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목자는 긍휼로 영육의 필요를 채웁니다

[마가복음 6장 30절~44절]
30절 -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절 -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절 -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절 -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절 -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절 -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절 -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절 -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절 -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절 -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절 -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절 -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절 - 다 배불리 먹고
43절 -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절 -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쉬게 하시려고 한적한 곳으로 가시지만, 많은 사람이 따라옵니다. 예수님이 무리를 불쌍히 여겨 여러 가지로 가르치십니다. 날이 저물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 나누어 주게 하십니다. 남자만 헤아려 5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을 열두 바구니에 거둡니다.

1. 사람의 필요를 아시는 예수님 (30~34절)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돌아보느라 먹을 겨를도 없는 제자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쉼을 명하십니다. 쉼과 재충전을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시지만, 그곳에도 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당시 정치.종교 지도자들은 사리사욕을 취할 뿐, 양떼를 돌보는 진정한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목자로 오신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쉼의 자리에서도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는 자신의 필요나 휴식보다 다른 영혼을 돌봄이 항상 먼저입니다.
* 예수님은 전도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과 목자 없는 양 같은 큰 무리를 어떻게 대하시나요? 나는 지체들의 육체적.영적 필요에 얼마나 민감한가요?

2. 오병이어 이적 (35~44절)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로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주요 전능자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쉬러 나온 곳에 남자만도 5천 명이 넘는 무리가 모입니다. 날이 저물고 허기진 상황에서 그들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지만, 그것이 예수님 손에서 놀라운 이적의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이 떡을 떼어 나눠 주시는 모습은 성찬식과 흡사합니다. 떡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몸, 곧 생명의 떡(요 6:48)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것처럼, 예수님은 빈 들에서 많은 사람을 먹이십니다. 푸른 잔디에 앉아 배불리 먹고 만족하는 무리의 모습은 시편 23편이 말하는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하신 것은, 오늘 우리가 무리를 먹이는 목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일깨웁니다. 오늘 우리가 나눠 줄 양식은 '하나님 말씀'과 '떡' 두 가지입니다.
* 오병이어 이적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임을 깨닫나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과 떡으로 먹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곤고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위로와 능력의 말씀으로 채우사 세상을 이길 힘을 얻게 하시고, 부족한 현실이 도리어 주님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게 하소서. 이제는 하나님 말씀과 떡으로 연약한 지체들을 돌보는 작은 목자로 서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가복음 6장 30절~44절]
30절 -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절 -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절 -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절 -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절 -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절 -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절 -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절 -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절 -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절 -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절 -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절 -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절 - 다 배불리 먹고
43절 -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절 -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배경 이해하기]
사복음서는 오병이어 사건을 핵심 사건으로 다룹니다(마 14:13~21; 막 6:30~43; 눅 9:10~17; 요 6:1~14). 특히 마가복음은 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가 사치스러운 잔치를 벌인 후에 오병이어 이적이 일어났음을 강조합니다. 백성을 향한 헤롯과 예수님의 모습이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의 눈에 무리는 목자 없이 길을 잃어버린 양처럼 보호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백성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불쌍히 여기다’(34절)라고 번역된 헬라어 ‘스플랑크니조마이’는 단순한 동정과 연민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긍휼’을 의미합니다. 민수기 27장에서 죽음을 앞둔 모세는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민 27:17)라고 기도했습니다. 에스겔 34장에서도 다윗과 같은 목자가 이스라엘에 일어나서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되며 그들이 빈 들(광야)에서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 잘 것이라고 예언합니다(겔 34:23, 25).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라고 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참된 목자가 필요했던 무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보여 줍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예수님 말씀에 제자들은 어떻게 대답하나요?(37절)

예수님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하신 것은 장차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기적을 베푸는 자가 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현실적으로 5,000명을 먹이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기에, 200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라는 말씀인지 묻습니다.
마가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배불리 먹은 무리의 수가 ‘남자’(헬, ‘안드로스’)만 5천 명이라고 기록합니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함하면 상당히 많은 수가 빈 들에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무리는 육체적으로 굶주려 있었으며, 영적으로는 갈급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요한복음은 현실적인 제자들의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7)라고 말합니다. 안드레도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라며 회의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생각과 다르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비록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메시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광야의 풍성한 식탁을 마련해 주시는 분입니다.  
적용과 나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주님이 말씀하셨기에 내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김영애 권사님의 책 「갈대상자」(두란노)는 한동대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고 인도하셨는가를 보여 줍니다. 이 책에서 김 권사님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실 일을 찬양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책 말미에서 작은 갈대상자 후원 엽서 하나가 상상할 수 없는 후원과 중보 기도자를 모았다고 간증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나의 합리적인 생각과 초월적인 믿음이 상충할 때가 있습니다. 남자들만 5,000명을 먹이기 위해서는 200데나리온이나 되는 재정이 필요하며, 그것은 내 생각과 경험으로 불가능해 보이기에 내 일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헌신과 책임에 순종하지 않고 일부러 회피한 적은 없었나요? 내게 주신 것들을 오병이어처럼 아낌없이 주님께 다시 내어 드릴 수 있는 참된 제자인가요? 그럴 듯해 보이는 합리적인 생각이 곧 좋은 믿음은 아닙니다.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이 많은 무리를 먹이는 데 사용하신 것은 무엇이었나요? 예수님이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신 결과 어떻게 되었나요?(38~43절)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기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십니다. 남자만 5천 명이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둡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제자들이 무리 중에 떡이 몇 개나 있는지 알아보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 몇 가지를 지시하십니다. 첫째, 그것을 가져오라 하시고(마 14:18), 둘째, 무리를 빈 들에 질서 있게 앉히신 후(39~40절; 눅 9:14), 그 떡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며 나누게 하십니다(41절; 마 14:19; 눅 9:16; 요 6:11). 셋째,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도록 열두 광주리에 거두게 하십니다(42~43절; 마 14:20; 눅 9:17; 요 6:12~13). 예수님이 떡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는 모습은 마치 마가 다락방에서 행하신 새 언약의 성찬식과도 같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기록처럼, 마지막 날 메시아로서 온 민족과 열방을 한자리에 모아 하나님 나라 잔치를 베푸시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마련하신 광야의 풍성한 식탁은, 그분이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실패한 자, 연약한 자,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한 모든 사람에게 선한 목자 되심을 보여 줍니다.    
적용과 나눔
내 삶을 오병이어처럼 주님께 드렸을 때 체험한 기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앞으로 주님께 드리고 싶은 오병이어는 무엇인가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 4:2)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지팡이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초라하고 볼품없던 지팡이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오병이어는 어린아이 한 끼 식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작은 헌신이 능력의 주님 손에 들려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혹시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헌신과 책임에 순종하지 않고 불가능하다며 회피한 적은 없었나요? 플루트 연주자 송솔나무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MBC 드라마 허준, 이산, 동이 OST를 연주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에게는 여러 종류의 악기가 있다고 합니다. 아주 비싼 플래티늄으로 만든 플롯, 금으로 만든 것, 쇠파이프로 만든 것, 어떤 악기는 집 한 채 값이며, 비싼 외제차 한 대 값을 넘지만, 정작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쇠파이프나 보잘것없는 나무로 만든 피리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격이 얼마고, 어떤 재료나 재질인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악기가 어떤 연주자의 손에 붙들리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면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위대한 역사에 쓰임 받습니다.


*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남자만 헤아려도 5천 명을 먹이신 능력의 주님입니다. 오병이어 기사는 상식과 합리성을 내세우며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 것과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작은 오병이어가 될 것을 교훈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인들의 순종과 헌신으로 세워져 갑니다. 한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헌신의 시작이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기적을 보는 시작입니다. 나는 비록 능력이 없을지라도 주님 손에 들리면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 오병이어가 주님 손에 들려 수많은 사람을 만족시킨 것처럼, 우리의 작은 헌신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위대한 기적이 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제 삶을 주님 손에 오병이어로 드리기 원합니다. 영육 간에 굶주린 이들을 향한 긍휼을 제게 부어 주시고, 저의 작은 헌신을 주님이 축사하셔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이루는 일에 사용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의인의 죽음, 사명을 다한 순교

[마가복음 6장 14절~29절]
14절 -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절 -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절 -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절 -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절 -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절 -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절 -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21절 -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절 -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절 -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절 -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절 -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절 -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절 -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절 -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절 -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롯왕은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합니다. 과거에 헤롯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한 요한을 투옥시켰지만, 그가 의로운 사람임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일잔치 때 헤로디아 딸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1. 죄책감에 시달리는 헤롯 (14~20절)
죄인의 마음은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몇 명의 왕이 분할 통치를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정욕의 사람이었습니다. 육신의 욕망으로 자기 아내를 내보내고 이복형제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또한 그는 우유부단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의 말을 달게 들으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허영심 가득한 약속을 지키느라 결국 그를 참수했습니다. 헤롯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라고 한 것은, 그의 속사람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반영합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 헤롯이 예수님 소문을 듣고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책감을 떨쳐 버리고 자유와 평안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2. 악을 행하는 모녀 (21~29절)
정욕과 권력욕을 좇는 결과는 포학과 잔인함입니다. 헤로디아는 자신과 헤롯의 결혼을 비판한 세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려 했습니다. 그녀는 헤롯의 생일에 자기 딸(살로메)을 들여보내 남자들만이 참석하는 술자리에서 노예들이 담당하는 춤을 추게 했습니다. 살로메가 자기 소원을 직접 말하지 않고 헤로디아에게 찾아가 물어본 것은 이 모든 일이 헤로디아의 계략임을 암시합니다. 살로메 또한 헤로디아 못지 않게 악했습니다. 그녀는 헤로디아의 말을 들은 후 왕에게 '급히' 들어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즉시) 갖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악한 이들로 인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보다 앞서 와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한 그는,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고 순교자 반열에 오릅니다.
*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의 삶과 죽음은 어떠했나요? 비참한 죽음이지만, 하나님은 의로운 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보실까요?

오늘의 기도
마음 깊은 곳까지 살피시는 주님의 시선을 늘 의식하며 살게 하소서. 주님을 알되 바로 알게 하시고, 주님을 경외함으로 죄악을 멀리하게 하소서. 누군가 저의 잘못을 지적할 때 곧바로 인정하고 겸허히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능력으로 이어지는 믿음, 불가능을 초래하는 불신

[마가복음 6장 1절~13절]
1절 -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절 -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절 -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절 -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절 -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7절 -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절 -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절 -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절 -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절 -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절 -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절 -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예수님이 고향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사람들이 그 지혜와 권능에 놀라면서도 배척합니다. 이에 주님은 소수의 병자만 고치실 뿐 다른 권능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권능과 당부의 말씀을 주시며 열두 제자를 둘씩 보내시니, 그들이 나가서 회개를 촉구하고 귀신을 내쫓으며 병자를 고칩니다.

1. 불신하는 고향 사람들 (1~6절)
믿음이 없으면 주님의 능력을 볼 수 없습니다.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에 놀라면서, 그 '출처'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족과 성장 과정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보이시는 지혜와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배척합니다. 그들은 선입관 때문에 믿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그 가르침과 능력에 놀라면서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고 경탄한 것과는 대조됩니다(1:21~28 참조). 믿음이 있는 곳과 없는 곳,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고향에서 권능을 행하지 않으신 것은 그분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권능을 받을 믿음의 소유자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능력은 믿는 자에게 허락됩니다.
* 나사렛 고향 사람들의 불신에 예수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되는 나의 선입관이나 편견은 무엇인가요?

2. 제자들의 전도 여행 (7~13절)
전도는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2인 1조로 제자들을 보내 전도하게 하십니다. 2인 1조는 어떤 일에 대한 증거 효력을 위해 최소 두 명이 필요하다는 구약 전통과 연결됩니다(신 17:6; 19:1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전도는 영적 전쟁이기에 사람의 힘과 지식이 아닌 주님의 권능을 의지할 때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도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엄격히 제한하신 것은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그분의 돌보심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눅 22:35). 발 아래 먼지를 떨어 버리는 것은 복음을 거부한 사람에 대해 제자들은 책임이 없다는 표시입니다. 회개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며, 권능을 행하는 것이 전도의 핵심 사역입니다.
*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주신 권능은 무엇이며, 또한 제한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주기적인 단기 전도 여행은 평범한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오늘의 기도
믿음의 눈을 들어 주님이 행하실 일을 바라보게 하소서. 끊어지지 않는 세 겹 줄로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를 꿈꿀 동역자를 제 곁에 허락하소서. 영원히 거할 처소인 천국을 기대하며, 이 땅을 딛고 사는 순례자로서 간소한 삶을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치유와 새 생명을 선물하는 믿음

[마가복음 5장 21절~43절]
21절 -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절 -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절 -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절 -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절 -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절 -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절 -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절 -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절 -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절 -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절 -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절 -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절 -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절 -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절 -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절 -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절 -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절 -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절 -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절 -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절 -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절 -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주님이 회당장 딸을 고치러 가시는 길에, 12년간 혈루증 앓던 여자가 그분 옷에 손을 대자 치유됩니다. 믿음이 그녀를 구한 것입니다. 회당장 딸이 죽었다고 통곡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그 아이가 잔다 하십니다. 그리고 소녀에게 일어나라 하시니, 소녀가 곧 일어나 걸으므로 사람들이 놀랍니다.

● 믿음의 두 사람
믿음은 구원과 치유의 열쇠입니다. 12년간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은 예수님 소문을 듣고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정결법에 따르면, 이 여인이 만지는 모든 것은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인한 은혜와 진리는 모세 율법을 능가합니다. 여인이 단지 들음에서 난 믿음으로 예수님 옷에 손을 대니, 즉시 혈루증 근원이 마르고 정결하게 회복됩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걸음이 지체되는 동안 회당장 딸이 죽고 회복의 기회는 상실됩니다. 다 끝났다고 여길 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은 우리가 병든 때뿐 아니라 평생에 걸쳐 이어져야 합니다. 믿음은 놀라운 치유와 생명의 역사를 보게 합니다.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34절), "믿기만 하라"(36절)라는 말씀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내가 믿음을 굳게 하고 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비참함에서 온전함으로 회복시키신 은혜

[마가복음 5장 1절~20절]
1절 -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절 -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절 -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절 -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절 -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절 -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절 -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절 -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절 -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절 -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절 -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절 -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절 -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절 -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절 -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절 -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절 -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절 -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절 -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절 -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거라사 지방의 군대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절하며 자신을 괴롭히지 마시길 요청합니다. 주님 명령대로 그에게서 나온 귀신들이 들어간 돼지 떼는 바다에서 몰사합니다. 이에 주민들은 주님께 떠나 주시길 간구하고, 귀신 들렸던 사람은 집에 돌아가 주님이 하신 큰일을 전합니다.

1. 군대 귀신 들린 사람 (1~10절)
예수님은 비참한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일하십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동편 '거라서'(열 개의 헬라화된 도시인 데가볼리 가운데 하나)로 가십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은 악한 영적 세력에게 포로가 된 그 땅의 어두운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귀신의 이름인 '군대'(헬, 레기온)는 당시 로마 군대(군다)의 편성 단위인데 5,000~6,000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귀신 들려 비참하게 사는 이유가 로마 군대로 상징되는 폭력과 억압의 상황과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는 로마 군대에 짓밟혀 착취당하는 백성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통과 흑암과 멸시의 땅에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마다 온전한 회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 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 군대 귀신이 예수님 앞에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나요? 억압과 고통 가운데 있는 지체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면 좋을까요?

2. 돼지 떼보다 귀한 한 영혼 (11~20절)
예수님은 천하보다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군대 귀신의 요구대로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자, 돼지 2천 마리가 바다에 빠져 몰사합니다. 사탄은 파괴자요 그의 목적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룩한 영으로 충만하셔서 사탄을 제압하시고 곳곳을 정화하십니다.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기에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청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 집착합니다. 반대로 귀신이 나가고 제정신이든 사람은 거라사를 넘어 데가볼리로 다니며 예수님이 행하신 큰 일을 전합니다. 내게 행하신 주님의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 2천 마리의 돼지 떼가 몰살하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요청한 것은 무엇인가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나는 물질적 손해를 얼마나 감수할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어둠 속에서 울부짖던 제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 이 시간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시켜 주소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주님처럼 거룩한 낭비를 할 수 있도록 제게 주님 마음을 부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능력의 주님과 동행하는 삶

[마가복음 4장 30절~41절]
30절 -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절 -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절 -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3절 -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절 -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35절 -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절 -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절 -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절 -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절 -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절 -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절 -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처럼 처음에는 작으나 나중에는 커집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시되 제자들에게는 다 해석해 주십니다.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던 제자들이 광풍을 만나자 무서워하며 주님을 깨웁니다. 이에 주님은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고,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나무라십니다.

1. 겨자씨 비유 (30~34절)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이 땅에 심긴 후에 큰 나무로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미미하게 시작하나 놀랍게 번성합니다. 새들이 큰 가지 그늘에 깃들인다는 것은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어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참된 안식을 취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고을 베들레헴의 초라한 마구간에 태어나셨고, 멸시받던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광대하며 무한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 내세울 것 없는 변변찮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이르게 됩니다(행 1:8). 하나님은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게 하시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사 60:22).
* 예수님은 왜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셨을까요? 내가 지금 한 영혼에게 전한 복음은 훗날 어떤 결과를 보게 될까요?

2. 광풍과 바다를 잠재우신 예수님 (35~41절)
예수님은 창조주의 권위를 지니신 분입니다. 광풍으로 위태로운 배 안에서도 예수님이 여유롭게 평안히 주무실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그분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 예수님의 권위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그들은 두려워하며, 자신들이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바람과 거친 바다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악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어(헬, 에피티마오) 그치게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으셨을 때와 동일한 표현입니다(1:25). 예수님은 만물을 다스리며 악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전사'(divine warrior)이십니다.
* 광풍으로 배가 위태로울 때, 제자들과 예수님의 모습은 어떻게 대조되나요? 위기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나라를 명확히 알고 소망하도록 다양한 비유로 설명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인생의 풍파를 잠재우실 주님을 신뢰하기에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평강을 누리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불안해하며 방황하는 이웃에게 안식처 되신 주님을 담대히 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막을 수 없는 진리의 빛,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

[마가복음 4장 21절~29절]
21절 -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절 -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3절 -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24절 -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5절 -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26절 -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절 -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절 -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절 -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숨긴 것은 드러나게 되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헤아려 주는 만큼 헤아림을 받을 것입니다. 있는 사람은 더 받게 될 것이며, 없는 사람은 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씨를 땅에 뿌린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스스로 열매를 맺고 추수 때가 이르면 거둡니다.

1. 등불 비유와 말씀을 듣는 자세 (21~25절)
등불은 주님의 말씀(시 119:105) 또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때로는 하나님 나라와 진리의 말씀이 감취진 듯합니다. 그러나 등경 위에 둔 등불이 주변을 환히 비추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와 진리는 예수님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24절에서 '헤아리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용기에 담아 달아 보다'라는 뜻입니다. 용기 크기에 따라 담을 수 있는 양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열린 마음과 적극적인 태도로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면 점점 더 많은 비밀을 알게 되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 점점 더 모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와 진리를 세상에 밝히 드러내는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 사람이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삶의 현장에서 주변을 비추는 등불의 기능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요?

2.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 (26~29절)
하나님 말씀은 스스로 역사하는 능력과 생명력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자생력을 지닌 씨의 비유로 이 진리를 설명하십니다. 땅에 뿌려진 씨는 '싹이요, 이삭이요, 이삭이 자라 충실한 곡식 열매가 익어 추수(낫을 댐)'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사람은 씨가 언제 어떻게 자라서 적절하게 열매를 맺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결국 이 비유는 인간의 노력이나 행동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짐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이루어 가십니다.
*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나 결실하는 씨는 하나님 나라의 어떤 특성을 보여 주나요? 복음 사역의 결실이 당장 없는 듯할 때, 어떤 믿음이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캄캄한 세상에 참빛이 되신 주님! 등불과 같은 말씀으로 제 삶을 인도하셔서 제 삶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게 하소서. 말씀의 씨를 부지런히 뿌리되, 씨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임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주권에 결과를 맡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말씀이 열매 맺는 좋은 마음

[마가복음 4장 1절~20절]
1절 -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절 -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절 -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절 -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절 -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절 -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절 -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절 -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절 -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절 -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절 -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절 -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13절 -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14절 -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절 -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절 -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절 -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절 -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절 -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절 -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예수님이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누구나 깨닫도록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지만 사탄에게 곧 뺏기거나, 환난과 박해로 넘어지거나, 염려와 욕심 때문에 결실하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풍성하게 결실하는 자도 있습니다.

1. 비유로 가르치심 (1~13절)
예수님 당시에 농부들은 산지에 계단식 농경지를 만들어 씨를 자유롭게 흩뿌렸습니다. 그러면 씨는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 등 곳곳에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익숙한 것들에 비유해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비유는 '들을 귀 있는 자'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 이들은 밖에 있는 사람, 즉 '외인'(外人)입니다. 반면에 제자란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려는 마음으로 듣기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는 사람입니다.
*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나요?(12절) 말씀을 깨닫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2. 좋은 땅에 맺히는 풍성한 열매 (14~20절)
씨를 뿌리는 농부처럼 예수님은 말씀을 뿌리는 분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씨가 길가에 뿌려진 경우는 사탄에게 말씀을 빼앗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애초에 기대감이나 간절함 없이 말씀을 듣습니다. 씨가 돌밭에 떨어진 것과 사람의 문제는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환난을 이겨 내지 못하는 연약함에 있습니다. 씨가 가시떨기에 떨어진 것은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 기타 욕심이 들어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말씀을 막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이런 것들이 들어오면 빨리 떨쳐 버려야 합니다. '좋은 땅'은 갈아엎은 좋은 밭처럼 부드럽게 된 마음의 소유자, 믿음으로 겸손히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함은 사람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엄청난 양으로,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 네 가지 땅 중에서 내 마음은 어디에 속하나요? 좋은 땅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지니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겔 36:26~27 참조)

오늘의 기도
말씀 안에 감춰진 하늘의 비밀을 깨닫기 원하오니 성령께서 제 마음과 귀를 활짝 열어 주소서. 기쁨으로 받은 말씀을 세상 유혹이나 염려 때문에 잃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씨가 삶의 자리에 뿌리내리고 결실하도록 제 순종의 걸음이 거름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말씀을 받은 이의 마음 상태

[마가복음 4장 1절~20절]
1절 -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절 -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절 -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절 -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절 -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절 -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절 -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절 -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절 -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절 -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절 -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절 -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13절 -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14절 -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절 -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절 -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절 -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절 -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절 -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절 -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배경 이해하기]
비유는 히브리어로 ‘마샬’, 헬라어로 ‘파라볼레’입니다. 이는 어떤 사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사실을 곁에 놓고 비교해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온갖 종류의 상징적인 이야기들이 다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시, 수수께끼, 속담이나 전래동화 같은 것도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줄곧 비유를 통해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34절)라고 기록할 정도로 ‘비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방식입니다.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사야 6:9~10절을 인용해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12절)라고 답하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이성을 넘는 체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결코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계시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죄 사함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비유는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계시가 감추어지는 방편이 되는 반면, 신자들에게는 계시를 새롭게 깨닫게 되는 방편이 됩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신 방식은 무엇이었나요?(2절) ‘씨 뿌리는 사람’ 비유에서 네 가지 땅은 무엇이며 그 결실은 어떠한가요?(3~8절)

예수님은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 비유에서 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에 뿌려진 씨앗은 결실하지 못하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4장(갈릴리 사역)과 13장(예루살렘 사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다섯 개의 비유가 등장하는데 그중 3개(씨 뿌리는 사람 비유, 스스로 자라는 씨 비유, 겨자씨 비유)가 4장에 모두 나옵니다. 3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에게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비난을 받는 등 오해와 핍박이 점증되어 가는 상황을 겪으십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분이 행하실 핵심 사역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 비유’는 “들으라”(3절)로 시작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쿠에테’는 현재명령형 동사로, 계속 반복해서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 선택적인 것이 아니고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중요한 교훈임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네 가지 밭을 언급하십니다. 그중 세 가지(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는 결실하지 못하는 밭입니다. 나머지 하나(좋은 밭)만이 30배, 60배, 100배로 큰 결실을 거두는 밭입니다. 100배로 시작해 30배로 감소하는 역순을 취하는 누가복음과 달리, 마가복음의 기록은 세 번의 실패와 대조적으로 점층적인 성공을 강조합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 말씀을 받는 내 마음은 어떤 땅에 가까운가요? 계속 좋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지 나누어 보세요.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 그 말씀을 받는 마음에 따라 결실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뿌린 씨앗은 동일하지만 씨앗이 떨어진 밭의 종류에 따라 결실에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이 길가, 돌밭, 가시떨기 같은 마음 밭에 떨어지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반면 같은 말씀이라도 좋은 밭에 떨어지면 반드시 풍성한 결실을 거둡니다. 하나님 말씀은 마음이 옥토인 사람이라면 풍성한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법이 없는 완전한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마음 밭은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마음입니다. 한두 번 적당히 듣는, 감정에 의지하는 들음이 아닌, 지속적으로 말씀을 집중해서 듣는 사람은 그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적인 욕심이나 탐심을 내려놓고,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말씀을 받을 때 큰 복을 받게 됩니다.   

2.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11~12절)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결실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14~19절)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는 외인들이 깨닫고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결실하지 못하는 것은 말씀을 받는 마음이 좋은 마음 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그 내용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 밝히 알 수 있도록,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알 수 없도록 하려는 의도를 갖고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비유는 어떤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것을 옆에 놓고 비교해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헬라어로는 ‘파라볼레’로, ‘사물을 나란히 놓는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비유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었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홀로 계실 때 그 비유를 해석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씨앗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씨앗이 농부의 손을 통해 땅에 뿌려지듯 하나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성도의 마음에 뿌려집니다. 결실이 밭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그 열매는 각기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종류의 밭인가 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잘 모를 수 있지만, 일단 씨가 뿌려진 후에는 비로소 밭의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 마음이 옥토인 사람만이 결실할 수 있습니다.  
적용과 나눔
좋은 마음으로 집중해서 설교를 듣거나 QT를 했을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던 성경 말씀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에 순전한 마음으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비난하고 조롱하면서 열매 없는 삶의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반면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풍성한 열매가 있는 삶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시는 분이며, 말씀 자체이십니다. 마음이 옥토라 해도 아무 씨앗이나 30배, 60배, 100배의 놀라운 결실을 거둘 수 없습니다.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이라는 씨앗만이 갖고 있는 위대함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참으로 위대한 씨앗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간절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기만 하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큰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크고 위대함을 마음에 깨달아 그 말씀을 주야로 즐겁게 묵상하는 사람은 하늘의 큰 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시 1:1~2).


*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 받는 사람의 마음이 결실 여부를 결정합니다. 어떤 종류의 땅인지 겉으로 보아서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일단 씨가 뿌려져 자라면 비로소 어떤 땅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참으로 위대한 씨앗입니다. 그 안에는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좋은 마음은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마음입니다. 말씀을 받는 사람이 길가와 같은 굳은 마음, 돌밭과 같은 경박한 마음, 가시떨기 밭 같은 세상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이 아닌, 오직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에 집중한다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굳은 마음, 경박한 마음, 탐욕에 가득 찬 세상적인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게 하소서. 영적 눈이 열려 그 무엇보다 크고 위대한 말씀의 비밀을 깨달아 알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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