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엘리야의 기근예언 17:1-7
엘리야의 이력은 다소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있다. 엘리야는 멜기세덱의 경우처럼 부모나 자식에 관한 언급도 없이 마치 구름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시작된다. 그것이 몇몇 유대인들로하여금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으리라는 공상을 자아내게 하였으나, 사도는 우리에게 '그의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었다(약 5:17).
첫째, 그선지자의 이름 : 엘리야(1절). 그뜻은 "그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다"이다. 다시말하면 "나를 보내시고 인정하시며 증거하실이, 그리고 나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시 찾으시며 그 큰일을 효과있게 하실수 있는 유일하신 이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다"라는 말이다.
둘째, 그의 고향 :그는 요단저편, 즉 갓지파 아니면 므낫세지파에 소속된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였다. 이는 길르앗이 이 두지파에 의해 양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이 무엇하는 자들인지 살펴볼 필요는 있으나 그들이 어디 출신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없다. 만일 선한 것이라면 그것이 나사렛에서 나온 것이라할지라도 아무문제가 되지않기 때문이다. 그는 디셉에서 온 '디셉사람'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 기근을 예언한 엘리야(1)
그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값으로 기근을 당하게 될것을 예언하였다. 그는 그사실을 왕에게 선포하였다. 이는 왕의 권세로 온백성을 돌이키게하여 그심판을 미연에 방지케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왕이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는다면 이심판은 그땅에 내려지게 될것이다.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진정으로 비를 내리지 말것을 기도하였다. 그러자 그의 기도대로 하늘은 그가 비오기를 위해서 다시 기도드릴때까지 놋처럼 되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다음다실을 일깨워주었다.
(1) 주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왕은 그하나님을 버렸다.
(2)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왕이 숭배하는 말못하는 죽은우상과 같지 아니하다.
(3) 자신은 사명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며 보내심을 받은 사자이다.
(4) 현재 이스라엘이 평화스럽고 번영을 누리고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상숭배하는 것으로인해 노여워하고 계시며 비를 내리지않으심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이징벌은 그들의 무력함과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난자들의 어리석음을 효과있게 보여줌으로써 선도 악도 행할수 없었던 자들을 돌아서게 할것이다.
(5) 그는 아합에게 자신이 하늘에 큰세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린다. "내말대로 될것이다."
2. 기근가운데서 보살핌을 받은 엘리야(2-7)
(1) 그는 어떻게 숨겨졌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서 그릿시냇가에 숨도록 명하셨다(3절). 당분간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마도 시냇가의 갈대숲속이었을 듯싶은 어떤인적이 드문 외딴곳에 홀로가서 거했다. 만일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를 한적하고 외딴곳으로 부른다면 묵묵히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만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수 없게될때 그를 위해서 더욱 조용히 앉아있어야 한다.
(2) 그는 어떻게 먹여졌는가. 여자, 즉 교회가 '광야로 도망하며' 저가 거기서 한때와 두때와 반때, 즉 3년 6개월동안 먹여지고 양육되어 지도록 보살펴졌다(계 12:6,14절을 보라). 그기간은 바로 엘리야가 숨어있던 기간이었다. 엘리야는 시냇물을 마셔야했다. 또한 까마귀들이 먹을것을 가져오도록 되어있었고(4절)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6절). 여기서 다음을 살펴볼수가 있다.
1) 하루에 두번씩 일용할 양식이 떡과 고기로 계속해서 준비되었다. 하나님의 종들, 특별히 선지자들이 훌륭하고 진기한 음식을 먹으며 각양 진미를 즐긴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진미를 즐기는 자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우리보다 더나은 자들로서, 좋지않은 음식으로도 편안하게 살며, 우리가 먹다남긴 찌꺼기같은 것으로도 만족해하는 자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2) 음식을 조달해준 것들은 매우 믿어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까마귀들'이 그에게 음식을 가져왔다. 오바댜가 기꺼이 엘리야를 대접했을터이나 그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던 세례요한처럼 혼자힘으로 산 사람이었다. 만일 그까마귀들이 그것을 어디서 구했으며, 어디서 어떻게 요리되었는지, 그것들이 그것을 정당하게 얻었는지를 질문받는다면 우리는 야곱이 했던것처럼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것을 그까마귀들에게 주셨다"고 대답해야 할것이다(참조. 창 27:20). 그러면 왜 까마귀들을 보내셨는가?
① 그것들은 육식조류로서, 그의 고기를 먹든가 그의 눈을 쪼았어야 더합당했을 것이다(참조. 잠 30:17). 그러나 '먹는 자에게서 먹는것이 나온다'고 하는 삼손의 수수께끼는 여기서 또다시 풀어졌다.
② 그것들은 더러운 피조물들이다. 모든 '까마귀 종류'는 율법에 의해서 먹는것이 금해져 있다(레11:15). 그러나 엘리야는 까마귀들이 항상 가져왔던 그음식을 먹기에 좋지않은 것으로 생각지 않았으며, 거리낌없이 오히려 감사하며 먹었다.
③ 까마귀들은 벌레와 송장을 먹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엘리야에게 사람이 먹을수 있는 좋은음식을 가지고 왔다.
④ 까마귀들은 단지 조금씩 그것도 먹다남은 음식을 가져올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비록 진수성찬은 아니었을지라도 자신이 먹은것에 대해 감사하였다.
⑤ 까마귀들은 새끼들조차 돌보지않는 짐승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기에 그것들은 선지자를 먹였다.
⑥ 까마귀들은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먹여졌다(욥 38:41; 시 147:9).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선지자를 먹이는데 쓰여졌다.
이와같이 엘리야는 오랫동안 홀로 조금씩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그는 여늬때와 같이 시내에서 물을 얻었으며 물이 떨어졌을때에는 기적을 통해서 공급받았다. 자연의 능력은 한계가 있으나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시다. 엘리야가 마시던 시내는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마르게 되었다(7절).

Ⅱ. 사르밧 과부의 대접 17:8-16
우리는 여기서 엘리야에 대한 보호가 더욱 더하여짐을 보게된다. 그시내가 말랐을때 요단강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를 그곳으로 보내지 않으셨는가? 이는, 하나님께서는 자기백성을 위해서 어느 한가지 방법에 매이지않고 여러가지 방법을 예비해 놓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
1. 그가 보내진 장소(9)
그곳은 이스라엘 지경밖에 있는 시돈의 '사르밧' 혹은 '사렙다'였다. 우리 구주께서는 이사실을, 때가차면 가련한 이방인들을 위해 나타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암시로 받아들이셨다(눅 4:25,26). 그당시 이스라엘에도 많은 과부가 있었으나 그는 이방성읍인 시돈을 복되게 하고 존귀케하려고 그곳으로 보내심을 받았다. 따라서 그는 라이트푸트박사의 말처럼 첫번째 이방의 선지자가 된것이다. 엘리야는 고향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으며 배격당했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사도들이 후에 그렇게 명령받았듯이(행 18:6)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시돈이었는가? 이는 아마도 바알숭배가 시돈사람이었던 이세벨과 더불어 최근에 그곳에서 들어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16:31). 이세벨은 엘리야의 최대의 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그녀의 악함이 소용없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녀의 나라안에서 엘리야를 위한 은신처를 찾아주셨던 것이다.
2. 엘리야를 대접한 사람(9)
그를 대접한 사람은 가난하고 외롭게 사는 한 불쌍한 과부였다. 세상의 약하고 미련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존귀케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며 영광이시다.
3. 그를 위해 예비된 것(10-16)
하나님의 섭리로 그과부는 성문에서 매우 적시에 그를 만났다(10절).
(1) 그과부의 형편과 성품.
1) 그녀는 양식 한움큼과 기름 약간외에 먹고 살만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와 그녀의 아들은 그양식을 먹고나면 모르긴해도 기아로인해 죽을 형편이었다(12절). 그녀는 또한 거리에서 주워모은 나무가지외에 다른땔감이 없었다. 바로 그녀에게 엘리야가 보내졌던 것이다. 이는 엘리야로하여금 까마귀들이 그를 먹여 살렸을때처럼 계속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거하도록 그녀에게 보내시사 그가 식사한 대가를 후히 지불하신 것은 그여종의 비천함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었다.
2) 그녀는 매우 겸손하고 부지런하였다. 엘리야는 그녀가 나무가지를 줍는것을 보았으며 그것이 그녀자신이 먹을 빵을 굽기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10,12절).
3) 그녀는 매우 자비롭고 관대하였다. 낯선사람이 자기에게, 가서 마실물을 조금 갖다달라고 청했을때 그녀는 기꺼이 첫마디에 갔다(10,11절). 그녀는 현재 물이 귀하다고해서 거절하지 않았으며 그가 무엇으로 갚을것인가 묻지도 않았고 또 그가 이방인인지 이스라엘인인지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은채 자기를 위한 나무가지 줍는 일을 버려두고 그를 위하여 물을 가지러 갔다.
4) 그녀는 엘리야에게 가지고 있는 가루와 기름이 적어서 그녀와 그녀의 아들이 먹을수 있을정도의 분량밖에 안된다는 것을 말하였으나 그는 자신을 위하여 작은떡 하나를 먼저 만들고나서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했다. 이것은 믿음과 순종에 대한 큰시험이었다. 엘리야는 분명히 '이스라엘 하나님'을 언급했지만(14절) 그것이 시돈사람과 무슨상관이 있단 말인가? 혹 그녀가 '여호와'란 이름을 숭배했고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참하나님으로 존귀히 여겼다할지라도 이낯선 사람이 그분의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말할만한 근거가 있는지를 어떻게 확신할수 있겠는가? 굶주린 방랑자가 그녀를 속이기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모든 난관들을 극복하고 약속에 의지하여 그권고에 순종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은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다른것들은 더하시리라'는 사실에 대한 신뢰하에 교제하여야 한다. 그녀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정도로 믿음이 크게 성장한 것은 틀림없이, 영적인면에서 큰기적이었다.
(2) 하나님께서 그녀의 손님에게 베푸신 은총 :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16절). 즉 가루와 기름이 통과 병에서 퍼내어질때마다 더많은 양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더해졌던 것이다. 홀주교의 말처럼 옥수수나 올리브가 제대로 자라나서 증가한다해도 결코 여기처럼 가루와 기름이 사용함에 따라 증가해가는 것만 같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반섭리에 있어서 '심을것을 풍성하게 주시는 것'(고후 9:10)은 평범한 것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함을 보여주는 한 실례라고 할수 있다. 가루와 기름은 모아감에 따라서 많아진 것이 아니라 소비해감에 따라서 많아졌다.
1) 이것이 엘리야를 부양하였다. 그의 일용할 양식은 계속되는 기적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떡과 고기로 지내왔으나 이제부터는 떡과, 요즘 버터와 같은 역할인 기름으로 지내게 된다.
2) 이것은 또한 그 가난한 과부와 그녀의 아들을 부양하였다. 그것은 선지자를 대접한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문을 여는 자들에게로 들어가셔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약속하셨다. '저희는 환난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시 37:19)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Ⅲ.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림 17:17-24
우리는 여기서 엘리야에게 친절을 베푼 과부에게 더욱 귀한 보상이 있게된 것을 보게된다. 즉 그녀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1. 아이의 병듦과 죽음(17절)
모르긴해도 그아이는 과부된 어머니에게 있어서 유일한 낙인 독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하나님의 큰선지자를 돌보았으며 그를 시중드는 일을 하였다. 따라서 그녀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선을 베푸시리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는 자기아이를 잃고 말았다. 그녀는 그기적에 의한 보살핌을 받고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창 만족을 누리는중에 이와같은 고통을 받게되었다.
2. 엘리야를 향한 애처로운 불평(18)
그녀는 격한 감정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상관이 있기로(18절). 아들의 죽음은 그녀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어려운 일이 갑자기 예상치도 않게 그것도 모든것이 잘되가는 한창 평온한때에 찾아들게 되면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녀는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그가 자기의 아이를 죽게라도 한양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내가 어떤점에서 당신에게 죄를 범했습니까? 아니면 내가 내의무를 게을리하였습니까? 무엇때문에 당신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지 말해 주십시오." 그러나 그녀는 곧 뉘우치는 말을 하고있다. '당신은 이고통의 원인이 되는 내죄를 생각나게 하려고 오셨습니까?' 아마도 그녀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엘리야가 저주한 것을 알고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전에 시돈사람의 신인 바알을 섬겼던 적이 있음을 깨닫고서 그가 자기의 죄에 대해 저주한 것으로 오해했던것 같다.
3. 엘리야가 이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구함(19-21)
그는 과부의 불평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답변도 없이 그문제를 하나님께로 가져와 내어놓았다. 그자신도 그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지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죽은 아이를 어머니의 품에서 취하여 자신의 침상으로 데리고 왔다(19절). 아마도 그는 그아이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듯 싶다. 그는 자기방에 들어가서 다음과 같이 행하였다.
첫째, 그는 겸손하게 그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는다(20절).
둘째, 그는 진심으로 그아이가 다시 살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21절). 지금까지는 죽은자가 다시 살아난 경우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의하여 이아이의 소생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이사실이 우리도 똑같이 행할만한 정당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다윗은 금식과 기도가 자기아이를 다시 살릴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삼하 12;23). 그러나 엘리야는 다윗에게는 없었던 기적을 행할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살리기위해서 그아이 위에 자신의 몸을 폈다. 만일 그가 자신의 호흡과 온기로 그에게 생명을 넣어줄수 있었다면 그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의 기도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이아이의 혼으로 그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21절). 이말씀은 육체와 분리된 영혼의 존재와 결과적으로 영혼의 불멸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로티우스는 이대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고통받는 백성들을 격려하시기위해서 이기적을 통해 영혼의 실재와 불멸성을 나타내시고 증거하시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4. 아이의 소생(22-24)
그사실은 어머니에게 매우 큰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아이는 다시 살아난 것이다(22절). 기도의 능력과 기도를 들으시는 이의 능력을 보라. 그는 죽이실뿐만 아니라 살리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엘리야는 그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다주었다. 추측컨대 그녀는 거의 자신의 눈을 믿지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내가 이제야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인줄 아노라(24절). 그녀는 양식이 줄지않는 것을 보고 아마 그사실을 알았었지만 자기아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능력과 선함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신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그아이의 죽음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었고 엘리야에게는 영예로움이 되었다.

# 핵심
17:1-24
북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지자 엘리야의 행적을 기록한 내용이다. 그는 기근을 예언했고, 죽은자를 살리는 기적을 행했다.

# 묵상
엘리야를 돌본 까마귀 ( 17:4-7 )
이것은 자연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주인이시기에 어떤피조물도 당신의 뜻을 위해서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본장면은 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얼마나 자상하게 돌보시는지도 보여줍니다.
이방인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 17:8-16 )
이방인의 믿음있는 자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교훈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와같이 믿는 사람들도 때로는 세상사람들에게서 배울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지역에 선교하시면서 그들의 믿음을 보고 제자들의 믿음이 부족함을 충고하셨습니다(막7:24-30). 따라서 우리들의 믿음의 행위란 이루어질것 같지않은 상황속에서도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우리가 가진 모든것을 포기하는 행위와 그러한 삶을 사는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시대에 믿음이 없음을 한탄하시면서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마17:20). 우리는 이런 순전한 믿음을 지녀야합니다.
아이를 살린 엘리야 ( 17:21-24 )
엘리야는 죽은아이 위에 몸을 세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이는 죽은아이의 소생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르밧 과부의 아픈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이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능력과 계시를 깨닫고 성숙한 신앙으로 전진할수 있습니다. 이적은 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적을 체험함으로써만 믿는것보다 보지않고 믿는것이 더욱 복되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요20:29).

# 해설
엘리야의 초기사역 ( 17 )
하나님께서는 악한 아합왕을 심판하시고, 아울러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신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시고자 한사람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가 곧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야는 무명의 사람으로서 그가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또한 그의 성장배경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알길이 없습니다. 엘리야의 최초의 활동들은 극적일 뿐이었습니다.
1. 가뭄을 예언하는 엘리야
1) 엘리야의 가뭄선포
디셉사람 엘리야는 길르앗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은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는 지체없이 아합왕에게 찾아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가뭄이 임할것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가뭄선포는 이스라엘왕과 백성들이 섬기는 바알신의 허구성을 찌르는 핵심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들은 비와 햇빛을 주는 농경신으로서 바알을 믿고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가뭄선포는 백성들로하여금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바알숭배의 어리석음과 바알신의 무력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a.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가뭄(렘14:22)
b.하나님의 심판인 가뭄(학1:11)
2) 그릿시냇가에 숨은 엘리야
아합과의 목숨을 건 대면을 마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강동쪽 그릿시냇가 곁의 계곡에 숨었습니다. 이는 아합이 엘리야를 죽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체험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숨어지내는 엘리야를 위해 까마귀를 시켜 떡과 고기를 공급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는 앞으로 하나님의 귀한 사역들을 감당해야 하는 엘리야의 믿음을 돈독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앞에 순종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a.엘리야를 먹이시는 하나님(왕상19:6)
b.까마귀(눅12:24)
2.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와의 만남
1) 사르밧으로 가는 엘리야
엘리야가 어느정도 그릿시냇가에 머물렀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가뭄의 영향으로 시내가 말라 마실물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르밧은 이세벨의 고향인 두로와 시돈중간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한과부가 너를 공궤하리라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고 이방지역인 사르밧에 가게됩니다.
a.사렙다의 옛이름인 사르밧(눅4:26)
b.하나님이 주신땅 사르밧(옵1:20)
2) 사르밧 과부를 만난 엘리야
사르밧에 도착한 엘리야는 그곳에서 한과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곳도 가뭄의 피해가 컸습니다. 따라서 가장 비천한 삶을 살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과부들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러한 과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과부는 한번 먹을분량의 가루와 기름만을 지닌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과부의 사정을 듣고선 그녀의 절박한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먼저 자기에게 음식을 먹게하면 가뭄이 끝날때까지 그녀의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a.과부의 보호(신24:17)
b.모범적인 과부(삼하14:4-5)
3) 엘리아의 첫번째 이적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한끼분의 양식으로 엘리야를 정성껏 대접하였습니다. 그결과 하나님의 약속도 신실하게 이행되었습니다. 즉 엘리야가 말한대로 사르밧 과부의 양식이 끊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뭄속에서도 이여인은 어디서도 구할수 없는 밀가루와 기름을 풍족하게 공급받게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적은 신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되리라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가뭄의 고통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여 하나님의 축복에 동참할 것을 권고하는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a.엘리야의 이적(왕상18:38)
b.과부의 기름(왕하4:6)
3. 부활기적을 행하는 엘리야
1) 사르밧 과부 아들의 죽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한 얼마후에 사르밧 과부에게 비극이 닥쳤습니다. 곧,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명이상의 존재였던 아들이 죽게된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로 하나님께 형벌을 받아 자기아들이 죽게되었다고 탄식조로 엘리야에게 항의하였습니다. 이여인의 고통은 말로 표현키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a.아들의 죽음(왕하4:20)
b.어머니의 슬픔(왕하4:27)
2) 아들을 살리는 엘리야
과부의 비극을 직접 목격한 엘리야의 심정도 무척 괴로웠습니다. 그는 죽은아들을 자신의 침상에 누이고 자신의 몸을 엎드려 아이의 몸에 닿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간절하게 이아이의 혼이 소생케 해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엘리야의 간구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기적적으로 그아이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죽은자의 소생을 기록한 첫번째 실례였습니다.
a.다시 살아난 아들(왕하4:34-35)
b.바울의 능력(행20:10)
3) 사르밧 과부의 신앙고백
이여인은 다시금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아들을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이여인은 진실로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엘리야가 섬기는 그하나님이 유일하신 참하나님임을 굳게믿고 이를 고백하였습니다. 엘리야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과 동행하며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하면서 감사의 고백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적은 가뭄앞에서도 무기력한 바알신에 대조하여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는 행위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은혜가 임하리라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사르밧 과부 아들의 죽음에서의 소생은 3일만에 죽음에서 승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a.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왕하4:37)
b.죽은자의 부활(히11:35)
결론
엘리야의 등장과 그의 초기사역들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있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엘리야의 가뭄예언과,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고 죽은생명을 살리시는 이적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의 창조주요, 주권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바알신의 무력함과 바알숭배의 허상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도록 하기위한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어도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계셨기에 그들이 잘못된 현실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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