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견딜수 없는 고난에 대한 탄원 77:1-10
여기서 우리는 심한 좌절에 빠져 탄원하는 시편 기자의 간절한 모습을 접하게 된다. 좌절에 빠져서 슬픔을 당하고있는 성도들은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수 있을 것이다. 시편 기자가 이것을 기록했을 당시에는 이미 슬픔과 두려움이 극복된 듯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1절). 그가 이 말을 본문 서두에서 언급한 것은 그의 고난이 자포자기한 상태로 끝나지 않았음을 나타내 준다.
(1) 그의 침울한 기도 :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그는 이처럼 슬픔을 나타냄으로써 어느정도 위로를 얻었다. 더욱이 그는 위로를 얻기위한 적절한 방법을 택했다(2절). 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마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고통을 술로 혹은 웃음으로 극복하려 하지말고 기도를 함으로써 극복해야 한다.
(2) 그의 침울한 슬픔 : "나의 고통은 밤에도 계속되었고, 마음은 비통에 잠겼으며 위로와 수면을 취해야할 시간에도 사라지지 않았도다." 그러므로, 기자는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라는 고백을 하고있다. 그는 그를 위로하려는 자들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고통을 당하고있는 사람들이 위로받기를 거절하는 것은 어떤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다.
(3) 그의 침울한 묵상 :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할때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와 두려운 위엄에만 주의를 기울였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셨다. 그는 잠을 잘수도 없었다. 잠이란 평안하고 상쾌하게 잘수만 있다면 슬픔과 걱정을 잊게 해주는 것이다.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나로하여금 새벽이 될때까지 밤새도록 뒤척거리게 하시니이다." 그는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말을 할수도 없었고 활기를 되찾을수도 없었다. 심령은 이와같이 질식할정도로 슬픔에 잠겨있을때 가장 큰상처를 받는다.
(4) 그의 침울한 회상(5,6절) :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 "나는 그때를 현재와 비교해 보았나이다. 우리가 이전에 누렸던 번영은 오늘날 우리가 당하고있는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말해준 기사들을 볼수 없기때문이니이다." 그러나 '옛날이 오늘보다 나음이 어찜이냐 하지말라'(전 7:10). 우리는 이제까지 잃어버린 위로들에 대한 기억으로인해서 현재의 위로들을 고맙게 여기지 않아서는 안된다. 시편 기자는 특별히 밤에 드린 찬양을 기억하였으나 지금 찬양을 드릴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 기억은 전에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였던 것에 불과했다(참조. 시편 42:4;욥 35:10).
(5) 그의 침울한 두려움과 걱정 : 마음에 묵상하며(6절). "자, 내 영혼아 이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나? 현재와 같이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그의 인자하심이 다하였는가? 하나님께서 단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신 것일까?"(7-9절). 이러한 묵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사 1:10) 사람들조차도 수심에 잠겼을때 흔히 하는 것이다. 경건한 사람에게 있어서 영적인 고통은 모든 고통중에서도 가장 큰슬픔을 준다. 하나님께서 노하실 것을 우려하는 것처럼 그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없다. 혼탁하고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 자신의 영적인 상태와 이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및 하나님의 나라의 형편에 관하여 절망적인 결론을 내리기 쉬우며, 더욱이 그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그런 생각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 한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수 없느니라'(롬 11:1)라고 대답하고 있고, 오히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시 103:17)라고 말한다. 그 약속을 영구히 패하셨는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수 없다'(히 6:18)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이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에 대해서는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애 3:23)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호 11:8,9)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볼수 있다. 기자는 갑자기 "더이상 의심하지 말고 거기서 멈추라"는 뜻의 '셀라'를 말한후 자신을 꾸짖고 있다(10절).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그는 그의 의문이 옳지않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모든 사람은 각기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을 당한다. 이러한 고통들은 바로 그 자신의 고통이며 그 스스로가 짊어져야할 십자가이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낙담하며, 하나님을 불신하는 일은 선한 백성들이 고난에 처할때 종종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때는 언제나 그 고통으로부터 생겨나는 결과들을 억제해야 한다. 우리는 불신으로부터 나오는 반발감을 자제해야 한다.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를 기억하여. 기자는 '옛날'의 축복을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옛날'의 축복들은 만유위에 영원토록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오른손, 즉 '지존자의 오른손'에 의해 베풀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로 만족하게 되었다.

Ⅱ.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찬양 77:11-20
이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냉정을 되찾고 있다. 그는 위안을 얻으려고 다시 노력했으며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현재와 같은 암담한 시대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을때까지 나는 하나님께서 옛적에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행하신 일을 기억함으로써 그의 언약을 불신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대체로 다음의 두가지가 시편 기자를 만족시켰다.
(1)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13절). 혹자는 이 말을 "하나님의 도는 성소에 계시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일에 거룩한 목적을 갖고 계시다. 그의 도는 그의 성소에서 알려주신 언약에 따라 결정된다.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은 그의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2) 하나님의 도는 바다에 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공의로우시며 선하신 분이지만 우리는 그의 행하시는바를 합리적으로 설명할수 없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수 없었나이다(19절). 깊은 물을 헤아릴수 없는 것같이(시 36:6),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를 알수 없는 것처럼(잠 30:18,19) 하나님의 길은 알수 없다. 하나님과 같이 큰신이 누구오니이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행하신 큰역사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하며 그가 다른 무엇으로도 비교될수 없이 위대한 분이심을 시인해야 한다. 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어떤 피조물의 능력보다 크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민족들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해 내셨다(15절).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푼 최초의 긍휼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마치 값을 지불하고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때가 찼을때 값을 치를뿐 아니라 권능을 나타냄으로 성취되는 위대한 구속사역의 모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스라엘앞에서 홍해를 가르셨다(16절). 물사이에 길이 생겨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게 되었다. 물의 표면뿐 아니라 깊은 곳에서도 진동하여 그 물은 좌우로 갈라졌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애굽 사람들을 멸망시키셨다. 궁창이 소리를 발하며 주의 살도 날아 나갔나이다(17절). 회리바람 중에 주의 우레의 소리가 있으며(이는 곧 하늘로부터 들리는 소리를 나타낸다)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18절). 그 번개들은 많은 애굽 사람들을 멸망시키기위해 날아간 화살들이었다. 그러나 좌우로 갈라졌던 물들이 합쳐졌을때에 '주의 종적은 알수 없게 되었다'(19절). 곧 아무런 흔적도 남지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셨다(20절). 주의 백성을 무리 양같이...인도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목자와 같이 애정을 가지고 보호하면서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그들을 인도하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스라엘을 인도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곁에서 그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 모세는 그들의 통치자가 되었고 아론은 그들의 대제사장이 되었다. 통치직과 성직이라는 두가지의 큰직책은, 비록 그것들이 놀라운 것은 못된다해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함께있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만큼이나 모든 백성에게 큰은혜를 베풀수 있는 것이다.

# 핵심
77:1-20
위기로인한 영적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과거에 체험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회상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다시금 신앙적인 확신에 이르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시편이다.

# 묵상
하나님을 향한 의문 ( 77:7-9 )
시인이 하나님께 기도할때에 의문을 가진 것은 영적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깨치고자 하는 경건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런 영적 몸부림을 통해 성도의 신앙은 더욱 성숙해져 갑니다. 성도는 환난가운데서도 끊임없는 묵상을 통해 진리의 빛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방법 ( 77:16-19 )
하나님의 섭리는 가시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도 하나님의 권능에 순복합니다(출14:29).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인간의 역사와 인간의 심령속에 은밀하게 활동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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