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 19:1-9
선지자는 여기에서 이제까지 번번히 전해왔던 것과 같은 메시지를 가지고 백성들앞에 나아가도록 보내심을 받는다.
(1) 그는 교회와 나라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을 데리고 가야만 했다. 이는 그들을 청중으로뿐만아니라 그가 하는말의 증인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사람'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비록 장로들의 거의 대부분이 그를 싫어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개중에는 그를 여호와의 선지자로 본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의 환상에 이같이 경의를 표하고자 하였다.
(2) 그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이메시지를 선포해야 했다. 여호와의 말씀은 문에서나 도벳골짜기에서나 마찬가지로 선포될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산에서도, 또한 선상에서도 설교하셨었다. 이설교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선포하라고 명해지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거기에서 그들이 지극히 사악한 우상숭배, 곧 자기 자녀들을 몰록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는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그장소를 봄으로써 그들은 그죄를 상기할수 있을 것이었다.
2) 거기에서 그들이 가장 혹심한 재난을 당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도성 또한 마찬가지로 몰락되는 것을 의미하기때문에 그들은 도벳의 골짜기를 보고 도성이 얼마나 참혹한 광경으로 될것인지를 보아야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로가서 거기에서 내가 너에게 이를 말을 선포하라"고 예레미야에게 명하신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종종, 그것을 받을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직전까지 선지자들에게 계시되지 않았었다.
(3)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제 곧 닥쳐올 전반적이 파멸에 대해서 예고해야 했다(3절). 비록 그말씀이 무서운 것이라고할지라도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통치자나 통치를 받는 자나 모두 그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유다 왕들', 곧 왕과 그왕자들, 왕과 그고문관들은 만왕의 왕의 말씀을 들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지만 그분은 그들보다 더높으시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거민' 역시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했다. 위정자들과 백성들 모두가 국가적인 범죄에 가담했으므로 국가적인 회개에도 역시 같이 참여해야 했다. 만일 그렇지않으면 그들은 국가적인 파멸에 있어서 공동의 운명을 나누어야 했다. 엘리의 집안의 멸망(삼상 3:11)이 이와같이 기술되고 있으며 예루살렘의 멸망(왕하 21:12) 역시 마찬가지이다.
(4) 그는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명백하게 말해주어야 했다(4,5절). 그들은 하나님을 배역하는 죄를 지었으며('그들이 나를 버리고'), 가시적인 지상교회의 특권을 남용했다. 그교회로써 그들은 위엄있고 당당하게 될수 있었건만 '그들이 이곳을 불결케하였다.' 그는 거짓신들에 대한 그들의 애착과 숭배를 질책하고 있다. 그신들은 그들자신들은 물론 자기 열조들도 알지못하던 신들이다. 그들은 이신들을 저희 자신의 신으로 삼는 모험을 감행하였다. 항상 새로운 것과 신기한 것을 추구하였기때문에 그들은 그이방신들을 더낫게 여겼고, 다른 세상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앙에 있어서도 새로운 유행풍조를 더좋아하였다. 그들은 또한 살인죄를 범하였다. 더군다나 그것은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살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이…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만일 우상숭배와 살인을 별도로 범하기라도 한다면 저희의 악의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기라도 하는듯이 그들은 그 두가지 죄를 한꺼번에 행하는 복합적인 범죄를 자행하였다. 곧, 자기자녀들을 불살라 바알에게 번제로 바쳤다(5절).
(5) 그는 임박하고 있는 황폐가 격심하리라는 것을 말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이 무엇인가 느끼게끔 애써야 했다. 그는 그들에게 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살륙의 골짜기'라는 새이름을 얻게되리라고 말해야 했다(6절). 왜냐하면 무수한 사람들이 거기에서 '칼에 엎드러지게'될 것이었다. 그때, 그들은 '그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하여, 그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될 것이었다(9절). 처음에는 그렇게 버티다가 마침내는 온도성이 황폐하게될 것이었다. 거룩함으로 온땅의 기쁨이 되었던 곳은 이제 죄로인하여 온땅의 비난을 일시에 받는 수치거리가 되었다.
(6) 그는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개혁하지 않는 현생활을 지속하는한 이같은 파멸을 방지하고 피하려는 온갖 시도가 다 쓸데없는 허사임을 그들에게 확신시켜주어야 했다(7절).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계를 무효케하여. 하나님의 자비에로 도피하지 않는한, 그의 공의를 피할방도는 없다.
Ⅱ. 깨진 오지병의 상징 19:10-15
본문말씀은 앞에서 주어진 메시지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1. 가시적인 표적(10-13)
먼저 눈에 보이는 표적에 의해서 그메시지가 강조된다. 선지자는 '오지병'을 가지고 가야했다(1절). 그리고 메시지를 선포할때 '그오지병을 깨뜨려야' 했다(10절). 그는 앞장에서 이백성을, 만들어지는 도중에 쉽게 파상하는 토기장이의 진흙에 비유했었다. 그러나 어떤 자들은 이렇게 말했음직도 하다. "그런 비유는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도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단단히 굳어졌노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래서, 너희가 그러하다고 치자. 토기장이의 그릇은 어느누구의 손에서나 쉽사리 부숴지고 마는 것이라. 그것은 토기장이의 손에서 부드러운 진흙이 쉽게 파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아니 이점에 있어서 이미 만들어진 그릇은 더욱 나쁘도다. 부드러운 진흙의 상태일때에는 설사 파상된다하여도 다시 만들어질수 있지만 이미 그릇으로 굳어진후에는 일단 부숴지면 결코 그부숴진 파편들로 다시 만들수 없기 때문이라." 신성한 표적들이나 상징에 의한 가르침은 옛적에 곧잘 사용되었었다.
(1) 오지병은 쉽게 깨뜨려졌으며 그것은 원상태로 복구되어질수 없었다. 그와같이 유다와 예루살렘도 갈대아 군대에 의해서 훼파되어질 것이다(11절). 그들은 자기들의 조직이 견실한 것과 용기가 굳은 것을 너무 의존하였다. 그들은 저희가 놋그릇과 같이 단단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저희의 단단함이 마치 흙으로 빚은 토기와 같을 뿐임을 보여준다. 토기는 비록 단단하다고해도 부숴지기 쉬우며 쉽게 깨뜨려지고 만다. 그들을 부숴뜨리기로 작정하신 이는 일찍이 그들을 만드셨던 하나님 자신인 것이다. 내가 이백성과 이성을 파하리니. "그들을 토기장이의 그릇과 같이 산산조각 내리라." 이것은 이방인들이 당하곤 했던 운명이었다(시 2:9;계 2:27). 그러나 그것이 이제 예루살렘의 운명이 되었다(사 30:14). '토기장이의 그릇'은 일단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수 없으며' 수리할수도 없다. 예루살렘은 완전하게 훼파될 것이었다. 그것을 훼파하신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떠한 손도 그것을 회복시킬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비록 그가 파하셨으나 다시 치유하실 터이었다.
(2) 이일은 도벳에서 행해졌다. 이것은 다음 두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1) 내가…그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리라.
2) 내가…이성으로 도벳같게 할것이라. 그들은 저희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고자 사람을 살육당한 자로 온도성을 가득채우실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희생제물로써 엎드러지게 될것이다. 도벳은 시체들과 성의 오물들이 그곳으로 운반되었었고 그것들을 태우기위하여 불이 계속하여 타오르곤 하였었다. 후에, 우리 주님이 거하셨던 당시에 지옥이 그에 빗대어 게헤나(Gehenna), 곧 힌놈의 골짜기라 불리워졌을정도로 그곳은 그토록 저주스러운 곳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 조차도 '도벳 땅처럼 될'것이었다(13절). 이는 그곳에서 그들이 자행하였던 우상숭배 때문이다. 집의 평평한 지붕을 경건한 자들은 때때로 기도하기에 편리한 장소로 사용하였었다(행 10:9). 그런데 우상숭배자들도 그것을 산당으로 사용하여 그위에서 이방 신들에게, 특히 하늘의 만상들, 해, 달, 별들에게 제사 드리곤 하였다. 우리는 '지붕에서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읽을수 있다(습 1:5). 지붕에서 지은 이죄는 그집에 저주를 가져왔다.
2. 말씀에 대한 인준(14,15)
그는 자신이 말한 것을 '여호와의 집뜰'에서 엄숙하게 인식시키고 인준함으로써 메시지를 강조한다(14,15절). 선지자는 도벳에서 돌아와 그골짜기의 작은 산위에 있던 성전으로 갔다. 그리고 도벳의 골짜기에서 그가 말했던 것을 그곳에서 확증하였다.
(1) 예언의 성취는 곧 여기에서 경고된 심판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고하여 그 경고는 단지 그들을 놀라게하는 것일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들이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고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성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성과 그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여호와께서는 하신 말씀을 능히 실현하실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대로 그렇게 두렵게 죄와 죄인들에게 나타나실 것이었다.
(2) 이예언에 대한 경시가 여기에서 그들에게 선고된 죄이다. 이는 그목을 곧게하여 내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 핵심
19:1-15
깨어진 오지병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멸시하는 유다의 파멸을 보여준다.
토기 제조법(19:1)
본문의 토기는 유약을 바르지않고 약한 불에 구워만든 점토제 용기이다. 토기를 만들때, 먼저 점토를 발로 밟아 이기고(사 41:25), 손으로 반죽하여 그점토를 발로 회전시키는 녹로위에 놓았다(18:3). 그런 다음에는 녹로를 돌리면서 손으로 원하는 모양을 만든후, 그것을 가마에 넣어 구웠다.
# 묵상
힌놈골짜기에 간 사람들 ( 19:1 )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사람이었습니다. 어른이라고 번역된 이말은 본래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앞에서 멸망에 대한 상징적 행위를 하는 것은 곧 그들의 얼굴에 숯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는 정치, 종교계의 정통세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깨뜨릴 오지병 ( 19:5, 6 )
하나님께서 특별히 오지병을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깨뜨리라고 명하신 이유는 그곳을 저주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는 도벳 산당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몰렉에게 제사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에게 있어서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예루살렘성전 못지않게 신성한 곳으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서 오지병을 깨뜨리게 함으로써 그곳이 파멸될 것이요, 그곳에서 살육이 행해져 더이상 사람이 찾지않은 곳이 될것임을 암시하셨습니다.
오지병을 깨뜨리는 행위 ( 19:10-12 )
옛날 애굽사람들은 반역자들의 이름을 오지병에 쓰고 그것을 거룩한 장소에서 깨뜨려 그들의 멸망을 맹세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을 듣지않는 자들에게 실제행위를 통해서, 만든이의 뜻에 맞지않으면 이처럼 멸망당하고 말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여전히 악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도벳같게될 예루살렘성 ( 19:12 )
도벳은 힌놈의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곧 예루살렘이 살육과 파멸의 장소로 바뀔 것임을 뜻합니다. 즉 힌놈의 골짜기에 시체가 많듯이 예루살렘성 또한 시체로 뒤덮일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있을 바벨론 침략을 염두에 두고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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