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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엘리야와 오바댜의 만남 18:1-16
1. 이스라엘의 비참한 형편(3-6)
두가지 이유로 이스라엘은 비참한 형편에 놓이게 된다.
(1)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때에(4절). 죽일때에(13절). 우상숭배자인 그녀는 핍박자이기도 했으며 또한 아합도 핍박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 악한시대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선한사람들이 있었으며 또한 신앙면에서 그들을 도운 선한선지자들도 있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가버렸다(대하 11;13,14). 그대신 하나님께서는 이선지자들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사적인 모임에서 혹은 성결함을 계속 지키는 가정에서 율법을 읽고 해석해 주었다. 그들은 엘리야처럼 예언의 영을 가지지 못했으며 제사도 분향도 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로하여금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쳤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까이 하도록 가르쳤다. 이세벨은 이들을 멸할것을 계획하고 그대부분을 죽였다. 그것은 공공연한 부조리만큼이나 공공연한 학살로서 이스라엘에 얼마남지 않은 신앙인들을 철저히 진멸할 기세였다. 칼을 피한자들은 도망하여 동굴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 생매장된 셈이었으며 생명은 아니지만 유용함이 죽임을 당했다. 유용함이란 생의 목적이자 낙이 되는 것이다.
1) 매우 선한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그는 '오바댜'란 궁내대신으로 그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종"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하나님께 신실한 자이었으나 아합의 신하였다.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3절).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12절).
① 아합처럼 악한자가 그를 등용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는 틀림없이 그가 뛰어나게 정직하고 근면하며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합이 안심하고 믿을만한 자였으며 본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아합 자신만큼이나 신뢰할만한 인물이었다.
② 오바댜처럼 선한사람이, 우상숭배와 온갖 악한 습성에 빠져있는 궁정에서 고관으로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오바댜가 만일 바알에게 무릎을 꿇어야 그지위에 오를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는 그자리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바댜는 선한양심으로 그지위를 누릴수가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세상이 악하다할지라도 세상을 피할 필요가 없다.
2) 이 지극히 선한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보호하는데 자신의 권세를 사용하였다. 핍박이 격렬해졌을때 그는 선지자 백명을 두동굴에 나누어 숨겨 '떡과 물을 먹였다'(4절). 하나님께서 환난때에 자신의 사역자들과 백성들을 위하여 피난처를 준비하심에 있어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곳에서 도와줄 사람을 세우시는 놀라운 능력을 보라.
(2)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일때, 하나님께서는 극심한 가뭄을 일으켜 일용할 양식을 끊어버리셨다. 아마도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이재앙의 원인이 된것처럼 꾸며서 그들을 핍박했을 것이다. 이는 엘리야가 그재앙을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반대로 알려주셨다. 즉 바알의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기까지 기근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한재가 너무 극심한지라 왕과 오바댜는 친히 가축들에게 먹일 꼴을 찾기위해 그땅 전체를 두루다녔다(5,6절). 아합은 이미 많은짐승을 잃었으므로 남은 것들까지 다잃게 될까봐 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않았다. 그는 꼴을 찾는데는 많은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은총을 찾는데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않았고, 재앙을 막기위해서는 많은수고를 했으나 그재앙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은 찾지않았다. 유다땅은 이스라엘땅과 가까이 붙어있었으나 유다가 가뭄이 있었다는 기록은 찾아볼수 없다. 이는 유다는 아직 하나님과 더불어 다스려졌기 때문이다.
2. 엘리야와 오바댜의 만남 (7-16)
엘리야는 '디셉'사람으로서 행하기위해, 즉 이낱말의 뜻인 "개종자, 개혁자"로 행하기 위해 이때 다시 나타나는데 그출현은 재앙의 고통을 없애기위해 취해진 단계적인 조처였다. "그들을 다시 패역한 자리로부터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이키게 하라. 그러면 즉시 모든일이 다 잘될 것이다." 이것이 엘리야가 할일이었다(눅 1:16,17절을 보라).
(1) 아합은 엘리야를 찾는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제의하면서까지 그를 부지런히 찾았다(10절). 그가 엘리야를 부지런히 찾았던 것은 그가 저주한 것에 대해 벌하려 하기보다는 그심판을 철회시킴으로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2)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엘리야에게 아합앞에 나타나도록 지시하셨다. 이는 '지상에' 아니 '그땅에' 비를 내리실때(1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야는 그릿시냇가에 1년을 숨어 있은후에 사르밧 과부의 집에 2년이상을 숨어지냈다. 따라서 1절에서 말하는 '제3년'은 그곳에서 지낸지 3년째임을 말하는 것으로 기근이 있는지 4년째 되는 해였다. 기근은 우리가 아는대로 3년 6개월간이나 계속되었다(눅 4;25;약5:17).
(3) 엘리야가 먼저 스스로 나타났다. 혹은 오바댜에게 자신을 발견케 했다. 그는 성령에 의해서 오바댜를 만날장소를 알고있었다.
1) 오바댜는 엎드려 큰경의를 표하며 문안인사를 하고는 겸허하게 물었다. 내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7절). 엘리야가 선지생도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애정을 보였듯이 오바댜 역시 선지자들의 어른인 엘리야에게 자식과 같은 존경을 표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참으로 '여호와를 크게 경외하는' 자임을 알수 있다.
2) 엘리야는 그에게 답변하는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① 그는 오바댜가 자기에게 붙여준 명예로운 호칭을 아합에게 양도하고 있다. "나말고 그를 너의 주로 부르라." 그호칭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는 선지자에게보다는 왕에게 더 적합한 것이다. 선지자들은 지배보다는 의무를 더 염두에 두어야하는 자들로서 '주'라고 불려지기보다는 오히려 "예견자, 목자, 파수꾼, 사역자"로 불려져야 했다.
② 그는 오바댜에게, 가서 왕에게 자신이 왕과 말하기위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말하라고 명하고 있다.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있다 하라(8절).
3) 오바댜는 이소식을 아합에게 전하는 임무를 면하게 해달라고 엘리야에게 간청한다. 이는 그것이 생명을 내걸어야 하는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엘리야가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라고 했을때, 엘리야가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합의 악행이 쓸모없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아합이 엘리야로부터 어떤친절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자이며 또한 엘리야가 아합으로부터 어떤해를 입는다는 것도 합당치 못하다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합이 자신을 우롱했다는 이유로 혹은 엘리야가 지척에 있을때 그에 대해서 손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우 격노하여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12절). 그는 자신이 이와같이 생명의 위협을 받을만큼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탄원하고 있다. 내가 무슨죄를 범하였기에(9절). "내가 선지자들을 어떻게 숨긴것을 내주는 듣지 못하셨나이까"(13절). 그는 자신이 비록 아합의 신하이긴 했으나 그의 유익을 구치않았다는 것을 엘리야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이와같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주많은 선지자들을 보호한 자신이 큰선지자에 의해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4) 엘리야는 그가 안심하고 이소식을 아합에게 전하게 하기위해서 맹세를 함으로써 그를 만족시켜 주었다. 즉 바로 이날 자신이 스스로 아합에게 나타날 것을 확신시켜준 것이다(15절).
5) 이로써 엘리야가 한장소에서 즉시 그를 만나기를 원한다는 통보가 곧 아합에게 전해졌으며, 아합은 그요구를 받아들인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하여 가다가(16절). 우리는 아합이, 그렇게 오랫동안 찾았으나 찾지못했던 엘리야가 찾지도 않았는데 나타났다고 하는소식을 들었을때 크게 놀랐으리라고 추측할수 있다. 그는 꼴을 구하러 나갔다가 엘리야를 만났는데 바로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를 기대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죄악된 양심은 그로하여금 그것을 바라지않고 오히려 또다른 더무서운 심판을 받을까만 두려워하게 했다.
Ⅱ.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제의 18:17-20
교회가 축복으로 누려온 선지자중 가장 훌륭한 선지자인 엘리야와 세상을 괴롭힌 왕중 가장 악한 아합이 만나게 된다.
(1) 아합은 그답게 비열하게 엘리야를 비난하였다. 그는 여로보암이 선지자를 치려고 손을 폈다가 그손이 말랐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때문에 가히 엘리야를 치려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 악한말을 하였는데 그것은 그를 보내신 이를 모욕하는 것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자여 네냐(17절). 아합의 신하 오바댜가 엘리야에게 '내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라고 문안한 것과 비교해볼때 이것은 얼마나 큰차이인가(참조. 7절). 오바댜는 여호와를 내맡긴 자였다. 이들의 특성은 그들이 각각 선지자에게 말한 양식에 드러났다. 가장 훌륭하고 유용한 사람들도 때로는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자들로 취급받으며 국민을 비탄가운데 빠뜨리는 자들로 내몰리기도 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조차 이와같이 오해받았었다(행 17:6).
(2) 엘리야는 담대하게 그책임을 왕에게로 돌리며 그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자라는 사실을 그에게 입증해 보였다(18절). 즉 이러한 재앙이 있게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자들때문이지, 단지 그들에게 예언하고 경고함으로 그백성들로 회개케하여 재앙을 막으려했던 자신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했으나 그들이 치료받기를 원치 않았다." 그 저주받은 바알들을 좇은 아합이 이스라엘을 괴롭게한 자였다.
(3) 엘리야는 왕중의 왕으로부터 직접 권세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제단이 있던 갈멜산에서 국가적인 대회를 즉각 소집하도록 명하였다(30절). 온이스라엘이 엘리야를 만나기위해서 그곳으로 나아와야만 했다. 또한 전국에 산재해있던 바알의 선지자들과 이세벨의 집에서 종교적인 일을 담당했던 모든자들도 각기 그곳에 와야만 했다.
(4) 그에 따라 아합은 이 큰대회를 소집하기 위해서 명을 내렸다(20절). 이는 그가 엘리야를 두려워해서 감히 그를 거역하지 못했기때문이거나 아니면 엘리야가 그땅을 축복함으로 비가 오도록 할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모든백성들은 왕이 지시하는대로 행하였다.
Ⅲ. 갈멜산에서의 대결 18:21-40
아합과 백성들은 엘리야가 이 엄숙한 대회에서 그땅을 축복하고 비를 오게하기 위해서 기도해주리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는 먼저 할일이 있었다. 백성들이 마땅히 회개하고 돌아와야만 그심판이 끝날텐데 그때까지 전혀 그렇지 못하였다. 하나님을 저버린 자들은 다시 돌아와서 충성하기까지는 결코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지 못한다. 설혹 엘리야라도 그의 일을 이와같이 의롭게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가 일흔번씩 일곱번을 비를 달라고 기도했을지라도 응답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움은 의심할 여지없이 정당해서 그정당성의 증거를 조사하고 판단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1. 엘리야의 책망(21)
엘리야는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을 같이 숭배하는 것에 대해 책망하였다. 그들은 각기 하나님과 바알을 숭배하였을 뿐만아니라 그들중에는 이둘을 모두 섬기는 자들도 있었다. 그는 이것이 '두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21절). 그들은 선지자들을 기쁘게하려고 하나님을 숭배했으나 동시에 이세벨을 기쁘게하고 왕궁에 잘보이기 위해 바알을 숭배하였다. "오직 한분 하나님만이 무한하시고 지고하시다. 오직 전능하시고 모든것을 충족케하시는 한분 하나님만 필요하다. 이미 완전한 것에 무엇을 더 추가하랴? 이제 시험을 해서 바알이 무한하고 전능하며 지고한 신이요 모든것을 충족케하는 은혜를 베푸는 자라면 너희는 여호와를 버리고 오직 바알만을 섬기라. 그러나 만일 여호와만이 참하나님이며 바알은 속임수라면 너희는 더이상 바알과 상관하지 말아야한다." 두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는자들이란 확고부동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불안정한 목표를 세우며, 약속을 그럴듯하게 하나 실행을 못하고, 시작은 잘하나 꾸준하지 못하며, 선한일에 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미지근한 자들이다. '그들은 두마음을 품었으니'(호 10: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받지 않으신다. 우리는 우리가 섬길자를 공정하게 택하여야 한다(참조. 수 24:15). 백성들은 엘리야가 여기에 제시한 이 공정한 제안에 대해서 무슨말을 해야할지 알지못했다. 백성이 한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2. 엘리야의 제안922,23)
엘리야는 그문제를 공정한 시험대에 올려놓기를 제안하였다. 모든 외적인면에 있어서 바알은 유리한 입장이었다. 왕과 궁정이 모두 바알의 편이었으며 백성들의 집단 또한 그러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450명이었으며(22절) 그외에 그들을 지원해주는 자들이 400명 더있었다(19절).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는 단지 한사람으로서 그나마 비참한 유랑생활을 하여 가까스로 굶주림을 면한 사람이었다. 즉 하나님의 대의는 그자체의 정당성외에는 지지해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제안한다. "각편이 희생제물을 준비하고 각편의 신께 기도하자. 그리고 불로써 응답하는 신을 참신으로 정하자. 만일 어느쪽도 응답이 없으면 백성들은 아무것도 믿지 말것이며 둘다 응답하면 두사이에서 계속 머뭇거려도 상관없으리라." 엘리야가 하나님을 위하여 단신으로 막강한 권력과 인원들을 상대했다는 것은 그의 용기의 한실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증인들과 변호자들로하여금 사람의 낯을 결코 두려워하지않도록 격려해준다.
3. 백성들의 찬성(24)
백성들은 그제안에 동의하였다. 그말이 옳도다. 아합과 바알의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만일 이시합에서 그들이 단지 무승부만이라도 될수 있다면 다른 여러 유리한 조건들로 그들은 승리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합은 시작되었다.
4. 바알 선지자들의 시험(25-29)
바알의 선지자들이 먼저 자기들의 신으로 시도를 해봤으나 헛수고였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우선권을 내어주었다(25절). 즉 그들로 크게 당황케하려고 우선권을 그들에게 준것이다.
(1) 바알의 선지자들은 얼마나 끈질기고 요란스럽게 바알에게 간구했는가. 그들은 자기들의 희생제물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하나같이 사력을 다하여 부르짖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26절). 바알에게 간구하는동안에 그들은 얼마나 어리석었으며 얼마나 짐승같았는가! 어리석게도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송아지같이 희생제물이라도 된양 그 '단주위에서 뛰놀았다.' 그들은 그들의 신을 기쁘게하려고 뛰놀았던 것이다. 또한 미친 사람들처럼 그들은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다'(28절). 이는 그들이 응답받지 못하여 안타까왔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일종의 예언자적 광란으로서 자신들의 피를 바알에게 바침으로 은총을 얻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를 경배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베는것을 금하셨다(신 14:1).
(2) 엘리야는 그들에게 얼마나 신랄하게 말했는가(27절). 그는 몇시간동안이나 옆에 서서 그들이 우상에게 기도하는 것을 참을성있게 들었다. 그러나 은근히 모멸감이 생기고 부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정오에 이르러서는 그들을 조롱하였다. 큰소리로 부르지않으면 들을수 없으리라." 바알의 선지자들은 엘리야가 던진 정당한 비난으로 깨우침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수치를 느끼고는 더욱 격렬하여지고 어리석음가운데 빠져들었다.
(3) 바알은 얼마나 귀가 먹었다. 엘리야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지쳐서 완전히 포기할때까지 계속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것은 '저녁소제'를 드릴때까지 계속되었다(29절).
5. 하나님께로부터 불로 응답받음(30-38)
엘리야는 하나님께로부터 곧 불로써 응답을 받았다.
(1) 그는 단을 수리하였다. 그는 바알의 선지자들이 사용한 단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그것이 바알에 대한 기도로 더럽혀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거기서 전에 여호와를 섬기는데 사용되었던 단이 무너져 있는것을 보고는 그것을 수리하는 것을 택했다(30절). 이는 그가 어떤 새종교를 백성들에게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조상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숭배를 회복시키려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단을 열두지파의 수효에 따라 '열두 돌을 취하여' 수리하였다(31절). 비록 열지파가 바알에게 돌아섰다할지라도 그는 조상들과의 옛언약으로인해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께 속해있음을 알고있었다.
(2)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단을 쌓고는 희생제물을 준비하였다(32,33절). '보라. 송아지와 나무는 있거니와 불은 어디에 있는가(참조. 창 22:7,8). 하나님께서 친히 불을 준비하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안에 거룩한 불을 밝히실 것이다. 엘리야는 제사장도 없었고 그를 시중드는 레위사람들도 없었다. 갈멜산에는 성막도 성전도 없었다. 그러나 어떤제사도 이것보다 더 하나님께 받아들여진적이 없었다.
(3) 그는 단에다 많은물을 붓도록 명하였다. 그렇게 하기위하여 그는 도랑을 준비하였다(32절). 그는 불이 내려온 것에 열두통의 물(아마도 바닷물이었을 듯싶다. 왜냐하면 바다가 가깝고 또 가뭄때에 그렇게 많은양의 신선한 물은 아주 귀한 것이어서 그렇게 쓰도록 하지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을 부었다.
(4) 그리고나서 그는 엄숙히 제단앞에 서서 제물을 재가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열납하셨음을 나타내달라고 겸손한 마음으로 간구하였다. 그의 기도는 길지 않았으나 매우 진지하고 침착한 것이었으며, 그의 마음은 바알의 선지자들의 격렬함이나 무질서와는 달리 조용하고 차분하였다(36,37절). 그는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일컬음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선조들에 대한 그들의 관계를 상기시켰다. 그는 여기서 두가지를 탄원하고 있다.
1) 하나님의 영광 : "여호와여, 내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소서. 이는 '주께서 이스라엘중에서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하려 함이니이다".
2) 백성들의 교화 : "이는 그들로하여금 당신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사 그들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하기 위함이니이다."
(5) 하나님께서는 즉시 불로써 그에게 응답하셨다(38절).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도랑의 물을 핥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것은 아니었다. 그기적을 완전하게 하기위해 그불은 제단의 돌과 흙까지 태웠다. 모세의 단과 솔로몬의 단도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로 거룩하게 열납되어졌었다. 그러나 이단은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파괴되어졌다. 우리는 그불이, 범죄한 아합과 바알을 숭배하던 자들에게 얼마나 큰두려움이 되었겠는가 하는것을 쉽게 상상할수가 있다.
6. 이 공정한 시합의 결과(39,40)
바알의 선지자들은 패배하였다. 엘리야는 가장 분명하고도 부인할수 없는 증거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대신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였다.
(1) 백성들은 배심원처럼 그시합에 판정을 내렸으며 그들의 판정은 일치하였다. '모든백성이 엎드려'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39절).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 될것이며 우리는 단지 그만 섬길 것이다." 이일로 말미암아 어떤이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돌이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중 대다수는 그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뿐 회개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굴복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언약에 동의하지도 않았다.
(2) 바알의 선지자들은 범죄자들처럼 법에 따라 포박되고 정죄받았으며 사형에 처해졌다(40절). 엘리야는 그땅을 괴롭게한 죄목으로 그들 모두를 즉각 살육하도록 명했다(그것은 비상사역이었으므로 전례가 될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바알의 선지자 450명이었다. 아세라의 선지자들 400명도(혹자는 이들이 시돈사람들일 것으로 생각한다) 소집을 받았으나 참석치 않음으로 이처형을 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얼마후 그들은 아합으로하여금 길르앗라못으로 올라가게함으로 그를 파멸케하는 도구가 되기위해 보류되었음이 판명되었다(참조. 22:6).
Ⅳ. 비가 내림 18:41-46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할만큼 변화되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여시고 바로 그날 저녁에 그땅에 축복을 부어주셨다.
(1) 엘리야는 아합을 먹고 마시도록 보냈다. 아합은 온종일 금식을 하였다. 이는 경건하게 기도로 하루를 보냈기때문이거나 큰기대로 하루를 지내느라고 먹을여가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먹고 마시라고 말한다. 이는 비록 다른사람들은 전혀 비가 올 기미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엘리야는 믿음으로 '큰비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41절).
(2) 그자신은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물로 응답하시기를 기도하기 위해 물러갔다.
1) 그는 특별한 장소, 즉 매우높고 은밀한 곳인 갈멜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는 그곳에서 혼자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공적으로 행하도록 부름받은 자들도 그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고 둘만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2) 그는 특별한 자세를 취했다. 그는 겸손의 표시로 땅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었다'(42절).
(3) 그는 사환에게 바다 곧 지중해로부터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자마자 자기에게 알리도록 명하였다. 그는 그것을 갈멜산꼭대기에서 확실히 예견했었다. 오늘날 항해사들은 그곳을 갈멜봉이라고 부른다. 그의 사환은 여섯번이나 언덕꼭대기에 가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지못했으며 그의 주인에게 아무런 좋은소식을 가져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엘리야는 계속해서 기도하였다. 그는 여전히 그의 사환으로하여금 고대하고 있는 구름이 혹 나타나지나 않나 알아보도록 보냈으며 그자신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한 그의 조상 야곱의 결의를 본받으려는듯 전념하여 기도하기를 계속하였다.
(4) 드디어 사람의 손만한 작은구름이 나타났다. 그것은 즉시 하늘을 덮었으며 땅에 비를 내렸다(44,45절). 때때로 큰축복은 작은 시작에서부터 일어나며 큰소나기는 한뼘정도 되는 구름에서부터 일어난다.
(5) 이에 엘리야는 아합을 급히 집으로 보내며 자신이 그를 수행하였다. 아합은 편안히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마차를 타고 갔다(45절). 그러나 엘리야는 아합앞에서 도보로 달려갔다. 만일 아합이 엘리야를 존경했다면 그는 당연히 이스라엘의 장로들앞에서 그에게 존경을 표하고 또 그나라의 개혁에 대해 그와 협의하기 위해서 에디오피아 내시가 빌립에게 했듯이 엘리야를 그의 마차에 태웠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타락은 그의 뉘우치는 마음을 훨씬 능가했으며 따라서 그는 마치 벨릭스가 바울을 내보내면서 더형편이 좋아지면 협의하자고 연기한 것처럼 엘리야를 멀리하려고 했다.
# 핵심
18:1-6
아합왕의 궁내대신 오바댜는 영적으로 극히 타락한 아합왕을 옆에서 보좌하는 직책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의 선지자들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저녁소제(18:29)
소제는 곡물로만 드리는 제사였다. 성전에서는 매일 어린양을 잡아 아침저녁으로 두번의 제사를 드려야했는데, 이때 소제도 어린양과 함께 드려졌다(출 29:38-41). 저녁에 드리는 제사는 오늘날의 오후 3시경에 드려졌다(행 3:1).
# 묵상
오바댜의 삶 ( 18:1-6 )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바댜의 삶을 통해 세상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에서 의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때에도 숨어서 일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이 타락하고 몰락해있는 가운데에 머물러 있는것을 원하지 않으시기때문에, 그들은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분별력 ( 18:7-15 )
영적분별력이란 하나님의 역사를 바로 분별할수 있는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둔감하며 잠자는 성도는 분별력이 없지만, 깨어서 기도하는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로 분별할수 있습니다(막14:30). 주님께서 오시는때는 어느누구도 알수 없고 추측할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앞에 도적같이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파수꾼처럼 경성해서 열심히 자신을 지키는 자만이 그때를 알고 맞이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때를 분별할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결단의 순간 ( 18:21 )
인간들은 결단의 순간에 권력이 두려워 하나님편에 서지못하고 침묵을 지키는 소극적 자세를 견지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결단이 필요할때에 늘 진리편에 서서 확신있는 결정을 내려야합니다. 또한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선택이어야 합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의 종교가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과 바알을 섬기는 신앙으로 혼합된 혼합주의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혼합주의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여호와만을 섬길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아니면 세상과 함께 멸망의 길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바알의 선지자 ( 18:28 )
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피가 나도록 상하게 했습니다. 그이유는 그것이 자기신을 부르는 최고조의 광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종교에서는 이런 자해행위가 신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레18:21). 그러나 기독교는 자해행위 등의 금욕주의를 강조하기보다는 생활속에서 경건한 삶을 사는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엘리야의 기도제목 ( 18:36-38 )
주께서 이스라엘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자신이 주의 종이 됨과, 자기가 주의 말씀대로 이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엘리야의 기도는 믿음있는 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가능케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갈멜산 대결 ( 18:39, 40 )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하나님을 인정했고, 바알선지자들은 기손시내로 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와같이 본문에서 엘리야는 담대한 하나님의 용사로 부각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믿음없는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심어주고, 패역한 자들에게는 심판으로 다가오며,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더큰 믿음의 담력을 갖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회 ( 18:39 )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태도는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섰음을 뜻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본 도마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것도 흡사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한사람 엘리야의 가르침이 이스라엘왕국 전체를 압도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원해주시도록 만드십니다.
엘리야의 기도 ( 18:42-44 )
간절하게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기도는 온힘과 마음과 영을 다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결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비를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 하더라도 그를 회개케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위하여 계속 은혜를 베푸시는 자비롭고 사랑이 많은 분이십니다.
# 해설
여호와와 바알간의 대결 ( 18 )
하나님께서는 이제 바알신의 허구성을 드러낼 시점에 당도하자 삼년만에 엘리야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어 당신이 비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증명토록 하였습니다. 또한 갈멜산에서 모든백성들이 보는가운데 여호와가 참하나님임을 입증해 보이셨습니다.
1. 아합과 대면하는 엘리야
1) 여호와를 경외하는 오바댜
기근이 3년째 계속되던 어느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기근이 끝나게 될것을 아합에게 알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이극심한 가뭄이 우연한 천재지변에 의해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했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이 있는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당시의 사마리아는 가뭄의 재앙을 몰고온 아합과 이세벨이 살고있었기에 그기근이 가장 심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자신의 궁내대신인 오바댜와 함께 최소한의 짐승들에게 먹일풀이 있는 꼴을 찾아 나섰습니다. 궁내대신인 오바댜는 아합의 신임을 받으면서도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자 할때에 선지자 백명의 생명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주기도 했던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a.가뭄의 상태(렘14:3)
b.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시33:8)
2) 엘리야와 오바댜의 만남
오바댜는 아합과 떨어져 꼴을 찾던중에 사마리아에 당도한 엘리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를 알아본 오바댜는 그에게 예우를 갖추고자 땅에 엎드렸습니다.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아합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오바댜는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이는 아합에게 엘리야에 대한 보고를 한후, 혹시라도 엘리야를 데려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면 자신이 죽게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면서 아합앞에 반드시 서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a.다윗의 맹세(삼상20:3)
b.맹세(민30:2)
3) 아합과 대면한 엘리야
드디어 아합과 엘리야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합은 극심한 가뭄을 초래케한 자신의 죄악은 전혀 깨닫지못하고, 이모든 책임을 엘리야에게 전가시켰습니다. 이에 맞서 엘리야는 당당하게 아합의 죄악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는 아합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한 것과, 그결과로 가뭄이 임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엘리야는 어느신이 참신인지 밝히자고 아합에게 제의하였습니다.
a.아합과 엘리야(왕상21:20)
b.바알을 숭배한 아합(왕상16:31)
2. 갈멜산에서의 대결
1) 엘리야의 대결제의
갈멜산에서 모이자는 엘리야의 제의에 아합은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갈멜산은 이스라엘과 베니게의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 바알을 섬기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기에 아합은 이장소가 자기들에게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되어 백성들과 바알선지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참신을 섬길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송아지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는 바알선지자들에게 제의하기를 이송아지 제물위에 불로 응답하시는 신이 참신으로 드러날것이라 말하였습니다. 바알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엘리야의 이제의를 옳게 받아들임으로써 마침내 대결은 시작되었습니다.
a.여호와만 섬기라(수24:15)
b.두주인은 섬길수 없다(마6:24)
2) 바알선지자들의 실패
먼저 바알선지자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아침부터 열심히 기도를 드렸으나 무응답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들의 신과 그들을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들 선지자들은 이교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의 비위를 맞추고자 자신들의 몸을 자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의 온갖 광란적인 방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바알신은 침묵하였습니다. 자신들 스스로가 바알신의 허구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a.가나안의 신 바알(삿3:7)
b.바알의 제사(렘19:5)
3) 하나님의 승리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12지파의 수효대로 12돌을 취하여 여호와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물주위에 도랑을 판후 송아지 제물위에 물을 부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기적이 어떤 자연현상이거나 조작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임을 입증코자 하였던 것입니다. 드디어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참하나님이시고 백성들이 주께로 돌아올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여 제단은 물론이거니와 도랑의 물마저도 다태워 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백성들은 이제 어느신이 참신인지 분명히 알게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엘리야의 말에 따라 바알선지자들을 기손시내에서 몰살시켰습니다. 이때 아합은 어찌할바를 알지못하였고, 반면 이세벨은 엘리야에 대한 증오로 가득찼습니다.
a.마귀에 대한 승리(약4:7)
b.그리스도안에서의 승리(빌4:13)
3. 가뭄을 멈추신 하나님
1) 단비를 간구하는 엘리야
아합에게 가뭄을 예언했던 엘리야는 이제 그가뭄이 끝나고 비가 올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가뭄이 끝난것을 축하하기위해 먹고마시러 가고 엘리야는 비오기를 간구하기위해 갈멜산에 올라갔습니다. 그가 간절히 간구할때에 사람손만한 작은구름이 일어난다는 사환의 말을 듣고 그는 큰비가 올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가서 큰비에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마차를 타고 갈것을 권면하였습니다.
a.단비를 간구하는 엘리야(약5:17-18)
b.비를 알리는 구름(눅12:54-55)
2) 삼년만의 단비
드디어 삼년 육개월만에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아합이 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갔습니다. 비록 아합이 회개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자 단비를 허락하셨습니다. 갈멜산에서 여호와가 참하나님이심을 깨달은 백성들은 이비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단비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a.이스르엘 골짜기(수17:16)
b.하나님의 권능(겔3:14)
결론
하나님께서는 회개치않는 아합과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이 참신임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신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생생하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삼년 반만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하에 단비가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회개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회개의 기회를 상실한 자에게 임할 심판만이 아합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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