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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끈질긴 과부의 비유 18:1-8
이 비유는 초두에 그 열쇠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위해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1절). 그것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하는 백성이어야함을 전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정기적으로 그에게 기도해야 하며 또한 모든 위급할때에 그에게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끊임없는 일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우리는 기도해야 하되, 그것이 영원히 찬양하는 수준의 기도에 이르기까지 결코 기도하는 일에 물려서는 안된다. 그러나 특별히 본문에서 의도하고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든 혹은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것이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위해 계속적으로 인내하는 것을 가르치는데 있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대적들이나 우리의 정욕, 그리고 우리의 부패에 대하여 강해지고자 기도해야 하며 낙망치 말고 기도하여야 한다. 이는 우리가 헛되이 하나님의 면전을 찾지말아야 하기때문이다.
1. 예수께서 비유로써 끈질김의 힘을 보여주심(1-5)
그는 우리에게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측은히 여기거나 공평한 처사로써가 아니라 끈질김의 힘으로 승소한 한 정당한 주장의 예를 제시해 주신다.
(1) 어떤 도시에 있었던 재판관의 악한 특성 :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였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나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주의도 하지않은채 자기의 의무를 행했다. 즉 그는 경건이나 존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였다. 조물주에 대한 두려움을 내팽개친 자들이 또한 피조물들을 무시한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곳에는 아무런 선도 기대할수 없다. 불신앙과 몰인정이 널리 횡행하게 되면 다른 모든 곳에서도 그렇겠거니와 특히 재판에 있어서 더욱 악하게 된다. 재판관은 자기의 직권으로 선을 행하는 대신에 해를 행할 위험에 빠지게될 것이다.
(2) 한 가난한 과부의 비참한 처지 : 그녀는 틀림없이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법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날마다 그 재판관에게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즉 내 원수에 대하여 나를 공정히 재판하소서 하고 개인적으로 간청을 드렸다. 재판관들은 특별히 과부를 압박하지 말아야 할뿐만 아니라(렘 22:3),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할(사 1:17) 책임이 있다.
(3) 그녀가 자신의 주장을 하는 가운데서 부딪힌 어려움과 낙심 :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지 않으려 하였다. 그는 자신의 평상시의 행위대로 그녀의 주장에 대해서 아무 주목도 하지않았다. 이는 그녀가 그에게 줄 뇌물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호소를 전혀 돌아보고자 하지않았다.
(4)계속해서 그 불의한 재판관을 성가시게 함으로 목적을 달성함 :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5절) 내가 그녀의 주장을 들어주리라. 그리고 그녀가 나를 질리게 하는 부르짖음을 더이상 하지않도록 공정히 행하리라. 이는 그녀가 그것이 해결되기까지 나를 편히 내버려두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를 더이상 번거롭게 만들지 않기위해서 그것을 행할 것이다. 즉 이제 처음으로 선하게 행할 것이다." 이와같이 그녀는 계속해서 간청함으로 공의를 행하게 하였다.
2.예수께서 이것을 기도하는 자에 대한 격려로 적용하심(6-13)
(1)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충분히 자비로우실 것을 역설하신다.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6,7절). 다음 내용을 생각하여 보자.
1)그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 즉 그의 택하신 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그들을 이 세상에서 큰 반대와 환난을 만나게 된다. 즉 많은 대적들이 있게 된다. 바라고 기대되어지는 것이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2)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그들은 '밤낮 그에게 부르짖어야' 한다. 이것이 그가 그들에게 의무로 주신 것이며 그럴때 그는 긍휼을 약속해주셨다. 우리는 이 끈질긴 과부처럼 우리의 영적인 적들에 대항하여 특별히 기도할수 있어야 한다. "주여, 이러한 패단을 극복하게 하소서. 주여, 나로 이러한 시험에 대하여 무장케 하소서." 우리는 압제받고 핍박받는 교회들을 위해서 스스로 염려할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공정히 처리하시기를 위해서 기도할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열정을 가지고 부르짖을수 있어야 하며, 밤낮 부르짖을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기도하는 백성들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여야 한다'(사 62:6,7).
3)그들이 기도하는 중에 어쩌면 직면하게 될 낙심 : 그는 그들에 대해 오래 참으실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가 그 대적자들에 대한 자기 백성의 인내를 시험하시는 것이며 자기 백성의 인내를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4)비록 자비하심이 지체되기는 하나 결국 그것이 있게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만일 이 과부가 끈질김으로 승리할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선택한 자들은 더욱더 그리할수 있을 것이다.
①이 과부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도하는 백성들은 그가 알뿐 아니라 사랑하는 그의 택하신 자들이다.
②그녀는 단지 혼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도하는 백성은 많다. 지상에 있는 성도들은 합치된 기도로 은혜의 보좌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③그녀는 자기를 가까이 하려고 하지않는 재판관에게 갔었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로 담대히 그에게 오도록 명하시는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④그녀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갔었다.
⑤그녀는 순전히 자기 이익을 위하여 재판관에게 나아갔다. 그러나 우리가 간청하는 그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관계하시는 일이다.
⑥그녀는 자기를 위해서 말해줄 아무벗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계신 예언자 즉 그의 아들이 되시며 항상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시는 이를 모시고 있다.
⑦그녀는 위로 받을만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반드시 응답될 것이라는 약속을 가지고 있다.
⑧그녀는 단지 어떤 정해진 시간에만 그 재판관에게 접근할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밤낮, 즉 언제든지 부르짖을수 있다.
⑨그녀의 끈질김은 재판관을 성나게 했다. 그러나 우리의 끈질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효과있게 뜨거운 기도일 경우 우리는 많은 유익이 있을 것으로 바라게 되며 또 그렇게 될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기다리기를 진력내기 시작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넌즈시 암시하신다. 그러나 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절). 그가 오실때 과연 그는 세상에서 믿음을 보실 것인가? 이 물음은 강한 부정을 내포하고 있다. 천만에, 그는 보시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것을 내다보고 계신 것이다.
1)이 말씀은 믿음이 그리스도께서 바라신 가장 큰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그는 무죄가 있겠는가라고 묻지 않으시고 믿음이 있겠는가라고 물으셨다.
2)이 말씀은 만일 아무리 적을지라도 믿음이 있었다면 그는 그것을 보았을 것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3)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오실때 거의 믿음을 보시지 못할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①대체로 그는 선한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하실 것이다. 경건의 모양과 형태를 가진 자는 많겠으나 신실하고 정직한 자, 곧 믿음을 가진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②특별한 것으로, 그는 그의 오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를 거의 보지 못하실 것이다. 그것은 다음 경우들에 한해서 그리스도의 오심이 지체될 수도, 아니 지체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즉 첫째로 악한 사람들이 그것을 무시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의 지체하심이 그들의 악함을 더욱 굳게할 것이다. 둘째로 그의 백성들조차도 그것에 대해서 낙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한때가 오면 믿지않은 자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것은 우리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다.
Ⅱ.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18:9-14
이 비유의 의도 역시 먼저 제시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을 판결하시기 위해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들은 스스로 큰 자만심을 가진 자들이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을 자신들이 바라는만큼 거룩한 자들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자신만만해 했다.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믿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에게 빚을 진 자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였다. 비록 이 이야기에는 비유로 될만한 것이 전혀없지만 이것은 비유로써 불리고 있다. 이같이 이 이야기는 실제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1. 두사람이 같은 시각과 장소에서 기도의 의무를 행함(10)
두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그때는 공적인 기도의 시간이 아니었으며 그들은 개인적인 헌신을 드리고자 그곳에 갔다.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간 그 두사람은 바리새인과 세리였다. 하나님을 경배드리는 자들 가운데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섞여있는 법이다. 바리새인이 스스로에 대해 긍지가 있다고해서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자일 수는 없었으며 세리 또한 천한 자이었으나 기도하는 은혜에서 제외되는 자일 수는 없었다. 바리새인은 성전이 공공 장소였기 때문에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갔던 것이며 따라서 그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에게서 보셨던 특성, 즉 '그들의 모든 선행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즉, 성전에서는 매일 볼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우편 손에 달린 마지막날에는 두렵게도 볼수 없는 많은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은 자신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위해 성전으로 갔으나 세리는 할 일이 있어 갔다. 즉 바리새인은 그의 외모를 나타내기 위해서, 세리는 그의 간구를 위해서 성전에 갔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의향과 의도로 자신을 섬기고 있는가를 보신다.
2. 하나님께 향한 바리새인의 발언(11,12)
그것은 기도가 될수 없었다. 그는 따로 서서 기도하였다. 어떤이는 이것을 그는 혼자 서서 기도하였다라고 읽기도 한다(11,12절). 그는 전적으로 혼자 도취되어 있었으며 단지 자신외에는 하나님의 영광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아무것도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여기서 말하고자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1) 그는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스스로 믿었다. 그가 자신에 대해서 말한 많은 선행들이 사실임을 우리는 추측할수 있을 것이다. 그는 토색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또한 불의한 처사를 행하지 않았다. 즉 그는 누구에게도 아무 잘못도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간음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했다. 이와같이 그는 자기 육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 그렇게해서 그는 세상의 재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받으시지 않으셨다. 그러면 그는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
1) 이상의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감사는 단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는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하지않고 잠간 슬쩍 '하나님이여 감사하나이다'라고 비껴 말했을 뿐이었다.
2) 그는 마치 성전에 온 모든 이유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자기가 얼마나 선한가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기나 한것처럼 위와같은 자랑을 일삼고 있었다.
3) 그가 말한것 가운데에는 기도말이 한마디도 없다. 그는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갔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할 일을 잊어버렸다. 그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은혜도 은총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간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2) 그는 다른 사람을 멸시하였다.
1) 그는 자신외에 모든 사람을 경멸하였다. 즉 그는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인하여 감사할수도 있다. 그러나 마치 단지 우리만 선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못한 것이다.
2) 그는 특별히 이 세리를 경멸하였다. 그는 그가 세리임을 알게되자 아주 가혹하게 그가 토색하는 자이며 불의한 자이고 아주 무가치한 자로 단정지어 버렸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그가 그것에 관해서 논평할 무슨 권한이 있단 말인가? 그가 자기 이웃을 비난하지 않고 기도할수는 없었는가? 따라서 그는 자기 자신의 선을 기뻐한만큼 세리의 악을 기뻐한 것이 되지않는가?
3. 하나님께 드리는 세리의 고백(13)
세리의 고백은 바리새인의 것과는 정반대였다. 즉 바리새인의 기도가 교만과 허세로 가득찼던 것임에 반해 세리의 기도는 겸손과 몸둘바를 모르는 것으로 가득차 있었다. 또한 바리새인의 경우가 스스로 자만했던 것임에 반해 세리의 경우는 죄에 대한 회개와 하나님께 대한 바램으로 가득찼다.
(1) 그는 자신의 처신으로 자기의 회개와 겸손을 보여주었다.
1) 그는 멀리섰다. 세리는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멀리에 섰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께서 당연히 그를 멀리서 보시리라는 것을 인정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가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신 것이 큰 은혜임을 인정하였다.
2) 그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였다.' 그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그의 마음을 드렸으나, 부끄러워 몸둘바를 몰랐으므로 '거룩한 확신과 용기'로써 행하는 행동인 그의 눈을 드는 것은 하지 못하였다. 그의 슬픈 표정은 자신의 죄에 대한 생각으로 그의 마음이 슬퍼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3) 그는 '그의 가슴을 쳤다.' 죄인의 마음이 먼저 회개하는 견책으로 그를 친다. "죄인된 자여,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그런후 그는 회개하는 가책으로 자기의 가슴을 친다. '오, 나는 불쌍한 자로다!'
(2) 그는 자신의 말 가운데서 그것을 나타냈다. 그의 기도는 짧았다. 한숨과 탄식이 그의 말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은 분명하였다. 즉 그것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였다. 응답받은 기도로 기록된 이러한 기도를 드릴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복된 자이겠는가?
1) 그는 자신이 본질상 죄인임을,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죄인임을 부인한다. 그러나 세리는 자신에 대하여 죄인된 것외에 다른 어떤 특질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2) 그는 하나님의 자비외에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았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금식과 십일조의 공로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가련한 세리는 공로에 대한 어떤 생각도 가지지 않은채 자신의 피난처로 자비를 구하고 있다. "공의가 나를 심판하고 있다. 따라서 자비, 오직 자비외에는 아무것도 나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3) 그는 열심히 그 자비의 은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사람이 굶주려 죽게 되었을때 구걸하는 거지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새롭게 된 상태로 이러한 기도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몇번이고 다음의 내용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4. 세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짐(14)
혹 바리새인을 추켜올리고 이 남의 눈을 피하여 눈물짓는 세리를 경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이 가련하고 회개하는 비탄에 잠긴 세리가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고 말씀하신다. 바리새인은 혹 자기들 중 하나가 의롭게 되어진다면 그 사람은 저 자가 아니라 틀림없이 자기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천만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오히려 세리이다." 교만한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거절되어 내어쫓김을 당하였다. 즉 그는 의롭다 하심을 받지못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그가 자신의 눈에 너무 의로운 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리는 죄의 사유하심을 얻었다. 그리고 바리새인이 그를 개처럼도 취급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녀로 대하여 주셨다. 교만한 자들은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며 따라서 그들은 낮아지게 될 것이다. 겸손한 자들은 스스로를 낮추는 자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자들이며 따라서 그들은 높아지게 될 것이다. 죄에 대한 응답으로 어떤 형벌이 있게 되는가를 보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경의를 표하는 자에게 어떤 보상이 있게 되는가를 보라.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또한 악에서 선을 낳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보라. 즉 세리는 큰 죄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큰 죄는 큰 회개를 가져다주었다. 바리새인이 토색하는 자도 불의한 자도 아니었다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마귀는 이것으로 그를 교만하게 만들어 그를 파멸케하였다.
Ⅲ. 어린아이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호의 18:15-17
(1) 그리스도 안에서 복되게 있는 자들은 또한 자신들의 자녀들도 그 안에서 복되게 있기를 바라야 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린아이들을 데려왔다. 어떤이들은 그 아이들이 소아이며 매우 어려서 걸을수도 없는 젖먹이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께 오지 못할만큼 아주 어린아이란 없다.
(2) 그리스도께서 따스히 어루만져 주신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행복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3)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15절).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간청하는 자들이 낙심할만한 일에 부딪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4)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16절).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꾸짖은 많은 사람들을 부르신다.
(5) 어린아이들을 자기에게 오게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생각이셨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또한 곧 그들을 방해하는 일도 결코 하지말라. 이는 그들도 다른이들처럼 환영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들의 자녀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 나라에 속해있다. 마치 자유인의 자녀가 자유인인 것과 같은 것이다.
(7) 어린아이의 기질을 가장 많이 지닌 자들이 그리스도께 가장 환영받는다(17절).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지않는 자'란 곧 자신을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빚진 자로 고백하면서 겸손과 감사로 하나님의 은사를 받지않는 자란 말이다. 만일 사람이 이러한 자기 부정의 상태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는 그 나라에 들어갈 지혜를 가지지 못한 자가 될 것이다.
Ⅳ. 영생을 얻기를 원한 한관원의 물음 18:18-30
1. 하늘나라로 가는 길에 관한 그리스도와 관원과의 대화(18-23)
(1) 누가는 그 사람이 관원이었다고 적고있다. 관원 중에서 그리스도를 존경했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바로 그들 중에 한사람이었다.
(2) 여기에 나오는 물음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큰 문제로써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는 것이었다(18절).
(3) 영생을 얻고자하는 자들은 친히 자기들의 선생이 되신, 즉 가르치시는 선생이 되실뿐 아니라 다스리시는 선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문의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외에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배우는 곳은 달리없다.
(4) 선생이 되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자들은 그가 신성한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계실뿐 아니라 신성한 선을 가지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9절).
(5) 우리의 선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그의 오시기 전의 상태에서 변경시키시지 않으셨으며 그것을 더욱 쉽고 평이하고 만족스럽게 만들어 놓으셨다. "너는 영생을 얻기를 원하는가? 계명을 지키라."
(6) 제 5계명에서 제 10계명까지의 의무들도 성실히 지켜져야만 한다. 이 계명들을 크게 위배하지 않는 것으로써는 충분치 못하다. 우리는 이 계명들의 범위와 영적인 특질속에서 '이 계명들을 알아야' 한다.
(7) 사람들은 무지하므로 자신이 무죄하다고 생각한다. 이 관원도 그러했다.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21절). 그는 일찍부터 선한 삶을 시작했으며, 이날까지 계속해서 그러해왔고 따라서 어떤 허물도 없다고 자만해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본질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그 자신의 마음으로 행해야함을 알고 있었다면, 또한 잠시라도 그리스도의 제자로 있었더라면 그는 분명히 그 반대로 말했을 것이다. 즉 나는 어려서부터 이 모든 것을 어겼습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8)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우리 형제들에 대해서, 그리고 금세와 내세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품고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면 어떻게든 그에게 와서 그를 좇을 것이다. 그가 어디로 가든지 기꺼이 어린양을 좇고자 하지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못할 것이다. 만일 형제에 대해 참된 사랑을 가진 자라면 자기있는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만일 금세를 그리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자기가 가진 것을 팔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세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라면 하늘나라에 보화를 두는것 이상의 바램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9) 칭찬 받을만한 것이 많이 있으면서 어떤 한가지가 부족함으로 멸망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여기 이 관원이 그러한 자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자기의 소유를 따로 구분한 이것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끊었던 것이다.
(10) 그리스도를 떠나기를 싫어하면서도 그를 떠나는 자들이 많이 있다. 즉 그들의 타락한 본성이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한쪽을 버려야할때 그들은 그들의 이득이 아닌 그들의 하나님을 버리게되는 것이다.
2. 이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24-30)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내용을 찾아보게 된다.
(1) 하늘나라로 가는 길에 있어서 부는 많은 사람에게 큰 방해가 된다. 그리스도는 그 사람이 매우 근심하는 것을 보셨으며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으나 이렇게 말씀하신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24절). 어떤 사람이 큰 재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따라서 그는 자기 소유를 구제하는데 사용해야 하는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리스도를 떠나는 편을 택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자들의 구원받기가 어려움을 매우 강조하여 역설하신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5절)고 하신 것이 그것이다.
(2) 하늘나리에 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팔든지 혹은 그리스도와 관계를 끊든지 해야한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겠는가?(26절)'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신 것에 대해 그것이 어려운 것이며 납득할수 없는 것이라고 흠을 잡고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 이 세상에 얼마나 깊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 있기에 항상 이러한 자리에 떨어지는 자신들에 대해 심히 낙담한 것이다.
(3) 우리가 구원받는데에는 단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외에는 결코 다른 것으로는 극복할수 없는 그러한 많은 어려움들이 있다. 무릇 사람의 할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수 있느니라(27절). 하나님의 은혜는 영혼에 역사함으로 그 영혼의 메마르고 삐뚤어진 것을 정반대의 모습으로 개조시킨다.
(4)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가 버리고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너무 많이 말하는 경향이 있다. 베드로에게서 이러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28절)라고 했다. 그러한 태도를 능사로 여기게 될때 그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 자신과 자기 형제들의 사랑, 즉 그를 따르기위해 모든 것을 '버린 것'을 무분별하게 과시하게 되는 것이다.
(5)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버렸든지 그것은 꼭 금세와 내세에 풍성한 것으로 채워질 것이다(29,30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기 소유의 좋은 것들을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을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기쁜 교제속에서 그리고 선한 양심과 여러 유익된 것들로 자기들이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해 풍성하게 보상받을 것이다. 그리고 내세에서는 영생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그 관원이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원했던 것이다.
Ⅴ. 고난과 죽으심을 말씀하심 18:31-34
(1)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임박한 그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의 영화로운 면에 대해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여기서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두가지를 보게 된다.
1) 여기서 그리스도의 고난당하심이 성경의 성취로 언급되어지고 있다.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31절).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성경이 정확하고도 완전하게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었다. 이는 성경이 그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십자가에서 죽게한 죄의 원인을 만든 것이다. 이와같이 기록되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고난받는 것은 마땅한 것이었다.
2)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시는 중에 당하신 수치와 치욕이 여기에 가장 잘 강조되어 있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이것을 그가 조롱당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본문에는 '그가 능욕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이는 모든 가능한 수치가 그에게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항상 그러하듯이 여기서도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난의 두려움과 수치를 씻어버리는 것으로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다.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2) 이 결과로 제자들은 혼동을 겪게된다. 이것은 그들이 메시야와 그의 나라에 대해서 가졌던 개념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다'(34절). 그들의 선입관이 너무 강했으므로 그들은 그 사실들을 문자 그대로는 이해하지 않으려 했으며 또한 달리 이해할수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받을수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말한 예언들에 너무 정신을 판 나머지 그의 고난당하심에 대해서 말한 것들은 지나쳐 버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오류에 빠진 것이다. 이는 그들이 성경을 한쪽만 보았기 때문이며, 율법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선지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들을 일부분만 편파적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와같이 지금도 우리는 이미 성취된 선지서들을 읽는 가운데 곧 교회의 영광스러운 상태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게 되기가 쉽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에 잠기는 상태를 오래 지나가야함을 못보고 있는채로 그후에 있어질 것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Ⅵ. 소경의 눈을 고쳐주심 18:35-43
그리스도께서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주심으로 우리가 보고있는 물체들을 우리앞에 보이도록 하시기 위해서뿐 아니라 보지못하는 영혼들에게 시력을 주심으로 그 물체들을 볼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우리는 이제 여리고 가까이에서 예수께서 보게하신 어떤 사람에 대한 설명을 접하게 된다. 마가는 그 사람의 이름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예수께서 여리고에서 나가실때' 그 사람을 고치신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막 10:46). 마태는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갈때'에 두명의 소경이 고치받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마 20:30). 누가는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때'로 말하고 있다.
(1) 이 불쌍한 소경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35절). 그는 소경이었을뿐 아니라 가난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이는 세상의 인간을 적절히 상징해 주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고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는 앉아서 구걸하였다. 이는 그가 소경으로서 생계를 위해 일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길가에서 동냥을 하는 자들에 대해서 우리는 못본체 지나쳐서는 안된다. 본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한 비천한 거지를 향해 호의를 베푸신다.
(2)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그는 '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36절). 다른 복음서에는 이 대목이 없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질문은 우리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실과 그러한 자들은 언제고 유익을 얻게되리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보지못하는 자들은 듣는 것을 보다더 유용하게 사용할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볼수 없게 될때에 물어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눈을 사용할수 있어야 한다. 이 소경은 그렇게 했다. 이와같이 함으로써 그는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것을 알게되었다(37절).
(3) 그는 대단한 믿음과 열심히 간구하고 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8절). 그 소경은 그가 자기를 도와주고 구원해 줄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열심으로 그의 은총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구할수 있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긍휼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4) 선한 열심으로 그리스도의 은총과 축복을 바라는 자들은 비록 반대와 비난에 부딪히게 된다할지라도 자신들의 추구하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갔던 자들은 주님을 성가시게 한다고, 그리고 소란하고 무례한 자라고 그를 꾸짖었으며 또한 잠잠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제재는 단지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하는 둑처럼 그 외침을 더욱 크게 만들 뿐이었다. 저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39절).
(5) 그리스도께서 그 비천한 거지를 위로하시며, 그를 자신에게 오도록 부르신다. 예수께서…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40절).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어떤 자보다도 더욱 슬픔으로 간청하는 자에 대해 온유와 긍휼을 가지고 계신다. 그를 꾸짖은 자들은 이제 그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 그에게 자신들의 손을 내어밀어야만 했다.
(6)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궁핍을 알고 계시나 그는 우리에게서 그것들을 듣고자 하신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41절). 이 사람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함으로 그리스도 앞에 자신의 영혼을 쏟아놓았다.
(7) 믿음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42절). 그리스도께서는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셨다. 참된 믿음은 열심으로 기도하게 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은총의 열매를 풍성하게 낼 것이다.
(8) 그리스도의 은혜는 감사함으로 사례되어져야 한다(43절).
1) 자신의 시력을 회복한 그 비천한 거지는 스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리스도를 좇았다.' 그가 고쳐준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을때 그것은 그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그를 높일때 그것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 된다.
2) 그것을 본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에게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있게될때도 역시 하나님을 찬양할수 있어야 한다.
# 해설
기도와 영생에 관한 교훈 ( 18 )
본장의 교훈들은 이미 전장에서 언급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본장도 여러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기도와 영생에 관한 교훈입니다. 1절부터 14절까지는 인내와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된다는 것과 의로운 자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에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마음과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힘들다는 것과 수난의 예고와 소경을 고쳐주시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기도에 관해 말씀하심
1) 불의한 재판관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말아야 될것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불의한 재판관과 한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재판관이면서도 법과 공의를 존중하지 않고 재물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특별 대우를 하며 돈없는 약한 백성들에게는 포학을 일삼는 자였습니다. 악인의 미련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a.말씀을 멸시함(대하36:16)
b.재판관은 공의로워야 함(신16:18)
2) 소원을 이룬 과부
불의한 재판관의 관할하에 있는 도시에 한과부가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억울한 일이 생겨 불의한 재판관에게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의 원한을 들어주기를 원치 않았지만 그 요구는 끝까지 회피할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과부가 자신의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찾아와서 간청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재물과 권력만을 알고 공의를 잊은 재판관이지만 과부의 번거로운 호소를 들어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인내와 끈기만으로 승리한 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귀를 기울여 주시며 응답해 주십니다.
a.과부를 위해 변호하라고 하심(사1:17)
b.주를 찾는 자는 버림당하지 않음(시9:10)
3) 올바른 기도
예수님은 이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통해 올바른 기도에 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기도라기보다는 거의 자기 자랑과 자기 만족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따로 서서 기도하면서 자신의 의를 하나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한 내용으로 독백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애통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진정 무가치한 자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는 책망하시고 세리의 기도는 올바른 기도라고 칭찬하셨습니다.
a.자기를 옳게 보이려는 자임(눅10:29)
b.세리와 창기가 먼저 하나님나라를 차지할 것임(마21:31-32).
2. 질문과 대답
1) 어린이를 용납하라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자녀들을 주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어린아이를 랍비에게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유대인의 관습이었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예수님의 은혜를 덧입고자 할때에 제자들은 아이의 부모들을 꾸짖으며 접근을 막았습니다. 아이들을 경시하고 귀찮은 존재로 억누른 것은 고대 사회의 공통적인 경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이와 같은 자들의 것임을 제자들에게 교훈하시고, 어린이들이 당신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a.겸손으로 옷 입으라(골3:12)
b.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어야 함(막10:15)
2) 부자 관원의 질문
어떤 관원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관원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그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신의 의를 주장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그것을 행할수가 없어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영생의 길은 하나님외에 다른 것을 사랑해서는 갈수 없습니다.
a.구제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일임(눅12:33)
b.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딤전6:10)
3)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음
예수님은 많은 재물때문에 영생의 길을 포기한 관원이 돌아간후에 부자는 구원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재물이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를 지적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못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a.은혜로 구원을 얻음(엡2:8).
b.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행하심(단4:35)
3. 수난 예고와 소경을 치유하심
1) 수난을 예고하심
예수님은 자신에게 응할 선지자들의 기록이 성취될 날이 가까이 다가왔기때문에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인 복잡한 사정에 의해 작정되었으나 그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의 엄숙한 섭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에 의해 조롱을 받고 능욕을 받으며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할 것에 대한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죽음을 당하게될 것과 삼일만에 살아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a.예언의 성취를 말함(눅24:46)
b.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짐(마27:1-2)
2) 눈먼 거지의 간청
예수님은 드디어 여리고에 도착하셨습니다. 여리고에서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한소경은 심상치 않은 무리의 소동을 듣고 그 연고를 물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호소하는 소경을 일반 군중은 꾸짖어 조용히 하라고 제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람들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소리질러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a.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음(마21:22)
b.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심(시145:8)
3) 치유받은 소경
큰소리로 호소하는 소경을 제지하던 군중과는 달리 예수님은 머물러 서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병고침을 호소했던 소경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눈을 뜨게된 소경은 즉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며,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a.무리를 보고 민망히 여기심(마9:36)
b.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림(시29:2)
결론
우리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나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달라고 하는 과부를 통해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많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어도 응답을 받지못한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간절함과 끈기가 부족했음을 알고 더욱 힘써 기도하여 응답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핵심
18:1-17
기도의 간절함과 진실성,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사모하고 갈망하는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순진한 믿음을 강조하시는 반면에,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위선을 경계하신 내용이다.
유대인들의 금식(18:12)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 규정에 따라 대속죄일에 금식함은 물론(레 16:29,31) 개인적으로도 자유롭게 금식했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유대 랍비들은 일주일에 두번 정한날(화요일과 금요일, 월요일과 화요일, 또는 월요일과 목요일)에만 금식하도록 했다. 이는 무절제한 금식이 건강을 해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규례가 그렇듯 금식 역시 ‘오직 하나님만 갈망하고 그분의 도우심에 의지하고자 하는’ 근본 정신을 망각하자 형식주의로 치우치고 말았다.
# 묵상
불의한 재판장 비유 ( 18:1-8 )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낙망치 말고 기도하도록 권하기 위함입니다. 흔히 우리들은 기도응답이 없으면 낙심하여 기도를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응답이 쉬나타나지 않아도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응답을 받게됩니다. 바른 기도를 하기위해서는 먼저 항상 기도하고, 쉬지말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살전5:17). 그리고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올바른 기도 ( 18:9-14 )
바리새인은 공을 자랑하는 기도를 했고, 세리는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만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는 기도는 경계하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분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회개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때문에 결국 자기를 낮춘 세리는 의롭다하는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자랑보다는 허물이 많습니다. 세리는 이를 깨달았고 바리새인은 이를 깨닫지못한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하나님나라의 관계 ( 18:15-17 )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어린아이같이 받들지않으면 그곳에 들어갈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의 순수한 믿음과 소망을 칭찬하시며, 어른들의 멸시하는 태도가 하나님나라에 합당치 않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은 겸손하고 가식이 없는 신앙입니다. 또한 전적으로 의지하고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앙입니다. 즉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있는그대로 자기를 나타내는 신앙인 것입니다.
약대와 바늘 ( 18:24-27 )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움을 교훈하셨습니다. 재물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잊게 만들기 쉽습니다. 즉 재물이 하나님나라를 얻기위해 선행되어야할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를 억제한다는 점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성도들은 믿음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난 예고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 ( 18:34 )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어도 깨닫지 못했고 고난받는 메시야상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고난은 피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에서는 고난이 필수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리고 소경의 믿음 ( 18:35-43 )
여리고의 소경은 예수님을 알고, 확실한 소원과 간절하게 기도하는 순수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육신의 장애를 통해 영적인 장애를 깨닫고 예수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나왔으며, 철저히 주님의 긍휼과 자비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육신의 장애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구원을 얻고 많은 백성의 신앙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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