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아비얌의 치세 15:1-8
우리는 여기서 유다왕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의 짧은 치리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보게된다. 그에 대한 더상세한 기록이 역대하 13장에 나타나 있는데 우리는 거기서 그가 여로보암과 전쟁을 한 기사를 보게된다. 거기서 그는 "여호와는 내 아버지시다"라는 의미의 '아비야'로 불리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그의 책임을 물을만한 아무런 악도 보이고 있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죄에 대해서 볼수 있는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이름 '야'가 그의 이름에서 빠지고 '아비얌'으로 불리고 있다.
1. 그에 대한 몇가지 기록 (1,2,6,7)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별로 나타나있지 않다.
(1) 그의 통치는 여로보암 제 18년에 시작되었다. 반면에 르호보암은 17년을 통치하였을 뿐이다(14:21). 여로보암은 과연 르호보암보다 오래살았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자기보다 먼저 죽은반면에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는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었으며 여로보암에게 두려운 상대가 되었다.
(2) 그는 3년을 채 통치하지 못했다. 즉 그는 여로보암의 통치 제 20년이 끝나기도 전에 죽었던 것이다(9절). 그가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큰승리를 거둠으로 교만하고 안심하게 되자(대하 13:21)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나은 그의 아들 아사를 위해 길을 열어놓으시고자 그를 치셨다.
(3) 그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2절). 아비살롬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닌가 싶다.
(4) 그는 자기부친이 여로보암과 벌인 전쟁을 계속 수행하였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으나 그것은 전면전이 아니었으며 종종 있었던 충돌로서 특별히 국경지대에서 그러했다. 마찬가지로 아비얌과 여로보암사이에도 전쟁이 있었다(7절). 그러나 여로보암이 대군을 막는데 그치지않고 여로보암을 철저히 패배시켰다. 그로인해서 여로보암은 그의 나머지 통치기간동안 조용히 지낼수밖에 없게끔 되고 말았다(대하 13:20).
2. 그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3-5)
(1) 그가 비록 여로보암을 대적할 목적으로 성전과 제사장직을 내세우며 그것을 자랑했다할지라도(대하 13:10-12) 그는 다윗과 같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규례에 대해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3절). 그는 열심을 가진듯이 보였으나 신실성이 부족했다. 그는 처음엔 잘 시작했으나 결국은 타락하여 '그부친의 행한 모든죄를 행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에 오르고 계속 그자리에 있을수 있었던 것은 다윗때문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그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하신' 것은 '다윗을 위해서였다'(4,5절). 즉 그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가 그전철을 밟은 그의 부친을 위해서도 아니었으며 오직 그가 본받지 아니한 '다윗을 위해서였다.' 조상들의 경건때문에 축복을 누리고, 그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본받지 않는것은 타락한 자손의 죄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다.
Ⅱ. 아사의 치세 15:9-24
우리는 여기서 아사의 통치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보게되며 역대하 14-16장에서 더욱 풍부한 역사의 기록을 보게된다.
(1) 통치기간 : 아사가 유다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41년을 치리하니라(9,10절). 유다왕들에 대한 기록을 보노라면 선한왕들과 악한왕들이 수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사실은 선한왕들의 통치는 일반적으로 길었으며 악한왕들의 통치는 짧았다고 하는 사실이다.
(2) 그의 통치의 선한 특성(11절) : 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것이 참으로 정직한 것이다. 그는 비록 다윗과 같은 선지자도 시인도 아니었으나 '그조상 다윗같이' 행했으며 하나님을 늘가까이 하였다. 만일 우리가 우리보다 앞선 자들의 은혜가운데로 나아간다면 비록 우리가 그들의 은사에는 미치지 못한다할지라도 하나님께 칭찬을 얻게될 것이다.
(3) 아사의 경건의 구체적인 예들 : 그의 시대는 개혁의 시대였다.
1) 그는 악한것들을 제거하였다. 그는 먼저 부도덕을 없앴다. 남색하는 자를 그땅에서 쫓아내고(12절). 즉 그는 매음굴을 탄압하였다. 흑사병 환자가 있는 집보다 더 위험한곳 즉 더럽고 추한 매춘부들의 소굴이 그대로 남아있는한 어떻게 왕이나 백성이 번영할수 있겠는가? 그리고나서 그는 우상숭배를 근절했다. 그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하고(12절). 그의 어머니, 아니 어쩌면 그의 할머니(그녀가 그의 어린시절에 그를 가르쳤기때문에 '어머니'로 불렸을 것이다)였을 마아가가 작은숲에 우상을 세운것이 발견되자 그는 결코 그녀의 우상숭배를 묵인하지 않았다. 개혁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아사는 다른 모든면에 있어서는 그의 어머니를 존경하고 높일 것이다. 즉 그는 그녀를 매우 사랑하나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 그래서(신 33:9절의 레위처럼) 그것이 자신의 의무와 배치될때 기꺼이 그관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만일 그녀가 우상숭배자라면
① 그녀의 우상은 파괴되어야 한다. 즉 공개적으로 치욕을 당케되며 더럽혀지며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져야 한다.
② 그녀는 폐위당해야 한다. 그는 그녀를 태후의 자리에서 폐하거나 아니면 자기아내, 즉 왕비와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그녀를 궁전에서 멀리 떨어지게 했으며 세상과 동떨어진 사생활에 한정시켰다.
2) 그는 선한것을 복구하였다(15절). 저가 그…구별한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그것은 그가 에디오피아를 정복했을때 바치기로 맹세한 전리품들이었다. 어렸을때 세례로써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 스스로 하나님께 헌신하여 열심히 봉사할때, 이것이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구별한 것을 받들어 드리는 것이 된다.
(4) 그의 통치방법 : 그는 인구증가를 장려하고 거주의 편리함을 들어 타국인들을 들어오게 하기위해서 친히 성읍들을 건축하였다(23절).
(5) 그의 통치의 실책 : 그는 칭송을 들은 두가지 일가운데서도 부족한 점이 발견되었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일지라도 이런저런 결점이 없을수는 없는 것이다.
① 그가 우상들을 없앴는가?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오직 산당은 없이하지 아니하니라(14절). 그의 개혁은 그일에 있어서는 부족했다. 아사가 이것들을 없애지 않은것은 잘한일이 못되었다.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앞에 온전하였으며. 선을 행할수 있으며 또 행해야만 하는 자들이 몇가지 일에 있어서 그렇지 못하다할지라도 하나님께 용납되며 정직하고 올바른 자로 여겨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위로가 될만한 사실이다. 새언약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되는 온전함은 죄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멸망했을 것이다) 신실성으로 이해하여야할 것이다.
② 그는 구별한 것을 드렸는가?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후에 그는 그구별한 것을 다른곳에 사용하였다. 즉 그는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은금을 취해, 벤하닷으로하여금 바아사와의 동맹을 끊도록하고 또 그의 나라를 침공함으로 라마에 건축하는 일을 그치게 하려고 그에게 뇌물을 주었던 것이다(18,19절).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죄를 범하였다.
㉠ 벤하닷으로하여금 그의 동맹관계를 끊게함으로 국제적인 신의를 저버리게 하였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한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로하여금 그렇게하도록 한 아사역시 잘못한 것이었다.
㉡ 그는 이곤경에서 벗어나기위해서 자신을 위해 그토록 많은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으며 위에서 설명한바와 같은 바르지못한 수단을 사용하였다.
㉢ 비상한 경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전곳간에서 금을 꺼내썼다. 그계획은 성공하였다. 벤하닷은 이스라엘땅을 공격하여 바아사로하여금 라마에서 전병력을 퇴각케했으며(20,21절) 결국 아사는 그곳에서 바아사의 공사를 분쇄시킬 좋은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거기서 쓰던 돌과 재목은 자신의 성읍들을 건축하는데 사용하였다(22절). 그러나 그계획이 성공했다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을 진노케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또한 아사가, 비록 그정책을 자랑하고 그것이 자신의 평화를 효과있게 가져다 줄것으로 기대했다할지라도 그는 선지자에게 어리석은 일을 행했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후부터 그에게 전쟁이 있으리라는 말을 들었다(대하 16:7-9).
(6) 그의 치세중 근심거리들 : 그는 대부분에 있어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 이스라엘의 바아사왕은 그에게 매우 골치아픈 이웃이었다. 그들이 서로 끊임없이 괴로움을 겪었던 것은 나라가 분단된 결과로 그것은 그들로하여금 공동의 적에게 쉽게 먹이가 되도록 하였다.
2) 그는 노년에 통풍으로 고통을 받았다.
Ⅲ. 나답과 바아사의 치세 15:25-34
우리는 여기서 유다가 아사의 선정아래서 행복을 누리는동안 이스라엘의 상태는 아주 비참한 가운데 있는것을 보게된다. 이스라엘이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리라고 경고받은 것이 14:15절에 나타나있으며 실제로 그러하였다. 즉 아사 한사람의 치세중에 이스라엘의 정권은 여섯번내지 일곱번의 변란을 치렀던 것이다. 아사의 통치초기에 여로보암이 왕위에 있었으나 그의 통치의 말기에는 아합이 왕위에 있었다. 그들사이에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디브니, 오므리가 있어서 서로 전복을 꾀하고 멸망을 시켰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다윗의 집을 버린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1) 아히야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로보암의 집은 멸절당했다. 여로보암을 계승한 것은 그들아들 나답이었다. 만일 그의 형 아비야의 죽음이 마땅히 그에게 감화를 끼쳐 그를 신앙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면 그리고 그가 죽었을때 사람들이 그에게 표한 경의가 나답으로하여금 그의 선한 본을 따르게 했다면 그의 통치는 길고도 영화로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아비의 길로 행했다'(26절). 즉 그의 부친이 세운 송아지들을 숭배했으며 백성들로하여금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도록 했다. 다시말해서 그자신이 죄를 범했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속히, 즉 그의 통치 제2년에 그에게 멸망이 찾아들게 하셨다. 나답이 블레셋이 단사람들에게서 빼앗은 성읍 깁브돈을 포위했을때 바아사는 다른사람들과 함께 그를 대적할 것을 공모하여 거기서 그를 죽였다(27절). 그는 자기백성들에게 거의 사랑을 받지 못했는지라 그의 군대는 후계자로서 그를 죽인자를 선택하였다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28절). 그가 왕위에 오르고나서 제일먼저 한일은 '여로보암의 온집을 쳐서 생명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않고 다멸한 것'이었다.
(2) 바아사의 등극 : 그는 24년간을 통치하였다(33절). 그는 여로보암의 길의 결국을 보았으면서도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다(34절).
# 핵심
15:1-34
유다왕 아비얌과 아사, 그리고 이스라엘왕 나답과 바아사의 통치에 관한 기록이다.
북이스라엘 정치사(15,16장)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여로보암의 죄악에 대한 심판의 예고처럼(14:15), 잦은 군사반란으로 점철되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 왕들이 정권을 잡은후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종교, 사회, 도덕적인 개혁을 단행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이에비해 남유다는 비교적 안정된 정권을 유지했다. 아마도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9:5; 11:10-13)때문이었던것 같다. 정치적인 반란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징계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기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편이었다(11:29-39; 왕하 1:2-4).
# 묵상
유다의 존속 ( 15:1-8 )
하나님은 유다를 계속 존속시켰습니다. 이는 다윗과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아비얌의 범죄로인하여 멸망할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이러한 배려로 징계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인간적인 무수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늘 구원의 확신을 지니고 살수 있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영원하신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진 덕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 ( 15:12-14 )
아사는 비록 자기의 어머니라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나는 삶을 살때는 가차없이 그태후의 위를 폐했습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 우선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제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고자, 택한 백성들이 계속적인 악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신실하신 분입니다(시119:86; 행13:23).
아사왕 ( 15:16-24 )
그는 문제에 직면했을때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원조군을 불러들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외에 그어떤 것도 우리에게 참만족을 줄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사왕은 잘못된 결정으로 순간적인 위기는 모면했지만 아람을 끌어들임으로써 더큰 문제의 불씨를 남겼던 것입니다(대하16:9). 결국 아람은 이스라엘을 정벌해 영토를 확장하려 했기때문에 유다의 원군요청을 절호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늘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사탄이 우리에게 다가올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는 말년에 병이 들었지만 고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병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모습은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냅니다.
언약을 저버린 자 ( 15:25-28 )
나답은 다른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왕위도 빼앗기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린 사람들의 마지막은 처참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지못하면 결국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풍성함을 누릴수 없기 때문입니다(렘3:3-5).
스스로 지도자된 자의 삶 ( 15:30 )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보다는 자기를 위한 삶을 삽니다. 지도자는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므로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마23:10).
# 해설
상반되는 왕국의 왕위계승 ( 15 )
분열왕국의 두주역이었던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죽음이후에 두왕국의 역사는 다음통치자들에 의하여 계승되어 갔습니다. 열왕기저자는 두왕국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르호보암과 여로보암부터 연대순으로 비교하는 식의 새로운 연대기 서술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남유다는 다윗의 혈통을 이어 아비얌과 아사가 연이어 통치하였습니다. 반면 북이스라엘은 나답과 바아사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유혈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1. 유다왕 아비얌의 통치
1) 유다의 왕이된 아비얌
르호보암을 이어 그의 아들인 아비얌이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18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비얌의 어머니는 마아가입니다. 그녀는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아가가 르호보암보다 훨씬 먼저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되기에 마아가는 압살롬의 딸이 아니라 손녀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비얌은 3년동안 남유다를 다스렸습니다.
a.유다의 왕이된 아비얌(대하13:1-2)
b.아비얌의 모친 미가야(대하13:2)
2) 아비얌의 통치
아비얌은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똑같이 악행을 범하며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비얌을 크게 벌하시지 않은 이유는 다윗과 맺은 언약때문이었습니다. 이 언약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왕조를 견고하게 지켜주신 것이고 아비얌의 악행에 대해서도 인내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얌의 통치기간중에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는 전쟁상태에 있었습니다. 아비얌은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극적으로 승리하기도 하였습니다(참조, 대하13:2-20). 이는 아비얌이 비록 우상숭배를 멀리하지는 못했어도 여호와마저 버리지는 않았기때문에 거둔 승리였습니다.
a.다윗에게 주신 한등불(왕상11:36)
b.다윗을 인정하시는 하나님(왕상9:4)
3) 아비얌의 죽음
유다를 3년간 다스렸던 아비얌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열조들과 마찬가지로 다윗성에 장사되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아사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솔로몬과 르호보암, 그리고 아비얌 등이 수많은 죄악을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에의해 남유다의 왕조는 계승되어지고, 또한 평화로운 정권이양이 이루어지게된 것입니다.
a.아비얌의 남은 사적(대하13:22)
b.아비얌의 죽음(대하14:1)
2. 유다왕 아사의 선정
1) 아사왕의 종교개혁
아비얌을 이어 유다왕이 된 아사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면서 41년간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가장먼저 종교개혁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는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르호보암과 아비얌 등의 선왕들이 숭배하였던 우상들을 파괴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조모인 마아가를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든 죄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사왕은 우상숭배의 잔재라 할수 있는 산당을 모두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사왕의 마음만은 여호와를 떠나지않고 온전히 섬겼던 것입니다. 그는 부친인 아비얌이 여로보암과 싸워 얻은 전리품(참조, 대하13:16-17)과 자신이 애굽사람을 쳐부수어 얻은 전리품(참조, 대하14:9-15)을 하나님앞에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a.선한왕 아사(대하14:2)
b.우상파괴(출32:20)
2) 바아사와의 싸움에서 승리
아사왕은 이스라엘왕 바아사와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바아사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국경에 위치한 라마라는 성을 군사적인 요충지로 삼고자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아사왕은 유다에 남아있는 보물들을 아람왕 벤하닷에게 바치면서, 그대가로 이스라엘을 침략토록 요청하였습니다. 아사의 이같은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람왕 벤하닷은 바아사와 맺었던 약조들을 깨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몇개의 성읍들을 취하였습니다. 어쩔수 없이 바아사는 라마성의 건축을 포기하고 수도인 디르사로 퇴각하였습니다. 아사왕은 즉시 라마성으로 가서 그곳에 남아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이스라엘과의 국경지대인 미스바성을 견고하게 구축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사왕은 신앙적으로는 큰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아람왕을 의지한 불신앙때문에 그는 선지자 하나니의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때 아사왕은 회개하기보다는 하나니를 옥에 가두는 죄악을 범하기도 합니다.
a.인간을 의지하는 아사왕의 잘못(대하16:7)
b.아사왕의 승리(대하16:6)
3) 아사왕의 죽음
아사왕은 말년에 발병이 났습니다. 이때에 하나님보다는 인간을 의지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사왕도 결국은 죽어 다윗성에 장사되고 여호사밧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아사왕은 비록 몇번의 죄악을 행하기도 했으나 그중심이 여호와앞에서 일평생 온전하였기에 그의 삶은 높이 평가받았던 것입니다.
a.발병난 아사왕(대하16:12)
b.아사왕의 죽음(대하16:14)
3. 이스라엘왕 나답과 바아사의 통치
1) 나답의 악한 통치
유다왕 아사 제2년에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이어 그의 아들인 나답이 왕으로 즉위하여 2년동안 다스렸습니다. 나답은 선왕인 여로보암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이스라엘백성 전체를 죄악의 늪에 빠뜨리는 악행을 서슴지않고 행했습니다.
a.이스라엘의 왕이된 나답(왕상14:20)
b.선왕인 여로보암의 죄(왕상12:28)
2) 혁명을 통한 바아사의 즉위와 통치
죄악된 여로보암의 왕조가 멸망케되리라는 아히야의 예언은 바아사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바아사는 깁브돈이라는 곳에서 이스라엘의 왕인 나답을 죽이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는 유다왕 아사의 즉위 3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바아사는 나답뿐만 아니라 여로보암과 관계된 모든집안을 완전히 전멸시켰습니다. 이는 보복을 두려워한 바아사의 악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통해 여로보암집에 내렸던 하나님의 심판은 종결짓게 되었습니다. 그후 바아사는 24년동안 통치하면서 북이스라엘 왕들중 세번째로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그도 여로보암이 저지른 악행들을 그대로 답습한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도 계속해서 우상숭배에 몰입할 뿐이었습니다.
a.혁명을 통한 왕위찬탈(왕하15:14)
b.여로보암에 대한 심판예언(왕상14:14)
결론
한뿌리에서 시작된 분열왕국은 각기 제길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떠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아사왕이라는 비교적 올바른 왕이 즉위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하기도 하였습이다. 반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왕가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 성취되어 여로보암가계는 전멸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뒤를 이어 왕이된 바아사도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우상숭배의 죄악만큼은 계속하여 행했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멸망을 향해 나아가면서 끊임없는 혼란의 와중에 빠지게됩니다.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17장 - study (0) | 2022.11.02 |
---|---|
열왕기상 16장 - study (0) | 2022.11.02 |
열왕기상 14장 - study (0) | 2022.11.02 |
열왕기상 13장 - study (0) | 2022.10.17 |
열왕기상 12장 - study (0) | 2022.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