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유대인들의 죄악 9:1-4

 

그는 유대인들이 죄를 범하고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백성들과 우두머리들중 여러사람이 이방 여자와 결혼하여 그들과 인척관계를 맺고있다는 소식이 그에게 들려왔다.

(1) 그 죄는 이방인들과 교제와 교역을 함으로써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뿐만 아니라 '그들과 서로 섞이게 된' 것에 있었다(2절). 그들은 이방인과 모든 친교를 금하고 특별히 그들과 혼인하는 것을 금하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불순종하였다(신 7:3). 그들은 자신들을, 더욱이는 그들의 자식들을, 과거 그들의 민족을 멸망케한 바로 그 죄인 우상숭배의 위험가운데로 빠지게 하였다.

(2) 그 죄를 지은 사람들은 별로 학식이 없고 몰지각한 몇몇의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율법을 가르치는 직무를 맡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중 다수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더 큰 죄였다. 백성들을 타락시키고 잘못을 범하게 만드는 지도자를 가진 백성의 처지란 실로 비참한 것이다.

(3) 그 소식이 에스라에게 보고되었다. 그것을 고했던 사람들은 고결함과 품위를 지키고 있었던 몇몇 방백들이었다. 그들은 에스라에게 고하면서 그의 지혜와 권위와 세력이 그 일을 잘 해결할수 있기를 바랐다.

(4) 이것이 에스라에게 가져다준 영향(3절) :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백성이 그렇게 심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을 생각하고서 그의 마음은 비통해졌다. 죄에 대한 애통은 지극히 큰 애통이어야 한다. 에스라의 애통은 마치 독자나 장자로인한 슬픔과 같은 것이었다.

(5) 그 죄로인한 에스라의 비통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 비통속에 잠긴 그의 모습은 곧 공중의 주목을 받아 가까이 있던 모든 경건하고 진지한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오게 되었다. 모든 선한 사람들은 사악과 불경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행하는 자들을 인정해야 하며, 그들을 세워주고 그들이 할수 있는 것을 행하도록 그들의 손을 힘있게 해주어야 한다.

 

Ⅱ. 에스라의 엄숙한 통회 9:5-15

 

우리는 여기서 에스라의 하나님을 향한 처절한 통회를 보게 된다.

1. 그가 통회한때(5)

저녁 제사를 드릴때에. 그 시간에 경건한 사람들은 사적인 기도를 드리기위해 성전뜰로 찾아오곤 했다. 그들이 듣는 자리에서 에스라는 이 통회를 행하였다. 이는 그들로 그 백성의 죄에 대해 충분히 알게하기 위해서였다. 제사, 특별히 저녁 제사는 대속죄의 한 모형이었다. 에스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이 참회의 탄원을 드렸다. 그는 그의 손으로 참회하고 있다. 즉 저 대 희생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였던 것이다. 희생 제물을 통해 우리는 속죄함을 받는다.

2. 통회를 위한 그의 준비(5)

(1) 내가 근심중에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그의 슬픔의 짐을 떨쳐버릴 필요가 있었다.

(2)무릎을 꿇고. 그는 이제 백성들을 위한 중재자로서 백성들을 대표하여 스스로 회개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3)손을 들고. 그는 마치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의 손을 하나님을 향하여 높이 쳐들었다.

3. 통회의 내용(6-15)

만일 우리가 기도에 대하여 보다 넓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경건하고 헌신적인 애정을 드리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의 통회는 자기의 죄가 아닌 그의 백성의 죄에 대한 참회였다. 그는 비록 자신은 그 죄로부터 아주 결백했으나 그 자신도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었기에 스스로를 죄인들가운데 포함시키고 있다. '우리 죄악 우리 허물'이라고 한 것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는 그들의 죄악이 매우 크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6절). 즉 우리는 깊은 못과 같은 그 죄악에 빠져 멸망하려 하나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죄악이 하늘에 미친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다는 이 사실로 참된 참회자는 위로를 얻게 된다(시36:5). 이스라엘 백성은 사로잡힌 가운데서도 버림받지 않았고 바벨론에서조차 하나님의 임재의 증표를 얻었다. 즉 그들은 비록 소수이긴 했으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되었으며, 바사 왕의 호의로 원수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거룩한 처소에 못을 박았다'(8절). 즉 9절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세웠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정착시켰으며 한결같은 방법으로 성전을 섬겼다. 이것은 그들의 눈을 밝혀주었고 그들의 마음을 소성케하였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같았다. 에스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처럼 관대하신 하나님을 진노케 하다니 우리는 얼마나 배은망덕한 자들인가!" 그 죄는 명백한 명령을 거역한 것이었다.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10절; 참조. 창34:14). 하나님께서는 이방 족속과의 혼인을 엄하게 금하셨다. 에스라는 그 계명을 다시 인용하고 있다(11,12절). 이에 대해 그 어떤 것도 다음 내용보다 더 분명한 표현일수는 없을 것이다. 너희 여자들을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말고 저희 딸을 너희 아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12절). 그 이유는 만일 그들이 저희 민족과 섞인다면 타락하게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부정한 땅이었고 그들은 거룩한 백성이었다. 에스라는 그들의 죄속에 있는 큰사악을 회개하는 가운데서, 비록 형벌이 아무리 컸다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이 마땅히 받을 형벌보다 더 가벼운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심히 부끄러워 하는 자로서 말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6절). 죄는 부끄러운 것이다. 거룩한 수치는 거룩한 애통만큼이나 진실하고 정직한 회개에 있어 필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스스로 낯이 뜨뜻함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낯이 뜨뜻하도록 해야한다. 세리는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서는 부끄러운 자처럼 더욱더 그의 머리를 들지 못했다(눅 18:13). 참으로 회개하는 자들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과연 "죄를 범하지 않았다"거나 "하나님은 죄를 문책하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하겠는가? 만일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속에 있지 아니한 자일 것이다(요일 1:8). 우리는 또 "우리를 참아주신다면 수천의 수양이나 혹은 우리의 장자를 드려 당신께 우리의 허물에 대한 모든 것을 갚겠습니다"라고 말하겠는가? 하나님은 그처럼 조롱받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계신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소망도 없으니 될대로 되라"고 말하겠는가? 그것은 단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에스라처럼 참으로 회개하는 자라면 하나님께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구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할 것인가? 이렇게 말하라. "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나는 어리석게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죄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또한 이런 류의 말을 해야할 것이다.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호세아 4:2). 에스라는 하나님의 의로움에 대해 크게 확신한 자처럼 말하고 있다. "주는 의롭도소이다(15절). 그리고 지혜로우시며 공평하시고 선하시나이다. 즉 주는 우리에게 그릇 행하시거나 가혹하게 행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심판을 기다리며 주의 발앞에 엎드려있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는 '주앞에 한사람도 감히' 자신을 위해 변명하거나 자신의 의를 주장하면서 서있을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물가운데서, 주앞에 엎드려 주의 긍휼에 우리 자신을 의탁하나이다.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삿 10:15). 우리는 우리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뿐 보일 아무것도 없으며 드릴 아무말도 없습니다"(욥 9:15). 이 선한 사람은 이와같이 자신의 비통을 하나님앞에 내어놓았으며 그것을 그에게 내어맡겼다.

 

# 핵심

 

9:1-15

포로로 귀환한 유대인들이 이방 족속과 통혼하는 일이 생겼다. 이방인과의 통혼은 율법이 엄금하는 일이었기 때문에(출 34:10-17; 신 7:1-11) 에스라는 통분히 여겨 기도를 올렸다.

 

# 묵상

 

제2차 귀환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 ( 9:1, 2 )

2차 귀환자들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정비하고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려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차 귀환자들이나 포로로 끌려가지않고 남아있던 자들은 가나안의 여러 이방 족속들과 뒤섞여 그들의 풍습과 신들을 허용했습니다. 이렇게 이방인들과 섞이게 될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저버리고 우상을 따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함을 우리는 잊지말아야 합니다.

귀환한 에스라가 받은 충격 ( 9:1-7 )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이방 족속들과 통혼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대하고 에스라는 큰충격을 받게됩니다. 이로인해 그는 회개의 기도를 했는데, 그 이유는 백성의 범죄가 선지자의 책임이라고 통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죄를 자신의 죄로 동일시하여 통회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느1:4-11)나 다니엘(단9:3, 4)에게서도 찾아볼수 있는 태도로서, 백성의 죄를 위해 가슴 아파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슬퍼하고 있는 에스라에게 모여든 사람들 ( 9:4 )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그리고 귀환한 자들로, 백성의 죄로인하여 슬퍼하며 분노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을 가지고 죄에 대해 슬퍼하며 죄와 싸우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다른 동조자들을 통해 위로하십니다.

이스라엘 열조의 멸망원인 ( 9:6, 7 )

언약의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죄악때문이었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바로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베푸신 은혜를 의지하여 성실하게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하신 복 ( 9:12 )

말씀에 순종할때 왕성하고, 아름다운 것을 먹고, 그 땅을 대대로 이스라엘의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금지 그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마땅히 받을 복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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