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신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기적처럼 풀려난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을 재건할 기회를 얻는다. 그들은 성전 기초를 놓고 찬양하고 감사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방해하는 세력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성이 재건되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지만, 하나님은 때를 따라 적절한 지도자를 통해 도우시고 역사를 이루신다.
에스라 한눈에 보기
본문 |
1~2장 |
3~6장 |
7~10장 |
요점 |
1차 포로 귀환 |
성전 재건 |
에스라의 귀환 |
저자 |
에스라. 혹은 역대기를 기록한 저자로 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역대기 결말(대하 36:22~23)과 에스라 서두(1:1~3)가 같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에스라서가 역대기의 세 번째 책, 즉 포로기 후반부터 귀환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조망한 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율법 학자 에스라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나'라는 1인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두 권의 저자 모두 에스라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 ||
기록연대 |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주전 458년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주전 445년 사이에 기록되었거나 그 이후인 주전 440년경에 쓰였다고 보기도 한다. | ||
특징 |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인이 성전을 재건하고 유다에 뿌리내리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고대 사본 중에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한 책으로 묶는 경우가 있을 만큼 두 책이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서로 분리된 문서로 보는 견해가 더 많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 준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의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 이방의 왕(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 유다인 지도자(예수아,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예언자(학개, 스가랴)를 사용하신다. | ||
분류 |
역사서 |
1차 포로 귀환 (1~2장)
느부갓네살(주전 605~562년)에 이르러 전성기를 구가했던 바벨론 제국은 한때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지나 애굽 국경까지 영토를 넓혔던 초강대국이다. 주전 605년 갈그미스 전투는 애굽에 대해서 바벨론 제국이 우위를 차지하는 계기가 된다(렘 46:2). 하지만 시대를 읽지 못하고 바벨론 제국에 반기를 들었던 유다 왕국은 멸망당했고 백성은 포로로 잡혀간다.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다. 제국의 소수 민족에게 관대한 정책을 펼친 고레스는 바벨론에 억류된 포로들이 본토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한다. 당시 유다 백성의 지도자는 세스바살이었다. 그는 유다인 관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소수 민족도 바벨론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관행이었으므로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을 동일 인물로 보는 주장이 우세하다. 두 사람 모두 총독이고(스 5:14; 학 1:1; 2:2), 성전의 기초를 놓았기 때문이다(스 5:16; 학 1:14~15; 슥 4:6~10). 하지만 관리 세스바살과 신망 있는 민족 지도자 스룹바벨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는 세스바살의 지도로 시작된 일이 너무 미비해서 스룹바벨이 전체 과정을 다시 시작했다고 본다.
왜 숫자가 안 맞는가? (2:64)
에스라 2장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목록은 느헤미야(7:6~73)에 나오는 목록과 거의 일치한다. 조상의 기원이 모호한 사람들과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기록된 것이 특이하다. 수많은 종도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왔다. 그런데 에스라에 적힌 42,360명이라는 전체 귀환자 숫자는 어떻게 계산된 것일까? 나와 있는 각 자손의 인원을 더하면 30,000명 미만에 불과하다. 느헤미야에서도 31,000명 정도로 이야기한다. 두 책에서 차이를 보이는 약 12,000명은 여자와 어린아이, 부정하게 여겨진 제사장일 수 있다(스 2:62~63). 하지만 이 차이는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숫자를 표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단순 오류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성전 재건 (3~6장)
제사장 예수아와 지도자 스룹바벨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 재건이라는 대역사를 시작한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제단을 재건해 번제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성전의 기초를 놓는다. 하지만 공사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공사를 방해하는 사건이 몇 왕조에 걸쳐 수시로 일어났는데, 그 내용이 연대순으로 기록되지 않아 살펴보는 데 혼란스럽다. 첫 번째는 고레스 왕 통치기(주전 559~530년)에 일어났다. 이때 이스라엘의 대적이 '도움'을 제안하며, 일의 진척을 방해하려고 한다(4:1~3). 이스라엘이 그들의 위험한 제안을 거절하자 그들은 선전 선동을 감행한다. 일꾼들을 낙심시키고 거짓 정보를 유포한 것이다(4:4). 이 때문에 다리오 왕(주전 521~486년)이 다시 성전 재건을 허락하기까지 공사가 중단된다(4:5).
연대순으로 보면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은 다리오 왕의 재건을 명령하는 5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에스라는 성전 완공 후의 일, 즉 바사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4:6, 주전 485~465년)과 아닥사스다 왕(주전 464~424년) 치하에서 벌어진 방해 사건을 삽입한다. 여기서 대적들은 예루살렘 성의 방어벽 공사를 방해한다. 대적들은 아닥사스다 1세에게 전령을 보내 유다인이 방어벽을 재건하는 것은 바사 제국에 반역하기 위해서라고 고소한다(4:7~16). 왕은 그 내용을 조사한 후 성벽 공사를 중단시킨다. 유다인이 예로부터 '반역'을 행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4:17~21).
에스라 5장은 주전 520년에 성전 건축이 재개된 내용을 담고 있다.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라고 권고하며 예언한다(스 5:1~2; 학 1:1~11; 슥 1장). 이를 막으려는 관리들은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창고를 조사하다가 유다인에게 성전과 성을 재건하라고 허락하는 내용의 고레스 칙령을 발견한 다리오 왕은 성전 재건을 용인했을 뿐만 아니라 비용까지 제공한다(5:1~6:12). 성전은 파괴된 지 거의 70년 만에 완공되고(6:15), 한 달 뒤 이 성전에서 유월절을 기념한다.
새 성전은 솔로몬 성전을 따르고 있지만 지성소는 비어 있었다. 언약궤가 분실되어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옛 성전을 기억하는 노인들은 새 성전에 실망하기도 했지만(학 2:3), 두 번째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보다 훨씬 오래 유지되었다.
에스라의 귀환 (7~10장)
대적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편지를 쓰고 나서 주전 458년부터 다시 공사가 중단되었다. 이때 에스라는 왕에게 나아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고 청한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직계 자손이며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로, 유다인에게 율법을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바벨론에 사는 유다인은 아직 많았다. 에스라는 더 많은 사람을 유다로 돌려보내 도성 공사를 재개하고 치안을 확립하려 한 것이다.
에스라는 아하와 강 가에 유다인을 모아 금식하며 기도한 후 예루살렘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보니 앞서 귀환한 사람들이 이방 족속의 딸들과 결혼하고 그들처럼 살고 있었다. 하나님의 도성이 거룩해지기는커녕 우상 숭배와 가나안의 거짓 신앙으로 타락해 있었다(9:1~4).
에스라는 오랫동안 절실하게 기도한다. 여호와를 떠났던 자들이 회개하며, 백성은 에스라가 권면하는 일을 행하겠다고 서약한다. 이방 아내들을 다 내보내기로 서약한 사람들의 긴 명단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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