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이세벨을 피해 광야로 감 19:1-8
어떤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처럼 공개적이고도 분명히 나타난후에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배하는데로 돌아왔을 것이며, 엘리야를 지도자로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 귀중한 자인 그는 사람들에게는 무시되었다. 즉 그에겐 아무런 공경도, 배려도, 또한 어떠한 유익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그는 이스라엘땅에서 분노를 샀다.
(1) 아합은 이세벨을 자극하여 엘리야에 대해 몹시 격분하도록 만들었다. 이세벨은 후일 황태후가 되었을때 왕과 나라를 지배하여 자기마음대로 오만하게 다스렸던 때처럼, 왕비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섭정 왕비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합의 양심은 엘리야를 박해하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나 그는 이세벨에게 엘리야가 행한 모든것을 말해줌으로써(1절) 결과적으로 그녀를 납득시킨 것이 아니라 충동시킨 것이 되고 말았다. 그는 그녀에게 그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으로 말하지 않고, 마치 하나님의 손길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채 엘리야가 주문 혹은 마법으로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한것처럼 말하였다. 특별히 그는 그녀에게 엘리야가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것을 말하였다.
(2)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자신이 24시간이내에 그를 죽이기로 맹세하였다는 위협적인 전갈을 보냈다(2절). 그럼 왜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그에게 알려서 그로하여금 도망할 기회를 가지게 했는가? 아마도 그녀는 오직 그의 피를 원하였겠지만 그를 선지자로, 그것도 위대한 선지자로 생각하는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손을 대지못하고 단지 이전갈을 보냄으로 그를 위협하여 쫓아내려고 했던것 같다.
(3) 이에 엘리야는 살기위해 아마도 밤중즈음에 브엘세바로 도망하였다(3절). 얼마전 아합과 바알의 모든 선지자들과 대결을 벌였던 엘리야의 그용기는 어디로 갔는가? 그는 자신이 이 중대한 기로에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도움이 될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있었고,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의지해야 하는것을 잘알고 있었지만 도망친 것이다. 전에 위험에 직면했을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몸을 숨기도록 명령하셨기에(17:3)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했던것 같다.
(4) 브엘세바에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리했던 황량하고 광막한 광야로 들어갔다. 브엘세바는 이세벨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선한왕 여호사밧의 통치하에 있었으므로 그는 그곳에서 안전하게 지낼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두려움에 홀린 사람처럼 위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조차 쉴수가 없었으므로 광야로 하룻길쯤 더들어갔다. 그러나 아마도 그가 그곳으로 간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 더욱 마음놓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위하여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기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기의 사환을 브엘세바에 머물게 하였다(3절). 이는 아마도 어리고 유약한 사환이 광야에서 고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5) 그는 여행으로 몹시 지쳐있었기 때문에 졸릴때의 아이들처럼 찌뿌둥하게 되어 '죽기를 구하였다'(4절).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어떤의미에 있어서는 정말 죽을만한 상태가 아니다. 자신을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맹세때문에 초조하게 달아났던 그가 여기서는 다시 죽기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으니 그는 여호와의 손에 죽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세벨의 위협대로 바알의 선지자처럼 죽느니 차라리 광야에서 죽고자 한것이다(2절). 이는 바알을 숭배하는 자들이 승리를 노래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렇게 탄원하고 있다. "이제 족하나이다. 나는 할만큼했고 당할만큼 당했습니다. 이제 사는데 지쳤습니다." 나는 내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4절). 이사람은 엘리야가 아닌가? 그위대하고 담대하던 심령이 이와같이 위축될수도 있다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여호와와 그전능의 힘안에 있을때에는 담대하고 강했지만 홀로 있을때에는 그의 열조나 형제보다 낫지않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와같이 그를 혼자있게 버려두신 것이다.
(6)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가 스스로 자초한 궁핍과 위험가운데서 천사를 보내어 그를 먹이셨다. 엘리야는 죽기를 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필요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그를 사용하고 높이고자 하셨으며 따라서 그를 살리기위해서 천사를 보내셨던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대로 행하시며 또한 급하고 어리석은 요구대로 응답해주신다면 우리는 해로운 자리에 떨어지게 될것이다. 죽기를 기도한후 그는 잠든가운데 죽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누워잤다'(5절). 그러나 그는 깨어났고 자신을 위해서 떡과 물이 준비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천사가 자신을 시중들고 있는것을 보았다. 천사는 그가 잠들었을때 그를 지켜주었으며 아울러 그를 위한 음식이 준비되었을때 두번이나 그를 불러 먹게하였다(5,7절).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디에 있든지간에 여전히 아버지의 땅에 있듯이 그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감찰하심과 돌보심가운데 있게된다. 그들이 광야에서 길을 잃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
(7) 그는 이음식으로 힘을 얻어 '하나님의 산호렙'으로 나아갔다(8절). 그는 아마 그곳에 자신의 뜻대로 간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갔을 것이다. 이는 그로하여금 모세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었던 바로 그장소에서 교제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천사가 그에게 두번이나 먹도록 명하였는데 이는 그가 가야할 여행길이 멀었기 때문이었다(7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기위해 우리에게 충분한 은혜로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항해를 결정하신 이가 거기에 따라서 배에 식량을 공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엘리야를 먹여살리시는가를 보라.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을 통해서 모든음식으로 그를 먹이셨다. 그다음에는 천사를 통해서 먹이셨으며 이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서 음식없이,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의 1년을 하루로 계산한 40일을 계속해서 길도 없는 광야를 가로질러 가게하셨다. 그래도 그는 음식을 필요로하지 않았으며 원하지도 않았다.

Ⅱ. 엘리야와 하나님의 대화 19:9-18
(1)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전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심으로인해 '하나님의 산'으로 불리우는 호렙산에 있는 동굴에 거하였다. 아마도 이곳은 여호와께서 모세앞으로 지나가시며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실때 그가 숨겨졌던 그굴 혹은 바위틈과 같은곳인것 같다(출 33:22).
(2) 하나님께서 거기로 그를 찾아오셔서 물으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9절). 우리는 어디에가든 하나님의 눈과 팔과 말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갔을때 그곳에서 전능자의 환상을 보았다(계1:9).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물으신 질문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는 것이었다(9절, 13절). 이것은 책망의 말씀이었다.
1) 이것은 그가 그곳으로 도망간 것임을 증명해 준다. "너는 무엇때문에 집에서 이처럼 멀리와 있느냐? 너는 이세벨을 피해 도망한 것이냐?" '너'라는 대명사에 강조를 두고있다. 네가 어찌하여(9,13절).
2) 이것은 또한 그가 그곳에 안주하려 한것을 증명해준다. "너는 어찌하여 이굴에 있느냐? 이곳이 여호와의 선지자가 머물 장소이냐? 지금 이세상이 필요로하는 사람이 은신해 있을때냐?"
(3) 엘리야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한 설명이 나온다(10절). 그것은 똑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14절에 다시 반복되고 있다.
1) 그는 자신의 은신을 변명하고 있다. 선을 행할 희망이 있는한 그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며 또한 그자신의 양심이 그에 대해서 증거했다. 그러나 그의 모든수고는 헛되고 그의 모든노력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지금의 대의를 포기할때라고 생각하였다.
2) 그는 죄가운데서 완악해진 백성들에 대해 불평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의 언약을 버렸습니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버린 이유입니다. 누가 그들중에 남아서 거룩한 것들이 파괴되고 헐리는 것을 보려하겠습니까?" 그는 종종 스스로 백성들의 변호인이 되어왔으나 지금은 불가피하게 하나님앞에서 그들을 고소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것으로 백성들을 비난하고 있다.
①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렸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표시이자 증표인 할례를 계속 행해왔다 하더라도 언약의 목적이라고 할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봉사는 그만두었던 것이다.
② 그들은 주의 단을 파괴하였다. 그들은 단을 방치한채 파손되도록 내버려두었을 뿐만아니라 바알을 숭배하는 열심때문에 고의적으로 그것을 파괴하였다. 그당시 제단들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들 분리된 단들은 비록 그것이 교회의 통일성에 금이가게 했다 할지라도 신실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원하는 자들에 의해 세워지고 섬겨졌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단들을 통해서 그들을 인정하셨다. 따라서 그단들을 무너뜨린 것이 여기 이스라엘의 죄로 비난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③ 그들은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 그선지자들은 이마도 위에서 언급한 그단들에서 섬기던 자들이었던것 같다. 이방여인인 이세벨이 그들을 죽였으나(18:4) 대부분의 백성들이 그들의 죽음에 동의하고 기쁘게 여겼기에 그죄가 백성들 모두에게 씌워지고 있는 것이다.
3) 그는 자신이 이광야로 피신해와서 이굴에 기거하게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① 이는 그가 아무소용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어떻게 혼자서 수천명을 상대할수 있겠습니까?"
② 이는 그가 안전하게 행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희가 내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그러니 돌이키기를 싫어하는 자들을 돌이키고자 헛된노력을 하다가 목숨을 잃느니 무익하나마 혼자서 내삶을 보내는 것이 더낫겠습니다."
(4)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다. 그는 하나님을 상면하려고 이곳에 왔는가?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앞으로 지나갈때 그는 굴안에 있었으나 엘리야는 바깥으로 나오도록 부름을 받았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11절). 그는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실때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그역시 어떤형상을 보지못했다. 그러나 첫째, 그는 강한 바람소리를 들었으며 그바람의 가공할만한 힘을 보았다. 이는 그것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지진의 진동을 느꼈다. 셋째, 그는 불의 분출을 보았다(12절).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세미한 소리'를 감지하였는데 그안에 여호와께서 계셨다. 즉 여호와께서는 바람, 지진, 혹은 불이 아닌 세미한 소리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것들은 그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무서운 소리들가운데서가 아니라 부드러운 속삭임가운데서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나타내셨다. 그가 이것을 알아차렸을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것을 두려워하여 '겉옷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웠다'(13절). 엘리야는 수치의 표시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는데 이는 그러한 능력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심에도 불구하고 겁쟁이처럼 자신의 의무에서 도망했기 때문이었다. 바람, 지진, 불은 그의 얼굴을 가리게하지 못했으나 세미한 음성은 그렇게 했다. 은혜로운 영혼은 주의 진노하심보다는 부드러운 자비하심에 의해 더욱 감화를 받는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고 굴의 입구에 섰다. 이제 율법을 소생시키기위해 부름을 받은 엘리야는 여기서 그일을 어떻게 해낼것인가 가르침을 받고있다. 그는 지진이나 불같은 놀라운 이적으로 백성들을 깨우치고 두렵게 할뿐아니라 세미한 소리를 말하여 그들을 확신시키고 설득시켜야 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단지 그것으로 가는길을 만들어줄 뿐이다.
(5)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주신 명령은 이러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전에 했던 질문을 다시 반복하고 계시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3절). "이곳은 이제 네가 있을장소가 아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변절과 믿음의 붕괴를 불평하고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14절).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그에게 답변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하사엘을 아람의 왕으로(15절),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그리고 엘리사를 그의 후임으로서 고귀한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임명하라는 지시와 함께 그를 되돌려보내고 계시다. 이것은 예언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시고 그자신의 대의를 변호하시며 언약을 떠난 자들에게 보응하시고자 하셨다(14절). 엘리사는 성령의 칼로써 하사엘의 전쟁의 칼과 예후의 정의의 칼을 피한 자들의 양심을 두렵게할 것이며 상처입게할 것이다.
(6) 엘리야는 오직 자기만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순결을 지킨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심으로 그에게 위로를 주신다. 내가 이스라엘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유다왕국은 제외함)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18절). 부패와 배교가 가장 성행하던 시대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들, 즉 순결을 지키며 시대풍토에 따라가지 아니한 자들을 항상 남겨오셨으며 또 남기실 것이다. 그 남은자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다른자들과 구별되게 하는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은혜없이는 아무도 스스로 구별될수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신실한 자들은 그의 숨긴 자들이다(시 83:3). 키질을 하고 정제하며 구별하는 날이 올때까지 눈에 보이는 교회는 좀처럼 볼수가 없으며 밀은 겨속에 감춰져있고 금은 불순물가운데 섞여있게 된다. 우리는 알지못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알고계시다. 즉 그는 은밀한중에 감찰하신다. 세상에는 현명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많은 선한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될때 거기서 우리가 보게되리라고 생각한 것은 사람이 없는반면에 우리가 그곳에서 보리라고 거의 생각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박애보다 더욱 크고 넓다는 사실이 종종 입증된다.

Ⅲ. 엘리사를 부르심 19:19-21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지시하신 명령중 마지막에 언급되어 있으나 첫번째로 부름을 받았다. 이는 다른 두사람은 엘리사에 의해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엘리야의 자리를 이를 자였고 엘리야도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그런 훌륭한 일꾼에게 물려준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엘리사의 부르심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찾아볼수 있다.
(1) 그것은 전혀 예기치않았던 놀라운 부르심이었다. 엘리야는 들판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는 독서나 기도나 제사드리는 일이 아니고 '밭을 갈고' 있었다(19절). 그는 21절의 잔치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지체가 높은 자였으며 또한 토지와 소와 종들을 거느린 주인이었으나 자기손으로 밭을 가는것을 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의 훌륭한 직업이 우리를 하늘의 소명에서부터 제외시키지는 못한다. 엘리사는 마치 사도들이 어부로부터 사람을 낚는 사람들이 되었듯이 밭을 가는자리에서 이스라엘을 먹이기위해 말씀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되었다.
(2) 그것은 권위있는 부르심이었다. 엘리야는 친밀감의 표시로 그에게 단지 자기의 겉옷을 던졌다(19절). 그것은 그의 몸이 겉옷의 보호를 받듯이 엘리사를 그의 보호와 가르침아래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고 또한 그의 영으로 엘리사를 옷입히는 것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제 그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그랬던 것처럼(민 27:20) 자신의 명예의 일부를 엘리사에게 입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후에 엘리야가 승천했을때에야 엘리사는 그의 겉옷을 완전히 소유하게 된다(왕하 2:13). 그는 즉시 소들을 버려두고 '엘리야를 좇았다.' 보이지않는 손길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며 설명할수 없는 어떤 은밀한 권능에 의해 그의 마음이 움직여짐으로 아무런 외적 설득없이 자신의 농사를 내버리고 사역에 헌신케 되었다. 엘리사는 즉시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잠시 시간을 요청했는데 이는 부모에게 허락을 얻기위해서가 아니라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였다. 엘리야는 돌아가서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는 그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그의 뜻에 반대하여 그를 붙들지도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효능은 인간의 타고난 자유의지를 보존해준다. 그래서 선한자들은 구속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의해서,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하게 된다.
(3) 그것은 엘리사에게는 기쁘고 만족스러운 부르심이었다. 그사실은 그가 가족들을 위해 베푼 작별의 잔치로 미루어 알수 있다(21절). 선지자들은 절망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때 나서게 된다. 혈육과 의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엘리야의 겉옷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며 기꺼이 그의 옷을 입으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기쁘게, 그리고 크게 만족하는 마음으로 모든것을 버렸다.
(4) 그것은 효과적인 부르심이었다. 엘리야는 그로하여금 억지로 자신을 따르게 하는것처럼 보이지않으려고 오래 지체하지 않았으며, 엘리사도 곧 일어나서 그를 좇았다. 그리고 엘리야와 연합했을뿐만 아니라 그의 종처럼 그에게 수종들었다.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부었다'(왕하 3:11). 훌륭한 교사가 되려면 먼저 오랫동안 배워야 한다. 즉 장차 세움을 받고 다스리게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먼저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섬길수 있어야 한다.

# 핵심
19:1-21
갈멜산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엘리야가 자기를 죽이려하는 이세벨의 음모를 피해 나약하게 도망쳤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힘과 소망을 주셨고, 엘리사를 그의 후계자로 삼도록 명하셨다.
엘리사의 헌신(19:21)
엘리사는 선지자의 소명에 임하기위해 자신의 옛생활방식을 버리고 온전히 헌신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와 비슷한 헌신을 요구하셨고, 그들도 즉각적인 순종을 보였다(막 1:16-20; 2:14). 새로 신앙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결단하는 모든이들에게도 이와 동일한 헌신과 삶의 변화가 요구된다(막 8:34-38).

# 묵상
패역한 인간의 본성 ( 19:1, 2 )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계속 교만한 마음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스스로의 눈과 귀만으로는 깨달을수 없고, 오직 성령께서 깨우쳐주셔야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막4:12).
하나님의 사람의 절망 ( 19:3-8 )
하나님의 사람이 절망하는때는 주님의 일을 이루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결과를 인정해 주지않고 계속해서 핍박할 때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소유한 사람들로서 어떠한 상황아래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절망에 빠진 인간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 19:5-14 )
하나님은 인간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서 도와주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때 친히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해야만 그절망에서 승리할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절망중에 있는 성도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합과 이세벨을 이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나 지진, 불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조용한 섭리에 의한 것임을 알게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조건 진행해야만 하는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하나님의 뜻에 맞는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절망중에 위로받은 엘리야 ( 19:15-18 )
새로운 사명과 함께 일할수 있는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이 엘리야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성도들에게 먼저 확신을 주시고,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여 용기를 더하시고, 위로하여 열정을 불어넣으십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 ( 19:19-21 )
주저하지않고 부르심을 받은 즉시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르심이 있었을때 즉시 모든것을 다버리고 예수님을 좇아가는 결단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눅5:28). 주님을 따르는 삶이 기쁘고 참되기에 다른것은 버려두고 참길이 되신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야합니다.
엘리야의 부름에 대한 엘리사의 반응 ( 19:20, 21 )
자신의 사명을 사모하고 있었고, 미련없이 자기의 소유를 버리고 전적으로 헌신을 결단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대언할자로, 우상숭배자들과 대항할자로 등장합니다.

# 해설
엘리야을 위로하는 하나님 ( 19 )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살아계심을 몸소 체험하였을 뿐만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하였습니다. 이러한 그가 이세벨의 보복소식을 듣고서는 한없이 좌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세미한 음성가운데 엘리야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에게 기름을 붓도록 하는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후 엘리야는 자기의 뒤를 이을 엘리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1. 낙망에 잠긴 엘리야
1) 보복을 결심한 이세벨
갈멜산에서 돌아온 아합왕은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사건들을 이세벨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고서도 이에 대한 관심은 없었고 바알 선지자들의 죽음만을 말하면서 이세벨의 분노를 자극하였습니다. 엘리야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엘리야의 생명을 24시간내에 반드시 죽이겠다는 위협을 전하였습니다.
a.바알선지자를 죽인 엘리야(왕상18:40)
b.선지자를 죽인 이세벨(왕상18:4)
2) 공포에 빠진 엘리야
엘리야는 이세벨의 보복소식을 접하고서는 공포에 질렸습니다. 이러한 엘리야의 모습은 갈멜산에서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연약한 인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엘리야는 그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었으나 이모든 것을 망각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남유다의 최남단인 브엘세바에까지 도망하였습니다. 이것도 부족하여 혼자 네게브광야로 하룻길을 더갔습니다. 마침내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쉬던 엘리야는 너무나 낙심한 나머지 죽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이제 엘리야의 마음에는 현실을 초월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이세벨의 증오만이 보였던 것입니다.
a.브엘세바(창21:31)
b.죽기를 간구함(민11:15)
3) 천사의 도움을 입는 엘리야
낙심하여 지쳐 쓰러진 엘리야를 위해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천사는 엘리야를 깨워 떡과 물을 먹였습니다. 엘리야는 이것을 먹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천사는 또다시 엘리야를 깨워 음식을 권하였습니다. 천사는 엘리야가 앞으로 40일동안의 여행을 통해 호렙산에 가야할 예정을 알고있었기에 음식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천사의 도움으로 새힘을 얻은 엘리야는 호렙산을 향해 40일간의 여정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이기간에 엘리야와 동행하시면서 많은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엘리야는 호렙산에 당도하였습니다. 이산은 모세의 정취가 가득담긴 하나님의 산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언약을 맺기도 하셨던 바로 그산이었습니다.
a.천사의 수종(막1:13)
b.하나님의 산 호렙(출24:18)
2.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신 여호와
1)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호렙 산에 당도한 엘리야는 그곳에서 굴을 하나 발견하여 거기에 몸을 숨겼습니다. 어느날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어찌하여 이곳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엘리야의 지금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않음을 내포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궁색한 답변을 하였습니다. 자신은 열심을 냈으나 실패하였고 오직 혼자만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마귀의 세력앞에 모든것이 쓰러졌고 오직 자신만이 무방비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
a.엘리야의 궁색한 답변(롬11:3)
b.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출3:4)
2)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신 여호와
엘리야의 초라한 모습에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자신을 엘리야에게 보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갑자기 엘리야앞에 바람과 지진과 불이 나타났으나, 그곳에는 여호와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금후에 세미한 소리가 엘리야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세미한 음성처럼 부드럽고 가깝게 엘리야와 함께할 것을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a.여호와가 일으키신 현상(겔1:4)
b.세미한 소리(욥4:16)
3) 엘리야의 똑같은 답변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로 조금전과 똑같은 질문을 엘리야에게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불과 지진같은 극적인 상황속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났으나, 이제부터는 부드러운 방법으로 나타나실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엘리야에게 새로운 답변과 결심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조금전의 대답과 똑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을 위로하시고, 새롭게 능력을 행사하시는 여호와를 직접 목격하고서도 그의 불신앙적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a.얼굴을 가리우는 모세(출3:6)
b.모세의 답변(출3:11)
3.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은 엘리야
1) 왕과 선지자를 세우라는 명령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다메섹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그에게 3가지 임무를 주셨습니다. 첫째는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과 마지막으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의 후계자로 삼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죄악된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바알숭배에 제동을 걸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바알앞에 무릎을 꿇지아니한 신실한 백성들이 엘리야말고도 7,000명이나 더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소식은 엘리야에게 크나큰 용기와 위로를 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어떠한 환난속에서도 좌절치 말아야할 것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a.기름부음 받은 예후(왕하9:6)
b.이스라엘을 괴롭히는 하사엘(왕하8:12)
2) 엘리야의 후계자가 된 엘리사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임한 즉시 엘리사가 있는 아벨므홀라로 갔습니다. 엘리사는 그곳 지역의 유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겉옷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직책, 사명 그리고 능력 등을 전위한다는 뜻을 담고있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의미를 즉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허락하에 부모와 작별인사를 하고, 소를 잡아 이웃주민들과의 작별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런후 엘리사는 자신의 생업, 포부, 집 등을 모두 깨끗이 청산한후 엘리야를 쫓아갔습니다. 이제부터 엘리사는 엘리야를 수종하면서 후계자로서의 자격과 능력을 갖추기위한 훈련에 돌입하게 된것입니다.
a.엘리야의 겉옷(왕하2:8)
b.수종드는 자(왕하6:15)
결론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와 로뎀나무 아래에 있는 엘리야의 모습은 너무나 상반되는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불신앙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연약한 엘리야를 위로하셨습니다. 이는 자기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극명하게 표현된 것입니다. 이제 엘리야는 엘리사를 준비시키는 사역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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