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표적

[요한복음 2장 1절~12절]
1절 -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절 -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절 -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절 -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절 -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절 -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절 -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절 -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절 -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절 -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예수 그리스도
2절 : 가나에서 혼례가 있어 잔치에 초대받음
4절 : 표적을 행할 때가 아니라고 하심
5절 : 말씀대로 순종하면 이뤄 주시는 분
7절 : 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하신 분
8절 : 연회장에게 갖다 주길 명하신 분
9절 :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분
11절 : 표적으로 영광을 나타내신 분 / 제자들이 믿고 따른 분

* 도움말
1. 여자여(4절) : 존경과 애정이 담긴 호칭이기는 하지만, 아들이 어머니에게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마리아와의 새로운 관계를 암시하고자 하신 것 같다.
2. 표적(11절) : 헬라어로 ‘세메이온’이다. 요한복음에서는 항상 예수의 기적과 이적을 가리켜 ‘징조’(sign)라고 부른다. 기적이 놀라운 사건 자체를 가리킨다면, 표적은 그 기적이 갖고 있는 ‘목적’ 또는 ‘의미’를 가리킨다.

* 말씀묵상
1. 예수님의 첫 표적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의 부탁에 의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하시기에 앞서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말씀하십니다(4절). 4절의 “내 때”는 보통 수난의 때로서 표적을 통하여 그의 메시야성이 나타날 때를 말합니다. 또한 고난을 통해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으셨지만 가나에서 열린 혼례 잔치에서 첫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믿음과 하인들의 무조건적인 순종으로 인해 일어난 표적이었습니다.

2. 새 시대의 기쁨
유대의 속담 중에는 장차 메시야가 도래하면 풍성한 포도주가 흘러 넘칠 것이라는 속담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묵시문학적인 예언들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욜 3:18; 암 9:13). 여섯 개의 돌항아리 속에 담겨 있던 물은 정결수로서 유대인들도 지키기 힘든 형식적인 예식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물을 새 포도주로 변화시키셔서 모든 사람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천국 잔치의 실상을 미리 누리는 것이며, 이 땅 위에 율법의 시대가 가고 새 시대의 자유와 충만한 기쁨이 왔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체험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포도주의 기쁨을 선물하심으로써 아버지의 놀라운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란 사실을 예수님께 알린 사람은 누구입니까?(3절)
* 깊은 묵상
1. 당신은 예수님께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하고 있습니까?
2. 우리의 삶에 진정한 축제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구해야 하며, 그때 필요한 태도는 무엇입니까?
* 적용 기도
제게 기쁨을 충만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당황하지 않고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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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심

[요한복음 1장 43절~51절]
43절 -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절 -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절 -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절 -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절 -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절 -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절 -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절 -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예수 그리스도
43절 : 갈릴리로 나가심 / 빌립을 제자로 부르심
45절 : 율법에 기록된 분 / 선지자들이 기록한 분 / 요셉의 아들 / 나사렛 사람
47절 : 사람의 깊은 속까지 아시는 분
49절 : 하나님의 아들 / 이스라엘의 임금
51절 : 나다나엘에게 예언하신 분 / 인자

* 도움말
1. 나를 따르라(43절) : ‘나를 따라 오너라’와 ‘나를 본 받으라’의 의미가 동시에 들어 있다.
2.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46절) :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지 못하리라’(요 7:41, 52)는 것은 그 당시의 전통적인 생각이었고, 모든 갈릴리 사람들은 그들의 교양 부족과 멋없는 사투리와 이방인과의 교제 때문에 멸시되고 있었다. 나사렛은 갈릴리의 한 촌으로 다른 고을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았던 것 같다.

* 말씀묵상
1. 직접 와서 그분을 만나보라
빌립은 나다나엘을 만나 율법책에 기록된 그리스도를 설명해 보려고 했지만 ‘비천한 지역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나다나엘의 선입견에 부딪히게 됩니다(46절). 그러나 빌립은 나다나엘을 초청하여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직접 만나볼 수 있게 했습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은 나다나엘의 진실성을 보시고는 그가 참 이스라엘 사람임을 말씀하셨습니다(47절). 나다나엘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던 자신을 이미 보고 계셨던 것을 알게 되자 곧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임을 고백합니다(48-49절).

2. 조용히 주님께 나아가라
만약 우리가 주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 앞에 선다면 우리의 폐부까지 살피시고 마음 속을 모두 꿰뚫어보시는 주님 앞에 엎드러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는 감추어진 모든 것이 드러나고 정확하게 판단받습니다. 주님은 나다나엘의 무화과나무 아래에서의 은밀한 모습까지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묵상과 은밀한 기도의 내용까지도 보시며 그것을 기억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의 소망과 기다림, 고민 등 그 모든 것을 알고 해답의 열쇠를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부르시는 자리로 나아가기만 하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큰 일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빌립은 나다나엘을 어떻게 전도했습니까?(45-46절)
* 깊은 묵상
1. 신앙 생활의 장애물 중에 편견과 선입견은 성장을 방해합니다. 당신이 버려야 할 신앙의 편견은 무엇입니까?
2. 전도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보고, 그를 위해 기도할 제목도 정리해 보십시오.
* 적용 기도
제 마음 속 깊은 생각까지도 모두 아시는 주님께 지금 나아갑니다. 잘못된 생각은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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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찾는 이유

[요한복음 1장 35절~42절]
35절 -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절 -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절 -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절 -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절 -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절 -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절 -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 주제별 목록 작성 
두 제자
36절 : 요한의 제자 중 두 사람
37절 : 요한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따름
38절 : 무엇을 구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예수님이 계신 곳을 물음
39절 :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서 함께 거함
40절 : 한 사람의 이름은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임
41절 : 형제 시몬에게 메시야를 만났음을 증거함
42절 : 시몬을 데리고 예수께로 옴

* 도움말
1. 열시(39절) : 지금의 오후 4시에 해당하며, 손님을 만찬에 초청하는 시간이다.
2. 게바(42절) : 게바를 번역한 헬라어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이다. 주님은 한 어부의 마음 속을 깊이 응시하시고, 그가 장차 교회의 반석이 될 것을 예언하셨다.

* 말씀묵상
1. 예수 그리스도와의 감격적인 만남
예수님께서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요한의 제자들은 ‘무엇’을 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처를 알기 원했습니다(38절). 예수님을 알기 원했던 그들의 열망과 노력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감격적인 결과를 얻어냈고, 그것은 곧 복음 전파로 이어졌습니다(41절). 이제 예수님을 따르게 된 안드레는 그의 형제 시몬 베드로를 찾아가 메시야를 만난 경이로움과 기쁨을 전하며 그를 예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이미 시몬을 알고 계셨던 주님은 시몬에게 장차 “게바(반석)라 하리라”고 하시며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가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

2. 그리스도와 함께함을 구함
예수님께서 어디에 머무르시는지, 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아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와 함께 거하는 자, 그와의 사귐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리스도는 자신의 비밀을 계시해 주십니다. 진정한 제자는 스승과의 오랜 교제를 통해 깨달음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자신의 문제 해결이나 명예 혹은 권력이나 부를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분명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가장 귀히 여기고 그를 기뻐하는 자라야 하나님나라의 영광스러운 직무가 주어질 것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요한의 제자 중 두 사람을 언급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36-42절).
2. 두 제자가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입니까?(38-39절)
* 깊은 묵상
1.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새로운 이름과 그에 따른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 당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까?
2. 당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결단해야 할 문제들은 무엇입니까?
* 적용 기도
예수님과 함께하기를 간절히 원하며 주님을 전하는 것을 기뻐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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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고백

[요한복음 1장 28절~34절]
28절 -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29절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절 -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절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절 -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절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절 -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예수 그리스도
29절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31절 : 요한이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는 자
32절 :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무름
33절 :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
34절 :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요한이 증언한 자

* 도움말
1. 하나님의 어린 양(29절) : 하나님께서 친히 인류의 속죄 제물로 준비하신 존재.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사 53:7).
2.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33절) : 세례 요한이 다른 사람들보다 탁월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를 아는 길은 성령의 역사밖에 없다.

* 말씀묵상
1. 성령의 역사
요한은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는 것이었습니다(33절).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열어 보이신 사건입니다. 요한은 성령님의 감화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세례받으러 오실 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절)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성령의 확증
비둘기는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령을 보여 주시기 위한 하나의 상징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분별할 수 있는 방법으로 행하셔서 우리를 무지에서 앎으로 인도하시며 은혜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깨달음과 확신을 위해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33절).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에 있어서 진리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혼란만을 더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성령께서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 거하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충만한 은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찾아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확신에 찬 증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32-33절)
* 깊은 묵상
1.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2. 당신은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을 잘 분별하며 듣고 있습니까?
* 적용 기도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한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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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요한복음 1장 19절~27절]
19절 -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절 -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절 -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절 -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절 -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절 -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절 -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절 -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절 -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 주제별 목록 작성 
세례 요한
20절 : 그리스도가 아님
21절 : 엘리야도 아님
23절 :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26절 :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

* 도움말
1. 그러면 누구냐(21절) : 요한의 직분을 따지는 것이다. 엘리야는 말라기의 예언(말 4:5)에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말라기에서 예언된 엘리야는 요한을 가리키는 것이 맞았으나, 요한이 부인한 것은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 유대인들의 잘못된 생각에 대해서였다.
2. 세례(25절) : 헬라어로는 ‘밥티조’라는 말로 ‘잠그다’라는 뜻이다. 신약에 와서 ‘씻긴다’ 혹은 ‘씻는다’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나세례를 받기 때문에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가 씻겨지는 것(딛 3:5)이다.

* 말씀묵상
1. 겸손한 증거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2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속국민이라는 부자유한 굴레 때문에 참다운 예배의 기쁨을 잃어버린 채 냉랭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그들의 삶과 영혼을 근원적으로 회복시켜 줄 구세주가 오실 것임을 알리는 진리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제사장과 레위인 조사단을 보내어 요한의 정체에 대해 조사합니다. 세례 요한은 종교적 외식자들을 향하여 솔직한 태도로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20-23절). 그리고 자신은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발끈을 푸는 것조차도 감당치 못할 자라며 종으로서의 겸손함을 나타냈습니다(25-27절).

2.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
광야에서 고독하게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던 요한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위와 권능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취할 수도 있었던 그가 끝까지 흔들림없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을 잊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기 과신과 높아지기 원하는 마음 때문에 우리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또한 효과적인 그리스도의 사역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가치관과 인간적인 명예 그리고 야망에 대한 추구 등 우리의 관심이 개인적인 것에 머물러 있는 한 그리스도의 증거 사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세례 요한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찾아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요한은 세례를 주는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어떻게 대답합니까?(24-27절)
* 깊은 묵상
1. 당신은 요한처럼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선포합니까? 아니면 자신이 더 인정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이용합니까?
2. 당신이 증거하고 싶은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 적용 기도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서 충실한 삶을 살았던 세례 요한의 겸손을 본받기 원합니다. 제 안에 계신 그리스도만 증거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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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빛 되시는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1절~18절]
1절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절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절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절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절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절 -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절 -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절 -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절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절 -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절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절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절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절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절 -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절 -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절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절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예수 그리스도
1절 : 태초에 계신 자 / 하나님과 함께 계신 자
3절 :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자
4절 : 생명이 있는 자
14절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자 / 영광을 보여 주시는 자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자
15절 : 요한이 증언한 자 / 요한의 뒤에 오셨지만 요한보다 먼저 계신 자
18절 : 하나님 아버지 품 속에 있던 자 /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독생자 하나님

* 도움말
1. 참 빛(9절) : 헬라어로는 ‘알레디노스’이다. ‘진정한’, ‘순전한’이라고 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은 불완전한 다른 모든 빛과는 다른 진정한 빛이다.
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12절) : ‘이름’은 히브리 문학에서 그 인물(또는 물건)의 본성이나 성격을 나타내는 모든 요소를 가리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존재, 하신 일을 믿는 것을 말한다.

* 말씀묵상
1. 생명과 빛 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선언은 예수님의 영원성과 신성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성을 잘 보여 줍니다(1-3절). 말씀 안에 생명과 빛이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본질적으로 피조물의 “생명”과 “빛”이 되신다는 것입니다(4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인간 역사에 들어오심으로 세상에는 소망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9절). 그러나 그 빛이 타락한 인간들의 죄악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빛 앞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자신들의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영광의 주님을 인정하지도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10-11절).

2. 은혜와 진리 되신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은혜와 진리”(14절)였습니다. 은혜는 인간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고, 진리는 그의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이며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율법 아래에서는 행위에 따라 축복이 주어지지만, 은혜 아래에서는 값없는 선물로 축복이 주어집니다. 이 은혜와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17절). 왜냐하면 은혜와 진리가 예수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령한 복을 그의 ‘독생자’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18절). 하나님의 깊은 본성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찾아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12-13절)
* 깊은 묵상
1.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입술로만 고백하고 삶으로는 따르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2. 말씀 속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를 기억하며 감사의 고백을 적어 보십시오.
* 적용 기도
생명과 빛 되시고, 은혜와 진리 되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영접한 자답게 복음에 합당한 삶의 증거를 드러내게 하소서.


제공:프리셉트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망

[요한복음 20장 19절~29절]
19절 -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절 -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절 -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절 -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절 -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절 -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절 -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절 -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절 -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절 -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안식 후 첫날 저녁,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십니다. 또 숨을 내쉬며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하십니다. 이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다가 8일 후에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망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은 안식 후 첫날 저녁에 모였지만, 두려워서 문을 닫아걸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비롯해 황당함, 의심, 불안, 염려, 걱정, 근심, 분노 등 폭풍처럼 몰아닥친 감정으로 어쩔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이들을 찾아오셔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위로 하시고, 스승을 배신하고 도망쳤던 이들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십니다. 또 "성령을 받으라"라고 하시고, 의심하는 제자에게 믿음을 권하십니다.

* 묵상 질문
부활의 예수님이 오셔서 평강을 선포하시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내 마음은 주님의 평강으로 가득한가요? 나를 받으신 주님처럼 용서와 자비로 대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와서 조반을 먹으라

[요한복음 21장 1절~14절]
1절 -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절 -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절 -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절 -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절 -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절 -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절 -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절 -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절 -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절 -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절 -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하려고 마음먹은 일은 무엇입니까?(3절)
그들은 다시 어부가 되려는 결심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비롯해서 도마, 나다나엘,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다른 제자 두 명, 이렇게 모두 일곱 사람은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이 대목은 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장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을 보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왜 디베랴 바다까지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그들이 디베랴로 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부활을 목도한 후 디베랴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후에 예수님이 (다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든 부활을 목도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합니다. 예수님이 어부로 살던 그들을 불러 제자가 되게 하셨는데, 다시 어부가 되려 한 것은 잘못된 판단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이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한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5~6절)
예수님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일러 주심으로서 고기를 많이 잡게 하셨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제자들은 대부분 물고기를 잡는 데 능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가버나움은 로마 당국에서 어업의 중심지로 육성하던 곳이었습니다. 잡은 물고기들을 모으는 곳은 가버나움 옆인 막달라에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은 로마군이 주둔할 정도로 큰 마을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아무나 어업을 할 수 없었고 허가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었기에 그 수가 얼마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베드로나 세배대의 가정은 당국으로부터 인정받은 상당히 유력한 가문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비록 예수님을 따르는 동안 바다를 떠나있기는 했지만, 물가에서 자란 그들의 고기잡이 실력은 여전히 그대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날 밤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일러 주심으로써 그들은 많은 고기를 잡게 됐습니다. 예수님은 바다 속까지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3. 예수님이 고기를 잡고 돌아온 제자들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것은 무엇입니까?(9절)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숯불을 피우시고 떡과 생선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물을 올린 후 육지에 배를 대었습니다. 배에서 내려보니 예수님이 숯불을 피우시고 그 위에 생선과 떡을 준비해 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너무도 아름답고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지친 제자들을 위해 손수 숯불을 피우시고 직접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캠프파이어인 셈입니다. 하긴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손수 씻기실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신 분이니,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겠지요.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참 많았을 것입니다. 그분을 버리고 도망했던 제자들, 그분의 부활을 보았음에도 물고기나 잡으며 살겠다고 떠난 제자들을 꾸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고기잡이로 고단한 제자들에게 사랑의 조반을 먹이셨습니다.

4. 베드로가 바닷가에 서 계신 분이 예수님임을 알았을 때 취한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해 봅시다.
이 때 베드로의 마음은 다른 어떤 제자보다도 복잡했습니다. 물론 베드로뿐 아니라 제자들 모두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가야바의 뜰에서 재판 받으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 후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자신이 다시 그분의 제자로 산다는 것이 염치없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베드로는 다시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그물을 내리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을 것입니다. 아직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닷가에 서 계신 분,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심으로써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신 분이 예수님인 줄 아는 순간, 그의 가슴에는 억제할 수 없는 사랑이 솟구쳤습니다. 처음에 자신을 제자로 부르시던 순간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고기를 잡지 못하던 그에게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참고, 눅 5:1 이하).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억제하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여전히 베드로의 가슴에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남아 있었습니다.

5. 고기를 잡으러 온 베드로의 모습과 예수님께 나아가는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머물러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생각해 봅시다.
고기를 잡으러 가는 베드로의 모습은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는 모습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할 사명으로부터 도망치는 모습입니다. 그로 하여금 뒤로 물러가게 만든 것은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죄책감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수치심을 안겨주어 주님 앞에 서지 못하게 만듭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죄가 많아서 지금은 못 믿어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므로 죄를 가진 채로는 주님 앞에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은 맞습니다. 그러나 죄가 있다고 해서 영원히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죄가 사라집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본래부터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을 깨닫기 위해서요, 씻김 받은 후 우리의 사랑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가 바다로 뛰어든 것을 볼 때,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죄가 있더라도 우리가 머물러야 할 자리는 예수님 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돌아가는 사람, 남는 사람

[요한복음 20장 1절~10절]
1절 -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절 -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절 -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절 -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절 -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절 -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절 -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절 -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절 -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절 -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 안식 후 첫날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달려간 사람은 누구입니까?(1절)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먼저 무덤에 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3일째 되는 새벽, 아직 어두울 때 가장 먼저 그분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이며, 무덤에 찾아갈 수도 없는 날이었습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해 지는 때부터 토요일 해 질 때까지입니다. 그러나 그날은 밤이었으므로 마리아는 그 다음 날(주일)새벽 미명에 무덤에 찾아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야 할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울었으며 그분의 장례식 자리에도 있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무덤에 간 목적은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였습니다(참고, 막 16:1). 마리아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일곱 귀신 들렸던 자신을 고쳐 주시고 새 인생을 살게 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2. 베드로와 또 다른 한 제자가 무덤에서 취한 행동은 무엇입니까?(3~5절)
베드로와 또 한 사람의 제자는 함께 무덤에 갔으나 그 다른 제자가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덤에 들어가지는 않았고,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서 빈 무덤임을 확인했습니다. 그 후에야 다른 제자도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이 빈 것을 확인한 후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모든 제자가 무덤에 가지 않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만이 빈 무덤으로 향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제자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로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 자신입니다. 두 사람은 빈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보다 젊은 요한이 먼저 무덤에 도착했으나 그는 무덤 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두려웠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베드로가 먼저 무덤 안에 들어가 빈 무덤을 확인했고, 그 후에 요한도 따라 들어가 빈 무덤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을 향하여 나가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어떤 때는 누구보다 앞장서기도 하고, 어떤 때는 침체되어 뒤로 처질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두 제자는 예수님의 무덤이 빈 것을 확인했습니다.

3. 빈 무덤을 확인한 후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10절)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빈 무덤을 확인한 제자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주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더구나 시신이 사라지지 못하도록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인 역시 보이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찾아가 확인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평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이 부활하셨을 것이라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않은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빈 무덤을 보고 그냥 집으로 갈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제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마리아보다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라고 해서 그 믿음과 사랑이 반드시 뛰어난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4. 막달라 마리아와 두 제자가 무덤에서 취한 행동을 보면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결코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서 중심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을 제일 많이 사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잡히실 때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녀들은 십자가 아래까지 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거기 있었던 제자는 요한이 유일합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신분과 무관합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새신자보다 믿음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신앙생활의 경륜이나 직분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같은 제자라도 그 마음이 다릅니다. 무덤에 먼저 도착한 것은 요한이지만, 무덤 안에 먼저 들어간 것은 베드로였습니다. 앞장서서 달린 요한이 무덤 입구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베드로가 먼저 들어가는 것과,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보다 먼저 무덤을 찾았던 것을 볼 때,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5. 제자들은 집에 돌아갔는데 마리아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 후에 마리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참조 11~18절), 이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와 요한이 집으로 돌아간 후 막달라 마리아는 혼자 남았습니다. 이 장면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이 빈 것을 보고 정황을 알아볼 생각을 하지않고 돌아간 것도 이상하고, 연약한 여인인 마리아 혼자 남겨두고 간 이유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마리아를 돌려보내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마리아가 남겠다고 할 때 함께 남든지 혹은 한 사람이라도 남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리아만 남겨놓은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제자들도 집으로 돌아가는데 왜 마리아는 무덤에 남아 있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했던 그녀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상황에서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계속 무덤 주위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울고 있던 그녀에게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영광이 제자들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의 몫이 됐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 곁을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 놀라운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출처 : 생명의 삶

사랑한다면

[요한복음 21장 15절~25절]
15절 -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절 -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절 -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절 -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절 -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절 -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절 -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절 -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절 -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말씀 포인트 : 베드로는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똑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사랑을 고백하는 답변을 했을 때, 예수님은 장차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고난도 불사하게 만듭니다. 사랑한다면서 고난을 회피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어떤 고난도 달게 담당해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신 것은 무엇이었으며,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15, 16, 17절)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하실 말씀이 정말 많았을 것입니다. ‘왜 나를 부인했느냐? 왜 나를 떠났느냐?’라는 등 꾸중도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사랑 하나만을 물으시고 신앙 고백도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베드로는 이미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멋진 신앙 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결여된 신앙 고백은 무익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도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없는 구호는 공허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물으셨고, 베드로는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와 주님 사이에 중요한 질문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거룩하냐? 흠이 없으냐? 좋은 일을 얼마나 했느냐?’라는 것을 따져 물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거짓 없는 사랑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참 사랑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2) 베드로의 사랑 고백 후에 예수님께서 그의 미래에 대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18~19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다고 고백한 후에 그의 미래를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라고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그의 팔을 벌려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드려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 고백 다음에 온 것은 죽음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사랑을 고백한 후 우리에게 안락한 것이 올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됩니다. 남녀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진실로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위해 어떤 고난도 달게 받는 게 뒤따라야 합니다. 그게 참 사랑입니다. 고난 없는 사랑은 가짜입니다. 부모도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을 감수하시는 것입니다.

3) 베드로가 요한의 미래에 대해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22절)
베드로는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된 후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20절), 즉 요한의 미래에 대해서도 궁금해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요한의 미래에 대해 물었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냉정해 보이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부질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같은 제자였지만, 야고보 사도는 옥중에서 순교한 반면에, 베드로는 감옥 문이 열려 풀려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 우리를 쓰시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에게 자신의 길(my way)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충실하게 걸어갈 뿐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복음을 위해 살아갈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환경을 보지 말고, 바울처럼 우리의 길을 잘 달려가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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