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장은 바울이 빌립보에 보낸 편지의 마지막 부분으로 바울의 개인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권면을 담고 있고 빌립보 교회에서 보내온 물질적 도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면 바울의 목자적인 사랑을 읽어 내려갈 수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나 오히려 빌립보 교회들을 격려하며 애정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바울의 동역자(빌4:1-3)
빌립보에 보낸 바울의 편지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이 부분에는 바울의 개인적인 메시지와 위로 그리고 격려가 담겨 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바울의 특별한 부탁은 무엇인가? 복음의 동역자들을 돕는 것이 왜 중요한가?

1) 복음의 동역자
'그러므로'라는 의미는 앞장의 복음의 대적자들(유대주의자와 완전주의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계를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는 그는 빌립보 교인에 대한 애정을 사랑, 사모, 기쁨, 면류관등 이들에 대한 바울의 깊은 애정과 함께 주안에서 서라고 당부하고 있다. 즉 우리의 의지할 바는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클레멘트에 대하여 신약에 언급된 것으로 알 수 있다. 클레멘트라는 이름은 당시에 매우 흔한 이름이며, 초대 로마 교부와 빌립보에서 언급한 클레멘트는 다른 인물일 것이다. 바울은 이들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하면서 특별히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순두게와 유오디아는 여성이다. 복음을 위하여 힘쓴 그들을 바울은 부탁하고 있다. 그들의 상급은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생명책에 그 이름이 적혀 있는지 알지 못하나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에 동참하는 자는 이름이 적혀 있음이 분명하다.

2) 여성의 역할
순두게와 유오디아는 여성이다. 그들이 어떤 역할을 감당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형편을 살펴볼때 교회 내의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지도자는 목사님이시지만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여집사, 여전도사님들이 없다면 목회가 불가능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내게 배우라(빌4:4-9)
바울은 새 삶의 실제적인 부분에 대하여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의 모습을 다른 이에게 나타내야 하는가?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1) 예수님을 본받는 삶
빌립보서에는 계속해서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이 갇힌 것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는 그들에게 바울은 역설적으로 기뻐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간구하고 있다. 모든 걸 주께 맡기고 기도할때, 주께서 채워주시고 우리를 잘못된 길에서 지켜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선한 것을 생각하고 추구해야 한다(빌2:8). 그리고 이러한 삶의 모습을 예수님이 보여 주셨고 그 예수님을 본받아 사도들이 행하였다. 그 사도 중에 한사람인 바울도 보여 주었다. 빌4:9의 바울의 명령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연상케 한다(마28:20). 비록 쓰인 어휘는 다르다 하더라도 자신의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바울은 자신이 몸소 실천하여 또다시 자신의 충성된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딤후2:2)

2) 삶의 중심은 그리스도
우리 삶의 중심은 항상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고,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며 간구할 수 있다. 또 무엇이든지 선한 것을 추구할 수 있고 평강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갖고 있다. 예수님이 본을 보이시고 가르친 것을 사도들이 행하고 가르쳤고, 그 후의 제자들은 또 행하고 가르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3. 바울의 자족(빌4:10-23)
이 부분은 빌리보서의 종결 부분이다. 그런데 또다시 바울은 기뻐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감옥 안에서 바울의 경제적인 형편은 어떠하였으며, 바울은 어떻게 물질적인 어려움을 감당하고 있는가? 빌립보 교회와 바울의 관계는 어떠한가?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어떻게 돕는가? 또 바울은 어떻게 복을 비는가?

1) 물질로 바울을 협력
본문에서는 바울의 목자적인 모습이 기뻐하는 가운데 나타난다. 그가 물질을 받은 것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보내어 바울을 돕고자 한 빌립보 교인들의 생각이 다시 싹이 남으로 인하여 기뻐하였다. 바울은 언제나 양떼들 편에서 보았다. 그리고 양떼들이 자신을 걱정해 준것에 대하여 목자로서 기쁨을 누린 것이다. 바울은 결코 외적인 물질적 환경에 좌우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능력의 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빌4:10-13). 빌립보 교회는 바울과 시초부터 항상 함께한 교회였다. 늘 물질적으로 바울의 사역을 도운 충성스런 교회였다(빌4:10). 바울은 물질적인 도움보다 도움을 준 빌립보 교인들의 영적인 풍성함에 더 만족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목자로서 축복을 잊지 않는다(빌4:19).

2) 복음 전도자를 물질로 협력
물질로 복음 사역자들을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교회에서 목사가 성도들의 영적 필요를 공급해 준다면 성도들은 목회자의 물질적 필요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구약의 레위지파와 12지파의 관계의 연장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드리는 물질은 '월급'이 아니라 향기로운 제물에 해당된다.

분명히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도움을 받고 있었고 빌립보 교회는 감옥에 있는 바울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빌립보 교인들을 격려하였고 순두게와 유오디아를 천거하였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 가르쳤고 물질적인 자족을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빌립보 교인들을 축복하였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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