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믿음의 선포가 곧 기도의 능력입니다

[마가복음 9장 14절~29절]
14절 -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절 -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절 -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절 -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절 -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절 -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절 -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절 -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절 -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절 -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절 -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절 -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절 -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절 -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절 -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한 사람이 귀신 들린 아들을 데려왔는데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하자,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한탄하시며 귀신을 내쫓으십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느냐고 묻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1. 믿음이 없는 세대 (14~27절)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자를 통해 나타납니다.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예수님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 없음은 단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악한 영적 세력이 존재하는 세상의 본질적 특징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면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는 아버지의 외침은 비록 자신에게는 충분한 믿음이 없어 죄송하지만, 그래도 불쌍히 여기시고 아들을 고쳐 달라는 간청입니다. 예수님이 아이를 고쳐 주신 것은 그 아버지가 충분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간절히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모든 능력의 근원은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으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믿는 자가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나요? 불완전한 믿음이지만, 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간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2. 믿음과 기도 (28~29절)
믿음과 기도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받아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친 적이 있습니다(6:7~13). 그러나 이번에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아이를 사로잡고 있던 귀신이 두 가지 장애를 일으키는 더 강한 귀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19절)라고 탄식하시며 믿음이 없어 실패했다고 하셨는데, 다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29절) 귀신을 내쫓을 수 없다 하십니다. 믿음의 선포가 곧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주님 능력을 의지하고 기도한 후 믿음으로 선포하면 마귀는 떠나갑니다.
*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이라 말씀하시나요? 과거에 체험한 영적 능력을 믿고 기도하지 않아 실패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상식과 처세술과 경험을 우선시하고, 기도와 믿음으로 살지 않아 능력도 권세도 없는 제 현주소를 보며 회개합니다. 기도의 무릎을 회복해 원수의 능력을 제어하는 영적 능력을 덧입게 하소서. 제 연약한 믿음을 새롭게 하셔서 현실의 문제들을 능히 풀어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활 영광을 미리 보이신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마가복음 9장 2절~13절]
2절 -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절 -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절 -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절 -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절 -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절 -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절 -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절 -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절 -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절 -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절 -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절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세 제자만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오르신 예수님이 희고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되십니다. 예수님이 엘리야와 모세와 더불어 말씀하시고, 제자들은 하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금 본 것을 부활 때까지 전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엘리야에 대해 묻습니다.

1.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심 (2~8절)
예수님이 변모되신 것은 그분의 신성과 영광을 잠시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모세오경(율법)과 선지서를 대표하며, '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 명의 제자들 또한 헐몬산으로 추정되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시라는 하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은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잘 들으라는 뜻인데, 특히 예수님의 고난 예언을 마음에 새기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8:31, 34~38). 그러나 베드로는 산에 초막을 짓고 영광스러운 그곳에 마냥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를 구한 것(10:37)과 같습니다.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모르면,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자가 됩니다.
* 예수님이 산에서 변모되신 사건은 훗날 제자들 신앙과 사역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내가 듣고 순종할 주님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2. 엘리야의 고난, 예수님의 고난 (9~13절)
예수님이 부활하시면, 그분이 그리스도심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고난을 먼저 거쳐야 하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산에서 본 것을 발설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심판 날이 오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가 먼저 올 것(말 4:5)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라 하십니다. 사람들이 그를 감옥에 가두고 죽이기까지 한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함부로 대한 증거입니다. 예수님 역시 고난당하실 것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대로 고난의 길, 순종의 길을 걸으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고난이야말로 영광의 서곡임을 확증합니다.
* 예수님이 부활 때까지 산에서 본 것을 말하지 말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고난은 싫고 영광만 추구하는 현실 도피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현재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미래 영광을 기대하며 견뎌 내게 하소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고난으로 포장해 선물하시는 섭리를 마음에 새기고 하루를 시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제자의 신앙 고백과 철저한 자기 부인의 삶

[마가복음 8장 27절~38절]
27절 -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절 -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절 -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절 -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절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절 -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절 -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절 -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절 -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절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절 -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절 -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마가복음 9장 1절]
1절 -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답합니다. 이에 예수님이 장차 당할 고난과 부활을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항변하고 예수님은 그를 강하게 꾸짖으십니다. 누구든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1. 그리스도 되심과 십자가 (8:27~33절)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바른 믿음의 길로 행합니다. "주는(헬라어 번역은 '당신은') 그리스도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이해했으나, 그도 역시 여느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강력한 정치적.군사적 지도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분이 고난과 죽임을 당하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처음 공개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헬라어 원문은 반드시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뜻하는 조동사(헬, 데이)를 사용합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길입니다. 그래서 이를 반대하는 베드로를 사탄이라 칭하시며 꾸짖으십니다. 인간적 유혹을 단호히 물리칠 때 하나님이 정하신 사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따르나요?

2.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제자 (8:34~9:1절)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주님 뜻을 위해 내 뜻, 내 소원을 포기해야 합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수치와 조롱과 죽음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제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일들, 즉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모되시는 것은 물론, 부활과 승천(높여지심) 및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이적과 세계 복음화를 볼 것입니다.
*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 필요한 자질들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제자로서 내가 기꺼이 감내해야 할 수치와 조롱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따르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행하는 연약함을 용서하소서. 날마다 말씀의 권위 앞에 부패한 자아를 복종시키도록 도와주소서. 어떤 조롱과 수치를 당해도 십자가 사랑을 생각하며 견디고, 복음의 통로로 쓰임받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은 그리스도십니다

[마가복음 8장 27절~38절]
27절 -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절 -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절 -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절 -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절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절 -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절 -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절 -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절 -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절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절 -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절 -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마가복음 9장 1절]
1절 -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마쉬아흐’, 아람어로 ‘메시아’, 헬라어로 ‘크리스토스’이며, 그 의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와 같은 특별한 사람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은 ‘하나님의 영’을 상징했고,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구별된 사람을 나타냈습니다(사 61:1). 특히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면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왕상 19:16).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구원할 자를 ‘메시아’로 여기며,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삼상 2:10; 시 2:2). 신약시대는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참된 왕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극에 달했던 때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헤롯 빌립이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를 위해 헌정한 도시였습니다. 헤르몬산 위에 있는 이 도시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역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물으십니다. 마가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관찰과 묵상]
1.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그들의 생각과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27~30절)

사람들은 엘리야, 세례 요한, 선지자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자였던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8~10장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루살렘을 여행하는 도중 일어난 사건들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본문은 벳새다 맹인 치유(22~26절)와 바디매오 치유(10:46~52) 사이에 위치하며, 이 두 치유 이적 사이에 예수님의 수난 예고가 세 차례 반복됩니다(31절; 9:31; 10:33~34).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먼저,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물으신 뒤,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마 16:16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맞는 말이지만, 진정성 있는 고백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신앙고백 뒤에 예수님이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예고했을 때, 그는 예수님을 향해 항변했다(꾸짖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왜 이렇게 반응했을까요?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는 죽음으로 패배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자요, 대리자로서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메시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생각과 달랐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서 제자들의 무지를 깨우치시고 참된 제자도를 가르치십니다.  
적용과 나눔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들에게 예수님을 바르게 깨우쳐 줄 방법을 나누어 보세요.

다원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참된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예수님을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 도덕주의자, 사회혁명가, 혹은 박애주의자 등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 성경 말씀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말하는 4대 성인 정도가 아니라,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고 기록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가나안 성도들(교회에 나가지 않는 성도)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교회를 떠나는 것일까요? 교회가 잘못하는 것도 있지만, 참된 기독론(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요? 세상과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아 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면 거센 세속의 물결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도를 바르게 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2. 예수님이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자 베드로는 왜 항변했을까요? 이어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제자도는 무엇인가요?(31~38절)
베드로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여겼기 때문에 무력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항변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고, 누구든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받으리라 하시며 제자도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분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는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십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답하자 모두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축복하시며 이를 알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 하십니다. 또한 그의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다 하십니다(마 16:17~18). 이어 예수님은 그분이 메시아로서 장차 행하실 일, 즉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시며 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침묵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 ‘침묵 명령’에는 많은 신학적 해석이 있지만,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려는 중요한 시기에 불필요한 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으셨다는 해석이 보편적입니다. 당시 유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아 상과 예수님의 사역은 극명하게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항변’(32절)합니다. ‘항변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티마오’는 ‘꾸짖다’라는 뜻입니다. 마가복음은 제자들의 무지를 여과 없이 보여 주며, 제자들의 무지를 통해 참된 제자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적용과 나눔
나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어떻게 실천하나요? 세상을 변혁시킬 제자의 삶은 무엇일지 나누어 보세요.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참된 제자도를 말씀합니다(34절). 첫째,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우선순위를 하나님 말씀에 두라는 명령입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제자가 되는 데 수반되는 영적 고통에 대가를 지불하고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가정, 직장, 교회, 자녀, 질병 등의 환경). 셋째, 온전히 순종하며 따라야 합니다. ‘순종하며 따르라’는 것은 주님 일이 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신뢰하고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역사상 세상을 변화시켰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을 바르게 믿고 따랐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환경 속에 살았지만, 죄 사함의 은혜와 용서하시는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순전하게 따랐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고 변화시키십니다. 제자의 사명은 부름 받은 곳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것입니다.


*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예수님은 장차 있을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의 필요를 따라 사람의 일을 위해 살지만, 제자는 사명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삽니다.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겸손히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가져 하나님 뜻을 온전히 이루셨듯이(빌 2:6~8), 그분의 길을 따르는 제자 또한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지만, 그 길의 결국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참된 복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비난받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제가 먼저 거룩한 제자로 서기 원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제 인생의 ‘주’라 고백하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주님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영적 시력을 회복해야 말씀의 의미를 압니다

[마가복음 8장 14절~26절]
14절 -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절 -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절 -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절 -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절 -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절 -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절 -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절 -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22절 -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절 -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절 -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절 -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절 -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 채 떡이 없기 때문이라고 수군거리자, 예수님은 그들 마음의 둔함을 책망하시며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이적을 상기시키십니다. 벳새다에서는 맹인 한 사람을 두 번에 걸쳐 안수해 고치십니다.

1. 제자들의 우둔함 (14~21절)
마음이 둔해 깨닫지 못하면 주님께 책망을 받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예수님의 경고는 비유입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대개 부정하고 악한 것이 전염되는 것을 상징합니다(고전 5:7). 바리새인들과 헤롯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분을 죽이려 했습니다(3:6). 또한 바리새인들은 표적을 보이라며 예수님을 시험했고,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참수시켰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말씀임에도, 제자들은 수천 명을 먹이신 이적을 잊고는 예수님이 먹을 것을 챙기지 않은 자신들을 꾸짖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격하게 그들을 질책하십니다. 특히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라는 질책은 제자들이 영적 맹인이요 귀먹은 자들임을 알려 줍니다. 주님의 제자는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각 상황마다 주시는 말씀의 의미를 깨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은 영적으로 어떤 상태였나요? 말씀을 읽어도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벳새다 맹인 치유 (22~26절)
영적 눈이 뜨여야 말씀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한 맹인을 만나 두 번에 걸쳐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약해지셔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한 비유적 행동입니다. 맹인의 시력이 처음에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심을 제자들이 흐릿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맹인은 두 번째 치유에서 모든 것을 밝히 봅니다. 본문에서 '보다'는 '깨닫다'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흐릿한 영적 시력을 온전히 회복해 주님 뜻을 분명히 알고 전해야 합니다.
* 주님이 두 번에 걸쳐 맹인을 치유하신 일과 제자들의 영적 깨달음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주님이 내게 밝히 깨우쳐 주길 원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을 섬기면서도 여전히 말씀에 대한 무지함, 영적 무지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거듭된 주님의 만지심에 만물을 보게 된 맹인처럼, 저 역시 지금은 부족할지라도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점점 더 말씀을 밝히 깨달아 주님의 온전한 제자로 서길 소원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연약한 믿음은 용납하시지만, 완고한 불신은 거절하십니다

[마가복음 8장 1절~13절]
1절 -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절 -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절 -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절 -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절 -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절 -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절 -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절 -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절 -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절 -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11절 -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절 -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절 -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이 굶주린 무리를 불쌍히 여겨 축사하시고 떡 일곱 개와 생선 두어 마리를 나누어 주게 하십니다. 약 4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일곱 광주리에 거둡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며 표적을 구하자, 예수님은 탄식하시며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않겠다 하시고는 그들을 떠나십니다.


1. 제자들의 불신과 칠병이어 이적 (1~10절)

믿음은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이적을 경험했음에도 제자들은 광야 어디서 떡을 얻겠느냐며 믿음 없는 말을 합니다(4절). 광야에서 제자들이 보인 모습은 불신과 우둔함입니다. 이는 하늘의 만나를 맛보고도 원하는 것이 없으면 곧 하나님을 원망하고 애굽을 그리워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이 먹이신 사람들 가운데는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3절, '멀리서 온 사람들'). 떡이 일곱 개, 남은 조각을 거둔 광주리가 일곱 개라는 것 역시 이방인(가나안 일곱 족속)을 상징합니다. '광주리'(헬, 스퓌리스)도 이방인의 용어입니다. 오병이어 이적이 유대인을 위한 기적이라면, 칠병이어 이적은 이방인을 위한 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푸시는 하나님 나라 잔칫상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참여해 풍성함을 누립니다.

* 제자들이 오병이어 이적을 '기억'했다면, 그때와 유사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은혜의 역사를 잊지 않고 믿음을 이어 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2. 바리새인들의 불신 (11~13절)

표적(헬, 세메이온)은 단순히 이적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적을 행한 이가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한 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입증해 보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는 일로, 그들의 불신과 적대감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고향 나사렛 사람들에게 아무 이적도 행하지 않으신 것처럼(6:4~6), 바리새인들에게도 표적을 보여 주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표적을 보았음에도 완악함으로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믿는 마음이 없으면 표적도 무의미합니다.

*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요구하자 예수님이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예수님을 더욱 잘 알게 된 표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제 믿음이 여전히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가장 놀라운 사랑의 표적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날마다 묵상하며, 이미 주신 은혜들을 망각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놀라운 방법으로 저를 도우실 은혜를 기대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참된 믿음은 거절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마가복음 7장 24절~37절]
24절 -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절 -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절 -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절 -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절 -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31절 -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절 -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절 -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절 -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절 -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절 -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한 이방 여인이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달라며 예수님 발아래 엎드립니다. 예수님이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주지 않는다 하시자, 여인은 상 아래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대답해 딸이 고침받습니다. 주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시며 그들에게 발설을 금하시지만, 그들은 더 널리 전합니다.

●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믿음은 불굴의 용기입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을 매몰차게 거절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개라고 하신 것은 인종 차별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는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여인의 대답은 이방인을 개라고 조롱하고 차별하는 현실을 직시하되,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당당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딸을 고쳐 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십니다. 예수님이 탄식하시는 것은 사탄의 포로가 되어 고통당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막힌 것이 열리고, 맺힌 것이 풀리게 하시는 치유자입니다. 이는 이사야가 예언한 새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사 35:5~6). 회복과 새 창조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입니다.

* 냉랭하게 느껴지는 주님 말씀에 수로보니게 여인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주님께 간구하는 것이 거절되거나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그 마음이 어떠하냐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마가복음 7장 14절~23절]
14절 -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절 -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절 -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절 -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절 -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20절 -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절 -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절 -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절 -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예수님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십니다. 음식물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기에 깨끗합니다. 사람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곧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1.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 (14~19절)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의 악한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니 종교 지도자들도, 제자들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밖에서 들어가는 음식은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로 들어가 배설된다고 설명해 주십니다. 씻은 손으로 먹든 그렇지 않든, 음식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사람을 깨끗하게 하느냐, 더럽게 하느냐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라는 예수님의 선언은 음식 정결법을 폐지하는 말씀으로, 당시에는 혁명적 선언이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음식물을 통해 정결한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롬 14:17).
* 정결법을 따르던 이들에게 모든 음식물이 깨끗하다는 예수님 말씀은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마음의 정결을 위해 내가 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2.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 (20~23절)
예수님은 마음의 정결을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두 차례나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20, 23절). 이는 사람의 '마음'이 담고 있는 것으로, 예수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12개의 악을 언급하십니다. 이 중 많은 항목이 바울 서신에도 나옵니다(고전 5:10~11; 갈 5:19~21 등). 여기서 언급된 악한 것들은 십계명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살인(6계명), 음란과 간음(7계명), 도둑질(8계명), 속임과 비방(9계명), 탐욕(10계명).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삶은 마음의 정결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악한 생각이 제 마음에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겉모습을 아름답고 교양 있게 꾸미는 데에만 치중하고, 심령을 깨끗하게 할 말씀과 기도 생활에 게을렀습니다. 마음의 정결을 늘 사모함으로 말과 행실에 선함이 가득하도록 인도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입술로는 공경하나 마음이 먼 위선자

[마가복음 7장 1절~13절]
1절 -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절 -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절 -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절 -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절 -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절 -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절 -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절 -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절 -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절 -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절 -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절 -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절 -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자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며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야말로 외식하는 자라 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렸다는 핑계로 부모에게 아무것도 드리지 않는 등, 사람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 말씀을 폐하는 자들입니다.

1. 사람의 전통과 하나님 계명 (1~8절)
전통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도록 돕는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 계명을 저버린 채 사람이 만든 전통에 집착해,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 먹는 것을 비난합니다. 이는 제자들의 약점을 들어 예수님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인용해 그들을 '외식하는 자'(위선자)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전통을 중시해 음식 먹는 입을 위해서는 손을 깨끗이 씻었지만, 정작 마음의 정결을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외면이 아닌 마음과 동기를 보십니다. 의식적 정결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정결입니다. 인간적으로 지켜 행하는 일이 주님 보시기에 '헛된' 것이 되지 않으려면, 사람이 만든 규례를 하나님 계명보다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 예수님은 장로들의 전통에 집착하는 이들을 어떻게 책망하시나요? 내가 중요하게 여겨 판단 기준으로 삼는 그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2. 고르반 전통의 위선 (9~13절)
신앙적 이유로 가장해 악을 도모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계명을 저버리는 예로 '고르반' 전통을 드십니다. 고르반은 '바쳐진 것' 혹은 '바치겠다는 맹세'란 뜻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린 것은 설령 부모를 위해 사용하고자 해도 취소할 수 없다는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고르반 전통은 하나님께 드렸다는 명목으로 노부모 부양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데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결국 사람의 전통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을 폐하는 것입니다(출 20:12; 딤전 5:8). 하나님 계명을 거스르는 모든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입니다. 하나님 계명은 모든 규례와 전통의 기초이자 목적입니다.
* 예수님 당시에 고르반 전통으로 인해 생긴 문제는 어떤 것이었나요? 나는 하나님과 부모님 등 어르신들을 어떻게 섬기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비본질적인 관습과 형식에 얽매여 사랑과 긍휼을 저버리고 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하나님 앞에 위선자가 되지 않게 입술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판단하고 정죄하던 습성을 버리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긍휼로 지체들을 만나는 하루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세상 나라 왕을 거부하시고 하늘나라 왕 됨을 보이시다

[마가복음 6장 45절~56절]
45절 -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절 -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7절 -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절 -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절 -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절 -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절 -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절 -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53절 -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54절 -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55절 -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56절 -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재촉해 건너편으로 보내시고는 기도하러 산으로 가십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이 바람 때문에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물 위를 걸어가십니다. 유령인 줄 알고 놀라는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칩니다. 게네사렛에서 많은 병자가 예수님께 와 고침받습니다.

1.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45~52절)
이적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적의 의미입니다. 오병이어 이적을 행하신 후 예수님이 제자들을 재촉해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신 것은 무리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해할까 우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무리를 떠나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십니다. 환호하는 무리로 가득 찬 곳이 아니라 아버지를 독대하는 곳으로 가십니다. 제자들을 태운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진퇴양난에 빠져 있을 때,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십니다. 유령으로 착각해 소리 지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그분의 정체를 밝히십니다. '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 에이미'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밝힐 때 사용하신 표현으로,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그분은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적을 행하십니다.
*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2. 게네사렛 치유 사역 (53~56절)
온전한 치유와 구원 능력은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게네사렛에 이르자, 예수님을 알아본 많은 사람이 병든 자들을 데리고 옵니다. 심지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 가에 손만대도 모두 깨끗하게 낫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으셔서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치유의 이적을 행하게 하십니다(눅 4:18~19; 행 10:38).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최고의 복입니다. 그분은 우리 영혼의 구원자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질고를 아시고 고쳐 주시는 사랑의 주님입니다.
* 예수님이 계신 곳마다 사람들이 찾아온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연약함을 온전함으로 변화시키시는 주님께 믿음으로 간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환호하는 무리를 떠나 홀로 기도의 자리로 향하신 주님의 겸손함을 배우기 원합니다. 기도를 통해 의심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능력의 주님이 행하실 새 일을 기대하게 하소서.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라며 위로하시는 주님을 의지해 오늘 하루 힘차게 시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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