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믿음의 본질 (11:1-3절)
1. 믿음의 은혜에 대한 정의를 두 가지로 내리고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1절). 믿음과 소망은 병행하며 우리의 믿음의 목표와 소망의 목표는 동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사실은 확신을 갖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신자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육체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것들의 실체를 마음의 눈으로 보게 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믿는 자들에게 영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주어지는 것이다.
2. 믿음을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명예를 설명한다(2절). 진정한 믿음은 오랜 역사를 지닌 은혜이다. 이것은 어제 오늘 생긴 것도 아니며 현대에 생긴 환상도 아니다. 이 세상에 살았던 선진들과 가장 훌륭한 위인들은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명예를 얻었고 또 그들의 믿음이 그들을 명예롭게 하였다. 믿음은 그들로 하여금 좋은 기록을 남길만한 일을 하게하는 동인이 되었다.
3. 여기에 믿음에 대한 첫 항목이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세계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을 알게 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 세상은 선재해있던 어떤 물질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무에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3절). 믿음의 은혜는 장래에 대한 안목 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한 통찰력도 가진다. 따라서 믿음으로 이 세상의 마지막이 어떠할 것인지를 알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면 믿음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알려 주는가? 첫째, 이 세상은 영원한 것도 또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도 아니며 누구에 의해서인가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또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넷째, 이 세상은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우리는 믿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Ⅱ. 믿음의 선구자들-1 (11:4-31절)
사도는 이제 구약 시대에 믿음을 굳게 지켰던 사람들의 예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들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이름이 언급되고 동시에 그 사람의 개인적인 믿음의 역사도 기록된 사람들이 있다. 둘째, 이름만 언급되거나 이름도 거의 기록되지 않고 그들의 믿음의 사역만 일괄적으로 처리된 사람들이 있다.
1. 아벨의 믿음(4)
가장 먼저 나온 믿음의 예로서 아벨의 믿음을 들었다. 그가 믿음으로 살고 믿음을 위하여 죽었기에 본받기에 적절한 모범을 아벨로부터 시작했다.
1) 그는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손들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인간은 타락한 후에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만 했다. 가인이 장남이었으나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신 것은 아벨이었다. 사람을 진정으로 영광되게 하는 것은 태어난 순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이다. 아벨은 속죄의 희생 제물을 양떼 중에 첫 새끼를 드림으로 바쳤다. 가인은 희생 제물을 알았지만 오직 감사제만을 '땅의 첫 소산'으로 바쳤다.
2) 아벨이 그의 믿음을 통하여 얻은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아벨이 그의 믿음에 의해 특별한 유익을 얻은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물을 받았다는 증거를 하심으로 아벨의 인격이 의로움을 증거하셨다. 저가 죽었으나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그는 후세에 길이 기억될만한 교훈을 남기는 영예를 얻었다. 그가 남긴 교훈의 내용은 무엇인가? 타락한 인간도 하나님께서 용납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형벌을 받지 않고 남은 자기 백성들을 해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들의 고난에 대해 방관만 하시지 않으실 것이란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2. 에녹의 믿음(5-6)
1) 본문에서 그에 대해 기록된 사항 : 첫째,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둘째,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다.' 즉 지상 어느 곳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셋째, '에녹은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 에녹은 자기 자신의 양심 가운데 그러한 증거를 지니고 있었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의 심령에 증거하셨다.
2) 그의 믿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6절)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생한 믿음이 없는 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찾을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정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그를 '부지런히 찾아야만 한다.' 그리하여 일단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용서를 얻게 된다면 하나님을 찾는데 바쳤던 노고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3. 노아의 믿음(7)
1) 노아의 믿음의 근거는 그가 아직 보지 못한 일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경고였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치기 전에 경고를 하신다. 이때 그의 경고를 무시하여 경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더욱 중한 벌을 내리신다.
2) 노아의 믿음의 행위 및 그의 마음과 행실에 끼친 믿음의 영향 :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경외함으로' 받았다. 믿음은 먼저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다음에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준다. 믿음은 어떤 문제에 대한 반응이 적절하게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마음에 작용한다. 만일 그것이 좋은 것을 심어주고 그것이 나쁜 것이라면 믿음은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킨다. 노아의 믿음은 그의 행실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두려움은 방주를 예비케 하였다. 그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일하게 하였다.
3) 노아의 믿음에 대한 보상 : 첫째, 그가 믿음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이 멸망을 당할 때 그와 그의 집은 구원을 얻었다. 둘째, 이 믿음으로 노아는 이 세상을 심판하고 정죄하였다. 이 좋은 모범은 죄인들을 회개케 하거나 정죄한다. 이것은 믿음의 백성이 악한 사람을 정죄하는 가장 좋은 경우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악인을 정죄하는 데는 욕설이나 거친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본이 되는 생활로 그들 스스로가 정죄를 받게 하는 것이다. 셋째, 노아는 믿음을 쫓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7절). 그는 참된 의를 소유하게 되었으며 의의 후사가 되었다.
4. 아브라함의 믿음(8-9)
그는 하나님께 친구라 불리웠고 믿음의 조상이며 모든 히브리인이 자랑으로 여기는 인물이었다. 사도는 다른 어떤 조상들보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위대한 업적을 상술하였다.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하는 중에 사라의 믿음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1) 아브라함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이다. 첫째, 그를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시었다. 그리고 이 부르심에 순종함으로써 그는 자기 아비의 집의 우상 숭배로부터 거듭나게 되었다(창 12:1).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리 극악한 죄인에게도 완전히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이전에 우리에게 오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로 죄 뿐만 아니라 악한 친구들로부터도 떠나도록 하신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 : 하나님께서는 그가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명하신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유업으로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후사로 부르신다. 비록 그들은 이 유업을 즉시 소유하지 못했지만, 그 약속은 확실하다.
2)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행 :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곳으로 어디든지 이끄시기만을 바랬다. 순종케 하는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뜻과 지혜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따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자기의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자기를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저는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였다.' 이것이 그의 믿음의 행위였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나그네처럼 살았다. 또한 그는 자기와 같은 약속의 후사인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 이 약속은 신자와 그의 자녀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모와 자녀들이 하늘의 유업의 상속인으로서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3) 아브라함의 믿음을 지탱해 준 것은 그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랬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늘나라의 도성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성을 바랬다. 그는 이곳을 기다렸고 또한 적당한 시기가 오면 그 곳에 도달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이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온갖 고초 속에서도 그를 지지해 주었던 것이다.
5. 사라의 믿음(11,12)
1) 사라의 믿음의 시련 : 그녀는 잠시동안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웃었던 불신의 마음이 있었다. 그녀가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약속은 사실 매우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었다.
2) 사라의 믿음의 행위 : 그녀의 불신앙은 사죄와 용서를 받았다. 그녀의 믿음은 장성해졌고 성경에 기록되게 되었다.
3) 그녀 믿음에 대한 보상 : '그녀는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버린 태에 자식을 생산할 힘을 주시듯이, 죽어버린 영혼을 살려 열매 맺게 하실 수 있다. 사라는 약속의 아이를 얻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아이를 통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얻었다.
6. 다른 족장들의 믿음(13-16)
1) 그들의 믿음의 시련 : 그들은 약속된 것을 아직 받지 못했다. 지상에 사는 성도들의 현재 상태에 불완전은 그들의 행복이 현세의 쾌락과 많은 재물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저 세상에서 실현되는 것임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2) 그들의 믿음의 행동 : 그들은 그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① 그들은 약속된 것을 멀리서 보았다. 믿음은 정확한 시력을 지니고 있어서 매우 멀리서도 그 약속된 복을 바라볼 수 있다.
② 그들은 그 약속이 참되며 반드시 성취되라는 것을 믿고 추구하였다.
③ 그들은 그 언약을 붙들었다. 믿음은 긴 팔을 가지고 있어서 멀리서도 그 복된 것을 움켜 잡을 수 있다.
④ 그들은 자신들을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 증거하였다.' 그들은 천국에 본향을 둔 나그네였다. 그들은 본향을 향하여 긴 여행을 하는 순례자와 같았다.
⑤ 이로써 그들은 다른 나라, 즉 그들의 본향인 하늘 나라를 목표 삼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였다.
⑥ 그들은 자기들의 신실성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그들은 떠나온 나라에 대하여 그리워 하지 않았다. 구원에 이르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과거의 죄된 상태를 마음에 두지도 않으며 그때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지도 않는 법이다. 그들은 그때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을 알고 있으며 그 일들을 소망하고 있다. 그들은 다시 돌아가고자 도모하지 않으며 반대로 하나님을 향하여 꾸준히 전진한다.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을 꾸준히 따름으로 우리의 믿음과 고백이 참된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의 신실성은 두고온 나라로 돌아가지 않는데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즉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데에서 나타났다. 모든 진실된 신자들은 더 좋은 나라를 소망하는 것이다. 믿음이 더욱 강할수록 이러한 소망도 더욱 강렬해진다.
⑦ 그들은 이 약속들을 믿으며 죽었다(13절). 그들은 마지막 죽는 날까지 믿음을 지켰다.
3) 이들의 신앙에 대한 은혜로운 보상 :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6절).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워지셨으며,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르도록 허락하셨으며 또한 그들에게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멸시를 당하든지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 백성을 위하여 한 성을 마련하셨다. 이 성은 그가 그들과 관계를 유지하는데 적합한 행복한 곳이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지 못하거나 주시지 않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으로 불리우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셨을 것이다.
7.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재언급(17-19)
사도는 다른 여러 사람들의 믿음에 대하여 일괄적으로 설명한 다음에 다시 아브라함에게로 돌아가서 그 누구에게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최대의 시험과 이에 따르는 믿음의 행위의 본보기를 말한다. 그것은 그가 이삭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사실이다(17절).
1)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련 :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다. 이 시련은 그 어느 것보다 큰 것이었다. 그는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네 아들, 사라에게서 난 네 외동 아들 이삭을 바쳐라 곧 네게 웃음을 주며 네 기쁨과 즐거움인 네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거기다 두고 올 뿐만 아니라 번제로 바쳐라"라고 명하셨다. 여기서 이 시험이 대단히 큰 것임을 나타내기 위한 몇가지 사실이 덧붙여진다. 그 첫째는 아브라함이 언약을 받은 후에 이 시험을 받았다는 것이다(18절). 자기의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은 그에게 있어서 자기 자손을 끊고 하나님의 약속을 취소한다는 선언으로 보였다. 이삭은 그의 아내 사라에게서 난 외동아들이었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유일한 자손이었다. 그는 이 아들에게 온갖 사랑을 쏟고 있을 뿐 아니라 그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었다. 따라서 만일 그가 죽으면 자기도 죽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아들을 희생 제물로, 그것도 자기의 손으로 드려야 했다. 이 시험이야말로 아무리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도 넘어질 수밖에 없는 시험이었다.
2) 이렇게 큰 시험 중에서 보여준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 : 아브라함은 순종하였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을 죽이기 직전까지 나갔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를 저지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아들을 죽였을 것이다.
3) 그의 믿음을 저지한 것(19절) :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을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렇게 하시리라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죽은 자를, 곧 죽은 육과 영혼을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시다.
4) 이 큰 시험을 이긴 그의 믿음에 대한 보상(19절) : 그는 자기 아들을 다시 돌려 받았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을 다시 돌려 받았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으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돌려 주셨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음에 내어 주었기 때문에 이삭을 죽음으로부터 되돌려 받았다.
8. 이삭의 믿음(20)
1) 이삭의 믿음의 행위 :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믿음으로 자기의 두 아들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였다. 야곱과 에서는 둘 다 이삭의 아들로서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야곱이 장자권과 아울러 장자권에 속하는 축복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의 물질적인 몫을 받고, 또 어떤 사람은 더 좋은 세상의 복을 얻는다. 그 차이를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2) 이삭의 믿음이 갈등을 겪어야 했던 어려운 문제들 : 이삭은 그의 아들들이 출생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행하시고자 하는 뜻을 정하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창 25:23). 그래서 그는 그가 잘못하여 야곱에게 축복한 사실을 알고 '크게 떨었다'(창 27:33). 그리고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사실을 책망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야곱의 축복을 승인하였다. '내가 야곱을 위하여 축복을 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제 이러한 이삭의 믿음은 그의 불신앙을 극복하고 믿음을 더욱 성숙시켰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연약한 상태를 거쳐 이처럼 신실한 믿음을 지니게 된 것을 기뻐하셨다.
9. 야곱의 믿음(21)
야곱의 믿음에 대한 예는 대단히 많다. 그의 생은 믿음으로 점철된 생이었다.
1) 그의 믿음의 행위.
①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였다. 야곱은 마치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자기의 아들들인양 그들로 각각 지파의 머리가 되게 하였다. 이삭이 전에 맏아들을 더 사랑한데 비해 야곱은 므낫세보다 그의 동생인 에브라임을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오른손이 형인 므낫세에게 얹어질 수 있도록 그들을 앉혔으나 야곱은 그의 오른손을 에브라임에게 얹었다.
② '야곱은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금까지 베푸신 일과 또한 하나님께서 앞으로 자기에게 행하실 축복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는 지팡이를 의지하지 않고는 침상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몸이 허락하는 한, 자기의 정신이 허락하는 한, 하나님께 경배를 하려고 하였다.
2) 야곱이 이러한 행위를 행한 때는 그의 임종시였다. 그는 믿음으로 살았으며 또한 믿음에 의해서 믿음 안에서 죽었다.
10. 요셉의 믿음(22)
1) 그의 믿음으로 행한 내용들 : 요셉은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게 되는 구원의 시기가 오리라는 것을 예언하였다. 비록 그는 살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그러한 믿음 가운데서 죽었다. 그는 자기의 뼈를 애굽에 묻지 말고 보존하라는 유언을 하였다. 그는 비록 애굽 땅에서 살다가 거기서 죽었지만 애굽인으로 살거나, 애굽인으로 죽지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인의 정신을 지켰다. 그는 애굽에서의 장엄한 장례보다는 가나안에서 묻히는 그 깊은 의미를 택하였던 것이다.
2) 요셉이 믿음으로 위와 같은 모습을 보였던 때는 그가 죽을 때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그들의 임종시에도 생생한 위로를 주신다.
11. 모세의 부모들의 믿음(23)
1) 그들의 믿음의 행위 : 그들은 그들의 아들을 석달 씩이나 감추어 두었다.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박해를 받았으며 숨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리스도도 태어나자마자 박해를 받고 그의 부모들은 박해를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2)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 : 의심할 것 없이 본능적인 마음이 그런 행동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으나 여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그 아이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 아름다움은 범상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내리신 아름다움이었다. 간혹 인간의 용모는 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 주기도 한다.
3) 두려움을 극복한 그들의 뛰어난 믿음 : 그들은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사실과 때가 오면 이스라엘 백성을 생명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고 있었다. 이같이 어떤 이들은 그런 일을 감당할 그들의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목숨이 위기에 처하는 것도 감내해야 했다. 믿음은 인간의 죄의 결과로 오는 두려움을 막아주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12. 모세의 믿음(24-28)
1) 세계를 정복한 모세의 믿음.
①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였다. 공주는 모세를 양육하였고 그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뿌리쳤다니 얼마나 영광스런 믿음의 승리인가.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것을 거절하였다. 이는 그가 모든 신자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진정한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또 그것이 자신의 이스라엘과의 관계와 신앙 태도에 대하여 오해를 불러 일으킬까 우려해서 그랬던 것이다. 만일 그가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명예를 용납하였다면 그는 자기 신앙을 버리고 또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절해야만 했을 것이다.
② 모세는 비록 고난을 받더라도 기꺼이 하나님의 백성과 운명을 함께 하고자 하였다(25절). 이같이 모세는 신앙적으로 행동했을 뿐 아니라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죄를 즐기는 자는 속히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이 속히 이를 것이다. 이 세상을 즐기는 것, 특히 이 세상의 궁궐을 사랑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죄를 사랑하는 것이다. 진정한 신자는 그런 쾌락을 경멸하고 멀리할 것이다. 또 죄보다는 차라리 고난을 택할 것이다. 가장 큰 고통보다도 가장 작다고 할 수 있는 죄의 결과가 더 무서운 법이다.
③ 모세는 이 둘을 저울질 하였다. 저울 한쪽에는 신앙을 가질 때 받아야 하는 극한 비참함, 즉 '그리스도를 위해 받아야 할 능욕'을 올려 놓고 또 다른 쪽에는 '이 세상의 가장 큰 영화' 즉 '애굽의 모든 보화'를 올려 놓았다(26절). 그런데 가장 큰 괴로움을 겪어야 할 신앙 쪽이 세상의 가장 큰 영화보다 무거웠다. 하나님의 교회를 능욕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능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예나 지금이나 능욕을 받는 백성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받는 능욕을 자신이 받는 것으로 여기신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이 받는 능욕에 함께하시는 반면 그들은 부요하게 될 것이다. 믿음은 이런 사실을 분별해 낸다. 그리고 이런 분별에 따라서 행동을 취한다.
2) 모세가 그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겼던 시기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24절). 그는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나이이며 경험도 쌓은 사십 세가 되었다. 모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이며 왜 그 일을 하는지 판단할 수 있으며 또한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성숙한 때 이런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어린 미숙한 아이의 결정이 아니고 성숙한 사고에서 나온 결단이었다.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조건이 주어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경멸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고귀한 것이다.
3) 모세의 이런 믿음을 지지하고 강화시켜 주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는 '상 주심을 바라 보았기' 때문이다. 신자는 이러한 보상에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관심은 천국으로 행하는 길을 제시하는 등대요, 마음을 이끄는 자석이며, 새 힘을 불어넣어 주는 강심제이다.
4) 모세의 신앙에 대한 또 다른 예가 있다.
① 그의 신앙의 결단 : 그는 '애굽을 떠났다.' 모세는 두 번 애굽을 떠났다. 첫 번째 그가 애굽을 떠난 것은 어떤 애굽인을 죽이므로 애굽왕의 격노를 샀을 때이다. 그는 이때 범인의 누명을 쓰고 애굽을 떠났다. 두 번째 애굽을 떠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서 바로의 기세를 꺾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수밖에 없게 만드셨을 때였다. 이때 그는 이스라엘의 지휘관으로 떠났다.
② 그의 믿음의 승리 : 그의 믿음은 왕의 진노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게 하였다. 애굽을 떠나려는 사람들은 애굽인들의 격노를 예상해야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③ 이러한 믿음의 행위를 가능하게 한 동기 : 이에 대하여 성경은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실존과 우리와 더불어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롭고 능력있는 현존을 확신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믿는 자로 하여금 도중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목적을 향하여 인내할 수 있도록 하여 준다.
5) 모세의 믿음에 대한 또 다른 예가 수록되어 있다(28절). 유월절은 구약의 절기 가운데 가장 엄숙한 것이며 가장 의미 심장한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이 놀라운 은총을 얻기 위하여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우슬초단에 묻혀서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야 했다. 그리스도는 이 양이시다. 그는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신 것이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셨다. 그의 피가 뿌려져야 했다. 그래서 그 피가 구원의 은혜를 입고자하는 모든 사람에게 효력을 발생해야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의 본래적인 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그의 의에 힘입어서이다. 이 보혈이 역사하는 곳에서 사람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며 그에 힘입어 살 수 있게 된 우리에게 주어진 이런 모든 은사들은 우리로 이 세상의 속된 것을 일찌감치 버리게 하며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을 재촉하도록 독려한다.
13. 홍해 앞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29)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지도를 받으며 홍해를 건넜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와 그의 군대들을 피할 다른 방도가 없을 때 믿음으로 홍해를 안전하게 통과하였다. 당시 그들이 처한 위험은 대단히 큰 것이었다. 그들의 구출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믿음의 은혜는 천국으로 가는 동안 도중에서 만나는 모든 위험을 통과하도록 우리를 보호하여 준다.
2) 애굽인들의 파멸 : 그들이 경솔했던 만큼 그들의 파멸도 매우 비참하였다. 죄인들이 자기의 파멸을 스스로 자초한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14.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30)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지도를 받아 여리고 성벽 앞에서 보여준 믿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 사건은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다(수 6:5이하).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사용하신 방법은 무엇이었던가? 하나님께서 내신 방법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은 큰 시험을 당하였다. 그 방법은 목적을 달성하기에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전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작고 하찮은 방법으로 큰 일을 행하시기를 즐기신다. 그들이 여기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법으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여리고 성벽은 그들 앞에서 무너졌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반대 세력을 정한 시간에 따라 차례차례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강력한 요새를 무너뜨리심으로 신자들의 믿음을 강력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실 때는 그 일을 통하여 그들에게 크고 튼튼한 믿음이 일어나게 하신다.
15. 라합의 믿음(31)
1) 라합은 어떤 여자였던가? 라합은 가나안 여자이며 '이스라엘의 분깃에 대하여서는 이방인'이었다. 따라서 신앙의 성장을 위한 도움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신앙인이었다. 또 그녀는 기생이었으며 죄 가운데서 살던 여자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인 중에 괴수라도 용서하신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는 더욱 풍성한 것이다.'
2) 믿음으로 라합은 무슨 일을 하였는가? '라합은 정탐군을 맞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적들로부터 그들을 숨겨 주었으며 그들에게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였다. 참된 믿음은 선행으로 나타나며 특히 하나님의 백성과의 교제 속에서 더욱 그러하다. 또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과 그 백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선행을 한다. 그리고 참된 신자라면 하나님의 언약에 들기 위하여서 뿐만 아니라 그 백성과 교제를 나누기 위하여서도 큰 열심을 품는다.
3) 라합은 믿음으로 무엇을 얻었는가? 그녀는 불신자들과 함께 망하는 것에서 구원을 받았다. 무너진 여리고 성내에는 사람과 짐승이 모두 멸절되는 철저한 파멸이 엎쳤다. 그러나 표식을 붙여놓으므로 라합의 집에는 구원이 임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군대에게 라합과 그 집은 해치지 말도록 엄중한 명령을 내렸다. 모든 세대가 불신하고, 신자를 핍박하는 상황에 한 명의 신자가 처해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억하시고 그 세대에 모두 멸망하는 자리에서도 그를 구원하신다.
Ⅲ. 믿음의 선구자들-2 (11:32-40절)
사도는 이제 다른 부류의 신앙인들을 요약하는 형태로 소개하므로 자신의 설명을 종결짓는다. 사도는 이 부분을 매우 훌륭하며 설득력있는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32절). 우리는 구약에 얼마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었고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굳건했는가를 생각할 때마다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믿음의 법도가 완전하고 확실하게 드러난 복음의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에 비하여 믿는 자의 수효가 너무나 적고 믿음도 또한 연약함을 보고 슬프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1. 사도들은 몇몇의 믿음의 인물들을 요약의 형태로 언급하고 있다.
1) 기드온 :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구하시기 위하여 세우신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미디안의 모든 군대를 혼란과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
2) 바락 : 바락은 믿음으로 시스라의 모든 용사들을 물리치고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3) 삼손 : 만일 삼손이 그의 강한 힘 못지 않은 강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그는 결코 그렇게 큰 공을 세우지 못하였을 것이다. 참된 믿음은 많은 실패를 수반할지라도 하나님께 열납된다. 믿음을 끝까지, 곧 죽기까지 지키면 죽음도 극복하며 죽이려 덤비는 모든 원수들도 제압할 수 있다. 신자의 가장 큰 승리는 죽음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4) 입다 :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많은 새로운 적들이 출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퇴치할 여러 명의 새로운 구원자들을 세우셨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아주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세워서 위대한 일을 수행케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또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신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었다. 믿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서원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아 그 서원한 것을 지키게 한다. 즉 입다와 그 딸의 경우와 같이 서원한 내용이 그들에게 큰 슬픔이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서원을 지키게 해 주는 것이다.
5) 다윗 :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위대한 인물이었다. 다윗만큼 큰 시련을 당한 사람도 드물었고 아름다운 신앙을 지닌 사람도 드물었다. 변하지 않는 유일한 믿음이 다윗으로 하여금 언제나 성공하고 승리하는 왕이 되게 하였으며, 비록 죄로 얼룩진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영광된 삶을 오랫동안 누린 후에 믿음 가운데서 죽었다. 또한 그는 자기가 당한 시련과 믿음이 행위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시편에 수록하여 후세에 전하므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유익을 주었다.
6) 사무엘 : 그는 이스라엘의 치리자인 동시에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의 어린 시절에 그에게 나타나셨고 그가 죽는 날까지 함께 하시며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
7) 사도는 사무엘을 언급한 후에 '및 선지자들'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특이한 일을 맡기기 위하여 세우신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하나님의 자비를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죄를 책망하는 것은 언제나 그들의 사건을 예언하기도 하였는데 그 놀라운 사건이란 주로 장차 올 메시야에 대한 내용이었다. 따라서 선지자 같은 직분을 올바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되고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했다.
2. 다음에 사도는 이 사람들의 믿음으로 행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곧 하나님께서는 종종 자기 백성들의 믿음에 설득 당하시곤 하셨던 것이다.
1) '이들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였다'(33절) 세상 나라와 그 왕들이 추구하는 이익과 권세는 종종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대적하는 나라와 그 왕들을 쉽게 굴복시키실 수 있으시다.
2) 그들은 '의를 행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이 믿음은 그들로 의로운 행동을 하도록 하였다.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의를 행하는 것이 훨씬 더 복된 일이다.
3) 그들은 '약속을 받았다'. 이같은 믿음으로 우리는 약속을 기다리며 때가 되면 그 약속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4) 그들은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였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사나운 짐승이건 야만적인 인간이건 항상 이기도록 해주신다.
5) 그들은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였다'(34절). 이런 일을 한 사람은 연약한 세 명의 소년들이었다. 아니 소년들이라기 보다는 믿음의 용사들이었다(단 3:17-27). 사실 이들 세 사람이 당한 믿음의 시련은 누구도 겪지 못했던 가장 혹심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그 믿음 또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내리신 믿음의 보상 또한 지극한 것이었다.
6) 그들은 '칼날을 피하기도 하였다'. 인간들의 검은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있다. 믿음은 인간의 검을 쥐고 있는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과 같다.
7) 그들은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되기도 하였다'. 영적으로 연약해진 사람을 강건케 해주는 것도 믿음의 은혜이다.
8) 그들은 '전쟁에 용맹하였다'. 참된 믿음은 참된 용기와 인내를 준다. 또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게 해 줌과 동시에 대적자들의 연약함을 간파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용맹했을 뿐만 아니라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에 대한 보상과 격려로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게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의 신실한 종들의 면전에서 파하여 물리치셨던 것이다.
9)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였다'(35절). 많은 나약한 여자들이 믿음으로 강건함을 얻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잃고 슬픔에 젖어있었던 여인들에게 그 자녀들을 소생시켜 주심으로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3. 사도는 이렇게 훌륭한 신앙의 선진들이 믿음으로 견딘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려 하지 아니하였다'(35절). 그들은 모진 악형을 받으면서도 비굴한 석방을 원치 않았다.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는' 기대와 소망이었다. 그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만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견뎌냈다'(36절). 그들은 조롱을 받아서 그들의 명성이 훼손당하는 핍박을 받았다. 이것은 순전한 양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채찍보다 더욱 심한 것이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노예에게 가해지는 형벌의 채찍을 맞았고 어떤 이들은 '결박과 옥에 갇히는 일을 당했다'. 그들은 또한 아주 참혹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원수들은 온갖 잔인한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을 죽였으나 그들은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견뎌냈다. 죽임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그런 삶을 살 바에는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그런 비참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이같이 그들의 원수들은 단지 그들의 비참함을 연장시키기 위하여 그들을 남겨두었던 것이다(37,38). 그들은 믿음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겪었고 또 믿음으로 이런 고통을 견디어 냈다. 우리는 이런 무서운 핍박을 가하는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따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견고케 하시고 또 그런 핍박 중에서도 믿음의 손상 입음이 없이 무사히 빠져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해야 할 것인가?
4. 그들은 믿음으로 무엇을 얻었는가? 첫째, '이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명예로운 칭찬'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것이다. 즉 세상은 결코 그러한 축복을 받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은 공의를 수용할 자격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세상은 그렇게 의로운 사람들을 감당치 못한다고 선언하셨다. 둘째,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39절). 그들은 선한 모든 사람들과 진리 자체에 의해 증거를 받았다. 셋째, 그들은 비록 이 땅에서 약속받은 좋은 것들을 받지 못했으나 약속에 대한 참여권은 부여받았다. 그들은 아직 본체는 보지 못하였으나 그림자는 지니고 있었다. 이런 불확실한 섭리 아래서 그들은 그처럼 빛나고 고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도는 그들의 신앙을 더욱 빛나는 것으로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였다'고 말한다(40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더욱 선한 일을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사도는 말한다. 신약의 성도들의 믿음은 구약의 성도들의 믿음보다 더욱 완전해야 한다. 이는 복음으로 인하여 현재의 섭리는 구약의 섭리보다 더욱 명확하여지고 완전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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