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금식에 관한 질문 7:1-7

 

(1) 여러사람이 전에부터 자기들이 행해왔던 매년 오월에 금식하는 것을 계속할 것인가의 여부에 대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질문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그 질문이 아직 바벨론에 머물고있는 자들에 의해 제기된 것인지 아니면 5절에 '온땅의 백성'이라고 나타나있는 이미 귀환한 자들에 의해 제기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들은 '사레셀'과 '레겜멜렉'으로 유력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는 그들이 '종자'를 거느리고 온것으로 보아 알수 있다. 그들은 금, 은과 더불어(슥 6:10,11에 있는 자들처럼) 보냄받은것 같지는 않으며,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전으로 가게하는 다음과 같은 중대한 두가지의 용무로 보냄을 받았다.

1) 긍휼을 입고자 하나님께 탄원하기 위하여 : 그들은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희생을 드리기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사로잡힌 중에서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였다(다니엘 6:10절에 나타나듯이). 그러나 이제 성전이 재건되어가는 중에 있었으므로 그안에서 기도하고자 그들의 대표들을 보냈었던 것이다.

2)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 :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었다.' 이때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서로에 대해서 질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가운데 아무런 차이도 두지않았다. 따라서 백성들은 그들가운데 아무런 차이를 두지말아야 했으며 양편 모두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우리가 여러해 동안에 행한대로 오월간에 울며 근신하리이까(3절). 그들은 겸비함과 기도를 위해 엄숙하게 정해져있는 금식을 지켰다. 그들은 여기서 단한번, 즉 오월의 금식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8:19절에 보면 그들이 연례적으로 네번의 금식을 했던 것을 알수 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벽의 파괴(렘 52:6)를 기억하면서 4월(6월 17일)에 지켰고, 또하나는 성전이 불탄것(렘 52:12,13)을 기억하면서 5월(7월 4일)에 지켰고, 또다른 하나는 그다랴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7월(9월 3일)에 지켰고, 마지막 하나는 예루살렘이 처음 포위되던 때(왕하 25:1)를 기억하면서 10월(12월 10일)에 지켰다. 그들이 현재 궁금하게 여기고있는 것은 이러한 금식들을 계속해야할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질문은 단한사람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내가 울며 재계하리이까?"(한글개역에는 '우리가'로 되어있음-역주). 종교적인 금식은 '절제'함으로 뿐만아니라, 본문에 '우리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죄에 대한 경건과 근심으로 엄숙하게 행해져야 한다. "우리가 여러해 동안에 행한대로 영혼을 곤고케하는 날들을 계속해서 가지리이까?" 그 기간이 칠십 년이나 된다고 하였다(5절). 이 금식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 주어졌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의 증표아래 놓여있었다. 따라서 환자가 자신에게 아직 이상이 있음을 알면서 치료의 과정을 중단한다는 것은 현명치못한 일이다. 그러나 또한 이 금식들을 그만두라는 것을 보여주는 말도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돌이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셨던 것이다. 이제 '신랑'이 돌아왔는데 왜 '혼인집 손님들'이 금식해야 하는가? 따라서 성전이 불탄 것을 기억하면서 지켜왔던 5월의 금식은 제하여져도 될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전은 이제 재건되어지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2) 비록 그 질문이 아주 그럴듯하게 보이긴했으나 그것을 제기한 자들은 그 문제에 있어서 진실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본질보다는 의식에 더많은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질문에 대해 주어진 첫번째 답변은 그들의 위선에 대한 날카로운 책망이었다.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5절). 하나님께서는 그들 자신의 양심에 호소하셨다. "그것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었느냐?"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중요한 문제로서 매우 크게 강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식하되 하나님을 위해 하지않는 금식은 그를 조롱하는 것이며 그를 격노케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마음의 기질과 우리의 생활방식을 더낫게 해주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금식을 자신을 위해 행해진 것으로 받지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금식을 함에 있어서 그들이 먹고 마실때 가지는 것과 똑같은 견지로 임하였다(6절). 그들이 행했어야 하는 것은 여전히 남아있었다(7절).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너희는 너희가 아직 하지않은 것을 해야하느니라. 즉 너희는 너희 죄를 회개하고 너희 삶을 개혁해야만 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너희에게 요청하는 것이며 또한 이전 선지자들이 너희 열조에게 요청한 것이니라." 그는 그들로 그들의 나라가 전에 번성했던 것을 기억케한다. 지금은 황폐하고 비탄가운데 있는 예루살렘이 그때에는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그들의 길을 돌이키도록 외치셨다. 만일 그렇지않았다면 그들의 형통은 곧 끝이 났을 것이다. 따라서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너희는 그 사실을 주목해야 할지라. 만일 그렇게 하지않는다면 너희의 모든 금식하는 것과 우는 것은 소용이 없게 되리라."

 

Ⅱ. 지난날의 죄악들을 주의하도록 권고함 7:8-14

 

금식을 계속할 것인가를 물으면서도 여전히 죄악되게 행하는 이들 위선적인 질의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

(1) 스가랴 선지자는 여기서 이전 선지자들이 그들의 열조들에게 이미 말했던 것을 반복한다(9,10절). 즉 그는 금식을 계속하거나 희생을 드리라는 것이 아닌 의롭게 행하며 자비를 사랑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관리들은 공평하게 재판을 요구하여야 하며 이웃들은 피차에 온유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재난을 당했을때뿐만 아니라 연약할때에도 동정심을 가지고 돌아볼수 있어야 한다. 남을 해하려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2) 그는 그들의 열조들의 완고함과 불순종을 말한다(11,12절). 그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말을 듣고서 처음에는 그 말에 순응하는듯이 보였으나 멍에에 익숙치않은 황소처럼 '등으로 향하여' 하나님의 계명의 쉬운 멍에와 가벼운 짐을 지려고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깨를 움츠렸다. 즉 그들은 짐을 지기위해 어깨를 내미는듯이 보였으나 예레미야 34:10,11절에 있는 자들처럼 곧바로 다시 움츠러들었다. 그 마음을 금강석같게 하여. 이 돌은 가장 단단한 돌이다. 계속해서 버티는 죄인의 마음만큼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것은 없다. 인간이 선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되고자 생각지않으며 순응하지 않는데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만일 네가 멸시한다면 너는 홀로 멸시당하게 되리라."

(3) 그는 그들의 열조들에게 가해진 치명적인 결과들을 보여준다. 큰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았듯이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기도를 듣지않으셨다(13절). 그들이 하나님께 약속한 충성을 저버렸듯이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흩으셨으며 회리바람앞의 쭉정이처럼 내동댕이치셨다. 그들을 그 알지못하던 열국으로 헤치리라(14절). 그들이 자기 땅의 모든 율법을 범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땅의 모든 영광을 거두어가셨다.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그 땅을 황무케한 자는 갈대아인들이 아니었다. 결코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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