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고린도후서 2장 1절~17절]
1절 -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절 -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절 -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절 -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5절 -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절 -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절 -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절 -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절 -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절 -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절 -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12절 -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절 -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절 -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절 -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절 -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절 -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 주제별 목록 작성
잘못한 사람에 대한 태도
5절 :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않아야 함
6절 : 벌 받는 것이 마땅함
7절 : 너무 많은 근심에 빠지지 않게 용서하고 위로해야 함

* 도움말
1. 향기(15절) : ‘향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오디아’는 구약에서 ‘희생제사’를 언급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창 8:21; 출 29:18; 레 1:9; 민 15:3).
2. 혼잡하게(17절) : 어원상으로는 ‘물건을 판다’라는 의미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복음의 순수성을 흐리게 하는 것을 뜻한다.

* 말씀묵상
1. 용서의 마음

바울은 “근심하게 한 자”(5절)의 잘못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미친 악영향에 대해 말하면서도,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5절)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미 충분한 벌을 받았다면, 이제는 그에 대한 용서와 위로가 필요하다고 권면합니다. 결국 바울은 이 근심하게 한 자에게 ‘사랑을 나타낼 것’을 권면합니다(6, 8절). 공동체 안에서는 종종 어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매도해서 회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아 공동체를 떠나기도 합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전략일 수 있습니다(11절). 바울은 이런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는 용서와 사랑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15절)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향기’라는 단어가 희생제물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향기와 동일한 의미라면, 우리는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헌신의 삶을 통해 세상에 그리스도를 알리는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롬 12:1). 그런데 이 향기는 멸망 당할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16절)가 되고 구원받을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16절)가 되기 때문에, 아무나 이 역할을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보다는 하나님 말씀의 순수성을 지키며,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소유한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향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잘못한 사람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권면합니까?(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그리스도의 향기”(15절)가 되기 위한 자격은 어떤 것입니까?(17절)
*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잘못한 사람을 어떤 태도로 대합니까? 그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까?
2.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있습니까?


제공:프리셉트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사역

[고린도후서 1장 12절~24절]
12절 -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절 -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절 -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15절 -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절 -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절 -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절 -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절 -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절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절 -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절 -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23절 -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24절 -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 주제별 목록 작성
여행 경로를 변경하게 된 이유
17절 : 육체를 따라 경솔하게 계획하지 않음
18절 : 하나님의 미쁘심을 근거로 함
23절 : 성도를 아끼려 행함
24절 : 성도의 믿음을 주관하지 않고 오직 그들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

* 도움말
1. 계획(16-17절) : 바울은 본래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하기 위한 헌금을 가지고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 했던 계획을 여기서 밝히고 있다.
2. 예 예 하면서…하는 일(17절) : ‘편리한 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려는 줄 압니까?’(공동번역), ‘아니오, 아니오, 하려는 속셈이면서도 예, 예, 했던 것이겠습니까?’(표준새번역)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3. 기름을 부으신(21절) : 어원인 헬라어 ‘크리오’는 ‘기름을 붓다’, ‘신성하게 하다’라는 뜻이며, ‘크리스토스’(그리스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어원이 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 말씀묵상
1. 사역의 근거

바울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경솔하게 전도 여행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자신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인하고 있다고 담대히 전합니다(17-18절). 바울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워 자신이 고린도에 가지 않은 이유가 고린도 교인들을 아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23절). 또한 바울은 자신이 사도지만, 성도들의 믿음을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밝힙니다. 오히려 바울은 스스로를 성도의 기쁨을 돕는 자로 규정합니다. 하나님의 미쁘심에 근거한 사역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는 확신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역할에 대한 겸손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2. 성도의 신분

하나님의 미쁘심은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신 7:9). 왜냐하면 이것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계명과 약속을 모두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 119:86). 본문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20절)가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기름부어 구별하셨고, 이 사실을 인치심으로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고전 3:16; 요일 3:24, 4:13).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성도들의 신분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바울이 여행 경로를 변경하게 된 이유를 찾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본문에서 규정하는 성도의 신분은 어떤 것인지 요약해보십시오(21-22절).
* 깊은 묵상
1. 바울의 사역 태도와 여러분의 사역 태도를 비교해보십시오.
2. 여러분은 본문이 말하는 성도의 신분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제공:프리셉트

간구함으로 돕는 사역

[고린도후서 1장 1절~11절]
1절 -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2절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3절 -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절 -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절 -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절 -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절 -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절 -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절 -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절 -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절 -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 주제별 목록 작성
하나님
2절 : 우리 아버지
3절 :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 자비의 아버지 / 모든 위로의 하나님
4절 :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의 위로의 근원
9절 :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10절 :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심

* 도움말
1. 고린도(1절) : 그리스 남단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해상 교통과 무역의 중심 도시이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복음을 전파한 본 서신의 수신지이다.
2. 아가야(1절) : 로마는 그리스 전체를 마게도냐(Macedonia)와 아가야(Achaia), 두 지역으로 구분하여 통치하였다. 아가야의 행정 수도가 고린도였다.
3. 위로(4절) : 성령을 가리키는 ‘보혜사’와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로, 곁으로 불러 보살피고 변호하며 권면하는 성령의 자상한 성품이 담겨 있다.

* 말씀묵상
1. 환난 중의 위로

성경은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임을 증거합니다(요 15:19). 그러나 본문에는 “환난”이라는 단어와 함께 “위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4, 6, 8절). 그리고 그 위로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4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환난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갖 환난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을 만큼 큰 것입니다. 성도는 환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위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선포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2. 기도의 힘

사도 바울은 편지를 읽는 성도들에게 기도로 도와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팀 사역을 축복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기도를 부탁하고, 기도 부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것이 단지 관습적인 인사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이러한 확신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응답과 도우시는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바울은 자신이 아시아에서 겪은 환난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8-9절)
* 깊은 묵상
1. 우리가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최근에 기도를 부탁 받은 적이 있습니까? 지금, 그것을 위해 기도해보십시오.


제공:프리셉트

참된 헌금의 자세

[고린도후서 9장 1절~9절]
1절 -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2절 -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히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3절 -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4절 -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5절 -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절 -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절 -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절 -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절 -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 바울은 헌금을 올바르게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고린도 성도에게 가르치고 있습니까?(5절)
바울은 헌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고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고린도 성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에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에 동참할 것을 권합니다. 그는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1년 전부터 고린도 교회가 헌금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라고 자랑했다면서 고린도 성도를 자극합니다. 만약 바울과 마게도냐 사람들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헌금이 준비돼 있지 않다면 무슨 망신이겠느냐는 것입니다(4절). 바울은 ‘제발 나의 자랑이 헛되지 않도록 헌금을 잘 준비해 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기도하면서 미리 준비하는 헌금이 자연스럽고 참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은 바울과 이미 약속한 것이기에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물질을 드리는 것도 아름답지만, 물질을 준비하면서 마음을 함께 드리는 것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고린도 교회의 마음이 함께하기를 원하면서 헌금을 미리 준비하라고 강조합니다. 마음이 없는 헌금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치가 없습니다.

2. 바울이 권하는 헌금에 대한 두 번째 자세는 무엇입니까?(6절) 이것과 관련된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입니까?(7절)
바울은 헌금할 때, 마음에 정한 대로 하고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며 많이 심으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헌금에 대한 두 번째 자세는 인색함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물질을 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물질은 생명과 같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물질 앞에서 인색하기 쉽습니다. 바울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마음에서 정한 대로 헌금하라고 권합니다. 사람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일정 금액의 헌금을 결정했다가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헌금에 대해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자신의 밭에 씨앗 한두 개를 뿌리고 마는 농부는 없다는 것입니다. 가능한 많은 씨앗을 뿌려 풍성한 수확을 기다리는 것이 일반입니다. 바울은 이런 마음으로 헌금하라면서, 하나님은 즐겨 내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인용합니다(잠 22:9). 구제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사랑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물질을 내놓고 즐거워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찌 사랑하시지 않겠습니까?

3. 바울은 참된 헌금을 드렸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보상해 주신다고 말합니까?(8~9절)
하나님이 많이 심은 사람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셔서 모든 일에 넉넉하게 하신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더라도 거두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즐겨내는 사람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 주십니다. 사람들의 계산법은 남을 구제하면 자신이 궁핍해진다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계산법은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누기를 즐겨 하는 사람에게 하늘의 창고 문을 여시기 때문입니다. 구제하고 나누는 사람에게 현세의 복뿐 아니라 내세의 복도 함께 임합니다. 하나님은 흩어 나누는 행위를 ‘의’로 여기십니다. 곧 물질을 나누는 행위에 대해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겠다는 믿음으로 보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여기는 재물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큰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는 사람의 의로움이 영원토록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9절, 참조 시 112:9). 결국 나눔이란 남을 돕는 자선이 아닌 자신을 위한 투자가 됩니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투자는 나눔입니다.

4. 누군가를 도울 때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합니까? 그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자신에 대해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구제의 이유는 자신의 겸손이나 하나님만 아시면 된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의기소침해지기 쉽습니다. 만약 그가 돕는 사람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 앞에서 비굴해지거나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도움을 줄 때 방법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존감이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5. 내가 헌금과 구제를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바람에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작정한 헌금과 구제를 드리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모든 헌금과 구제에 마음이 따라야 합니다. 마음이 없는 물질은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지 않고, 구제하는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또 헌금과 구제를 결정했다면, 그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칫 지나친 동정심이나 즉흥적인 마음으로 결정했다가 마음이 변해 그것을 포기한다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 따라서 누군가를 돕기로 했다면 수입의 일부를 먼저 떼어 놓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계획을 잘 세워 헌금하고 구제함으로써 말만 앞서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땅에 있는 집, 하늘에 있는 집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1절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절 -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절 -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절 -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절 -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절 -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절 -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절 -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절 -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절 -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생명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가지 집이 있다고 말하는데 각각 무엇입니까?(1절)
그리스도인들에겐 땅의 장막 집이 있고 동시에 하늘의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육체라는 집에 거합니다. 그 집은 영원하지 않고 장막, 텐트와 같다고 성경에서 설명합니다. 장막은 완전하지 않으며 임시 처소에 불과합니다. 장막은 사람이 땅에 거하는 동안에 거하는 처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다른 집을 갖게 됩니다. 그 집은 땅의 집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몸을 입고 새로운 곳에서 살게 됩니다. 그 집은 하늘에 속한 것이고, 시간이 흘러도 퇴락하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땅에서 살며 하늘의 집을 믿음으로 바라보지만, 장차 그 집을 소유해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그 집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병들고 약해져 죽음을 맞이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장막과 같은 육체가 끝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장막 집이 무너지는 날, 영원한 집에 들어가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사랑합니다. 영원한 집에 들어가는 감격적인 사건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확신합시다.


2. 땅에 있는 집과 하늘에 있는 집 가운데 바울이 소망하는 집은 어느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8절)
바울은 땅에 있는 집보다 주님과 함께하는 하늘에 있는 집을 더욱 소망합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라는 장막 집에서 살 때 시간이 흐르면서 노화를 겪고 질병에 노출돼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또 많은 유혹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게다가 항상 죄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뼈아픈 경험을 겪게 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자신을 사망의 몸이라고 한탄하지 않았습니까?(롬 7:24) 그만큼 육체라는 장막 집은 연약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새로운 집은 전혀 다릅니다. 육체의 장막 집이 무너진 후 얻게 될 하늘에 있는 집은 늙음, 고통, 유혹도 없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과의 교제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하늘에 있는 집을 사모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친구이신 예수님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몸에서 떠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미루기 위해 돈과 명예도 지불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비롯해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하늘에 있는 새로운 집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여기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가까울수록 하늘에 있는 집을 더욱 갈망했습니다.

3. 하늘에 있는 집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9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10절)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에 지금 주어진 삶에서 예수님을 항상 기쁘시게 하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속한 장막 집을 벗어나 하늘에 있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전에 거쳐야 할 단계가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전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선악 간에 행한 것을 판단 받은 후에 처소를 정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을 믿지 않은 영혼들은 심판을 받지만, 하나님을 믿은 영혼들은 삶에 대한 평가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청지기로 부르시고 그 사명을 얼마나 충실하게 감당했는지를 살피십니다. 그 시간을 얼마나 잘 사용했는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얼마나 잘 섬겼는지를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에 거하든지, 육체에서 떠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따라서 육체에 거하는 동안 주어진 기회, 시간, 물질, 인간관계 등을 최대로 선용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일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평가를 받기 위해 일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 일하지 않고, 구원을 증명하기 위해 일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신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자’라는 것이 됩니다.

4. 요즘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원의 관점에서 그것의 중요도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겠습니까?
성경은 시종일관 성도에 대해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무르는 곳이지 영원히 거할 곳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가 고향이고, 그곳에 영원히 거할 새로운 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을 고향인양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땅에 있는 육체를 관리하고 재산을 증식하는 일에 많은 공을 들이지만, 하늘나라에 있는 집에서 살아갈 준비에는 소홀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영원한 것에 투자합니다. 하늘나라에 많은 것을 쌓고 깨끗한 몸으로 새로운 집에 입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합시다.

5. 교회 일이든, 직장 일이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힘씁니까? 언젠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을 안다면 삶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은 확실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도 명확한 진리입니다. 사실 우리는 믿음을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삶과 행동을 등한시하는 잘못을 자주 범해 왔습니다. 구원받았기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만큼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증명하는 방법이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삶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충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됨을 항상 기억하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그리스도의 향기

[고린도후서 2장 12절~17절]
12절 -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절 -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절 -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절 -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절 -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절 -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1. 바울은 디도를 만나지 못해 편치 않은 마음으로 마게도냐로 갑니다(13절). 그러면서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무엇입니까?(14절)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이기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향기를 풍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 당시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할 때 거리에 향연이 가득하도록 향을 피웠습니다. 바울은 그 풍습에 빗대어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언합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셨기에 그분에게 붙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승리자인 것입니다. 어떤 것도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새 생명을 맛본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세상에 전파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승리를 나타내는 향기처럼 온 세상을 뒤덮을 것입니다. 이렇게 전해진 복음은 사람들을 사로잡아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는 다른 사람에게로, 다른 지역으로 끊이지 않고 퍼져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어서 그것이 전해지기만 하면 사람들은 죄의 사슬에서 풀려나 그리스도의 종이 되게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2. 바울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입니까? 이것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과 복음을 거절한 사람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나타납니까?(15~16절)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하지만 그 향기는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에겐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이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겐 영생에 이르게 하는 냄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승리의 향기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향기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 군대가 개선할 때 수많은 포로를 이끌고 왔습니다. 포로들은 개선 행진이 끝나면 곧바로 처형될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코에 스며드는 냄새는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공포였고 죽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풍기는 냄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겐 영생을 주는 아름다운 소식이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에겐 사형 선고와 같습니다. 같은 냄새라도 로마 시민과 전쟁 포로가 느끼는 것이 다르듯이, 복음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에겐 기쁜 소식이지만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에겐 저주처럼 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어떤 사람에게 생명의 향기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 죽음의 냄새로 느껴질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는 복음의 향기를 전할 뿐이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3. 많은 사람이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행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까?(17절)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탓하거나 그들과 섞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함으로써 자신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에 대해 소위 말하는 예수쟁이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나의 행실과 상관없이 선포돼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설령 나의 모습이 온전하지 못하고 행실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그것을 듣는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향기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는 방법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나의 생각이나 세상의 사조들을 섞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을 설득시키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면 그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복음을 순전하게 전하면, 내게 있는 그리스도의 향기는 멀리 강력하게 풍길 것입니다.

4. 겸손, 섬김, 배려의 향기 등 상대방에게서 느낄 수 있는 내면의 향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서로 돌아가면서 나누고 축복하십시오.
우리는 겸손한 사람에게서, 이웃을 배려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사람, 강자에게 약하면서도 약자에게 거들먹거리는 사람에게선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인격에서 풍기는 향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모를 치장하는 데 많은 물질과 수고를 들이지만, 내면을 가꾸는 데 소홀합니다. 외모에 대한 치장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다시 치장을 반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면을 가꾸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좋은 향기를 풍기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알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데 최선을 다하십시오.

5. 최근에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널리 전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도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증인의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널리 전해야 하는 사명을 소홀히 여깁니다. 일 년에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만 소수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열심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지금 당장 예수 그리스도를 가족, 이웃, 직장 동료들에게 전하십시오.

출처 : 생명의 삶

제목 : 자유함을 누릴 사람 (피종진 목사)

 

[고린도후서 3장 12절~18절]

12절 -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절 -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절 -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절 -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절 -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절 - 주는 영이시닌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절 -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사람이 태어나서 자유를 속박당하고, 또 자유를 누리지 못한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다. 국가가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그 주권을 빼앗기게 되면 개인의 이름도 나라의 모든 물자까지도 빼앗겨버리고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가 상실된다. 또 사람이 질병으로 인하여 병석에 누워있을 때에 얼마나 자유스럽지 못한가?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자유를 잃었다는 말이다.

또 자기의 영이 어두움의 영에 사로잡혀서 시달리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귀신이 지저귀는 대로 따라서 입술이 같이 움직여진다. 그리고 갈 곳과 안갈 곳을 분간하지 못하고 귀신이 이끄는대로 돌아다니고 길거리에 방황하는 그런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모든 것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어떤 사람은 죄악에 포로가 되어서 항상 죄를 범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죄로 인해서 기쁨을 상실한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이 단절되면 심령의 기갈과 생활의 빈곤이 오게 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을 상실해버린다.
스페인의 한 극작가는 ‘자유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자유’란 히브리어에 보면 ‘붙들어 맨데서 풀어준다, 구속되어 갇힌데서 석방을 받는다’라는 의미가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어딘가에 결박되어 있다. 기쁨이 결박되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마저도 결박되어 다른 사람에게 베풀줄도 모르고 누릴줄도 모르는 이런 사람도 있다. 또 어딘가에 갇혀있다. 이 넓고 넓은 우주 공간에 살면서도 어딘가에 갇혀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넓고 넓은 우주 공간의 무대를 멋진 연기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각본으로 하여 천군천사와 함께 잘 연출해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자유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이다. (17절)
하나님은 영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안보이는 것 같아도 항상 우리 곁에 능력과 권세로 역사해주시고, 사랑과 은총과 긍휼과 자비로 역사해주시며, 한없는 축복으로 우리 곁에서 역사해주시는줄 믿으시기 바란다. 
  -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마가복음 16:15~16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모든 죄에서 해방의 길을 열어주셨지만 주의 영이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고, 또 육신의 인성과 혈기와 그리고 육신의 욕망 속에서 욕망의 늪을 헤매다가 지쳐 쓰러져 탄식하고 후회하며, 낙심하고 슬퍼하면서 좌절과 절망 속에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얼마나 자기 삶이 괴로우면 스스로 자기 삶을 포기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 얼마나 분노와 혈기가 강하면 스스로 자폭 테러범이 되겠는가? 오늘 이 땅에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어딘가에 매여서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를 상실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기본적인 축복마저 상실해버리고 어려움 가운데 사는 인생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사시기 바란다. 물질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질병으로 인하여 속박되지 말며, 악한 사람들이 가슴에 상처 준다고 그 일 때문에 잠 못 이루는 그런 불행의 밤이 되지 말고, 악한 자들의 꾀임에 빠져서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성령의 능력 안에서 늘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은 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교회에 다녀도 주의 영이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 로마서 8:9후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 안에 참 자유가 있고, 성령 안에 참 기쁨이 있다. 성령 안에 새생명의 역사가 함께하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성령이 함께하면 악한 자는 선하게 되고, 강퍅한 자는 부드러워진다.
인간의 노력과 수단과 방법으로 안되어도 하나님의 성령은 되게 하시기 때문에(슥 4:6) 이 세상에서 제일 성공자는 성령님과 함께하는 사람이다.

  - 스가랴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성령님을 앞세우는 사람이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언제나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기쁨을 줄 뿐만 아니라 나를 미워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
몽테스키는 ‘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권리이다.’라고 말했다. 성경에 허락한 것은 다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항상 기뻐하라고 했는데, 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가? 기쁨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평안하라고 했는데, 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가? 평안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복된 자가 되라고 했는데 왜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한 생활을 하는가? 복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오늘 주의 성령이 함께함으로 모든 빼앗긴 것을 회복하고 참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2. 율법에서 벗어나 주의 은혜에 거하는 사람이다. (15~16절)
여기에서 말하는 수건은 ‘율법적인 것’을 의미한다. 구약의 율법이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메시야다. 율법의 수건이 벗겨졌을 때 은혜의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
율법적인 사람보다도 은혜적인 사람이 더 좋다. 무슨 잘못한 것을 지적해서 책망하려고 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남을 책망만 하다가 죽는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가 책망하면서도 자기를 모른다. 남을 칭찬하다 보면 자기의 좋은 점을 계발시킨다. 그리고 자기에게도 기쁨이 있게 된다.
누구든지 율법의 잣대로 재면 흠이 없는 사람이 없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다 죄인이고, 의인은 하나도 없다(롬 3:10). 그러나 주님께서는 죽을 사람을 살게 해주시고, 망할 사람을 성공하게 해주신다. 살인 강도와 창녀도 다 주의 나라에 임할 수 있도록 축복의 길과 영생의 길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세계에 거할 때에 강 같은 기쁨이 넘치게 된다. 

3.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사람이다.
  - 로마서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사람, 이 사람이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에는 다 죄의 종이었다. 이 죄를 누가 해결해줄 수 있을까? 예수의 피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요일 1:7).

  -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해방’은 자유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이제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다. 우리는 신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주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롬 8:15).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됨으로 주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사시길 바란다.
내가 내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자유가 아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질서 안에서 우리에게 복을 누리게 하신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에 하나님은 저들로 하여금 각 지파별로 족장과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우고 항오를 지어서 전진하게 하셨다. 통신수단도 발달되지 못한 시대에 얼마나 통솔하기가 어려웠겠는가? 그래도 질서있게 전진했을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신약시대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도 모두 50명씩 질서있게 앉게 한 후 축사하고 나누어주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다(고전 14:33).

  - 고린도전서 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귀신들은 어지럽고 복잡한 것을 좋아한다.
  - 잠언 5:22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악인은 죄의 줄에 매여 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자에게는 죄의 사슬에서 풀어주셨다.

  -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4. 하나님의 직분이 부여된 자이다.
  - 고린도후서 3: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의의 직분이란 복음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직분이다. 이 직분은 영광의 직분이다. 하나님의 직분이 부여된 자에게 하나님께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여 영광을 돌리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좀 부족해도 채워주신다. 우리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일할 수 있도록 배후에서 역사해 주실줄 믿으시기 바란다. 주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아멘’으로 순종하고 나서기만 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충성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 고린도후서 4:1~2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우리가 직분을 감당할 때에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후회하면 안된다. 가나안을 향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이 전진한 것처럼 직분의 길에서 전진하시길 바란다.
  - 누가복음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주의 성령이 임한 우리가 복음을 전함으로 죄의 포로된 자가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저주 받을 자가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항상 성령 충만하여 성령과 함께하며, 율법에서 벗어나 주의 은혜에 거하고,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며,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 부여되었을 때 ‘아멘’으로 순종하고 열심히 충성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참 자유를 영원토록 누리며 사시기를 바란다.

제목 : 겉사람과 속사람 (피종진 목사)

[고린도후서 4장 16절~18절]
16절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절 -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절 -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의 육체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낡고 노쇠해지기 마련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역 중에 당하는 고난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다. 선교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매를 맞고 온갖 수고를 하며 굶주리고 헐벗었던 바울의 겉모습은 일반 사람에 비해 더욱 노쇠해 보이고 볼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라고 고백했다.

겉사람과 속사람의 의미를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겉사람은 육신을 가리키고, 속사람은 영을 가리킨다.
겉사람이란 단순히 시공간적인 한계를 지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연약한 육체를 가리킨다. 육체를 따라사는 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라 살게 되고(엡 4:2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성령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며(고전 2:14), 선에 대한 간절한 소원은 있으나 실제로 원하는 선을 행할 수 없다(롬 7:18).

  - 에베소서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 로마서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그러나 속사람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을 가리킨다. 우리의 속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며, 항상 기도에 힘쓰고, 회개의 생활을 통해 새로워질 수 있다. 

2. 겉사람은 땅의 것으로 만족하고, 속사람은 신령한 것으로 만족한다.
땅의 것으로 만족하는 겉사람은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

  - 디모데후서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그러나 신령한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속사람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통해 부족한 상황에서도 풍성함을 잃지 않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게 된다.

  - 이사야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게 되는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땅의 것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계명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 시편 107:10~11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3. 겉사람은 잠시 동안 존재하나, 속사람은 영원히 존재한다.
겉사람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이(약 4:14),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이(시 144:4) 잠시 동안만 존재하는 유한한 존재이다.

  - 야고보서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시편 144: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또한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존재이기도 하다.

  - 전도서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그러나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속사람은 영원히 존재한다.

  -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본문 18절에 보면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했다. 

겉사람 즉 육신을 위해 땅의 것으로 만족하며 살다가 안개나 그림자와 같이 사라지는 인생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 신령한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 속사람이 새로워져서 영원한 삶을 보장받으며 다가오는 새해에도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보이지 않는 것"

[고린도후서 4장 18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 땅에서 순례길을 가는 동안 앞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면류관이 앞에 놓여 있으니 우리의 목적은 앞을 바라보고 계속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든 그것이 소망이든, 기쁨이든, 위로든, 사랑의 영감이든, 아무튼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미래라는 커다란 목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미래를 바라볼 때, 죄가 쫓겨나고 죄와 사망의 몸이 멸망당하며, 우리 영혼이 온전해져 빛의 자녀들이 받아 누릴 기업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더 멀리 바라보면 성도의 밝아진 두 눈에 사망의 강을 지나고 음침한 냇물을 건너 저 멀리 빛의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천성이 보일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이 그 진주문 안으로 들어가 승리자 이상의 환영을 받으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씌워 주시는 면류관을 받아 쓰고 그의 팔에 안겨 그와 함께 영화롭게 되어 그리스도의 보좌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이기고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아 계신 것처럼 말입니다. 앞으로 있을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틀림없이 과거의 어둠과 현재의 침울함이 물러갈 것입니다. 천국에서 그 기쁨들을 맛볼 때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한 슬픔들이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땅을 곧 떠날 것입니다. 온갖 의심을 버리십시오. 사망은 좁은 개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개울을 곧 건널 것입니다.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 이 땅의 시간에 비하면 영원은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사망은 순식간에 지나지만 불멸은 얼마나 무한합니까!
지금도 나는 에스골의 열매들을 먹으며 그 문 안에 있는 샘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천성까지 가는 길은 아주 짧기 때문에 우리는 곧 거기 도착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내리누르는 온갖 염려들로
내 마음이 찢어질 때에도
천국에 갈 생각만 하면
그 절망에서 벗어나 피난처를 발견하게 된다오.
이 생의 순례길이 다 끝날 때까지
믿음의 밝은 눈이 나를 지탱해 주리라.
두려움에 시달리고 환난으로 고통당한다 해도
나는 마침내 내 본향 천국에 도착할 것이라오.”

출처 : 스펄전의 아침묵상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의 일을 잘 해내기 위한 필수 요건 중 하나는 바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사가 자기 힘만 믿고 전쟁터로 행진해 간다면, “나는 내가 이길 거라는 사실을 안다. 나의 이 오른팔과 손에 든 검이 내게 승리를 안겨줄 것이다”라고 자랑하며 나간다면, 그는 틀림없이 패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힘만 믿고 행진하는 사람과 함께 가시지 않습니다. 이처럼 승리할 것으로 자만하는 사람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며 싸우러 나간 사람은 반드시 패하여 치욕으로 얼룩진 갑옷을 입은 채 화려했던 깃발을 질질 끌며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봉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한 것은 어떤 것도 취하지 않으십니다. 이 땅의 열매에 불과한 것들은 모두 다 내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천국에서 뿌린 씨로 은혜의 단비를 맞고 그의 사랑의 태양을 받아 익은 곡식만 거두어 들이십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비우신 후에야 비로소 그 안을 그의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의 창고를 깨끗이 청소한 다음에야 비로소 가장 좋은 밀로 그 곳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은 물이 차고 넘치지만 그 안에 이 땅에서 솟아나는 물은 한 방울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전쟁터에서 그가 친히 부여하신 힘 이외의 다른 어떤 힘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지금 자신의 연약함에 대해 애통하고 계십니까? 담대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기 전에 먼저 자신의 약함을 의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비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기 위한 준비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 것은 곧 되살아나기 위한 준비에 불과합니다.

“나는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합니다.
은혜가 나의 방패요 그리스도가 나의 찬양이십니다.”


출처 : 스펄전의 아침묵상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