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 음성

[사도행전 27장 13절~26절]
13절 -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절 -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절 -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절 -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절 -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절 -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절 -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절 -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1절 -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절 -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절 -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절 -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절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절 -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1.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 일행은 어떤 위기를 겪나요?(13~19절) 그들의 상황은 얼마나 절망적이었나요?(20절)
로마로 가는 배에 탄 바울 일행은 처음에는 순한 남풍으로 인해 순조롭게 항해했으나 얼마 안 가 동북에서 불어오는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바람에 밀려 다닙니다. 선원들은 풍랑으로 인해 짐과 배의 모든 기구를 바다에 버리는 등 사투를 벌입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어 구원의 여망마저 갖지 못합니다.
바울을 호송하는 백부장 율리오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안전한 항해를 자신하며 미항을 출발했지만 곧 무서운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됩니다. 바울은 여행 경험이 많았으므로 대속죄일 금식(레 16:29)이 지난 후 초막절 이후, 즉 늦가을에 역풍을 무릅쓰고 항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성령과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성령의 영감을 받았기에 항해를 강행한다면 큰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 것입니다. 그는 백부장에게 항해를 멈추고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어부가 아니었지만 어부 이상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의 말보다 전문가인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들은 작고 쓸쓸한 미항을 속히 떠나서 번화한 뵈닉스(Phoenix)에 가서 유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만을 믿다가 순풍이 광풍으로 바뀌는 바다 위에서 속수무책의 상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 인생에서 마치 순풍이 역풍으로 변한 것 같은 경험, 혹은 역풍이 순풍으로 변한 것 같은 경험이 있었다면 나누어 보세요.
뵈닉스로 출항하고 처음 얼마 동안은 순한 남풍이 불어 선원들은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바울의 말대로 큰 태풍 유라굴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나침반이 없었으므로 해와 달을 의지해서 항로를 정했는데 태풍으로 인해 하늘은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뒤덮여 버렸습니다. 배는 바람에 밀려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선원들은 배의 손상을 막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이것은 생각지 못한 인생의 폭풍 앞에서 일엽편주처럼 무기력하게 떠다니는 우리의 삶을 보여 줍니다. 선원들은 거룻배가 본체에 부딪혀 깨질까 두려워 거루를 잡아 끌어올리고 줄로 선체를 감아 견고히 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바다의 모래톱인 스르디스를 피하고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배의 짐과 기구를 바다에 버리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인생의 큰 풍랑 앞에서 우리 역시 쓰러지지 않으려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모래톱을 피하려 눈을 부릅뜨지만, 결국에는 많은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주님을 만나지 않습니까?

2. 바울은 사람들을 어떻게 안심시키나요?(22, 26절) 그는 풍랑에서 구원받을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23~25절; 23:11 참조)
바울은 절망에 빠진 일행에게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말씀을 근거로 모두가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한 섬에 걸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을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풍랑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오래 먹지 못해 허기와 절망 속에 놓여 있던 일행에게 바울이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바울은 먼저 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출항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판단하고 권고하는 일에 그들이 따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배에는 손상이 있겠지만 생명은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그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가 알려 준 것입니다. 그 전날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나타나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기에 바울은 반드시 이 풍랑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이 계시에 근거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반드시 배가 어느 한 섬에 걸릴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잃어버린 자들에게 하나님이 계시하신 대로 좋은 소식을 담담히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해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 두렵고 낙심할 때 의지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사람을 말씀으로 세워 준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배에 탄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바울이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목숨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는 확고부동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은 유대인이나 그 어떤 자연의 세력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간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폭풍 속에서도 중심을 지킬 수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들은 계시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두려워하는 이들을 안심시킵니다. 이것은 폭풍 속에서 두려워하던 선원들을 안심시켰던 요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욘 1:12). 자연 환경이 아무리 거세고 무섭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선원들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라고 말씀하셨음을 전합니다. 여기서 ‘주셨다’라는 말은 ‘선물, 은혜’를 뜻하는 말입니다. 선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 일로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유라굴로’(13절)는 ‘동풍’을 의미하는 라틴어 ‘유로스’와 ‘거친 물결’을 의미하는 ‘클뤼돈’의 합성어로서 ‘동북풍’을 뜻합니다. 즉 이곳의 전형적인 지형으로 인해 형성되는 돌풍을 말합니다. 그레데 섬의 한가운데 솟아 있는 2,100미터 높이의 이다 산맥에서 형성된 두 반대 기류가 맞부딪칠 때 일어나는 바람으로 순한 남풍이 이 돌풍과 겹쳐 북풍으로 급변하기 때문에 ‘유라굴로’라고 불립니다. 이 바람에 휩싸이면 배는 방향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표류하다가 결국에는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였습니다. ‘가우다’(16절)는 작은 섬으로서 뵈닉스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거루’(16절)는 구명보트를 뜻하는 것으로 통상 배의 뒤편인 고물에 매달아 끌고 다니지만 태풍을 만날 경우 갑판 위로 끌어 올려야 했습니다. ‘스르디스’(17절)는 아프리카 북단 구레네 해안 가까이에 있는 유사(流砂), 즉 물이 얕은 지점에 산재해 있는 모래 구릉을 가리킵니다. 이 스르디스에 걸린 배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이번 항해가 위험하다고 바울이 경고했지만 백부장과 선장은 항해를 강행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 경험과 지식만 고집할 때 우리는 인생의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결국 바울 일행은 광풍 유라굴로를 만나고, 배에 탄 사람들은 14일 동안 바다와 사투를 벌입니다. 구조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바울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은 풍랑으로 잃지 않을 것이며 바울로 하여금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대로 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만이 소망 없는 이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기
- 사명을 다 이루기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제 생명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 인생의 어려운 문제로 나약해진 사람들을 사랑과 기도로 품고, 그들에게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하는 항해

[사도행전 27장 1절~12절]
1절 -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절 -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절 -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4절 -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절 -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절 -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절 -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절 -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9절 -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절 -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절 -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절 -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과 죄수들을 데리고 이달리야로 떠납니다. 그레데를 지나 미항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항해하기에 위험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이 항해를 말리지만,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 말을 믿고 뵈닉스에서 겨울을 지낼 작정으로 미항을 떠납니다.

●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하는 항해
바울은 복음을 위해 기꺼이 매여 로마로 향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죄수의 모습이지만,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을 온전히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바울은 이번 항해가 배와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항해 결정권자인 백부장은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경험 많은 뱃사람들에게는 바울의 권면이 우습게 들렸을 것입니다. 눈앞의 편의만 생각하며 자기 경험과 지식에 의지한 채, 하나님의 사람이 권면하는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의 여정은 순탄할 수 없습니다.

* 묵상 질문
백부장은 왜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했을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주님의 사람들을 통해 권면하실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바울 같은 그리스도인, 후회 없는 인생

[사도행전 26장 24절~32절]
24절 -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절 -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절 -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절 -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절 -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절 -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절 -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절 -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절 -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베스도는 바울이 학문을 많이 해서 미쳤다고 소리치고, 아그립바는 그가 적은 말로 자신을 권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결박된 것 외에는 다 자신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1. 나와 같이 되기를 (24~29절)
복음이 담긴 바울의 변론을 들은 사람들은 당혹해합니다. 바울 자신도 얼마 전까지 믿지 못해 핍박하던 복음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고, '하나님을 안다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입니다(고전 1:23). 이방인 베스도는 바울이 미쳤다고 평합니다. 들을 귀가 없는 이에게는 '참되고 온전한 말'조차 헛된 말로 들립니다. 한편, 유대 전통에 정통한 아그립바 왕은 적은 말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며 바울을 조롱합니다. 불신하는 마음에는 많은 말이나 적은 말이나 의심스러운 말로 느껴질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소망을 안 바울은 권력자들의 비난 속에서도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응답합니다.
* 묵상 질문
복음을 듣는 모두가 자신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는 바울의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적용 질문
남들에게 나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권할 만한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

2. 무죄하나 석방되지 않음 (30~32절)
바울의 진술이 끝나자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 모두가 바울에게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죄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더라면 풀려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무고한 바울을 고소한 것도, 바울이 공정한 재판을 위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 일입니다. 바울이 당장 석방되지 못한 이면에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이는 바울이 로마로 이송됨으로써 성취될 것입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이 무죄함에도 풀려나지 못한 데에는 어떤 이유들이 있나요?
* 적용 질문
지금 겪는 여러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복음을 전할 때, 거절하거나 비난하는 이들로 인해 실망하지 않고 복음에 귀를 기울이는 단 한 명의 영혼을 생각하며 소망을 갖게 하소서. 한 영혼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기억하며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어둠에서 빛으로

[사도행전 26장 13절~23절]
13절 -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절 -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절 -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절 -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절 -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절 -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절 -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절 -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절 -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절 -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절 -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그때 바울은 해보다 밝은 빛 때문에 땅에 엎드러졌고, 자신을 종과 증인으로 삼아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보낼 것이라는 예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왕에게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 그리스도를 증언한다고 말합니다.

1. 부름받은 바울 (13~18절)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면 잘못된 열심만큼 목적지에서 멀어집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 그렇지만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를 내치지 않으시고 빛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바울의 그릇된 열심으로 핍박받던 분이 바울을 돌이켜 바른 열심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두려움에 엎드러진 바울에게 예수님은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라고 명하시며 그를 새롭게 하십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서 바른 방향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종과 증인이 됩니다. 주님은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이끌어 내어 사명자로 새롭게 세우십니다.
* 묵상 질문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바울을 예수님이 그분의 증인으로 삼으신 것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 적용 질문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2. 왕 앞에 선포된 복음 (19~23절)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의 신앙을 당당히 말합니다. 하늘의 증거를 받았기에 예수님에 대해 조금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대와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께 돌아와 합당한 삶을 살라고 권했습니다. 이런 변화 때문에 바울은 갖은 위협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참소망 곧 선지자들과 모세가 되리라 한 대로 그리스도의고난과 부활이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빛이 됨을 깨달았기에, 어떤 위협도 장애로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열심으로 주님을 대적했던 바울이 이제 참소망의 사람이 되어,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사명자의 길을 걷습니다.
* 묵상 질문
하늘에서 보이신 대로 주님 뜻에 순종한 바울에게서 어떤 도전을 받나요?
* 적용 질문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20절) 등 바울을 통해 내게 주신 말씀 앞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지금 열심을 다해서 달려가고 있는 이 길이 정말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살필 수 있도록 주님의 빛을 비춰 주소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성령께서 알려 주셔서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고소당해도 고수해야 할 소망

[사도행전 26장 1절~12절]
1절 -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절 -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절 -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절 -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절 -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절 -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절 -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절 -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절 -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절 -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절 -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절 -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유대인의 풍속을 아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은, 바리새인인 자신이 하나님이 유대인의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바라기에 심문받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원래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해 성도를 옥에 가두고 박해했으며 그 일로 다메섹까지 갔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1. 복음을 전하는 바울 (1~7절)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변론을 허락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생명을 다시 얻는 것처럼 기쁜 일입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감사를 표하고 주저 없이 변론합니다. 아그립바 왕이 유대인의 전통에 익숙한 것을 알기에 바울은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접근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핍박받는 이유를 설명할 뿐이지 변호의 기회를 자기 과시나 핑계를 대는 기회로 삼지 않습니다. 도리어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에 대해 언급하며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바울은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보다 복음 선포를 우선시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참소망이 언제나 삶의 최우선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은 자기변호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나요?
* 적용 질문
내 삶에서 어떤 기회를 복음 전할 기회로 삼을 수 있나요?

2. 참소망을 알기 전까지 (8~12절)
바울이 전한 참소망은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 불가능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지 못하고, 특히 십자가에 달린 죄인 예수를 하나님이 인정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이스라엘 조상에게 하신 약속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울 역시 참소망에 대해 알기 전에는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스스로 생각해서 한 일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날 수 있습니다. 참소망에 대해 무지한 채 열심을 내는 사람은 그 열심만큼이나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 묵상 질문
과거 잘못된 행실을 사람들 앞에 또다시 고백하는 바울의 모습(22:3~5 참조)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 적용 질문
내 과거는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받을까요?

오늘의 기도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이 저의 참소망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것, 다시 오신다는 분명한 사실이 제 소망의 이유며 이 소망이 삶의 최우선 가치임을 고백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절박한 상황에도 복음을 전하는 담대함

[사도행전 25장 13절~27절]
13절 -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절 -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절 -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절 -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절 -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절 -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19절 -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20절 -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절 -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절 -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23절 -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24절 -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25절 -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26절 -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27절 -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이 오자 바울에 대해 설명합니다. 즉, 유대인들이 고소한 것과 달리 바울이 악행을 범하지 않았지만, 황제에게 상소했기에 그를 로마로 보내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죄목도 없이 보낼 수 없어 상소할 자료를 찾고자 바울을 아그립바 왕 앞에 세웁니다.

1. 베스도의 술수 (13~22절)
유대 왕 아그립바가 로마 총독 베스도를 방문합니다. 아그립바는 사도 야고보를 죽인 헤롯 아그립바(행 12장)의 아들로, 정치적으로 능란하며 유대 전통에 익숙한 자입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갈등상태에 있었고, 유대에 대해서 실질적이기보다 상징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 권력은 로마 총독이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스도가 아그립바를 불러 상세하게 바울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골치 아픈 문젯거리인 바울을 그에게 떠넘기려는 속셈도 있습니다. 베스도는 자신이 얼마나 정의롭게 재판을 진행해 왔는지 과시합니다. 하지만 재판이 정말 정의로웠다면 바울은 이미 풀려났어야 합니다. 베스도에게는 혐의가 없는 바울을 풀어 줄 만한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스도가 바울을 붙잡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유대 지도자들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묵상 질문

베스도가 아그립바에게 바울을 소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남의 이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고 있거나, 미루고 있는 일이 있나요? 하나님은 그 일들을 어떻게 하길 바라실까요?

 
2. 바울의 변론 (23~27절)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 섭니다. 총독에게 이미 '혐의 없음'을 인정받았지만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다시금 자신이 한 일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바울은 이미 가이사에게 항소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므로 이 변호는 사실상 재판에 그다지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다만 바울을 고발한 자들의 불의를 드러내며, 아그립바 왕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바울은 이방인뿐 아니라 왕들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의로움도 밝혀질 것입니다. 암담한 현실에서도 바울은 복음 선포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활용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어떤 도움을 기대했을까요?

* 적용 질문

이미 좌절하고 절망했지만 다시금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길 기대하며 기도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가 처한 모든 상황마다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게 하시고,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하소서. 오늘 만나는 사람들이 저를 통해 복음을 듣게 하시고 제가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도행전 25장 6절~12절]
6절 -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절 -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절 -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절 -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절 -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절 -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절 -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베스도가 가이사랴에서 바울을 재판합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고소했지만 그 죄에 대한 증거를 대지 못합니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으려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심문받겠는지 묻자,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다며 가이사에게 상소하겠다고 합니다.

 

1. 바울의 무죄 (6~8절)

가이사랴에서 바울에 대한 재판이 다시 열립니다. 이번에는 베스도 총독 앞에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은 여전히 바울의 죄목에 대한 증거를 대지 못합니다. 이는 고소한 자들의 불의를 드러낼 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 대해 전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유대의 종교나 정치적인 면에서 바울을 고소할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심문과 재판이 오랫동안 진행되지만 결국 바울을 고소한 유대인들은 증거를 대지 못합니다. 이는 바울이 무죄하다는 반증입니다. 결백함은 자신이 알고 하나님이 아십니다. 잘못이 없는 사람은 억울한 상황을 당해도 당당할 수 있고, 언젠가는 무고함이 밝혀집니다.

* 묵상 질문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 억울함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바울 (9~12절)

바울에게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환심 얻는 편을 택합니다. 유대인들이 원하는 대로 예루살렘에서 재판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술수를 경험한 바 있지만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가이사에게 상소하겠다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벌을 달게 받겠지만, 죄 없는 상황에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이 바울의 입장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로마 시민권을 백분 활용합니다. 이제 바울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로 바뀝니다. 주님이 바울에게 예고하셨던 대로 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바울이 고난 받는 가운데도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이 로마에 가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가 계획한 일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뜻하지 않게 계획이 바뀌어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때, 당황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기 원합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권세자의 두려움, 갇힌 자의 자유로움

[사도행전 24장 24절~27절]
24절 -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절 -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절 -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절 -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사도행전 25장 1절~5절]
1절 -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절 -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절 -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절 -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절 -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1. 바울은 총독과 그 아내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나요?(24~25절) 총독 벨릭스는 그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나요?(25~26절)
바울은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를 전하고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의 말을 듣고 두려워했으나 회심에 이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마음으로 바울을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바울은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드루실라는 유대인이었기에 바울은 예수님의 생애, 죽으심, 부활에 대해 보다 자세한 유대적 증거들을 가지고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특별한 것은 벨릭스와 드루실라의 삶과 관련된 실제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마도 ‘의’는 벨릭스가 총독으로서 사람들을 잔인하게 압제한 죄와 관련된 주제일 것이며, ‘절제’는 이미 남편이 있던 드루실라를 데려와 결혼했던 그릇된 욕정과 관련된 주제일 것이고, ‘장차 오는 심판’은 불의와 부도덕으로 인해 그들이 받게 될 처벌을 말할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이런 주제로 말씀을 전하자 그들은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은 경건에 이르는 두려움이라기보다 청산되지 않은 죄로 인한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벨릭스는 복음을 들었으나 여전히 뇌물을 바라는 탐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 총독 벨릭스와 죄수인 바울의 태도를 비교해 보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나누어 보세요.
재판을 맡았던 벨릭스 총독은 바울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대개 재판장은 당당하고 죄수는 눈치를 보는 입장에 있기 마련인데, 바울과 벨릭스는 오히려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구금된 죄수인 바울은 오히려 자유로워 보이고, 주권자인 벨릭스는 갈등하며 주저합니다. 바울은 정직하고 담대하게 의를 선포하나, 벨릭스는 바울의 말에 두려워합니다. 죄수인 바울은 돈과 재물에 초연하나, 권력자인 벨릭스는 돈에 연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세상을 이기며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무엇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어떤 신분인지가 그 사람의 능력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부와 권력과 자유를 가졌다고 해서 그 인생의 가치와 의미가 더 커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죽음과 심판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 대한 진정한 자유인과 권세자가 될 수 있고, 죄에 붙잡힌 세상에 참된 구원의 도를 전할 수 있습니다.

2. 벨릭스가 바울을 구류해 둔 이유는 무엇인가요?(27절) 2년 후 베스도가 총독이 되었을 때 바울의 주변 상황은 어떠했나요?(25:1~3)
벨릭스는 2년 동안 바울의 재판을 보류합니다.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에게 정당한 재판을 하지 않고 구류해 둔 것입니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이 되었을 때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지도자들은 바울을 고소하고, 심지어 베스도를 속이고 바울을 암살하려 합니다.
바울의 재판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로 2년 동안 보류되었는데, 이는 벨릭스가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바울을 감옥에 구류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벨릭스는 로마로 떠나면서 자신의 통치에 대해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어떠한 비난도 받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스도가 벨릭스의 뒤를 이어 총독이 되자마자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지도자들은 바울을 또다시 고소합니다. 그뿐 아니라 신임 총독을 속이고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암살하려는 모의까지 꾀합니다. 벨릭스에서 베스도로 총독이 바뀐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단지 2년의 시간만 흘렀을 뿐입니다. 벨릭스는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두려움을 느꼈음에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위해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는 일을 그만두지 못합니다. 그의 세속적인 마음과 삶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2년이 지났지만 바울을 둘러싼 주변에서는 아부, 환심, 고소, 매복, 살해 모의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 벨릭스는 2년간 바울의 말을 들었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최근 2년간 내 삶에서는 어떤 영적 변화와 성장이 있었나요?
사람과 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상태라면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의 도를 듣고 의와 절제와 심판에 관한 엄중한 강론을 들으며 한때 마음에 감동을 받았을지라도, 여전히 돈과 권력에 얽매이고 사람의 환심을 사고 인간적인 술수를 꾀하려 한다면 단지 물리적인 시간과 세속적인 동향만 바뀌었을 뿐 인생의 방향에는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잘살기 위해 정치적이고 기능적인 변화에만 관심을 가질 뿐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어떤 영적인 변화도 없다면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로 알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비록 옥에 갇힌 죄수로서 2년 동안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하나님과 더 친밀히 교제하고 여러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준비하는 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사도행전은 로마 사람인 벨릭스의 아내가 유대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24절). 벨릭스는 왕가의 여자 셋과 결혼을 했는데, 그중 둘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첫째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손녀입니다. 이로써 벨릭스는 안토니우스의 손녀사위가 되는 셈입니다. 셋째 부인이 여기에 등장하는 드루실라로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이자 헤롯 아그립바 2세의 누이입니다. 드루실라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아들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와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에피파네스가 할례를 거부했으므로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드루실라는 14세에 에메사의 왕인 아지즈와 결혼합니다. 그런데 드루실라의 아름다움에 반한 벨릭스는 키프로스 섬의 마술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과 결혼하자고 이 여인을 설득합니다. 드루실라는 남편을 버리고 벨릭스와 결혼합니다. 이 파렴치한 결혼은 결국 유대인들의 기억 속에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지적 호기심에 의해 바울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 의와 절제와 심판에 관한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변화될 마음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그 메시지를 듣기는 거북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이사랴에 구류되어 있는 바울을 실패자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그 2년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권력자인 벨릭스 총독 부부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는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불의하고 부도덕한 삶에 의와 절제와 심판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죄수 신분이었지만 변함없이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소유, 신분, 형편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바울은 자유를 억압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 참된 자유인이었습니다.

함께 기도하기
- 믿음과 의와 절제의 삶을 살도록 날마다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장차 있을 심판을 생각하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소서.
- 세상의 소유와 신분과 형편에 연연하며 살아가는 OOO이(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누구 앞에 서든 거리낌 없는 삶

[사도행전 24장 10절~23절]
10절 -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절 -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절 -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절 -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절 -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절 -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절 -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절 -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절 -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절 -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절 -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절 -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절 -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절 -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바울이 총독에게 변명합니다. 예루살렘에 온 지 12일밖에 안 되었고, 성전에서 변론도 하지 않았으며, 결례를 행했을 뿐 소동 없이 있었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말합니다. 벨릭스는 천부장이 오면 처결하겠다 하고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줍니다.

● 누구 앞에 서든 거리낌 없는 삶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무리를 선동한 적이 없고, 유대인을 소요케 한 것도 아니며, 고발자들이 나사렛 이단이라고 말하는 도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변론합니다. 민족을 구제할 것을 가져오고 성전에서 결례를 행했을 뿐, 성전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변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부활에 대한 소망 때문에 고발당했으며, 종교적인 문제는 로마가 다룰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렇게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 중에도 복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거리낌 없고, 복음 전할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이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고소당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 적용 질문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나는 언제든 복음 전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남을 고발하려다 자신의 불의를 드러냄

[사도행전 24장 1절~9절]
1절 -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절 -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절 -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절 -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절 -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절 -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절 하반부터 8절 상반까지 없음)
7절 - (없음)
8절 -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절 -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충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합니다. 더둘로는 바울이 전염병 같은 자요 이단의 우두머리로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고 성전을 더럽히려 해서 잡았으니, 친히 심문하라고 총독에게 요청합니다. 유대인들도 이 말이 옳다 주장합니다.

1. 아나니아와 더둘로의 고발 (1~4절)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장로들과 변호사 더둘로를 데리고 총독에게 와서 바울을 고발합니다. 바울을 고소하는 자들은 먼저 총독에게 아첨을 아끼지 않습니다. 변호사 더둘로는 유대인들이 평강을 누리는 것은 총독 덕택이라고 칭송합니다. 이런 칭송은 유대인이 가진 믿음의 근간을 흔드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도움과 평강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를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아니라 총독이 자신들을 지켜 준다며 그에게 아첨하는 더둘로는 유대인의 허구적인 믿음을 보여 줍니다. 즉, 이들이 실제 믿고 의지하는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로마 권력이었던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총독에 대한 더둘로의 감사는 무엇을 드러내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때때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2. 고발자들이 말하는 바울의 죄 (5~9절)
더둘로는 총독을 칭송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바울을 비난합니다. 그는 바울을 전염병과 같은 자라고 소개하면서 유대인들을 소요하게 하며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비난합니다. 이는 바울이 로마에 정치적인 위협을 가할 수도 있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것입니다. 더둘로는 바울의 행동이 로마의 평화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전염병, 소요, 이단의 우두머리 등의 단어로 표현합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비난하는 핵심은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이지만, 더둘로는 총독에게 이를 사족처럼 나중에 덧붙일 뿐입니다. 이것은 로마의 입장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본래 의도를 숨기고 본질을 호도함으로써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불의한 모습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전형적인 행위입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고소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신앙 때문에 비난받거나 어려움을 당하나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이라고 드러내는 것을 꺼렸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했던 저를 용서하시고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용기를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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