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본받을 것2:1-11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권고한다.

1. 서로 사랑하라(1-4)

바울은 이것을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2절)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견해가 일치되건 일치되지 않건 사랑에 있어서는 하나가 될 수 있어야만 한다. 같은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상호적인 사랑이어야만 한다. "사랑하라. 그러면 너희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이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에 전원일치로 동의하는 것과 제각기 다양함 속에서도 "성령의 단일성"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1) 의무에 대해 간곡히 간청함 : 이러한 것들이 형제애를 가져다 준다.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1,2절).

   1) 그리스도 안에서의 위로 : 그리스도 안에…무슨 위로가…있거든(12절). 이는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를 경험한 적이 있느냐? 그렇다면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 경험을 입증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받기를 원하는가? 만일 우리가 실망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2) 사랑의 위로 : 이는 "만일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또한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우리에 대한 너희 형제들의 사랑 안에서 무슨 위로가 있거든, 너희는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가르침을 보여주는 것이다.

   3) 성령의 교제 : 이는 "만일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같은 것이 있다면, 그리고 성도들의 교제와 같은 것이 있다면, 너희는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말이다.

   4)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고 있는 긍휼이나 자비 : 즉 이는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구한다면 너희는 서로서로 긍휼히 여기라"는 말이다. 또다른 하나는 형제애가 사도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4절)가 이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사역자들의 기쁨이다. 바울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로 이끌어주는 도구가 되어왔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너희에게 복음을 전파한 너희의 그 비천한 사역자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2) 형제애를 증진시키는 몇 가지 방법들

   1) 아무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3절). 그리스도는 모든 적대감을 멸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적대감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낮추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는 자만심이 없어야 할 것이다.

   2)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만 한다. 또한 우리 자신의 결점들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자비로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 가운데 있는 선보다 다른 사람들 가운데 있는 선을 더 낫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무가치성과 불완전성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4절 말씀의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가 이러한 사실을 잘 나타내 준다. 이기심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들과 같이 사랑하며, 그의 일을 우리 자신의 일과 같이 여길 수 있어야 한다.

2.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5절).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으로 은혜를 입었다면 우리는 그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그는 매우 겸손하셨는데 이러한 겸손은 특히 우리가 그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겸손해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은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과 죽음의 자리에까지 스스로를 낮추신 주 예수의 정신과 동일한 정신으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 즉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 살펴보자.

   1) 그의 신성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6절).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는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것에 대해 침해하고자 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어떤 단순한 인간이나 혹은 단순한 피조물이 하나님과 동등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가장 파렴치한 침해 행위이다.

   2) 그의 인성 : 그는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7,8절) 나타나셨다. 그는 실제로 그리고 진실로 사람이었다. 그는 자원하여서 인성을 취하셨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였다. 우리는 우리가 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기에 그는 인성이라고 하는 누더기로써 자신을 옷 입히기 위해 '자기를 비우셨다'. 이렇게 해서 비하와 높아짐이라고 하는 그의 두 가지 상태가 있게 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두 가지 상태 즉 비하와 높아짐에 대하여 살펴보자.

  1) 그의 비하 : 7절에 나타나는 '종의 형체'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는 사역자로 오셨고, 섬기는 자로서 그들 가운데 계셨다. 어떤 사람은 만일 주 예수께서 사람이 되시고자 하셨다면 왕자가 되셨어야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반대로 그는 '종의 형체'로 오셨다. 그리고 추측컨대 자기 육친의 아버지와 함께 목수일을 하면서, 비천하게 성장하셨다. 그의 전 삶은 비하의 삶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낮은 비하의 단계는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8절). 그는 고난 받으셨을 뿐 아니라 자원하여 복종하셨다. 그의 죽으심의 태도에는 하나의 강조점이 있다. 그것은 그 안에, 비천하다고 할 수 있을만한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에 죽기까지'가 이것을 표현해 준다. 그 죽음은 저주받은 죽음이며 자유인이 아닌 노예의 죽음이며 악인의 죽음이고 공중(公衆)의 구경거리로서의 죽음이었다.

   2) 그의 높아짐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9절). 그가 자신을 낮추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신 것이다. 그래서 '그를 지극히 높여'라고 했다. 하나님은 신성 뿐 아니라 인성까지 그의 전인격을 높이셨다. 그의 높아짐은 명예와 권세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9,10절). 모든 피조물은 그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 땅 아래 있는 자들' 즉,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다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에 모든 사람들이 엄숙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11절). 그리스도의 왕국이 하늘과 땅, 그리고 그곳에 있는 피조물들, 또한 산 자 뿐 아니라 죽은 자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에게 어떤 경의가 드려지든 그것은 결국 아버지께 존귀를 돌려드리는 것이 된다.

 

Ⅱ. 근면할 것과 진지할 것을 권고함 2:12,13

 

(1)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행로에 있어서 근면할 것과 진지할 것을 권고한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12절)는 말씀이 이것을 나타내 준다. 우리 영혼의 안녕을 든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있게 되든 우리는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에 눈을 돌리도록 해야겠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고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루라'는 말은 '철저하게 해내는 것'과 '참된 수고'를 의미한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구원에 관한 어떤 일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이뤄야 할 뿐 아니라 이미 행해진 모든 것을 행함으로써, 그리고 그 안에서 끝까지 견딤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뤄야 한다. 구원은 최고의 배려와 근면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 그것은 '두렵고 떨림으로' 성취되어지는 것이다. 즉 이는 매우 세심한 배려와 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를 악으로부터 매우 안전하게 보호하며 지켜주는 것이다.

(2) 바울은 그들의 구원을, 그들이 자진하여 복음에 순종하는 것으로 이루라고 촉구한다. 12절 말씀이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들은 사도가 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사도가 없을 때 더욱더 두렵고 떨림으로 지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13절) "너희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가 일하시니 너희도 일하라."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의 신실한 노력을 그의 은혜로 협력하시며 돕고자 하신다.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단순히 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에 활기를 띠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자. 이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기' 때문이다. '두려움으로 이루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행하시기 때문이다.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선한 것에 소원을 두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또한 그 선한 것을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선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Ⅲ. 그리스도인의 고백을 권고함 2:14-18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온전한 성품과 행위로써 그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고백이 돋보여지도록 할 것을 권고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그렇게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1) 하나님의 명령에 즐거이 복종함으로써 : 모든 일을 원망없이 하라(14절). 이는 "너희의 일을 행하되 그것으로 다툼이 없게 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논쟁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복종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2) 서로 화평함과 사랑함으로써 : 모든 일을 시비가 없이 하라. 진리의 빛과 신앙의 생명은 종종 논쟁의 열기와 분위기 가운데서 상실되어진다.

(3)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흠이 없는 생활로써 :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나타내며(15절). 우리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할 뿐 아니라, 그 혐의조차 조금도 받지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람의 자녀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말이다. 흠없는. 우리는 하늘나라에 이르기 위해 힘써야 한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참된 신앙이 없는 곳에는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주의하여 흠이 없고 순전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빛들이다.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을 어느 장소에 세우시든 하나님은 그를 그곳에 빛으로 세우시는 것이다. 그들은 신실해야 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빛을 발해야만 한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16절).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을 뿐 아니라 그것을 밝히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밝히되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해야하며, 또한 촛대가 촛불을 밝히듯이 해야한다. 나로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함이라. 이는 "너희의 견고함 뿐 아니라 유용함을 자랑하려 함이라"는 말이다. 바울은 자신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했으며 자신의 수고도 헛되지 아니했을 그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달음질은 열렬함과 강력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수고는 근면과 꾸준함을 나타낸다. 사역자들이 자기들이 '헛되이 달음질하지 아니하고 헛되이 수고하지 아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것은 그들에게 큰 기쁨이 된다. 또한 그것은 그들의 회개자들이 그들의 면류관이 될 그리스도의 날에는 그들의 기쁨일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들을 위해 기쁨으로 달렸고 수고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았다. 17절의 말씀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그는 하나님의 선택한 자들의 믿음을 돕기 위해 그들의 제단에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되어질 수도 있었다. 바울이 교회를 섬기기 위해 자기의 피를 흘리는 것을 가치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과연 우리는 약간의 수고를 하는 것을 많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자기의 피로써 자신의 가르침을 증명하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18절).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넘치는 기쁨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선한 사역자들을 모시고 있는 자들은 그 사역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커다란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Ⅳ.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언급 2:19-30

 

1. 디모데에 대한 언급(19-24)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20절). 디모데는 바울이 원하는 적격자였다. 고매한 정신과 부드러운 마음에 있어서 디모데와 비교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의무가 그 방식에 있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되어질 때, 그것은 우리에게 최상이라고 하겠다. '자연스럽게'는 곧 '진실히'를 뜻하는 것으로서 외모로 하지 아니함을 말하는 것이다. 성도들의 사정을 돌보는 것과 그들의 안녕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사역자들의 의무이다. 그러한 일을 진실히 행하는 사람을 찾기란 드문 일이다. 그래서 바울은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21절)라고 말하였다. 다윗이 '모든 사람은 거짓말하는 자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바울도 같은 의미로 말한 것이다. 그리고 21절의 '다'는 그것이 모두를 의미하든 대다수를 의미하던, 어쨌든 디모데와 비교했을 때 그만한 사람이 없다는 뜻에서 사용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와 거룩함, 의무보다는 자신의 명성, 안일, 안전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디모데는 그렇지 않았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22절). 디모데는 시험을 거친 자였으며 그에게 닥친 모든 일에 있어서 신실했던 자였다. 디모데와 교분이 있던 모든 교회들은 그의 연단을 알았다. 그는 명실상부한 선한 사람이었다.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는 많은 곳에서 바울의 조력자였다. 그들의 동역은 디모데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존경으로, 또한 바울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온유와 사랑으로 된 것이었다. 이는 동역하는 선후배 사역자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본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23절). 바울은 당시 죄수의 몸이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바울은 자신이 가기를 바랬다. 24절 말씀이 이것을 보여준다.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바울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익을 끼치기 위해서 자신이 자유롭게 되기를 원했다.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24절).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복종하는 자세로 그들을 보고자 하는 자신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2.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언급(25-30)

바울은 그를 '나의 형제와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25절)로 부른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가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그래서 바울은 기꺼이 그가 그렇게 하도록 했던 것이다.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가고자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에바브로디도는 병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26절에 보면 빌립보 교인들은 그가 병들었음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27절에는 그가 병든 것이 틀림없으며 거의 죽게까지 되었던 것을 기록해 주고 있다.

  (2) 빌립보 성도들이 그의 병든 소식을 듣고 매우 염려했기 때문이다. 빌립보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를 특별히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또한 그를 사도로 택정하고 보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3)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시고 쉬도록 하는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27절에 '하나님이 저를 긍휼이 여기셨고'가 나온다. 바울 사도는 그것이 에바브로디도와 다른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큰 긍휼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또한 그는 분명하게 근심이 크게 덜어진 것으로 여겼다. 27절의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가 이것을 보여준다. 이는 곧 '내 자신의 투옥이라는 근심에다 에바브로디도의 죽음이라는 근심을 더하지 않게 하셨느니라'를 뜻하는 것이다.

  (4)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성도들을 방문하기를 무척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병들었을 때 그를 위해 근심하였던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28절의 말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가 이것을 보여준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친구인 자신을 보게 함으로써 기꺼이 그들에게 위로의 기쁨을 주고자 했다. 29절의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는 말씀은 곧 "열심히 있고 신실한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그리고 그들에게 최상의 존경과 사랑을 베풀라"는 말씀이다. 에바브로디도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중에 병이 들었던것 같다. 30절의 말씀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가 이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바울 사도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빌립보 성도들이 그를 더욱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큰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빌립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립보서 4장 - 매튜헨리  (0) 2014.04.02
빌립보서 3장 - 매튜헨리  (0) 2014.04.02
빌립보서 1장 - 매튜헨리  (0) 2014.04.02
빌립보서 4장 - study  (0) 2014.04.01
빌립보서 3장 - study  (0) 2014.04.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