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복음

[사도행전 26장 24절~32절]
24절 -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절 -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절 -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절 -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절 -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절 -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절 -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절 -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절 -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배경 이해하기]
바울은 유대인들의 고발로 가이사랴로 가서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심문받았지만, 죄목을 찾지 못해 그에 대한 선고가 유예되고, 그동안 총독은 베스도로 바뀝니다.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을 재판하지만 그에게서 어떤 죄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겠느냐는 베스도의 질문에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서 로마 황제에게 상소합니다. 유대인들과 그들의 종교 문제에 미숙해 바울 문제로 고심하던 베스도는 때마침 방문한 아그립바왕(분봉왕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바울 사건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고, 바울은 베스도와 아그립바왕 앞에서 변론합니다. 바울은 유대 관습과 문제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왕 앞에서 변론하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2~3절), 자신이 과거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으며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사람이었다고 고백합니다(4~12절). 이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이방 선교를 위해 부름 받았고, 자신이 전하는 것이 유대교의 전통과 배치되지 않음을 변론합니다(13~22절). 그는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전파되어야 함을 강조함으로 자신을 위한 변론의 기회를 오히려 복음 선포의 기회로 삼습니다.  

[관찰과 묵상]
1. 바울의 변론을 들은 베스도 총독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그런 총독의 반응에 바울은 어떻게 대답하나요?(24~25절)

베스도 총독은 바울의 많은 학문이 바울을 미치게 한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고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한다고 반박합니다.
바울의 변론을 듣던 중 베스도는 큰 소리로 바울이 미쳤다고 외치며 변론을 중단시킵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었고, 로마인으로서 헬라적 인본주의 사고방식을 가졌던 베스도에게 죽은 자의 부활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신화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베스도의 눈에는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으며 그것에 심취한 나머지 동족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고집을 꺾지 않는 바울이 유대교를 지나치게 배우고 심취해 미쳐 버린 것으로 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베스도에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각하’라는 극존칭으로 부르며 공손한 태도로 응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단호하게 자신은 ‘참되고 온전한’말을 하고 있다고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참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알레쎄이아스’로 바울이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온전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프로쉬네스’는 ‘안전하고 건전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24절의 ‘미친’과 정반대 개념입니다. 자신을 미쳤다고 소리 지르는 로마 총독 앞에서 바울은 움츠러들거나 동요하지 않고 정중한 태도로 자신의 말을 온전한 진리로 받아 줄 것을 촉구합니다.  
적용과 나눔
불신자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다 거절당한 경험을 나누어 보세요. 전도하다가 공격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활을 선포하는 바울을 향해 ‘미쳤도다’라고 말하는 베스도의 반응은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게 가지는 일반적인 오해와 태도를 반영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라고 분명히 선포합니다(고전 2:14). 육신의 눈으로만 판단하는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의 열의를 ‘어리석은 짓’으로 여기며 거절하고 냉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사람들의 말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미친 자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고후 5:13). 오늘날에도 복음을 전할 때 싸늘한 시선과 거절은 당연합니다. 복음을 전하다 냉소와 거절을 경험할 때 예수님도 이 땅에서 미친 자로 취급당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막 3:21). 복음을 소유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새롭게 깨닫는 기회로 삼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져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흔적을 지닌 것을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2. 바울의 말을 들은 아그립바왕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바울은 무엇을 바라며 하나님께 간구한다고 말하나요?(27~29절)
믿음을 자극하는 바울의 말에 아그립바왕은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의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이 결박된 것 외에는 그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죽음은 비밀리에 일어난 은밀한 종교의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유대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아그립바왕은 분명히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죽음과 부활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행해진 기적들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아그립바왕에게 바울은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며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합니다. 바울은 아그립바왕에게 믿음의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아그립바왕은 당황합니다. 만일 베스도가 “미쳤다”고 판단하는 바울의 말에 왕이 동의한다면 이방인 지도자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는 것이요, 선지자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 유대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처세술에 밝은 아그립바왕는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말하며 답을 회피합니다. ‘적은 말로’로 번역된 헬라어는 ‘짧은 시간 안에’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왕은 바울에게 단시간의 연설로 자기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는 바울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체면과 세속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거절합니다. 이에 바울은 자기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결박된 것 외에 자신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고 말합니다.    
적용과 나눔
왜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마음이 흔들려도 믿음으로 결단하지 못할까요? 그런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면 좋을까요?

복음을 들을 때 호기심도 생기고 마음도 흔들리지만, 복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음을 갖게 되면 얽매인다고 생각하고, 믿음 때문에 누릴 복보다 포기해야 하는 세상 즐거움과 유익이 훨씬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전에 유익하고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이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가치 없고 심지어 배설물처럼 여겨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그분에게 발견되는 것과 그분을 자랑하는 것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고상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참조, 빌 3:8). 이처럼 복음을 통해 누리는 진정한 자유와 기쁨과 생명이 있기에,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으로 결박되어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 권세자들 앞에 섰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웠고, 재판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영적인 자유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 있는 사랑과 생명과 복을 풍성히 누리며 그것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해 담대히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고 복음 전도자를 어리석게 여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아그립바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당당하게 그들도 자신처럼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비록 몸은 결박되어 있지만,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축복, 자유를 충만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복음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고 거절당할지라도 복음의 생명력은 결코 쇠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복음은 변화를 동반합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삶과 영혼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은 세상의 차가운 반응을 녹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효과적인 통로가 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복음 안에서 제가 누리는 자유와 기쁨과 생명을 전하고 나누기 원합니다. 전도에는 멸시와 냉대가 따름을 기억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하더라도 복음의 거룩한 통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어둠에서 빛으로, 박해자에서 부활 증인으로

[사도행전 26장 13절~23절]
13절 -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절 -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절 -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절 -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절 -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절 -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절 -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절 -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절 -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절 -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절 -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은 해보다 밝은 빛 때문에 엎드러져 예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왕에게 말합니다. 그는 주님께 순종해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고,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고난당하고 죽음에서 부활해 모두에게 빛 되심을 증언한 것밖에 없다고 변론합니다.

1. 부름받은 바울 (13~18절)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어떤 일을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이러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살아 계신 부활의 주님을 만난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것이며, 이제껏 자신이 헛되고 무모한 일을 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주님이 자신을 선택하셔서 그분의 종과 증인으로 삼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울을 어둠에서 빛으로 불러내신 주님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일에 그를 사용하실 것입니다(18절). 주님으로 인해 '사망에서 생명으로'(요 5:24) 옮겨진 사람은 아직까지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지 못한 이들에게 자신이 만난 구원의 주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 주님은 어떤 일을 위해 바울을 부르셨나요? 주님이 내게 맡기신 사역은 무엇이며,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할 복음 전도 대상은 누구인가요?

2. 증언의 사명을 변론함 (19~23절)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은 사람은 길이 험난해도 순종하며 사명을 끝까지 감당합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일로 유대인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인도하셨기에, 그는 여전히 살아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메시아)가 고난당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온 인류의 빛이 되신다는 구약성경의 예언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진리를 알리는 주님의 증인들을 지지해 주십니다.
* 바울은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모든 사람 앞에서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었나요? 내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부르심을 받고 제 신분이 '복음의 증인'으로 바뀐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고난이 따른다고 사명을 외면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소서. 영적인 눈을 뜨고 빛 되신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먼저 누린 자로서, 어둠 속에 헤매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이 약속하신 소망,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다

[사도행전 26장 1절~12절]
1절 -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절 -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절 -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절 -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절 -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절 -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절 -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절 -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절 -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절 -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절 -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절 -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유대인의 모든 풍속을 아는 아그립바왕 앞에서 바울이 변론을 시작합니다. 자신은 유대인 중에서 가장 엄한 바리새파 사람인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부활에 대한 소망 때문에 고소당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예수 이름을 대적해 성도를 박해했고, 그 일로 다메섹에 갔다고 말합니다.

● 참소망을 알기 전과 후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 중의 괴수도 변화시킵니다. 회심 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려고 대제사장들에게서 공식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을 만큼, 교회 박해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9절; 요 16:2).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었지만, 참지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바울의 열심은 도리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으려고 애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롬 10:2~3). 그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유대인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이 대적했던 예수의 이름을 전하고,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신 것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법정에서 간증합니다. 진정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조차 주님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 바울이 아그립바왕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말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거듭나기 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사람들 앞에 고백하며 소망의 주님을 전해 보세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거듭된 바울의 재판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

[사도행전 25장 13절~27절]
13절 -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절 -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절 -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절 -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절 -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절 -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19절 -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20절 -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절 -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절 -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23절 -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24절 -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25절 -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26절 -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27절 -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가이사랴에 방문한 아그립바왕에게 총독이 바울 사건을 고합니다. 그리고 바울의 말을 듣기 원하는 왕 앞에 그를 세웁니다. 총독은 자기가 살펴보니 유대인들의 고소 내용과 달리 바울이 사형에 처해질 죄를 범하지 않았으나 황제에게 상소를 했기에, 죄목 없이 그를 보낼 수 없어 심문한다고 합니다.

1. 베스도의 술수 (13~22절)
세상에는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지도자들이 있습니다(미 3:9). 총독 베스도가 유대 왕 아그립바에게 바울의 재판에 관해 상세히 보고하는 것은, 골치 아픈 문제를 떠넘기려는 속셈이 있었던 듯합니다. 베스도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이유가 그들의 종교 문제에 관한 것일 뿐, 바울이 로마법을 어긴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을 석방하지 않은 것은 베스도가 공의를 행하지 않았음을 반증합니다.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20절)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재판받을지 물어보았다는 것은 베스도가 유대인들을 의식했음을 보여 줍니다(2~3절 참조). 그러면서 자신은 로마법을 지키고자 했음을 보호막으로 내세웁니다(16절). 그리스도인은 베스도나 빌라도(마 27:24)처럼 책임을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되며, 모든 재판과 일 처리를 공의롭게 해야 합니다.
* 베스도가 아그립바왕에게 바울의 재판 문제를 상의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지도자들이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공의를 행하도록 기도하세요.

2. 또다시 심문받는 바울 (23~27절)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간섭하십니다. 베스도가 살펴본 결과, 유대인들이 죽이려 하는 바울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했기에, 황제 앞에 아뢸 죄목을 찾고자 유대인에 대해 잘 아는 아그립바왕을 비롯해 고위 관료들 앞에서 바울을 다시 심문합니다. 이 심문은 바울을 통해 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베스도는 자기가 바울을 황제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말하지만(25절), 이 또한 로마에도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이루어진 결정입니다.
* 베스도가 아그립바왕과 관료들 앞에서 바울을 심문하는 표면적 이유와 이면적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는 눈을 주시도록 기도하세요.

오늘의 기도
진실을 알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사람들 눈치를 보며 결정을 유보했습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공의를 행할 용기를 주소서. 또한 법정에서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불의한 판결이 내려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친히 개입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내게 주신 모든 권리는 복음 전하는 도구입니다

[사도행전 25장 6절~12절]
6절 -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절 -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절 -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절 -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절 -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절 -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절 -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재판 자리에서 고발 증거를 대지 못합니다. 바울이 유대인의 율법과 성전과 로마 황제에 대해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변론하지만, 총독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심문받겠느냐 묻습니다. 이에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하겠다 하고, 베스도가 허락합니다.

1. 베스도 앞에서 심문받음 (6~9절)
자신의 유익을 기준으로 삼으면,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베스도가 바울의 재판을 다시 진행하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바울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합니다. 이럴 경우 당연히 바울을 석방해야 함에도 베스도는 이 사건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는 데 이용하려 합니다. 즉, 앞서 유대인들의 요청이 있었고(3절 참조), 예루살렘은 유대의 수도요 종교 중심지니 바울을 예루살렘에 보내서 재판받게 하면 자신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 지지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입니다(9절 참조). 성도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기보다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해야 합니다(살전 2:4).
* 왜 베스도는 죄가 없는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보내려 했나요? 나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하나요,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자 하나요?

2.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바울 (10~12절)
하나님이 주신 권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적절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총독이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바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지 않고 유대인의 공회인 산헤드린에 그를 다시 세우려 하자, 바울은 이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로마 시민으로서의 특권을 사용해 가이사(로마 황제)에게 상소함으로 로마에 가고자 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권리를 누리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둔 결정입니다. 만일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총독에게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면 전도 여행을 통해 로마로 갈 수는 있었겠지만, 가이사와 로마 관리들 앞에서 복음 전할 기회를 갖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시각을 뛰어넘어 더 멀리, 더 많은 것을 보십니다.
*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님 뜻에 집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세상은 자꾸 제 앞 길을 막으려 하지만, 주님의 방법으로 저를 인도하셔서 사명의 길을 끝까지 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제 권리와 강점을 파악하고, 하나님 나라 위해 지혜롭게 사용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을 진정 두려워할 때 불의를 버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4장 24절~27절]
24절 -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절 -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절 -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절 -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사도행전 25장 1절~5절]
1절 -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절 -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절 -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절 -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절 -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총독 벨릭스가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바울에게 예수 믿는 도를 듣고 두려워하면서도, 뇌물을 바라고 수시로 그를 부릅니다. 2년 후 부임한 총독 베스도가 예루살렘을 방문하자,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울을 암살하고자 예루살렘에 옮겨 달라 청합니다. 이에 베스도는 가이사랴로 가서 고발하라 합니다.

1. 구원보다 돈을 바라는 총독 벨릭스 (24:24~27절)
우리가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며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하십니다(약 4:8). 그러나 벨릭스는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종교적인 관심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24절). 그러나 '동시에' 바울에게서 뇌물을 받으려는 마음과(26절), 유대인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27절). 벨릭스는 의와 절제와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탐욕과 불의를 곧바로 회개하고 구원 얻는 길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생명보다 현세의 부귀와 권력을 더 가치 있게 여긴 것입니다. 진리를 듣고 따르기로 결단해야 하는 때는 '지금'이지, 다음번이 아닙니다.
* 벨릭스는 무엇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을까요? 나는 현세적인 것과 영원한 것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지금' 어떤 말씀에 반응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2. 다시 진행되는 음모 (25:1~5절)
악한 세력은 하나님의 사람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벨릭스에 이어 총독으로 세워진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방문하자,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은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을 다시 추진합니다. 2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27절), 악한 생각을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정식 재판에서는 범법 행위의 증거가 없어 바울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지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암살할 속셈으로, 바울을 예루살렘에 보내 달라고 베스도에게 요청합니다. 베스도는 유력자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지는 않고, 그들에게 가이사랴로 가서 바울을 고소하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또다시 바울을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과 신실하심은 사악한 자들의 집요함보다 더 큽니다.
* 의의 본을 보여야 할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어떤 불의한 모습을 보였나요? 공동체 지도자들과 내가 버리고 회개해야 할 죄악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과 말씀만이 아니라, 돈과 세상 명예도 함께 바라는 '두 마음'이 제 안에 있음을 봅니다. 주님이 제 삶의 전부이심을 진실로 고백하며, 주님 향한 순전한 마음을 회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불의한 목적으로 저를 이용하려는 사람에게도 주님을 담대히 알릴 수 있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선한 양심으로 당당한 전도자

[사도행전 24장 10절~23절]
10절 -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절 -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절 -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절 -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절 -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절 -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절 -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절 -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절 -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절 -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절 -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절 -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절 -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절 -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배경 이해하기]
바울은 과격한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혀 고초를 겪습니다. 긴급히 끼어든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의 도움으로 유대인들에게 간증할 기회를 얻었지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끝난 그의 간증은 유대인들의 더 큰 반발을 사게 되어 다시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심문을 받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는 고초가 모두 ‘부활 신앙’ 때문이라 주장했는데 이것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켜 다시 요새에 수감됩니다. 그 밤에 주님은 그가 로마에서도 증언할 것에 대해 확신을 주시며 담대하라고 위로하십니다. 한편 식음을 전폐하고 바울을 죽이겠다는 무리의 음모가 천부장에게 알려집니다. 천부장은 한밤중에 470명의 군사를 동원해 총독 벨릭스가 머무는 가이사랴로 바울을 호송합니다. 이 같은 병력을 동원해 바울을 호송한 것은 이전에 그가 로마 시민인 줄 모르고 재판 전에 매질한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지만,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게 될 때까지 그를 무사히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은 벨릭스 총독, 베스도 총독, 아그립바왕 앞에서 진행되는 재판을 복음을 전할 기회로 여기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에 힘씁니다.    

[관찰과 묵상]
1. 벨릭스 총독 앞에서 고소당한 자신의 죄목들에 대해(5~6절 참조) 바울은 어떻게 변호하나요?(11~20절)

바울은 자신이 성전에서 변론하거나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한 적이 없고,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합니다. 그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심문을 받을 뿐이라며 그 모든 죄목에 대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합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변호사 더둘로를 통해 미결수 신분으로 가이사랴로 호송되어 벨릭스의 재판정에 서게 된 바울을 세 가지의 죄목으로 고발합니다(5~6절). 총독 벨릭스는 노예 출신으로 후에 자유인이 되었다가 유대 총독(AD 52~60년)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로, 부패와 탐욕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정치적 혁명 세력과 관련한 주동자들을 강경하게 진압했는데, 이를 잘 아는 아나니아와 변호사 더둘로는 유대인들을 선동해 소요 사태를 일으켰다는 죄목을 가장 먼저 언급합니다. 바울은 이 주장에 대해 자신이 이스라엘에 돌아온 지 12일밖에 되지 않았고, 결례를 행한 7일과 로마군에 의해 갇혀 있었던 지난 5일을 제외하면 실제로 그가 소요 음모를 꾸밀 시간도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며 누명을 벗고자 합니다. 또한 나사렛 이단 기독교의 괴수라는 죄목에 대해, 자기 역시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무엇보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기에 자신의 신앙이 이단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율법을 무시한다는 유대인의 오해를 풀기 위해 일부러 결례를 행했던 행적을 밝히며 무죄를 주장합니다.   
적용과 나눔
신앙 때문에 겪었거나 겪고 있는 고난은 무엇인가요? 핍박당할 때, 부활 소망이 어떤 영향을 주나요?

바울은 자신이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완벽한 모습으로 설 수는 없습니다. 바울 자신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 안에서 ‘청결한 양심으로’(딤후 1:3)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기에 재판정에서 어떠한 고소를 당하더라도 주저함 없이 맞설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앞길에 박해와 핍박이 예정되어 있다는 예언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그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라며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했기에 어떠한 위협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더욱 자신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 때문에 핍박을 겪을 때 부활의 소망은 신자에게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부활 소망을 지닌 성도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고전 15:58).  

2. 바울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어떻게 도우려 했나요?(17절) 그가 동족 유대인들에게 전하려 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요?(21절)
바울은 가난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성도로부터 여러 차례 연보를 모아 전달했습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자신이 심문받고 있다면서 변론 중에도 동족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힘씁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공회로부터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는 권면을 받고(갈 2:10), 가는 곳마다 가난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구제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AD 57년) 2년 전, 이방 교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헌금(연보)에 동참했고, 바울은 이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웠던 이유는 본래부터 다수를 차지했던 빈민층 신자들과 여러 해에 걸친 기근과 유대교인들의 가혹한 핍박과 차별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방 교회 연보의 주요한 동기는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복음의 빚을 졌기 때문이며, 나눔을 통해 유대 교회와 이방 교회가 화합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바울은 믿는 신자들을 위한 연보뿐 아니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한 불타는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기에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면서도 죽은 자의 부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대인들에 의해 고소당하는 처지에 놓였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도를 가르치는 바울을 시기했기 때문입니다.   
적용과 나눔
선한 동기로 도움을 주었다가 억울하게 비난을 당한 적이 있나요? 그런 때를 어떻게 복음 전파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나누어 보세요.

예루살렘에 온 바울은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연보를 가져왔고, 또 동족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선한 의도로 행했으며, 항상 하나님과 사람에게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행했지만,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비방하며 고발하고 심지어 죽이려 했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배은망덕한 일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결국 AD 70년에 예루살렘으로 침공해 온 티투스 장군과 로마 군사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상대방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그 선행의 힘과 소망의 근원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어 진리로 이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합니다. 만약 악인이 그 길을 떠나지 않으면 그 선행은 그들 머리 위에 숯불을 쌓는 것과 같아서 결국 하나님의 공의는 실현되고 선행자의 억울함은 신원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관되게 선을 행해야 합니다.


* 부활 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어떤 핍박도 견뎌 내게 합니다. 바울은 확고한 부활 신앙을 소유한 자로서 항상 양심에 거리낌 없이 행했기에 유대인들의 공회에서도, 벨릭스 총독의 법정에서도 조금도 주저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믿음을 전합니다. 선을 행하다 고발당할 때 억울한 마음이 앞설 수 있지만, 바울은 이를 고위 관리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는 성숙함을 보입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활 신앙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비록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한결같이 선을 행할 때,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대역전 드라마의 좋은 도구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
언제 어디서든 양심에 거리낌 없이 행함으로 복음의 문을 막지 않게 하소서. 때로 제가 베푼 선이 악으로 돌아올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선을 행하며, 오직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양심에 거리낌 없는 삶, 담대한 복음 전도

[사도행전 24장 10절~23절]
10절 -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절 -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절 -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절 -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절 -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절 -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절 -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절 -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절 -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절 -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절 -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절 -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절 -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절 -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바울이 자신은 고발자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동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결례를 행했고 소동 없이 성전에 있었으니, 고발자들이 본 것을 증언하게 하라고 총독에게 청합니다. 총독은 천부장이 올 때까지 재판을 연기합니다.

1. 바울의 변론 (10~16절)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진리로 받아들이며,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예수님임을 믿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부활 소망을 지닌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무죄를 논리적으로 입증한 후 신앙을 고백하면서, 자기변호의 기회를 복음 전파의 기회로 삼습니다. 이때 바울은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11절)라고 말하며 총독과의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또한 "그들이 기다리는...소망을 나도 가졌으니"(15절)라는 말로 유대인들과도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이처럼 상대방의 공감을 끌어내며 논리적인 설득과 신앙 고백을 이어 가는 것은, 오해받거나 적대적인 환경에서 복음을 전할 때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양심에 거리낌 없도록 힘쓸 때,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이 힘 있게 전해질 것입니다.
* 바울이 법정에 고발되어 자신을 변호할 때에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언행을 돌아보고, 양심에 거리끼는 부분이 있다면 회개하세요.

2. 진실과 함께 전해진 복음의 핵심 (17~23절)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지만,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입니다(잠 12:19). 법정에서 더둘로는 거짓을 말한 반면, 바울은 진실만 말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제물을 드리고, 유대인들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마련된 구제 헌금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율법 규정에 따라 정결 예식도 행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심문받는 것은 '부활'을 말하기 때문이라며, 복음의 핵심을 다시금 전합니다. 유대인들의 종교를 잘 아는 총독은 바울의 무죄를 인식하고도 최종 판결을 미룹니다. 하지만 그의 호의는 바울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성도는 늘 진실하고 신실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 왜 바울은 법정에서 '부활' 때문에 심문받는다고 말했을까요?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모임에서 내가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가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부활하셔서 지금도 저를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할 때,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성령과 말씀을 좇아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주님이 마련해 주신 복음 전파의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역동적인 복음의 생명력, 복음을 막으려는 악한 세력

[사도행전 24장 1절~9절]
1절 -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절 -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절 -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절 -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절 -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절 -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절 하반부터 8절 상반까지 없음)
7절 - (없음)
8절 -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절 -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대제사장이 장로들과 변호사 더불로와 함께 와서 바울을 고발합니다. 더둘로는 바울에 대해 전염병 같은 자요, 흩어진 유대인들을 소요하게 하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합니다. 성전을 더럽히려 한 그를 잡았으니 심문하라고 요청하자, 유대인들도 이 말이 옳다 합니다.

1. 아첨하는 변호사 더둘로 (1~4절)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킵니다(잠 26:28). 유대 지도자들이 고용한 변호사 더둘로는 바울을 고발하기 전에 먼저, 총독 덕분에 자신들이 태평을 누린다며 아첨합니다. 사실 벨릭스 총독은 유대인들을 혹독하게 대한 포악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도 더둘로가 마치 총독이 선한 통치를 베푼 양 치켜세운 것은 총독의 마음을 녹여 자기들 편으로 만듦으로써 바울을 죽이고자 함입니다. 즉, 자신들이 원하는 재판 결과를 얻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세상 권력 앞에 비굴하게 거짓으로 아부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간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며 정직과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 더둘로는 바울을 고발하기 전에 벨릭스 총독에게 무슨 의도로, 어떤 말을 했나요?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거짓으로 아첨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세요.

2. 모함받는 바울 (5~9절)
악한 세력은 어떻게든 복음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더둘로는 바울이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임을 부각하려고, 자극적인 표현을 써서 바울을 고발합니다. 복음은 '전염병'처럼 전염성이 강하고,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리는 것임을 더둘로는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단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참된 구원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더둘로는 고소인들이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결정적인 이유, 곧 '성전 모독'에 해당하는 거짓 죄목을 마지막에 언급합니다. 이처럼 세상이 아무리 복음 전파자를 모함하며 없애려 해도, 복음의 생명력은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 더둘로는 바울을 어떤 존재라고 고발하나요? 비방과 모함으로 사람을 해치려 하고, 복음 전파를 약화시키려는 세력에 대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아첨과 모함을 일삼는 세상에서 진실을 왜곡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어떤 모욕이나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복음 전파의 선봉에 섰던 바울처럼, 어디서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퍼뜨리는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사명을 이루는 길은 주님 손안에서 안전합니다

[사도행전 23장 23절~35절]
23절 -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절 -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절 -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절 -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절 -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절 -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절 -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절 -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1절 -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절 -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절 -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절 -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절 -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천부장은 바울을 무사히 가이사랴로 보내기 위해 밤에 그를 태울 짐승과 함께 병사 470명을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총독 벨릭스에게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 도착해 총독에게 호송되고, 총독은 고발자들이 올 때까지 그를 헤롯 궁에 두고 지키라 합니다.

1. 바울을 총독에게 호송할 준비 (23~24절)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이 책임지고 지키십니다. 천부장은 로마 시민인 바울을 유대인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자 가이사랴에 보내기로 합니다. 로마 시민에 대한 재판권을 가진 로마 총독 벨릭스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안전히 호송하기 위해 동원된 병사가 무려 470명입니다. 천부장이 거느리는 병력을 절반 가까이 투입한 것입니다. 사실 로마 입장에서 바울은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동원해 그분의 자녀를 보호하시며,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도록 도우십니다.
* 하나님은 바울을 어떻게 보호하셨나요? 여태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도우셨는지 돌아보고, 지금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한 상황을 아뢰세요.

2. 가이사랴에 도착한 편지와 바울 (25~35절)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하게 됩니다. 유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은 없애 버려야 할 존재입니다. 하지만 로마 장교인 천부장의 시각으로 보면 바울은 죽이거나 결박할 죄가 없는 로마 시민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렇기에 천부장은 바울을 총독에게 보내며, 그를 옹호하는 내용의 편지를 전합니다. 성도는 인간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상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편 바울은 밤에 보병과 기병을 비롯한 로마군의 철통같은 호위를 받으며, 암살자들의 위협이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 무사히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총독은 바울이 자신의 관할 구역인 길리기아 출신임을 확인하고, 그를 고발한 사람들이 올 때까지 정식 재판을 미룹니다. 하나님은 사명의 길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는 분입니다.
* 천부장은 로마 총독에게 바울에 대해 어떻게 보고하나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저 사람만 없으면 내가 속 편하게 살 텐데'라고 생각하며 그 대상을 미워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세상에 많은 위험과 공격이 도사리고 있지만, 저를 사명의 길로 안전하게 인도하시려고 많은 사람과 상황을 움직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감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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