 성령과 불로 주는 세례입니다. 물이 의식상의 거룩과 법정적인 의를 허락한다면 성령은 항상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불은 이 근본적인 변화 곧 완전한 새 창조를 위하여 이전의 낡은 것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것으로서 성령과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편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심판에 관해 언급하면서 성령의 세례를 최후의 심판과 동일시함으로써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한 ‘좋은 소식’ 곧 ‘복음’의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복음은 물 세례를 받고 행위의 변화를 일으키는 수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아 내면으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세례 요한이 전한 좋은 소식에 대해 살펴보십시오(16-18절).
2. 여러 악행으로 인해 요한에게 책망을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19절)
* 깊은 묵상
1. 말씀은 축복(16절)뿐만 아니라 심판(17절)에 대해서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2. 복음은 듣는 자에게 근본적인 내적 변화를 요청합니다. 여러분은 이 변화에 순응하고 있습니까?
제공:프리셉트
'누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눅 4:1~13) (0) | 2013.05.03 |
---|---|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눅 3:21~38) (0) | 2013.05.03 |
회개를 선포하는 세례 요한 (눅 3:1~14) (0) | 2013.05.01 |
사가랴의 순종과 예언 (눅 1:57~80) (0) | 2013.04.30 |
두 산모의 찬양 (눅 1:39~56) (0) | 2013.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