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바벨론 포로생활의 슬픔 137:1-6
(1) 하나님의 백성들은 눈물을 흘렸다. 즉 그들은 눈물로 씨를 뿌렸다. 그들이 눈물을 흘린 곳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이방인의 땅 '바벨론의 여러강변'이었다. 전쟁에 져서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와있는 것이었다. 옛날에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종살이했던 것처럼 바벨론 땅에 끌려와 비천한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벨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력을 한껏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강변' 여러곳에 거하게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때 '그발강' 근처에 머무른 일도 있다(겔 1:3). 아무튼 그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생각하면서 큰슬픔에 빠져 막연히 '앉아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시온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흘린 눈물은 깊은 생각을 거쳐 나오는 값진 것이었다('우리가 앉아서 울었도다'라는 문장이 그런 의미를 시사해준다). 바벨론 강변에서 그들은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동산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은 각자의 집에 대한 생각을 모두 잊게만들 정도였다. 그들은 악기를 내려놓고 사용치않았다.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수금을 수풀속이나 바위틈에 감추지않고 잘보이는 곳에 걸어둔 것은 나무위에 걸린 수금을 볼때마다 자신들의 슬픈처지를 뼈저리게 느끼기위한 것이었다. 물론 그들의 행동을 옳다고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시기가 정해져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 한편 바벨론 사람들은 이렇게 슬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욕적인 요구를 해왔다(3절). 바벨론 사람은 저희를 '사로잡아' 고향을 떠나오게 하였을뿐만 아니라 그땅을 '황폐케'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도 모자라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욱더 분노케하려고 무례한 행동을 일삼았던 것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때때로 그들을 향하여 '기쁨을 청하고 노래하라'고 하기도 했다. 예전의 기쁨이나 현재의 비참함때문에 마음에 괴로움이 가득한 사람을 질책하거나, 큰슬픔에 빠진 자에게 즐거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열하고 더러운 행위이다. 게다가 그들은 '시온 노래'중 하나를 부르라고 요구하였다. 시온 노래로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로지 하나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사람들은 성전의 거룩한 기명을 가져다가 포도주를 마셨던 벨사살과 같이 하나님을 경히 여기는 죄를 범하였다.
(3) 이렇게 모욕을 당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참고 견디었다(4절). 그들은 수금을 제자리에 놓아둔채 다시 사용하려 들지않았다. 함부로 모욕을 일삼는 자들의 기분을 맞추어 주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온유하고 경건한 이유를 들어 노래를 부를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여호와의 노래는 성전에서 예배할때에 부르는 거룩한 노래라.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의 땅에서 우리가 어찌 부를꼬."
(4)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에 비록 바벨론 땅에 있었지만 거룩한성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을 잃지않았다. 그들은 한순간도 그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들중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을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매일 예루살렘을 향해 창을 열어놓고 기도하는 시간을 지켰다. 그러니 어떻게 예루살렘을 잊을수 있었겠는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전문적인 음악가들에게는 손이 마르지않는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곳에 거하든지 예루살렘을 위하여 선한 말을 하지않는다면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Ⅱ.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기대 137:7-9
바벨론에 끌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억하며 늘 마음아파하던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뉘우침을 모르고 언제나 잔혹하게 굴던 원수의 무리가 멸망할 날을 기다리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것은 복수할 뜻을 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한 나라의 영광을 사모하는 열심히 이와같은 소망을 품었다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에돔 자손의 저주는(7절). 자신의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야곱을 향해 적대감을 품었던 에서의 해묵은 감정으로인한 결과였다. '여호와여 그 날을 기억하소서'라 하는 외침은 여호와께 호소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설사 그만한 힘이 있다하더라도 스스로 원수를 갚지말고, 오직 '복수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여자같이 멸망할 바벨론'이란 호칭속에는 그처럼 교만하고 완악한 성읍은 멸망을 당할수밖에 없다는 점을 그들이 잘알고 있다는 뜻이 담겨져있다. (해몬드 박사의 의견을 따른다면) '멸망할'이란 부분은 '파괴자'라는 의미이다. 파괴자에게는 멸망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것이다.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대로' 받으리라. 우리가 네게 당하였던 것과 같이 파괴하는 자가 나타나서 잔혹하게 짓밟으리라." 제 손에 권세를 쥐었을때 인자함을 베풀줄 몰랐던 자들은 곤경에 처했더라도 남의 긍휼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어린 것들도 메어침'을 당한다는 것은 아무도 피할수 없다는 뜻을 암시해 준다. '어린 것'이란 앞으로 올 세대를 끌고나갈 씨앗과 같은 존재이므로 그들도 목숨을 잃는다함은 성읍이 완전히 멸망하여 다시는 희생치 못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루살렘도 이처럼 철저히 짓밟혔었다.
# 핵심
137:1-9
한 익명의 시인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한 망국의 슬픔을 호소하며, 애끓는 민족애로 하나님께 바벨론의 멸망을 간구하는 시편이다.
# 묵상
포로생활의 고통 ( 137:2-4 )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고있던 시인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방 지배자들의 조소와 비난, 특히 가증스런 우상숭배자인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향연을 위해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질 찬송을 부르도록 강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치욕적인 일은, 개인적인 인격이 수모를 당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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