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악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할 것 2:1-3

 

(1) 악한 것을 버리라.

  1) 버려야 할 죄악들 : 악독. 악독는 뿌리 깊게 자리잡힌 격분으로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해를 입히도록 하기까지 존속되는 것이다. 궤휼. 이는 곧 말로 속이는 것을 뜻한다. 외식. 복수로 되어있는 이 말은 모든 위선적인 것들을 의미한다. 시기. 이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에 대해서 불쾌해 하는 것이다. 비방하는 말. 이는 다른 사람을 반대하여 말하거나 헐뜯는 것을 의미한다.

  2)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좋지 못한 죄들에 대해서 경계하며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는 성화되었지만 아직도 시험 가운데 빠지기 쉽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가장 훌륭한 봉사들이라 할지라도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성실치 못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에게도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버려져야 할 죄가 버려지지 않을 때 그 죄는 우리의 영적 유익과 지속적인 평안을 방해할 것이다.

(2) 현명한 의사처럼 베드로는 계속해서 그들의 영적인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지시해 주고 있다. 이는 그들로 그것에 의해서 자라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권고된 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강렬하게 사모하라는 것이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 이는 사람들에 의한 것을 말한다. 갓난아이들 같이. 새로 태어난 생명은 그에 합당한 음식이 필요하다. 유아들은 보통, 젖을 사모한다. 그것을 사모하는 그들의 열심은 때로는 대단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모함 역시 그와 같아야 한다. 이는 그것에 의해 그들이 자라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한 애정과 사모는 사람들의 거듭난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된다. 지혜가 자라나고 은혜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바라는 바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그것이 처음 발견한 상태대로 버려두지 않는다.

(3) 베드로는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한 논지를 덧붙이고 있다(3절). 그는 의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음을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 대해서 매우 자비로우시다. 그는 그 자신 안에 충만한 은혜를 가지고 계신다. 우리의 구속자의 자비하심은 그것을 경험으로 직접 맛봄으로써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멀리에 있는 것을 보거나 듣거나 냄새 맡을 수는 있지만 맛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자비하심을 경험적으로 맛보려면 믿음에 의해서 그와 연합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있어서 최상의 경우는 이 생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보는 것이라고 하겠다.

 

Ⅱ.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2:4-12

 

(1) 사도는 산 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1)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의 강대함과 영속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종들에게 그가 그들이 세워질 토대임을 가르치기 위해서 돌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는 그 자신 안에 영생을 가지고 계신 산 돌이시다. 그가 하나님과 인간에게서 받은 평판과 존중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는 버림을 받았으나 하나님께로부터는 택하심을 입었다. 예수에게 나아와(4절). 이렇게 함으로써 믿음에 의해서 우리는 먼저 그와 결합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 가까와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소망과 행복의 초석이 되신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사악한 세상에 의해서 버림을 당하셨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이셨으며 또한 가치에 있어서도 보배로운 분이셨다. 이 자비로우신 구주로부터 긍휼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그에게 나아가야 하며 또한 이 나아감은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다 할지라도 우리의 행할 바로서 헛된 바램이 아니라 참된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2) 베드로는 계속해서 그를 기초로 해서 세운 상층부에 대해서 말해 간다(6절). 베드로는 여기서 이들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법규를 권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대인의 성전보다도 더욱 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산 성전인 것이다. 그 기초가 되신 그리스도는 산 돌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은 산 돌들이며 거룩한 제사장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린다.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영적 생활의 원리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죄와 허물 가운데서 죽은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산 자들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영적인 집이다. 이 집은 매일 세워지는 것이다. 그 집의 모든 부분은 항상 개량되어가며 그 전체는 새로운 구성원들이 증가되어감으로써 전 시대에 걸쳐서 보충된다.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제사장들이다. 이 거룩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려야 하며 또 드릴 것이다. 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가장 신령한 제사들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헌납을 그리스도께 가져와야 하며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2) 베드로는 이사야 28:16절의 말씀으로부터 자신이 그리스도를 산 돌로 단언한 것을 더욱 확고하게 하고 있다. 사도들은 성경을 인용함에 있어서 성경의 말씀보다는 그 의미를 더 고수하였다. 성경의 참된 의미가 성경 말씀으로보다는 다른 것으로 더 정확하고 완전하게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의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는 전적으로 성경의 증거에 의지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규범이다.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우리에게 주신 기사는 우리들의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것이다. '보라 내가 한 돌을…'(사 28:16).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신령한 건축을 위해서 두신 요긴한 모퉁이 돌이시다. 모퉁이 돌은 건축물과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그 건축물을 받쳐 주고 연합시켜 주며 장식해 주는 돌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거룩한 교회 즉 그의 신령한 집에 대해서 그와 같은 분이시다.

(3) 베드로는 7절에서 중요한 추론을 끌어내고 있다. 그는 믿는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믿는 너희는 그로부터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이며 영원히 그를 자랑하며 그로 인해 기뻐할 것이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대적에도 불구하고 그를 모퉁이의 머릿돌 되게 하실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선지자의 증거로부터 추론을 끌어내고 있다. 선지자는 명백하게 그와 같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에서부터 불가피하게 그런한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도록 말했다. 신실한 사역자의 임무, 곧 일반적인 진리를 성도들의 특수한 조건과 상태에 적용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선지자로부터 한 구절을 인용해서(6절) 그것은 개별적으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 적용하고 있다. 이런한 일은 지혜와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도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것이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결코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이 다소 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확고한 믿음은 전혀 가지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건축자들이 되어야 할 자들이 종종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겪으시는 가장 악한 원수들이 되곤 한다. 외식된 자들이 허위와 가장 원수된 자들의 대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수행해 가실 것이다.

(4) 베드로는 돌의 비유를 계속 견지하면서 더욱 상세한 묘사를 덧붙이고 있다(8절). 그 말씀은 이사야 8:13, 14절에서부터 취해지고 있다.

  1) 건축자들, 즉 대제사장들은 그를 버렸으며 사람들은 그들을 좇았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힌바 된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의 교훈에 부딪혔으며 그의 교훈의 정결성에 부딪혔다. 즉 구원의 주관자가 되시는 복되신 예수께서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죄와 파멸의 원인이 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반석되신 그에게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다.

  2)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은 상당한 특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9절). 유대인들은 그들의 옛날의 특권들을 지나치게 귀중히 여겼다.

   ① 베드로는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며(7,8절), 순종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어떤 참된 특권도 잃어버리지 않게 될 뿐 아니라 계속해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9절).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택하신 족속이다. 즉 그들 모두는 한 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일반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사람들인 것이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의 종들은 죄와 죄인들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신성하게 정한 바 된 자들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받으실만한 신령한 봉사와 헌납들을 바치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누구이든간에 거룩한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들이 영예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고귀함과 덕성들은 그들에게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그들의 처음 상태는 지독한 어두움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두움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덕행들로, 자기들을 부르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②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들의 처음 상태와 현재 상태를 비교해 보도록 권하고 있다. 이전에 그들은 백성이 아니었으며 긍휼을 입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긍휼을 입은 자들이 되었다.

(5) 베드로는 그들에게 육체의 정욕을 주의하도록 경계시키고 있다(11절). 그는 그 의무가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문제에 대해서 최상의 관심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11절). 그 의무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것이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때 육체의 정욕을 피해야 하였다.

  1)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존중 : 그들은 '사랑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2) 세상에서 그들의 상태 : 그들은 '나그네와 행인 같은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가는 나라의 정욕에 빠져 자신들의 행로를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죄가 사람에게 끼치는 큰 해 : 죄가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치는 이유는 그것이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죄 가운데서 '육체의 정욕'만큼 영혼에 해를 주는 것은 없다.

(6) 베드로는 더 나아가 그들에게 선한 행실을 권고한다. 그들은 그들의 숙적들이 될 뿐 아니라, '악행하는 자들'이라고 끊임없이 그들을 비방하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살았다. 12절의 말씀은 곧 다음과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선한 행실은 그들의 입을 닫게 해 줄 뿐 아니라 그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는 수단이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선한 행실에 있어서 너희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을 보게 될 때 너희에게 돌아서게 될 것이다. 선한 행실로써 너희 자신을 변호하라. 이것이 그들을 확신시키는 방법이다. 복음이 그들에게 이르고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될 때 선한 행실은 그들의 개종을 고무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악한 행실은 그것을 가로막을 것이다."

 

Ⅲ. 특별한 지시들 2:13-25

 

그리스도인의 행실은 반드시 선해야 한다.

1. 백성들의 경우(13-17)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에 있어서 소문난 개혁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나라를 소란케 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행정 관리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규범을 정해 놓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1) 요구된 의무는 순복이었다.

  (2) 순복해야 할 사람들과 대상들 : 보다 일반적인 것으로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에 순복해야 했다. 행정 관직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이다. 또한 이것은 모든 족속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반적인 규범이며 확립된 정부의 형태를 이루게 했다. 그리고 특수한 것으로 '위에 있는 왕이나 왕의 보냄을 받은 방백에게' 순복해야 했다.

  (3) 이러한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

   1) 그 이유는 인간의 유익을 위해 행정 관리를 정하신 주를 위해서이다.

   2) 그 이유는 행정관의 직무의 목적과 임무에서 나타난다. 즉 행정관의 직무는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은 시민을 위한 정부에 대해서 최고의 지지를 보낸다. 행정관이 자신의 의무를 가장 잘 수행하는 방법과 세상을 개선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징벌과 포상을 잘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은 행정 관리들에게 순복해야 한다. 이는 선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인 바 이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관계에 있어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불합리한 비난을 막기 위해서 스스로 힘써 처신해야 한다.

   4)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영적 특성 :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자유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 자유한 것인가? 이는 결코 의무나, 행정 관리들에게 순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자유케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모든 종들은 사람들로부터 자유케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은 자신들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 한다.

  (4) 베드로는 네 가지 찬탄할만한 가르침으로 글을 맺고 있다.

   1) 웃사람을 공경하며(17절). 모든 사람에 대해서 마땅히 공경해야 할 것이 주어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멸시받아서는 안되며 악한 자들도 공경받아야 하되 그들의 사악함 때문으로가 아니라 다른 어떤 특질 때문으로 공경 받아야 한다.

   2) 형제를 사랑하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 형제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가장 높은 경외감으로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이것이 부족하게 되면 다른 새의무는 결코 행해질 수 없다.

   4) 왕을 공경하라.

2. 종들의 경우(18-25)

그들은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믿지 아니하는 잔인한 상전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도는 '사환들아 순복하라'고 말한다.

  (1) 베드로는 그들에게 '순복할 것'을 명한다. 그것도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악하고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할 것을 명하고 있다. 어느 한 쪽의 죄악된 비행이 다른 쪽의 죄악된 처신을 결코 정당화 해 주지는 못한다. 종은 비록 그 상전이 죄악되고 까다롭다 할지라도 자신의 의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선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들과 아랫 사람들에게 온유하며 관용을 베푸는 자들이다.

  (2) 베드로는 그들에게 순복할 것에 대해서 조리있게 말해 간다.

   1) 만일 그들이 부당하게 고난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것이 될 것이다(19,20절). 세상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할 만큼 비참한 상태란 없다. 아무리 비참한 가운데 처한 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가장 양심적인 사람들이 가장 큰 고난을 당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19절). 이런 류의 고난을 당하는 자들은 칭찬받을 만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자들이다. 마땅히 고난당하는 자들은 인내로서 견뎌야만 한다.

   2) 그리스도인 종들이 부당한 고난 가운데서 참아야 할 것을 격려해 주는 더 큰 이유(21절) :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그리스도께서 본이 되신 것에서 취해지고 있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당하는 자들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난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즉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고난 당하셨다(24절).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신 사실은 우리가 세상에서 직면하게 되는 가장 부당하고 지독한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를 잠잠케 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어떻게 죄인된 우리가 후세에 말할 수 없는 축복들을 만들어 주는 이 생의 가벼운 환난들에 순복하지 않겠는가?

  (3) 그리스도께서 순복과 인내의 본을 보이신 것이 여기에 서술되어 있다.

   1)그리스도께서는 부당하게 고난 받으셨다(22절). 그의 행위에 있어서 뿐 아니라 그의 말도 모두 신실했으며 의롭고 옳았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인내로 고난 받으셨다(23절). 죄에 대해서 분개한다고 해서 그것이 범한 죄를 정당화 시켜줄 수는 결코 없다. 죄에 대한 변명은 결코 중요치 않다. 더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필요가 없는 보다 강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4)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단지 고난 아래서 참는 것의 본이기 위해서만 계획되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 베드로는 여기서 그 죽으심의 더 영화로운 계획과 결과에 대해서 덧붙여 말해 간다. 친히. 이는 고난 받는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것으로 "몸소"라는 말이다. '친히'라는 표현은 그를 다른 짐승의 피를 드린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과 구분짓기 위해 강조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그가 당하신 고난들은 책찍에 맞으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이었다. 얼마나 비참하고 굴욕적인 형벌이었는가! 그가 고난 당하신 이유를 보도록 하자.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24절). 그리스도께서는 고난 당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 그는 죄의 형벌을 담당하신 것이다. 마치 속죄 염소가 상징적으로 사람들의 죄를 머리에 지고 멀리 내몰림을 당하여 그 죄를 단번에 담당하시고 세상 죄를 없이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 당하심의 열매는 곧 우리의 성화와 칭의이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은 것이다.

  (5) 그들의 이전 상태와 현재 상태의 차이점(25절).

   1) 인간의 죄 : 그는 길을 잃게 되었다. 이는 인간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다.

   2) 인간의 비참 : 그는 목자와 양떼들로부터 떠나 길을 잃게 된 것이다.

   3) 개종함으로 이러한 상태로부터 회복됨 : 이는 자신의 양떼를 사랑으로 보살피시는 참된 목자가 되시며 가장 부지런히 살피시는 지도자, 감독 혹은 영혼의 감독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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