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빌라도의 심판 15:1-14
1. 우리 주 예수께 대한 효과적인 기소를 위한 산헤드린 공회의 의논(1)
그들은 새벽에 이 일로 모였다. 그들은 그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매우 서둘렀다. 악한 사람들이 지칠줄 모르고 부지런히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며 우리가 마지못해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생각할때 우리는 부끄러워하지 않을수 없다.
2. 빌라도에게 그리스도를 죄수로 넘겨줌(1)
그들은 예수를 결박했다. 그리스도께서 결박되신 것은 우리가 속박을 받더라도 그 속박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며 바울과 실라처럼 속박을 받으면서도 찬송할수 있게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결박된 예수님과 함께 결박된 것처럼 종종 주 예수님의 속박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예루살렘성의 거리로 끌고가서 멸시를 받도록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날밤에 얼마나 비참한 대우를 받았는지 충분하게 상상할수 있다. 그들은 자원하여 이스라엘의 멍에가 되었던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왕인 그리스도를 넘겨주었던 것이다.
3. 그리스도에 대한 빌라도의 심문(2)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의 이 심문에 대해 그리스도는 "네 말이 옳도다. 내가 바로 그들의 메시야다"라고 말씀하셨다.
4. 그리스도를 탄핵하는 조항과 고소를 당한 그리스도의 침묵(3-7)
대제사장들은 몸소 밀고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여러가지로 고소'(3절)했으며 그리스도를 곤경에 몰아놓는 증거를 제시했다(4절). 악한 제사장들은 대체로 가장 악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것이 더좋으면 좋을수록 타락할때는 더나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제사장들은 그리스도를 고소하는 일에 매우 열심이었을뿐 아니라 소란까지 피웠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무대답도 하시지 않으셨던 것이다(5절). 빌라도는 그리스도가 자신을 변호하도록 촉구했으며 또 그렇게 하기를 바랬으나(4절) 그리스도는 여전히 아무대답도 하지않고 묵묵히 서 계셨다(5절). 그래서 빌라도는 그리스도의 침묵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미 빌라도에게 명백한 답변을 하셨다(2절). 그러나 그리스도는 고소하는 자들과 증언자들에게 대답하기를 원치않으셨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주장이 악의에 넘친 잘못된 것이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 자신도 그들의 잘못을 확신하고 있음을 알고계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훌륭하게 말씀하셨듯이 훌륭하게 침묵을 지키셨던 것이다.
5. 예수를 풀어주기 위하여 빌라도가 무리들에게 보인 제안(8-10)
그것은 명절이 되면 죄수 한명을 특사로 석방시켜 주는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주기를 구한대(8절).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주었음을 알고 있었다(10절). 그들이 성난 이유가 그리스도의 죄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선때문이었다는 것은 쉽사리 알수 있었다. 빌라도는 무리들에게 호소하여 제사장들로부터 안전하게 그리스도를 구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만일 무리들이 그리스도를 석방시키라고 요구하면 빌라도는 기꺼이 그리스도를 석방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라바라는 또 다른 죄수가 있었다. 그는 무리들의 관심을 끌었던 사람으로서 무리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얻었던것 같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가 바라바보다 더많은 지지를 받을 것을 의심치 않았다.
6.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치는 무리들(11-14)
모든 무리가 하나같이 격분하여 그리스도를 특별히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아우성쳤다. 빌라도는 바라바를 석방시키라는 무리의 아우성을 보고 매우 놀랐다(11절). 빌라도는 그가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것을 반대하고자 했다.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12,13절). 그러나 빌라도는 무리들의 요구에 반대하여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라고 다시 질문했다. 그들은 그 질문에 대답하려 하지않고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아우성쳤다. 그때 제사장들은 그리스도를 비난하는 것이 빌라도에게 다음 두가지 영향을 끼칠것을 확신했다.
첫째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아우성이 매우 크면 빌라도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죄를 범했음을 믿게 할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확실히 빌라도는 그리스도가 온세상이 싫어하는 나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와 그의 종교를 나쁘게 말하고 그를 없애려하는 것은 사단의 일반적인 술책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비곡직에 따라 사람들과 사물들을 판단해야지 한나라에 퍼져있는 일반적인 명성이나 소문으로 인한 편견에 치우쳐선 안된다.
둘째로 빌라도는 무리들이 불만스러워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 무리들이 기뻐한다는 그는 기꺼이 그리스도를 비난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빌라도는 비록 무리들의 아우성에 좌우되어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큼 우둔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결백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죄할만큼 사악했던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로 죽으셔야 했기때문에 빌라도는 그 희생 제물을 격분한 많은 무리들에게 내주었던 것이다.
Ⅱ. 형장으로 가시는 예수 15:15-21
(1)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악한 뜻을 만족시키려고 그리스도를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주니라(15절). 비록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하여 그리스도에게 먼저 채찍질했으나 그때에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주고 말았다. 죄없는 자에게 채찍질한 것을 확신할수 있었던 사람이 점차로 그 죄없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확신할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눅 23:16).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죽으셔야 했기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것이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피를 흘리며 죽으셔야 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리셔야 했으므로 십자가에 못박혀 그의 피를 흘리셨던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고통스럽게 죽으셔야 했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죽음의 고통을 맛보시기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가장 큰 공포를 느끼시며 죽으셨을 것이며 그러므로 그 죽음을 정복하셨을 것이다.
셋째로 그리스도는 수치스럽게 죽으셔야만 했다. 그 죽음은 노예들이나 가장 비열한 악인이 당하는 그러한 수치스런 죽음이었던 것이다. 십자가와 수치는 공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장 심한 비난과 치욕을 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만족을 이루셨다. 그러나 이것도 가장 심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극악한 점은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시며 죽으셔야 했다는 사실이다. 그 저주는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여 낙인이 찍힌 것이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3).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으로 나무에 달리셨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죽음의 비난과 저주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2) 빌라도는 로마 군인들의 장난기를 만족케하려고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내주어 능멸을 당하시게 했다(16-19). 그들은 대기하고 있던 온군대를 모아 뜰안으로 가서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왕으로 꾸며 능멸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능멸하는지를 보라.
첫째로 그들은 "왕들은 자주색 옷을 입어야겠지"라고 희롱하면서 예수께 자색 옷을 입혔다.
둘째로 그들은 "왕들은 면류관을 써야겠지"라고 희롱하면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다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웠다. 밀짚이나 목피로 만든 면류관을 씌워도 그들이 희롱하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가시 면류관을 예수님의 머리 위에 씌워 찔림을 당하는 아픔까지 느끼시게 했다. 그리스도는 그가 쓰시기에 합당한 영광의 면류관을 우리에게 씌우시기 위하여 우리가 마땅히 써야할 가시 면류관을 쓰셨던 것이다.
셋째로 그들은 "왕들에겐 신하의 문안이 있어야겠지"라고 희롱하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18절)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 문안까지도 흉내냈던 것이다.
넷째로 왕들은 통치의 표로 그 손에 홀을 갖고있는데 그들은 이것을 모방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도록(마 27:29)했다. 주 예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은 실제로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는 이 로마 군인들과 같은 자들인 것이다.
다섯째로 신하들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할때는 그 왕에게 입을 맞추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 대신 예수님에게 침을 뱉었다.
마지막으로 왕에게 무릎을 꿇고 인사하는 신하의 예를 모방하여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희롱을 하며 꿇어 절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경멸하면서 이런 행동을 했으며 서로 웃고 야단들이었다. 예수님이 이처럼 자신의 옷이 아니라 남의 옷을 입고 조롱을 당하신 것은 그가 그 자신의 죄때문에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뒤집어 쓰신 죄는 바로 우리의 죄이며 그가 당하는 수치는 바로 우리의 수치인 것이다.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으면서 그 영혼의 무릎을 꿇지않는 자들은 여기에서 보이는 로마 군인들의 행동처럼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3) 정해진 시간이 되자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의 법정에서 처형장으로 끌고갔다(20,21절). 그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으로 하여금 예수님 대신 예수님이 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게 했다. 그는 아무생각도 없이 시골에서 와서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갑자기 우리에게 십자가와 같은 고난이 엄습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일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십자가는 매우 다루기 힘들고 무거운 짐이었다. 그러나 얼마 동안이라도 그 십자가를 졌던 시몬은 성경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복음은 그 구레네 사람 시몬을 기념하게 될 것이다.
Ⅲ. 십자가에 못박히심 15:22-32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내용이다.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던 장소(22)
그곳은 골고다라 하는 곳으로 번역하면 해골의 곳을 뜻한다. 이곳은 평범한 처형장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점에서 죄인들과 다를바 없이 취급되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못박히셨던 것이다.
2.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던 시각(25)
그 시각은 제 삼시였다. 유대인들의 계산 방법에 따르면 제 삼시는 곧 아침 아홉시경이거나 아니면 그보다 좀 늦은 시각이었다. 그들은 바로 그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
3.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때 받았던 모욕(23,24,26-32)
(1) 사형당하기로 된 죄수에게는 포도주를 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줄 포도주에 몰약을 탔으므로 포도주의 맛은 썼다. 예수님은 그 포도주를 맛보시긴 했어도 그것을 마시는 것은 원치 않으셨다. 그는 그 포도주의 쓴맛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그것을 마심으로써 그 효과를 얻으려하시지는 않으셨다.
(2)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들의 옷들은 사형을 집행한 사람들에게 사례로 주어졌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누려고 제비를 뽑았던 것이다(24절). 이와같이 그들은 예수님의 고통을 즐거워했다.
(3) 그들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26절)고 쓴 죄패를 씌워 놓았다. 이 죄패에는 아무런 죄목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의 주권만이 쓰여 있었다. 아마도 빌라도는 이 글을 통해 좌절당한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에게 모욕을 주려고했거나 아니면 더할나위 없이 선한 왕을 섬길 자격이 없는 백성으로서의 유대인들에게 모욕을 주려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선포하시려 한 것이다. 가야바가 자기의 한 말을 알지 못한 것과 같이 빌라도도 그가 쓴 말의 참뜻을 모르고 있었다(요 11:51).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볼때마다 그의 머리 위에 그가 왕이라고 쓰여져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4)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27절). 예수님은 셋 중에 가장 악한 자로 여겨졌기 때문에 가운데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선을 베푸시기 위하여 그 죄인들과 교제를 나누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셨던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으며 또 그것을 위해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가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던 점은 그 일을 통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해 좋은 이사야서에는 예수님이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어야'(사 53:12)한다고 예언되었다.
(5) 구경꾼들은 예수님의 불행을 보고 위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모욕했다. 예수님의 불행을 보고 그를 모욕한 구경꾼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살펴보자.
첫째로 '지나가는 자들'(29절)까지 그를 모욕했다. 그들은 몹시 예수님을 조롱했을뿐 아니라 그를 몹시 증오하며 분개해 했다. 분명 대제사장들이 비꼬았던 말을 듣고 그들도 사용했을 것이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9,30절). 그들은 이런 말로써 예수님을 모욕했던 것이다.
둘째로 대제사장들까지 그를 모욕했다. 대제사장들은 사람가운데서 취했으며(히 5:1,2) 사람을 위하여 임명되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아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수 없도다'(31절)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예수님이 할수만 있다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요구했다(32절).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아야만 그를 믿겠다는 것이다.
셋째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던 강도들까지도 예수님을 모욕했다(32절).
Ⅳ. 예수님의 죽음 15:33-41
여기서 나타나는 설명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설명이다.
(1) 세 시간 동안 온땅에 어두움이 임했다(33절). 유대인들은 종종 그리스도에게 '하늘로써 오는 표적'(막 8:11)을 구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한다는 뜻의 표적을 받았던 것이다. 그 나라에 이미 왔으며 또 오게될 것은 어두움의 표적이었다. 이 표적이 그들에게 암시했던 것은 그들이 평화로울때 소유했던 모든 것은 이제 그들의 눈으로부터 숨기워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어두움의 권세아래 놓여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일은 어두움의 일인 것이다.
(2) 이 어두움의 때가 가까워지자 우리 주 예수님은 영혼의 고통을 당하시고 크게 소리지르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34절). 이 어두움이 뜻하는 것은 사람의 몸을 입은 그리스도의 영혼이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고 있었을때 그를 덮었던 현재의 구름이었다. 우리 주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있었을때 하나님의 도움도 끊겼다는 것을 뜻하기 위하여 태양 빛으로부터도 부인을 받았다. 그는 이것을 어떤 것보다도 더 한탄하셨다. 그의 제자들이 그를 버렸을때에도 그는 제자들이 그를 버린 것에 대해 한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자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탄하셨던 것이다.
첫째로 그 이유는 이 일이 그의 영에 대해 상처를 주었으며 또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 이유는 특히 예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우리를 위한 죄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나타난 이 징조들은 때때로 희생 제물을 태우기위하여 보내졌었던 하늘의 불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열납하셨다는 것을 상징했다. 하나님이 죄인으로 말미암아 흡족히 여기지 않았을 경우 그 죄인에게 떨어질 불은 제물 위에 떨어져 하나님이 흡족히 여기셨다는 표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 불은 이제 그리스도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 대해 말하기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라고 했다. 그러나 죄인들의 죄를 위하여 드리는 제물은 또 다른 것이다.
(3) 그리스도의 기도가 곁에 섰던 자들에 의하여 조롱을 받았다(35,36절).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엘리 엘리'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마가는 이 말을 아람어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리스도가 말한것뿐 아니라 그 말의 뜻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가 엘리야를 부른다고 말했다. 그때 그들가운데 한사람이 해융에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게(36절) 했다. 그들이 이 일을 한 것은 예수님에게 더 모욕을 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일을 했던 사람에게 이 일을 하도록 지시를 내린 자가 누구든 그는 예수님을 더 비난했을 것이다. 그는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주나 보자'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만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주지 않는다면 엘리야도 그를 버린 것으로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 다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다(37절).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큰 소리를 지를수도 없을뿐 아니라 말조차 나오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심령에 힘을 부어 주신다면 말이 나올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큰 소리를 지르신후 실제적으로 죽으셨다. 그 이유는 그의 영혼이 떠났기 때문이다. 그의 영혼이 영의 세계로 떠나자 그의 육신은 호흡이 끊어져 흙덩어리와 다를바 없게된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언덕 위에서 운명하신 바로 그 순간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38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첫째로 이 사건은 믿지않는 유대인들에게 상당히 큰 두려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이 그들의 교회와 국가가 오래지않아 초토화된다는 전조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사건은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당히 큰 위로를 주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우리에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새롭게 살 길'(히 10:19,20)을 열어주는 희생을 뜻하기 때문이다.
(6) 처형을 감독하던 백부장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시인했다(39절). 그에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납득시켰던 한가지 사실은 그리스도가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렸으며 그리스도에게 모욕을 준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다. 그러나 그 백부장이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해야 했는지 알아보자.
첫째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부당하게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할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부당하게 고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참되며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하늘이 사랑하는 자라고 말할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죽을때 하늘이 그에게 얼마나 영광을 돌렸는지 눈으로 직접 보았던 것이다. "분명 이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지극히 사랑을 받는 자가 틀림없다"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심한 고난과 모욕을 당했을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공언된 것이다.
(7) 그리스도를 가까이 따르며 섬기던 선한 여자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었다(40,41절).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감히 나타나지 못했다. 여자들도 감히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멀리서서 슬픔에 차 있었다. 이 여자들가운데 이름이 기록된 여자들도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 중에 하나였다. 그 여자가 위로를 얻을수 있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권능과 선하심 뿐이었다. 그 여자는 일곱 귀신들린 병을 앓다가 그리스도의 권능과 선하심에 의해 병고침을 받았었다. 그 여자는 그것이 감사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를 섬겼던 것이다. 마리아도 그곳에 있었는데 그 여자는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였다. 이 마리아는 글레오바 곧 알패오의 아내인 동시에 동정녀 마리아의 자매이기도 했다. 이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굳이 잔치에 참석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리스도를 따르기위하여 갈릴리로부터 왔던 것이다. 이제 보좌 위에 앉게될 것으로 생각했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것을 보자 그 여자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크게 출세할 것을 기대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아마도 몹시 실망하게될 것이다.
Ⅴ. 무덤에 장사된 예수님 15:42-47
여기서 대하게 되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장사되는 내용이다.
(1) 어떻게 그리스도의 시체를 달라는 부탁이 이루어졌나(42-44절). 그리스도의 시체는 로마 당국이 처분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1) 언제 그리스도의 시체를 달라는 부탁이 이루어졌으며 어째서 그리스도의 시체를 그렇게 서둘러 장사지냈나. 이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때에(42절). 유대인은 어느 절기일보다도 안식일을 더 열심히 엄수했다. 그러므로 이 날이 비록 어떤 절기일이라해도 안식일에 더 종교적인 비중을 두어 그 달을 절기일보다 안식일 전날로 준수했을 것이다. 안식일 전날은 곧 안식일을 위한 예비일이었다. 우리는 하루전날 안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안식일의 결실을 맺으며 다음 안식일을 준비하는 일에 한 주간을 배당해야 한다.
2) 그리스도의 시체를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누구였나. 그것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다. 그는 여기서 인격적이고 신중한 성품을 지닌 '존귀한 공회원'으로 불렸다. 그는 바로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더훌륭한 특성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던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그 나라의 특권을 통해 얻는 유익을 바라는 자들은 자진하여 그리스도의 주장을 시인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감히 그 일을 할수 없었을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세워 이처럼 필요한 봉사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갔다. 비록 요셉은 그것이 얼마나 대제사장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용기를 가지고 그 일을 수행했다. 처음에는 요셉도 아마 좀 두려워했을 것이다.
3)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놀랐다. 빌라도는 그리스도께서 죽었는지 안죽었는지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죽은 것처럼 속여 그 몸을 산채로 십자가에서 내리게 하는 일이 생길까봐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부하인 백부장을 불러 그리스도께서 '죽은지 오래냐'(44절)라고 물었던 것이다. 백부장은 빌라도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을 확신시킬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운명하셨는지를 주목해 봤었기 때문이다(39절). 빌라도는 그 의문속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가 산 채로 장사되었다고 말하여 그리스도께서 부활하리라는 진리를 헛되게 하는 구실을 주지않으려는 것이었다. 종종 그리스도의 진리는 이와같이 그 원수들에게서도 확증을 얻게 된다.
(2) 어떻게 그리스도의 시체가 장사되었나(45-47절). 빌라도는 요셉에게 그리스도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 그가 원하는대로 할수 있도록 위임했다.
1) 비록 시체를 싸는 일에 사용할 세마포는 낡은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할수 있었으나 요셉은 그리스도의 시신을 싸기위하여 새로운 세마포를 샀다.
2) 그리스도의 시신이 비록 온몸에 상처투성이고 야위었지만 요셉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시신을 내린뒤 값진 보물처럼 세마포로 쌌다.
3) 요셉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놓은 바위속에 판 무덤에 그리스도의 시신을 넣어두었다. 이 돌무덤은 요셉의 소유였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머물고 있었을때 아무런 땅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묘실만은 갖고 있었다. 이 돌무덤은 바위를 파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무덤을 성도들의 피난처로 만들기위하여 죽으셨던 것이다.
4) 요셉은 돌을 굴려 무덤문에 놓았다. 요셉이 이렇게 한 이유는 그것이 유대인의 장사하는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5) 몇몇 선한 여자들이 그리스도의 시신을 장사하는 곳에 참석하였으며 안식일이 지난 뒤에 그의 시신에다 기름을 바르러 오기 위하여 예수 둔 곳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지금 그 할일을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위대하신 중보자이시며 새 계명을 주신 분인 예수께서 장사되자 그의 무덤은 특별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부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몸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몸인 교회에 관하여 갖게될 관심을 나타낸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장사된 것을 명상하면서 우리 자신이 장사된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무덤을 우리에게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일수 있게하며, 어두움의 때를 만날 경우 즉시 만들어야할 편안한 안식처가 되도록 해야한다.
# 해설
십자가 수난과 죽음 ( 15 )
본장에는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대제사장에게 잡힌 예수님은 새벽에 빌라도에게로 호송되었습니다. 유대인 공회는 사형을 집행할수 없었기때문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빌라도의 힘을 빌어 예수님을 처형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로부터 사형판결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1. 로마 총독 빌라도
1) 빌라도의 심문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최고 재판소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에 의해 재판을 받고 사형이 확정되어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겨졌습니다. 대제사장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한 주님은 빌라도 앞에서도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시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빌라도는 이어서 여러가지를 물었으나 주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그것은 대답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침묵하시자 빌라도는 이를 기이히 여겼습니다.
a.유대인에게는 사형권이 없으므로(요18:31)
b.강포함(눅13:1)
2) 바라바를 석방시키라고 함
당시 로마에는 명절때 총독의 결정에 따라 죄인들 중 한명을 풀어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발견하지 못한 빌라도는 이 관습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유대인들에게 바라바와 예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했습니다. 대제사장들로부터 충동을 받은 무리들은 바라바를 석방시켜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의 시기와 왜곡된 신앙 양심은 예수님을 증오하였을뿐만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a.살인한 바라바(눅23:19)
b.의인을 사형하고 살인자는 놓아준 불의의 재판(행3:14)
3) 십자가형을 언도함
로마 총독인 빌라도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무리들이 바라바를 석방시켜 달라고 하자 예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소리질렀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라는 성난 무리의 외침을 들은 빌라도는 자신이 그들의 마음을 바꿀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군중들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한 빌라도는 그리스도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당시의 역사가의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는 잔인하고 탐욕적인 인간으로 사악한 양심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무죄를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언도했습니다.
a.군중 심리에 휩쓸림(행19:32).
b.무리에게 만족을 주기 위한 것임(막15:15).
2. 십자가의 수난
1) 예수님을 희롱함
온군대를 회집한 로마 군병들은 우선 주님께 당시 왕들이 입던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면서 갈대로 머리를 치며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능멸의 절정으로써 꿇어 절하였습니다. 그후 십자가에 못박기위해서 예수님을 끌고 나갔습니다.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자는 자신이 못박힐 십자가를 직접지고 형장까지 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과 구레네 시몬이 번갈아 졌습니다. 드디어 골고다라는 장소까지 이르렀습니다.
a.예수를 모욕함(마27:30)
b.예언의 성취임(사50:6)
2)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골고다에 이르자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주님께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군병들은 주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희롱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매달린 강도도 그리스도를 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a.해골이라하는 곳(눅23:33).
b.예언을 이루고자 지심(시22:18)
3) 그리스도의 죽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말로 형언할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하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통으로 부르짖을때 그 곁에 선 무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엘리야를 부른다고 외치며 그 결과를 보기 위한 천박한 호기심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주나 보자'라는 곁에 선 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끝내 큰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습니다.
a.최악의 처지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빌2:8)
b.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하심(눅23:46)
3. 예수의 죽음
1) 백부장의 고백
예수의 운명과 함께 성소에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과 인간을 차단하고 있던 죄의 담을 허물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참조, 엡2:14). 예수님의 운명을 지켜본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군중 심리에 들떠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할때 그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고요히 주목하고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a.백명의 부하를 지휘하는 로마 군관(행21:32)
b.예수같은 의인은 인생 중 없음(롬3:10)
2) 충성된 여인들이 지켜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실때 충성된 여인들이 그리스도의 운명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은 아닐지라도 은밀한 가운데 그리스도께 헌신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늘 자기와 함께하도록 하기위해 택하신 제자 이상으로 충성했습니다. 그들은 공생애 기간에 그리스도를 만난 그야말로 제자 중의 제자들입니다(참조, 요15:27). 이름없이 주님께 헌신 봉사하던 이들이 있었기에 주님과 사도들의 복음 사역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a.그리스도를 섬길 것(요12:26)
b.무덤까지 확인함(막15:47)
3) 무덤에 장사됨
예수님께서 운명하시자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는 공회원으로서 부자이며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새로 산 세마포로 싸고 자기를 위해 새로 마련한 무덤에 정성껏 장사지냈습니다(참조, 마27:60). 이로인해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라는 이시야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참조, 사53:9).
a.산헤드린 공회원(눅23:50).
b.성도의 옳은 행실(계19:8).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 수난당하시는 주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죄가 없으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한 빌라도의 행위를 통해 악한 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면서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진리를 외면하는 자들은 모두 빌라도와 같은 악한 자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악한 자의 행위를 멀리하고 선한 자의 행위를 본받도록 해야 합니다.
# 핵심
15:1-32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하면서도 유대 군중의 폭동을 우려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그 상황에서도 구약 예언대로 온갖 조롱을 당하셨다.
빌라도(15:1)
A.D. 26-36년에 유대와 사마리아, 이두매를 통치한 제5대 로마 총독. 유대인 억압정책을 편 그는 로마에 대항한 열심당원들을 색출, 처형했다. 바라바(15:7)는 이때 체포당한 열심당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빌라도는 과격한 성격과 포악한 행동으로 폭동을 야기했고, 그 결과 A.D. 36년에 로마로 소환당했다. 하지만 이런 그도 죄없으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함을 보였다(마 27:24).
# 묵상
바라바의 석방 ( 15:8-15 )
해마다 유월절이 돌아오면 죄인 중에 한사람을 풀어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이때 빌라도는 죄가 없는 사람으로 알고있는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했으나 대제사장들에 의해서 선동된 사람들이 바라바를 요구하자 그것을 거절하면 민요가 날까 두려워하여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풀어주게 됩니다. 이처럼 빌라도는 무죄한 예수님을 사형시킨것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조롱과 모욕 ( 15:16-20 )
먼저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서 그 머리에 씌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를 위해서 당하신 고초입니다. 이 고초의 사랑이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내었고, 그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했습니다. 또한 온 군중 앞에서 주님은 희롱과 욕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처형 장소 ( 15:22 )
골고다입니다. 골고다는 ‘해골’이라는 뜻으로써 일반적으로 흉악범이 처형되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처럼 십자가에 달려 골고다에서 죽으셨으나 진짜 죄인은 모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서 골고다는 죄인을 처형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대속이 단번에 이루어진 영원한 번제단이 되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 ( 15:29 )
이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하신 말을 비웃어 이르는 말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가리키신 성전은 예수님 자신의 몸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그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을 말씀하신 것이었으나 유대인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에 이처럼 십자가의 예수님을 조롱하게 됩니다. 한편, 성경 다른 곳에서는 성전이 성도들 자신이라고 지칭하면서 그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3:16).
찢어진 성소 휘장 ( 15:38 )
지금까지는 1년에 한번,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가 휘장으로 나뉘어져 있어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수 있었으나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지고, 이제 믿는 자들은 모두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사를 드리던 구약시대가 지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대속받았음을 기뻐하며 이를 선포하는 신약시대가 도래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성도의 몸이 곧 성전으로써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게 되었으며(고전3:17), 휘장으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모습이 그리스도로 인해서 우리 앞에 확연히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38절).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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