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생명의 복음, 새롭고 영원한 진리

[사도행전 17장 16절~23절]
16절 -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절 -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절 -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절 -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절 -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절 -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절 -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절 -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이 아덴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해 회당과 장터에서 날마다 사람들과 변론합니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은 예수와 부활을 전하는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데려가며, 그 말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들에게 바울은 아덴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섬기는 신에 대해 알려 주겠다 합니다.

1. 우상과 철학의 도시 아덴 (16~18절)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우상이 세워진 것을 보면 가슴 아파합니다. 바울은 아덴(아테네)에 우상이 판치는 것을 보고 거룩한 분노를 느낍니다. 그래서 바울은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평일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에서 복음을 전하며 변론합니다. 또한 당대 철학의 대표적인 두 부류, 즉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입장이 다르다고 상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발이 예상되는 논쟁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쟁쟁한 토론자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주님을 전합니다. 본문에서 '말쟁이'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 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조롱하는 표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말쟁이, 예수쟁이'라고 경멸할지라도, 우리는 부활의 주님만이 유일한 참신이심을 당당히 말해야 합니다.

* 바울이 아덴의 회당에서,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및 철학자들과 변론하고 쟁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거룩한 분노를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요?


2. 바울이 전한 새로운 가르침 (19~23절)

세상 사람들이 좇는 '가장 새로운 것'이란 상대적인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낡은 것'이 되고 공허함만 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결코 낡지 않는 영원불변의 절대 진리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와 부활'에 아덴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그것이 이제껏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신'을 알려 주고자 합니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골 2:3) 예수님을 알고 구원자로 믿어 영생을 얻으면, 그전에 '이상한 것'(20절)으로 생각되었던 복음이 가장 '고상한 것'임을 고백하게 됩니다(빌 3:8 참조).

* 아덴 사람들은 무엇에 가장 관심을 두고 시간을 많이 썼나요?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내가 쓰는 시간을 점검해 보세요.


오늘의 기도

온갖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이 세대의 영적 무지를 불쌍히 여기소서. 세상에 쏟아지는 새로운 지식과 신제품에 대한 관심만큼 진리를 향해 관심을 보이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제 속사람을 늘 새로워지게 하시는 생명의 주님께 모든 시간과 열정을 바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멈출 수 없는 전도의 열정

[사도행전 17장 1절~15절]
1절 -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절 -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절 -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절 -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절 -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절 -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절 -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절 -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절 -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0절 -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절 -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절 -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절 -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절 -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절 -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배경 이해하기]
데살로니가는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때 자유 도시로 지정되어 자체적으로 정부와 법률을 갖는 것이 인정됐습니다. 천연의 항구가 있었으며, 로마가 만든 에그나티아 도로가 지나는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이 도로는 데살로니가를 관통해 아드리아해에서 중동까지 뻗어 있어 동방과 서방을 잇는 교역로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 도로를 통해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를 원했습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남서쪽으로 약 75~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마게도냐의 도시입니다. 바울을 통해 많은 사람이 믿었지만, 대적하는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복음 전도는 헌신적이었습니다. 헌신이란 사람들의 반응이 호의적이든 호의적이지 않든 변함없이 복음을 전하는 태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4:20),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부득불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고전 9:16). 또 스스로 복음에 빚진 자(롬 1:14)라고 합니다. 바울처럼 핍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관찰과 묵상]
1. 바울이 회당에서 전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요?(1~3절) 유대인들의 핍박이 바울의 복음 전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5~9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먼저 회당을 방문합니다. 회당에는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 즉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모이는 곳이었기에, 바울은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합니다. 메시지의 근원과 권위는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분 없이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을 확신했습니다. 바울의 전도 전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사람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둘째, 그는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셋째, 그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철학이나 역사, 법률, 심리학이나 사회학적 지식에 권위를 두지 않았고, 오직 성경에 권위를 두었습니다. 넷째, 메시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만을 전했습니다.   
적용과 나눔
전도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까요?

대개 사람들이 전도를 꺼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전도할 때 사람들로부터 책망받거나 놀림당하는 것을 두려워해 침묵합니다. 또한 불신자들로부터 ‘별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전할 말이 없다면, 이는 무엇을 전할지 어떻게 전할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이 전도를 해 본 경험이 없어서 머뭇거리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닙니다. 셋째, 이기심과 무정함 때문입니다. 전도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재정으로 섬겨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타인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전하지 않으면 그가 영원히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넷째, 전도를 위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아버지 뜻을 알고 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줍니다. 기도로 심으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얻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2. 베뢰아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나요?(11~12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13절)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를 들은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은 베뢰아에 와서 무리를 소동해 복음 전파를 방해했습니다.
베뢰아에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복음에 더 호의적이어서 말씀을 편견 없이 정중하게 경청했고, 날마다 들은 말씀이 과연 참된 사실인가 알기 위해 상고했습니다. ‘너그럽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게네스’는 ‘높고 고귀한 출신의’, ‘높은 사회적 지위의’, ‘편견 없는’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교육을 잘 받은 상류층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허무맹랑한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바울에게 보람과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 파세스 프로쒸미아스’는 ‘모든 자원함으로’, ‘모든 준비됨으로’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상고하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크리노’는 ‘질문하다’, ‘관찰하다’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반추하면, 바른 진리를 깨달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와서 바울을 해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통해 많은 무리가 그리스도께로 돌이키자, 과거 자신들이 받았던 대중의 관심과 존경을 빼앗긴 것에 대해 시기심이 생긴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불량한 무리를 동원해 도시에 소동을 일으켜 바울과 그 무리를 대적했습니다.  
적용과 나눔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나누어 보세요.

기독교와 복음 전도에 대해 모든 사람이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바울이 복음 전하는 것을 핍박했던 유대인들처럼 오늘날에도 기독교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안티 기독교인들이 존재합니다. 평소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던 잠재적 반대자들과 시민들이 이 대열에 합류합니다. 반기독교 정서의 확산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안티 기독교인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시기심 때문에 바울과 그 일행을 대적했는데 기독교 안티가 생겨나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종교이고 약자가 아니라 강자라고 여겨질 때, 즉 힘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될 때 안티 정서가 확산되기 쉽습니다. 안티 기독교인들도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라 기독교인과 이해관계에 있든지 아니면 기독교에 대한 과거 나쁜 경험으로 인해 적극적인 반대자로 돌아선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셨을 때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도구로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이 기독교 안티를 예방하는 방법입니다.


* 복음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복음 전파는 영적인 일이기에 세상의 핍박과 저항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9),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핍박 속에서 복음의 능력은 더 크게 나타납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마음으로 복음 전파를 계속할 때, 우리는 준비된 영혼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과 하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의 통로이고, 열매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 얻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세상 지혜가 아닌 하늘의 지혜로 전하게 하소서. 완고하게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으로 그 영혼을 품고 사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성경을 깊이 묵상할수록 주님을 밝히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 17장 1절~15절]
1절 -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절 -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절 -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절 -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절 -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절 -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절 -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절 -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절 -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0절 -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절 -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절 -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절 -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절 -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절 -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바울이 세 안식일에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하며 예수를 전하니 많은 헬라인과 귀부인이 믿으나, 유대인들은 시기해 소동을 일으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너그럽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성경을 매일 상고합니다. 쫓아온 데살로니가 유대인들 때문에 바울은 아덴으로 갑니다.

1.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데살로니가 사람들 (1~9절)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알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마게도냐 지역의 행정 수도인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바울은 늘 하던 대로 '유대인의 회당'에서 3주간 안식일에 말씀을 전하며, 구약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메시아)가 바로 예수임을 밝힙니다. 이를 듣고 많은 헬라인이 회심하나, 유대인들은 그들을 시기해 소동을 일으킵니다. 자신들이 신성 모독 죄로 십자가 처형에 내몰았던 예수가 곧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를 잡고자 침입한 무리 때문에 그동안 바울 일행의 사역을 돕던 야손과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진리를 따르고 전하는 사람을 시기하며 공격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신들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은 까닭입니다. 진리를 반대하는 자들은 사실상 진리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헬라인들과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떻게 달랐나요? 복음 전하는 사람을 세상이 시기하고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성경을 상고하는 베뢰아 사람들 (10~15절)
말씀을 받는 마음 밭의 상태가 중요합니다(눅 8:11~15 참조).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을 피해 베뢰아로 가서 다시 말씀을 전합니다. 베뢰아 사람들 중에 상류층을 포함해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들이 많은 이유는 11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편견 없이 말씀을 경청했고, 들은 말씀이 과연 참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찾아보고 연구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진리를 갈망하며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상고하면, 마침내 진리가 가리키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성경 말씀을 대하는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는 어떤 결과로 이어지나요? 말씀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돌아볼 때, 어떤 변화와 훈련이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자존심을 버리고, 목마른 사슴처럼 헐떡이며 말씀의 생수를 받아 마시는 갈급한 심령이 되게 하소서. 날마다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며 곱씹어, 진리를 더 깊이 더 넓게 알아 가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예수 복음을 확신 있게 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세상 감옥은 결코 복음을 가둘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9절~40절]
19절 -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절 -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절 -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절 -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절 -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절 -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절 -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절 -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절 -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절 -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절 -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절 -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절 -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절 -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절 -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절 -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절 -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절 -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절 -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절 -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절 -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절 -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여종 주인들의 고발로 투옥된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그때 지진이 나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벗어집니다. 이 일로 자결하려던 간수에게 바울이 예수를 전하니 온 가족이 믿습니다. 로마 사람이라는 바울의 말에 상관들은 두려워하며, 그들에게 떠나 달라 청합니다.

1. 투옥당한 두 사도, 구원받은 간수의 가족 (19~34절)
삶에서 '돈'과 '영혼'이라는 가치가 부딪힐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점치는 귀신 들렸던 여종이 온전하게 되자, 그 주인들은 이익 얻을 수단이 사라졌다고 분개하며 바울과 실라를 고발합니다. 그들은 재물에만 소망을 둔, 탐욕의 노예입니다. 반면 주님으로 인해 자유롭게 된 영혼은 그 무엇도 가두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소망의 원천이신 주님께 기도하며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 중에 드리는 기도와 찬송은 믿음의 증거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주님의 역사로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풀려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는데도, 감옥에 남아 간수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또 하나의 가정교회를 세웁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영혼 구원을 위해 자기 유익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 귀신 들렸던 여종의 주인들과 바울은 소망의 근거가 어떻게 달랐나요? 내가 주님께만 소망을 둔 사람이라면 삶의 태도와 방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2. 감옥에서 풀려나 성도들을 위로함 (35~40절)
세상이 불의를 좇을 때, 그리스도인은 의를 행하며 어그러진 것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 관리들은 애당초 바울과 실라의 신분도 확인하지 않고 재판 절차도 없이 그들을 체포하고 매질하고 감옥에 갇었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은 로마 식민지 안에서 로마법으로 보호받으며, 본인의 동의 없이 함부로 재판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히며 부당한 처사를 지적한 것은 단순히 자신들의 명예 회복만 위한 것이 아니라, 훗날 빌립보 성도들이 당하게 될지 모를 핍박을 미리 방지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풀려난 두 사도는 도리어 성도들을 위로합니다. 선한 목자는 자신의 안위보다 항상 양 떼의 안위를 더 걱정하고 앞세웁니다.
* 왜 바울은 빌립보 관리들에게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혔을까요? 불의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깊은 감옥에 갇히고 발에 차꼬가 단단히 채워진 것처럼 옴짝달싹 못 하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묶임을 풀어 주실 주님을 기대하며, 오늘도 제가 있는 자리에서 영혼을 살리는 일에 전심을 다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동역자를 만나는 기쁨, 영혼이 회복되는 은혜

[사도행전 16장 11절~18절]
11절 -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절 -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절 -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절 -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절 -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절 -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절 -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절 -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배 타고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습니다. 주께서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의 마음을 여시니 그와 온 집안이 세례받고 바울 일행을 그 집에 머물게 합니다. 한편 바울은, 점치는 귀신 들려 주인들에게 이익을 주는 여종에게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습니다.

●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일에 헌신하게 되는 것은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바울 일행은 유럽 선교의 첫 관문인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도착해 기도처를 찾으며 복음을 전합니다. 이때 주님이 귀족에게 옷감 파는 재력가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그녀를 거듭나게 하시고, 복음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바울 일행에게 숙식을 제공한 루디아의 집은 가정교회로서 빌립보 선교의 교두보가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소유가 복음 전파에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한편 바울은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 예수 이름으로 고쳐 줍니다. 그 여종은 점을 쳐서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었습니다. 어떤 능력으로 어떤 놀라운 말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영이 누구에게 속했느냐'입니다. 그 영이 주님께 속하지 않으면, 그 결국은 허망한 것이 됩니다.

*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믿게 하신 분은 누구인가요?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며 오늘 복음을 전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어디든 부르신 곳으로 가는 순종의 사람들

[사도행전 16장 1절~10절]
1절 -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절 -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절 -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절 -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절 -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6절 -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절 -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절 -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절 -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절 -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칭찬받는 제자요 아버지가 헬라인인 디모데에게 바울이 할례를 행한 후 그와 함께 다니며 여러 교회를 견고히 합니다. 성령이 아시아 선교를 막으시고 비두니아행을 허락지 않으시자, 바울은 드로아로 갑니다. 그는 건너와서 도우라는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곧 마게도냐로 가고자 힘씁니다.

1. 디모데의 합류 (1~5절)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동역자와 다양한 전략과 준비도 필요합니다. 바울은 실라(15:40)와 더불어 디모데를 2차 전도 여행에 동참시킵니다. 바울이 낳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딤전 1:2)는 성도들에게 칭찬받는 신실한 일꾼이기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를 둔 무할례자라, 유대인들이 그에게서 말씀 듣는 것을 꺼리고 복음을 거부할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선교 전략으로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전도에 나서기 전에 복음 전파의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다양한 전도 대상자를 고려하며 그들과 눈높이를 맞춰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 바울은 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을까요? 나와 공동체 안에 복음 전파의 장애물이 있다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2. 마게도냐 사람 환상 (6~10절)
때로 하나님이 우리 계획을 막으시는 것은 그분의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는 바울의 계획을 성령이 막으시고, 항구 도시 드로아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십니다. 만일 바울이 자신의 계획을 계속 고집했다면, 건너와서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도 무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마게도냐로 건너가 유럽 선교에 힘쓰는 것이 선교의 주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6, 7, 10절)의 뜻임을 인정하고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내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웠어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하지 못한 곳, 예상하지 못한 일에 부르시더라도 즉각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막으신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했나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된다면, 번거롭고 필요 없어 보이는 일도 기꺼이 감당하게 하소서. 하지만 하나님이 막으시는 일이라면, 제가 어떻게든 해 보려고 어리석게 발버둥 치지 않게 하소서. 제 뜻과 다르더라도 하나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성령으로 저를 사로잡아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우리의 허물을 통해서도 주님은 선을 이루십니다

[사도행전 15장 30절~41절]
30절 -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절 -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절 -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절 -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절 - (없음)
35절 -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36절 -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절 -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절 -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절 -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절 -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절 -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안디옥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편지에 기뻐하고, 유다와 실라는 성도들을 권면하고 돌아갑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안디옥에서 말씀을 전한 후 2차 전도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 마가의 동행 문제로 다툽니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와 구브로로, 바울은 실라를 택해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갑니다.

1. 공문과 위로를 받은 이방 교회 (30~35절)
영적 지도자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며 경계함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도록 해야 합니다(살전 2:11~12).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된 유다와 실라는 안디옥 교회에 모인 이방인 신자들에게 공회의 결정이 기록된 편지를 읽어 줍니다. 그리고 선지자로서 주어진 말씀의 은사로 그들을 위로하며 권면합니다. 이에 할례와 율법의 멍에를 지우려는 사람들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하던 이방인 신자들은 기뻐하고, 그들의 믿음은 더욱 든든히 섭니다. 구원 교리 문제가 일단락되자, 바울과 바나바는 동역자들과 함께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며 복음 전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복음으로 하나 된 교회는 헌신된 복음 전도자들과 교사들로 인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
* 이방인 형제들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 주기 위해 유다와 실라는 어떻게 했나요? 오늘 나는 누구를 어떻게 위로하고 권면해 줄 수 있나요?

2. 갈라서는 바울과 바나바 (36~41절)
복음의 씨를 뿌린 후에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바나바에게 1차 전도 여행지를 다시 방문하자고 제안합니다. 그곳 성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그들의 영적 성장과 성숙을 돕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1차 전도 여행때 중도 하차한, 바나바의 조차 마가를 2차 전도 여행에 데려가는 문제로 둘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올곧은 태도를 보이던 바울과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던 바나바는 결국 갈라져, 서로 다른 지역 교회를 돌아보고 세웁니다. 이렇게 다툼으로 생긴 두 개의 전도 팀을 통해서도 복음 전파의 지경을 넓히셨듯,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이나 연약함까지도 합력해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 바울과 바나바는 왜 갈라섰으며, 그 일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요? 공동체 안에 다툼과 나뉨이 있더라도 그것을 선한 결과로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하세요.

오늘의 기도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는 지체들을 말씀으로 위로하고 권면해 견고히 세우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서 일어난 다툼을 복음 확장의 수단으로 삼으신 주님! 저희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통해서도 결국 선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구별됨'과 '하나 됨'을 위한 결정

[사도행전 15장 12절~29절]
12절 -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절 -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절 -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절 -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절 -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절 -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절 -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절 -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절 -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절 -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22절 -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절 -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절 -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절 -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6절 - (25절에 포함되어 있음)
27절 -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절 -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절 -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바나바와 바울은 하나님이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일을 보고합니다. 그러자 야고보가 회심한 이방인들에게 우상의 더러운 것(제물)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는 것만 요구하자고 제의합니다. 예루살렘 공회는 이 내용의 편지를 유다와 실라와 함께 안디옥에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1. 야고보의 제안 (12~21절)
모든 문제는 말씀에 근거해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베드로에 이어, 바나바와 바울이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행하신 일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공회의 의장으로 추정되는 야고보는 이 말을 듣고, 구약성경(암 9:11~12)을 근거로 들며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음을 밝힙니다. 또 율법으로 이방인 신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그들에게 네 가지 사항만 금하도록 하자는 중재안을 내놓습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성결한 삶, 교제와 연합을 위한 최소한 의식적 요건입니다. 또한 이는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 신자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받아들이고, 이방인 신자들은 유대인 신자들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진리와 같이 꼭 사수해야 할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서로 양보하고 수용하고 합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야고보의 판단 근거는 무엇이며, 그의 제안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 뜻을 찾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 사항 (22~29절)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막을 수도 없고, 막으려 해서도 안 됩니다. 이방인도 구원하시는 것은 명백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루살렘 공회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와 율법의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은혜로 구원받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공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결정된 사항을(28~29절), 논쟁의 발달지인 수리아 지역의 안디옥과 길리기아에 전달합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모든 것에 자유로우나(고전 10:23 참조), 절제의 태도로 거룩함을 추구하며, 다른 성도들과의 연합을 도모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평안을 누립니다.
* 공회의 결정은 이방 선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다른 사람의 구원 또는 영적 성장,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나는 무엇을 삼가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모든 영혼을 죄와 율법의 멍에에서 자유롭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 앞에 걸림돌을 제거하고, 복음으로 디딤돌을 놓아 주는 교회 되게 하소서. 성도들이 연합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며, 함께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절~11절]
1절 -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절 -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절 -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절 -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절 -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절 -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절 -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절 -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절 -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절 -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절 -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배경 이해하기]
안디옥 교회의 요청으로 제1차 예루살렘 공회가 열립니다. 15장은 이 회의가 열린 배경과 회의 가운데 있었던 베드로와 야고보의 발표 내용을 요약해 보도합니다. 안디옥 교회 안으로 들어온 일부 유대인 신자들이 유대교적 잔재를 갖고 있어 할례와 율법 준수가 구원의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등 그 어떤 교회보다 모범적인 행보를 하던 안디옥 교회 안에 갈등이 심화됐고, 결국 이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에 상정합니다. 이 일로 제1차 예루살렘공회가 열립니다. 회의를 통해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는 구원에 대한 교리가 정립됩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가, 유대인 교회와 세계 교회가 하나 되는 초석이 만들어집니다. 할례나 율법 준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임을 확인시켜 준 이 역사적인 회의 이후 사도행전에서는 더 이상 사도라는 칭호가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는 교회의 기초를 닦는 사도의 직무가 이 회의를 정점으로 완성됐음을 의미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이가 구원받는다는 하나 된 구원 교리를 따라 모든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가 됩니다. 

[관찰과 묵상]
1. 안디옥 교회에서 구원 교리에 관해 변론과 다툼을 일으킨 사람들은 누구며, 그들의 주장은 무엇인가요?(1~2절)

유대로부터 내려온 일부 유대인 신자들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한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과 달라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이 끝날 무렵, 어떤 유대인 신자들이 안디옥 교회로 내려와 성도들을 가르칩니다. 이 과정에서 구원 교리에 대한 갈등이 표출됩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친 바나바와 바울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방인 구원에 있어 율법 준수와 할례가 선행 조건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에 안디옥 교회 안에 발생한 갈등은 안디옥 교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결국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 등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파송해 이 문제 해결을 예루살렘 교회에 의뢰합니다. 이 과정에서 안디옥 교회에서의 바나바와 바울의 영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교회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바나바와 바울을 보냅니다. 안디옥 교회가 구원 교리에 있어 이미 바나바와 바울의 가르침에 무게를 실어 주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도 환영을 받았습니다. 할례와 율법 준수를 구원의 조건이라 말하는 일부 유대인 신자들의 주장은 이미 힘을 잃고 있었습니다. 차별 없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적용과 나눔
교회 안에 구원 교리로 인한 갈등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대응할지 나누어 보세요.

구원 교리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교회 안에 큰 혼란과 분열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 안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자연스럽게 들어온 일부 유대인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할례와 율법 준수가 구원의 전제 조건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바나바와 바울이 가르쳤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와는 큰 차이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상당수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저들의 가르침에 동조합니다. 성경에 대해, 구원의 교리에 대해 그들 역시 무지했고 오해가 있었습니다. 구원 교리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신실한 초대 교회 안에도 있었습니다. 교회는 구원 교리에 대한 가르침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많은 이단이 일어나 활동하며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의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와 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구원의 교리에 대한 갈등 문제를 중히 여겨 예루살렘 교회까지 가서 이 문제를 갖고 공회를 여는, 그래서 이 문제만큼은 반드시 해결하고자 하는 바나바와 바울의 열정을 이 시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합니다.   

2. 예루살렘 공회에서 베드로는 이방인 구원에 관해 어떤 내용을 증언하나요? 그의 말은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7~11절)
베드로는 자신이 체험한 이방인 고넬료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들어, 이방인들 또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제1차 예루살렘 공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역할을 하던 베드로와 야고보 두 사람의 연설을 중심으로 마무리됩니다(15:7~29).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로 요약 정리됐다는 것은 초대 교회에서 두 사람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고 그들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있어 많은 사람이 공감했음을 뜻합니다. 이는 한 교회에서 리더십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를 보여 줍니다. 베드로는 10여 년 전에 있었던 고넬료 가족의 회심 사건을 회상하며 이야기합니다. 이미 10여 년 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할례나 율법 준수와 무관하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근거로, 하나님은 이방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구별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임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 원칙은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것임을 분명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마음 중심을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든지 차별이 없이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마음을 정결케 하사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하는 구원 교리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 은혜의 사건입니다(롬 10:9).  
적용과 나눔
구원 교리를 왜곡하며 거짓되게 전하는 이단의 가르침을 들어 본 일이 있나요? 헛되고 무익한 가르침 앞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예에서 보듯이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할 정도로 은혜가 충만한 교회임에도 구원의 교리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있었습니다. 구원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적용을 위한 전 교회적 노력은 이 시대에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 안에 큰 문제를 일으켰던 구원 교리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우리 안에는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구원의 교리에 대한 무지나 오해와 더불어 기득권층으로서의 편협한 마음, 배타적인 성향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였음을 잊지 말고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주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해야 합니다(출 22:21).


* 제1차 예루살렘 공회는 할례나 율법 준수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구원의 유일한 근거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구원의 조건에 신분·인종·선행·빈부 등 그 무엇도 더해지면 안 됩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받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 교리는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또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습니다(롬 10:9).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요 14:6).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만이 진리 안에 거하며 생명을 누립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다른 조건 없이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은혜로 얻은 구원이 제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값진 것임을 기억하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가며, 복음을 힘써 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차별 없이 주어지는 완전한 구원의 은혜

[사도행전 15장 1절~11절]
1절 -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절 -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절 -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절 -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절 -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절 -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절 -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절 -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절 -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절 -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절 -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유대에서 온 이들이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내세우자, 바울과 바나바 등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공회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차별 없이 성령을 주신 이방인 제자들에게 유대인들도 메지 못하는 멍에를 지우지 말자고 합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1. 할례받아야 구원받는가 (1~5절)
율법 준수는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바리새파 신자들은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어도 유대인처럼 할례받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선민의식과 혈통적 우월주의에 빠져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죄인을 구원하기에 조금도 부족함 없기에, 거기에 무엇을 더하면 안 됩니다. 이 문제로 논쟁이 생기자,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도록 바울과 바나바 일행을 보냅니다. 믿는 자들의 우월의식이나 배타주의 등으로 영혼 구원의 길이 막혀서는 안 됩니다. 복음은 주를 믿는 누구에게든 차별 없이 구원을 주는 기쁜 소식입니다.
* 안디옥 교회에 다툼과 변론이 왜 일어났나요? 다툼의 원인이 신앙의 본질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2. 주 예수의 은혜로 받는 구원 (6~11절)
하나님은 혈통이나 인종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처음으로 열린 예루살렘 공회에서 많은 변론이 오간 끝에, 베드로가 중요한 발언을 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이방인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의 근거로, 베드로는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방인 고넬료에게도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고 이방인들을 거룩하게 하셨던 일을 언급합니다(10장 참조). 그리고 어떤 사람도 능히 메지 못하는 멍에 같은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밝힙니다. 구원은 나의 공로,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곧 은혜로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입니다.
* 예루살렘 공회에서 베드로가 주장한 내용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내가 버리지 못한 아집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세요.

오늘의 기도
교회에서 세례받고 신앙 훈련도 많이 받고 직분도 받은 것을 '나의 의'로 여기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했음을 회개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누구든 자녀로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 차별의식을 버리고 제가 만나는 모든 이를 주님께로 인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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