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벤하닷의 공격과 오만한 요구 20:1-11
1. 벤하닷의 공격(1)
이스라엘에 대해 행한 벤하닷의 위협적인 침공과 그가 사마리아, 곧 이스라엘의 완성을 포위한 사실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시대에 아람나라는 이스라엘에 완전히 정복되어 속국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자 그들은 다시 얕잡아 볼수 없는 상대가 되었다. 한때 아사가 아람인들을 부추켜서 이스라엘을 침공을 하였다. 외국의 군대를 나라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후손들이 그값을 치뤄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2. 두왕사이의 협약(2-11)
(1) 교만한 벤하닷은 아합에게 매우 무례한 요구를 하고있다(2,3절). 그요구는 아합이 신하의 예를 갖추어 조공을 바칠뿐 아니라 그의 칭호를 자기에게 양도하며 아내들과 자녀들까지 자기의 뜻에 모두 맡긴다는 조건에 아합이 동의하면 포위를 풀겠다는 것이었다.
(2) 유약한 아합은 벤하닷에게 매우 수치스러운 항복을 한다(2,3절).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4절). 죄의 결과를 보라.
1) 만일 아합이 죄로인해 하나님을 노하게 하고 그를 떠나지 않았던들 벤하닷은 그러한 요구를 할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원수들이 우리를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은 다른 모든것에 대한 예속이다.
2) 만일 그가 죄로인해 자신의 양심을 훼손시키지 않고 또 그훼손된 양심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않았다면 그처럼 초라한 항복을 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죄는 사람들을 낙담케하며 또한 겁쟁이로 만든다.
(3) 벤하닷의 교만한 마음은 그의 항복으로인해 더욱 기고만장하게 되고 또한 한층더 무례하고 사악하게 된다(5,6절).
1) 벤하닷은 자신의 교만만큼이나 탐욕스런 자였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주권과 소유를 모두 가지지않고서는 떠날수가 없었다.
2) 그는 자신의 거만만큼이나 사악한 자였다. 만일 그가 마음에 원하는 것을 고르기위해 직접왔더라면 그것은 왕관을 쓴자에게 약간이나마 존경을 표하는 것이었을터이나 그는 왕을 모욕하기위해 자신의 종을 보내려했다. 무릇 네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6절).
3) 그는 자신의 불의만큼이나 부당한 자였다. 따라서 그는 아합 개인의 항복을 그의 모든백성의 항복으로 해석하려 하였다.
(4) 아합의 유약했던 마음이, 점점 더해가는 벤하닷의 오만함으로인해 다시 일어서기 시작한다. 혹 그것이 대담함이 아닌 자포자기적인 것이라할지라도 그는 그와같이 모든것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생명을 모험에 걸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그는 끝까지 저항하도록 용기를 북돋는 장로들의 충언을 택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거절을 매우 정중하게 나타내 보였다(9절).
(5) 벤하닷은 교만하게도 사마리아를 파멸시킬 것을 맹세하고 있다.
(6) 아합은 그의 자신감에 대해 점잖게 책망을 한다. 즉 그의 위협을 경시하지는 못하면서도 단지 그에게 전쟁의 불확실한 결과에 대해 상기시켜 주고있다(11절).
Ⅱ. 이스라엘의 승리 20:12-21
포위한 자들과 포위당한 자들사이의 협약이 갑자기 파기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발발한 전쟁에 대한 설명을 보게된다.
(1) 포위한 자들, 즉 아람인들은 술취한 왕으로부터 명령을 받았다. 그는 술잔을 든채로 명령을 내렸다.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12절). 저희가 오정에 나가니 벤하닷은 돕는 왕 삼십이인으로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16절). 만일 그가 승리를 확신하지 않았다면 앉아서 술을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만일 그가 취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방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심과 육욕은 옛세상에, 특히 소돔에 만연해 있었다(눅 17:26이하). 벤하닷의 술취함은 벨사살이 그러했던 것처럼(단 5장) 패망의 시초가 되었다. 그는 취한가운데서 그성읍을 포위하도록 명령했다. 그가 포위당한 자들을 죽이지 말 것을 명했을때 그들은 역습을 하였다. 즉 그들을 죽이는 것이 더쉽고 안전했으나 죽이지말고 사로잡을 것을 명했기때문에 그들은 침략자들을 죽일기회를 갖게된 것이다.
(2) 포위당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감받은 선지자, 즉 아합이 미워하고 박해한 여호와의 선지자들중 하나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1) 하나님께서 아합과 같은 아주 사악한 왕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자비롭고 은혜로운 소식을 주신것을 보라. 그러나 이는 다음을 위함이었다.
첫째,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였다.
둘째, 악하고 감사치도 않는 자에게 선을 베푸사 큰자비를 나타내주심으로써 그로하여금 회개케하거나 더이상 변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셋째, 벤하닷의 교만함을 죽이시고 그의 무례함을 꺾기 위해서였다. 아합은 여호와의 선지자에게 묻지않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구하지도 않은 그에게 한사람을 보내주셨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2) 그선지자는 다음의 두가지 일을 행하였다.
① 그는 승리를 확신시켜줌으로써 아합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모든장로들이 그를 돕겠다고 약속했던 모든 일들보다 훨씬더 큰것이었다(참조. 8절). 아합은 이렇게 축복된 상황으로 급변하게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13절). 즉 "만물의 주권자가 됨을 알리라."
② 그는 아합이 승리를 얻기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알려주었다.
첫째, 그는 적이 공격해 올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들을 기습하여 그들의 참호를 불시에 공격해야 했다.
둘째, 공격하는 자들은 '각도의 방백의 소년들'로 단지 이백삼십이명에 불과한 신병들이며 보병들이어야 했다. 그들은 전쟁에 대해서 전혀 알지못하며 그러한 대담한 공격을 잘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셋째, 아합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친히 전쟁을 지휘해야 했다. 이성의 눈으로 볼때 그것은 자신을 가장 위험한 곳에 내어놓는 것이었다.
넷째, 그는 소년들이 공격한후에 잇달아 타격을 주기위해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다른 어떤병력을 사용해도 상관없었다. 그가 사마리아내에 거느리고 있는, 즉 대기하고 있는 군인의 총수효는 단지 칠천명 뿐이었다(15절).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아니한 자들과 이들의 수효가 똑같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참조. 19:18).
(3) 그후 전쟁의 결과는 이렇게 나타났다. 교만한 아람인들은 패배했으며 불쌍하게 멸시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승리자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왕들의 기백을 앗아가시며, 자신을 지상의 왕들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로 나타내시는가를 보라. 벤하닷이 아합에게 요구했던 은과 금은 어디에 있는가? 사마리아의 한줌의 티끌조차 그는 쥘수가 있었던가?
Ⅲ. 이스라엘의 두번째 승리 20:22-30
아합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아람인들과의 전쟁에서 또다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번에 그는 전보다 더큰 패배를 그들에게 안겨주었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아합은 우상숭배자이면서도 여전히 승리자였고 핍박자이면서도 여전히 정복자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로 번영케하시는데에는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이 있으시다.
(1) 아합은 또 있게될 전쟁을 준비하도록 선지자로부터 경고를 받았다(22절). 선지자는 그에게 해가 돌아오면 적들이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고 자기들이 받은 타격을 보복하고자 다시 공격해 올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아합에게 스스로 힘을 기를 것을 명하셨다. 우리는 영적인 적들로부터 공격받은 것에 대비하여 항상 주의하고 살펴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2) 벤하닷은 신복들로부터 다음싸움에 관한 권고를 받았다.
1) 그들은 '평지'에서 싸울것을 권고하였다(23절). 그들은 자기들을 패배시킨 것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합당한 생각이었으나 그들은 여호와에 대해서 아주 무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즉 여호와는 오직 한분이며 그의 이름도 하나인데 그들은 그가 여럿인듯이 말했으며 그는 창조주이시자 온세상의 주관자이신데 단지 그지역, 그민족만의 신이라고 말하였다.
2) 그들은 지휘관들을 바꿀것을 그에게 권고하였다(24,25절). 즉 날때부터 지휘관인 왕들을 제하고 오히려 전과에 의해 지휘관이 된, 전쟁에 능숙한 장관들을 세울것을 권고하였다.
(3) 양편 군대는 평지에 포진하였다. 벤하닷은 그의 아람군대와 함께 아셀지파에 속한 아벡근처에 진을 쳤고 아합도 그의 군대를 이끌고 그들과 마주하여 어느정도 떨어진 곳에 진을 쳤다(27절). 숫자상의 불균형은 매우 현저하였다. 두개의 부대로 나뉜 '이스라엘 자손'은 수효도 적고 장비도 보잘것이 없어서 마치 '염소새끼의 두 적은 떼'와도 같았다. 그들의 외관은 그처럼 업신여김을 받을만한 것이었다. 반면에 아람인들은 수효와 고함소리와 병거와 마차, 그리고 군수품으로 그땅을 온통 뒤덮었다.
(4) 아합은 적들이 승리를 자신하고 또 유리한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고무되어 아람사람들과 싸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 그들을 붙이시리라는 말씀을 전했기 때문이었다(28절).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는 비록 그사실이 그에게 전달되었더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친히 그일을 해주실만큼 가치가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5) 양편 군대가 서로 칠일을 대치한후 접전하여 아람군대는 완전히 참패당했다. 벤하닷은, 승리자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리라고 생각했던 그의 성 아벡이 무너져내리고, 또 그의 군대중 생존자들이 사기가 떨어지고 사방으로 흩어지자 추적자들에게 잡히지 않기위해서 '골방'에 몸을 숨겼다. 어떻게해서 가장 자신만만하던 자가 결국은 가장 비겁하게 끝을 맺는가를 보라.
Ⅳ. 아합의 어리석은 약조 20:31-43
이스라엘이 아람사람에게 승리한후 발생한 한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1. 벤하닷의 비천한 항복(31.32)
왕과 자신들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음을 깨달은 벤하닷의 신하들은 무조건 항복하여 스스로 포로가 되고 아합에게 생명을 애걸하자고 권유하였다(31절). 그신하들은 생명을 내걸고 모험을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은혜롭고 자비하신 것으로 선포하신 것을 들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왕들도 그들의 하나님을 본받았으리라고 결론내렸던 것이다. 이사실은 불쌍한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겸손해져야만 할때 그렇게 할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준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고 듣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분이 그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찢고 그분께로 돌이키자"(욜 2:13).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복음적인 회개는 시작된다. 그에게는 죄사함이 있다. 벤하닷의 신하들은 아합에게 보이기위해 두가지 사실을 꾸몄다.
(1) 그들의 주인을 참회자로 꾸몄다. 이는 그들이 문상객처럼 '굵은베로 허리를 묶고,' 죽을죄를 지은자가 죽으러 갈때처럼 '테두리를 머리에 인' 것으로 알수가 있다. 악을 행하여 만일 성공하면 그것을 정당화하고 자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회개하는체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2) 그들의 주인을 애걸하는 자, 즉 자신의 생명을 애걸하는 자로 꾸민다.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나의 생명을 살려주옵소서(32절). 얼마나 큰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보라.
첫째, 그의 형편의 변화이다. 그는 권세와 영화의 높은곳에서 수치와 비탄의 그깊은 곳에서 떨어졌다.
둘째, 그의 성격의 변화이다. 20장 앞부분에서는 약한 자를 괴롭히고 저주하고 위협하면서 더심한 것이 없을정도의 요구를 하더니 여기서는 벌벌 기면서 애처롭게 더비참할수 없을정도로 애걸을 하고있다.
2. 아합의 어리석은 동맹(32-34)
아합은 어리석게도 벤하닷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즉각 그와 동맹을 맺었다. 자기가 두려워했던 자가 이와같이 자기에게 비위를 맞추자 아합은 교만하여졌다. 저가 오히려 살았느냐 저는 나의 형제니라(31절). 즉 비록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형제는 아니나 형제왕이라는 말이다. 아합은 종교보다는 왕권을 더가치있게 여겼다. "아합아, 벤하닷이 네형제이냐? 그가 야만적인 전갈을 네게 보낼때 형제와 같이 행하였더냐(5,6절)? 만일 그가 승리했다면 그가 너를 형제로 불렀겠느냐? 만일 그가 극한 곤경에 처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자신을 너의 종이라고 불렀겠느냐? 너는 어찌하여 억지로 꾸며댄 거짓항복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느냐?" 항복을 한 벤하닷은 영예롭게 병거에 태워졌을뿐만 아니라 맹우로서 대우받았다(34절). 아합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나 그나라의 장로들과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와 더불어 '약조'를 하였다. 이제 그는 벤하닷의 몇성읍을 요구할수도 있었으나 그자신의 성읍들이 반환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는 다메섹의 물품들과 보물들과 비축물들을 요구할수 있었으나, 그자신의 비용을 들여 그곳에 거리를 만들 보잘것없는 권리를 얻은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는 벤하닷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한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책망도 없이 이약조를 하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왜냐하면 아합은 하나님의 영광에 하등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3. 아합에 대한 책망(35-43)
아합이 벤하닷을 관대히 대하고 그와 더불어 약조한 것에 대해서 책망이 내려졌다.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선지자에 의해 그에게 주어졌는데 유대인들은 그선지자가 미가야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아합이 미가야는 자기에 대해 '흉한일만 예언'한다고 불평하고 있기 때문이다(22:8). 이선지자는 비유로써 아합을 책망하고자 하였다. 그는 자신의 비유를 더욱 그럴싸하게 꾸미기위해서 부상당한 군인의 모습을 취하고자 하였다.
(1) 그는 자신을 다치게 하는데 약간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그가 직접 자기손으로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동무 선지자에게 자신을 치라고 하면서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였다(35절). 그러나 동무선지자는 자기가 맞기를 원하지 않듯이 기꺼이 그를 치려고 하지않았다. 우리는 단지 그가 선한이유로 그것을 거절했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선한사람은 다른사람을 치기보다는 차라리 부당한 매일지라도 맞는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불순종했기에(만일 그자신도 선지자였다면 그것은 더욱 잘못한 것이었다) 다른 불순종한 선지자처럼(13:24) 즉시 사자에게 죽임을 당했다(36절). 한 선한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치라고 하셨을때 자신의 동무이자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람을 치지않은 것으로 이와같이 벌을 받은 사실은 자신의 적이자 하나님의 적인 자를 하나님께서 치라고 하셨을때 치지아니한 악한왕에게 더욱 심한 벌이 내려져야 마땅하리라는 것을 아합에게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만난 다음사람은 아무 어려움없이 그를 쳤으므로 그는 다치게 되었다(37절). 그는 아마도 얼굴을 피가 나도록 맞았던것 같다.
(2) 그는 부상당한채 자신이 선지자인 것을 알지못하게 하려고 재를 덮어 위장한후 왕이 벤하닷을 치지않은 죄와 같은 그러한 죄로 자신이 고발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왕에게 탄원을 하고는 그에 대한 왕의 심판을 기다렸다. 이야기의 요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전쟁에서 잡힌 포로가 이사람에게 감시하도록 맡겨졌다. 만일 저를 잃어버리면 네생명으로 저의 생명을 대신하거나(39절). 포로는 그가 감시를 소홀히 하는틈을 타서 도망을 하였다. 왕의 가슴속에 있는 법정은 포로의 생명대신 그의 생명을 요구하는 지휘관을 거스린 그를 구해줄 것인가? 왕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약속을 하지말든지, 그일을 더욱 주의하여 충실하게 하든지 했어야 했다. 다른 구제책은 없다. 너는 네 약조대로 의무를 지고 그대로 당하여야 한다."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40절). 이제 선지자는 자신이 뜻한바를 행한다. 즉 자신의 변장을 벗고 아합에게 자신이 선지자임을 알게하고는 분명하게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41절). "당신이 바로 그사람입니다. 당신은 당신자신의 입으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의 교만과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분명하게 멸망하시기로 정하신 자를 당신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를 당신뜻대로 기꺼이 풀어줌으로 당신의 책임을 저버렸습니다."
(3) 우리는 아합이 이책망을 불쾌하게 여긴것을 보게된다.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궁으로 돌아가려고(43절). 그는 선지자에게 화를 내고 하나님에 대해 격분하였으나 자신에 대해서는 근심하였다.
# 핵심
20:1-12
아람왕 벤하닷이 사마리아성을 포위하고, 종속국이 될것을 아합에게 요구했다.
고대인의 전쟁관과 신관(20:23)
다신교를 숭배했던 고대인들은 각신들이 특정한 지역에 국한되어 힘과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또한 전쟁을 가리켜 궁극적으로 신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아람인들은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의 중앙산지에 위치했기때문에 평지에서 싸우면 이스라엘의 신이 영향력을 행사할수 없을것이라고 단정했다.
한선지자의 죽음(20:36)
본절의 한선지자의 죽음은 매우 이상한 사건인듯이 보인다. 하지만 아합이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벤하닷을 살려주었던 앞사건의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수 있다. 이 두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명령에 인간의 생각을 개입시키지 말고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는 주제를 제시한다. 즉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으면 어떤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를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복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묵상
전쟁에 임하는 벤하닷의 자세 ( 20:1-12 )
벤하닷은 자기군대의 힘을 과신하고 교만하여져서 이기리라는 확신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교만한 자의 마지막은 패망입니다(잠16:18). 그러나 겸손한 자의 길은 영화롭고 그길이 평온합니다. 아람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의 원인은 아람왕 벤하닷의 지나친 패권의식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쟁에서, 당신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온세계의 주권자이심을 선포하고 교만한 벤하닷을 심판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은 교만과 함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될 것입니다.
장로의 역할 ( 20:8 )
백성들의 대표자와 재판관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고, 백성을 위한 중보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군사적 지도자가 되었고, 모든지파의 보존을 담당했으며, 백성들을 대신하여 어린양을 잡았습니다.
전쟁에 승리한 아합 ( 20:13-21 )
아합이 승리한 비결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신 선지자의 명령을 그대로 준행한 결과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편에 서기만 하면 대적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들의 편이 되셔서 승리를 보장해 주십니다(삼상17:47).
적은 군대로 대군을 이김 ( 20:15 )
싸움의 승패는 군비나 병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좌우된다는 것을 깨닫게하기 위해서입니다(삼상17:47). 하나님께서는 7,232명의 적은군사로 아람의 대군을 쳐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특별하신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실때 가능한 것입니다.
아합에게 계속 말씀하시는 하나님 ( 20:22-25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에 이긴것을 통해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게하시려고 아합에게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죄악에 빠진 인간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약속을 가지고 계속 회개하고 동참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사랑의 성품을 가지신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악인의 복 ( 20:26-30 )
성경은 악인이 복을 받지못하고 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잠10:28, 30). 그러나 때로 악인이 복을 받는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사람을 회개시키려고 하시는 경우이거나 잠시동안의 낙을 누리면서 악이 더쌓이게 두시기 때문입니다.
아벡평지 전투의 교훈 ( 20:28 )
당시 사람들은 신(神)들이 각각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람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가 ‘산의 신’이고 ‘평지의 신’이 아니기때문에 평지에서 싸우면 이길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인들의 편협하고 우매한 생각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허탄한 이교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또 이전쟁을 통해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라는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벤하닷은 단지 여호와를 일개지역신으로 여겼으나 전쟁의 결과는 여호와께서 우주만물의 창조자이고 통치자이심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악인이 범하기 쉬운 죄 ( 20:31-34 )
모든일을 자기가 이루었다고 하는 생각과 교만한 행동입니다. 교만한 인간은 그를 도우신 하나님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그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취합니다. 그러나 그결과는 파멸뿐입니다. 악인 아합이 저지른 실책은 자만심으로 불필요한 동정과 함께 벤하닷을 살려보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중죄였습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거민을 멸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치 못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손대대로 우상숭배 문제때문에 고민하게 되는 악의 근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신7:2).
사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 ( 20:38-43 )
벤하닷을 살려보낸 아합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저주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승리하게 하신것은 벤하닷을 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맡겨진 일을 다하지 못하고 헛된 자만심으로 하나님의 작정하신 일을 망쳐놓았던 것입니다. 사명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자신이 필수적으로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모두에게 각각의 사명을 주셨습니다(마25:14 -30). 성도들은 주어진 삶속에서 자신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 해설
전쟁에서 승리한 아합의 실책 ( 20 )
본장에서는 다시 아합왕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당시 아람의 왕이었던 벤하닷은 앗수르의 공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위해 동맹국들을 규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와중에서 북이스라엘을 자신의 동맹국에 포함시키고자 수도인 사마리아를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두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모두다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차례의 아합의 실수는 돌이킬수 없는 결과를 야기시키고 말았습니다.
1. 아람과의 전쟁에서의 첫번째 승리
1) 사마리아를 포위한 벤하닷
아람왕 벤하닷은 인근 도시국가의 32명이나 되는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를 포위 공격하였습니다. 벤하닷은 아합에게 항복을 요구하며 은금과 처와 자녀들까지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아합이 쉽게 순응하자 벤하닷은 또다른 조건들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때 아합은 장로들과 백성들의 조언을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조언에 따라 아합은 벤하닷의 요구조건을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벤하닷은 이제 사마리아를 완전히 멸망시키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a.사마리아를 포위한 벤하닷(왕하6:24)
b.내일 일을 자랑치말라(잠27:1)
2) 승리를 약속해주시는 하나님
이제 북이스라엘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속에 직면하였습니다. 무력으로 대항해서는 결코 승산이 없음을 아합은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때에 한선지자가 아합에게 나타나 여호와의 뜻을 전해 주었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아람 군대를 무찌를 것이라 예언하면서 이는 하나님께서 아합으로하여금 여호와를 깨닫도록 하기위한 조처라고 말하였습니다. 아합은 선지자의 말대로 전투에 나갈 각도의 방백의 소년들을 준비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먼저 찾아와주셔서 모든어려움과 위기를 잘 넘길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만큼 하나님은 악한 아합마저도 뜨겁게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a.이스라엘의 하나님(왕상18:36)
b.승리의 비결(삼상17:46-47)
3) 북이스라엘의 첫승리
아합은 오전에 기습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때 벤하닷은 술에 취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소수의 소년부대의 공격을 알고서도 이를 깔보고 무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소년부대는 아람진영을 큰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투입된 칠천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에 의하여 아람군대는 정신도 못차리고 도주하기에 바빴습니다. 벤하닷도 간신히 말을 타고 도주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싸움에 개입하심으로써, 당신이 역사의 주관자로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합은 물론이거니와 온백성들이 환난날의 구원자되시는 여호와앞에 자복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a.술취함(왕상16:9)
b.승리는 하나님의 뜻(빌2:13)
2. 아람과의 두번째 전쟁
1) 2차침공을 준비하는 벤하닷
승리의 기쁨을 안고 사마리아로 돌아온 아합에게 다시 선지자가 나아왔습니다. 이선지자는 아합에게 벤하닷이 내년 봄에 또다시 쳐들어올테니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반면 아람의 벤하닷은 1차전쟁에서의 실패를 토대로 새로운 작전을 준비하였습니다. 벤하닷의 신복들은 벤하닷에게 여호와가 산의 신이므로,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이제는 산이 아닌 평지에서 다시금 싸워야 할것을 조언하였습니다. 이에 벤하닷은 이조언들을 토대로 병력을 재정비하고 증강시켰습니다. 그는 겨울이자 우기인 시기가 지나 싸우기가 가장 좋은 내년 봄이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a.해가 돋을때의 침공(삼하11:1)
b.신성모독(사36:19-20)
2) 북이스라엘의 두번째 승리
해가 바뀌자 하나님의 계시대로 벤하닷은 다시 아벡으로 진군하였습니다. 아벡은 사마리아와 다메섹 중간에 위치한 고원지대로 평평한 곳이었습니다. 아합도 군대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아람군대에 비하면 이스라엘 병력은 염소새끼의 두 적은 떼와도 같이 보잘것 없었습니다. 이때 또다시 하나님의 사람이 아합에게 나타나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고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승리는 아합에게 여호와를 입증코자 하는 목적이 있음도 밝혀 주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람의 보병 십만명이 죽었고, 아벡성읍으로 도망친 군사들은 그성이 무너져 그만 칠천명이 죽기도 하였습니다.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있는 어느골방에 숨었습니다.
a.아벡에서의 전투(왕하13:17)
b.골방에 숨음(대하18:24)
3. 아합에 대한 심판예언
1) 교만에서 기인된 아합의 실책
벤하닷의 신복들은 벤하닷에게 항복을 하여 자비를 구하라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신복들이 참회하는 복종의 표시로서 굵은베와 테두리를 하고 아합에게 찾아갔습니다. 아합은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벤하닷을 자신의 형제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벤하닷이 아합에게 오자 아합은 우정의 표시로 그를 자기의 병거에 태웠습니다. 이에 벤하닷은 아합에게 자기부친이 빼앗은 모든성읍들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또한 다메섹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주하는 거리를 만들어 무역을 할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벤하닷은 아합과 약조를 한후 아람으로 되돌아갔습니다.
a.굵은 베옷(삼하3:31)
b.벤하닷이 빼앗은 성읍(왕상15:20)
2) 아합에게 내릴 심판의 예언
선지자의 무리중 한사람이 친구에게 자기를 치라고 할때 그친구가 거절하자, 여호와께 불순종한 죄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후 다른친구에 의해 부상을 당한 선지자는 부상당한 병사처럼 변장하여 아합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수로 포로 한명을 놓치게 되었다고 아합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즉시 그사람의 죄를 평가하였습니다. 이는 태만죄에 해당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선지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태만히 행했음을 책망하였습니다. 즉 벤하닷을 죽이지않은 아합의 실책을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선지자는 아합에게 임할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벤하닷대신 아합이 죽게될 것이고 아람사람 대신 이스라엘백성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아합은 근심된 마음을 갖고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a.변장(삼상28:8)
b.왕궁으로 돌아온 아합(왕상21:4)
결론
아합은 아람왕 벤하닷과의 전쟁에서 전적인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승리의 배경에는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당신을 입증시키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이를 깨닫지못하고 오히려 적군인 벤하닷을 살려주는 어리석은 실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아합에게는 그의 불순종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의 심판만이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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