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하나님의 인자하심 11:1-7

 

(1)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자비로우시다.

1) 그는 이스라엘이 어렸을때 그들을 사랑하였다(1절). 이스라엘이 어렸을때에 내가 사랑하여. 그들이 애굽에서 처음에 한민족으로 번성하기 시작했을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의 사랑을 베푸시고 그들을 선택하심은 그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다(신 7:7,8). 그들이 어린아이처럼 무력하고 어리석으며, 추방당하며 의지할데 없는 어린아이처럼 되었을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다. 성숙한 자들, 아니 나이를 많이 먹은 자들도 가끔 그들이 어린시절에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회상해야 한다.

2) 하나님은 그들을 종되었던 집에서 건져내셨다.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헤롯이 죽자 예수와 그의 부모를 애굽에서 불러냈을때,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말한다(마 2:15). 애굽에서 그리스도를 부르심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인 노예상태에서 그에게 속한 그 모든 사람들을 불러내실 것에 대한 상징이었다. 어린아이가 이끄는 끈으로 가르침을 받듯이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하나님께서는 가정교사와 같은 의식법의 규례로써 그의 계명의 길로 걷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들에게 어떤 잘못이 있을때 그는 그들의 의원이 되셨다. 내가 저희를 고치는줄을. 하나님은 온화하고 너그러운 방법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인도하셨다(4절).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첫째, 그는 사람의 줄로 이끄셨다. 즉 인자한 사람들이 끄는 것처럼 그러한 줄로 사람들을 다루셨다.

둘째, 그는 사랑의 줄, 또는 사랑의 밧줄로 이끄셨다. 이 단어는 전자보다 더 강한 줄을 의미한다. 그는 그들을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내가...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이것은 자기 가축에게 자비로운 선한 농부의 보살핌같은 것을 암시한다. 선한 농부라면 쉴새없이 심한 노동을 시킴으로 가축을 곤고케 하지않을 것이다. 애굽에서 그들은 혹사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해내어 농부가 자기 가축에게 멍에를 풀어주고 꼴을 먹이듯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진영주위에 만나를 내리셨다. 즉 하늘로부터 천사의 양식을 주셨다.

(2)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감사치 않았다. 그들은 귀머거리였고 하나님의 음성에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우상을 좋아하였고 그것을 숭배하였다. 우상숭배는 처음부터 범한 죄였으며, 처음부터 내내 그들을 매우 쉽사리 사로잡은 죄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무시했다. 내가 저희를 고치는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감사치않는 것의 밑바닥에는 무지가 있다(호 2:8). 그들에게는 배반하려는 강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것이 가장 날카롭게 책망받고 있는 제목이다(7절).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그들이 물러갔다는 것은 언제라도 범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죄를 범하려고 결심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들의 마음은 죄를 행할 결심으로 완전히 굳어졌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회개와 개혁을 싫어하였다. 저희가...돌아오기를 싫어하니(5절).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사역자들은 그들이 반역했던데서 하나님께로, 즉 비참한 타락의 늪에 빠졌던데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부름은 공허한 외침에 그치고 말았다.

(3)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자 애굽에서 건져내셨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려고 하지않았다(5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비록 그땅이 매우 비참한 노예의 집이기는 하지만 그 애굽 땅으로조차 돌아가지 못할 것이니라. 왜냐하면 앗수르 사람이 그들의 임금이 될 것이고, 그는 바로가 행한 것보다 더 그들을 가혹하게 부릴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들에게 가나안을 주신 하나님은 거기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6절). 칼 곧 외적의 칼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이길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계속하였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그의 심판을 계속 내리셨다.

 

Ⅱ. 진노가운데 있는 자비 11:8-12

 

(1) 이스라엘 형편에 대한 하나님의 심중의 쟁론, 즉 공의와 자비간에 쟁론이 벌어진다. 거기서 승리는 명백히 자비의 편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우리안에 있는 것과 같은 갈등이 하나님안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가 얼마나 중한 벌을 받아 마땅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인간의 방법에 따라 표현한 것이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1) 공의가 이스라엘에 대해 내놓은 제안 : "어쩔 도리가 없는 아들처럼 에브라임을 포기해버리라. 어린양을 사자에게 내주어 갈기갈기 찢기듯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 내어주라. 그들을 아드마같이 놓으며 스보임같이 두라." 이 두도시는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당한 도시이다.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은 이와같이 버림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와같이 그들을 다루신다해도 전혀 그들에 대해 잘못하시는 것이 아닐 것이다.

2) 이 제안에 대한 자비의 반대 :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수 있으랴?" 온유한 아버지가 스스로 다짐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못된 아들을 어떻게 버릴수 있겠느냐? 그래도 그는 내 아들이므로 나는 그렇게 할수 없느니라. 그들은 나에게 친근한 백성이었고 그들중에 선한 자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회개하고 고칠지도 모르느니라. 그런즉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할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마치 이스라엘에 대한 동정으로 인하여 이상한 애정이 꿈틀거림을 의식하기라도 하는양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오랜 쟁론끝에 자비는 심판에 대해 승리를 거두고 기뻐한다(9절). 집행유예가 더 오래 연장될 것이라고 선포되고 있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그들은 진멸당하지 않고 고침을 받을 것이다. 이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 나는 네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인간의 분노는 사람을 지배하나 하나님은 친히 진노의 주인이시다. 그가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된다.

(2)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들을 위해 계획한 선을 그들이 받을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격을 주실 것이다(10,11절). 저희가...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이것은 열지파에 대한 언급으로 부분적으로 에스라 시대에 두지파와 함께 돌아온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하여 성취되었지만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복음교회에서 더욱 완전한 성취를 이루었다. 그들은 부름을 받고 모였다. 이 부름은 사자의 포효소리가 숲속의 모든 짐승들에게 미친 것과 같은 그러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복음이 그 마음에 이르게 된 자들은 떨며,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부르짖었다. 그때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구원을 받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그때 이 약속은 성취되었다.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이것은 가나안 서편에 있는 이방인들의 부름을 가리키는것 같다. 왜냐하면 복음이 퍼져나간 것은 특히 그 길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19절에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행하여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역사된 강한 표적과 기사를 언급하고 있다. 그때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면서 왔다. 그리고 육적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에 흩어졌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효과적으로 소집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11절). 저희가...떨며.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가 날듯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매우 신속하게 올 것이다. 서로 매우 멀리있던 자들이 그리스도안에서 만날 것이며, 교회안에서 연합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앞에서 갖는 우리의 거룩한 떨림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고 우리를 그에게서 떠나지 않게할 것이다. 그가 사자처럼 포효할때 종들은 떨며 그에게서 도망하나 자녀들은 떨면서 그에게로 도망한다. 그들의 복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내가 저희로 각집에 머물게 하리라(11절). 복음의 부름가운데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은 복음교회에서 처소와 일컬음을 얻게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안에 거하게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집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안에서 편안히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저택을 갖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3)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의 반역은 앞에 언급된 약속의 대상이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암시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에브라임과 이스라엘로 말하면 그들은 거짓과 궤휼로 하나님을 에워쌌기 때문이다.

(4) 유다의 순수성에 대한 훌륭한 칭찬은 열지파의 패역을 가증시키는 요소가 되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제외시키는 요소가 되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제외시키고 유다에 대해서는 자비를 예비하신 이유를 나타내는 것이 되기도 한다(참조. 호1:6,7). 유다는 하나님과 함께 다스린다. 즉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존귀이며 주권이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의 길로 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하늘에서 강한 권리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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