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시드기야의 전갈과 그응답 21:1-7
1. 시드기야왕의 전갈(1,2)
시드기야왕은 곤경에 처하여 매우 겸손한 전갈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냈다. 그는 선지자의 도움을 바랄정도로 겸손해졌다. 그러나 선지자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할정도로 겸비해진 것은 아니었다.
(1) 시드기야왕이 지금 처해있는 곤경은 느부갓네살왕이 전쟁을 일으켜 그를 침으로써 비롯되었다. 그는 그땅을 침략하여 도성을 포위하고 사실상 그성을 공략하고 있었다.
(2) 그가 보낸 사신들은 바스훌과 스바냐였다. 만일 시드기야가 선지자와 직접 개인적인 회합을 원했더라면 훨씬 나았을터이었다. 그가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겸손히 낮추었더라면 선지자는 틀림없이 그제의를 수락했을 것이다. 이들 제사장들은 왕으로부터 그일을 위임받았을때 선지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전갈을 전해야 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체면이 손상되는 일이었으며 예레미야에게는 명예로운 일이었다.
(3) 시드기야가 보낸 전갈은 이러하였다.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2절). 갈대아 군대가 저희 국경을 넘어선 지금에야 그들은 예레미야가 참된 선지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비록 그것을 인정하기 싫을지라도 어쩔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확신이 들자 그들은 예레미야가 자기들의 친구로 하나님앞에 서주기를 바랐다.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물어보라. 이제까지 우리가 취한 모든 방책들이 다 부질없게 되었으니 현재의 궁지에서 우리가 취할수 있는 방도를 물어보라." 저희의 죄를 깨끗이 청산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지시를 따르려고 하지않는 자들이 저희의 곤경에서 깨끗이 탈피하기위하여 하나님의 섭리의 지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고 있다.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절히 탄원하라. 하나님께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어달라.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를 위해 베푸신 '그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원수가 포위를 풀고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되리라." 그들의 모든 관심은 자기들의 곤경에서 벗어나는데 있을뿐이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그와 화해하는데 있지 않았다. 그들의 바라는바는 "원수가 우리를 떠나리라"는 것이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시리라"는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바로가 이와같이 행하였었다(출 10:17). 그들의 전소망은 하나님께서 예전에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때, 이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성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기사를 행하셨다는데 있다(대하 32:20,21). 그러니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들 포위자들을 멸하실수 있는 이가 그분외에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시드가야왕과 그백성들은 자기들이 히스기야왕과 또 그백성들과 성격이 완전히 다름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저들은 전반적인 개혁과 경건의 나날가운데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응답(3-7)
이 전갈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보내신 응답은 매우 놀랍고도 가혹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보다도 훨씬더 그들의 심중을 잘아신다. 그러므로 그응답을 통하여 한마디의 위로의 말도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응답하신다(3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허용하셨다는 것, 그리고 예전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기사를 행하셨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들을 위하여 크나큰 일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이름으로만 이스라엘인일뿐인 현세대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못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본문말씀에서 예고되고 있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모든 노력을 허사로 돌아가게 하시며 무익하게 하실 것이다(4절).
(2) 포위자들은 머지않아 예루살렘의 주인이 될것이며 그모든 재물과 병력을 취하게될 것이다. "내가 지금 이성을 포위하고 있는 자들을 이성중에 모아들이리라."
(3)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대적이 되실 것이다. 그렇게되면 누가 그들의 편을 들어줄수 있겠는가. 예레미야도 그들의 친구가 되어줄수 없다(5절).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을 행하는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저희를 대항하여 싸우실 것을 각오해야할 것이다.
(4) 자신의 안전을 꾀하여, 포위자들에게 돌격하기를 거부하고 그칼을 피해 도망한 자들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공의의 칼을 피하지못할 것이다(6절). 내가 또 이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치리니 그들이 큰염병에 죽으리라.
(5) 칼과 기근과 염병을 피해 살아남은 왕 자신과 모든 백성들은 갈대아인들의 손에 붙여질 것이다(7절). 갈대아인들은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할' 것이다.

Ⅱ. 왕과 백성에 대한 권고 21:8-14
예레미야에게 보낸 왕의 정중한 전갈로 미루어 보건대 왕과 백성들 모두가 예레미야를 존중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려주신 응답은 그들이 이제 막 그에 대해 가지기 시작한 미미한 존경심마저 부숴뜨리기에 충분하였으며 그 어느때보다도 더 예레미야에 대한 그들의 적개심을 자극시킬 만하였다. 바로 앞절들에 나타난 예언뿐만 아니라 여기 본문말씀에 명해진 대책들도 그들을 격분시키는 것들이었다.
1. 항복의 권면(8-10)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그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을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갈대아인들에게 항복하는 길이라고 권면한다(8-10절). 이계책은 거짓선지자들의 발린 말에 혹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성을 고수하기로 결심한 자들, 즉 저희 성벽의 굳건함내지 저희 군사력의 용맹을 믿거나 자기들을 포위상태에서 구해줄 외국 군대의 원조를 기대한 자들을 노엽게 하는 것이었다. 선지자는 그들에게 이와같이 확증하고 있다. "이성은 바벨론왕의 손에 붙임이 될것이라. 그는 단지 성을 약탈할뿐만 아니라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왜냐하면 복을 위함이 아니라, 화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그얼굴을 이성으로 향하셨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만일 이재앙을 최선의 것으로 극소화시키고자 한다면 갈대아인들의 관대한 자비를 구하면서 항복하여 전쟁포로가 되어야 할지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맞서신 지금에 있어 그들이 취할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율법과 선지자들은 종종 그들앞에 생명과 사망을 제시하곤 하였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생명이요, 불순종을 계속 고수하면 사망이었다(신 30:19). 보라 내가 너희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8절). 이표현은 신명기의 말씀처럼 공명정대한 제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에게 두가지 재난중 더나은 것을 택하라고 권고하는 음울한 딜레마이다. '성에 거주하는 자는' 성밖에서 칼에 죽든지, 성안에서 기근이나 염병으로 죽든지 마침내는 죽게될 것이다. 그러나 품고있던 헛된 소망을 버리고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을' 것이다. 그는 강자로부터 노략물을 취하는 것과 같이 힘들게 자기 생명을 부지할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 선조들이 앗수르인들의 진영을 탈취하였던 것같이(사 33:23) 자기들도 갈대아 진영을 습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만일 신중한 분별력으로 투항하면 목숨은 부지할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 약속된 노략물의 전부이었다.
2. 개혁의 권면(11,12)
그는 왕과 방백들에게 개혁을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에는 '유다왕의 집'을 위한 특별한 말씀이 있었는데 이는 그들에게 유익한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11,12절).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판결하기를 신중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하라. 판결을 신속히 하라. 네게 들어온 청원들에 대해 지체하지 말고 공의로이 판결하라. 너는 너를 괴롭게 하는 자들의 손에서 구함받기 바라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네게 공의로이 팽하시기를 기대하고 있도다. 그렇다면 너역시 네게 청원하는 자들에게 공의로이 행하며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내 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그리고 죄상의 방법으로 피하리라고 기대하는 너희는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최악의 지경에 처하게될 것이라." 하나님의 진노에 불을 붙이는 것은 그들의 악행이었다. 이와같이 명확하게 하나님께서는 '왕의 집'을 상대하신다. 왜냐하면 선지자의 기도로 덕을 보기를 바라는 자들은 선지자를 통한 경책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이다. 방백들이 먼저 솔선하여 좋은 모범을 보이고, 그리고나서 백성들이 개혁하도록 촉구해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세를 그릇된 악을 징계하는데 사용해야 마땅했으며 그렇게되면 백성들도 개혁하지 않을수 없게될 터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윗의 집'이었음을 저희에게 상기시키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백성에게 공평하게 판결을 집행했던 다윗의 발자취를 따라야 마땅한 것이다.
3. 불순종의 결과(13,14)
그는 그들이 개혁하지 않고 그릇된 길을 고수하는한 그들의 모든 소망이 허사임을 알려준다(13,14절). 그들은 '골짜기의 거민'이었다. 즉 예루살렘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천연 요새로써, 적군이 그들을 침범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예루살렘은 또한 '평원반석'이었다. 그러므로 적군이 그들을 아래쪽에서 몰래 기습하기도 곤란하였다. 이 천연의 이점을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나 약속보다도 더신뢰하였다. 그리고 자기들의 도성이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해 버렸다. 그들은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라고 자신만만해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우리를 치리요?'라는 확신이 허사임을 알려주신다.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13절). 그는 도저히 항거할수 없는 심판관으로써 그들에게 나아오신다. 그는 정당한 법의 절차를 따라,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14절).

# 핵심
21:1-22:9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는 본문은 B.C. 588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3차 침공이 있었던 시드기야 치세(B.C. 597-586)때를 배경으로 한다.
시드기야(21:1)
‘여호와는 정의이시다’라는 뜻의 이름. 유다 최후의 왕이며, 본명은 맛다니야였다(왕하 24:17). 예레미야의 권고를 듣지않고 바벨론에게 반기를 들었다가(27:1-11) 재위 9년(B.C. 588)에 느부갓네살의 침입을 받았다. 느부갓네살은 애굽왕 호브라의 개입으로 잠시 포위망을 풀었다가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함락시키고(B.C. 586) 도망간 시드기야를 체포하여 눈을 뽑고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왕하 25:1-7).

# 묵상
사람들을 예레미야에게 보낸 시드기야 ( 21:1, 2 )
시드기야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략했으므로 예레미야로하여금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케 하기위해서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시드기야는 그의 방백들과는 달리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참예언자임을 믿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방백들의 뜻에 따르지 않을수 없는 나약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친바벨론 정책을 권유하는 예레미야의 말대신 애굽을 믿고 반바벨론 정책을 추진한 방백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이와같이 신앙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따르지 못하는 모래위에 집을 세운 사람과 같습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 21:8-14 )
하나님의 구원은 생명으로 가는 길이요, 심판은 사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길은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는 갈대아인들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것이요, 사망의 길은 예루살렘에 거주함으로써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죽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갈대아왕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의 심판시행자로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갈대아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생명과 사망의 길은 인간의 판단에 있지않고 하나님의 표준에서 판가름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안전한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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