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22절)
심판에 대한 예레미야의 탄식 - 본장의 구조는 1장과 비슷하다. 1~10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11~22절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저자의 탄식을 묘사하고 있다. 1장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다면, 여기서는 비교적 추상적으로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다. 본장 역시 슬프다라는 말로 시작되어 전체적으로 비탄에 젖은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본장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예루살렘 멸망의 원인 규명으로서, 그것이 군사력의 약화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서 온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주께서, 여호와께서라는 말이 각각 3회씩 사용되었었는데 이것은 엄위하신 심판주이신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주도하고 계심을 분명히 보여 준다. 결국 본장은 비극적인 현실의 결과만을 보지 말고 눈을 돌려 하나님에게 의지하며 심판의 원인 자체를 제거해야 함을 교훈한다.
[1절]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우셨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러나 구름이 덮었다고 하여 태양이 없어진 것은 아니며 다시 태양이 드러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다시 나타날 것이다.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연상시키며(사 14:12) 이는 유다에게 임할 중한 심판을 나타낸다. 극에 달한 영광일수록 거기서 떨어지는 아픔은 처절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영광과 수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깨닫고 높은 위치에 있을 때 교만하지 말며 낮은 처지에서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발등상. 발을 올려 놓을 수 있는 발판을 가리킨다(사 60:13).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의미한다.
[2절]
야곱의 모든 거처. '야곱의 초장들'이라는 의미로서 이 말은 '유다의 견고한 성', 곧 요새와 대조적으로 쓰였다. 따라서 본절은 백성들의 일반 거주지나 군대가 주둔하여 방어하는 곳이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파괴된 것을 말한다. 즉 유다 전역에 걸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고 있다.
[3절]
맹렬한 진노. 이러한 하나님의 크신 분노는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그만큼 크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질투하시는 사랑은 유다의 영적 음행을 방관하지 아니하셨다(출 20:5; 호 4:12, 13).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뿔'은 강한 힘과 세력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자랑하고 의지하는 모든 권력, 권위, 부요, 아름다움 등을 철저하게 파괴하셨다.
[4~5절]
여기서 하나님은 유다를 공격하는 분으로 묘사되었다. 유다의 대적 바벨론의 군사들이 취한 무섭고도 잔인한 행동 속에서 시인은 대적의 배후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분노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수없는 경고와 권면에도 불구하고 죄에서 돌이키지 않을 때 하나님은 마치 대적과 같은 모습으로 그의 백성을 징계하신다(사 30:9~14).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성도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깨우치시기 위한 것이다(히 12:5).
[6~7절]
하나님께서 유다의 종교적 제도와 의식적 신앙을 모두 폐기하시는 장면이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처소이며, 성소는 하나님께서 '나의 영원히 쉴 곳'(시 132:14)이라고 부르셨던 곳이다. 유다는 성막이나 성소 또는 각종 절기 자체만을 중요하게 생각했을 뿐 그것을 거룩하게 하는 원천인 하나님은 망각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 추구하고 안 보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곧 망각하는 인간의 종교적 무지를 단호히 배격하는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 형식적인 예배는 전혀 가치가 없다는 것과 거룩한 의식이나 성물이 형식화되면 오히려 참된 신앙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저희가...하였도다. '저희'는 바벨론 군대를 가리킨다. 전에는 절기의 날에 찬양과 음악으로 가득하였던 여호와의 전이 지금은 이방 군대들의 연회와 떠드는 소리로 더럽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8~9절]
파괴된 예루살렘 성의 침상이 묘사된다. 줄을 띠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확한 측량줄을 가지고 심판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그의 심판은 공의로운 것이며 엄격한 기준에 의한 것이다.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이와 같은 무생물의 의인화는 예루살렘이 넘치는 비통함을 잘 드러내 준다.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유다는 택한 백성이나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암흑기에 항상 나타나는 현상이었다(삼상 3:1). 하나님의 침묵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영적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10절]
장로는 지도자들을, 처녀는 힘없는 백성들을 가리킨다.
[11~12절]
B.C. 589~587년에 있었던 바벨론의 예루살렘 포위 기간 중의 참상을 그리고 있다(왕하 25:1~3). 당시 성내는 극심한 기근으로 인하여 어린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의 죄악 때문에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자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오열을 토하고 있다.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유대인들은 감정의 근원이 간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극도의 고통 때문에 감정이 마비될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말한다. 혼이 떠날 때에...어디 있느뇨 하도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먹을 것을 찾는 어린아이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비극은 죄와 불순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경고해 주는 교훈적 사건이다. 세상 끝날의 심판도 정식적, 영적 차원의 고통은 물론 이처럼 분명한 육신의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신 11:28; 삼상 12:15).

[13절]

예루살렘의 비극은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의 참상이 너무나 크고 이 비극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14절]

본절은 종교 지도자들의 책임에 대해 공박하고 있다<겔 33:6, 종교 지도자의 책임>. 유다의 수난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이 선지자들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백성의 죄악을 경고하기는커녕 거짓된 평안을 선포하여 백성으로 멸망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렘 8:8~12). 여기서 영적 지도자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말세가 가까울수록 거짓 선지자들이 많아질 것을 경고하셨다(마 24:24).

[15~16절]

이 부분은 유다의 참상에 대하여 이웃과 원수들이 조롱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성도들이 실족하여 곤란을 당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손상을 입으며 악한 세력들은 즐거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도가 그러한 비웃음에 대하여 분노하지 않고 스스로 교훈을 삼는다면 오히려 큰 신앙 성숙의 기회가 될 것이다(삼하 16:5~14). 지나가는 자는 유다의 주변 국가들을 말한다. 예루살렘이 강성하였을 때 그들은 그 성을 흠모했으나 성이 멸망하자 이제 그들은 지난날의 융성을 들추어 내면서 비웃고 있다. 이처럼 세상 인심은 표변한다. 이는 세상이 속보다는 겉만을 보며, 자기 자신만을 위하며, 최종적 끝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하도다. 유다의 원수들은 유다의 멸망이 자기들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오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유다를 징계하는 막대기로 사용하셨을 뿐이며 막대기는 용도가 사라지면 꺾어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성도는 하나님의 1회용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목적인 것이다. 또한 성도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때에는 그것은 단순한 기계적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협력자로서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루시는 사랑과 능력은 오직 주께만 있으니 도구로 쓰인 자들이 자랑하거나 교만할 근거는 전혀 없는 것이다.

[17절]

본절은 이와 같은 비극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예전에 모세는 여러 번에 걸쳐 이스라엘의 패역과 불순종에 대하여 경고하며 예언하였던 것이다(레 26:23~29; 신 4:25~31; 신 28:15~68; 신 31:29).

[18~19절]

암담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의 방법으로서 기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눈물로 기도할 것과 쉬지 말고 기도할 것과 밤중에 기도할 것과 마음을 다하여 기도할 것을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환난이 극심할수록 성도는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징계하시지만 다시 싸매시며 성도의 통회하는 부르짖음을 결코 오래 방관하시지 않기 때문이다(눅 18:1~8). 눈물을 강처럼 흘릴찌어다. 회개의 기도를 촉구하는 표현이다. 밤 초경에...부르짖을찌어다. 자는 것도 제쳐놓고 깊은 기도에 몰입하라는 의미이다. 네 마음을...물 쏟듯 할찌어다. 온 마음을 집중하여 깊은 기도를 드리라는 뜻이다. 심령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는 하나님의 신속한 구원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20~22절]

하나님을 향한 호소 - 본서는 다섯 장의 각각 독립된 연작시(連作詩)라 할 만하다. 2장의 말미도 1장과 마찬가지로 여인이 자기 아이를 먹고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상황의 열거와 더불어 즉각적 구원을 외치는 내용으로 끝맺고 있다. 여기서 애가는 애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기도로 끝남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성도는 그 어떤 경우에도 슬픔과 탄식으로 끝내지 말고 희망의 기도로 끝내야 할 것이다.

 

# 해설

하나님의 심판 (1~10절)

바벨론의 맹렬한 공격과 잔인한 살육을 생생한 필치로 묘사하면서 선지자는 대적의 배후에서 심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명백하게 증거한다. 성전 파괴와 공중 예배의 중단(6~10절)은 하나님 자신의 아픔과 슬픔, 치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의 속성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방관할 수 없으신 하나님의 아픔과 슬픔은 어느 때에나 거두어질 수 있을 것인가!(출 20:5; 호 4:12).

예루살렘을 향한 탄식 (11~19절)

지도자들의 무책임에 의분을 터뜨리며(14절), 원수들의 조롱에 수치를 느끼면서도(15, 16절) 선지자는 유다의 참상이 고쳐질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13절).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비유할꼬'(13절)하며 탄식하는 선지자의 눈물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눈물을 본다(마 23:37, 38). 선지자는 눈물과 회개의 기도만이 암담한 이 현실을 타개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18, 19절).

긍휼에 대한 호소 (20~22절)

여인이 자기 아이를 잡아먹고,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살상되고, 늙은이와 젖먹이들이 길거리에서 칼날에 엎드러지는 등 거침없이 열거된 이 끔찍한 상황들은 무엇보다 즉각적인 구원에 대한 간절한 호소를 내포하는바, 선지자는 이를 통해 죄의 파괴성을, 그로 인한 심판의 참혹성을 깨닫게 하는 한편, 그 죄와 회개에 대한 각자의 책임 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현재의 절망에서 벗어나 미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한다.

 

# 핵심

1~22절

과거의 영광을 상실한 예루살렘을 향한 두 번째 애가가 시작되는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바벨론의 공격을 통해 생생히 묘사된다.

 

# 묵상

자기 제단을 버리신 여호와 (7절)

본문의 이 말은 여호와께서 적들에게 성전 파괴를 허락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전 파괴, 제사 금지, 적들에 의한 성전 모독 등이 적들의 신의 승리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일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성전과 제사를 통해서 맺어졌던 여호와와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패망에 대한 탄식 (11~16절)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패망으로 인한 슬픔을, 눈이 눈물에 상하며 창자가 끓으며, 간이 땅에 쏟아졌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기가 막힐 처지와 원수들의 조롱을 묘사합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역할 때문에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실 말씀의 기근 때문에 굶주리며 상한 심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현실을 보고 예레미야와 같은 탄식과 슬픔, 긍휼을 가지며, 하나님 때문에 소망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 (17절)

이는 율법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는 저주나 위험을 말합니다(레 26:14; 신 28:15~19). 또한 포로기 이전의 심판 예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일이며 계획하신 일이라면, 이는 그 고난이 제거될 날이 있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른 유다의 멸망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 소망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즉 인간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 속에 있는 것임을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타락부터 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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