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고난과 고난으로 인한 죄의 종식 4:1-3
(1) 권면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1절). 즉 인성에 있어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즉 "그리스도께서 인성에 있어서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너희는 자기 부정과 고행으로 죄의 몸을 죽임으로써 너희의 부패한 본성을 고난 받게 하라. 죄를 그치라. 온갖 죄를 대적하는 가장 강하고 가장 좋은 논증들이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신 것에서부터 취해지고 있다. 수난받으신 자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동정과 연민은 만일 죄를 없이 하지 않는다면 사라질 것이다. 모든 참된 고행의 시작은 육체에 대한 시련과 곤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다.
(2) 권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2절). 소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그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육체 가운데서 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하나님의 나타난 뜻에 스스로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정욕은 그들의 온갖 사악함으로부터 나타난다. 만일 인간 자신의 타락 때문만 아니었다면 수시로 일어나는 시험들은 효력을 나타내지 못했을 것이다. 참된 회심은 그 회심자의 생활과 마음 가운데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것은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활을 개조시킨다.
(3) 베드로의 권고가 어떻게 주장되고 있는가(3절). 3절의 말씀은 곧 "이전의 너희의 모든 삶을 통하여 너희가 지금까지 죄와 사단을 섬긴 것처럼 이제부터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사람이 참으로 회개했을 때 자기의 지난 날의 삶을 어떻게 보냈는가 생각해 보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매우 쓰라린 일이 된다. 사람의 의지가 성화되지 못하고 부패되어 있는 동안 그 사람은 계속해서 악한 길을 걷게 되며 따라서 점점 더 악한 상태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용납되어진 한 가지 죄는 또다른 죄를 초래하게 된다. 본문에는 여섯 가지의 죄가 언급되어 있다.
1) 음란. 이는 외모, 몸짓 혹은 행동에서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2) 정욕, 즉 음탕한 행위를 뜻한다.
3) 술취함.
4) 방탕, 즉 너무 지나치거나 빈번하고 너무 사치한 것을 말한다.
5) 연락. 여기서는 과식의 의미가 포함된다.
6) 무법한 우상 숭배, 즉 이방인의 우상 숭배를 뜻한다. 커다란 악을 삼가하는 것 뿐 아니라 대체적으로 죄악 되다고 여겨지는 것들까지도 삼가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Ⅱ. 세상 사람의 비방과 하나님의 위로 4:4-6
(1) 여기서 우리는 이전 생활이 매우 악했던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눈으로 보이는 변화를 접하게 된다. 그 사람들에 대한 사악한 친구들의 행위를 보도록 하자.
1) 그들은 자기들의 옛 친구들이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4절)'.
2) '그들은 그 친구들에 대해서 비방한다'. 한 번 진실로 회개한 자들은 다시는 그들의 이전 삶의 과정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설득이나 비난도 그들로 이전에 했던 것처럼 행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질이나 행동은 경건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경건치 못한 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신앙인의 최선의 행동은 불신앙인들의 중상모략을 받을수 밖에 없다. 비록 선한 사람들이 이 사랑과 경건과 선의 결실들을 내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사람들을 비방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종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여기에 덧붙여지고 있다.
1) 모든 악한 자들은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할 것이다. 악한 세상은 잠시 동안 위대하신 하나님께 하나님 백성에 대한 그들의 모든 사악한 비방들을 직고할 것이다.
2)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6절). 우리의 죄를 억제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사는 것은 우리에게 전파된 복음으로부터 예상되어지는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복음이 전파된 모든 자들을 셈하시되 그것으로부터 아무 선한 결실도 내지 못한 자들을 셈하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살고 있다면 육체 안에서 사람을 따라 심판받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Ⅲ. 기도 사랑 봉사에 대하여 4:7-11
우리는 여기서 한 국면과 그것에서부터 이끌어진 추론을 접하게 된다. 그 국면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박해의 기간은 매우 짧게 된다. 너희 자신의 삶과 너희 원수들의 삶은 곧 극한 시기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한 세상 자체 역시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나온 추론은 일련의 권고들로 이루어져 있다.
1. 근신하고 깨어 있을 것(7)
너희 자신으로 너희의 이전 죄와 유혹에 얽매어 고통당하지 않도록 하라(3절). 또한 깨어 기도하라. 즉 "이 마지막이 너희에게 알지 못하게 임하지 않도록 유의하라".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들은 '깨어 기도해야' 한다.
2. 사랑할 것(8)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 상호 애정은 결코 차가워서는 안되며 뜨거워야 한다. 즉, 신실하고 강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신실한 애정이 무엇보다도 먼저 권고되어지고 있다. 이는 그것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사랑의 한가지 탁월한 효과는 그것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점이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간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또한 그 안에는 각별한 애정을 요청하는 것으로서 특별한 온화함과 선함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의를 품지 않는다든가 서로에 대해서 일반적인 존경을 갖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들은 열심히 뜨겁게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참된 사랑의 특성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 대한 비난을 잊거나 용서하게 해주며 다른 사람의 죄를 퍼뜨리거나 악화시키기 보다는 덮도록 만들어 준다.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은 그러한 자들을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손길에 긍휼을 예비하는 것이다.
3. 대접할 것(9)
그리스도인의 대접은 서로가 대상이 된다. 이 의무를 시행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즉 '원망없이' 혹은 부담과 근심으로 인한 시비 없이 편안하고 친절하고 알맞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서로가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
4. 재능을 활용할 것(11)
(1) 선을 행하게 하는 무슨 은사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우리는 서로 봉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갖가지 은사를 받고 사용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단지 청지기로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2) 베드로는 특별히 두 가지, 즉 말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을 들어 은사에 관한 자신의 교훈의 실례로 삼고 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혹은 가르치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해야 한다. 만일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11절).
첫째, 서로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것은 공적인 자리에서의 사역들의 의무일 뿐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둘째,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계시에 합당하도록 나타내는 모든 복음 전파자들에게 깊이 관계가 있는 것이다.
셋째, 우리가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무엇을 하든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삶의 모든 의무와 봉사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견해는 이것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다섯째,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범사에 영광을 받으실 수 있어야 한다.'
Ⅳ. 고난 중에서 기뻐할 것 4:12-19
이 서신에 매 장에서 고난받는 자들로 생각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주 위로의 말씀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로써 이 새로운 개종자들이 처해 있던 아주 큰 위험이 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일어나게 된 박해임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여기서 그들에게 고난 가운데서 인내할 것이 필요함을 가르친다.
1. 베드로의 친절한 담화의 태도(12)
사랑하는 자들아. 그들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 이었다.
2. 그들의 고난과 관계해서 그들에게 주는 베드로의 조언 (13-19)
(1) 그들은 그 고난들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했다.
1) 그것들이 비록 매섭고 가혹하다 할지라도 이는 단련코자 함이지 결코 멸하고자 해서 의도되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 즐거워해야 했는데 이는 그들의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합당하게 일컬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들로 고통 당하셨으며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셨다. 만일 우리가 그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들이 된다면 우리는 또한 '그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베드로는 이 환난 당하는 불우한 그리스도인들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들을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로 부르고 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역경 가운데 있을 때 피차 가장 사랑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불친절과 핍박을 이상하게 여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는 그것들에 대해서 미리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 모든 것들을 견디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극심하고도 고통스러운 고난들을 참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즐거이 고난 받는 자들은 영광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2) 베드로는 덜 가혹한 핍박에 대한 언급으로 나아간다(14절).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욕을 받고 중상을 당하고 비방을 듣게 되는 경우를 뜻한다. 그러한 경우에 그들이 '복 있는 자'라고 베드로는 단언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영을 가진 자들로서 그 하나님의 영은 또한 영광의 영이시다. 이 영광의 영께서 너희 위에 임하여 계신다. 고난 가운데서 너희가 인내하고 꿋꿋하게 견딤으로써 그는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그러나 너희에게 주어지는 멸시와 비방에 의해서 성령께서도 친히 비방과 훼방을 받으시게 된다". 선한 사람들의 복됨은 그들의 고난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그 고난으로부터 나오기도 한다. 본문의 '복 있는 자로다'가 그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영이 임해있는 자는 그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결코 비참하게 되어질 수 없다. 선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방을 받을 때 성령은 그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2) 그들은 악행하는 자들로 인하여 고난 받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했다(15절). 그들의 원수들은 이런 저런 좋지 못한 죄를 그들에게 씌웠다. 따라서 베드로는 이러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기독교로 인해서 '고난을 받되' 그리스도인의 영으로 인내하면 그사람은 그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서 그를 존귀케 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16절).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나 어리석음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면 아무런 위로함도 없게 된다. 순교자를 만드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그 고난의 동기이다.
(3) 그들의 심판이 이제 임박했다.(17,18절).
1)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잘할 때가 되었나니(17절). 이 말씀은 성도들로 하여금 인내를 가지고 앞서 말한 모든 권고들을 수행해 나아가게 해준다. 이러한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자들부터 시작할 것이다. 사악한 세상에 임하게 될 것과 비교해 볼 때 너희의 고통은 가벼운 것이며 짧은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할 것인가?"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종일지라도 때때로 마땅히 하나님께 징계받고 지적받을 많은 잘못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일지라도 이생에서 아주 좋지 못한 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나쁜 상태는 참을 수 있는 것이며 곧 종식될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자들과 불순종하는 자들을 구분 짓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할 것인가'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 베드로는 사악한 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18절). 선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쓰라린 고난들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임하게 될 매우 엄중한 심판의 슬픈 전조인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의인조차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구원의 절대적 필요성과 그것의 어려움은 양립한다. 먼저 극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도움을 베풀어주신다.
(4)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게 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면서' 주로 그 영혼의 안전에 유의할 수 있어야 한다(19절).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져주실 것이다. 이는 그가 그들의 조물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육신의 안전보다는 영혼의 안전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선한 사람들이 그들의 영혼을 담대히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들의 조물주가 되시며 또한 모든 약속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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