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영광 (김희보 前 총신대 신대원 교수)

요셉이 비록 감옥에 갇힌 몸이 되었지만 그런중에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그에게 임한 모든 환난이 오히려 그에게 유익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창41장을 중심으로 해서 이제부터 그의 앞길이 어떻게 형통했으며 그가 어떻게 애굽의 큰 주권자인 재상이 되었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창40-41장에 보면 거기에 꿈 이야기 두개가 있다. 하나는 옥중에 갇힌 애굽의 두 관원장이 본 꿈이요, 다른 하나는 그후 애굽의 바로왕이 꾼 꿈이다.
먼저 옥중에서 되어진 일이다. 어떤 아침 감옥에 갇히 두 관원장이 근심하며 수심에 잠겨 있었다. "당신들이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요셉이 물었다.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성경 본문에 자세히 기록된대로 요셉은 그 꿈을 해석해 주었고 그 꿈 그대로 떡 맡은 관원장은 죽었고 술 맡은 관원장은 해방되어 다시 복직하게 되었다. 창 41장에 보면 그로부터 만 2년후 바로왕이 또 한 꿈을 꾸게 되었다.
본문에 기록된대로 꿈에 그가 나일강 가에 섰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찐 일곱 암소가 강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그 아름답고 살찐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후에 또 가늘고 약하고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것들이 오히려 무성하고 충실한 이삭들을 삼킨지라"
이 꿈은 바로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는 애굽의 지혜있는 자들을 다 불러들였으나 그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 그 꿈의 뜻은 온 천하에 7년간의 큰 풍년이 있고 다음 7년에 또 큰 흉년이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제서야 술 맡은 관원장이 잊어버렸던 옥중의 요셉을 생각했다. 요셉은 그 꿈을 해석했다. 이로써 그는 바로왕의 사랑을 받아 드디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창41:38 이하에 보면 바로의 말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또 계속하는 말이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놓음이 오직 보좌 뿐이니라 내가 너로 애굽의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면서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고 세마포 옷을 입혀 바로의 수레에 그를 태우고 온 백성이 엎드리게 했다고 했다. 이 사실은 애굽의 왕이 요셉에게 그의 전권을 이양한 것임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처럼 요셉은 전무후무한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 사건 자체보다도 그 배후에 숨은 성경진리 한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곧 본문 배후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상주권과 그의 섭리라고 할 것이다.

본문 창41:7~8에 보면 "바로가 깬즉 꿈이라.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하는 말이 있다. 꿈을 꾸고 난 바로의 마음을 그렇게 번민케 한 자는 누구인가? 온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는 그 마음을 그처럼 고민케 한 자는 누구겠는가? 잠언 21:1에 보면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으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다고 했다. 마치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주장하시기를 봇물과 같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쏟을수도 있다고 했다. 잠언에는 왜 사람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다고 하지 않고 "왕의 마음" 이라고 했겠는가? 그것은 왕의 주권보다 더 높으신 만왕의 왕이 되신 하나님의 주권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말은 성경 다른 곳에도 있다. 에스더 6:1에 보면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 읽게 하더니"라고 하신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유명한 바사왕 아하수에로가 유대인 모르드개와 그의 백성 유대인들을 전부 학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바야흐로 그것을 실천하려는 찰나에 어떻게 그들을 구원하게 되셨던가 하는 동기를 말해주는 것이다. 만일 이때 아하수에로왕이 잠이 들었다면 모르드개와 온 유대인들은 벌써 다 전멸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날 그 밤따라 왕에게는 잠이 오지않게 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요컨대 천하를 호령하는 이 왕들로 하여금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잠이 들어 꿈을 꾸게도 하고 그들의 마음을 번민케도 하고 괴롭게도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는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으로 인도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바로왕으로 하여금 꿈을 꾸고 번민케 하심으로 드디어 그로 하여금 요셉을 찾게 하고, 요셉을 사랑하게 했고, 요셉으로 하여금 드디어 애굽의 재상의 자리에 오르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권세를 잡은 왕의 마음만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령(악한 마귀)들을 주관하시면서 요셉을 어떻게 보호하신 것을 오늘의 본문 또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제 이 사실을 생각해 보자. 먼저 마귀 사탄은 보디발의 아내를 통하여 요셉을 유혹하려 했고 또 범죄케 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지 못하게 하려 했다. 요셉을 넘어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사탄은 그의 계획이 실패되자 이번에는 그를 감옥에 넣도록 했다. 그것으로 요셉을 망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창 39:21에 보면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매"라고 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사탄의 행동은 중지하지 않았다. 요셉이 감옥 안에서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고 그것이 그대로 성취됐을때 요셉은 더욱 유명해졌다. 술 맡은 관원장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그러나 그 관원장이 감옥에서 나온 후에 사탄은 그로 하여금 요셉을 잊어버리게 했다. 분명히 창40:23에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치 않고 잊었더라"고 했다.
그렇게 기뻐하던 관원장이 어떻게 요셉을 잊어버릴 수 있었겠는가. 만일 그가 요셉을 잊지않고 기억했더라면 그는 요셉을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그러한 권세가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요셉은 그렇게 해주기를 그 관원장에게 청원했던 것이다. 창40:14에 요셉이 그 술 맡은 관원장에게 청하기를 "당신이 나가서 출세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감옥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만한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그 관원장에게 요구한 청원이었다. 그러나 사탄은 관원장의 마음에 역사하여 요셉을 기억치 못하게 했고 잊어버리게 했다. 그렇게 함으로 요셉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두려 했다. 이것은 분명히 요셉에게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후일의 역사를 보면 이것까지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가. 그때에 만일 그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고 곧 그를 감옥에서 나오게 했더라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그가 만일에 자유의 몸이 되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면 요셉은 애굽에 머물지 않고 그곳을 떠났을 것이다. 당시의 교통이나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서 바로는 다시 요셉을 찾을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바로가 꿈을 꿀때까지 요셉이 감옥에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필요한 일이요, 유익했던 일인지 모른다.
사탄이 요셉의 발에 영원한 쇠사슬을 묶어 감옥에 가두어 두려했던 바로 그 시간 그때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악을 다스리는 방법이요, 사탄의 계획을 지배하는 방법이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모든 것이 합하여 유익케 되도록 섭리하신다. 이렇게해서 마침내 요셉은 애굽의 위대한 재상이 된 것이다. 영광의 권좌에 오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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