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내어 준 사랑

[마가복음 15장 24절~32절]
24절 -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절 -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절 -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절 -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절 - (없음)
29절 -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절 -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절 -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절 -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제삼시에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제비 뽑아 그 옷을 나눕니다. 죄 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썼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며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희롱하는 말을 합니다. 주님의 좌우편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까지 주님을 욕합니다.

1.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24~26절)
예수님은 친히 수치를 당하심으로 우리 수치를 가려 주신 분입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을 못 박은 후에 제비 뽑아 그분의 옷을 나눠 가지는데, 이는 시편 22편 18절에 예언된 바 있습니다. 십자가 고난으로 죽기까지 하나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은 진정 유대인의 왕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지극히 높이실 만왕의 왕입니다(빌 2:8~11). 마가는 세 시간 간격으로 예수님의 고난을 보도해 사실성과 생생함을 더해 줍니다. 예수님은 제삼시(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15:25). 제육시(낮 12시)에는 어둠이 뒤덮였고, 제구시(오후 3시)에 예수님이 돌아가십니다(15:33~34). '저물었을 때'(저녁 6시경)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 지냅니다(15:42~46). 예수님의 죽음은 신화가 아닌 역사적 진실이며, 그분의 죽음은 인류에게 구원과 영생을 선물했습니다.
* 십자가 죄 패에 쓰인 '유대인의 왕'에 담긴 역설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2. 예수님을 모욕하는 사람들 (27~32절)
갖고 있는 힘을 절제하고 모욕을 참는 것은 위대한 능력입니다. 예수님 좌우편 강도는 바라바와 같이 민란에 참여했던 이들로 추측됩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조롱하며 머리를 흔들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비웃습니다. 사탄의 유혹은 죽음 직전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구원을 위해, 모욕에 반격하라는 최후의 유혹까지 거부하시고 온전히 순종하십니다. 남은 구원했지만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는 말(31절)은 비록 조롱이지만, 예수님의 구원 방식을 역설적으로 증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영혼을 사망에 이르게 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십니다(사 53:12).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능력이 있으신데도, 왜 내려오지 않으셨을까요? 남의 유익을 위해 내가 절제하거나 하지 않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만왕의 왕 예수님이 왜 고초와 조롱을 당하셔야 했는지 생각해 봅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구원하지 않기로 결정하시고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주님, 고통과 치욕의 절정에서도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 그 은혜를 일평생 잊지 않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왕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복된 인생

[마가복음 15장 16절~23절]
16절 -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절 -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절 -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절 -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절 -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절 -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절 -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절 -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군인들이 예수께서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유대인의 왕이라 하며 갈대로 머리를 치고 침 뱉고 절합니다. 희롱을 다 한 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가다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웁니다. 골고다에 이르신 예수님은 몰약 탄 포도주를 거절하십니다.

1. 희롱당하시는 예수님 (16~20절)
예수님이 시인하신 것과 같이 그분은 우리 왕이십니다(15:2). 로마 군인들이 조롱하는 행동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왕이심이 증언됩니다. 자색 옷은 왕이 입는 옷이고, 가시관은 왕관을, 갈대는 왕이 드는 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할 의도로 한 말과 행동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예수님의 정체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십자가 굴욕과 고난이 오히려 예수님이 메시아요 온 우주를 통치하실 왕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이 이긴 듯한 상황에서도 선하신 뜻과 영광을 나타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 군인들이 예수님께 한 말과 행동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교회 혹은 기독교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 얻는 역설적 교훈은 무엇인가요?

2.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 (21~23절)
한 사람을 제자로 이끄시는 주님의 역사는 신비롭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시몬은 구레네(현재 '리비아') 출신으로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입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언급된 '루포'를 시몬의 아들 '루포'로 보기도 합니다. 마가가 구레네 시몬을 소개하면서 그의 두 아들 이름을 밝힌 것은 로마에서 유력한 성도인 그들을 많은 사람이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억지로 졌지만, 시몬은 인류 역사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직접 져 본 단 한 사람이 됩니다. 이후 그는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의 가족 또한 모두 신실한 성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시몬의 도움으로 예수님은 사형 틀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통을 온전히 감수하시고자 진통 효과가 있는 몰약 탄 포도주를 거부하십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고난을 다 받으셨고, 아버지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 5:8~9).
*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질 때 시몬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처음으로 억지로 했으나 나중에 하나님 은혜임을 알게 된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사랑과 사명으로 모든 수치를 견디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참된 평화의 왕임을 드러내신 주님! 제가 원치 않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 십자가를 진 자만이 알 수 있는 은혜를 경험케 하시고자 하나님이 저를 택하셨음에 감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누구의 만족을 위합니까?

[마가복음 15장 1절~15절]
1절 -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절 -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절 -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절 -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절 -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6절 -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절 -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절 -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절 -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절 -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절 -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절 -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절 -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절 -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절 -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기까지 두 종류의 재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재판은 대제사장들에 의한 종교 재판이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넘겨받아 제일 먼저 데리고 간 곳은 당시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의 집이었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을 심문했으나 어떤 죄목도 발견하지 못한 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예수님을 보냅니다(요 18:12~24). 가야바는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으로 사형을 선고합니다(14:53~65). 그러나 재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두 번째 재판인 세상 법정 재판(정치 재판)으로 이어집니다. 당시는 로마 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직접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어 당시 사마리아와 유대 지역을 다스린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보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지만(마 27:11~14), 어떤 죄도 발견하지 못하고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디바에게 보내어 심문받게 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눅 23:6~12). 하지만 헤롯 안디바 역시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사형을 언도합니다(마 27:16~26). 예수님의 재판이 이중재판(종교 재판과 세상 법정 재판)인 이유는 자칭 하나님 아들이라 한 신성모독죄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한 반역죄 때문입니다.    

[관찰과 묵상]
1.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자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또 고발하는 말들에는 어떻게 반응하시나요?(2~5절)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십니다(2절). 그러나 고발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심문하는 빌라도의 저의는 예수님이 정치 혁명가인지, 로마의 권력에 대항해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는 자인지 확인하는 데 있었습니다. 로마 총독으로서 예수님을 합법적으로 죽일 명분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시고, “네 말이 옳도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네가 말한 그대로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사실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빌라도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군중이 생각하는 정치적 왕이 아닙니다. “네 말이 옳도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대답은 모든 인간을 진리로 새롭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적 왕권을 가진 왕으로서 그 직책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 맞다는 의미입니다. 대제사장들이 고발하는 말들에 왜 아무 대답이 없느냐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끊임없이 예수님을 비방하고 고소하는 대제사장들과는 반대로 예수님은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십니다. 이 모든 일의 과정과 결과가 사람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안에 있음을 침묵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적용과 나눔
애매한 고난 가운데서 상대와 맞서 싸우기보다 침묵하고 기도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예수님은 빌라도와 대제사장들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변명하거나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침묵으로 그들에게 반응하셨습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고 때로는 오해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적으로 옳은 일을 결단하고 추진하다가 세상적인 반대와 반발에 부딪힐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고 하나님의 생각 앞에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뜻이 충돌할 때,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만 마디 말보다 침묵이 오히려 유익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애매히 고난 당하고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함으로 침묵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고통 받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상황을 역전시키실 것입니다.

2. 무리는 빌라도에게 예수와 바라바 중 누구를 놓아주길 요구하나요? 빌라도는 무엇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나요?(6~15절)
무리는 빌라도에게 민란을 꾸미고 살인하여 체포된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요구했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7~13절). 이에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15절).
당시 유대 지방의 전례 중에 명절이 되면 죄수 하나를 풀어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명절은 유월절이었고, 이때 죄수 하나를 풀어주는 대신 유월절 양을 죽이는 풍속을 행했습니다. 이에 무리는 민란을 꾸미고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되었던(7절) ‘바라바’라는 사람을 풀어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합니다. 바라바는 로마에 반역했던 사람으로,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무리는 아무런 변명이나 대꾸 없이 무기력하게 빌라도 앞에 체포된 채로 있던 예수님보다 비록 살인했지만 유대 민족을 위해 앞장섰던 바라바가 놓이는 것을 더 좋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빌라도는 성난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해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습니다(15절). 십자가 형벌은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행했던 잔인한 처벌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찢어질 듯한 고통은 물론이고 무리의 비난과 야유, 수치 속에서 서서히 죽어 가는 처형 방식이었습니다. 무리는 이것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무리의 만족을 위해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예수님을 넘겨주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로 향하셨습니다.   
적용과 나눔
세상의 요구와 하나님 뜻이 다를 때 어떤 선택을 하나요? 하나님 뜻을 따르기 위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나누어 보세요.

세상을 살다 보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지,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입니다. 세상 요구를 따르려 하니 신앙적으로 부끄럽고, 또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르려 하니 세상적으로 손해 볼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등을 종종 경험합니다. 빌라도는 무리의 만족을 선택한 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만족을 선택하심으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0). 비록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원하심과 그분의 요구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종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늘 하나님 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선고하지만, 예수님은 침묵과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 뜻을 이루십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온몸으로 거센 파도를 맞서는 것처럼 쉽지 않습니다. 오해를 당해 고통 받을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미 본보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 패배하신 분이 아니라, 결국 사망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분입니다. 세상 요구와 하나님 뜻이 충돌할 때 믿음으로 하나님 뜻을 선택한다면, 그분이 예비하신 역전의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세상 요구와 하나님 뜻이 충돌할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선택을 하게 하소서.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실 은혜를 소망하며, 하나님 뜻을 따르기 위해 오해받거나 손해 보는 일도 기꺼이 감수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무리를 만족시키려 내린 불의한 판결

[마가복음 15장 1절~15절]
1절 -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절 -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절 -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절 -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절 -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6절 -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절 -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절 -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절 -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절 -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절 -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절 -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절 -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절 -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절 -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에게 넘겨진 주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빌라도는 죄수 한 명을 놓아주는 명절 전례를 따라 예수를 놓아주려 하나, 대제사장들에게 충동받은 무리가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이에 빌라도가 무리를 만족시키려 그 요구대로 합니다.

1. 빌라도에게 넘겨지신 예수님 (1~5절)
로마 식민지 시대에 유대인의 사형 판결권은 로마에서 파견한 지도자에게 있었습니다. 이에 종교 지도자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줍니다(10:33).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임을 시인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왕이 아닌 하나님 나라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고소당한 죄목들에 대해서는 침묵하시고, 정체를 묻는 질문에만 답하십니다. 머지않아 거짓은 밝혀지고 진리가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고소 내용은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한 것'입니다(눅 23:2).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거짓 고발을 항변하지 않으시고 침묵으로 감내하십니다.
* 빌라도의 심문 때 예수님이 답하신 것과 침묵하신 것은 각각 무엇에 관한 것인가요? 사람들이 고소하고 비난할 때, 성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2. 바라바와 예수님 (6~15절)
빌라도는 군중의 압박에 굴복한 나약한 재판관에 불과합니다. 당시 유월절에는 죄인 한 명을 풀어 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바라바'는 '바르'(아들)와 '아바'(아버지)가 결합된 아람어 이름으로, 직역하면 '아버지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군중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그저 한 인간이요 살인자인 바라바를 선택합니다. 빌라도는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해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리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치기 시작하자, 민란이 날 것을 우려해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 무리의 무지함, 빌라도의 불의한 판결로 십자가 처형에 넘겨지십니다. 진리가 아닌 자신의 안위를 위한 판결은 영원한 치욕으로 남습니다.
* 대제사장들의 부추김을 따른 무리의 외침에 빌라도는 어떤 결정을 내렸나요? 사람들의 부당한 요구가 있을 때, 나는 어떤 결정 기준을 따르나요?

오늘의 기도
제 유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척하며 불의를 저지른 일이 없는지 돌아봅니다. 욕심 때문에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두려움 때문에 바르게 결정하지 못하는 저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소서. 어떤 일이든 말씀의 다림줄로 지혜롭게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도우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실패 속에서 확인한 주님의 사랑

[마가복음 14장 66절~72절]
66절 -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67절 -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절 -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절 -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절 -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71절 -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절 -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베드로는 불 쬐는 자신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던 자요 그 도당이라고 지목한 대제사장 여종의 말을 두 번 부인합니다. 또한 갈릴리 사람이니 예수의 도당이라고 다시 추궁하는 사람들에게 그를 모른다고 저주하며 맹세합니다. 닭이 곧 두 번째 울자,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이 기억되어 웁니다.

● 베드로의 부인, 그리고 눈물
말씀은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정체를 시인하며 의연하게 재판받으신 것과 달리,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를 숨기며 그분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 제자들을 택하셨지만(3:14), 베드로는 그분과 '함께' 있었던 사실을 부인합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도당(한패)이라며 몰아세우자, 그는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합니다. 두 번의 닭 울음소리는 그에게 예수님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자신의 비겁함을 직시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후회와 참회의 눈물이자 주님 사랑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위기 앞에서 누구나 실족할 수 있지만, 주님이 말씀으로 깨우쳐 주실 때 빨리 일어서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 겸손을 배우고 다시 시작한다면, 그 실패는 성숙을 향한 도약대가 될 수 있습니다.

* 닭이 두 번째 울고 예수님 말씀이 생각났을 때, 베드로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내가 이제라도 주님 앞에 참회하고 돌이킬 일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불법 재판을 받으신 하나님 아들

[마가복음 14장 53절~65절]
53절 -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절 -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55절 -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절 -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절 -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절 -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절 -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60절 -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절 -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6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절 -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절 -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절 -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예수님이 대제사장 집으로 끌려가시자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 그 집 뜰 안까지 들어갑니다. 공회는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찾지만 거짓 증언만 많고, 서로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묻고, 이를 인정하신 그분을 신성 모독으로 정죄합니다.

1. 일치하지 않는 거짓 증언 (53~59절)
그리스도인이라지만 고난의 의미를 모르면, 주님을 '멀찍이' 따르는 사람이 됩니다. 베드로는 체포되신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갑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만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집에서 심문받으십니다. 그곳에 모인 종교 지도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죽이는데 한마음이 되었습니다(시 2:1~2 참조). 그들은 예수님을 고소할 증거를 찾지 못하자, 거짓 증인을 내세웁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재판은 결론을 내려놓고 증거를 조작한 불법 재판입니다. 거짓 증언은 십계명 중 제9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형제를 모함하는 거짓 증언은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거짓 증인은 반드시 징계받습니다(신 19:16~20; 잠 6:16, 19).
*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제9계명을 내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요?

2. 예수님이 정체를 밝히심 (60~65절)
어떤 거짓 증언도 하나님 아들의 정체성을 흔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거짓 고소에 일절 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질문에는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십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사형당할 자로 정죄되십니다. 예수님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정체를 밝히신 것은, 그리스도(메시아) 되심이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후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것입니다. 그 자리는 통치자의 자리요 심판자의 자리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심문받으시지만, 그때는 종교 지도자들이 그분 앞에서 심판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하늘 구름을 타고 영광 가운데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성도는 최악의 고난 가운데서 최후 승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 거짓 증언 앞에서 침묵하시던 예수님이 입을 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침묵해야 할 때와 바른말을 해야 할 때를 잘 분별하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오늘의 기도
악의에 찬 거짓 증언에 구구절절 반박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본질을 선포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난감한 상황 속에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구차한 변명을 하기에 급급하지 않고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에 부합한 태도를 보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배반당하고 버림받아도 사명의 자리를 지키신 참스승

[마가복음 14장 43절~52절]
43절 -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절 -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절 -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절 -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절 -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절 -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절 -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절 -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절 -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절 -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유다가 유대 지도자들이 파송한 무리와 함께 예수님을 잡으러 옵니다. 이때 한 제자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칩니다. 예수님은 강도를 잡는 것같이 자신을 잡으러 온 무리에게 이것이 성경을 이루려 함임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합니다.

1. 체포되신 예수님 (43~49절)
예수님이 체포되신 것은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한 자발적 순종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파는 자'(44절)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계신 곳을 잘 알았기에 무리를 이끌고 옵니다. 그가 "랍비여" 하며 예수님께 입 맞춘 것은 존경의 표시가 아니라 독을 머금은 위선입니다(롬 3:13 참조).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셨지만, 저항하지 않으시고 고난의 잔을 기꺼이 받으십니다. 무리는 검과 몽치를 들고 마치 강도를 잡듯 예수님을 체포하려 합니다. 그러나 정작 강도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11:17).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요 18:10)의 귀를 쳐서 저항하지만,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이루시고자 순순히 체포되십니다. 진정한 용기란 하나님 뜻과 계획임을 알기에 능동적으로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다가와 입 맞춘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내가 혈기와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워 반항하지 않을 일은 무엇인가요?

2. 제자들이 다 도망침 (50~52절)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자 겁에 질린 제자들이 '다' 도망칩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미 예고하신 일입니다(14:27). 예수님을 뒤따라가다 붙잡히자 벌거벗은 채 도망한 청년도 있습니다. 대게 그를 저자인 마가로 추측합니다.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이 장면은, 마가가 부끄러운 과거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은 인간적인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두려운 상황에 맞닥뜨리면 모든 결심이 물거품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함없는 '충성'은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2).
* 겉옷을 버리고 예수님께 갔던 바디매오(10:50)와 겉옷을 버리고 도망친 청년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내 신앙생활에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과 가장 가까이서 함께했으면서도 자기 안위 때문에 주님을 버리고 도망한 제자들처럼, 저 역시 은혜 아니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통감합니다. 매 순간 성경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사셨던 주님처럼, 저도 매일 묵상하며 깨달은 말씀에 순종하는 데 힘을 쏟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뜻을 이루는 기도

[마가복음 14장 32절~42절]
32절 -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절 -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절 -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절 -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절 -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절 -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절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절 -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절 -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절 -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절 -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십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하고 팔아넘길 사람이 제자들 중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마치신 예수님은 평소 습관을 따라 기도하시던 겟세마네 동산(눅 22:39)으로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겟세마네는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 서쪽 기슭에 있는 동산입니다.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 ‘기름 짜는 곳’이라는 의미로, 지금도 7~8그루의 늙은 감람나무(올리브나무)가 있습니다. 이 장소는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아시고 피와 땀과 눈물을, 마치 기름을 짜듯 짜내며 기도하신 모습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한편,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하시는 자리에까지 데려갔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각기 예수님의 가장 큰 제자임을 자처하던 이들입니다. 베드로는 바로 앞 장면에서 자신은 예수님을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고(14:31), 야고보와 요한 역시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탐하며 예수님이 받으시는 세례와 예수님이 받으시는 잔을 받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10:39). 예수님은 그분의 마지막 십자가 사역을 감당하시기 전에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될 정도로(눅 22:44)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이 겟세마네 기도 자리까지 데리고 가신 제자들은 누구인가요?(33절)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당부하시나요?(34, 38절)

예수님이 겟세마네 기도 자리까지 데리고 가신 제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깨어 있으라”(34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38절)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함께했던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그들을 데리고 겟세마네로 가십니다. 그중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자리까지 데려가십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습니다.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견뎌 내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아들이시지만 참사람이신 예수님께도 두려움과 공포였습니다. 그리고 함께했던 세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34절)라고 말씀하시며 함께 기도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육신의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잠들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고(14:31), 야고보와 요한 역시 예수님과 함께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10:39), 그들은 자신의 육신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은 잠들어 있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38절)라고 말씀하시며, 육신의 고통은 물론 모든 시험에서 예수님과 함께함으로 승리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고, 그분과 함께하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도의 핵심입니다.  
적용과 나눔
마음으로는 원하지만 육신이 약해서 실패한 일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제자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참제자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첫째, 어디든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참제자는 기쁠 때나 슬플 때, 좋을 때나 좋지 못할 때, 그때가 언제든 예수님과 함께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면 닮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말뿐인 사랑이 아닌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 그들은 예수님처럼 복음을 위해 살았고, 복음을 위해 순교했습니다. 셋째,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다고 표현했습니다(갈 5:17). 육신의 욕구에 끌려가는 인생이 아닌 영적 욕구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참그리스도인, 참제자의 삶입니다.   

2.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33~34절)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리신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요?(36절)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슬픔과 근심에 잠겨 괴로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예수님께 가장 치열하고도 고통스러운 기도의 현장이었습니다(눅 22:44).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 죽음이라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에, 그 고통과 형벌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운 것을 아셨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땅에 엎드리어’(35절) 기도하셨다고 표현합니다. 땅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은 특별한 어려움이나 곤경에 처했을 때 기도하는 모습입니다(삼하 12:16). 일반적으로 당시 유대인들은 서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기도했기에, 예수님의 기도는 실로 간절하고 애타는 기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36절)라고 간구할 수밖에 없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6절).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 뜻을 이해하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앞에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기도의 본보기가 됩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 뜻을 내 뜻에 맞추려 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내 뜻을 하나님 뜻에 철저히 복종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자신의 원함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이 어떤 응답을 주시든 그 응답이 내 원함과 다르고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나를 향한 그분의 뜻과 계획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둘째, 하나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내 뜻과 다르다고 해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내 삶에 하나님 뜻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확인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순종하겠다는 다짐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에서의 복음 전도 사역을 꿈꾸고 준비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가 유럽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의 뜻을 하나님 뜻에 굴복시키고 그분 뜻에 순종했습니다(행 16:6~10). 기도는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참제자의 삶은 성령으로 육신을 이기는 삶입니다. 비록 마음이 원할지라도 늘 육신이 약하기에,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참제자의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기도가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종하는 기도입니다. 이를 위해서 내 뜻, 내 주장을 하나님 뜻 앞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확인받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발견하고 그분 뜻에 순종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작은 예수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기도에 있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마음으로 원하는 것과 달리 육신이 약해서 실족하지 않도록 주님처럼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예수님 가신 십자가 길을 사랑으로 따르며, 모든 언행과 인격과 삶으로써 예수님 닮은 참제자로 서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고난을 이기게 하는 기도의 힘

[마가복음 14장 32절~42절]
32절 -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절 -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절 -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절 -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절 -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절 -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절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절 -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절 -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절 -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절 -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고난의 잔에 관해 아버지 원대로 하시길 간구합니다. 당부에도 불구하고 잠자는 제자들을 보시고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신 후, 다시 나아가 동일한 기도를 하십니다.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오신 주님은 이제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릴 때가 왔으니 함께 가자 하십니다.

1. 아버지 뜻을 구하시는 예수님 (32~36절)
시험을 감당할 지혜와 힘은 기도를 통해 얻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십니다(눅 22:39). 유대인은 평상시에 서서 기도하지만, 간절히 간구할 때는 엎드려 기도합니다. 땅에 엎드리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36절)라고 부르십니다. 앞으로 겪을 극한 고난으로 인해 심히 고민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셨을 때, 자신을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아버지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십니다(히 5:7). '이 잔'(36절)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담은 잔, 즉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하신 것은 불순종이 아니라 십자가 죽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표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내 뜻이 아닌 하나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 뜻에 온전히 순종할 힘도 주십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누구의 소원을 이루는 데 사용되도록 기도하셨나요? 심히 고민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자녀다운 태도일까요?

2. 육신이 약한 제자들 (37~42절)
시험에 들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앞에서 극심한 고민을 기도로 이겨 내십니다. 마음으로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다면, 영적 의지력이 연약한 육신을 움직이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 번 기도하셨다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 뜻에 순종할 힘을 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세 차례 기도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42절)라고 말씀하시며 고난 속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도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오직 기도로만 고난을 끝까지 이겨 낼 영적 의지력을 얻습니다.
*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한 시간도 깨어 기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난 앞에서 담대함과 힘을 얻기 위해 나는 얼마나 자주 기도하나요?

오늘의 기도
아빠 아버지를 부르며 예수님이 쉬지 않으신 기도를 저 또한 쉬지 않길 원합니다. 피곤한 무릎을 강하게 붙들어 주셔서, 시험 많은 세상에서 실족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제 요구만 줄지어 늘어놓던 기도에서 순종을 위한 내려놓음의 기도로 나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십자가 보혈로 이룬 영원한 새 언약

[마가복음 14장 22절~31절]
22절 -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절 -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절 -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절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절 -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절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절 -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절 -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절 -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주시며 자신의 몸과 피라 하십니다. 식사 후 제자들과 감람산으로 가신 예수님은 그들이 모두 주를 버릴 것이라 하십니다. 베드로가 자기만은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날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그가 세 번 주를 부인할 것이라 예고하십니다.

1. 예수님의 몸과 피 (22~26절)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한 마지막 유월절 식탁은 새로운 구원을 상징합니다. 원래 유월절 식사는 출애굽을 기념하는 예식인데, 예수님은 떡과 잔이 그분의 몸과 피라고 하십니다. 이제 구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이 얻습니다. '언약의 피'란 시내산 아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이 체결될 때 모세가 제사드린 후 제단 위에 뿌린 피를 말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새로운 언약이 체결되고, 우리는 '새 언약'(신약) 백성이 됩니다. 포도주는 장차 하늘나라에서 있을 천국 잔치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이루신 구원은 '단 한 번'으로 충분하기 때문에(히 9:12), 다시 고난의 포도주를 마실 필요가 없습니다.
* 유월절 식탁에서 떡과 잔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찬식에서 떡과 잔을 먹고 마실 때,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나요?

2. 제자들의 배반을 예언하심 (27~31절)
고난의 때에 제자들은 흩어지고 예수님은 버림받으십니다. 제자들의 흩어짐은 성경에 예언된 일입니다(슥 13:7). 예수님은 하나님 뜻에 순종해 기꺼이 버림받으시고 고난의 길을 가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고 하십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처음 만나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사역하시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못난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보신 것입니다. 한편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도우셔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끝까지 신실합니다.
* 제자들의 배반을 예고하시는 주님께 베드로는 어떤 태도를 보이나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내가 호언장담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성찬을 대할 때, 주님이 어떠한 희생으로 저를 구원하셨는지 깊이 묵상하며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하소서. 배반당할 것을 아시고도 제자들을 끝까지 품어 주신 주님! 스스로의 다짐만으로 믿음을 지킬 수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우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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