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써 세운 빌립보 교회에 복음의 적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적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혀 있지는 않으나 바울은 그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기독교인들을 유대교화 하려는 율법주의자들과, 스스로 교만하여 반역에 이르는 자들이었고 자기 욕심에 배를 채우려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거짓 가르침과 잘못된 가르침에 바울은 눈물을 흘리며 반박하며 빌립보 교회의 온전함을 위하여 애쓰고 있다.
1. 바울의 믿음(빌3:1-11)
바울은 서신을 끝맺으려 하면서도 기독교인들을 유대교화 하려는 자들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바울의 반복적인 가르침이 왜 중요한가? 죄악을 행하는 자들, 손할례당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바울의 자랑거리는 무엇인가? 그러나 이 자랑거리를 바울은 어떻게 여기며 바울의 원하는 바는 무엇인가?
1) 주 안에서 기뻐하라
우선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며 격려하고 있다. 이 격려는 고난 받는 교회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바울은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반복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로 여겼다. 그러나 바울은 기독교인을 유태교로 개종시키려는 유대인들을 '개, 행악하는 자들, 손할례당' 이라며 3번씩이나 반복 강조하여 역으로 유대인을 공격하였다. 그는 자신에 대해 자신만만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겼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 비하면 배설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면 먼저 자신의 인간적인 자랑을 버려야 하며, 그 다음에는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얻고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2) 복음만 전파하라
바울이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잇는 것은 바로 기독교의 유대교화에 대한 경고이다. 현대에는 이런 위험이 사실상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종족, 문화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유대인 이상으로 교만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근대 유럽의 선교사들은 복음 보다는 서구화를 제3세계에 전달하려다가 실패하였다. 또 우리도 개발이 덜 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일부 민족들에게는 민족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 이런 민족우월주의, 개인 우월주의를 버리라고 바울은 가르치고 있다.
2. 푯대를 향하여(빌3:12-16)
이 부분은 빌립보 교회의 또 다른 문제점을 암시해 주고 있다. 유대교화 하려는 자들 외에 또 다른 종류의 빌립보 교회내의 적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에 대한 변증을 바울은 어떻게 하였는가? 바울은 완전주의자인가? 그리고 바울의 푯대는 무엇인가?
1) 그리스도를 좇아라
그닐카(J.Gnika)에 따르면 빌립보 교회 내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에 도달하였다고 주장하며 도덕적으로 방종한 무리들이 생겨났다고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목표에 도달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바울 자신은 아직 도달하지도 않았고 온전히 이루지도 않았다고 역으로 반박한다. 빌2:12의 바울의 논증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께 잡힌바 되었다. 이것을 염두에 둔 바울은 그리스도를 잡기 위해 좇아간다. 이는 결코 조급함과 불안의 표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의미한다. 바울은 완전을 향해 나가 완전을 이룬 자는 아니다. '온전히 이룬 자들'(빌2:15)을 바울은 조롱의 의미로 불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 교회 내의 '스스로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 더 과격하게 책망하지 않는다(빌2:16). 왜냐하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칫 방종으로 빠지기 쉬우므로 또 바울이 가르친대로 살아갈 것을 권유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바울의 푯대는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을 위해 계속 전진해 나가는 것이다.
2) 성결의 삶
간혹 교회 내에 스스로 '믿음의 도'에 이른 것처럼 행동하며 다른 이들의 믿음을 경히 여기는 무리들이 있다. 우리는 인간이 완전에 이른다는 사상이 얼마나 위험스러운가를 알고 있다. 성결을 주장한 웨슬리도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의미하였지 인간 의지에 의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말하지 않았다. 또 그 완전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이루라고 설교하고 있다.
3. 우리의 시민권(빌3:17-21)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몇가지를 더 당부하고 있다. 본받으려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또 십자가의 원수들은 누구인가? 바울은 왜 그토록 눈물을 흘리는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1) 하늘에 있는 시민권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는 지금과 같은 기독교인의 윤리적 규범이 채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울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었던 것이다. 십자가의 원수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즉 그들은 도덕률 페기론자들이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매우 대조적인 삶과 가치 속에 사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심판 받아 멸망에 이를 자들이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이 땅의 쾌락이 아니라 저 하늘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우리의 할 일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임을 명심하자.
2) 소망이 하늘에 있음
세상을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다 보면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참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이후 현대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자랑거리를 버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댓가가 하늘의 시민권이요, 하늘의 영광이라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하게 될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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