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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후세들을 위한 교훈 78:1-8
본문은 이 교훈시의 서문이라고 볼수 있다.
(1) 시편 기자는 우리의 주의를 모으고 있다(1절).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혹자는 이 말이 시편 기자가 한 말이라고 주장한다. 이 시편 기자는 그의 가르침들을 그의 '율법' 또는 '교훈'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가르침속에는 명령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왕으로서 그의 백성들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그의 왕권을 사용했다. 또는 1절 말씀을 선지자로서의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입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며 율법에 복종하도록 요구한다.
(2) 기자는 왜 우리가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1) 그것들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2절).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비밀한 말은 우리의 가장 큰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말이 '비밀한 말'로 불려지는 이유는 그것들이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주의깊게 연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그것들은 고대의 기념비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들은바요...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바라(3절). 즉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와 조상들의 은혜에 힘입어 영광을 얻었기때문에 우리의 열조가 우리에게 말해준 것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3) 그것들은 후손들에게 전승되어야 하며 우리는 그것들을 주의깊게 물려주어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4절). 우리의 열조들도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며'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후손만이 아니라 모든 후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자손들에게 언어, 예술, 과학, 자유, 그리고 번영에 관계된 지식을 전해주어야 하며,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과 그가 행하신 기사를 전해주어야 한다.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는 선조들로부터 위탁받은 신앙을 순수하고 온전하게 자손들에게 전해야 한다.
① 하나님의 율법은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자손들에게 가르쳐, 알게하기 위해서 주어졌다(5절).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하라 하셨으니'(신 6:7,20). 역사가들이 로마에 대하여 전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한세대의 것이 아니라 대대로 전승되어야 한다.
② 그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후손들에게도 그의 율법을 알리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 율법을 전함으로써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도 반드시 알리게 하셨다.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7절).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생각하는 자들만이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랄수 있으므로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는다.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며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하려 하심이로다(8절). 열조들은 비록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였다해도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하였고 오히려 기회가 있을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Ⅱ. 이스라엘을 위한 이적들 78:9-38
(1)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때문에 받는 징계를 진술하고 있다(9-11절).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9절). 이것은 아마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엘리대제사장 시대에 블레셋 족속에게 패하여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던 수치스러운 전쟁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삼상 4:10,11). 거의 40년이 지난 다윗 시대에 그 사건이 새롭게 언급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그 전쟁에서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법궤는 곧 블레셋 족속에게 수중에서 이스라엘에게 돌려보내졌지만 다윗이 기럇여아림에서 그의 성으로 가져올때까지는 잘 보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브라임 자손들의 비겁함을 주목해 보라. 죄는 사람들을 낙담시키고 심령을 약하게 만든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배반하였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을 준행하기를 거절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를' 잊어버렸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등한시하는 것이 곧 그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주원인이 된다.
(2) 기자는 여기에서 여호와께서 행하셨던 일을 참고로 다루고 있다. 이들 구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은 매우 주목할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하나님의 선과 인간의 악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투쟁과 관련된 것이며 마침내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멸하지 않으신 하나님을 다루고있기 때문이다.
1) 하나님께서는 우선 이스라엘 백성을 한데 모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큰일을 행하셨다.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땅 소안들에서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 하셨으며'(13절) 사람이 다니지 않았던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하셨다(14절). 낮에는 사막의 열기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는 구름기둥으로, 온 밤에는 그들이 칠흑같은 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또한 들짐승들이 그들에게 가까이 못오도록 '화광'으로 인도해 주셨다(슥 2:5). 하나님께서는 반석을 깨뜨려서 그 메마른 땅에서 구할수 없는 신선한 물을 그들에게 공급해 주셨다(15,16절).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그 물은 증류기에서 정제되어 나오는 것처럼 조금씩 나온 것이 아니라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같이 그들이 흡족히 마실만큼 풍부하였으며 강같이 흘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히 주시는 분이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2)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그들에게 축복을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기 시작했다(17절).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들은 자기들의 구원을 위하여 겪어야하는 어려움보다도 비참한 노예생활을 더 잘견디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지만 애굽의 감독관들에게는 하지않았다. 저희는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그들은 황야에서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노하게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저희가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18절).
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정도로 지나치게 요구했다.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건강에도 좋고 맛있는 만나를 충족히 주셨지만, 그들이 만족해하지 않고 탐욕을 채우려 했기때문에 더이상 공급해주지 않으셨다.
② 그들은 그들이 바라는 것을 주실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의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새로운 것을 달라고 요구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새로운 것을 주시지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능력이 없기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19절).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라는 말은 하나님께 가장 모욕적인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다. 얼마나 터무니없는 탐욕인가! 이렇게 쾌락을 좇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베푸셨던 기적들보다도, 잘 차려진 식탁을 마련하는 것이 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광야에서 식탁을 마련하는 일과 바위로부터 물을 내는 일 중에서 어느것이 더쉬운 일이겠는가? 광야에다 식탁을 마련하는 일은 부자들도 할수 있다. 그러나 바위로부터 물을 내는 일은 제아무리 권세가 많은 자라도 할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큰것을 구한다 할지라도 얻을수 없으며, 오직 "주께서 원하시면 하실수 있나이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들의 도전적인 언행에 분노를 나타내셨으며 그들에게 매우 노하셨다(21절).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하나님께서 분노를 일으키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구원의 과정에 의문을 품고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셨다. 대개 궁창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땅에서는 양식을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궁창을 명령하셔서 '하늘 양식'으로 불리는 양식을 땅에다 뿌렸다. 심지어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권세있는 자의 떡을 먹었다.' 그 떡은 건장한 사람들의 영양을 공급할수 있을정도로 영양이 풍부한 양식이었다. '하나님이 식물을 충분히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식물을 아끼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만들어주신 일용할 양식에는 하나님의 큰은혜가 깃들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도전적인 언행에 대하여 진노를 드러내셨다. 그 진노는 그들의 탐욕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허용함으로써 나타났다. 저가 동풍으로 하늘에서 일게 하시며 그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시고. 남동풍이든지 동풍이든지 먼저 그 불어오는 방면으로부터 메추라기를 몰고온 다음 남풍이 다시 그 불어오는 방면으로부터 더많은 메추라기를 몰고왔다.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고기를 티끌같이 내리시니 곧 바다 모래같은 나는 새'(27절)만큼 충족히 내리셨으므로 이스라엘 중 가장 비천한 자라도 그 고기를 충분히 취할수 있었고 더군다나 고기에 대해 아무런 대가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고기를 '그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 거처에 돌리셨기'(28절) 때문에 그들은 고기를 취하기위하여 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민수기 11:31,32절에서 이 내용을 다루었다. '하나님이 저희 소욕대로 주셨으나 저희가 그 욕심에서 떠나지'(29,30절) 않았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들로하여금 그들이 얻은 메추라기의 대가를 지불하게 하셨다. 그들은 만족할줄 모르는 탐욕을 가지고 있었다. 고기를 잔뜩 얻고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만족시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또다른 변덕을 일으키는 것이 탐욕의 특성이다. 이스라엘 백성중에는 알맞게 메추라기를 먹음으로써 만족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해독을 끼친 것이 고기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탐욕이었기 때문이다.
4)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내리셨지만 그가 긍휼을 베풀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마음은 변화하지 않았다(32절). 그럴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범죄하여. 그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모세에게 불평하고 비난을 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긍휼로도 녹지않았고 하나님의 공의로도 깨어지지 않을만큼 완악하였다.
5) 그들이 계속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내리셨다. 그러나 그 심판은 갑작스럽게 받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임하는 특징을 지닌, 이전의 심판과는 다른 것이었다. 하나님이 저희 날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저희 해를 두렵게 지내게 하셨도다(33절). 그들은 광야에서 38년동안의 긴세월을 지루하게 보내도록 저주를 받았다. 그 세월은 참으로 헛되이 보내졌다. 왜냐하면 그 모든 기간을 보내고도 그들은 더이상 가나안 땅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그대로 광야생활을 하였으며 미로를 헤매듯 이리저리 방황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죄를 범하는 자들은 항상 처벌받게 된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가 고통을 받고 세월을 헛되이 보내었으면서도 아무런 위안이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신앙적으로 살지않기 때문이다.
6) 그들은 이러한 징계를 받고 회개를 하긴했으나 진실한 마음으로 한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신앙고백은 매우 그럴듯했다(34,35절).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부르짖으면서 앞으로는 개심하여 선을 행할 것을 맹세하였다. 저희가...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그러나 이러한 고백은 그들이 진실하게 한것이 아니었다(36,37절). 그들은 마치 이러한 고백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그들을 벗어나게 할수라도 있다는 듯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을' 했다. 그들은 하나님앞에서 신앙고백을 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은 아직도 완악하였다. 그들은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7)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부분적인 징계를 통하여 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다음 심판을 거두셨다(38,39절).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언약의 땅에 들어갈 후세를 기를때까지 그들의 생명을 살려두셨다. 그는 그들을 매우 불쌍히 여기셨기때문에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호 11:8).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반석이심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육체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잘 알고 계셨다. 저희는...가고 다시 오지못하는 바람임을. 그들은 자기들이 멸망을 받게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에 반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매우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Ⅲ. 심판과 긍휼 78:40-72
이들 구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앞에서 기술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큰긍휼은 어떤 것이며, 이스라엘은 얼마나 하나님을 진노케했으며, 죄를 범한 그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인가, 그리고 심판가운데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긍휼을 베푸셨는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1) 광야에서 범한 이스라엘의 죄가 다시 언급되었다(40,41절).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번인고.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민 14:22). 하나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셨다. 반항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만큼 노하게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의 자녀로 여기셨기 때문이다('이스라엘은 나의 아들, 나의 장자라'). 하나님께서 원치않는 징계를 그들에게 내리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슬프게 했다. 그들은 하나님앞에서 사죄를 한 즉시로 돌이켜서 하나님을 시험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과 그들중에 임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증명할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고 어떻게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었는지에 대해 밝혀줄 것을 그들은 하나님께 요구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제한시키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 아닐수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일을 하실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시킨 것은 그들이 예전에 베풀었던 하나님의 권능을 잊어버린 것이다(42절). 하나님께서 구원을 의미하여 나타내 보이시는 날들이 있는데 우리는 결코 그 날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2) 이스라엘에게 베푼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기사의 이 내용들은 12-16절에서 언급한 것보다 더 심오하게 기술되고 있다.
1) 이 내용은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게 되는 사실과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낼수밖에 없을정도로 시달린 하나님께서 내린 재앙으로 시작된다. 애굽에 임했던 몇가지 재앙들이 여기에서 상술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이스라엘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혜를 두르러지게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물을 피로 변화시켰다.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물론 그들에게 속한 갓난아이까지 학대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의 백성들이 흘린 피를 애굽 사람들이 마시게 했다. 그것은 그들의 응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파리떼를 저희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다'(45절). 또한 '저희의수고한 것은 메뚜기에게 주어 먹게' 하셨다(46절). 그들의 나무를 죽이는 우박을 내려서 특별히 가장 약한 나무인 포도나무를 죽이셨으며(47절), 번개불을 내리사 그들의 가축, 특히 가장 약한 가축인 양떼들을 죽이셨다(48절). 또한 극심한 서리의 재앙을 내리사 뽕나무까지 죽이셨다. 장자의 죽음은 애굽에 임했던 재앙들중에서 마지막으로 임한 재앙이었으며 가장 가혹한 재앙이었다. 그 재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완전한 구원을 얻게되었다. 이 재앙은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애굽에 내리시고자 한것이지만(출 4:23), 마지막으로 임했다. 왜냐하면 이것보다 약한 재앙을 내렸을때 이스라엘을 구원할수 있었다면, 이 재앙은 내리지 않을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는 마지막 재앙보다 약한 재앙을 받았을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려 하였다. 그러다 다시 완악해졌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맹렬한 노를 발하신 것이다. 그 노를 위하여 치도하사. 그는 아무렇게나 노를 발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받아야할만큼 노를 발하셨다. 그가 발하는 진노는 공의의 저울로 가장 정확하게 측량된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리 불쾌하시더라도 결코 그의 피조물들을 악하게 대하지 않으셨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심사숙고한 다음에야 노를 발하신다. 그는 '벌하는 사자들을 저희에게 내려보내셨다.' 이들의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의 성격이 벌하는 것이어서 그들을 악한 사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멸망케하는 천사였거나 혹은 징계하는 천사들이었다. 그들의 징계는 매우 혹독했다.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51절). 하나님께서는 갈바를 알지못하는 양같이 나아가고 있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길을 마련하시고, 목자가 자기의 양떼를 애정을 가지고 보호하면서 인도하듯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하셨다(52절).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위험한 길이라도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즉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감히 그들을 쫓아왔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다'(53절). 바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길이 되었지만, 애굽 사람들에게는 무덤이 된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때까지 그들을 인도하셨다(54절).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성소의 지경이 되는 곳은 복된 땅이다. 대체로 모든 땅이 다 복된 땅이었고, 그중에서도 특별히 시온은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이었다.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사 58:14;신 32:13).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들이 그땅을 완전히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시고 '줄로 저희의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다.
(3)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나서 범한 죄(56-58절) : 이스라엘 자손들도 '저희 열조같이' 그들의 새로운 거주지에서 타락한 행동을 일삼았다. 그들은 이따금씩 하나님을 섬기는것 같았지만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하였다.' 우상숭배는 그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죄였다. 그들은 빈번하게 그 죄를 회개하곤 했지만 계속 죄를 지었다.
(4) 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린 심판들 : 우상숭배는 이방인들에게는 허용되어졌지만 이스라엘 가운데서는 용납되지 않는 죄였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서(59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면전에서 자행되는 그들의 부정한 우상숭배를 보시고 진노를 발하셨다. 그는 그들가운데 있는 그의 성소를 돌보지 않으시고 장막을 떠나셨다(6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떠날때까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실로의 성막'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우신 장막'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기를 원하셨다'(대하 6:18). 그러나 백성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성막을 떠났기때문에 성소를 떠나버리셨다. 그렇기때문에 성소의 모든 영광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셨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은 멸망하기 쉽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법궤를 빼앗기게해서 대적들이 그 법궤를 통해 승리를 구가하도록 허락하신다. 이것은 그가 성소를 버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즉 그는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고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61절) 수치를 당하셨다(참조. 삼상 4: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족속에게 참패를 당하도록 하셨다.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노래가 없으며(62,63절). 처녀에게 혼인노래가 없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할 청년이 없어서 혼인할수 없게된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그 법궤의 시중을 들던 '저희 제사장들', 곧 홉니와 비느하스도 '칼에 엎드러지고' 말았다. 엎드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수치스런 행동을 일삼았고 하나님앞에서 죄를 범한 자들이었기때문에 그 제사장들이 죽었을때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다'(64절). 비느하스의 아내는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지도 못한채 죽어가면서 그녀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영광이 없음)이라고 불렀다(참조. 삼상4:19).
(5) 하나님께서는 긍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사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삿 10:16).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65절). 이는 마침 잠에서 깨어나 원기를 회복한 사람처럼 또 적당히 술을 마셔서 기쁜 마음과 더 큰활기를 얻게된 사람처럼 일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1) 하나님께서는 법궤를 노획해 간 블레셋 족속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그 대적을 쳐 물리쳐서(66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적들이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상태지만, 그들을 욕되게 하시고 조만간에 그 자신의 영광을 회복하실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법궤가 여러달 동안 대적들의 수중에, 그후 여러해 동안을 여기저기 옮겨져 다녔으므로 법궤를 놓은 새장소를 마련하셨다.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67절). 하나님께서는 그 장소를 멸망시키시고 그의 공의를 영구적으로 기념하게 하셨다. '너희는 실로에 가서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렘 7:12). 법궤를 옮기는 것은 법궤를 없애는 것과 다르다. 비록 실로에서는 법궤를 잃었지만, 이스라엘이 법궤를 잃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나 왕국에서 촛대를 제거하실지라도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며, 사람들가운데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소속 지파인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않고 유다 지파를 택하셨다. 왜냐하면 여호수아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께서 그 지파에서 탄생하시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다'(68,69절). 시온산은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세계가 즐거워 할수 있는 곳'이었다(48:2). 다윗은 단지 법궤를 위한 하나의 장막만을 지었다. 성전건축이 그에 의해 계획되고 준비되었긴 했으나 그의 아들에 의해 완공되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아마도 그의 아버지 다윗이 이 일에 관해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가르친 다음에 그것을 지었을 것이기 때문이다(127:1). 그리하여 그 성전은 교회가 세워질때까지 파괴되지 않았다. '해와 달같이 영원히 견고케되며'(89:36,37),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3)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합당한 선한 통치자를 그들위에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이스라엘중에서 '그중 다윗을 택하여' 그에게 왕위를 주셨고, 그에게서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셨기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었다(70절). 다윗은 유다 족속의 왕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교육은 보잘것 없었다. 그는 학자나 군인이 아닌 목자로 성장했다. 그는 모세와 같이 '양의 우리에서' 택함을 받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부지런한 자에게 영광돌리기를 기뻐하셨으며 때때로 공적인 활동을 하는데 가장 적합한 사람들로 어린시절을 고독과 명상속에서 보낸 자들을 찾으셨기 때문이다. 다윗의 후손인 예수는 그 혈통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이 사람이 목수가 아니냐'(막6;3).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수양을 이끄는 가운데서 택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택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가장 많은 보호를 필요로하는 자기 양들에게 남다른 애정과 긍휼을 베풀어야하는 목자의 선한 속성을 다윗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큰영광을 베풀어서 그로하여금 왕이 되게 하셨는데, 특별히 하나님께서 친밀하고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야곱과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매우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중한 책임을 맡은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능숙하고 성실하게 해냈다(72절). 이에 저가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즉 그는 백성들을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통치하며 교화시켰고, 또 그들을 인도하며 보호해주었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과 그에게 맡겨진 백성들의 유익을 구하는 일에만 전념했다. 그는 계획을 매우 신중하게 세웠을뿐만 아니라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길때에도 매우 신중하게 행동했다. 그런 통치를 받은 백성들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이 시편 기자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로써 끝을 맺고있다. 여기서 다윗은 크고 선한 목자인 그리스도의 한 모형이기 때문이다.

# 핵심
78:1-8
모세 시대부터 다윗 시대에 이르는 역사를 통하여 후손들에게 신앙적인 교훈을 전달하기위해 작시된 시편이다. 본문은 이 시편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과거의 역사를 기억해야할 이유와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시편 78편의 복음(78편)
이 시편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배교역사는 인류의 타락사에 비견할수 있다. 불신앙으로 점철되어 온이스라엘의 역사가 다윗 왕가에 의해 통일과 번영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이 이 시편의 중심 메시지이다. 이같은 메시지는 인류의 타락이후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항해온 인생들이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궁극적인 구원과 소망을 얻는다는 진리를 예표하고 있다.
신앙교육의 중요성(78:1-8)
유대인들은 국가가 멸망한 이후에 박해를 받으며 뿔뿔이 흩어지는 운명에 처했지만,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민족적 정통성과 종교적인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이와같은 결과를 일구어낸 가장 중요한 이유들가운데 하나는 대대로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킨 것이다. 누구나 날때부터 신앙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신앙은 듣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물론 신앙교육을 위한 으뜸가는 교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묵상
시인이 전하는 교훈의 소유자 ( 78:3 )
교훈은 열조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는 시인의 독창적인 머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해져 내려온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이스라엘, 곧 당신의 백성 전체에게 열조를 통해 교훈하셨습니다. 시인은 이를 기초로하여 장래를 소망하게 되고, 현재 말씀에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 ( 78:9-64 )
이스라엘이 하나님앞에서 범하였던 죄악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은 죄(9-11절),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능력속에 거하면서도 불신하고 불평했던 죄(12-31절), 회개치않은 죄와 거짓으로 회개하는 가증한 죄(32-41절),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베풀어진 수많은 은혜를 우상숭배로 갚은 배역의 죄(42-64절) 등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에브라임 ( 78:9 )
여호수아로부터 사울 왕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적 역할을 한것이, 에브라임 자손이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브라임 자손은 싸움에 능한 지파(창49:24)로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도적 역할을 한 에브라임의 죄악은 이스라엘 전체에 큰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범죄 ( 78:17 )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도 이스라엘이 계속 범죄한 이유는 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앙결핍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는 물질의 풍요가 신앙성숙과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 ( 78:38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노하기를 더디하신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지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사랑때문입니다(출32:10-14).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을 동정하사 오래 기다리고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십니다(사63:9). 그런즉 우리는 주님께서 오라 하실때에 아멘하고 주께 돌아가는 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안전히 인도하시는 하나님 ( 78:52-55 )
하나님께서는 열방중에서 자기 백성을 선택하시고, 구별하시고, 특별히 관리하시며 보호하셨음을 시인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노예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광야에서의 고달픈 생활속에서 그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같은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받을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공로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숭배의 원인 ( 78:54-64 )
노하기의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탐심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할때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우상숭배의 죄를 다른 남자와 음행한 여인에 비유했습니다(호3:1).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 ( 78:67 )
요셉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장자의 지위를 박탈당하자 그를 대신하여 장자의 명분을 얻은 자입니다. 따라서 그의 후손 특히 그중에서도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내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해왔으며 가나안 정복 당시 하나님의 언약궤도 에브라임 지파내의 성읍인 실로에 안치해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앞에서 범죄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시고 거절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로를 떠나버리신 것처럼 에브라임 지파를 거절하시사 더이상 이스라엘내에서 지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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