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유다의 위선을 책망함 48:1-8
(1) 많은 유대인들이 종교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하여 위선적인 고백을 하였다.
1) 그들의 경건의 고백은 하늘높이 치솟았고, 그들은 아주 더러운 마음을 매끈한 가면으로 가리웠다.
① 그들은 '야곱의 집'이었다. 그들은 가시적인 교회안에서 그들의 자리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노라."
② 그들은 명예로운 이름인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에게 왕자가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은 스스로 왕족임을 자랑하였다.
③ 그들은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다.' 즉 다른 지파가 반역을 하였을때 하나님께 붙어있었던 충성된 지파의 소속이었다.
④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이렇게함으로 하나님이 참하나님이심을 인정한 것이다.
⑤ 그들은 찬양과 기도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불렀다.'
⑥ 그들은 스스로 '거룩한 성'이라(한글개역에는 '거룩한 성 백성'으로 되어있음-역주) 칭하였다.
⑦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의 약속들과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것을 자랑하였으며 '여호와를 의뢰하였다'(미 3:11).
2) 이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건의 고백은 형편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은 전부 헛것이었다. 즉 이런 고백을 하는 그들의 마음은 진실하지도 옳지도 못하였다.
(2)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수단을 사용하셔서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하시고 우상에게로 돌아서지 못하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훌륭한 율법들을 주셨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로하여금 죄에 빠지지않도록 해주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명한 예언과 분명한 섭리를 주셨다. 이모든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1)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들에게 놀라운 예언을 주셨다(3절).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먼저 예언되지 않고 발생한 일이 없다(애굽에서의노예생활, 해방, 가나안의 정착 등). 지금은 비록 그들이 바벨론에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이 재난역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들에게 분명히 경고하신 것이었다(레 26:31이하;신 28:26이하,29:28).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며, 그들의 본토로 다시 귀환할 것을 그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신 30:4이하;레 26:44,45).
2)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놀라운 장래 일을 보여주시는 특혜를 주셨다(6절). 이제부터 내가 새일...을 네게 보이노니. 하나님께서는 그당시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새로운 일들을 보여주셨고, 그일들을 이루셨다. 이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시지 않으셨더라면, 감추어질 일들이었다. 다시말하면 고레스왕과 유대 백성이 바벨론에서 놓임을 받을 정확한 시각에 관한 예언과 같은 일들이다. 이일들을 하나님께서 '이제 창조하셨다'(7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에게 이일이 요원하게 생각될때 즉 너희가 이일을 기대할 근거가 전혀없을때(7,8절) 이일이 아주 불가능하게 보일때, 내가 이일에 대해 너희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감추어진 일들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6절).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즉 "너희가 예언의 말을 들었으니 이제 그완성을 보라. 이래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은 너희에게 위대한 하나님이셨다고 고백하지 않겠느냐? 이것을 고백함으로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너희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느껴라."
(3)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런 방법을 사용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자신들과 자신들의 우상에 대하여 자랑할 것을 예상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았더면 네 말이 내 신의 행한바요 내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의 명한바라 하였으리라(5절). 그러나 이일을 우상에게 돌려서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은 자들은 스스로 교만해져서 자신의 지혜로 이일을 예견한양 허풍을 떨었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고집스럽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참으셨다.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여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4절).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의 멍에에 굴복할수도, 하나님의 뜻에 굽힐수도, 하나님의 섭리로써 다스려질수도 없다. 네 아미는 놋이라. 즉 "너는 뻔뻔스러우며 얼굴을 붉힐줄 모르고 자신의 양심을 길에 불쑥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자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나 그들은 듣지않았고 알려고하지도 않았다. 네가...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이것은 잘못된 평가가 아니다. 이는 그들이 가나안을 향하여 행군을 시작하자마자 살인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Ⅱ.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심 48:9-15
바벨론에 포로로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대체 구원받을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않았기에 이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격려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을 좌절하게 하는 요인으로는 다음 두가지가 있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일을 하실만큼 그들은 가치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둘째, 그일 자체에 내포되어있는 많은 어려움들이다. 그러나 이제 이 두가지 실망의 요소가 모두 제거되었다.
(1) 그들이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이일을 하시려고 하였다(9-11절).
1) 그들이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존재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포로생활도 그들의 불의에 대한 처벌대가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혹은 오히려 화를 억제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그의 손을 멈추시려고 하시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내이름을 위하여. 즉 이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진 백성이므로 만약 그들이 끊어져버린다면, 원수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영예를 위하여. 또한 이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의 명예를 높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2) 그들이 타락하고 성미가 고약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그들을 위해 의도하신 자비에 맞게 그들을 개조하시기를 원하셨다.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이것은 네가 영광의 그릇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왜 그들을 고통가운데로 이끄시고, 그토록 오랫동안 그안에 머물게 하셨는지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이것은 그들을 끊어버리기 위함이 아니고 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부분적으로 제련되었고, 비록 철저하게 제련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취하신 것이다. 내가...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그후에 내가 위대한 일들을 위해 너를 정하였노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그릇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고난의 풀무가운데 있을때 그들안에서 은혜의 한역사가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일을 하시려는 것은 그들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 의무를 지고 계셨기때문이 아니라 그들로 이방인들의 오만 무례한 승리감에 오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을 정복하였을때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정복한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모세는 이말로 자주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여호와여 저 애굽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겠나이까."
(2) 비록 그들이 자신들을 도울능력이 없었고 이일 또한 실현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이일을 하실수 있었다는 증거가 여기에 나와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부르심을 입었을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호 11:1) 부르심을 입었고 지금은 바벨론에서 부르심을 입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하실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홀로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12절). 나는 그니. 즉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수 있고, 선의 것을 하기를 원하는 그로라."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이제 '그'가 이일을 수행하실때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있겠는가? 그는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며, 어떤 일이든 다 행하신 분이시다(13절). "그의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그가 그펴신 팔로 무엇을 하시겠느냐?"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무리들에 대한 명령권을 가지고 계시다.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 즉 천지가 천지의 조성자를 섬기는 일에 서로 돕는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신다면, 그들의 구원을 이룰 도구때문에 궁색하실수가 없는 것이다. "야곱의 집에 속한 '너희는 다 모여서' 이말을 듣고 위로를 받으라. '그들중의 누가' 즉 이방 신들가운데, 혹은 그들의 현자들가운데 누가 '이일을 예언하였느뇨', 혹은 누가 이일을 예언할수 있었느뇨?"(14절). 하나님을 능가해서 볼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능가해서 일할수 있는 자도 결코없다는 사실을 확신할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14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 영예를 주시고 그를 하나님의 백성을 구속하는 일에 도구로 만드셨으며 그일 가운데서 위대한 구속자 즉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모형이 되게 하셨다. 내가 그를 부르며(15절). "내가 그를 먼나라에서 데려왔고, 그의 의도를 초월하여 한걸음씩 그를 인도하였노라. 그러므로 내가 그를 끝까지 붙들리라." 고레스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할 것이다.'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14절). 즉 고레스의 팔(그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팔)이 그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면 그가 그길을 형통하게 할것이기 때문이다(15절).

Ⅲ. 죄로인해 포로가 된것을 말씀하심 48:16-22
야곱과 이스라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도록 소집되어졌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자는 그의 비밀이 자기들과 함께하실 것을 신뢰할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자신이 이전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언제나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내가...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그의 명령을 모호하거나 애매하게 전달하지 않으시고 이해될수 있게 하셨다(합 2:2). "그들이 처음 민족을 형성했을 그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그는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사사들을 일으키셨으며, 그들을 위해 자주 나타나셨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여전히 거기에 있으리라."
(2) 그 선지자 자신이 자기의 임명사실을 천명한다.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그신을 통하여 나를 보내셨느니라"(16절).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자를 성령께서 보내신다.
(3)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은혜의 소식을 그들에게 보내신다. 이소식의 서언은 두려우면서도 고무적이다(17절). '너희의 구속자시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같은 말씀은 율법의 초두에 나올뿐만 아니라 율법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약속의 초두에도 나오고 그약속에 확실성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안에서 성취하시고자 하는 선한 일이 여기 나와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신 그분이 그들의 교사가 되실 것이다.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나는 네게 평화가 임하게 되는 일을 가르치는도다."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자들을 가르치신다. 환난가운데서 건져내시기를 계획하신 자들에게 먼저 그환난을 통하여 유익을 얻도록 가르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밝혀주실 뿐만아니라, 그들의 발걸음으로 지도해 주신다. 또한 은혜로써 그들을 의무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섭리로써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
2)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가지고 계신 선한 뜻을 선포하신다(18,19절).
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을때, 그들이 순종하기를 진정으로 원하셨다(신 5:29).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18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은 '죄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고 맹세하신 내용을 확신시켜주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약 그들이 순종하였더라면 그들의 포로됨을 예방하였을뿐만 아니라 그들이 형통하게 되었고 그형통함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해 주신다.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즉 "너희가 일련의 자비, 곧 항상 마르지 아니하는 강의 맑은 물처럼 계속해서 이어지는 자비를 누렸을 것이라."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명예와 공의로운 판결에 '바다 물결같이' 모든 부면에 있어서 그힘으로 반대자들을 압도하였을 것이다. 그들의 의가 마치 그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불순종가운데 있으며 그들의 형통의 물줄기는 단절되었고, 그들의 의는 압도당한 가운데 있었다. 그들의 청년들이 중다하게 되고 형통하게 되었어야 하련만 지금 그들은 포로생활에서 귀환하는 자들의 수요가 보여주는 것처럼(스 2:64), 매우 적은 수효에 불과하였다. 또한 그들이 순종하였더라면 이스라엘의 영광에 흠이 없었을 것이고 감히 누구도 손대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이름이 내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즉 지금 황무해있거나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이스라엘 땅처럼 되지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죄란 우리에게서 우리가 누리던 좋은 것들을 탈취해 갈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쌓아두신 좋은 것들을 얻지도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에 대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하겠다(차라리 분노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자비의 특권밖에는 그들을 구원할 것이 없을 것이다.
3)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계획하신 위대한 사역, 즉 포로생활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실 것에 대해 확약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가 일하기 오래전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그들의 고토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포하셨다(20절). "이것에 관한 소식을 말로써 '땅끝까지' 전파하라."이것은 온세상에 복음이 전파될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시는 자들은 곧 그가 비싸게 값주고 사신 자들이란 사실을 그들로 알게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나님께서 풀어주신 그끈들은 그들을 하나님께로 더단단히 묶었다. 우리를 구속하신 그 분은 우리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수 없는 권리를 소유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돌이키도록 계획하신 자들을 또한 돌보실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여정에 아무런 부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하시되. 그들이 움직일때마다 반석에서 나오는 물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데, 그들이 전혀 생각지못한 방법으로 행하실수 있다. 이기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시던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신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모든 기사는 문자그대로 이루어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일은 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할때 실제로 다시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은 기적뿐만 아니라 희한한 섭리들을 허용하셔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신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를 위해 쌓아두신 은혜의 보고에 적용되는 말씀으로 마치 물이 반석에서 이스라엘에게 흘러나온 것처럼, 모든 좋은 것은 이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에게 흘러나온다. 왜냐하면 그반석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이 평강의 생각이라 할지라도(22절) '악인'에게는 즉 개혁되기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이 어찌 평강할수 있겠는가?

# 핵심
48:1-22
유다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패역한 백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오래참으사 유다 백성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될것을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의 구속자(48:17)
‘구속자’란 원어상 ‘기업무를 자’라는 뜻이다(룻 4: 1,3). ‘기업무를 자’는 근친이 이행해야할 의무규정과 연관을 가진다(레 25:25). 즉 가난한 친족이 빚때문에 땅을 팔았다가 살 능력이 없으면 그 근친이 값을 대신 치르고 사주어야할 의무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기업무를 자가 되어주신다는 의미이다. 이약속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위해 친히 보혈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희생을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다(벧전 2:18,19).

# 묵상
마음이 완악한 자들의 특징 ( 48:1-5 )
마음이 완악한 자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자신이나 자기가 섬기는 우상으로인해 이루어진 일이라고 오해합니다.
네가 알지못하던 은비한 일 ( 48:6 )
고레스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신비한 일들을 선전하고 증거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이라고 불리웁니다.
이스라엘을 멸하지않으신 하나님 ( 48:8, 9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는 칭함을 입은 자들임을 아셨지만 멸하시지 않은 까닭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명예를 위하여 노하기를 더디하고 참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오래참으시는 분입니다. 이는 죄인이 회개하여 당신께로 돌아서고 당신의 구원을 열방에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 ( 48:12 )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은 지금 백성가운데 남은 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분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날을 도래하게 하실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요, 영원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 역시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라고 불리웠습니다(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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