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 (2:1-10절)
본문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권면을 하고 있다.

1. 일반적인 권면, 즉 디도에게 그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 것을 권함(1)
다른 사람들이 설교하도록 디도가 직분을 수여했다고 해서 그 자신이 설교하는 것을 그만 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디도는 사역자들과 장로들을 돌보는 데에만 그쳤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그들의 의무를 아울러 가르쳐야 했다. 진정한 복음의 교훈은 바른 교훈이다. 그 교훈은 그 자체가 선하고 거룩하며 믿는 자들을 또한 그렇게 만들어 준다.

2. 특별한 권면(2-10)
바울은 2-10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디도가 이 바른 교훈을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용할 것을 가르친다. 사역자들은 설교를 통한 그들의 가르침에 있어서 실제적일 뿐 아니라 개별적이어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행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되 모두에게 그리고 각각에게 그들의 의무를 가르쳐야 한다.
  1) 늙은 남자들에게(2절) : 나이가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모든 일에 있어서 기독교의 교훈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늙은 남자로는 근신하며, 그들은 젊은이들을 권고하며 그들에게 본이 되기 위해서 건강이나 적합한 언행 등 만사에 정도를 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경건하며, 경망은 모두에게 좋지 않는 것이로되 특히 노인에게 더욱 그러하다. 절제하며 믿음에 온전하게 하고, 즉 신실하고 확고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년수가 많이 찬 사람들은 은혜와 선함에 있어서도 가득 차 있어야 하며,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울 수 있어야 한다. 사랑에 온전하게 하고, 이것은 반드시 믿음과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믿음에 의해서 역사하며 믿음에 의해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이 없는 신실한 사랑이어야 한다. 즉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늙은 사람들은 괴팍하기가 쉽다. 따라서 그러한 유약함을 잘 이겨낼 필요가 있다. 믿음, 사랑, 인내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주된 은혜들이며 이러한 것들에 온전케 되면 복음에 거의 온전케 되는 것이다.
  2) 늙은 여자들에게(3절) : 이들도 또한 훈계 받고 경고 받아야 한다. 앞서 언급 했던 늙은 남자들에게 주어진 덕목들(절제, 경건, 근신,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함)은 단지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늙은 여자들에게도 아울러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쪽 성이나 어느 한쪽 부류만을 위해 한 가지의 구원 방법이 있고 다른쪽의 구원을 위해 또 다른 구원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양쪽 모두 다 똑같은 것을 배우고 실행 해야 한다. 즉 덕목들이나 직무들은 공통되는 것이다.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혹은 "사람들이 고백하는 바대로 거룩한 인격에 어울리고 합당하게 행동하며"라고 하겠다. 어떤 것이 거룩함에 어울리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행위의 한도와 법칙이 결정되어진다. 참소치 말며, 이는 이웃의 크고 작은 잘못에 대해 비방하거나 험담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즉 남의 말을 잘하거나 남의 욕을 하거나 친한 친구들을 이간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보기 흉하고 악한 것이나 특히 늙은 여자들에게 있어선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당시의 헬라 사회 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이는 공적인 설교자로서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금해져 있다. 다른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으며 또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은 선한 생활과 본을 보임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행동과 품행에 있어서 거룩한 자들은 그것으로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외에도 그들은 가정에 있을 때든, 사적인 자리에 있을 때든 교훈적인 훈계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늙은 여자들의 일은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것을 위해서 그들은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3) 젊은 여자들에게(4절) : 늙은 여자들은 바로 이들을 가르쳐야 했다. 젊은 여자들에게 여러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늙은 여자들이 하는 것이 때로는 남자들이나 사역자들이 하는 것보다 더 용이한 경우가 있다. 근신하며 순전하며, 이것은 젊은 여자들이 빠지기 쉬운 허영과 경솔함과 상반되는 것이다. "순전과 정숙"은 서로 잘 통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경솔하게 됨으로 치명적인 유혹에 떨어지곤 한다.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이 둘은 또한 서로 잘 통하는 말이다. 집을 나가게 될 경우가 있게 되면 유흥과 사귐을 위해 찾아 헤메는 기질을 지니게 됨으로 뜻하지 않은 악을 행하게 된다. 선하며, 이 말은 일반적으로 모든 악행과 상반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특별한 의미로는 돕기를 좋아하는 것과 자비심이 많은 것을 뜻한다. 이것은 더욱 특별한 의미로는 찌푸리거나 모질게 굴지 않고 온유하며 쾌활한 마음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남편을 사랑하며 또한 복종하게 하라. 진실한 사랑을 갖고 있다면 이것이 곤란한 요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권위가 교회를 다스림같이 남편의 권위가 아내를 다스리도록 정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며 모든 선한 것으로 채우시고 악으로부터 지켜주신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를 돌보아야 하되 갖가지의 해로부터 아내를 지키고 아내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요구되는 것은 노예적인 복종이 아니라 사랑의 예속이라고 하겠다. 또한 자녀를 사랑하며, 이것은 단지 본능적인 애정이 아니라 영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필요한 때 책망과 바르게 하기를 게을리하는 어리석은 사랑이 아니라 자녀들의 삶과 습성을 올바로 세우며 그들의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돌아보는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5절). 신앙이 없는 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새로운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저들에게 있어 나은 점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려 할 것이다. 또한 "이 하나님의 종들에 의거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판단하라. 그리고 그 신자들에 의거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과 종교를 판단하라"고 할 것이다.
  4) 젊은 남자들에게(6절) : 이들은 흥분하거나 열을 내기가 쉽다. 따라서 그들은 참으로 경솔하지 말고 사려깊게 행동하도록 권고받아야 한다. 건방지거나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온순하도록 권고 받아야 한다. 이는 젊은 사람들이 다른 죄보다 교만에 의해 파멸되는 일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5) 디도에게(7,8절) : 바울은 이제 디도 자신에 대해서 몇 가지 지시를 하고 있다. 7절에 보면 그의 생활에 대해 주는 교훈이 있다. 만일 그의 생활이 친히 모범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이 세워 놓은 것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 될 것이다. 선한 교훈과 선한 생활은 서로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범사에,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무엇보다도'로 해석한다. 예를 들면 무엇보다도 특별히 교사 자신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빛과 그 영향력은 서로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사역자들은 반드시 양떼들에게 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마치 그리스도를 따르듯 그들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7,8절을 보면 디도의 생활 뿐 아니라 그의 가르침과 교훈을 위한 것도 찾아볼 수가 있다. 따라서 사역자들이 설교할 때 인간의 지식이나 웅변을 사용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게 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른 말이란 성경적인 진리를 나타내주는 성경의 언어인 것이며, 책망할 것이 없는, 즉 말에 있어서 본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르침과 부합되는 삶으로써 생활에 있어서도 생활이 엄격해야 하며 그들의 가르침이 진지할 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되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방할 기회를 노리는 대적자들은 사역자들의 가르침이나 생활 속에서 어떤 잘못을 찾아내게 된다면 실제로 비방하게 될 것이다. 신실한 사역자들이라면 대적자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이나 생활 가운데서 결점들을 찾거나 지적하려고 애쓰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역자들은 자신들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6) 종들에게(9절) : 종들은 자기들의 세상 주인들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알고 행하여야 하되 오직 하늘에 계신 주를 염두에 두고 하여야 한다. 
    ⑴ 종들의 의무.
      ① 범사에 순종하여, 순종은 종들의 첫 번째 의무이자 특성이다. 종들은 자시들의 뜻을 주인의 뜻에 예속시켜야 하며 자신들의 시간과 수고를 주인의 의사와 명령에 굴복시켜야 한다. 만약 그가 주인이 된다면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종들이 종의 의무를 다해 줄 것이다.
      ② 범사에 기쁘게 하고, 우리는 이 말을 아무런 한계도 없이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든지 아니면 무조건 주인을 기쁘게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여기엔 항상 하나님의 의가 보존되는 한계 안에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만약 주인의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과 상치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종들의 순종의 척도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동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권세에 의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행해져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공민으로서의 예속과 복종에 잘 부합되는 것이다. 종들은 비록 사람을 섬기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들은 비록 사람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들은 그들의 처지에 대해 근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위치 안에서 신실하고 기뻐해야 할 것이며 범사에 자신들의 주인들을 기쁘게 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비록 어렵다 할지라도 할 수 있는 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③ 거스려 말하지 말며,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것을 변명하거나 합리화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을 갑절로 늘이는 것이 된다. 여기서 거스려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때와 상황이 허락되었을 때 부드러운 대답으로 노를 돌이키게 하는 것마저 배제시키는 것은 아니다. 선하고 현명한 주인이라면 기꺼이 그 대답을 들을 것이며 또 옳게 시정하려 할 것이다.
      ④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10절). 정직은 선한 종들에게 있어야 하는 또다른 중요한 본질이다. 종들은 의롭고 진실해야 할뿐 아니라 자신들의 일을 하듯 주인의 일을 해야 한다. 비록 주인이 엄격하고 가혹하게 종들을 대하며 종들에게 충분한 물질을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종들은 떼어 먹지 말아야 하며 도적질함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회복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종들은 훔치거나 낭비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주인의 재산을 늘려 주어야 하며 그 부를 최대로 증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주인의 재산을 증식시키지 못한 종은 그가 비록 착복하거나 잃어버린 것이 없다 할지라도 불충성한 종으로 책망들을 것이다. 
    ⑵ 디도가 이상의 것들을 시행해야 했던 이유: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10절). 만일 사람이 자신들의 의무를 유의해서 잘 실행하게 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고 신앙생활에 대해 좋은 평판을 얻게 될 것이다. 믿지 않는 주인들이 있어 그리스도인인 자신들의 종들이 다른 종들보다 더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진실한 신앙은 그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영예로움이 된다. 또한 그들은 그 신앙에 욕을 돌리는 일을 행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Ⅱ. 바울의 지시의 근거 (2:11-14절)
앞서 촉구된 모든 지시들의 근거가 본문에 나타나고 있다.

1. 복음의 본질과 계획(11-13절)
어떤 류의 사람들이건 저마다의 의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로 서고 행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되는 목적이자 일이기 때문이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 아래 있는 자들이다. 은혜는 선을 행하도록 인도하며 또한 행할 의무를 지운다.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은혜는 헛되이 받은 것이 된다. 
  2) 이 복음의 은혜는 구원을 가져다 준다. 이 사실에서부터 복음은 생명의 말씀으로 불리우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믿음에 이르게 해 주며 따라서 생명에 이르게 해 준다.
  3) 그것은 나타난 바 된 것이다. 옛 율법은 비교적 어둡고 그늘진 것이었다. 그에 반해 복음은 명확하고도 밝은 빛이다. 
  4)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바 된 것이다. 복음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와서 그 은혜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와 구원의 가르침은 모든 계층과 모든 형편의 사람들을(상전들 뿐 아니라 노예나 종들까지도) 다 위한 것이다.
  5) 복음의 계시는 곧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멀리할 것과 따를 것, 피할 것과 행할 것을 가르친다. 복음은 결코 사색을 위한 것이 아니며 실제적인 삶과 바른 삶을 위한 것이다. 
    ①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12절), 이는 곧 경건치 않는 것, 즉 거룩하신 분에 대한 불신앙과 그분을 사랑하지 아니함과 두려워 하지 아니함과 신뢰하지 아니함 그리고 순종하지 아니함을 버려야 한다. 또한 세상 정욕 즉 모든 더러운 욕망과 악한 욕망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가득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 세상적인 음란한 행실은 하늘의 부르심에 합당치 못하다. 
    ②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12절), 신앙은 단지 소극적인 것들로만 되어진 것은 아니다. 악을 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선도 또한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들에 대하여서는 절제와 온화함을 지키면서 근신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몫을 침범하지 아니하며,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여야 한다. 자기 본위는 일종의 불의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신할 뿐만 아니라 의롭게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 경건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경건이 모든 것에 두루 걸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직접적인 의무와 표현이 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완전하심에 대한 믿음과 고백이며, 그분을 의지함 즉 그분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신뢰하는 것이고,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을 찬양하며 그분의 말씀과 사역을 묵상하는 등 그분께 우리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하였던 바대로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에게 나아가는 경건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경건함으로 훈련시켜야 한다. 그것 없이는 결코 복음이 빛날 수 없다. 복음은 우리에게 올바른 믿음과 소망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내세를 기대하는 자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③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13절), 여기서의 소망이란 곧 하늘나라와 그곳에서부터 있게 될 지복(至福)을 소망하는 것을 뜻하므로, 강조해서 저 소망 (한글 개역 성경에는 '저' 가없음-역주)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매우 큰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것이 성취되어질 때, 우리는 영원히 온전한 행복에 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이 성취될 시기와 그것의 확실성, 위대성을 아울러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상징적으로가 아니라 당연하고도 절대적으로 크신 하나님이시며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재림하실 때 그는 자기의 종들에게 보상하실 것이며 그들로 자기와 함께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①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내세에 대한 공통되고도 복스러운 소망이 있다. 소망이란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으로, 곧 우리의 소망으로 불리우시는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있게 되는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하는 적절한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이다. ② 복음의 계획은 바로 이 복스러운 소망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삶을 살도록 하는데 있다.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2,13절), 곧 고용인으로서가 아니라 충성되고 감사하는 그리스도 인으로서 기다리게 하신 것이다. ③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그리스도인들의 그 복스러운 소망은 성취될 것이다. 그때에 크신 하나님 우리 구주의 영광이 태양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복음의 사역과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소망을 바라보아야 하겠다. ④ 구주께서 크신 하나님이 되시며 자신을 영광스럽게 나타내실 것이라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가 되며 기쁨이 된다.

2.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목적(14절)
우리를 거룩케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영역일 뿐 아니라 그의 죽으심의 목적이라고 하겠다.
  1) 구원을 사신 분 : 그분은 크신 하나님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서, 단순히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며 인간으로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신인(神人)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가 인간이셨던 것은 인간을 위해 순종하고 고난받고 죽으시기 위함이었다. 또한 하나님이셨던 것은 인성을 보충하기 위함이었다. 
  2) 구속의 댓가 : 그는 자신을 주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주셨으며 아들 또한 자신을 주셨다. 자신을 제물로 드린 것의 위대성 뿐 아니라 또한 자발적으로 드렸기에 그것은 받으실 만한 것이 된다. 인간의 본성은 제물이며 신성은 제단이고 거룩하게 됨은 은사라고 하겠다.
  3) 우리를 위해 죽으심 : 그는 우리를 위하여, 즉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사랑하지 아니하며 그에게 우리 자신을 굴복시키지 않은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4)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신 목적. 
    ①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함이다. 이것은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버리라'는 첫 번째 교훈과 부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들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주셨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죄를 사랑하고 죄 가운데 사는 것은 구속의 피를 발로 짓밟는 것과 같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잠시 고난 받으신 것이 어떻게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구속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의 인격의 무한하신 존귀성을 통하여 가능하다. 비록 하나님으로서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는 고난 당하신 하나님이셨다. 크신 하나님 우리 구주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하는 것이 그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복된 목적과 열매는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여 주시는 것이었다. 곧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위하여 죽으셨던 것이다.

    ② 또한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두 번째 교훈 즉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사는 것'을 시행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하시기 위해서 뿐 아니라 깨끗케 하시기 위해서 즉 죄와 정죄로부터 자유케 할 뿐 아니라 본성을 치유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 이와 같이 그는 우리를 깨끗케 하심으로 자신의 친 백성이 되게 하신다. 이제 우리는 죄악 가운데 놓여져 있는 세상과는 구별되었다. 죄에서 구속함을 받는 것과 본성이 성화되는 것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 둘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기도 하다.

    ③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은 우리로 선한 일에 열심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친 백성 된 사람들은 선한 일을 행함으로써 뿐 아니라 선한 일에 열심을 냄으로써 친 백성 된 것을 반드시 나타내 보일 수 있어야만 한다.

Ⅲ. 마지막 총괄적인 지시 (2:15절)
바울이 디도에게 보내는 총괄적인 지시에서 우리는 사역자들이 가르쳐야 하는 내용과 방법을 보게 된다.

1. 사역자들이 가르쳐야 할 내용
너는 이것을, 즉 이는 앞에서 언급한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와 의무들, 죄를 멀리할 것,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 것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2. 방법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꼭 있어야 할 복음의 큰 진리와 의무들을 특별히 말하고 권면하며 많은 열심을 가지고 역설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역자들은 하늘의 가르침과 교훈을 전하는데 있어서 그 일이 마치 대수롭지 않는 일인 것처럼 냉담하거나 맥빠져서는 안된다. 열심을 가지고 그 가르침들을 역설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책망하라'고 했다. 이는 받아들여야 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거나 반박하거나 혹은 무시하는 자들을 설득시키고 꾸짖으라는 말이다. '모든 권위로 책망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듯이 하라는 말이다. 사역자들이란 곧 본문에서 꾸짖는 자들이라고 하겠다.

3.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이 말은 곧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역설하라. 엄격함과 신실함으로 죄를 꾸짖으라 그리고 유의해서 네 자신과 네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라 그러면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사역자들이 자신들을 죄에서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며 또한 신중을 기해서 용기를 가지고 자신들의 의무를 행하는 것이다.
비록 디도가 젊지만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되며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의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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