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유다의 회복에 대한 예언 23:1-8
(1) 양무리를 치는 일에 태만한 목자들에게 두려 운 말씀이 주어진다. 목자에게 화있으리라. 즉 이목자는 교회와 국가양측의 지도자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백성들을 인도하고 먹이며 보호하고 보살펴야 마땅한 자들이다. 그들이 양무리의 주인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백성들을 '내 목장의 양무리'로 부르신다. 즉, 그는 그들에게 좋은 목장을 제공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먹이라는 명을 받았고, 또한 그렇게하는 시늉을 하면서, 사실은 폭행과 압제로 양무리를 멸하여 흩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는 말씀이다. 양무리를 보살피지않은 그들은 사실상 저들을 흩어몰아낸 셈이다. 맹수가 저들을 흩었다고 하여도 목자들에게 잘못이 있음은 목자들이 저들을 한데 모아 지켰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2) 부주의한 목자들로인해 방치된 양무리에게 위로의 말씀이 주어진다. 비록 위임받은 목자들이 그들을 돌보지않는다해도 목자장께서 그들을 보살피실 것이다. 그들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지라도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신다.
1) 뿔뿔이 흩어진 유대인들은 마침내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될 것이며 선한 통치아래 행복하게 정착할 것이다(3,4절). 비록 하나님의 양무리가운데 남은 자들이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불러모으실 것이며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양떼가 '다시 그우리로 돌아오듯' 그들은 이전의 거처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육이 번성할 것이다.' 예전에 그들은 끊임없이 동요되지 않을수 없는 일을 당하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아니할 것이다. 스룹바벨이나 느헤미야같은 목자들은 여호야김이나 여고냐처럼 호사롭게 살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저들처럼 백성들에게 역병이 된것이 아니라 큰축복이 되었었다.
2) 왕되신 메시야, 양무리들의 크고도 선하신 목자께서 마지막때에 그의 교회를 복되게 하기위하여 일어나시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 되실 것이다(5,6절). 다윗의 집은 여고냐에 대해 경고된바에 의하면 몰락될 것으로 여겨졌다(22:30). 그러나 여기에 다윗과 일찍이 맺었던 언약의 명예를 보장하는 약속이 나오고 있다. 그 언약으로인하여 다윗의 집은 오히려 예전 어느때보다도 더욱 빛을 발하며 몰락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사야서에서 볼수 있는바에 비하면 예레미야서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에 대단히 탁월한 예언이 있다. 첫말씀은 이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오랜세월이 소요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때가 이르리니(5절).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내가 그를 볼것이라.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 그리스도는 이말씀에서 다윗에게서 난 한가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출현은 보잘것없고 그의 시작은 미미하여 싹눈달린 가지와 같은 것이다. 그의 일어남은 땅에서 나오는듯이 보여지나 자라면서 많은 열매를 맺게된다. 다윗의 집안에서 난 가지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소생할 것같이 보여지지 않았다. 그는 다윗에게서 난 뿔이다(시 132:17,18). 그는 '한 의로운 가지'이다. 왜냐하면 그자신이 의로우시며 그에게 속하는 많은 자들이 모두 그를 통하여 의롭게 되기 때문이다. 대언자로서 그는 의로우신 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말씀에서 그는 교회의 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는 이세상에,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할 한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그는 영원한 복음의 병거를 타고 전진하실 것이며 '이기고 또 이기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써, 일찍이 사단이 강탈했던 권세를 쳐부숴뜨리실 것이며 거룩하게 살게하는 그의 통치를 완전히 확립하실 것이고 그것을 널리 퍼뜨리사 온세상을 의롭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하여 그의 모든 충성스런 종들은 거룩한 보장과 마음의 평정을 얻게될 것이다. 그의 치세아래에서,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다(참조. 눅 1:74,75).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안에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때, 곧 우리 영혼의 가장 높은 자리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그때에 영혼은 평안히 거하게 된다. 그는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하나님으로서 그는 여호와(즉, 하나님의 말로 표현할수 없는 칭호)이시다. 이는 그의 영원성과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성을 암시한다. 중보자로서 그는 '우리의 의'이시다.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킴으로써, 그는 영원한 의를 가져오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계약에 동의하면 그의가 곧 우리의 것이 되도록 은혜로운 계약안에서 그의를 우리에게 작용하게끔 하셨다. 그는 지고하시며, 충만하시며, 영원하신 의이다. 우리의 모든 의는 그에게서 나온 것이며, 그로인하여 존재한다. 그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6절). 그는 우리의 의가 되실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알려지기도 하실 것이다. 우리의 의는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의 이름으로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으며, 죄로부터 사함받으며 은총가운데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다"는 것외에는 내세울만한 다른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를 우리 주님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3)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되돌아온후, 저희에게 임할 이위대한 구원은 애굽으로부터의 이스라엘의 구원보다 훨씬더 광휘로운 것이 될것이다(7,8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집 자손을 북방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바벨론에서 나온후, 왕되신 메시야께서는 복음의 성전을 세우셨다. 이는 바벨론에서 참으로 놀라웁게 구출된 그민족 최대의 영광이었다.
Ⅱ. 악한 선지자와 제사장 23:9-32
본문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상당히 긴 교훈이다. 예레미야 선지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하소연하였었다(14:13). 그리고 그들이 공동의 파멸에 함께 빠지리라고 번번히 예언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재난이 중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위임과 영감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스스로 파멸하는 것을 보는 일, 그리고 그들의 거짓과 패역으로 백성들이 파멸하는 것을 보는 일이 자기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표현하고 있다(9절). 내 중심이 상하며…내가 취한 사람같으며. 예레미야는 어떤 일이든 마음에 깊이 새겨두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연유든 자기 조국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그의 심령에 깊은 충격을 주곤했다. 그는 지금도 고통속에 놓여있다. 그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선지자들과 그들의 죄, 그들이 설교한 그릇된 교리들로 인해서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교훈을 받은양 자처하면서 악한생활을 영위하였다.
2) 여호와와 그의 심판으로 인해서이다. 그의 심판이 홍수와 같이 엄습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면전(이렇게 읽을수도 있다)과 그 거룩한 말씀의 진면목"으로부터 나오는 파멸과 황폐화를 생각하고는 전율하였다.
(2) 예레미야는 그땅에 가득한 가증스러운 악과 그들이 지금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에 대해 애곡한다(10절). 이땅에 행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그땅은 영적인 간음과 육체적인 간음들로 가득차 있다. 그들의 땅은 이제 기근의 심판아래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 그 아름다운 지역은 비가 내리지않음으로 마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회개의 기색은 보이지않고 있다. 그들은 크게 마음을 굳히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그릇된 길로 향해있다. 그들은 '열심내기는 하지만 좋은 뜻이 아니었다'(갈 4:17). 그들은 비록 이와같이 자기들과 다투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기는하나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3) 그는 그모든 것에 대하여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특히 선지자들을 책망한다. 선지자와 제사장 다 사특한지라(11절).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행하는 시늉을 하지만 실은 그것을 모독하고 있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자처하면서 실은 그것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외식을 행하고 있었다(혹자는 이렇게 읽는다). 그들은 거룩함을 가장하여 지극히 사악한 계획들을 실시하고 있었다.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제사장들이 직무를 행하며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곳인 성전에서조차도, 그들은 우상숭배와 부도덕의 죄를 범하였다. 두가지 사항에 대해서 그들은 질책받고 있다.
1) 그들은 스스로 백성들에게 죄를 가르치는 본보기가 되었다. 예레미야는 그들을 사마리아 선지자들과 비교한다. 사마리아는 열지파 왕국의 수도로서 황폐해진지 이미 오래였다. 바알을 의탁하고(13절).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한 것이 사마리아 선지자들의 우매함이었다. 그렇게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다. 곧 이스라엘 백성으로하여금 참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저버리고 바알을 숭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13절). 그러나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은 그러한 일을 행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참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였으며 자기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마리아의 선지자들과 같지않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마리아 선지자들이 우상숭배로 백성들을 오도하였던 것이나 조금도 다를바가 없게 부도덕한 행위들로 나라를 타락시켰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의 이름을 이용하여 온갖 더럽고 불순한 행위들에 탐닉했다. 그들은 진리의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거짓을 행하고 있었다. 이렇게하여 그들은 모든 사람들로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하게함으로써 죄인들을 부추겼던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선지자들이 행하는대로 해야할 것이라. 어떻게 우리가 우리 선생보다 더 나을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경로로해서 유다와 예루살렘은 '소돔 사람과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망하는 것외에는 달리 적절한 도리가 없는 자들로 간주하셨다.
2) 그들은 그릇된 예언들로 백성들을 범죄하도록 부추겼다. 그들은 스스로가 죄를 지어도 아무런 해도, 위험도 없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그렇게 행하였다(16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그들은 죄인들에게 설사 그들이 계속 죄를 고수하더라도 형통하리라고 말했다(17절). 자신의 쾌락을 충족시키기에 열심인 자들은 자기 하나님을 경시한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빌붙었다. 그들은 악한 길로 행하는 자에게는 평안이 없다고 계속하여 말했어야 마땅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가 평안하리라…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그들에게 말했다는 점이다.
(4) 하나님께서는 이 거짓 선지자들이 죄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달래기위해 말한 모든 것을 부인하신다(21절).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떠한 임무도 위임받은 일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달음질하였다.' 또한 매우 대담하였다. 참된 선지자들이 때때로 맞서 싸워야하는 어떠한 곤경도 없이 그들은 '예언하였다.' 그들은 죄인들에게 '너희가 평안하리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였는가'(18절)? "너희가 그메시지를 대단히 확신있게 전하는도다. 그러나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상의한 일이 있었느냐? 너희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였으며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도다. 너희는 그메시지를 성경과 대조해보지도 않았도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성경이 지닌바 영원히 변함없는 대의를 주목하였더라면 그러한 메시지를 결코 저하지 않았을 것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회의에 참예'하지도 않았으며 '그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었다는 사실이 계속하여 입증되고 있다(22절). 그들이 만일 지금 자처하고 있는대로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다음과 같이 행하였을 것이었다.
1) 그들은 성경을 저희 표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2) 그들은 영혼을 개심시키는 일을 저희 본분으로 삼고 저희의 모든 설교에서 이를 목적으로 하였을 것이다.
3) 그들은 저희의 사역에 있어 다소의 인증이라도 가졌을 터이었다.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그들이 설교한 말들이 '내 말'이었을 것이며 그렇다면 백성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을' 것이라."
(5) 하나님께서는 이선지자들을 그악으로 인하여 징벌하시겠다고 경고하신다. 그들은 백성들이 '평안하리라'고 약속하였다. 그약속이 얼마나 우매한 것인지 보여주시기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 자신들로 평안을 얻지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12절).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특하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흑암중에 미끄러운 곳과 같이'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한다고 자처하였다. 그러나 그들 자신들이 흑암중에, 혹은 짙은 안개속에 있게될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안전을 보장한다고 자처하였다. 그러나 그들 자신들이 디디고 설만한 어떠한 굳건한 발판도 발견할수 없게될 것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너희를 평안케하리라"고 자처하였다. 그러나 그들 자신들이 먼저 불안하게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도망하는 중에 '밀침을 받아 그길에 엎드러질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협되고 있는 재앙을 막겠다고 자처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는 해에 그들에게 재앙을 내릴' 것이다. '벌하는 해'란 보응하는 해이다. 그리고 더나아가서 이와같은 경고가 주어지고 있다(15절).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여기에서 이 쑥은 메스꺼울뿐만 아니라 또한 유독한 식물을 말한다. 그들에게…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 '독한 물'은 당근에서 추출해낸 독약, 즉 헴로크의 즙이라고 말하여지기도 한다(참조. 9:15).
(6) 백성들은 여기에서 이들 거짓 선지자들을 신뢰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있다(16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주의하라. 그리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이선지자들의 말을 듣지말라. 너희는 결국에 서는 것은 그들의 말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되리라. 그들은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들어보라." 보라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것이라(19절). "그들은 너희에게 만사가 평안하고 조용하리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폭풍우가 몰아치리라고, 곧 그무엇도 거기에 버티어서서 견디어 낼수 없는 여호와의 노가 발하리라고 말씀하시는도다." 이판결의 선고는 돌이킬수 없는 것이다(20절). 여호와의 노는…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실 것이며 그의 진노도 돌이키지 아니하실 것이다. 언도된 판결이 집행되어지기까지, 그리고' 그마음의 뜻하는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 그러하실 것이다. 이것을 그들은 지금 주목하여 깨달으려고 하지않고 있다.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깊이 숙고함으로 그것을 깨달을 것이며, 헤아리게될 것이라."
(7) 거짓 선지자들이 저희의 과오를 철회할수 있게끔 각성을 위하여 몇가지 사항이 제시되고 있다.
1) 그들이 비록 사람은 속일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지혜로우시기때문에 결코 속임당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각성해야만 한다.
①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무소부재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단언하신다(23,24절). 설혹 하나님의 보좌가 하늘에 마련되어있으며 이세상은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있는듯 보일지라도, 그는 이아랫세상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다(23절). 하나님의 살피시는 눈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두루 감찰하신다. 하나님의 권능은 하늘의 거민들에게 역사하시듯 마찬가지로 땅의 거민들에게도 미친다. 사물의 가깝고 먼것에 따라 우리 인간의 관찰력과 활동력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게 되지만 하나님께 있어서 그것은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그에게는 어두운 것이나 밝은 것이나, 가까운데 있는 것이나 먼데 있는 것이나, 매 한가지이다. 인간의 사람된 품성이나 모든 계획들은 하나님의 두루 감찰하시는 눈앞에서 아무것도 감추어질수 없다(24절).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수 있겠느냐. "어느 누가 자기의 계획과 의향을 심중의 은밀한 곳에 감출수 있으랴?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랴?" 그는 모든 곳에 편재하신다. 그는 천지를 다스리실뿐만 아니라 그의 본질적인 현존에 의해서 '천지에 충만하시다'(시139:7,8이하). 그 어떠한 장소도 하나님을 안에 두거나 배제시킬수 없다.
②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거짓 선지자들에게 적용하신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장하는 뛰어난 재주를 소유하고 있었다(25,26절).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하나님의 계시라는 미명아래 이세상에 대해 온갖 부끄러운 일들을 행하였음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저희로 알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만을 간파하여 들추어 내신다. "거짓을 예언하는 일과 그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는 일을 언제까지나 계속하는 것이 저 선지자들의 마음에 품은 생각이냐?"(혹자는 그렇게 읽는다).
2) 그들은 백성들에게 거짓 계시를 속여 안기며 저희 자신의 망상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꾸미는 일이 곧 모든 신앙을 경시케하는 첩경이자 사람들을 무신론자내지 이단자로 만드는 첩경임을 각성해야 한다.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생각인즉…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하려 함이로다(27절). 사단이 뜻하는바 가장 큰일은 사람들로하여금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사람들로하여금 하나님을 잊게함으로써 자신을 나타내왔던 것이다. 때때로 사단은 거짓신들을 세움으로써 이목적을 이룬다(사람들로 바알을 사랑하게 만들면 그들은 이내 하나님의 이름을 잊게된다). 그리고 때로는 참된 하나님을 곡해시킴으로써 이뜻을 성취한다.
3) 그들은 자신들의 예언과 여호와의 진정한 선지자들이 전한 예언사이에 얼마나 큰차이가 있었는지에 대하여 각성해야 한다(28절).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즉 꿈을 꾼 선지자) 몽사를 말할 것이요(즉 그것을 꿈으로써 말해야할 것이요). "그선지자는 일반 사람들이 각자 자기 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것 이상으로 자신의 꿈을 강조하지 말아야 할지라. 그러나 내 말을 받은 참된 선지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해야할 것이라. 그것을 진리로서 말해야할 것이라(혹자는 그렇게 읽는다). 그리고 자신의 교훈을 고수해야할 것이라. 그리하면 너희는 거짓 선지자들이 말하는 꿈과 참된 선지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지시사이에 있는 현격한 차를 곧 깨달을수 있게될 것이라. 단련된 영적분별력을 소유한 자들은 그것을 분간할수 있을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인간의 망상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가볍고 무가치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있으며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영혼을 위한 양식이며 생명의 떡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29절). 그들의 말도 그러한가? 하나님의 말씀이 지니고 있는 권능과 효력을 그말들도 가지고 있는가? 불은 어떤 대상이나 물질에 대해 작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효력을 지닌다. 불은 진흙을 굳게 하지만, 밀랍은 녹인다. 불순물은 태워버리지만 금은 연단하여 정금으로 나오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러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에 비유된다. 사람의 겸손치않은 마음은 반석과 같다. 만일 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도 녹지않는다면, 방망이와 같은 그말씀에 의하여 산산조각으로 부스러뜨려질 것이다.
4) 그들은 그들이 이길은 계속하여 고수하는한 하나님께서 그들과 맞서 대적하신다는 사실에 대하여 각성해야 한다. 그들은 이에 대하여 세번 되풀이하여 듣고있다(30,31,32절). 그들은 여기에서 기소되고 있다. "그들은 서로 자기 이웃에게서 내 말을 도적질하는도다." 참된 선지자들의 정신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못하는 자들이 그들의 말을 흉내내고, 그들의 좋은 말들을 추려서 마치 그것이 자기들의 말인양 전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수 없이 마지못하여 한 행위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일부 백성들이 받았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거짓 선지자들이 그것을 그들의 심중으로부터 훔쳤다는 것이다. 이는 복음서의 비유에서 악한 자가 말씀의 좋은 씨앗을 빼앗았다고 말해진 것과 같다(마13:19). 교묘하게 스며들어감으로써 그들은 말씀의 확신아래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자들의 마음에 미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약화시켰으며, 그효력도 감소시켰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치시고자 하신다(31절). 왜냐하면 그들은 백성들에게 설교하면서 마음내키는대로 혀를 놀리고 있으며, 더군다나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고 그들에게 확신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한다. 혹자는 본문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들은 저희의 혀를 매끄럽게 굴리도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매우 사근사근하게 비위를 맞추며, 듣기좋고 그럴듯한 것외에는 일체 아무말도 하지않는다. 그들은 또한 공중을 속인 죄로 기소되고 있다(32절). 내가 치리라. 왜냐하면 그들이 '거짓 몽사를 예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낱 저희 자신들의 생각에 불과한 것을 하나님의 영감인척하면서 예언하고 있다. 백성들이 과오를 범한것, 매사를 분별없이 과신하고 있는것, 그것은 백성들의 잘못이다. 하지만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선지자의 잘못은 훨씬더 크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로부터 어떠한 위임을 받은적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신다.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백성에게 아무유익도 없을' 것이다.
Ⅲ. 불경한 백성들 23:33-40
백성들의 불경, 그리고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독신이 구체적인 실례를 통하여 본문에서 질책되고 있다. 사소한 문제로 여겨질지 모르나, 공중설교에서 행해지는 불경내지 독신, 그리고 한나라의 언어의 타락은 거기에 얼마나 악이 만연해있는지를 보여주는 주지할만한 증거이다.
(1) 여기에서 그들이 질책받고 있는 죄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조롱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희롱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라고 물었다(33,34절). 이는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여 진노케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하여 이야기할때마다 조롱하고 경멸하는 어조로 그것을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칭하였다. 이것은 선지자들이 자주 사용했던 말로, 그들은 그말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사용하곤 했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영혼에 얼마나 중요한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나타내려 함이었다. 그런데 이제 불경스러운 냉소자들은 이말을 취하여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사자들을 조롱한다는 것은 곧 그의 메시지를 방해하여 좌절시키는 행위이다. 어떤 이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엄중한 말씀'이라고 불리워졌을때, 그것은 "책망과 위협적인 경고가 담긴 어떤 말"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위선적인 어조로 이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은 항상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며 언제나 그들을 놀라게 한다고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희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하는 것으로 규정지었다. 이와같은 죄를 범한 자들은 바로 일부 거짓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독신적인 선지자와 제사장들로부터 하나님의 일을 우롱하는 것을 배운 일부 백성들이었다.
(2) 그들은 이 불경스러운 말투에 대하여 질책받음과 아울러, 어떻게 예로써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지시받는다. 우리는 이말이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다(슥 9:1;말 1:1;나 1:1;합 1:1).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선지자로하여금 하나님의 규칙을 지키게하려고 하신다(렘 15:19). "너는 이말을 중단치 말고 계속 사용하라. 그러나 그들로하여금 이말을 남용치말도록 중단시키라. 그들로 다시는 이같이 불경스럽고 경솔한 방식으로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못하게 하라"(36절).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말해야만 하는가?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37절). "너희는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께 물을때에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이라 대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하라." 그리고 그들은 선지자에게 뿐만이 아니라 또한 '서로 이웃에게' 물을때에도 그와같이 말하여야만 했다(35절).
(3) 그러나 비록 하나님께서 이말을 하지말도록 경고하셨을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말할 것이었다(38절).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쓰는' 자들은 그것에 대하여 혹심하게 보응을 받게될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곡해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들을 조롱하는 일은 하나님의 진노를 크게 야기시키는 행위이다(36절). 각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다시말하여 이죄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참으로 무거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조롱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치루게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우스갯거리로 삼기에는 너무도 중한 벌이 될것이다. 그들이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라고 물었던가? 선지자로하여금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게 하라. "무슨 엄중한 말씀이느냐고 네가 말하는가? 바로 이러한 말씀이니라. 그가 너희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느니라"(33절). 이것이 그들에게 지워질, 그리고 그들이 얽매이지 않을수 없는 중한짐이었다(39,40절).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내 앞에서 내어버려. 하나님의 말씀은 그말씀을 조롱하는 자들이 비방받고 경멸받을 만하게될때, 존귀히 여김을 받으며 영예롭게될 것이다.
# 핵심
23:1-8
유다의 회복과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될 메시아 왕국의 승리를 예언한다.
여호와 치드케누(23:6)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뜻을 지닌 메시아 칭호이다. 이칭호에서 알수 있듯이 메시아는 여호와 자신이시다. 이는 여호와께서 성육신(成肉身)하신 분이 메시아시며, 그분은 스스로 의로우실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을 의롭게하실 분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편재성(23:24)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실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다. 즉 하나님은 모든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신다(왕상 8:27; 시 139:7-10; 사 66:1).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눈길에서 벗어날수 없다. 한편,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에 내주하시지만 조금도 구애받지 않으신다. 따라서 그분의 편재성은 만물속에 신이 존재한다는 범신론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 묵상
한 의로운 가지와 그이름 ( 23:5, 6 )
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의’란 뜻의 이름을 가졌으나, 의롭지 못하였고 양떼를 보호하지 못하는 목자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중에서 메시야가 나오게 하셔서 그의 양떼를 온전하게 하나님의 양우리에 들게하실 것입니다. 그는 바로 다윗의 자손이시요, 죄없으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이가지의 이름은 ‘치드케누’ 곧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이름으로, 그가 왕으로 임할때 유다는 구원을 얻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기때문에 그러한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사역을 통해서 인류에게 진정한 공평과 정의를 가져오셨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는 맹세 ( 23:7, 8 )
본문에서는 두가지 맹세가 언급됩니다. 그가운데 바벨론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다는 말씀은, 바벨론에서 해방시키신 것이 애굽에서의 해방보다 더 큰구원사건이므로, 이제 이스라엘은 포로로 끌려갔던 나라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유다인이 바벨론에서 구원받은 사건은 신약시대의 구원사역을 예표하는 것인만큼 그 구원사역이 위대할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출애굽에서 구원해내신 하나님이 아니라 바벨론과 같은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쑥과 독한 물을 먹게될 선지자 ( 23:15 )
쑥은 재난과 슬픔의 상징이며 독한 물은 가혹한 심판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한다는 본문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임할 처벌의 고통이 쓰라리고 치명적이 될것임을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종교지도자들의 부패는 곧 민족전체의 멸망을 가져오는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말일이 가리키는 때 ( 23:20 )
말일이란 여호와의 날, 주의 날 혹은 종말의 날로서 악한 자들이 멸망받는 심판의 날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말일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구원받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오게 하고, 그를 믿기를 거절하는 사악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게 하는 종말의 날입니다.
몽사를 얻었다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 ( 23:25 )
‘내가 몽사를 얻었다’라는 말은 당시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유혹할때 떠들던 말입니다. 우매한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이말을 참선지자의 말처럼 여기고 받아들였습니다. 이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거짓 영에 미혹되지 않기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겨와 밀의 상징 ( 23:28 )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날아가버리는 겨는 몽사를 말하는 거짓 선지자를, 키를 까불려도 그대로 남아있는 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참선지자를 가리킵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훔치는 도적이요,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백성들을 미혹케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은 참예언자들은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인도합니다.
거짓 예언자들을 치시는 하나님 ( 23:30-32 )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치시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지도 명하지도 않았는데도 백성들에게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돈을 위하여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인양 거짓으로 꾸며 말하고, 잘못을 범하고 있는 백성들로하여금 계속 악을 행하도록 부추겼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 ( 23:34, 35 )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하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전달하는 그들은 엄중한 말씀이라고 조롱하며 선포하지만, 결국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잘못 전한 것을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될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백성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않는 것과 말씀에 불순종하는것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엄중한 말씀을 듣지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위에 바로 서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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