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예루살렘 성과 그 인근지방의 환난 22:1-7
이 예언의 제목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이상 골짜기에 관한 경고'이다. 예루살렘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유다 땅에는 골짜기들이 많았기때문에 골짜기라도 불렸다. 또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그곳에서 자신을 알리셨고 선지자들이 이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때문에 '이상 골짜기'라고도 불리운다. 바벨론은 비록 부유하고 강대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지못하기 때문에 '해변 광야'라고 불렸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때문에 '이상 골짜기'이다. 본문에 '이상 골짜기에 관한 경고'가 있는데, 그것은 그골짜기를 완전히 파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고를 주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경고는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파멸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산헤립이 시도한 예루살렘 공격과 관계가 있기(10,36장) 때문이다.
(1) 예루살렘이 산헤립 군대가 가까이 옴으로인해 당황할 것이다. 예루살렘은 한때 무역이 성행하고 인구가 많고 그래서 떠들썩하고 즐겁게 흥청거리는 성읍이었다. "그러나 상점들이 문을 닫고 네가 적을 피하여 숨기위해 '지붕에 올라앉으니' 어찌된 일이냐?"(1절). 예루살렘이 어째서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너의 죽임을 당한 자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그들은 기근으로 죽었거나(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면 두려움으로 죽었다. 그들은 너무 낙담한 나머지 마치 칼로 꿰뚫린 것처럼 실제로 두려움에 찔렸다.
(2) 유다의 관원들이 전국 각처에서 창피스럽게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다가 거기서 붙잡혔다(3절). 그들이 각자 돌보아야할 성읍을 앗수르 군대가 삼키도록 버려둔채로 도망하였기때문에 그군대가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였다'(36:1). 이 관원들은 결박당하여 활을 쓰지 못하였다. 그들은 겁쟁이처럼 자기 성읍을 떠났을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와서도 두려워 떨었다. 그래서 그들은 활을 당기지 못하였다.
(3) 선지자가 몹시 걱정하고 있는 그 일로인해 모든 지지한 백성들이 큰고통을 당할 것이다(4,5절). 선지자는 자신이 슬퍼하는 모습보이기를 원치않는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그로부터 얼굴을 돌리라고 말한다. 그는 남몰래 울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무엇때문에 슬퍼하는가? 이 불쌍한 선지자는 잃어버릴 것도 거의 없었고 또 고난에 단련되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가 슬퍼하는 것은 '그의 딸 백성이 패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수들이 그들을 짓밟아도 그친구들은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방법을 알지못한다. 원수들은 공성망치를 가지고 성벽을 부수고 있는데 그들은 헛되이 산을 바라보고(적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무너져 그들을 덮어달라고) 부르짖거나 산더러 그들의 쟁변을 듣고서(미 6:1) 그들과 그들의 원수들사이에 서서 판가름해 주기를 호소하고 있다.
(4) 그원수들의 힘은 막강해서 그들의 성읍을 포위공격할 것이다(6,7절). 엘람(즉 바사)은 화살이 가득한 전동과 전차를 이끌고 올것이다. 기르(즉 메대)는 싸움을 위한 즉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할것이다. 그때는 한때 양떼로 뒤덮였던 예루살렘 주변의 비옥한 골짜기들에 병거가 가득할 것이며, 성문에는 식량을 일체 성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기위해 '마병들이 정렬할 것이다.'

Ⅱ. 유다의 죄악 22:8-14
본문의 첫머리에서 '유다에게 덮었던 것을 벗긴다는'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다를 두르고 있는 성읍들은 유다의 엄호물이었다. 그러나 이성읍들이 앗수르 군대에게 탈취당함으로써 더이상 자폐물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어 유다의 연약함이 드러났다. 이와같이 유다에게 덮였던 것이 벗겨졌다. 유다의 창고들이 공중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열려졌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이사실을 다르게 해석한다. 즉 하나님은 유다가 당할 이환난을 통해서 그들의 덮개를 벗기려고 하셨다(즉 그들의 위선을 폭로시키려고 하셨다)는 것이다(대하 32:31). 이제 그들이 세상적인 안전과 확신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사실이 드러났다(9,13절). 그들은 큰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이 두려움속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나타내보였다.
(1)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들을 도우실수 있는 능력을 크게 멸시하였다.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생각해 낼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사용하였다. 산헤립이 유다의 끝까지 방어하고 순순히 항복하지 말자고 결의하였다. 그들은 무기가 충분히 비축되어 있는지 알아보려고 무기고와 창고를 조사하였다. 즉 그들은 솔로몬이 병기고로 쓰려고 예루살렘에 지었던(왕상 10:17);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요새 곧 '다윗성'의 무너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성벽둘레를 돌면서 수리를 하지못해 무너진 곳을 조사하였다. 이렇게 무너진 곳이 많았다. 우리는 다같이 당하는 재난을 통해서 우리의 무너진 곳을 고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도록 깨우침을 받아야한다. 그들은 성에서 쓸 물을 확보하였다. 너희가 아래못의 물도 모으며. 또한 그들은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여' 집집마다 공공사업을 위해 각집에 할당된 수의 사람을 보내거나 돈을 기부하도록 하였다. 개인 재산도 공중의 안전을 위해 바쳐져야 했기때문에 성벽을 튼튼하게 쌓아야 할때에 그길을 방해하는 집들은 헐렸다. 그들은 성을 더욱 안전하게 하기위해 성벽외벽과 내벽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다. 또 그들은 옛못의 물을 성으로 끌어들여 자기들은 물을 충분히 확보하고 성을 포위공격하는 자들에게는 물을 주지않으려고 궁리하였다. 앗수르 군대로 '와서 많은 물을 얻지 못하게할' 것이다(대하 32:4).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관심하였는가. 즉 '저희가 이일을 하신 자'(그것을 만드신 자, 즉 너희가 그처럼 열심을 내어 방어하려고 하는 성읍인 예루살렘을 만드신 자)와 방어를 위해 그성에 갖추어준 모든 이점들을 '앙망하지 아니하였다.' 예루살렘을 만드시고 지혜로 옛적부터 그것을 구상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본문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책망을 받는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이며 하나님의 전이 그곳에 있기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부유한 성읍이며 자기들의 집이 그곳에 있기때문에 예루살렘을 튼튼히 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노력을 믿고서 축복을 얻기위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방호할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였고'(왕하 18:5) 특별히 이때에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다고 기록되었다(대하 32:8). 그러나 주변의 지위가 높은 정치가들과 군인들은 신앙을 거의 갖고있지 않았던것 같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를 몹시 멸시하였다(12-14절). 그들에게 이러한 재난을 일으키사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고 회개하도록 만들려고 계획하셨다. 그환난의 날에 하나님은 그로인해서 '통곡하며 애호하고' 온간 형태로 슬픔을 표시하며 심지어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베를 띠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슬퍼하고 기도를 드리며 힘써 생활을 개혁하라는 명령을 더하셨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자신의 섭리를 설명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명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같은 계획과는 정반대로 행하였다(13절). 그들은 마치 그들에게 아무 적도 없고 위험도 전혀 없는 것처럼 안심하고 즐거워하였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예방책을 다 마련했을때 그들은 위험을 무시하고 즐겁게 지내기로 작정하였다.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이것은 '여호와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의 선지자들을 학대하던' 불경한 조소자들의 말이었다. 그들은 죽음과 또한 죽음저편에 있는 미래상태에 대한 가르침을 조롱하였다. 세속적인 안전과 동물적인 육욕, 이것은 인류 대다수가 짓는 죄와 수치이며 그들을 파괴시키는 것인데 그밑바닥에는 현생이 뒤에 오는 또다른 생에 대한 실제적인 불신앙이 깔려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자신이 그점에 대해 분개하심을 나타내셨다. 그사실을 '친히 그의 귀에 들려' 선지자로하여금 지붕에서 선포하도록 하셨다. 진실로 이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14절).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뜻과 정반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하나님은 완고한 자에게는 거스려 행하심을 보여주실 것이다.

Ⅲ. 셉나의 멸망 22:15-25
우리는 본문에서 왕실 고관인 셉나가 해고되고 대신에 엘리아김이 영예로운 직책에 발탁되는 것에 관한 예언을 본다. 하나님은 이 특정한 두사람에 관한 예언을 성취시킴으로써 이사야의 입에서 나오는 다른 더 큰사건들에 관한 그의 예언을 확증하려고 하셨다. 이 예언은 본장 앞부분에 있는 것과 함께 같은시기에 전해졌고 산헤립의 침공전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던것 같다. 왜냐하면 이때는 셉나가 '궁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후에는(36:32) 엘리아김이 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점차 몰락하는 셉나는 서기관이었다.
(1) 셉나가 받을 수치에 대한 예언 : 그는 국고의 관리를 맡고 있었기때문에 '국고를 맡은 자'라고 불리었다. 또한 그는 '궁을 차지하였다'고 적혀있다. 유대인들은 그가 앗수르왕과 반역적인 서신 왕래를 계속하였고 성을 그의 손에 넘겨주기위해 그와 교섭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교만, 허영, 방심에 대하여 책망을 받는다(16절). 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 누가 있기에. "네가 참으로 야단법석을 피우는구나. 너는 아무도 네가 어디서 왔는가조차 알수 없을만큼 천하고 이름없는 자가 아니냐? 그렇다면 네가 스스로 좋은 집을 짓고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는 것이 무엇을 위함이냐?" 그의 초소는 바위속에 조각된 것처럼 아주 견고하게 세워졌고 아주 튼튼하였다. 그는 마치 죽은뒤에도 자기의 영화를 계속 남아있게 하려는듯이 보였다. 네가...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그가 몰락하고 그의 영광이 훼손되리라는 예언을 볼수 있다(19절). 내가 나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높은 지위는 미끄러지기 쉬운 곳이다. 따라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의기양양해 하는 자들이 이 지위를 빼앗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5절의 말씀이 이것과 관련이 있다. "지금은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즉 자신의 지위가 확고부동하다고 생각하는 셉나를 가리키는 말이다)이 '삭으리니' 그못이 부러져 떨어질 것이라." 잠시후면 그는 그의 관직에서 뿐만아니라 자기 나라에서조차 쫓겨날 것이다. 여호와가...너를 장사같이 맹렬히 던지되(17,18절). 어떤 사람들은 앗수르인들이 그를 사로잡아 죽였거나 어쩌면 히스기야가 그의 반역적인 행위를 알고서 추방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로티우스(Grotius)는 그가 문둥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데, 그병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로인해 발생하며 특별히 교만한 자를 벌하는데 쓰이는 병이라고 여겨져왔었다. 그래서 그는 이 문둥병때문에 '말아 쌓아' 예루살렘에서 '공같이 던져졌다'고 한다. 셉나는 자기 자리가 자기에게 너무 협소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광막한 지경으로' 보내시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돌아다닐만한 장소를 얻을 것이나, 다시 돌아올 길은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이전에는 그의 영광의 수레였던 '수레도 거기 있으면서' 다만 지난날의 영화를 상기시킴으로써 그에게 고통을 더해주며 그의 '주인의 집' 즉 그를 등용한 아하스 왕실에 '수치를 끼칠' 것이다.
(2) 엘리아김의 등용에 대한 예언(20절) :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미 다른 일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신실하게 입증해보였던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이 높은 관직에 앉히려고 부르시는 것이다. 본문은 엘리아김이 궁내대신이요 국고 책임자이며 총리의 직책인 셉나의 자리로 승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사야는 셉나에게 이말을 해야했다(21절). "그가 명예의 상징인 '네 옷'을 입고 권력의 상징인 '네 띠'를 띨것이라. 이는 그가 '네 정권'을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내가...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힘있게 하고. 책임과 권력의 자리를 맡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은 자기들의 직무를 행할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엘리아김의 등용은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둔다는 말로써 한번더 묘사된다(22절). 그는 '궁중보물 곧 은금과 향료' 그리고 '무기고와 보물고'(39:2)에 가까이 갈수 있었고, 공공사업에 합당하다고 생각한대로 거기에 있는 물건들을 처리하였다. 그의 직위는 확고부동해질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그지위를 차지할 것이다(23절). 즉 '내가 그를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견고케하여' 빠지거나 부러지지 않게할 것이다. 그는 나라의 복덩어리가 될것이다(21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의 집에 아비가 될것이며. 그는 왕실의 일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공적사업을 돌볼 것이다. 왕실과 도성과 나라가 서로 상반된 이해관계를 갖지않고, 신하들은 참된 애국자들이며, 왕실에서 축복하는 자를 나라전체가 함께 축복할수 있을때 그백성은 행복하다. 그는 그들가운데 복덩이리가 될것이다(23,24절). 그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 그위에 걸리리니. 엘리아김은 '단단한 곳에 박힌 못'이며 그의 모든 식구들은 집안에서 손잡이가 달린 그릇들이 못에 걸려있듯이 그를 의지할 것이라고 한다. 그말은 그가 식구들을 모두 관대하게 돌볼 것이며 그보호의 무거운 짐을 질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모든 그릇들 즉 '항아리' 뿐만아니라 '작은 그릇 곧 종지'까지 돌볼 것이다. 즉 그의 가문에 속한 가장 비천한 자들도 그에게 부양받을 것이다. 다윗 집의 열쇠를 쥐고 계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단단히 박힌 못'과 같아서 '그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 그위에 걸려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매달려있는 영혼은 아무리 무거울지라도 결코 멸망당하지 않으며 그에게 매달리는 일에 실패하지 않는다.

# 핵심
22:1-25
하나님의 권고를 무시함으로 이방 열국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말 예루살렘의 슬픈 운명과 탐욕의 노예로 전락한 유다 지도자들에게 미칠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을 경고한다.

# 묵상
이상 골짜기 ( 22:1 )
이상 혹은 환상의 골짜기라는 이말은 여호와께서 이상중에 임재하셨고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던 장소인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편 5절에도 나오는 이 ‘이상 골짜기’라는 말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그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임을 암시합니다.
유대인들이 대적을 막기위해서 한 일 ( 22:9-11 )
다윗성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물을 모으며, 가옥을 계수하고 성벽을 견코케하며 두 성벽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습니다. 산헤립의 위협을 느낀 히스기야는 다윗성 서편의 기혼샘에서 실로암못에 이르는 지하수도관을 만들었던 것입니다(대하34:4-8). 그러나 이러한 행위 모두는 인간적인 방책에 불과합니다. 성도가 진정으로 의뢰하고 앙망해야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입니다(사40:31).
이사야를 셉나에게 보내신 하나님 ( 22:16 )
셉나는 예루살렘과 아무 연관도 없는 이방인인데, 자기의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저명한 유다의 왕들이나 파는 바위무덤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셉나는 자신이 그무덤에 묻히지도 못할 것인데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들여 묘실을 팠습니다. 이것은 셉나가 자신을 위대한 자라고 생각하여 유다의 열왕들이 묻힌 장소에 함께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아김 ( 22:20 )
그는 히스기야의 궁내대신으로 예루살렘성이 포위당했을때 앗수르왕 산헤립의 사자들과 협상을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의 대변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도움을 구하기위해서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다윗집의 열쇠 ( 22:22 )
이는 궁전을 열고 닫을수 있는 전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문이십니다(계3: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수 있는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마16:18, 19). 나아가 그분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권한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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