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여호수아가 군대를 해산시킴 22:1-9
전쟁이 영광스럽게 끝나자 사려깊은 장군 여호수아는 군대를 해산시켰다. 그는 결코 전쟁을 직업으로 삼지않았다. 따라서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정복한 것을 즐기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며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하였다. 특별히 요단저편에서 기업을 받은 따로 떨어진 지파들의 군대를 돌아가게 하였다. 여호수아는 실로에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엄숙하게 그들의 의무를 일러주었다. 이 일은 실로가 그들의 본거지가 되기전에는 이행되지 않았다(2절). 반면에 그땅은 그들이 길갈에서 옮기기전부터 분배되기 시작하였다(참조. 14:6).
가나안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항상 선봉에 섰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군대는 때때로 요단을 건너갔던것 같다. 이는 그곳이 그리 멀지 않았기때문에 자기가족을 보기위해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지파와 반지파의 전체 병력수는 항상 사만명을 유지했으며 필요할때마다 맡은 위치에서 한공동체로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와같이 우리는 이땅에서 싸움이 마쳐질때까지 임무를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해야하며 돌아갈때만 생각하고 있으면 안된다.
(1) 여호수아는 그들을 소유지로 되돌아가게 한다(4절). 가장 먼저 자기들의 분깃을 배당받은 자들이 가장 나중에 그 즐거움을 누리게되었다.
(2)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많은 재산을 주어서 돌려 보낸다. 자신의 비용으로 전쟁에 나가는 자가 어디 있는가? 너희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서(8절). 여호수아는 "너희 장막으로 즉 너의 집으로 가라"고 말하였다. 그가 '장막'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광야생활에서 장막에 아주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재산 즉 그땅에서 전리품으로 얻는 가축뿐 아니라 은, 금을 가지고 돌아가라. 가서 너희의 형제들과 그 전리품을 나누어 갖도록 하라." 너희의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지니라.
(3) 여호수아는 그들을 명예롭게 평가해주었다.
1)그들이 지휘관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한 것에 대하여 칭찬해주었다(2절).
2)그들이 형제에 대해 가진 지속적인 애착과 협력에 대하여 칭찬해주었다. 오늘날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3절).
3)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신실하게 순종하였음을 칭찬하였다. 그들은 단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의무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의무로 인식하였던 것이 가장 칭찬받을만한 일이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그책임을 지키도다. 다른말로 하면 "너희는 의무를 지켰다"는 것으로 이는 곧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너희는 전쟁이 끝날때까지 계속 이스라엘에 봉사했던 이 특별한 경우뿐 아니라 평상시 너희 진영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일에 있어서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주의깊게 그리고 신중하게 지켰다. 이는 모든 군인들가운데서 보기드문 훌륭한 일로 칭송받을만한 것이다."
(4) 그는 그들에게 귀한 권면을 주어 돌아가게 한다. 즉 땅을 경작하라든가, 성읍을 강하게 하라든가, 이제 전쟁에 이기는 것에 익숙한 그들의 힘으로 이웃을 침략하여 영토를 넓히라는 권고를 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안에서 신실한 경건심을 가질것을 권면하였다.
(5) 그는 축복을 해주었다(6절). 특별히 므낫세 반 지파에 대해 더욱 축복하였는데 이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했던 여호수아에게 그들은 다른 두지파보다 더욱 가까운 혈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뒤에 다른 반지파를 두고가야 했기때문에 더욱 떠나기 싫어했을듯 싶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러번 뒤를 돌아보며 작별인사를 하고 발을 떼지못했을 것이다. 7절을 보면 두번째 작별과 축복이 나타나있다. 여호수아는 친구로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을뿐만 아니라 아버지같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그들의 하는 일들을 하나님의 은혜에 내어맡기면서 축복해주었다.
Ⅱ. 요단가에 쌓은 제단으로 인한 사건 22:10-20
(1) 따로 떨어지게된 지파들은 가나안 땅에서 신앙을 고수하고자 하는 경건한 열의를 보였다. 이 일을 위해서 그들은 요단가에 큰단을 쌓고서 그것으로 자기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증거와 여호와의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라는 (고전 10:18) 증거를 삼고자 하였다. 그들은 요단에 이르자(10절) 성도들과의 교제뿐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열망했기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즉시 이 단을 건립하여,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다른 지파들과의 친교를 유지시켜주는 교량으로 삼았다. 이 단은 아주 결백하고 순전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외견상 악하게 보여졌고 또다른 형제들을 범죄케할 소지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할때 그들은 그일을 하기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든가 아니면 최소한 형제들에게 그들의 의도를 알리기라도 했다면 더욱 좋을 뻔하였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후에 야기된 사태를 방지할수 있었을 것이다.
(2) 다른 지파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실로에 있는 단을 위하여 엄중히 경계하였다. 단을 세운 일은 즉시 이스라엘의 방백들에게 알려졌다(11절). 그들은 곧 다른 단을 세운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전 자기이름을 두시려고 정하신 장소에 대한 도전이며 어떤 다른신을 숭배하기 위한 직접적인 의도로 오해하였다.
1)그들의 의심은 어쩔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그것이 첫눈에 악하게 보였으며 실로에 있는 단과 경쟁하기위한 의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2)이와같이 의심을 자아내는 사실에 대하여 그들이 행한 열심은 칭찬할만한 것이었다(12절). 그들은 모두 모였다. 그들은 실로에 모였는데 이는 그 장소에 대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정해주셨던 것을 수호하고자 모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결의는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하고'(신 33:9) 하나님을 섬기는데에만 헌신해야 하는 제사장의 나라다운 것이었다. 그들은 단을 쌓은 자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한 것이 사실이라면 곧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였다.
3)이러한 결의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보인 신중함 역시 칭찬할만한 것이었다. 그들은 싸움을 하기위해 군대를 보내기전에 먼저 그일의 시비를 가리기위해 사절을 보냈다. 그리하여 각지파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한사람씩과 그들의 대변자이자 우두머리로 비느하스를 뽑았다(13,14절).
4)사절들이 이 일을 처리한 방법은 열심과 신중을 기한 것이었다.
①그들이 그들의 형제들에게 던진 비난은 매우 격렬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열심에서 나온 것이었고 실로에 있는 회중의 분노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을 뉘우치게 하기위해 행한 것이었다.
②형제들의 죄를 더 악화시킨 것은 약간 다른사건에 기인한다. 브올의 재앙으로인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17절). 단을 쌓은 일은 단지 작은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브올의 죄악만큼이나 악한 죄를 유발할지도 모르기때문에 처음부터 훼파되어야만 하였다.
③그들이 이 문제에 대해 그토록 열렬히 자신들의 우려를 표명하는 이유는 매우 타당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 보존을 위한 율법에 의거하여 자신들을 지키기위하여 이같이 해야만 했다. "만일 너희가 오늘 하나님을 배반하면 내일 하나님께서 아간의 경우처럼 '이스라엘 온회중'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을 알라(18,20절). 그가 범죄함으로 우리 모두가 고통을 받았었느니라."
④그들이 제시한 제의는 공평하고 관대한 것이었다(19절). 즉 만일 그들에게 단이 없어 자기들의 소유지가 깨끗지 아니한다고 생각되어 마음이 편치않다면 실로에 있는 단과 대적이 되는 또다른 단을 세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땅으로 되돌아와 살면 그들은 환영하고 기꺼이 자기들의 소유를 줄여서라도 살곳을 마련해 주겠노라고 했다.
Ⅲ. 단을 쌓은 것에 대한 해명 22:21~29
흥분한 열지파의 항의에 대한 그들의 답변은 매우 정당하고 솔직한 것이었다. 그들은 열지파의 비난에 응수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솔하고도 성급한 질책을 나무라지도 않고 그들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부드러운 답변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열지파의 관할권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자기들이 한 행동에 대해 아무책임도 없다고 변명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일이나 신경쓰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이 한일의 참된 목적을 거리낌없이 공개적으로 선포함으로써 불명예스러운 비난에서 벗어났고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게되었다.
(1) 그들은 그단이 희생이나 제사와는 전혀 무관한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서 실로에 있는 단과 맞서기위해 세워진 것이 전혀 아니며 추후도 그단을 버리려는 생각에서 한것이 아니었다고 엄숙히 말하였다. 실제로 그들은 단의 모양과 형태를 본떠 만들었으나 거기서 전혀 종교적인 행사를 가지지 않았다. 이말을 믿게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하였다.
1)그들은 그일에 관해 하나님께 엄숙하게 호소하면서 자신들의 변호를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함으로써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후에 그들의 형제들을 만족시키고자 하였다(22절).
첫째, 하나님께 대한 깊은 경외와 경배가 그들의 말속에 나타나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 간단한 신앙고백은 자기들을 마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신을 숭배하려는 것으로 생각한 형제들의 의심을 제거해주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둘째, 자신들의 성경을 크게 확신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말중에 나타난다. 오직 청결한 양심만이 만일 어떤 패역함이 있거든 하나님의 공의가 그것을 벌해달라고 이와같이 구할수 있을 것이다.
2)형제들에게 침착하게 변론을 하였다.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3)그들은 형제들이 자기들을 정죄하려 했던 내용을 분명하게 부인하고 부정하였다. 이것으로 그들은 스스로의 변호를 종결짓고 있다. 우리가...여호와께 패역하고 오늘날 여호와를 좇음에서 떠나려함은 결단코 아니니라(29절). "우리도 다른 이스라엘 지파 못지않게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단을 가장 가치있게, 그리고 가장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단에서 떠나지않고 계속해서 섬기기로 굳게 결심하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의 순결성과 하나님의 교회의 단일성에 대해서 당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좇는 자리에서 떠나려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2) 그들은 단을 세운 참된 의도와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였다. 그들은 변호를 하는가운데 이단을 세운 것은 형제들과 갈라서기 위한 것이거나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단에서 떠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형제들과 그리고 하나님의 단과의 교제를 계속하기 위한 목적에서 세워진 것임을 밝혔다. 즉 그것은 여호와앞에서 계속 섬기려는 그들의 결의의 표시로서 세워진 것이었다(27절).
1)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막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그들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이방인처럼 여겨지거나 취급받지나 않을까하는 염려를 하였다(24절). 공적인 의식에 단절된 자들은 신앙을 잃어버리기가 쉬우며 또 점차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될것이다. 비록 경건의 생활이나 능력없이 경건의 모양이나 고백이 지속될수 있을지는 몰라도 경건의 모양이나 고백없이 경건의 생활이나 능력은 오래 지속될수가 없다. 은혜의 방편을 저버리는 것은 곧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된다.
2)이러한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그들은 계획을 세웠다(26~28절). "그러므로 우리의 뒤를 잇게될 자들에게 하나님의 단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게 하고 그것에 대한 그들의 자격을 증명해주기 위해서,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단을 쌓아 우리와 너희사이에 증거를 삼고자 하였다" 즉 그들가운데 있는 이 모조단을 통해, 본 제단의 특별한 은혜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증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Ⅳ. 요단가에 세운 제단사건의 해결 22:30-34
우리는 여기서 이 논쟁이 선하게 끝나는 것을 보게된다. 만일 양편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같이 평화를 위한 의향이 없었더라면 좋지못한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지혜와 사랑이 없는 가운데서 발생한 신앙의 분쟁은 가장 격렬할뿐만 아니라 조정하기가 가장 어려운 경우가 왕왕 있다.
(1) 그 사절들은 따로 떨어진 지파들이 이 단을 세운 의도가 순전하였음을 단언하자 지극히 만족해 하였다.
1)사절들은 그들의 해명에서 나타난 그들의 신실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2)그들은 이러한 행동이 경솔하고 조언조차 얻지 않았던 점에 대해 나무라지 않았다.
3)그들은 당연히 그들을 고소하기 위한 증거를 찾기위한 노력은 더이상 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이 일단 그것을 해명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 생각한 것을 기꺼이 고쳤으며 또 그 잘못을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교만하고 못된 성미를 가진 사람들은 형제들에 대해 부당한 비난을 할때 그 비난이 잘못된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드러난다할지라도 끝까지 자기들의 주장을 고수하려고 하며 결코 철회하려고 하지않는다.
(2) 이스라엘 온회중은 그들의 사절들이 형제들의 해명을 보고하자 크게 기꺼워하였다.
(3) 따로 떨어진 지파들도 만족하였다. 또한 그들이 이 하나님의 단의 모형을 그들가운데 계속 보존하고자 했고 또 그것으로인해 우려할만한 사태가 발생할듯 싶지도 않았기때문에 여호수아와 방백들은 그들의 뜻을 인정하여 그 단을 파괴하도록 명령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단의 취지가 오직 실로에 있는 단과의 교제를 위한 증거라고 설명했고 이 설명은 그 의미를 분명히 나타내는 이름을 명명함으로써 기록되었다(34절). 즉 그들은 그것을 '엣'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증거'라는 뜻으로, 곧 그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관계가 있음을 증거한다는 것이었다.
# 핵심
22:1-9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는 가나안 정복전쟁이 시작되기전에 이미 요단동편의 지역을 영토로 분배받았지만, 요단서편 지역을 정복하는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여 성실하게 그 임무를 수행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복귀를 명령한다.
# 묵상
찬사를 받은 두지파 반 ( 22:1-4 )
요단동편의 지파들은 모세와 더불어 맺은 약속을 모세가 죽은후에도 지켰는데, 이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은 곧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들은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고 뜨거운 신앙을 소유함으로써 믿음의 행군을 계속할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신앙과 함께 애국심이 있어야합니다. 그리할때 용감한 십자가의 용사로서 헌신할수 있습니다.
영적전투를 위한 여호수아의 당부 ( 22:5 )
그는 요단동편의 두지파 반에게 신앙생활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즉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계명을 지켜야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당부한 것은 백성들이 전쟁의 종식과 더불어 해이하고 방관하는 태도로 경건생활을 무시할 우려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두려운 적은 강한 힘을 가진 외부의 군대가 아닌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자신임을 알아야합니다(마15:18). 하나님은 사람들이 전인격적으로 당신을 따를때 크게 역사하시며 도우십니다.
재물을 함께 나누어야할 형제 ( 22:8 )
이스라엘에서는 전리품을 나누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입니다(민31:25-47).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라는 인식아래 형제에게 부족한 것이 발견되거나 내게 남은 것이 있을때 서로 협조하며 돕는 미덕을 가져야합니다(고전12:12-27).
요단동편 제단사건 ( 22:10-34 )
이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선한의도에서 행한 일도 오해를 부를수 있으므로(롬14:13) 항상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함을 알수 있습니다(고전8:1-13). 또한 오해에 앞서서 형제에 대해 세심한 관심이 요구되고(롬15:1, 2), 형제의 잘못을 책망하기보다 권면하기를 힘써야 하며(골3:16), 오해를 씻기위해 마음을 열고 대화해야함을 교훈받을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원칙 ( 22:22 )
모든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보신다는 믿음으로 행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고 계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마10:30). 그러므로 사람이 무슨일을 경영하든지 하나님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대신 그분의 뜻에 맞게 계획하고 행하면 인도함을 받을수 있습니다.
두지파 반의 주된 관심사 ( 22:24, 25 )
첫째, 신앙 제일주의이고 둘째, 연대의식이고 셋째, 자녀교육이었습니다. 이는 신앙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 세가지를 지킴은 하나님과 함께있음을 의미합니다. 만일 죄악으로 물들어 있게되면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수 없습니다.
두지파 반이 단을 쌓았던 이유 ( 22:27, 28 )
제단의 모형이 요단동편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단을 통하여 요단서편의 열지파 반과 한민족 공동체임을 후손들에게 고취시켜주고자 하였습니다. 즉 이 단을 제작한 목적은 우상숭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바른제사를 요단서편의 열지파 반과 똑같이 준수하려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단을 쌓을수밖에 없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요단동편의 두지파 반사이에는 종교적인 지도자가 없었기에 제사지내는 양식과 모양을 후손들에게 잊지않게 해주며, 나아가 후손들이 하나님을 끝까지 버리지않게 하기위해서였습니다.
형제의 선행결과 ( 22:30-34 )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하여 지체된 성도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기쁨과 슬픔을 함께합니다(고전12장).
'여호수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수아 24장 - study (0) | 2020.12.23 |
---|---|
여호수아 23장 - study (0) | 2020.12.23 |
여호수아 21장 - study (0) | 2020.12.22 |
여호수아 20장 - study (0) | 2020.12.22 |
여호수아 19장 - study (0) | 2020.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