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네 병거에 대한 이상 6:1-8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이것은 그가 본 일곱번째 이상이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네 병거'는 서로 다른 색깔의 말들에 의해 이끌려지고 있었다(1-5절). 어떤이들은 '네 병거'를 네 제국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또한 5절의 '하늘의 네 바람'을 다니엘7:2절의 '하늘의 네 바람'과 연관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여기서 '홍마들'은 바벨론 제국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흑마들이 이끄는 두번째 병거는 바사 제국이다. 그 나라는 바벨론을 치기위해 북편 땅으로 나갔으며, 바벨론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할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포로된 자리에서 자유케함으로 '북방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 헬라 제국인 '백마'는 '흑마' 뒤를 따라 북편 땅으로 갔다. 즉 그 나라는 바사를 무너뜨렸다. 헬라 제국을 정복한 로마 제국은 '어룽진 말'로 '남편 땅으로 나갔다'고 했다. 이는 남방에 있던 애굽이 로마 제국에 의해 정복된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룽진 말들과 함께 매인 '건장한 말들'은 후에 스스로 일어선 무리들로 고트족과 반달족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일반적으로 이 이상은 이 낮은 세상에서의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될수 있다. 천사들은 종종 '하나님의 병거'로 불리웠다(시 68:17). 민족들과 교회들에 대한 하나님의 다양한 섭리들은 여러가지 말들의 색깔로 표시되고 있다(계 6:2,4,5,8).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모든 사건의 원천이며 '놋산'처럼 움직일수 없는 것이다. 그 병거들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작정하신 것들을 시행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팔로 산을 안을수 없듯이 우리의 한정된 지식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할수 없으며, '놋산'을 옮길수 없듯이 하나님의 뜻하신바를 변경시킬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는 마치 병거와도 같은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안에 왕처럼 타고 계신다. 그의 섭리는 병거처럼 신속히 움직이며, 병거가 마부에 의해 조종되듯이 그의 무한한 지혜로 움직여진다. 거룩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수행하는 자들이며 하늘의 군대로서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는 자들이다. 그들은 '병거' 혹은 병거를 끄는 말들로, 대단한 힘과 능을 지니고 있어서 선지자들을 하늘로 옮겨가기도 하며 또는 땅에서 보호하기도 한다. '첫째 병거'를 끄는 말들은 '홍마들'로 이는 전쟁과 피흘림을 뜻한다. '둘째 병거'를 끄는 말들은 '흑마들'로 전쟁의 음울하고 슬픈 결과들을 의미한다. '셋째 병거'를 끄는 말들은 '백마들'로, 어둡고 음울한 시대가 지나간후에 평안과 평화, 그리고 번영의 시대가 돌아올 것을 의미한다. '넷째 병거'를 끄는 말들은 혼합된 색으로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었다. 이는 사건들이 뒤얽힘으로써 번영의 날과 재난의 날이 서로 교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늘의 바람인데. 이 바람은 사방에서 임의로 부는 듯이 보인다. 아니면 오히려 이는 '온세상의 주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즉 윗 세상에서는 복되게도 그의 영광을 보며, 이 낮은 세상에서는 자신들의 용무인 그의 영광을 섬기는 일을 하는 천사들이라고 할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는 경탄할만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그 섭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6절). '흑마'가 어둡고 슬픈 사건을 수반하고서 나가자 즉시 '백마'가 애통하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면서 '그 뒤를 따랐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교회들에 대해서 행하시는 것도 그와 같다. 즉 흑마가 나가면 곧 백마가 그 뒤를 따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환난이 넘치는 곳에 위로가 더욱 넘치게 된다.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은 모두 '넷째 병거'에 매어있었다(3절). 그런데 그것들은 처음에는 '남편 땅'으로 나가다가 후에는 '땅을 두루다니고자 하였다'(7절). 만일 우리가 땅에 두루다닌다면 우리는 섭리의 색깔이 검지도 희지도 않으며 잿빛 혹은 회색, 즉 검은 색과 흰 색이 섞인 것임을 발견하게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그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섭리하시는 모든 일들을 기뻐하신다(8절).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내 마음을 시원케하였느니라. 이들 특별한 심판을 나타내는 '흑마들'과 특별한 구원을 나타내는 '백마들'은 모두 '북편 땅으로 나간 자들'이다. 이들이 '북방에서 내마음을 시원케하였다.' 즉 그것은 최근들어 교회에 대해 행해진 것중 가장 두드러진 사건이었던 것이다.

 

Ⅱ.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씌움 6:9-15

 

하나님께서는 과거 각시대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그의 교회에 말씀하셨다. 본장의 앞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선지자 자신만이 볼수 있는 이상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여기에 후반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는 표적 혹은 모형으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그것은 교회의 제사장되시며 왕되신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다.

(1)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씌우라는 명령이 주어졌다(10,11절). 구약에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두사람이 나타나있는데 이들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군대 장관이었던 여호수아와 우리의 신앙고백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이다. 그들은 그들 각각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해낸 구원자이자 지도자가 되었던 자들이다. 여호수아는 결코 면류관을 쓸 야망을 가지지않은 사람이었으며, 백성들 또한 자기들 위에 면류관을 쓴 사람을 두려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는 마치 그가 왕이라도 되는양 그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도록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스룹바벨은 경건하고 슬기로운 사람이었기에 결코 이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지 않았다. 바벨론으로부터 온 유대인들, 즉 사로잡힌 자중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온 몇사람이 하나님의 전에 선물을 가지고왔다. 아마도 그들은 재정이 부족해서 성전건축이 느리게 진척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하나님의 전을 섬기고자 금과 은을 선물로 가지고왔던것 같다. 그들은 자기들의 예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오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세우사 그들과 그 예물을 받으셨다. 이로써 포로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표적을 볼수가 없으며 더이상 선지자도 없다"라고 자주 불평했을 그들은 큰힘을 얻게되었을 것이다. 그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서 그들을 만나야 하였는데 요시아는 아마도 성전의 보물을 맡은 자였던것 같다. 선지자 스가랴는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워주어야 했다(11절). 은과 금으로 각각 두개의 면류관이 준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이들은 은 면류관은 그의 제사장적 위엄을, 금 면류관은 그의 왕적 위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태양은 힘있게 돋을때 금처럼 빛난다. 또한 우리는 밝게 비치는 달빛을 은빛이라고 부른다. 태양과 달을 숭배하던 자들은 구속주의 금 면류관, 은 면류관앞에 엎드러지게 될것이며, 태양과 달 또한 그분앞에서 부끄러워하며 당황하게될 것이다.

(2) 여호수아가 이와같이 면류관을 쓰게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가랴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하여야 했다.

1) 때가차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같은 위대한 대제사장을 세우실 것이다. 여호수아는 단지 오실이의 표상이며 그의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다(12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기서 '자기 곳'이란 곧 다윗의 성읍을 뜻한다. 비록 그 가문이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있지만 봄이 돌아오면 잊혀졌던 뿌리에서 꽃이 피어나듯이, 그 가문에서 순이 돋아날 것이다.

2) 여호수아가 성전건축에 있어서 적극적이었듯이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은 영적인 성전인 복음교회의 유일한 건축자가 될것이다.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3)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영광이 짐이긴 하나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이가 감당하지 못하실만큼 무거운 것은 아니다. 십자가는 그의 영광이었기에 그는 그것을 짊어지셨다. 면류관 역시 지극히 큰영광이기에 그는 그것을 취하신다. 그가 하시고자 하는 일은 참으로 이스라엘의 영광이 될 것이다. 어떤이들은 13절의 '영광도 얻고'를 "그가 영광을 높이 쳐들고"라고 읽기도 한다. 즉 그는 티끌가운데서 영광을 세우실 것이다.

4) 그는 보좌에 앉으사 그의 보좌에서 제사장과 왕이 되실 것이다. 보좌는 위엄과 통치 모두를 즉 광대한 권세와 함께 높여진 영예를 나타낸다. 제사장되신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다. 그러나 그는 권세를 가진 자로서 그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서 그일을 행하신다(히 8:1).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을 드리도록 정해지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실 권위를 가지고 계시다. 만일 우리가 그가 우리를 다스리는 것을 원하지않는다면 그는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그의 보좌를 준비하셨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그것을 통해 어떤 유익을 얻고자한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가운데 그의 보좌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이 왕은 자기 보좌위에서 제사장이 되실 것이다. 왕으로서의 위엄과 권능을 지니신 그는 또한 제사장의 온유함과 소박함을 가지실 것이다.

5)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즉 '여호와'의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사이에, 아버지와 아들사이에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있게될 평화에 관한 의논이 있을 것이다. 어떤이들은 그것이 당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서로 나뉘어져있는 왕과 제사장이 교회와 국가에 있어서의 평화의 번영을 유지하고자 서로 의논하는 유대 국가의 이전 정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6) 복음교회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사이에 복된 제휴가 있게될 것이며, 이로써 그들은 자기 보좌위에서 제사장이 되실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치의 중심이 되시는 그리스도안에서 만나게될 것이다. 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15절).

7)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됨을 확인하게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 약속, 즉 먼데있는 사람들이 와서 그들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것을 도우리라는 것이 그 표적이었다. 이 일은 이제 매우 속히 성취될 것이었다(스 6:13,14).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 "즉 너희가 만일 선한 열심을 품고 스스로 그 일을 하고자 하기만 한다면 외국인들이 성전건축하는 일을 도울 것이다."

(3) 사용되어진 면류관들은 여호수아에게 완전히 주는 것이 아니라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안에 두어야' 했다(14절). 그것들은 성전 보고에 보관되든지 혹은 유대인들의 전통대로 메시야에 대한 약속의 증거로 모든 사람이 볼수 있도록 성전 창문에 걸어두든지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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