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니엘과 계시록
계시록이 묵시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성령의 묵시라고 하는 다니엘과 계시록을 비교해 보면 양자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수 있다. 계시록에 가장 가깝다고 할수 있는 다니엘서와도 차이점이 있다는 것은 계시록은 다른 묵시서와는 다른 의미의 묵시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크리스토퍼 토울랜드는 다니엘과 계시록을 성경의 묵시라는 관점에서 비교했다. 양자는 신적 비밀의 계시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양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점들이 있다. 이 차이점들은 양자가 당시의 묵시 문헌과는 다른 묵시 문헌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양자의 비교를 위해서 다니엘을 개관해 보면 다니엘은 내용면에서 바벨론에 있는 의로운 유대인 다니엘에 대한 이야기들을 두꿈의 해석과 함께 전반부(1-6장)에서 제시하고, 후반부(7-12장)에서는 꿈, 환상 혹은 천사의 선포에 다양한 계시들을 제시하고 있다. 다니엘의 후반부가 본격적인 묵시이다. 계시록은 세부분으로 되어있는데 첫부분(1-3장)은 요한의 환상과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계시를 제시하고, 4장부터 22:5절까지는 요한의 승천에서 받은 계시 즉 대부분 하나님의 인류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다루는 환상을 제시하며, 22:6절이하는 간단한 권면을 제시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토울랜드는 다니엘과 계시록의 내용을 간략하게 분석한 다음 양자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다니엘의 종말론은 계시록의 종말론보다 덜 발전된 것이다. 양자가 부활을 언급하지만(단12:2 ; 계20:12) 다니엘은 최후의 심판과 메시야의 도래와 새로운 시대의 성격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유대적 종말론의 주요부분인 메시야적 재난들을 암시만 한다(단12:1). 계시록은 메시야적 재난들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상징의 사용에 있어서 다니엘(2장의 신상, 7장의 짐승들, 8장의 숫양과 숫염소)은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하는 계시록과 비교도 안된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은 꿈 환상의 일부로 이미지를 사용할 경우마다 심상의 의의에 대한 해석이 붙어있으나, 계시록은 환상과 해석의 구분이 그처럼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17장의 경우만 환상에 대한 천사의 해석이 제시되어 있을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요한이 독자들이 환상들을 미래에 대한 문자적 예언들로 보도록 의도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토울랜드는 요한 당시에는 묵시가들에 의해서 사용한 이미지들의 재고가 너무 잘 알려져있었고 그 정치적, 종교적 암시가 너무도 분명해서 독자들이 다양한 상징들이 전달하는 환상들의 메시지를 어쩌면 알아볼수 있었을 것이다. 계13장의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경우 이미 단7:17에서 그 이미지의 정치적인 의의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구약을 잘아는 독자들은 그것을 놓칠수 없었을 것이다. 다니엘과 계시록의 분명한 차이점은 다니엘은 사실상 모든 유대 묵시와 기독교 문서처럼 가명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니엘은 포로중에 있는 어떤 유대인이 쓴것으로 되어있지만, 지금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이 안티 오커스4세에 의해 예루살렘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B.C.168-165년에 쓰여진 것으로 볼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계시록의 저자는 밧모섬에 투옥된 실명의 인물 요한이라는 것이다(계1:9). 토울랜드는 그렇기때문에 다니엘의 절반을 형성하는 바벨론의 유대인들에 대한 전설들이 계시록에서 유래를 찾을수 없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묵시의 중요한 부분이 될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들은 실제로 계시적 내용을 거의 혹은 전혀 담고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니엘서의 저작 연대에 대한 토울랜드의 입장은 미래 예언성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전제를 깔고있다는 것이므로 받아들일수 없고, 이런 전제에 의한 전설을 운하는 것도 받아들일수 없다. 그러며 보통 묵시 문헌은 저자가 가명인데 계시록은 저자가 실명일까? 계시록이 묵시 문헌으로써 저자의 실명을 명기한 이유는 유대 기독교는 말세가 이미왔고 그 증거로 성령이 임했다(욜2:28 ; 행2:17)는 확신을 체험했기 때문에 성령이 없는 시대에 가명을 통한 권위 부여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다니엘과 계시록에는 부활 역사와 파노라마, 절박한 종말 기대, 의인의 신원 등과 공통점이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합하여 양자 전체에 흐르는 사상은 인간이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계시될수 있으며, 그결과 인간은 역사를 전적으로 새로운 빛에 비추어 볼수 있다는 것이다(단2:28 ; 계1:1).

2. 일곱 교회
요한은 일곱이라는 숫자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등). 그 숫자는 본 서에서 대개 완성 혹은 완전을 가리킨다. 여기서는(계1:4,11)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 일곱 교회중 에베소 교회만이 잘 알려져 있다(행19장). 그밖의 행16:14은 두아디라가 루디아로 나타나 있으며, 가오디게아 교회는 골4:15, 16에 언급되어 있다. 나머지 교회들은 신약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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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3장은 본 예언의 중심 대상인 일곱 교회에 대한 주예수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의 처지는 당시 교회의 고난적인 정황을 대변해 준다. 그와 같은 요한에게 주님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계1:19) 기록하여 보내라고 명하셨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 그리스도의 현현과 일곱 교회(계1장)
그리스도는 영광과 권능으로 가득찬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일곱 교회의 이름을 열거하며 계시하시는 것을 써보내라고 하셨다. 과연 주님의 나타나심과 그 모습의 의미는 무엇이며, 일곱 교회란 어떤 상징을 지니고 있는가?
1) 그리스도의 현현과 그 의미
주님은 거룩하심과 절대 권위를 지니신 왕과 대제사장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음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그 모습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또 구원주로서 그리고 심판주로서의 주님의 주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땅에서의 예수는 초라한 목수의 아들로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으나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마28:18) 지니신 분으로 '교회의 머리'로 계심을 역설해 준다. 그 주님은 당시 교회가 밀집해 있는 소아시아의 일곱 지역을 지칭하사 권면과 경계의 말씀을 보내라고 하신다. 그 일곱 교회는 지상의 모든 교회를 상징한다. 일곱 이라는 숫자는 '신성, 완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교회의 영원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당시 교회는 안과 밖으로 위기상황이었다. 과연 예수그리스도는 '살아계시는가'라는 의문을 교회가 던질때였다. 그와 같은때에 주님이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1:18)라고 하면서 성도들이 지닌 주님에 대한 신앙과 소망이 결코 허구가 아님을 재확신시켜 주신 것이다. 현재 이 시대의 교회가 처한 상황도 초대교회 못지않다. 물질 숭배, 정보매체 숭배, 성(性)의 숭배 풍조로 인해 교회는 세속화의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위기의 때에도 주님은 절대 권세를 지니시고 교회를 당신의 귀한 '몸'처럼 지켜주고 인도해 주시고 계심을 알아야할 것이다.

2. 다섯 교회에 대한 책망과 경고(계2:1-7)
요한계시록 2,3장은 일곱 교회에 대한 격려와 칭찬과 책망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더불어 큰 지적과 책망을 들었다. 그와 같은 교회의 과오와 죄는 무엇일까? 그리고 현대 교회에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1)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는 다섯 교회
책망을 들은 교회는 에베소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들이다. 이 교회들은 칭찬과 함께 또는 칭찬없이 주님께 준열한 책망과 경고를 듣게 되었다. 한결같이 어떤 과오를 회개치 않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을 경고받는다. 그런데 이 교회들이 지니고 있는 과오의 공통점은 '처음 신앙의 변질'에 있다. 에베소 교회는 정통성을 강조하다가 십자가의 사랑을 잃어가는 폐단이 있고, 버가모 교회는 복음 진리를 떠나 이단에 빠져있고, 두아디라 교회는 주님대신 우상숭배를 하며, 사데 교회는 온전히 세속화되어 있다. 즉 신앙, 사랑, 순결성이 변질된 교회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앙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거룩성은 교회의 3대 본질이다. 이것들을 상실하는 교회는 교회로써의 본질을 떠난 '단체'가 된다.
2) 큰 개혁이 요구되는 현대교회
그옛날 다섯 교회에 대한 주님의 지적과 경고는 현대교회의 폐단을 지적해 주고 있다. 현대교회는 교권주의, 물량주의, 상업주의 그리고 각양 비성서적인 이단 사이비의 유혹에 물들어 있다. 특히 한국 교회는 교권과 기복주의와 미신적 신비주의에 심히 오염되어 있다. 주님께 대한 순수한 신앙 대신 물질 축복의 조건이 신앙의 근거가 되고, 이웃에 대한 사랑 대신 차가운 냉소와 무관심이 교회를 지배하며, 주님은 외면한체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인본, 세속화되고 있다. 만일 이와 같은 형태와 풍조에서 과감하게 자기 개혁을 행치않는 교회가 있다면 주님께 큰 징계내지는 심판을 받게될 것이다.

3. 두 교회에 대한 칭찬과 언약(계2:8-3:22)
요한에게 현현하신 주님은 교회에 대해 책망만 하지 않으셨다. 위로와 칭찬과 축복의 언약을 주신 두교회가 있다.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이다. 우리 교회들은 그 두교회를 본받아야 한다. 그 두교회의 실상과 받을 축복을 생각해 보자.
1) 신앙의 정절을 지킨 교회들임
서머나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즉 궁핍하고 적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정절과 사명에 대한 충성심을 지켰다는 점이다. 서머나 교회는 유다 교인들에게 핍박을 당해 교회 형편이 매우 '궁핍'(계2:9)했음에도 그들과 타협을 하지않고 신앙을 지켰다. 빌라델비아 교회 역시 '적은 능력'(계1:8)을 지닌 소교회였음에도 신앙의 정절과 의무를 지켰다. 이 두교회는 다른 다섯 교회와는 달리 주님의 복음 진리와 가르침에 굳게 뿌리를 박고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극복하고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있는 참된 교회의 유형인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교회들임
주님은 궁핍가운데 정절을 지킨 서머나 교회에서 '생명의 면류관'(계2:10)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2:11)고도 하셨다. 그 다음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대적자들을 정복하는 축복과 천국 성전의 '기둥'이 되게하는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계3:9-11). 교회사는 이 두교회와 같은 참된 교회를 통해 발전해 왔다. 제국들의 핍박과 이단 사설의 유혹에도 굴하지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교회들이 있기에 교회가 로마를 정복하고 세계의 진리의 전당으로 인류에게 인식된 것이다. 이와 같이 칭찬받은 교회는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에 굴복치 않으려면 십자가의 수모와 소외와 고난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은 외적으로 평안하고, 풍성한 길을 축복의 길로 여기고 있다. 자연히 그리스도의 분신으로서의 자리를 이탈할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교회는 이땅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뿐임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일곱 교회에 대한 주님의 뜻과 교훈을 살펴봤다. 신앙의 본질, 교회의 의무를 저버린 교회와 그 무엇에도 현혹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지킨 교회가 있음을 보았다. 이내용은 그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지상 교회의 영원한 현실이다. 이 두가지 교회중 우리는 어떤 교회에 속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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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골라와 니골라당
1) 집사 니골라
니골라는 일곱명의 집사 중에 마지막으로 언급된 인물이다. 니골라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신약에 두번 나타나고 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니골라는 안디옥 지방 출신으로 개종자였으며, 헬라주의자였다. 당시 헬레주의자와 팔레스틴 기독교인과 차이점은 먼저 율법의 해석이 다르다는 점이다. 즉 헬라주의자들은 정결 규례를 강조 하였다. 또하나는 마지막 심판때에 구원관에 대해 헬라주의자들은 보편구제설(Universalism)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니골라 역시 헬라주의적 특성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율법에 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고를 취하였다. 결혼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그리스도인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 자신도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 자신도 결혼을 포기하고 살았다. 또한 그는 금욕주의자들의 교부였다. 이런 니골라의 금욕주의 사상이 니골라당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분명치 않다. 다만 니골라당이 니골라의 금욕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2) 니골라당
니골라당은 요한으로부터 정죄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에서 사역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이름이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두아디라 교회에서 우상 숭배와 부도적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곳에도 니골라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이라는 여선지자가 그리스도의 종들을 가르치는 것이 허락되었다. 하여튼 니골라당은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우상 숭배와 부도덕에 빠지도록 한 것처럼(민25:1,2 ; 민31:16)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과 이간시키려는 이단이었다. 이들의 특징은 1세기말 영지주의와 유사하다. 일부 학자들은 조심스럽게 니골라당이 니골라로부터 그 시발점을 찾을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2. 메시야에 관한 사상
1) 구약성경에 나타난 메시야관
구약성경에서 통일된 메시야관을 지적하기란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 생활 이전까지는 현세적인 왕으로 메시야를 이해하였다. 그러나 포로 생활 이후에 개인의 회개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조건이 되면서부터 개인적인, 영적인 사상 위에 메시야관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메시야에 관한 구체적인 것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 신약에 나타난 메시야관
당시 유대인의 메시야관과 직접 오신 메시야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 권력을 가지고 로마의 지배로부터 구원하여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그런 메시야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고난의 종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만민의 구주가 되셨다.
3) 요한의 메시야 사상
요한은 메시야를 대속 제물의 어린양,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계5:5), 만왕의 왕, 만유의 주(계19:16)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요한은 계시록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사역과 신분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는 대속 사역에 메시야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부활과 영원한 성도의 인도를(계14:4)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의 이같은 메시야 사상은 사랑에 토대를 두고 있다. 결국 구약에 언급된 메시야 사상이 '하나님 능력'에 의한 것이라면, 신약은 대속의 희생 즉 사랑으로 요약하고 있다.

3. 요한계시록과 묵시문학
1) 묵시문학의 유형과 문학적 특징
계시록은 보통 묵시 문학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개 B.C.200~.A.D.100년 사이에 저술된 저서들이 이에 속한다. 묵시 문학은 역사적인 현실을 신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일환으로 생겨났다. 따라서 묵시 문학의 유형은 기본적인 요소에 따라 분류된다. 먼저 종말론적인 것이다. 즉 모든 것을 멸하기 위한 미래의 어떤 일정한 기간을 다룬다. 둘째는 이원론적이다. 즉 하나님과 사단의 존재이다. 그리고 묵시 문학은 이미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진다는 것이다. 결국 신학적, 역사적, 철학적 유형을 띠고 있다고 할수 있다.
2) 계시록과 묵시문학의 차이점
계시록은 구약의 묵시 문학인 다니엘서와 병행하여 신약의 묵시 문학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계시록은 묵시로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즉 익명성의 여부 문제이다. 또한 묵시자들은 현세를 비관적이며 부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반면 요한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사단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구속사적인 것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요한은 현세의 도덕적 위기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진리를 들어 선포하고 있기때문에 묵시 문학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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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계시록은 인류에게 계시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마지막 책이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기록한 성경이 계시록으로 끝이 장식된 것은 매우 타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이땅의 역사와는 달리 영원무궁하기 때문이며 계시록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가 저 '새하늘과 새땅'에서 새롭게 시행될 것을 내다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당하는 성도들의 현세계와 영광과 기쁨이 넘치는 영원한 천국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 성도의 위로서요, 방향표요, 영혼의 보호자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배경과 명칭
1) 배경
계시록은 성경의 묵시 문학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들어있는 한책인 동시에 묵시 문학의 완결편이라고 할수 있다.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교회는 심한 무기력증과 의구심의 침체에 빠져있던 때였다. 사도들은 거의 소천했으며 그들이 강조하던 주님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또 로마 제국의 박해도 점차 드세지기 시작하여 교회는 위기의 상황에 처하게 된것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성도들의 신앙도 회의감과 무력감 그리고 위기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배교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상황적 배경은 계시록의 저자인 사도 요한의 밧모섬 유배가 단적으로 대변해 준다.
그래서 요한은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계1:9)라고 서두에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여러가지로 위기에 처한 교회에 힘과 비전 그리고 경계를 주기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책이다.
2) 명칭
본 서는 계시록(The Revelation)또는 묵시록(The Apocalypse)으로 명명된다. 그뜻은 '비밀을 드러내는 책' 또는 '가린 것을 드러내는 책'이라는 뜻이다. 헬라어로 기록된 사본에는 요한의 계시록이라는 표제가 붙어있으며 NKJV(New King James Version) 예수그리스도의 계시(The evelation of jesus Christ)로 번역되어 있다. 이와 같은 명칭으로 계시록이 온교회에 신약성경의 마지막 정경으로 인정된때는 A.D.397년 제3차 카르타고 회의때이다.

3.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계시록의 저자 문제는 그 기록 연대와 맞물려 무수한 이론이 있다. A.D.3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로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의 저자는 12사도중 한사람인 요한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요한복음서와 계시록간의 문체가 다른 점, 그 신학적인 내용의 차이점을 비롯해 심지어는 사도 요한이 그처럼 장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론으로 계시록의 저자는 후대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많은 이설 가운데 계시록의 저자가 사도 요한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줄만한 내용은 없다. 우리는 본 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연로한 장로요, 사도인 요한이 그 저자임을 믿을수 밖에 없다.
2) 기록 연대
크게 몇가지 이설이 있다. 네로 황제의 후기 통치 시대(A.D.54-58), 예루살렘 멸망 직전(A.D.70년경), 베스파시안 황제 통치시기(A.D.69-79), 도미티안 통치 말엽(A.D.81-96) 등으로 본다. 어떤 이들은 더나아가 주후 3세기경에 쓰여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레니우스, 오리겐, 유세비우스와 같은 2,3세기경의 학자들은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가 도미티안이 죽은후 에베소 교회로 귀환되었을때 쓴 것으로 인정한다. 즉 주후1세기후반에 계시록이 쓰여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4. 기록 목적과 특징

1) 기록 목적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계시록이 기록된 시대적 배경은 '교회의 위기'시대였다. 재림의 지연, 로마 제국의 박해, 이단의 창궐, 유대교의 위협 그리고 세계적으로 강요되는 로마 황제 숭배, 종교는 교회의 존립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성도들에게 위로와 경계를 주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언약과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패배할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분명히 주어질 것이므로 믿음과 인내로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께 충성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제1:3)고 서두에 강조한다. 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인 셈이다.
2) 특징
계시록은 영적인 상징과 부호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칼빈 같은 신학자는 '난해한 미신적인 책'이라고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어떤 인물이나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힐수 없었던 상황과 하나님의 영적인 섭리를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수 없는 한계성 등을 생각해 볼때 계시록의 특징이 상징적임은 당연하다. 다만 그와 같은 상징들 어간에 '회개하라, 성령의 말씀을 들으라, 내가 속히 임하리라'는 메시지는 계시록이 강조하는 궁극적인 교훈이다.
계시록은 분명히 해석하기가 난해한 책이다. 그래서 이단 사이비 종교의 경전처럼 악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계시록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예언서처럼 흥미거리로 읽어서는 온당치 않다. 이 불의와 사망 권세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천국의 소망과 위로 가운데 의와 거룩함으로 악에게 승리하려는 성도들에게 계시록은 한없이 귀한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이 될것이다.

5. 내용 개관
Ⅰ. 서론 및 일곱 교회에 대한 권면(1-3장)
Ⅱ. 일곱 인과 인맞은 성도들(4-9장)
Ⅲ. 재림 직전의 일곱 징조들(10-13장)
Ⅳ. 재림 직전의 일곱 재앙들(14-16장)
Ⅴ. 재림 직전의 멸망당할 일곱 것들(17-19장)
Ⅵ. 영원한 멸망과 천년왕국(20장)
Ⅶ. 영원한 천국의 내용(21,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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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기도 목사)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14절 -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절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절 -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절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절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절 -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절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절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절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서 끌어 주신다.
* 신앙생활의 착각 -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아닌 나의 뜻과 생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1) 교만했기 때문에 착각한다.
  2) 자기 자신을 몰라서 착각한다.
    - (15~16절) 토하여 버리라 = 쓸모가 없다.
    - 하나님께 쓰임받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

 
* 주님의 권면 (18절)
  1)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 정결한 믿음, 정금같은 믿음
  2)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라 - 의의 옷을 입어 거룩하여라.
  3)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 -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통찰력

 
* 결론 (20~21절)
내 속에 주님을 모셔라.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
  1) 열심을 내라
  2) 회개하라

제목 : 네 앞에 열린 문을 두드리라 (피종진 목사)

 

[요한계시록 3장 7절~9절]

7절 -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절 -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절 -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열린문을 앞에 놓으신 이유
1. 하나님 말씀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8절)
  - 하나님의 손안에서 이끌림을 받자.
  - 하나님의 말씀위에 선 사람 =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 항상 주님께 손을 내밀라, 항상 주님을 의지해라, 항상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라.


2. 거짓된 사탄을 발 앞에 굴복시키기 위해 (9절)
  - 마귀를 대적하라. - 사탄이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 베드로전서5: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라. - 기도를 쉬지마라.

    → 마가복음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3.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자가 되게 하기 위해 (12절)

  - 요한계시록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기둥 = 일꾼
  -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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