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인사말과 축복 1:1,2
1. 이 서신을 기록한 사람들(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 가장 위대한 사도나 가장 탁월한 사역자들의 최고의 명예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다. 즉 교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다.
2. 이 서신을 받은 사람들(1)
(1)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 바울은 사역자들보다 교회를 먼저 언급하고 있다. 이는 사역자들을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사역자들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교회의 종들이기도 하다. 이 서신은 '모든 성도', 심지어는 가장 천한 사람들, 가장 가난한 사람들, 은사를 가장 적게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모두에게 보내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차별을 두시지 않으신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그분 안에서 함께 만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성도'인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성인들이라도 명백히 죄인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될 것이다.
(2)감독들과 집사들. 감독들 혹은 장로들은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집사들은 가난한 자들을 돌아본다거나 하나님의 집의 외적인 일을 보살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당시의 교회에 잘 알려진 직분들로서 신성하게 임명된 직분들이었다.
3. 사도의 축복(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모든 서신들에 있어서 이 인사말은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거의 같다. 우리는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구태여 피해야 할 필요 또한 없다.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이고 선하신 뜻이며 모든 축복된 열매이자 그것의 결과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나온 것이다. 은혜 없이는 평강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적인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축복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서부터가 아니면 어떠한 은혜와 평강도 있을 수 없다.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를 통하지 않은 하나님 아버지로서의 은혜와 평강이란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Ⅱ. 빌립보 성도들로 인한 감사 1:3-6
사도는 계속해서 빌립보 성도들로 인한 감사를 말한다.
1. 바울이 그들을 기억함(3)
바울은 자주 그들을 생각하였다.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자주 그들을 생각했기에 자주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으며 그들에 관한 소식 듣기를 기뻐하였다. 다른 곳에 있는 친구의 안부를 듣는 것은 기쁜 일이다.
2. 기쁨으로 그들을 기억함(4)
바울은 빌립보에서 핍박을 받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는 기쁨으로 빌립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결코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자신이 고초를 겪었던 그곳에 대해 듣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의 고통을 기쁨으로 기억하였다.
3. 간구함으로 그들을 기억함(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항상 간구함은. 우리 친구들에 대한 최상의 기억은 은혜의 보좌에서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때를 정해 놓고 기도하였다.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에 대해 기도하는지를 다 아시지만 그래도 그는 우리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간구하는 것을 용납하신다.
4. 그들에 대한 기쁜 기억으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5,6)
감사는 기도 속에 항상 들어 있어야만 한다. 우리에게 위로가 된 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어야만 한다. 바울은 기쁨으로 간구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5절). 우리 하나님의 손에서 모든 자비로움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는 기도할 때 힘을 얻게 되며, 찬양할 때 마음이 넓어지게 된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3절). 바울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1)그는 그들로 인해서 가지게 된 위로 때문에 감사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5절). 복음에서의 교제는 선한 교제이다. 진심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바로 그날부터 그 안에서 교제를 가진다.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진실로 중생한 사람이라면 바로 중생한 그 날부터 복음의 모든 약속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제까지, 처음에 잘 시작한 사람들이 시작할 때 얻은 것을 붙잡고 끝까지 간직할 때 그것은 사역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2)그들에 대해 가진 확신 때문에 감사했다(6절).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그리스도인에게 큰 위로가 된다. 또한 우리는 기쁨 때문만이 아니라 소망 때문으로도 찬양을 드리게 되곤 한다. 바울은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6절). '너희 속에 착한 일'. 즉 세상에 기독교를 세우신 이가 세상 끝날까지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특정한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것이 어디서 시작되었건 은혜의 사역의 분명한 성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은혜의 사역은 다음의 특징을 갖는다.
①은혜의 사역은 착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주며, 하나님의 기쁨에 합당케 해준다.
②이 착한 일이 어디서 시작되었건 그것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이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 우리는 본질상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므로 우리 스스로 그 일을 시작할 수 없다. 도대체 죽은 자들이 어떻게 스스로 생명을 일으키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③은혜의 사역은 오직 이생에서 시작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생에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④만일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 일을 수행하시거나 완성시키지 않으셨다면 그 일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은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⑤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행하신 사역을 완성시키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해야만 한다.
⑥은혜의 사역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이 이르를 때에야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그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실 때, 이 일은 완성되어질 것이다.
Ⅲ. 바울의 큰 사랑 1:7,8
다음의 사실에서 볼 때 바울이 그들에 대해서 뜨거운 사랑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7절).
(1)그의 마음에 그들이 있었던 이유는 이러하다.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즉 그들은 바울이 그들에게 전해주었던 하나님의 은혜에 참예한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사역자들을 존경하게 만들어 준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들의 사역자들의 도움에 의하여서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것으로 "너희가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로서 나와 함께 수고와 고난에 동참하였다"를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동정과 관심을 가지고, 그리고 자발적으로 그를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의 고난에 참예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 짐을 함께 나누어진 그들은 상급에도 함께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가 매인 가운데 있을 때에도 그를 따랐으며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있어서도 그를 따랐기에 바울은 그들을 사랑하였다. 그들은 사도가 그랬던 것처럼 복음을 변명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입장을 명백히 하고자 했다. 함께 고난을 받으면 서로 사랑하게 된다.
(2)그들이 그의 마음에 있었음은 다음의 사실에서 입증된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이 말씀에 의해서 그들이 그의 마음에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는 그가 그들에 대해 좋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가장 좋게 생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일이다.
(3)바울은 이 사실의 진실됨을 하나님을 들어 증거하고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8절). 사도는 자신의 마음에 그들이 있었기에 그들을 사모하였다. 그는 '그들로 인해 기뻐하였다(4절).' 이는 그가 그들에 대해서 보고 들은 선한 일들 때문이었다. 그는 그들 가운데서 재능있는 부유한 자들 뿐만 아니라 지극히 천하고 가난한 자들에까지 '그들 모두를 사모하였다.' 사모하되 '지극히 사모했다.' 또한 그들을 사모함에 있어 그는 그리스도 자신이 가지고 계셔서 귀한 영혼들에게 보이셨던 그 부드러운 관심을 쏟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리했다. 바울은 무슨 일에서나 그리스도의 추종자였다. 그러므로 모든 선한 사역자들도 그렇게 사랑하시고 동정하신 영혼들을 우리도 사랑하고 동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일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을 들어 증거한다.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즉 "너희가 그 사실을 알든 모르든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그것을 아신다"는 것이다.
Ⅳ. 빌립보 성도들을 위한 기도 1:9-11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그는 종종 그의 친구들로 하여금 그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무엇을 간구했는지를 알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이 스스로 간구해야 할 바를 알게 되었으며 바울이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받고자 하는 소망으로 더욱 격려받을 수 있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기도를 드렸다.
(1)그들이 풍성한 사랑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했다. 너희 사랑을…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9절). 은혜가 아주 풍성한 자들 일지라도 계속해서 점점 더 풍성해질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가장 성숙된 상태에 있을지라도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2)그들이 지식과 총명의 사람들이 되어지도록 기도했다.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다. 지식과 확고한 판단이 없는 강한 열정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히 서지 못하게 할 것이며 때로는 유익보다는 해를 더 입게 할 것이다.
(3) 그들이 분별력 있는 사람들이 되어지도록 기도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10절) (혹은 난외주에 있는 것처럼 '같지 아니한 것을 시험하며'). 즉 지극히 선한 것을 시험을 통해 입증하며 다른 것들로부터 그것의 차이점을 분별해낸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진리들과 율법들은 지극히 선한 것들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시험해 볼 필요가 있다.
(4) 그들이 정직하여 곧은 마음의 소유자들이 되도록 기도했다. 진실하여. 진실함은 우리의 복음의 완성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나타낼 때 우리는 진실할 수 있는 것이다.
(5)그들이 허물없는 사람들이 되도록 기도했다.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여기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너희가 범죄할 성향을 지니지 말기를, 또한 하나님에게나 형제들에게 범죄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기를 기도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지막 날까지 계속 허물이 없어야 하겠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의 날에 그렇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6)그들이 유익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되도록 기도했다(11절).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우리의 열매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열매를 위해서는 하나님께 간구해야만 한다. '가득하여'라는 말을 생각하여 보자. 의의 열매들을 맺음으로 너 자신이 비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 말라. 왜냐하면 그 열매들로 가득 채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열매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들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풍성한 열매로서 우리 자신의 영광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선할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 선한 일들로 풍성하게 될 때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많은 영광을 받으신다.
Ⅴ. 바울의 고난 당함이 그들을 실족케 하지 않도록 염려함 1:12-20
바울은 당시 로마에 수감 중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울의 사역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자기들도 그와 동일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지나 않을까하여 이 가르침 받은 것을 겁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바울은 십자가로 인한 그들의 실족케 됨을 제거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겪은 어렵고 암담한 고난의 상황을 설명해 간다.
1. 복음의 대적자들에게 고난받음(12-14)
그는 복음을 대적하기로 서원한 자들에 의해서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복음을 막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은 선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고난은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2절). 사도가 구속이라고 하는 아주 큰 악에서부터 복음의 진보라고 하는 아주 큰 선을 끌어낸 이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라고 하겠다.
(1) 그것은 복음 밖에 있던 자들에게 복음을 알게 해주었다.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3절). 바울의 고난은 그를 궁정에까지 알려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일이 궁정에 있는 사람들 중 몇 사람으로 하여금, 바울에게 고난을 가져다 준 그 복음이 무엇인가를 묻게 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결코 복음에 대해서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매임이 시위대 안에 나타나게 되었을 때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도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2) 그것은 복음 안에 있던 자들을 담대하게 해주었다. 그의 대적들은 그의 고난으로 놀랐으나 그의 친구들은 그의 고난으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안에서 신뢰하므로(14절).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바울이 투옥된 것을 보았을 때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일에 기가 꺽이기는 커녕 그 일로 인해 더욱더 담대하게 되었다. 말일 강단에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은 기꺼이 그 고난을 감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그들은 아주 좋은 동역자와 함께 있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바울이 고난 중에 가졌던 위로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란 자신들을 견디게 해줄 뿐 아니라 지지해주는 훌륭한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매임을 인하여 신뢰하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낙담케 하고자 했던 적들의 의도는 오히려 전도되었고 그들은 담대함으로 나아갔다.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그들은 최악의 사태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기에 오히려 모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2. 거짓 친구들로부터 고난받음(15-17)
바울은 대적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거짓 친구들로부터도 고난을 받았다(15,17절). 어떤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15절). 교회들 가운데 바울의 명성을 시기하여 그를 모함으로 축출코자 했던 자들이 있었다.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줄로 생각하여(17절). 그러나 바울의 고난으로 인해서 더욱더 활기있게 그리스도를 전파한 또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15,16절). 이와 같이 고난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해주었다.
3. 고난 중에서 평안(18-20)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바울은 매우 평안하게 되었다.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절). 인간들의 행동 원리들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그것은 우리의 영역 밖이다. 바울은 자유롭게 복음을 전파한 자들을 시기하기는커녕 참으로가 아니라 외모로라도 복음을 전파한 자들의 그 복음 전파를 기뻐하였다.
(1) 복음 전파는 인간 영원의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것은…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19절). 하나님은 악에서도 선을 끌어내실 수 있다. 투기와 분쟁과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자들, 그렇게 해서 신실한 사역자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고자 한 자들의 받을 상급은 어떤 것일까? 또 참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아니하고 외모로 한 자들은? 이러한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할는지 모른다. 그래서 바울은 그 안에서 또한 그의 구원에 이르렀다고 기뻐한 것이다.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19절). 사람들의 간구는 그들의 사역자들에게 성령의 도우심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전할 때 뿐만 아니라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도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2) 복음 전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커다란 바램은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자기들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바란다. 그들은 자기들의 영혼의 능력 뿐 아니라 자기들 몸의 모든 지체를 가지고 기꺼이 그의 계획에 봉사코자 한다.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온전히 담대하여…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그리스도인들의 담대함은 그리스도의 존귀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자기들의 바램으로 삼는 자들은 그것을 자기들의 기대와 소망으로 삼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진실로 추구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성취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의 몸에서 존귀히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살든지 죽든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가운데 그를 존귀케하든, 아니면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당하다가 죽게 됨으로 그를 존귀케 하든 어느 것으로든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유용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
Ⅵ.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바울의 자청 1:21-26
우리는 여기서 축복받은 바울의 생사관을 보게 된다. 그의 사는 것은 그리스도였다. 그래서 그는 죽는 것도 유익하게 여겼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은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특징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우리 삶의 종국이 되어져야만 한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여기는 모든 사람들은 죽는 것도 유익해야 할 것이다. 죽음은 세상적인 속세의 사람에게 있어서 커다란 손실로 간주된다. 그러나 선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유익한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삶의 모든 악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최고의 선을 소유케 해준다. 어떤 사람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21절)는 이 바울의 고백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즉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를 온전히 알게 되는 것 외에는 얼마나 살지 혹은 언제 죽을지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다."
1. 두 선한 것 사이에 끼임(22-24)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22절). 즉 이것이 '그리스도일진대'라는 말이다. 바울은 만일 자신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진보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면 자신이 잘 수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한 그리스도인과 선한 사역자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한 그들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22,23절). 그것은 두 악한 것 사이에 끼인 것이 아니라 두 선한 것 사이에 끼인 것으로서 축복된 곤경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느냐 아니면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느냐 하는 두 축복들 사이에서 곤경을 겪고 있었다.
(1) 바울은 죽음을 동경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죽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그는 동경했던 것이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것'(23절)이 이러한 사실을 잘 나타내 준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는 사실은 선한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을 바라게 만든다. 만일 죽음 없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없다면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리스도와 하늘의 가치를 아는 자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는 것이 더욱 좋다는 사실을 당연히 인정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면 죄와 유혹, 그리고 슬픔과 사망과는 영원히 작별하게 될 것이다.
(2) 바울은 교회의 봉사를 위하여 이 세상에 다시 더 살기를 선택했다(24절). 다음 구절이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의 갈등은 단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느냐 아니면 하늘에서 낙을 누리느냐 하는 사이에 있었다.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는 오히려 반대와 역경이 많은 이 세상에 머물기를 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상급으로 인해 있게 될 만족은 잠시 덮어 두었다.
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25절).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를 매우 크게 확신했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것을 최선의 것으로 베풀어주시는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무엇이든 최선의 것으로 베풀어주시는 것을 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해야만 한다. 사역자들은 무엇을 위해서 계속 있는 것인가. 이는 '우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 즉 우리 거룩함과 위로의 더 큰 진보와 위안을 위해서라고 하겠다. 우리의 '믿음과 믿음의 기쁨'을 증진시키는 것은 하늘로 가는 우리의 길을 대단히 크게 진보시켜준다. 믿음이 클수록 기쁨도 크다. 그리고 믿음과 기쁨이 클수록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로 또한 더욱 크게 진보되어 가는 것이다.
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기쁨(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26절). 빌립보 성도들은 그를 보게 될 소망과 자기들 가운데서 그가 더욱 수고해 줄 것을 인하여 기뻐하였다. 우리의 모든 기쁨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선한 사역자들로 인한 우리의 기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기쁨이어야만 한다.
Ⅶ. 절도있는 생활과 변함없는 생활 1:27-30
1. 절도있는 생활을 권고함(27)
바울은 그들에게 절도있는 생활을 권고한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절). 그리스도인은 모든 면에 있어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는 자답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할 때 우리의 신앙고백은 더욱 돋보여지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나는 너희의 일을 듣고자 한다." 우리의 신앙이 결코 우리의 사역자들의 손에 매여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역자들이 있으나 없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가까이 계신다. 바울은 그들이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한다. 복음의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은 그것을 위하여 힘쓰게 된다. 복음에 대항하는 많은 반대자가 있다. 그래서 분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잠자다가 지옥에 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에 갈 사람은 자기 주위를 살펴보고 부지런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통일과 의견의 일치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다. 즉 제각기 힘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일심과 한 뜻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다. 또한 확고부동한 태도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다.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신앙을 고백한 자가 마음의 정함이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며 물과 같이 불안정하게 요동한다면 이는 곧 신앙에 대한 모욕이다.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힘쓰는 자들은 그것에 견고히 서야만 한다.
2. 고난 중에서의 용기와 변치말 것을 권고함(28-30)
바울은 그들에게 고난 중에서도 용기를 잃지 말 것과 불변할 것을 권고한다.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28절). 우리는 어떤 반대에 직면하게 되든지 그것들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핍박은 '멸망의 빙거(憑據)'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은 멸망의 운명으로 정해진 자들이다. 그러나 핍박받는 것은 구원의 증표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분명한 증표인 것은 아니다. 많은 위선자들이 자기들의 잘못된 신앙 때문에 고난을 받았던 것이 그 예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29절).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도 가치있는 선물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욕을 당하고 손해를 입되, 항상 순수한 순교자의 정신으로 그러한 것들에 임한다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큰 선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즉 "내가 고난받는 것을 너희가 보았으며 또 내게서 이제 듣는 바와 같이 너희도 같은 태도로 고난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고난받는 것이 아니라 명분이 있는 것이며, 명분 뿐 아니라 정신이 담긴 것으로서 그 정신은 순교자를 만드는 것이다.
'빌립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립보서 3장 - 매튜헨리 (0) | 2014.04.02 |
---|---|
빌립보서 2장 - 매튜헨리 (0) | 2014.04.02 |
빌립보서 4장 - study (0) | 2014.04.01 |
빌립보서 3장 - study (0) | 2014.04.01 |
빌립보서 2장 - study (0) | 2014.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