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4~9절)
하나님의 자녀들이 의롭게 살아야 할 두 번째 이유 - 그것은 주님이 과거에 성육신하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 행위에 따르는 상급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계 22:12, 구원의 상급 문제>.
[4절]
죄를 짓는 자마다. 2:29절의 '의를 행하는 자'와 대조되는 구절로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과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은 성도들은 의무적이나 형식적으로가 아닌 자발적인 사랑의 행위로서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다. 이는 목욕한 자가 의무적으로 옷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하는 것과 같다.
[5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완전한 인성(人性)을 지니셨지만 죄는 없으시다(고후 5:21; 히 4:15). 이것은 본서가 말하고 있는 중요한 기독론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소개된 기독론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선재하심(1:2)
2) 성육하심(1:1, 2)
3) 하나님의 아들이심(1:2; 2:22, 23)
4) 그리스도이심(2:22)
5) 구원의 유일한 근거이심(2:23)
6) 성령님을 교회에 주심(2:27)
7) 재림하실 것임(2, 3절, 2:28)
8) 대언자이심(2:1)
9) 화목 제물이심(2:2) 등이다.
[6절]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의 현재 시제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동작을 의미하며, 어쩌다가 다시 실수로 범죄한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계속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습관적인 죄를 계속 범한다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바로 그러한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롬 8:2).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감격적인 해방이다. 주님 안에서 죄를 끊어버리는 자마다 참된 구원과 해방의 기쁨을 누린다.
[8절]
죄를 짓는 자. 어쩌다 실수하여 범죄한 자가 아니라 상습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 즉 삶의 존재 방식이 죄에 붙들린 자를 가리킨다. 마귀에게 속하나니. 죄를 짓기 때문에 마귀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범죄케 하는 것은 마귀의 속성 중 하나로 마귀는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자들을 죄와 사망으로 몰아간다. 멸하려. 이 말의 헬, '카타르게오'는 '힘을 제거하여 무력하게 만들다'란 뜻이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최후 심판 전까지는 멸절(annihilated)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벧전 5:8).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힘을 제거하여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현재도 (비록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마다 넉넉히 사탄과 죄를 이길 수 있다(요 16:33; 롬 8:37).
[9절]
하나님의 씨. 열매가 씨앗을 결정짓지 않고 씨앗이 열매을 결정짓는다. '하나님의 씨'는 우리가 중생함을 받게 되는 '하나님의 성품'(벧후 1:4)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받은 성도가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10~24절)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의 판단 기준 - 본문에서 요한은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를 구분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즉 요한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사랑과 증오, 생명과 사망, 자기 희생과 살인 등으로 계속 대조시켜 나간다. 그리고 그 대조적인 두 세계의 모델로 그리스도와 가인을 소개한다.
[10절]
본문에서 요한은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로 양분한다. 모든 인류는 이 두 부류 중의 하나에 속하며 선도 악도 아닌 중간 지대 곧 회색 지대는 존재치 않는다(계 3:14~16).
[11절]
들은. 이 말의 헬, '에쿠사테'는 부정 과거형으로 과거에 방생한 단회적인 사건을 의미한다. 따라서 참된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인류의 구속밖에 없으며 이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적그리스도적인 것으로 인류를 죄와 멸망 가운데 빠뜨리고 만다. 소식. 헬, '앙겔리아'란 이 말은 본서에서만 사용되는 말로 사도들이 전한 사랑에의 권면을 가리킨다. 사랑은 복음의 적용이 아니라 처음부터 확립된 복음의 목적이다. 또한 의를 행한다는 것은 다름아닌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다(10절).
[12절]
이곳은 본서에서 구약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가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1) 세상의 특징은 살인이다. 여기서 '살인'은 육체적인 사망 뿐만 아니라 형제들에 대한 증오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이웃 관계에서의 미움과 갈등이다.
2) 살인의 1차적 원인은 세상이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이다(요 8:44).
3) 2차적 원인은 의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웃의 의로운 행위를 본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시기하며 그 이웃을 제거하려 한다.

(13~24절)

사랑의 실천 - 성도들의 마땅한 도덕 기준으로 사랑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본서는 가히 사랑의 신학이라 할 만하다<서론, 성경에 나타난 사랑의 이해>.

[13절]

이상히 여기지 말라. 세상은 가인의 후예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미워함은 당연하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의를 행할수록 세상의 핍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마 5:10~12).

[14절]  
사랑은 율법의 일부가 아니라 그 전부이며 완성이다(롬 13:8). 사랑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랑은 생명과 사망을 가르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고전 13:13).

[15절]

주님의 가르침을 연상케 한다(마 5:21, 22). 미움과 살인은 그 나타난 모양이 다를 뿐 내적 동기는 똑같다. 주님은 행위에 앞서 그 동기를 먼저 심판하신다.

[16절]

본절은 성도들의 사랑의 근거가 그리스도이심을 밝히는 내용이다. 즉 그리스도는 '자기 희생적 사랑'을 통하여 교회를 살리셨으며 성도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이셨다. 이로써...알고.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배워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치 못한 자는 참된 사랑을 깨달을 수 없으며 할 수도 없다.

[17절]

재물. 사랑은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이며 실천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입으로 외치기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들에게 물질이나 그들의 필요를 채워 줌으로써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19~20절]

또 우리 마음을...하나님일까보냐. 헬라어 성경 원문에 의하면 본절들은 '호더'란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후 문맥이 진리 안에 있는 자가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갖는 담대함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본절은 다음과 같이 재번역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이 우리 마음을 책망할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범죄했을 때마다 회개함으로써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 대신 위로를 받는다(4:18).

[23절]

본문은 주의 계명을 믿음과 사랑으로 요약한다. 이 둘은 나눌 수 없는 불가 분리의 관계에 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사랑의 유일한 근거이며, 형제 사랑은 그 믿음에 대한 유일한 증거이다.

 

# 해설

사랑의 실천 (10~24절)

본서의 주제가 하나님과의 교제라면 사랑의 실천은 그 주제로부터 당연히 우러나온 지상 명령이다. 즉 하나님과의 수직적 교제는 필연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 교제의 기초가 되므로 수직적 교제의 근본 동기요 또 전체적 특징이기도 한 사랑은 자연히 수평 관계에서 저절로 드러나게 되고, 또 의식적으로도 강조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강조한 본서가 동시에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 책으로 유명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편 본 단락은 앞 단락에 이어 성도의 마땅한 행실을 말하고 있는 부분으로서, 앞 단락이 소극적 관점에서 성도가 불법과 세상으로부터 순결을 지킬 것을 말했다면, 본 단락은 적극적 관점에서의 실천적인 사랑을 강조한 것이다.

 

# 핵심

1~12절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의 거룩하심을 닮아 가지만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들은 불법을 일삼는 점에 입각해, 양자를 분별할 수 있다는 가르침.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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