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아픔도 품어야 하는 십자가의 길

[마가복음 14장 12절~21절]
12절 -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절 -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절 -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절 -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절 -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17절 -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절 -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절 -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절 -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절 -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 둘을 성내로 보내, 예비된 다락방에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와 함께 잡수실 때 그들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팔 것이라 하십니다. 인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지만, 그를 파는 사람은 화를 당할 것이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고도 하십니다.

1. 유월절 식사를 위한 준비 (12~16절)
순종은 주님 뜻을 온전히 이루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둘에게 유월절 식사를 위한 장소를 준비하게 하십니다. 그 과정은 나귀 새끼를 준비하게 하신 때처럼(11:1~6), 그분의 전지전능한 신성을 잘 보여 줍니다. 제자들은 고향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에 와 있었기에 유월절을 어떻게 지낼지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해 두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식사 장소를 '나의 객실'로 부르신 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주장할 수 있는 진정한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식사를 위해 기꺼이 큰 다락방을 내어 줍니다. 제자들과 무명의 집주인 모두의 순종으로 마지막 만찬 자리가 준비됩니다. 구원의 역사는 순종의 역사입니다.
* 예수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식사 자리는 어떻게 준비되었나요? 내 삶에서 주님이 원하셔서 친히 예비해 주신 일은 무엇인가요?

2. 가룟 유다의 배반을 예언하심 (17~21절)
온전한 순종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 뜻을 좇는 것입니다. 식사 도중에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을 배반해 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가룟 유다가 그분을 팔기 위해 대제사장들을 찾아간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자는 '기록된 대로'(21절) 가야 하기에, 가룟 유다가 행하는 죄악의 심각성을 일깨우시고는 그에 대한 모든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것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하나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십니다. 참기 어려운 배신과 견디기 힘든 고난을 이기는 비결은, 그 속에서 하나님 뜻을 발견하고 따르는 영적 의지입니다.
*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에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염려를 담은 질문에도 친절히 대답해 주시는 주님이 참 좋습니다. 주님의 지시를 따라 걷다 보면,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신비롭고 감사한지요. 죄의 유혹을 받을 때, 주님의 경고를 듣는 즉시 돌이켜 바른길 가는 제자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한 사랑의 기름 부음

[마가복음 14장 1절~11절]
1절 -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절 -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절 -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절 -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절 -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절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절 -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0절 -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절 -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민란을 우려해 명절을 피해서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예수님이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인이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붓습니다. 예수님은 그분 장례를 준비한 여인의 행동이 복음과 함께 전해지리라 하십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길 기회를 찾습니다.

1.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 (1~9절)
사랑하면 아낌없이 다 주고 싶어집니다. 한 여인이 식사 중이신 예수님께 와서 옥합을 깨뜨려 값비싼 고급 향유인 '나드'를 붓습니다. 옥합의 목 부분이 가늘었기에 그 부분을 깨뜨렸을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린다는 것은 옥합에 담긴 향유를 남김없이 다 붓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허비가 아닙니다. 사랑은 남김없이 다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기름 부은 여인의 행위를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기름 부음 받은 자'란 뜻)이심이 드러납니다. 또한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실 분(메시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 일이 예수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이라는 말씀은, 이 여인이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 일이 전해져서 기억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부어 드린 여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내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값진 헌신은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 (10~11절)
재물을 우선시하면 결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백성의 시선을 의식한 종교 지도자들은 '흉계로'(1절)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합니다. 여기에 기여한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돈 욕심 때문입니다(마 26:15; 요 12:6). 그가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았다는 것은 계획적인 배반 행위임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을 3년간 따르며 수많은 이적을 보았지만, 그는 진정한 회심에 이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정하게 부와 출세를 추구하는 길은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 길과 배치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삶 속에서 주님을 섬기는 일을 위협하는, 내 마음을 빼앗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한 번뿐인 인생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길은 바로 주님을 위해 바치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제게 생명까지 내어 주신 주님을 향해 사랑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저를 어리석게 여기는 이들의 평가에 굴하지 않고, 영원한 가치에 아낌없이 헌신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이 오실 때를 고대하며 깨어 있는 종의 삶

[마가복음 13장 28절~37절]
28절 -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절 -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절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절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절 -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절 -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절 -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절 -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절 -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무화과나무 가지가 잎을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예수님이 앞서 언급하신 징조가 보이면 인자가 가까이 이른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그분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버지 하나님만 아시므로 우리는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 깨어 있으라
나무의 변화로 계절의 변화를 알듯, 성도는 주님이 말씀해 주신 종말의 징조들을 기억하고 그것들로 마지막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천지가 사라져도 주님 말씀은 불변하며 반드시 성취됩니다. 우리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언제 오실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부 하나님만 아시는 그 시기를 계산해 내려 하지 말고 늘 준비해야 합니다. '타국으로 떠난 집주인과 종들' 비유에서 '집주인'은 예수님을, '종들'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저녁, 한밤중, 새벽 등 잠들기 쉬운 때를 언급하시며 "깨어 있으라"(33, 35, 37절)라고 강조하십니다. 깨어 있는 삶은 예수님이 오늘이라도 재림하실 수 있다는 긴장 속에서, 내가 예수님 앞에 바른 모습으로 서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한 소명에 충실하며 경건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삶은 선택이 아닌 명령입니다.

* 마지막 심판 날이 언제인지 아시는 분은 누구인가요? 심판과 재림의 주님 앞에 바른 모습으로 서기 위해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영광스러운 재림의 주님

[마가복음 13장 14절~27절]
14절 -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절 -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절 -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절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절 -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절 -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절 -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절 -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절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절 -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절 -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절 -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절 -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절 -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면,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그날은 전무후무한 환난의 날이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택함받은 자들을 미혹시키려 할 것입니다.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셔서 그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으실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 (14~23절)
종말에 있을 심판 날은 전무후무한 환난 날이 될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다는 것은 주후 70년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고 우상 제단이 세워짐을 예언한 것입니다(단 9:27; 11:31; 12:11). 심판 날에는 롯의 아내처럼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신속히 도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겨울'(18절)은 비가 많이 오는 우기입니다. 성도는 환난의 계절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환난의 주권자이신 주님은 택하신 백성을 위해 환난의 날들을 줄여 주십니다. 그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이적에 미혹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기이한 능력은 사람들의 눈길을 쉽게 사로잡지만, 그것을 참과 거짓의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말씀과 기도에 항상 깨어 있어야만 때를 분별하고,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 마지막 심판 때 주님은 택하신 백성을 위해 어떤 은혜를 베푸실까요? 그럴듯한 이단의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도록 내가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인자의 재림 (24~27절)
종말의 하이라이트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입니다. 종말에 있을 많은 환난이 지나가면 마지막으로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인자(예수님)는 큰 권능과 찬란한 영광으로 모든 사람이 명백히 볼 수 있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계1:7). 그리고 천사들을 보내 세상에 흩어져 있는 택함받은 성도를 모으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끝나고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사 43:5~7 참조).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진 세상에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성도는 고난 중에도 하늘 소망으로 늘 승리합니다.
* 주님이 큰 권능과 영광으로 재림하시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되리라고 왜 미리 말씀하셨을까요? 그날을 고대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어떤 태도로 살아갈까요?

오늘의 기도
종말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두려움에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서게 하소서. 택하신 성도를 위해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 밤이 깊어지면 아침이 오듯, 환난이 깊어지면 구원의 때가 더 가까이 오는 것임을 기억하며 은혜를 더욱 갈망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종말의 시험을 이기는 견고한 믿음과 인내

[마가복음 13장 1절~13절]
1절 -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3절 -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4절 -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절 -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절 -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절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절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절 -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절 -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절 -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절 -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성전 건물들이 다 무너질 것이라 하십니다. 그때에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전쟁과 지진과 기근이 있을 텐데, 이는 재난의 시작입니다. 먼저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핍박과 미움을 받겠지만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받습니다.

1. 성전 멸망과 미혹되게 하는 자들 (1~6절)
예루살렘 멸망은 세상 종말을 미리 보여 줍니다. 제자들이 보기에 예루살렘 성전은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강도의 소굴로 타락한 성전(11:17)의 철저한 파괴를 예언하십니다. 실제로 성전은 주후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됩니다. 제자들이 질문한 '이 모든 일'(4절)이란 성전 멸망을 포함해 세상 종말에 있을 일들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미혹하다'(헬, 플라나오)는 진리로 위장해 거짓과 파멸의 길로 유인하는 악한 자들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때에는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성도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참과 거짓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 기준은 오직 성경 말씀입니다.
*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의 철저한 파괴를 예언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종말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을 의미할까요?

2. 종말에 나타날 징조들 (7~13절)
전쟁과 지진과 기근은 종말의 징조들입니다. 이는 인간의 역사에 늘 있어 왔지만, 종말에 이르러는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또 다른 징조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입니다. '넘기다'(헬, 파라디도미)는 체포와 심문, 고문 등을 내포한 단어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고난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님 이름을 팔지만, 제자들은 예수님 이름을 위해 박해당할 것입니다. 위정자들은 심문하지만, 제자들은 성령께서 주시는 말을 전하며 복음 전파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종말이 오기 전에 먼저 이루어질 일은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는 사람은 구원받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는 박해받고 심문받는 과정을 어떤 기회로 삼아야 할까요? 미움과 핍박을 당해도 내가 끝까지 믿음을 지킬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 도
이단의 속임에 미혹되지 않도록 진리로 철저히 무장하게 하소서. 핍박 속에서도 주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견디며, 믿음의 경주를 아름답게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위해 '가는 선교사나 보내는 선교사'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을 모르는 위선과 주님께 드리는 최선

[마가복음 1장 35절~44절]
35절 -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36절 -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절 -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38절 -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절 -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절 -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41절 -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절 -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절 -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절 -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한 것에 관해 가르치십니다. 한편, 높은 자리를 원하며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외식하는 서기관들은 무거운 판결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은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생활비 전부를 넣었으나 누구보다 많이 헌금한 사람입니다.

1. 위선적인 서기관들 (35~40절)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주요 주권자며 통치자십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다윗의 자손인 그리스도를, 이방의 압제로부터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 지도자로만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주장을 거부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지만, 다윗이 주님으로 인정한 하나님 아들이십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율법의 해석자요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할 뿐 그 마음은 말씀과 멀어져, 말씀의 참뜻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율법의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저버린 채 교만과 탐욕으로 행했습니다. 이렇듯 위선적인 서기관들의 모습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 타락했음을(11:17) 여실히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은 겸손과 섬김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적 지도자의 행실과 내면의 자질은 어떠해야 할까요?

2. 칭찬받는 가난한 과부 (41~44절)
위선적 삶이 되지 않으려면, 마음과 태도에 늘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성전에는 여인의 뜰 주변을 따라 삼면의 벽에 연보궤가 13개 있었습니다. 이 연보궤는 양각 나팔처럼 입구는 좁고 밑바닥은 넓어, 이곳에 동전을 던질 때 나는 소리를 듣고 금액의 많고 적음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두 렙돈은 적은 금액이나,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과부의 헌금에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그녀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넣은 것이라며 칭찬하십니다. 그녀는 자기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금액이 아닌 사랑과 헌신의 마음을 보십니다.
* 과부의 가산을 삼킨 서기관들, 두 렙돈을 드린 과부는 어떤 대조를 보이나요? 나의 헌금 생활을 돌아보세요. 헌금에 사랑과 헌신의 마음이 담겨 있나요?

오늘의 기도
서기관들처럼 높은 자리에 앉아 섬김을 받기 좋아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가식적으로 행했던 저를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시간이든 물질이든 원하는 대로 다 쓰고 남은 것이 아닌, 가진 전부를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헌신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사랑이 최고 계명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8절~34절]
28절 -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절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절 -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절 -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절 -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절 -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배경 이해하기]
서기관은 문자적으로는 ‘글을 필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특정 관직을 의미했으나 포로기 이후 율법과 관련한 일을 하는 전문 직종이 되었습니다(스 7:11). 율법을 필사하다 차츰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기도 했고, 신약시대에는 율법사나 율법 학자로 불렸습니다(마 22:35; 눅 7:30). 대부분 바리새파 출신으로, 오랜 시간 엄격한 훈련을 거쳐 서기관이 되었습니다. 서기관들은 ‘랍비’라 불렸는데, 예수님은 선생 되기 좋아하고 긴 옷을 입고 다니면서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높은 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의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12:38~40). 당시 서기관들은 율법을 해석해 세세한 규칙을 만들고, 백성의 종교 및 일상생활에 율법을 적용시키면서 백성을 지배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라’는 긍정적 계명이 248개, ‘~하지 말라’는 금지 계명이 365개로 전체 613개의 계명이 있습니다. 한 서기관은 예수님과 사두개인들의 부활 논쟁을 듣다 사두개인들이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도록 예수님이 대답하시는 것을 보고는,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두 가지 계명이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은 첫째 계명이 무엇이라 하시나요? 또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나요?(29~30절)

예수님은 유일하신 주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쉐마’라는 신앙신조(신 6:4~9; 11:13~21)가 있습니다. 신명기 6:4절의 히브리어 첫 단어 ‘쉐마’(들으라)에서 유래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쉐마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암송할 뿐 아니라 그 말씀이 든 작은 상자(테필린)를 팔이나 이마에 착용해 일상에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쉐마 첫 부분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를 인용하십니다. 이는 십계명 제1계명의 중심이며 신앙의 대전제인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열심 있는 서기관에게 그분의 가르침이 율법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며, 율법의 연장선에서 완성임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하지 말라’는 부정적 금지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계명을 으뜸으로 제시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다하다’(헬, 홀로스)는 제한적이고 부분적으로 사랑하라는 뜻이 아닌, 전폭적이고 전의지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즉 전 인격과 모든 정성과 모든 능력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예배는 어떻게 다를지 나누어 보세요.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 예배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으로 예배하기 원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예배를 위한 형식과 절차는 철저하게 지켰지만, 정작 예배를 받으셔야 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형식적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세상과 교회에 양다리 걸친 반쪽 신앙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모든 좋은 것을 예비하십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우리는 모든 지성과 의지를 드려서, 생명 다하기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한 헌신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먼저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말씀하신 둘째 계명은 무엇인가요?(31절) 서기관의 지혜 있는 대답에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시나요?(32~34절)
예수님이 말씀하신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기관의 지혜 있는 대답에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고 질문했지만 예수님은 두 번째 계명까지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이웃 사랑은 곧 하나님 사랑의 실제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정작 사랑을 나누어야 할 이웃이 없었습니다. 이웃 사랑은 구약 성경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8). 레위기에서 이웃은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살던 거류민을 가리킵니다(레 19:33~34).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통해 강도 만난 자의 참이웃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시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자비를 베풀어야 함을 교훈하셨습니다(눅 10:25~37). 예수님 말씀을 깨달은 서기관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대답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서기관이 하나님 나라에 이끌림 받을 수 있는 분별력이 있음을 인정해 주시고, 삶을 결단할 수 있도록 격려하십니다.  
적용과 나눔
이웃 사랑의 기준인 ‘자기 자신과 같이’를 얼마나 실천하고 있나요? 우리 공동체와 내가 하나님 사랑을 전해야 할 이웃은 누구인가요?

죄인 된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작은 것까지도 빠르고 부지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지 않으면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을 귀찮아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웃을 도와줄 때도 귀찮아하거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따뜻하고 자상하게 다가가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관대하다면 이웃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이웃의 유익을 위해 내 유익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똑같이 또는 그 이상으로 이웃을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인내와 끈기로 대하듯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도 인내와 끈기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미루지 말고 곧바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은 내 본성과 같고 내 마음과 비슷하기에, 나와 이웃은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 주변을 돌아보아 도와야 할 이웃은 없는지 살피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모든 계명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생명이 다하기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맹목적 사랑이 아니라 지성을 다해, 뜻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재능과 물질로, 몸으로 봉사하며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웃 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불성설입니다. 이웃만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인본주의적 신앙이 됩니다. 이웃 사랑은 인간관계에서 나타납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기에 힘쓸 때, 이웃 사랑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나님을 믿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 날마다 친밀한 사랑으로 교제하는 기쁨이 충만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긍휼을 이웃에게 전하며 영혼 구원의 기회로 삼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 나라의 최고 계명,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마가복음 12장 28절~34절]
28절 -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절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절 -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절 -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절 -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절 -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님은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서기관에게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답하십니다. 서기관은 그 말씀이 옳다 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하십니다.

1. 첫째 계명은 하나님 사랑 (28~30절)
첫째 계명은 모든 계명의 근간이며, 어떤 계명을 제대로 실천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구약에는 계명이 613개 있는데, 그중 으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장 4~5절을 인용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네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 즉 중심을 살피십니다. 그 반대는 형식적으로, 마지못해 하는 사랑입니다. 둘째, '목숨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셋째, '뜻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뜻'에 해당하는 헬라어(디아노이아)는 '이해'라는 의미인데, 서기관은 이를 '지혜'(33절)라고 표현합니다. 즉, 맹목적으로가 아닌 지성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넷째,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힘'이란 육체적 힘과 재산 등을 포함합니다. 받은 은사대로, 몸으로 봉사하며 물질을 바쳐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왜 모든 계명 중 첫째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네 가지 방식 중 내가 잘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2. 둘째 계명은 이웃 사랑 (31~34절)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레 19:18). 유대교에서 이웃은 동포인 유대인을, 원수는 이방인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경계를 허무십니다(마 5:46~47).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는 것이요(마 7:12), 매사에 입장을 바꿔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으며(삼상 15:22), 하나님은 제사보다 인애와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호 6:6).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떤 영역에서 하나님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은 어떤 제물보다 사랑을 귀히 여기시는 분임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으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 이웃을 대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오늘, 이곳에서 저를 통해 이루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세상 권세보다 높으신 영원하신 부활의 주님

[마가복음 12장 13절~27절]
13절 -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절 -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절 -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절 -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절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18절 -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19절 -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0절 -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21절 -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22절 -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23절 -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4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25절 -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26절 -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27절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예수님 말씀을 책잡으려는 사람들이 가이사에게 세금 내는 것이 옳은지 묻자, 예수님이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십니다. 부활에 대해 묻는 사두개인들에게 부활 때에는 결혼하지 않고 천사와 같으며, 하나님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의 하나님이라 말씀하십니다.

1. 납세 논쟁 (13~17절)
예수님은 논쟁을 통해 만물에 대한 하나님 주권을 교훈하십니다. 당시 데나리온 동전에는 가이사 형상과 라틴어로 '티베리우스 황제, 지존한 신의 지존한 아들'이란 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며 이 세상 통치자인 가이사의 권위를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가이사에게 주어진 것은 이 세상의 일부일 뿐입니다.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그분의 주권은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납세 의무를 인정하시면서도, 가이사의 권세가 하나님 주권 아래 있음을 깨우치십니다.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 전체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 예수님이 데나리온에 새겨진 형상을 사람들에게 확인하게 하신 후 대답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내가 하나님 것으로 인정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2. 부활 논쟁 (18~27절)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황당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책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가정한 것에 답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 능력도 알지 못해 오해했다고 지적하십니다. '오해하다'(24, 27절)로 옮긴 헬라어는 '미혹하다, 속이다, 길을 잃다'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잘 아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미혹되어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세상에서는 죽었지만 천국에서는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은 이 땅에서만 그들의 하나님인 제한적 존재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을 함께하려고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부활 신앙이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합니다.
* 사람이 부활하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모든 인간에게 절대 충성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로서 제가 머무는 자리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을 남길 수 있기 원합니다.부활이 있음을 믿기에 세상 방식과 다르게 살아가는 진정한 신앙인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참주인을 망각하고 주인 노릇한 이들의 최후

[마가복음 12장 1절~12절]
1절 -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절 -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절 -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절 -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절 -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절 -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절 -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절 -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절 -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절 -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절 -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절 -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포도원을 만들어 세주고 타국에 간 주인이 소출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냅니다. 그러자 농부들은 매번 종을 때리거나 죽이고 최후에는 주인의 아들마저 죽입니다. 이에 주인이 와서 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입니다.

1. 악한 포도원 농부들 비유 (1~8절)
욕심과 탐심이 배은망덕한 행위를 초래합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을 교훈하기 위해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에서 소작인들인 악한 농부들은 마땅히 주인에게 바칠 소출을 자신들이 취하려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거나 죽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거부하고 학대한 완악한 이스라엘, 특히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한 종은 세례 요한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마저 거부하고 십자가 처형에 넘긴 자들입니다. 악한 농부들의 폭력성은 주인 것을 차지하려는 탐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하나님 것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죄입니다. 죄에 이끌리지 않으려면, 정욕과 탐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 최후로 기대를 걸고 아들을 보낸 주인에게서 하나님의 어떤 면모를 느낄 수 있나요? 내가 날마다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할 세상 욕심은 무엇인가요?

2. 건축자들이 버린 모퉁이의 머릿돌 (9~12절)
주인을 무시하고 탐욕과 폭력을 일삼던 악한 농부의 결말은 명백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들을 진멸하고 '제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마 21:14)에게 포도원을 넘겨줄 것입니다. 신실한 농부는 포도원이 주인 것임을 알아 최선을 다해 일하고 그 열매를 주인께 바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을 가장 중요한 모퉁이 머릿돌로 삼으십니다(시 118:22~23). 이는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배척당해 돌아가시지만, 결국 부활해 높임받으심을 예언한 것입니다(행 4:11; 벧전 2:7). 놀라운 반전과 역전의 주권자이신 주님은 우리 삶을 그 은혜로 가득 채우십니다.
*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결국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주님이 내 인생에 베푸신 반전과 역전의 은혜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추악한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요! 선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탐욕에 눈멀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저를 용서하소서. 완악함을 버리고, 머릿돌 되신 주님을 존귀히 여기며 섬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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