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이스라엘에 대한 권면 12:1-6
(1) 에브라임은 곤경에 처했을때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함으로 어리석은 죄를 범하였다고 선고를 받았다(1절).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에브라임 사람들은 엄숙한 동맹에 의해 자기 세력안에 앗수르인을 확보했다고 생각했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그러나 그들은 강력한 군주가 더이상 자기 말에 예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될 것이다. 그들은 많은 공물에 의해 애굽을 동맹국으로 확보했다고 생각했다.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그러나 애굽사람들은 공물을 받고 대의를 저버렸다.
(2)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론하셨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론하시고. 이는 유다가 비록 얼마전에 하나님과 함께 다스렸고 성도들에게 신실하였다할지라도 이제 그는 타락되어 가기 때문이다.
(3) 에브라임과 유다는 그들의 조상 야곱을 상기하였다. 이는 그들로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시겠다고 경고하면서 이 백성을 야곱이라고 부르셨다(2절). "그러나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그 사랑하는 이름을 어떻게 잊겠느냐?" 하나님과 야곱사이에 있었던 것에서 우리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배울수가 있다. 그는 야곱의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여호와는 곧 야곱 자손의 전세대를 통한 기념 칭호였다(5절). 여기에 두가지 기념 칭호가 나타났는데 이로 말미암아 그는 다른 모든 자들과 구별되며, 우리에게 인정받으신다. '여호와'란 "그는 자존하시다"는 의미이다. 그는 여호와이시다.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말과 같다. 이것은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도 계시며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이다.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이며 독특한 이름이다. '만군의 하나님'이란 곧 만유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를 의미한다. 그는 그의 명령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무리를 부리시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를 부르는 호칭과 속성은 그를 기억케해주는 것이므로, 그를 기억하기 위하여 따로 형상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야곱의 하나님이신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너의 하나님이시니라. 너는 그에게 반역하였으므로 회개하고 신앙으로 그에게 돌아서라. 너의 하나님이신 그에게 돌아와 그를 사랑하고 복종하며 그를 의지하라."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가난하고 곤고한 자를 구제하고 원조함으로 인애를 지키며, 그들에게 마땅히 주어야할 것을 지불함으로 공의를 지켜라. 모든 자에게 친절하라."
Ⅱ. 죄에 대한 책망 12:7-14
(1) 죄에 대한 책망 : 에브라임은 우상숭배를 하여 그의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켰고 공의와 공정의 법을 깨뜨렸다고 책망받았다.
1) 저는 상고여늘. 난외주는 그것을 고유명사로 보아 "그는 가나안 사람이다"라고 해석한다. 가나안 사람은 야곱과 이스라엘에게서 지배받을 가치도 없는 존재이다(참조. 암 9:7). 그러나 가나안은 때때로 상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에 에브라임은 교역함에 있어서 속인 것으로인해 책망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을뿐만 아니라 상업으로 부유해지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만일 그들이 공정한 상인이었다면 전혀 책망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가나안 사람과 같이 그들이 거래하는 모든 일에서 속이는 상인이었다. 에브라임은 수많은 술책과 기만으로 사취하였다.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2) 에브라임은 이 죄에 대해 자신을 정당화시킨다(8절). 에브라임은 일반적인 사취로인하여 기소를 받고있다. 그는 그 혐의를 부인하지 않지만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한다. 그는 속임수 저울을 사용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호세아가 그의 사취에 대하여 말하였으나 그는 자신이 아무해도 끼치지 않았다고 자신하였다.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육적인 마음은 종종 그들의 세속적인 번영과 성공으로 인하여 그들의 악한 방법을 자랑스럽게 여기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이다. 에브라임이 여기서 말하는 모든 말은 그의 어리석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재물을 실제로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본래 허무한 것이기 때문이다(잠 23:5). 우리가 가진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소용을 위하여 재물을 가진 것처럼 "내가 재물을 얻었다"고 말하나 우리는 청지기로서만 실제로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악한 방법으로 축재하는 것이 우리에게 해롭지않으며 우리를 안전하게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참조. 사 47:10; 잠 1:32). 그는 자신이 좋은 평판을 유지하였다고 변호한다. 육적인 마음은 그들의 이웃의 좋은 평판을 근거로 자신을 좋게 여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아무도 정죄치 못하도록 교묘하게 부정을 행하였다. 무릇 나의 수고한 중에서 죄라할만한 불의를 발견할 자 없으리라. 즉 아주 악한 것은 없고, 단지 용서할수 있는 매우 경미한것 뿐이다. 그것은 흔히있는 부정이며 관습적인 것이고, 모든 사람이 행하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을 더 악하다고 생각할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보듯이 보시지 않으신다. 사람이 판단하듯이 판단하지 않으신다. 그는 또한 우상숭배로 인하여 책망을 받는다. 즉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한 죄이다. 그것은 헛된 일이다(11절). 저희는 과연 거짓되도다. 저희는 이익을 주지 못하고 속일 뿐이다. 호세아는 우상숭배로 인하여 악명높은 두장소를 언급한다.
① 요단건너편에 있는 길르앗은 앞에서 언급한 죄(호 6:8)로 인하여 낙인 찍혔다.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그것은 놀랄만한 일이며 슬피 애곡할만한 일이다.
② 길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길갈에서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렸으며(호 9:15) 거기서 그들의 제단은 마치 씨뿌릴 밭이랑에 쌓인 인분더미 같았다(호 8:11).
(2) 죄에 대한 진노의 위협 :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하게 하기를 명절일에 하던것 같게 하리라(9절). 즉 내가 너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장막에 거하면서 사십년간 방황하던 때와 같은 상태에 있도록 하겠다. 그것은 광야에서 정해진 기간이었다. 에브라임은 죄라 불릴만한 불의가 자기에게 없다고 생각했다(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라할만한 불의가 그에게 있으며 만일 그가 회개하여 고치지 않는다면 그 불의가 발견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에브라임이 격노케함이 극심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몰수된 생명을 탈취하실 것이다. 그 주께서 그 피로 그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즉 하나님께서는 그를 죄없다 아니하실 것이다. 그의 피가 그 자신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삼하 1:16). 저의 수치를 저에게 돌리시리라.
(3) 이전의 자비에 대한 회고 : 이전의 자비는 배은망덕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위해 내려진 것이다.
1) 하나님은 그들을 비천한 장소에서 끌어올리셨다. 에브라임이 부유해졌을때 그는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이다'(신 26:5)는 고백을 망각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해마다 그들에게 고백하도록 규정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그것을 상기시키신다(12절). 그들은 그 조상 야곱의 명예뿐만 아니라 그가 라반의 가련한 종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했다. 야곱은 악한 형을 피해 '아람들로 도망했고' 거기서 '아내를 얻기위해' 탐욕스런 삼촌을 섬겼으며 '양을 쳤다.' 이는 그에게 재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야곱은 양을 치며 장막에 거주하는 검박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거짓 저울은 그 후손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그를 보호하셨다. 이것은 그와 그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를 찬송하게 하며 동시에 그들의 창시자요 시혜자이신 하나님께 배은망덕하게 행했다고 하는 오명을 그들에게 돌리게 한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불행에서 구출하셨고 빈궁과 종살이로부터 건지셨다(13절). 하나님은 선지자 곧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셨다. 모세는 여수룬의 왕(신 33:5)으로 불리지만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한일은 하나님의 지시와 그의 말씀의 권능에 의해 선지자로서 행한 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배은망덕한지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에 있어서 나타난다. 그들은 그의 선지자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했다. 그들은 선지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에 부응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셨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그들의 성장시에 그들의 교육을 보살피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실례는 10절에 나타나 있다.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을 인도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에게 계속 말씀하셨다.
(4) 죄와 진노가운데 임하는 큰 자비(일부 학자가 생각하듯이, 9절) : "나는 애굽 땅에서부터 네 하나님 여호와된 자니라. 나는 그때 거기서 너를 내 백성으로 삼았고 그 이래로 일련의 끊임없는 자비의 섭리를 통해 네 하나님으로 자인해 왔노라. 그리고 나는 지금도 네가 비록 악하다하더라도 네게 대해 자비를 품고 있노라. 그래서 나는 너로 장막에 거하게할 것이니라. 그것은 광야에서 거하던것 같지않고 명절일에 거하던것 같을 것이니라." 즉 그것은 그 기쁨으로 지내는 초막절 같을 것이다(레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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