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읍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20절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의 노력이나 수양으로 신앙 생활에 승리하는 줄로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의 승리나 성공은 내 육신의 노력이나 수양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나'는 죽고 '예수'로 살며,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도록 사는 데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아는데, 살아 있는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죽고, 옛사람의 생활이 죽고, 옛 사람의 정욕이 죽고, 옛 자아가 죽고, 옛 욕망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죽은 시체에다 대고 누가 욕을 하거나 때리거나 바늘로 찔러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내가 죽었다는 것은 죄의 세력이 나를 지배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여기서 말씀한 것은 한 달이나 두 달이 아니라 육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날마다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길고 오랜 투쟁이지만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던 주님께서 우리와도 함께 하셔서 도와 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우리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것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우리의 발을 못 박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당시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십자가 형틀에다 대고 크고 긴 쇠못을 박았습니다. 그 녹슨 쇠못은 예수님의 살과 뼈를 뚫고 들어가 붉은 피를 쏟아 내게 했습니다. 그 고통을 상상해 보십시오. 참혹한 고통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 역시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발을 못 박는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발이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곳으로 데려 가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상처받은 발자욱을 따라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발이 깨끗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옛 사람의 길을 걷지 말고, 주님을 따라 새 사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발은 불쌍한 자, 가난한 자, 멸망해 가는 자들을 찾아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 쓰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발은 봉사하고 도와주고 이웃을 구원하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발이 되어야 합니다.
롬 10:15절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내 발로 갈 수 없으면 이 구원의 복음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할 것입니다.
신화에 나오는 머큐리(Murcury)는 신의 사자로서 그 발에 날개가 달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자들로서 속히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결코 옛 사람의 생활을 따라 죄짓는 장소에 가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의 발을 철저히 못 박아야 합니다.
2. 우리의 손을 못 박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손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잔인한 십자가 형틀 위에 두 팔을 벌리고 누운 채로 양손이 못에 박혀 고통을 받으며 피흘리셨습니다. 한편 도마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못자국 난 두 손을 펴 보이셨을 때 그 못자국을 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쳤습니다.
만일 우리의 손이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이 손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 손을 죄와 더러운 것으로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죄없는 예수님께서는 손을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인간을 구원하시고 축복하는 데 내어 주셨으므로, 우리들의 손도 죄악된 것이나 부정한 것을 만져서는 안되겠습니다.
또한 죄짓고 그릇된 일을 하는데서도 죽어져야 하겠습니다. 정직하게 수고한 열매로 돈을 벌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외롭고 쓸쓸한 이웃의 손을 잡아주며 상한 심령을 어루만지며 남을 위해 수고하고 봉사하는 데 우리의 손을 부지런히 사용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데 우리 손을 힘써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3. 우리의 귀를 못 박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귀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귀기울이는 대상부터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시험하고 유혹하는 여러 가지 소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귀가 주님의 것이라면 이런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되겠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귀가 유혹하는 거짓말에 귀를 기울였다가 타락했습니다. 오늘날도 유혹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일주일 내내 피곤하게 일했는데 교회에 나가지 말고 놀면서 푹 쉬어라', 혹은 '교회 가느라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돈을 더 벌어야 한다. 환경에 적응하며 적당히 사는 거다. 목사가 뭐라고 하든, 그런 소리는 잊어버리고 네 자신부터 살피라'고 하며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들은 이런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마귀로부터 오는 소리이며 우리를 지옥문으로 끌어 넣는 유혹의 소리입니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귀는 다른 사람을 헤치는 험담이나 중상 모략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나쁜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험담하고 악담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 사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 유혹의 말과 악한 말에 대하여 '나는 잘못되고 해롭히는 말을 듣는 귀가 없습니다. 나는 내 귀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4. 우리의 눈을 못 박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얼굴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다"(사 52:14)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님의 얼굴은 탱자 나무같은 가시로 엮은 관에 눌러 씌워졌습니다. 그래서 가시들이 이마를 찔러서 흘러나온 피가 눈을 덮었습니다. 예수님의 눈도 십자가에 못 박혔던 것입니다.
우리의 눈도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눈으로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은 우리를 타락시키며 저급한 본능적인 욕망를 자극시키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유혹하여 죄 가운데로 끌어 내리는 데 모든 색깔과 빛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화·잡지·각종 선전들이 사람을 타락시키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이런 것들을 보는 데서 멀리해야 합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항상 위를 쳐다 보라'는 것을 자기 신앙 생활의 대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의 오심을 바라보며 살자는 뜻입니다. 히 12:2절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연약하여 넘어질 수밖에 없는 자신도 또한 나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이 연약한 다른 사람도, 환경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신자가 꿈을 꾸었는데 깊은 우물에 빠져서 위를 쳐다보니 별이 하나 보이는데 자세히 쳐다보고 있으니까 은빛 줄이 하나 내려와 자기를 들어 올리더랍니다. 들어올려지던 중에, 언뜻 밑을 내려다 보는 순간 다시 가라앉기 시작하더랍니다. 크리스챤에게 밝고 빛난 새벽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이 별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로 들어 올려지게 됩니다.
5. 우리의 혀를 못 박아야 합니다.
야고보는 혀에 대해서 실제적인 교훈을 말씀했습니다. 말은 재갈을 물려서 제어할 수 있지만 사람의 혀는 다스릴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큰 배를 작은 키로 방향을 돌리듯이 사람의 혀는 그 온 몸을 제어합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파괴하는 힘을 가졌지만 사람의 혀는 더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짐승은 다 길들일 수 있지만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혀를 쓰기 원한다면 혀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시편 기자와 같이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 혀를 잘못 내둘러 갈라지고 쪼개져서 큰 손상을 입는 것을 봅니다. 그 결과 초신자들과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 세상에서 타락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마귀는 이런 모습을 보며 기뻐하고 웃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관하여 나쁜 말을 들을 때 기뻐해서는 안되겠고 또 그것을 되풀이하여 말해도 안되겠습니다. 이런 말은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말을 한 사람을 더욱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혀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날카롭고 독이 든 말을 못합니다. 남에 대하여 비판하고 빈정거리기 좋아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직 우리의 혀를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또한 진실만을 말하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만 기쁘게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6. 우리의 마음을 못 박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슴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은 심장이 파열되어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가 그의 백성에게 오시매 그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져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기 백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참혹한 십자가 형벌을 기꺼이 당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당신의 마음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죄악에 대해 죽었습니까. 예수님이 당신의 생활에 첫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세상으로 갈라져 있지는 않습니까.
영국의 한 용감한 장군이 예수를 믿어 물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목사님께 요청하기를 '내 몸이 다 물에 잠기어도 내 팔 하나만은 안 넣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온 몸이 예수님께 함께 장사되어야 된다고 했더니, 장군이 한사코 안된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이 손만은 자유롭게 놔 두었다가 원수와 싸울 때 써야겠습니다. 이 팔만은 예수님께 드리기 원치 않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우리도 가끔 이럴 때가 있습니다. 생활의 어느 일부분만 주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우리의 온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즉 우리의 전 생활이 예수님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감정이 없습니다. 나를 해치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람에게 복수할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모두를 사랑해야 됩니다. 우리의 생활은 주님을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피흘리신 대가를 치르고 우리의 머리를, 눈을, 귀를, 혀를, 가슴을 사셨습니다. 손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의 손을 샀습니다. 발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의 발도 샀습니다. 가슴이 파열되면서 우리의 마음도 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부분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지만 주님의 보혈에 의지하고 우리 자신을 철저히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죄와 세상을 이겨 나가십시오. 그리하여 옛사람을 벗어버려서 죄악에 끌려가는 지체가 되지 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께 온전히 맡겨 주께 쓰여지는 거룩한 지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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