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3절)
성도들의 사랑과 순종 - 믿음, 사랑, 순종의 자연스러운 연결이 강조되어 있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사랑과 순종을 하지 않는 자는 참 믿음을 갖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도 요한은 지금 불신자를 향해 믿고 사랑하고 순종하라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에게 사랑과 순종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 '예수'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신성을 각각 나타내 준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예수이심을,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각각 부인한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아니다. 믿는 자...난 자. '믿는'의 시상은 현재이고, '난'의 시상은 현재 완료이다.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께로서 난 결과이며, 따라서 그 증거도 된다. 그에게서 난 자.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자녀, 즉 성도들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2절]
4:20절과 같이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의 불가 분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나와 마찬가지로 형제도 똑같이 사랑해 주시니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가 그분이 사랑하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며, 더욱이 형제 사랑은 명백한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이 불쌍한 인간인 자신을 사랑해 주었듯이 인간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불쌍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속성상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3절]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계명과 동시에 그것을 지킬 힘 또한 주시기 때문이며(롬 8:3, 4), 우리가 그것을 사랑으로 지기 때문이다. 사랑의 짐은 무겁지 않다. 우리는 그 실례를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자녀를 위하여 부모가 지는 짐은 실로 무거운 것이지만, 그것을 사랑으로 지는 부모들은 전혀 무거운 줄 모른다(마 11:30; 요 21:15~17). 그것을 믿음으로 지기 때문이다(4, 5절).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있으며 주님의 계명들을 넉넉히 순종할 수 있게 해준다(히 11:8).
(4~21절)
교제의 결과 - 이제껏 저자는 4단계로 나누어 교리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성도들의 마땅한 자세를 논해 왔다. 이제 이 부분에서는 그러면 교제를 나누는 자는 결과적으로 어떠한 생활을 하게 되는지를 서술함으로써 성도들에게 교제의 소망을 갖도록 촉구하고 있다. 세상에 대한 승리(4, 5절), 구원의 확신(6~13절), 기도로써 죄의 유혹을 이김(14~21절)이다. 이는 성도가 이미 구원 얻었음을 확신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살전 5:16~18절의 교훈과 일치하고 있다.
[4절]
세상을 이긴. 부정 과거 시제로서 과거에 단회적으로 있었던 한 사건을 의미한다. 이것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단번에 해방되어 영생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음을 뜻한다.
(6~12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 증거
1) 물의 증거 : 세례 요한에게서 받은 그리스도의 물 세례(요 1:33)
2) 피의 증거 :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막 10:38; 롬 6:3)
3) 성령의 증거 : 성도 안에 내주하시며 계속적으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 주시는 증거(요 14:6)
[8절]
합하여 하나. 셋의 증거가 모두 일치한다는 의미이다. 한편 이스라엘에서는 증거가 완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세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였다.
[10절]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우주 만물과 성경의 증거가 너무 분명한데도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증거를 행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모욕을 준 것이다.
(13~17절)
성도들이 가져야 할 세 가지 확신
1) 영생에 대한 확신(13절)
2) 간구의 응답에 대한 확신(14, 15절)
3) 중보 기도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16, 17절)
[13절]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 이것을 알게 해주는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외적 증거인 말씀이며, 다른 하나는 내적 증거인 성령님이시다. 그런데 성령님은 말씀을 통하여서도 성도에게 영생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14절]
응답 받는 기도가 되려면 담대한 마음으로 구해야 한다. 이것은 구하는 대로 응답될 것을 믿는 마음이다. 한편 담대한 마음을 가지는데 방해되는 것들은 양심의 가책(3:21), 고백하지 않는 죄(시 66:18), 부부간의 갈등(벧전 3:7), 이웃과의 반목(마 5:23~25), 의심(약 1:6, 7) 등이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한다. 아무리 담대한 마음으로 기도하더라도 주님의 뜻대로 구하지 않는 기도는 응답이 없다. 만약 우리의 뜻에 따라 구하는 대로 모두 응답된다면 그야말로 비극일 것이다.
[16~17절]
범죄한 형제에 대한 중보 기도의 필요성 및 의무 - 이는 중보 기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동시에 교회의 특권임을 알려 준다. 본문은 특히 범죄한 성도에 대해 끝까지 포기치 않으시며 성도들 상호간에 기도로 결속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잘 보여준다<마 9:2, 중보 기도의 효력과 제한성>. 사망에 이르는 죄. 여러 학설이 있지만 여기서는 근본적으로 예수를 부인하고 끝까지 회개치 않는 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볼 때 성도도 죄를 지을 수 있으며 그것이 고의적으로 또는 예수를 부인하고 지은 죄가 아닌 이상 용서와 구원의 길이 있음을 암시한다. 지금껏 사랑과 순종의 절대적 당위성을 강조해 온 사도 요한이 서신 마지막 부분에서 이 말씀을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추호의 용서도 없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 노력할 것을 원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한 성도의 허물을 감싸 주실 것이기에 성도들도 서로간의 허물을 관대히 용서해야 할 것이다.

(18~21절)

세 주장과 하나의 권고

1) 하나님의 자녀는 범죄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도가 단번에 모든 죄로부터 분리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역설적 표현으로 성도들이 계명을 충실하게 따르게 되면 점차적으로 죄와 멀어지게 될 뿐만 아니라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근본적인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2) 교회는 하나님께, 세상은 마귀에게 속했다.

3) 그리스도 안에는 영생이 있고, 교회에 지각을 주시어 그것을 얻게 하셨다.

4) 마지막 권고로 우상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18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전자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얻은 하나님의 백성을, 후자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 성도는 절대적으로 조금도 죄를 범치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습관적인 죄 또는 예수를 부인하는 근본적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9절]

여기서 '세상'이란 말은 하나님의 창조물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또한 이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력으로 멸망 당할 수밖에 없는 모든 적그리스도적 세력 아래 있는 현실 세계의 영적 상태를 총칭한 상징적 표현이다. 기독교는 결코 자연적 세상을 향한 성도의 활동을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복음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며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봉사할 것을 요구한다<엡 서론, 성도의 사회 참여>.

[20절]

아들이 이르러. 기독교의 신앙은 역사적으로 성육신하신 주님께 그 근거를 둔다. 지각(知覺)을 주사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요 17:3). 이 지각은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능케 된다(요 14:26). 참 하나님.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다(빌 2:6). 그리고 유일하신 영생의 제공자이시다(요 14:6).

[21절]

우상. 하나님 외의 무엇이든 절대화하고 숭배할 때 그것은 우상이 된다(고전 8:4; 골 3:5)<왕상 14:23, 우상론>.

 

# 해설

세상을 이기는 믿음 (1~12절)

이 단락은 본서의 교리적 결론부로서 뒤이어 나오는 윤리적 결론부와 쌍을 이루어 본서 전체를 마무리 짓고 있다. 미움과 다툼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면서도 도리어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롬 12:21)은 지금껏 저자가 강조해 온 성도의 의무이다. 그런데 이러한 승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니 저자는 다시금 성도와 하나님과의 사귐을 강조한다. 한편 하나님과의 사귐은 곧 예수의 성육신을 시인하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믿음이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는 실천적 사랑으로 연결된다는 점(1~5절)은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는데, 특히 여기서 저자는 예수 성육신 사건의 역사성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6~12절).

결론, 응답의 기도와 중보 기도 (13~21절)

본서는 특히 공식적인 인사말이 없이 끝나는 것이 특징이다. 앞 단락의 교리적 결론부와 연결되어 최종적으로 기도를 통하여 세상에서의 신앙 생활을 이길 것을, 즉 신학적 측면에서도 승리할 것을 말함으로써 내용적으로 완벽한 결론부를 이루고 있다. 특히 16, 17절에서 지금껏 형제 사랑을 강조한 사도 요한답게 중보 기도를 교훈하고 있는 것이 인상 깊다. 그리고 끝으로 이단 사설이 횡행하는 당시의 현실을 감안하여 벧후 1:2절과 같이 '앎'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점에 유의하라. 건전한 지식, 즉 이론적 교리에 사상을 둔 뜨거운 사랑의 실천은 그 어느 하나도 다른 것 없이는 완전할 수 없음을 이 부분에서는 물론 전체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 핵심

1~12절

진실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는 자임을 들어 믿음과 사랑의 불가분적 관계를 증거하는 내용이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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