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22절)
예루살렘의 참상 - 본장은 비탄시의 요소를 모두 갖춘 3장보다는 현재 고통의 끔찍한 참상의 생생한 묘사에 주력한 1, 2장과 더 유사하다. 1, 2장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면 여러 고통 중 특히 극심한 기아(신 28:48, 53, 57; 사 9:18~21; 욜 1:17~20)의 고통을 강조하고, 이 모든 재난의 1차적 책임을 정치.종교 지도자에게 돌린 점 등이라 하겠다. 4장의 문단 구성은 다음과 같다. 극심한 기아의 고통(1~10절), 지도자들의 책임과 그들의 비참한 상황(11~16절), 구원의 유일한 방도인 회개(17~22절).
[1절]
금이...변하였으며. '금'과 '정금'에 관하여는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 택함받은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는 해석과 성전과 그 장식품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본문은 유다 백성이 세력을 잃은 것을 의미하고, 후자의 경우라면 성전의 영광이 훼손된 것을 의미한다. 성소의 돌이...쏟아졌는고. 이것은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략했을 때 그들이 성전을 파괴하고 그 돌들을 각처에 흩어버린 사실을 가리킨다(왕하 25:9, 10; 렘 52:12, 13).
[2절]
시온의 아들들은 유다 민족을 가리킨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섬길 때 그들의 위세(威勢)는 천하에 드높았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자 그들의 위치는 보잘 것없는 항아리와 같은 처지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신앙 상태에 따라 흥망 성쇠를 거듭했다는 것은 성경의 핵심적인 교훈으로서(삿 3:7~14; 삿 4:1~3; 삿 6:1~10) 성도들에게 행복의 능력이 자신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교훈해 준다.
[3절]
타조는 알을 낳기만 하고 보호하거나 기르지 않는 습성을 가진 새인데, 유다 백성이 혹독한 기근으로 인해 자녀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것을 타조에 비유하고 있다. 환경이 사람을 동물보다 못하게 만드는 비참한 상황이다.
[4절]
젖먹이와 어린아이들은 항상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나 전화(戰禍)의 참상 속에서 유다 백성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5절]
유다의 과거와 현재가 날카롭게 대조되어 있다. 이 극명한 대조 속에서 성도는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이유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이 대조는 훗날 천국과 지옥으로 갈릴 자들의 태도를 연상케 해준다(눅 16:19~27).
[6절]

소돔은 음란과 더러움으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입어 멸망한 도시로(창 19:1~28; 유 1:7), 음란과 죄악의 대명사 같은 도시이다. 그런데 유다의 죄가 이 소돔의 죄악보다 더 크다고 한다. 이것은 유다의 죄악의 정도가 한계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들의 죄악의 성격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긴 영적 간음죄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7절]

존귀한 자. 이것은 '나실인'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 바쳐진 자'를 뜻한다. 따라서 본절은 유다 백성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그 자신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진 것에서 기인한 것임을 나타낸다.

[10절]

4절에서처럼 자녀를 소홀이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잡아먹게까지 되는 끔직한 광경은 죄악의 결과와 그로 인한 징벌이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파괴하였음을 보여 준다.

[11절]

시온에...지대를 사르셨도다. 시온 성을 남김 없이 그 터전까지 파괴하셨다는 뜻이다. 한편 예수도 훗날 시온성의 파괴를 말씀하시며 이 세상의 종말적 파괴를 이중적으로 예언하신 바 있다(마 24:1~51).

[13절]

저자는 예루살렘 패망의 원인을 1차적으로 당시의 종교.정치 지도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책임이, 그리고 백성의 입장에서는 바른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기억하며<렘 22:1~7, 지도자의 책임>, 그리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을 때는 인간 지도자의 뜻 이전에 하나님의 뜻을 따를 시민 불복종의 의무가 백성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롬 서론, 시민 복종과 불복종의 한계>.

[14절]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지도자들이 참된 진리를 알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옷이 피에 더러웠으므로. 권력을 가지고 무고히 의인을 살상한 것을 뜻한다.

[15절]

부정하다는 외침은 문둥병자가 사람들의 접근을 방지하려고 외치는 외침인데(레 13:45) 그들의 영적 더러움이 마치 문둥병자와 같았다는 것이다.

[16절]

저희가...아니였음이로다. '저희'는 이방인을 말한다. 백성들을 잘못 인도한 자가 이방인에게 능욕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17~20절)

유다의 멸망 이유 - 유다의 구체적 멸망 이유 중 하나로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인을 의지한 죄와 그 결과가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방인들과 외교 관계를 가진 것 자체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방인들만 의지한 것이 죄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도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방법과 뜻을 좇아, 합리적인 방법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여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자도 어리석은 자요, 하나님을 안 믿고 자신의 힘만 의지하는 자도 어리석은 자이다.

[17절]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눈이 상함이여.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향할 때에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성경에는 영의 눈의 방향을 잘 둔 경우와 잘못 둔 경우의 실례들이 제시되어 있다(창 3:5, 7; 시 19:8; 사 2:11).

[19절]

산꼭대기에서도...광야에서도. 그 어디서도 휴식과 구원을 발견할 수 없는 절망 상태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상태에서도 최후 심판이 임하기 전이면 그 언제라도 회개하고 구원을 얻을 희망이 있다(겔 18:21). 최후 심판 후에는 절망 상태만이 영원할 것이다.

[20절]

콧김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호흡이 생명에 중요하듯이 국가에 있어서도 왕이 중요하다는 뜻에서 나온 은유적 표현이다. 우리가 저의...하던 자로다. 인간 왕을 의지한 과거의 소위(所爲)가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를 깊이 자조(自照)하며 기막혀 하는 표현이다.

(21~22절)

지금껏 현재의 절망에 절규하던 선지자의 목소리는 극적으로 희망의 목소리로 바뀐다. 성경은 저주와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용서와 구원의 약속으로 끝난다. 이를 종합해 볼 때 하나님은 최후까지 먼저 사랑하시고 구원을 약속하시며, 끝내 회개치 않는 자에게는 심판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배신과 용서의 역사에서 거듭 깨달을 수 있다.

[22절]

형벌이 다하였으니. 이 세상에서의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는 이처럼 분명히 정해진 한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최후 심판 후 죄인을 향한 진노는 무한할 것이다.


# 해설

기근으로 인한 고통 (1~10절)

네 번째 애가(4장)는 1, 2장과 같은 시적 구조를 지니는 바, 선지자는 터질 듯한 감정을 답관체라는 한정적이고 형식적인 틀 속에 얽어놓음으로써 그 감정의 기폭을 조절하며, 절제되고 정선된 용어로써 진행시킨다. 본문은 렘 21:9절에서 예언된 것으로 마치 죽음과 함께 동거하는 듯한 공포의 나날이 기근의 참상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최후의 심판을 향해 죄악을 그 머리에 쌓고 있는 자들에겐 심각한 경고이다.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11~16절)

모든 재난에 대한 책임이 일차적으로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 지워지고 있다. 그들은 진리를 버리고 소경처럼 방황했으며(마 15:14), 권력으로 무고한 의인을 압제했고(14절) 마치 문둥병자처럼 영적으로 썩어 문들어져 있었다(15절). 결국 이들이 이방인의 능욕거리가 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16절).

구원의 길 (17~22절)

유다의 구원은 이방(애굽)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헛된 구원을 의지하다가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고 말았다. 본문은 유다에 임한 하나님의 징계가 바로 그들의 잘못된 선택의 길을 꺽으심이며, 불신앙의 벽을 헐어내시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 핵심

1~22절

유다 백성에게 임한 재난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음을 지적하고, 구원의 길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한다.

애 4:1절의 "금"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는 견해,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는 견해, 예루살렘 성전과 그 장식품들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 있다. 본절 하반절에 "성소의 돌"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세번째 견해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 묵상

제사장들의 악행 (11~16절)

예레미야는 유다가 그와 같이 비참한 현실을 당하게 된 원인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특별히 백성들에게 거짓된 말을 전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죄악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당시 제사장들은 의인으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하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의인이 되도록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계시를 지켜야 할 그들이, 오히려 의인을 핍박하고 살해하였으며 도덕적, 영적으로 타락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멸망은 필연적이었고 제사장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다의 멸망 이유 (17~20절)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인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과 관계를 갖는 것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방인만 의지하는 것이 죄입니다. 때문에 성도는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방법과 뜻을 좇아 합리적인 방법을 강구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콧김 (20절)

'콧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루아흐'는 '영, 숨, 호흡' 등의 뜻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백성들의 콧김이란 곧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가리킵니다. 왕을 코의 숨결이라고 본 것은, 왕에 의해서 백성들의 생존이 보증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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