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에서 감사의 열매를 맺는 믿음

[누가복음 17장 11절~21절]
11절 -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절 -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절 -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절 -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절 -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절 -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절 -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절 -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20절 -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절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긍휼을 구하는 나병 환자 10명에게 주님은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 하십니다. 가다가 모두 깨끗해졌으나 사마리아인만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는 바리새인의 질문에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게 임하며, 우리 안에 있다 하십니다.

1. 홀로 돌아와 감사한 사람 (11~19절)
신앙은 받은 은혜에 감사할 때 더욱 빛이 납니다. 성경 시대 사람들은 나병 환자를 부정한 자로 여겼고, 그 병의 전염성 때문에 공동체에서 격리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나병 환자들의 외침에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그들이 말씀에 순종해서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 모두 몸이 깨끗해지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 사마리아 사람 1명만 저주받은 질병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분을 기억하고,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현합니다. 나머지 9명의 나병 환자처럼 고침받은 것에 만족하면 기적을 경험한 것에 그칠 뿐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신에게 기적을 베푸신 주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분께 영광 돌릴 때,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에서 예수님의 어떤 마음이 느껴지나요? 어떻게 하면 은혜의 선물보다 은혜를 주시는 주님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2. 하나님 나라의 특성 (20~21절)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현존입니다. 로마 통치 아래 있던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와서 자기 민족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울 것을 고대했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언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으로 시작되었고, 성령을 통해 각 사람에게 임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교제하는 시간과 공간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나무가 되듯, 점점 확산되어 온 세상을 점령할 것입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특성이 어떠하다고 하시나요? 가정과 일터 등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저를 세상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치유받고 구원받은 사마리아인 처럼 매일매일 주님이 제게 베푸신 일들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기 원합니다. 제 마음이 오로지 주님께로만 향하며, 제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용서와 충성으로 순종하는 종

[누가복음 17장 1절~10절]
1절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절 -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절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절 -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절 -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절 -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절 -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절 -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절 -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절 -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삶의 양식을 내려놓고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는 예수님이 전파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그분과 동행하고 동거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선생과 제자의 관계이기도 했지만, 주인과 종의 관계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체포되시고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당하시기 전날, 종이 아닌 친구 관계로 선포되기는 했지만(요 15:12~17), 사실상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종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제자들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춰 잃어버린 한 영혼을 되찾는 것과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재물을 사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했습니다. 17:1~10절에는 4개의 주제가 들어 있습니다. 실족, 용서, 믿음, 무익한 종이 그것입니다. 이 4개의 주제는 각기 다른 내용을 말하지만, 이 모두를 하나로 엮는 큰 틀은 제자도입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은 죄를 범한 형제와 회개하는 형제에게 각각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시나요?(3~4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하루에 일곱 번 회개하더라도 모두 용서하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은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 공동체 안에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역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작은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게 되는 부정적인 역동들 중 ‘실족하게 하는 것’과 ‘형제가 죄를 범하고서 회개하는 경우의 대처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 ‘실족하게 하는 것’(헬, 스칸달론)은 본래 ‘짐승을 잡는 올가미나 함정’을 가리키는 말로, ‘고의적으로 올무를 만들어 다른 사람을 영적, 육적 죄악에 빠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스스로 조심하라’고 경고하십니다. 둘째, 공동체 안에서 형제가 죄를 범하면 두 가지의 단계로 대처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는 죄를 범한 형제에게 ‘이것이 하나님 앞에 죄악이다’라는 것을 경고해야 하고, 후에 그 형제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용서의 범위가 놀랍습니다.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면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과 나눔
남을 실족시켜 시험에 들게 하거나 죄짓게 한 적은 없나요? 죄지은 지체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떠하며,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믿음의 공동체라 할지라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와 교도소의 공통점은 ‘죄인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교도소는 ‘들킨 죄인들이 모인 곳’이고, 교회는 ‘안 들킨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죄 문제가 있게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 주고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고 말합니다(롬 14:1). 또한 ‘믿는 사람들끼리 자기의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돌보아 주고’(빌 2:4), ‘믿음의 가정들에게 착한 일을 하라’(갈 6:10)고 권면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서로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서로에게 죄를 고하고 용서하고 용납하는 태도를 훈련해야’ 합니다(6:37, 11:4; 마 6:14~15; 18:21~35; 막 11:25; 엡 4:32; 골 3:13).

2. 밭에서 온종일 수고하고 또 주인을 위해 저녁 식사까지 섬긴 종이 해야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종의 의무는 무엇인가요?(7~10절)
종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종이 할 수 있는 최선과 해야 할 의무는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순종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본체이셨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나아가 죽기까지 복종해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순종으로 감당하셨습니다(빌 2:6~8).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종의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종’(헬, 둘로스)은 밝을 때에는 농사일이든 목축일이든 주인의 명을 따라 땀을 흘리며 일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주인의 저녁식사를 준비해 대접해야 했습니다. 외부의 일과가 끝났더라도 내부에서의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종은 어떤 일이든 해 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로 ‘띠를 띠고’ 여러 음식을 주인의 식성에 맞게 ‘적절히 준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해 ‘수종들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종이 이처럼 충성을 다해 섬겼다고 해서 주인에게 칭찬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종에게는 ‘인권’이 아닌 ‘임무’만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사역을 다 행한 후에도 스스로를 가리켜 ‘무익한 종’(헬, 둘로스 아크레이오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적용과 나눔
비유에 나오는 종의 삶과 제자의 삶은 어떻게 닮았나요? 내가 하는 일을 남이 알아주지 않아 마음이 상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예수님의 제자는 무익한 종의 자세로 사는 사람입니다. 종에게는 소유권이 없습니다. 주님이 잠시 맡긴 일을 관리하고 섬길 뿐입니다. 종은 가진 것도 없으며, 생명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종은 주인에게 절대 순종합니다. 무슨 일을 왜 하는지, 언제 하는지, 어디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따지지 않고 순종합니다. 종은 이치를 따지거나 판단할 권리가 없고, 불평할 권리도 없습니다. 종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종은 대가나 보상이 없어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인을 섬깁니다. 주인을 위해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 주인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시중을 들고, 주인이 식사를 마친 후에야 먹고 쉬지만, 그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도, 물질적 보상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가 한 일들은 종으로서 해야 하는 마땅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종에게는 절대 의무, 절대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종의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면서도 자기 의로 행하거나, 온전히 헌신하지 못한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거나,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제자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1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 어느 공동체든 서로를 실족하게 하는 문제, 용서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자의 삶에서는 날마다 결단과 순종이 이어져야 합니다. 제자는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실족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돌보아야 합니다. 또한 지체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들을 축복하며,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제자는 모든 일을 충성되게 감당하고도 “나는 주님 앞에 무익한 종입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자신의 수고가 기억되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 수고와 헌신을 기억하시고 풍성한 하늘 상급을 예비하십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회개의 권면과 용서와 사랑의 섬김으로 주님 안에서 온전히 연합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세워 주고, 제 믿음 또한 굳건히 세워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용서하고, 믿고, 충성하는 제자의 삶

[누가복음 17장 1절~10절]
1절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절 -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절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절 -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절 -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절 -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절 -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절 -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절 -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절 -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작은 자라도 실족시키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시며, 하루에 7번이라도 죄짓고 회개하는 형제를 용서하라 하십니다. 믿음을 더해 달라는 사도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뽕나무도 바다에 심기게 할 수 있다 하십니다. 종은 명령받은 대로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1. 용서의 삶 (1~4절)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데는 큰 형벌이 따릅니다. 그리스도인은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삼가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삶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또한 형제가 죄를 범하면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만약 형제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몇 번이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푸신 용서를 진정으로 경험한 사람은 용서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 주님이 말씀하신 용서의 횟수는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공동체에서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 편인가요?

2. 믿음의 삶 (5~6절)
용서에는 의지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에 관해 교훈하십니다. 이는 진실된 믿음, 참되고 바른 믿음을 가리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불가능한 용서는 없습니다. 이런 믿음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로 뽕나무를 바다에 심기게 하는 것 같은 불가능한 역사가 일상이 됩니다.
*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어떤 믿음을 가리키나요? 지금 내가 순전한 믿음으로 다시 시도할 일은 무엇인가요?

3. 충성된 삶 (7~10절)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고전 4:2). 예수님은 무익한 종 이야기를 통해 제자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는 자신이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또 충성과 순종이, 종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는 점을 기억하고 어떤 대가도 바라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잊지 않는다면, 칭찬과 보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 종이 마땅히 해야 할 고백은 무엇인가요? 나는 일을 마친 후에 주로 어떤 고백을 해 왔는지 돌아보세요.

오늘의 기도
용서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함을 알면서도 마음이 이를 허락하지 않을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이기적이고 완고한 제 마음을 주님의 사랑으로 허물어 주소서. 주님이 주시는 긍휼의 마음으로 남을 섬기는 화평의 사람,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영원을 좌우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4절~31절]

14절 -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절 -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절 -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18절 -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19절 -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절 -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절 -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절 -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절 -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절 -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절 -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절 -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절 -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절 -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절 -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절 -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절 -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이 말씀을 듣고 비웃자, 주님은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여기고 높임받는 것을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하십니다. 그리고 죽은 후 음부에서 고통당하는 부자와, 아브라함 품에서 위로받는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드십니다. 생전에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합니다.

1.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받을 미움 (14~18절)
경건하게 산다고 하면서 돈을 사랑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시는 예수님을 비웃습니다. 율법을 잘 지킨 결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물질의 복도 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높임받는 것이 하나님께는 미움받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며 사람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재물이나 인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임을 강조하십니다. 또한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예로 들어, 율법의 정신은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돈이나 물질이 악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사랑한다면, 이는 영적 간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사람에게 높임받는 것이 하나님께 미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물이나 인기에 마음을 두지 않도록 마음에 새길 하나님 말씀은 무엇인가요?

2. 역전된 인생 (19~31절)
이 땅의 부자가 천국 부자는 아닙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삶의 격차는 엄청나게 컸지만, 그들은 죽음이라는 동일한 종말을 맞습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 그들의 상황은 역전됩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지만, 부자는 음부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당합니다. 살아 있을 때 고통과 굶주림을 당했던 나사로는 이제 위로를 받게 되었고, 살아 있을 때 온갖 좋은 것을 누린 부자는 괴로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긍휼을 호소하지만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습니다. 죽은 후 긍휼 없는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며, 이 땅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실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부자와 나사로가 죽고 나서 어떤 반전이 일어났나요? 성공하고 부자가 되길 바라는 세상 풍토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삶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의 말씀이 저를 교훈함으로, 제 속에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더 커 가게 하소서. 충만한 은혜 안에 잠겨,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는 진정한 고백이 제게서 흘러나오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이 땅의 재물은 영혼 구원을 위한 도구

[누가복음 16장 1절~13절]
1절 -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절 -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절 -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절 -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절 -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절 -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절 -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절 -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절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절 -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절 -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절 -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절 -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주인 소유를 낭비한 청지기가 직분을 빼앗기자 사람들의 빚을 감면해 준 지혜로운 행동으로 칭찬받은 비유를 드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시며,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한다 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 섬길 수 없습니다.

1. 불의한 청지기 비유 (1~8절)
이 땅의 재물은 하늘의 친구를 얻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부자의 재물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해 해고될 위기에 처합니다. 그가 실직 이후를 위해 세운 대책은 일종의 문서 위조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 채무의 정도를 본래보다 적게 적도록 합니다. 빚을 줄여 줌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이에 주인은 청지기가 지혜롭게 처신했다며 칭찬합니다. 청지기의 행동은 자신의 앞날을 대비할 뿐 아니라 채무자들의 부담을 줄여 줌으써 주인에게 존경과 명예를 안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을 속인 것은 옳지 않지만, 앞날을 준비하는 지혜는 배울 만합니다. 이 땅의 삶에서는 불신자들이 신자들보다 더 현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 불의한 청지기가 사람들의 채무를 줄여 준 일이 왜 주인에게 칭찬거리가 되었을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배울 만한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인가요?

2. 작은 것에 충성하는 사람의 복 (9~13절)
재물에 대한 태도는 영적 성숙의 척도입니다. 예수님은 재물이 불의하다고 하십니다. 재물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땅에서만 유효하고 하늘로까지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재물은 아무리 많이 모아도, 우리가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땅에서 지극히 작은 것(재물)을 제대로 사용할 때 하늘에서 영원한 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재물로 친구를 만들듯이, 성도에게 재물은 자신의 유익이 아닌 '사람'을 얻는 도구여야 합니다. 그럴 때 재물을 지혜롭고 가치있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재물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충성되게 재물을 관리해야 합니다.
* 예수님이 재물을 불의하다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공동체와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돈 때문에 감정과 신앙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크신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섬기며 의지하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물질을 헛되이 쓰지 않고 지혜롭게 선용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아버지에게는 탕자도 존귀한 아들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32절]

11절 -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절 -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절 -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절 -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절 -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절 -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절 -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절 -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절 -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절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절 -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절 -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절 -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절 -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절 -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절 -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절 -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절 -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절 -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절 -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절 -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절 -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예수님이 또 비유를 드십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분깃을 받아 먼 나라에서 탕진하고 주립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돌아가 죄를 고백하고, 아버지는 그를 환대합니다. 이를 본 큰 아들의 불평에 아버지는 잃은 아들을 얻었으니 기뻐하는 게 마땅하다고 합니다.

1. 절망의 끝에서 아버지 품으로 (11~19절)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면 비천한 인생으로 전락합니다. 유대 사회에서 재산 분배는 대개 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했을 때에 이루어집니다. 그럼에도 자기 몫의 재산을 요구하는 둘째 아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떠나 제멋대로 살려는 인간의 죄성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의 간섭을 떠나 먼 나라로 간 둘째 아들은 허랑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모두 허비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돼지의 먹이인 쥐엄 열매조차 얻지 못하자 굶주리는 신세가 됩니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둘째 아들은 그제야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음을 깨닫습니다. 인생의 밑바닥일지라도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할 때 회복이 시작됩니다.
*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나요?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인생은 각각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2. 아버지를 판단하는 큰 아들 (20~32절)
우리의 불순종과 배반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한결같습니다.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아버지는 멀리서 둘째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가 맞이합니다. 둘째 아들이 수없이 연습했을 참회의 고백에 무한한 자비, 무조건적인 용서로 환대합니다. 탕자를 영접하고 잔치까지 베푼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큰 아들은, 죄인의 친구인 예수님을 비방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미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음에도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한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베푼 아버지에 대해 첫째 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자비심 없이 좁은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생각으로 방탕한 동생을 경멸하고, 가장 가까워야 할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던 큰 아들에게서 제 모습을 봅니다. 시기심과 비교 의식을 버리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형제자매와 함께 누리며 함께 기뻐하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잃은 영혼 하나를 찾아낸 하늘의 기쁨

[누가복음 15장 1절~10절]
1절 -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절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절 -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절 -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절 -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절 -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절 -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나오는 것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잃은 양을 찾는 목자와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시며, 죄인이 회개하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최고의 기쁨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닙니다. 말씀을 들으러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 곁으로 가까이 나아옵니다. 이것은 이들이 단순한 소외 계층이 아니라,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입니다. 양은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고, 목자이신 예수님은 복음의 소리로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 전파에 힘써야 할 이유입니다. 한 드라크마를 잃은 여인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그것을 간절히 찾은 이야기도, 우리가 얼마나 힘써 복음의 빛을 비추어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잃은 영혼을 찾는 것은 전도자만의 기쁨이 아닙니다. 그들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늘과 땅의 교회가 함께 최고의 기쁨을 누립니다.

* 죄인들과 함께한다고 수군거리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답은 무엇인가요? 나는 주님 곁을 떠난 영혼을 찾아내는 영적 수고를 얼마나, 어떻게 하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헤아림과 헌신으로 십자가 지고 소금 맛을 내는 제자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
25절 -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절 -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절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절 -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절 -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절 -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절 -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절 -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절 -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절 -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절 -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주님은 가족과 목숨까지 미워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지 않으면 제자가 되지 못한다 하십니다. 제자가 되려면 망대 공사나 전쟁을 시작할 때처럼 계산하고 헤아려 볼 것이 있으며,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합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나 그 맛을 잃으면 쓸데없어 내버려집니다.

1. 제자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 (25~33절)
철저한 헌신을 위해서는 철저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그 대가를 미리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무작정 따르다가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 유혹을 받아 돌아서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가 첫 번째로 버릴 것은 혈육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혈육을 미워해야 합니다. 이것은 헬라어로 '덜 사랑하다'라는 뜻인데, 제자에게 사랑의 순서는 언제나 혈육보다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로 버릴 것은 돈입니다. 돈을 믿고 돈에 의존하다 보면 통제력을 잃고 돈의 주신이신 하나님마저 잊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제자의 길을 간다면, 그때 비로소 참된 제자도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떤 전제 조건들이 필요한가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맛을 잃은 소금 (34~35절)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섞이면 반반의 맛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맛만 남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소금은 불순물이 섞인 혼합물로 채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금으로 쓰려면 불순물을 제거해야 했는데, 걸러 내는 과정에서 염화 나트륨이 빠져나가 아무 쓸모 없는 광물 덩어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소금 비유는 예수님이 그분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를 향해 제자도를 가르치신 후 말씀하신 결론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에서 그들은 소금 맛을 내는 진짜 소금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제자의 전제 조건을 이행하지 않고 그저 그 길을 간다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어디에도 쓸데없어 내버려질 뿐입니다.
* 소금이 쓸데없어 내버져지는 경우는 언제인가요? 나는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맛을 지니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는 저를 돌아봅니다. 저를 새롭게 하소서. 그래서 제가 세상을 향해 파송된 제자로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사명에 충실하자

[누가복음 12장 41절~48절]
41절 -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절 -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절 -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절 -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절 -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절 -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절 -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절 -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옛날에 종을 많이 두고 있던 주인이 먼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의 성실성을 시험하기 위해서 일을 시켰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새끼줄을 가늘고 매끈하게 잘 꼬아 두거라'하고 당부하고 먼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그랬더니 술만 퍼마시고 노는 자도 있고, 남 일하는 것 방해나 하고 다니면서 '너만 주인한테 잘 보이려고 하느냐'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좋은 새끼를 꼬기는 하는데 되는대로 굵게 울퉁불퉁하게 꼬는 종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잘 받들어 충성스럽게 새끼를 가늘고 예쁘게 잘 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이 예기치 않은 때에 갑자기 돌아와서 시킨 일을 했나 안했나 점검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돈이 많이 들어있는 광을 열어 놓고 하는 말이 '너희들이 꼰 새끼줄에다 엽전을 꿰어가지고 나가 독립해 살아라'하는 것이었습니다. 놀기만한 사람이나 새끼줄을 울퉁불퉁하게 꼬은 사람은 하나도 돈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령도 피울 줄 모르고 충직하게 시키는대로 새끼줄을 잘 꼰 사람은 돈을 많이 꿰어가지고 나가 종에서 해방되어 독립해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와 비슷한 말씀으로 교훈하셨습니다.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서 주인의 종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고 하시면서 주인이 돌아올 때 주인의 분부대로 잘 한 사람은 복을 받아 주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48절에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모두 청지기로서 주인으로부터 많이 맡은 사람은 많이 책임이 있고 적게 맡은 사람은 적은 책임이 따른다는 생활의 원리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부강한 나라는 빈약한 나라들을 도와줄 책임이 있고 보통 사람보다 재능을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그 만큼 다른 사람보다 책임이 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받았으며 또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리가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구세주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이 한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기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옥으로 달음질 쳐 가던 멸망받을 인간이었습니다. 앞길이 캄캄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지옥을 무서운 고통과 후회의 장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옥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된 곳이며 온갖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옥으로부터 건지기 위해 구세주를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입니다.
만일 당신이 물에 빠져서 죽을 지경에 처해 있는데 어떤 사람이 뛰어들어와 당신을 구원해 주었다면 어떻겠는가 상상해 보십시오. 또 가령 당신이 불타는 빌딩 속에서 타죽게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들어와 끄집어 내서 구원해 주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고맙고 놀라운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일보다 더 놀라운 일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셔서 죄를 사하여 주시고 영원히 사는 천국을 주신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냈습니다. 이 제자들이 전도하며 놀라운 일을 행하고 돌아와서 자랑스럽게 보고 하기를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한다'고 할 때, '이런 이적을 행했다고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 나라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으로 우리는 귀한 것을 받았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갔을 때 우리는 얼마나 그의 편지를 간절히 기다립니까? 우체부를 만날 때마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해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고 성경이라고 하는 긴 편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성경은 꿀송이보다도 더 단 말씀으로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고 계시며 또한 이것은 우리의 인생 행로에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신경성 정신병을 앓고 있는 어느 부인이 의사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의사는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주 좋은 분이었습니다. 진찰을 다 해보고서 하는 말이 '부인에게는 별다른 약이 없으니까 이제는 매일 이 성경을 읽으십시오'하며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인은 '내가 아파서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으러 왔지 성경을 읽으라는 말을 들으러 여기 찾아왔느냐'고 화를 내더랍니다. 그런데 부인이 집에 돌아가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보다 어려운 일을 하라해도 할 터인데 하면서 매일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성경을 읽다보니까 정신 불안증도 노이로제도 차츰 차츰 없어지더니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이 부인이 의사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고맙습니다. 이제 다른 약 필요없습니다. 이 성경 하나면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신자라면 기도의 응답을 받아 본 경험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급할 때마다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으면서도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것이요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한 예로 유명한 부흥사 무디 목사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3,000불이 필요하더랍니다. 그 당시 3,000불은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하나님 사업을 위해서 3,000불이 필요한데 나는 돈을 구하러 나갈 시간도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모양으로라도 3,000불을 주십시오'하고 간절히 기도한 후 예배 드리러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어떤 부인이 무디 선생을 자꾸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 위원이 예배를 방해할까봐 자리로 돌려 보내면 또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디 목사님 눈에 띄어서 무디 목사님이 오라고 하니까 봉투를 하나 놓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난 다음 그 부인이 놓고 간 봉투가 궁금해서 뜯어 보았더니 그 봉투 속에는 3,000불짜리 수표가 들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3,000불이 처음에는 1,000불을 적어 놨다가 마음이 불안해서 2,000불을 적었는데 암만해도 성령께서 허락하는 것같지 않아서 또 3,000불로 고쳐서 가져 왔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가 짓는 죄의 용서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검은 구름과 같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죄의 구름을 걷어치우는 방법은 꼭 하나 있습니다.
요일 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여 용서함을 받아서 깨끗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죄사함 받는 길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고, 현세에도 평안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습니까?

다섯째, 천국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참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고 구원을 빼앗을 자도 없습니다. 구원받던 날 마치 천국문에 들어서는 것과 같은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인생 중에 놀랍고 행복한 날들을 가진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복된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천국 문을 들어가서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날인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행복한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약 1: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받은 것이 많습니다.

2.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주님은 적게 사랑하고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세상 일에 더 큰 충성을 바치는 일입니다. 남자가 결혼하면서 자기 아내의 사랑을 십분의 일만 받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원치 않는 것과 같습니다. 남자는 아내의 사랑 전부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게게 모든 것을 주신 분으로서 우리의 사랑 전부를 원하십니다.
사람의 심령에는 두가지 소리가 들리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음성이요, 하나는 세상의 음성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모든 세상적인 것의 배후에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어떤 소리를 따라가느냐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더 큰 사랑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신 분입니다.

둘째, 거룩한 생활을 요구하십니다.
'거룩한 생활'이라는 것은 꼭 빈틈이 없는 완전한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헌신적이고 구별되고 정결한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말이나 우리의 모습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속된 것을 버리고 거룩한 생활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셋째, 활동적인 봉사를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선하게 되는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행해야 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하나님께 봉사하기를 중지하면 당신은 안식을 얻을 수가 없고 당신은 녹이 슬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활동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가장 큰 기쁨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몸으로나, 물질로나, 시간으로나 봉사하고 활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넷째, 전도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죄라고 하는 무서운 병에 걸렸던 사람들인데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이 불치의 병을 고침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죄의 병에 걸린 채 영원히 죽어가고 지옥의 불로 떨어져 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먼저 구원받은 우리들이 그들에게 치료의 길, 살길을 알려줘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 성공적인 사업가 콜맨(Mr H.Coleman)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선한 사업을 위해서 도와준 샌디퍼(Dr. Sandifer)라는 총장님을 모시고 차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가고 있던 중 차를 세우더니 꽃 가게에 가서 꽃을 한아름 사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총장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니까 콜맨씨는 아무 대답도 안하더랍니다. 얼마 후 언덕 위에 초라한 무덤 앞으로 가서 꽃을 갖다 놓고는 머리를 숙여 한참을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총장님이 '여기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척의 무덤입니까?'하고 물으니까 '아니요, 이 분은 나를 예수 믿고 구원받게 전도해 주신 분입니다. 저는 이분께 감사하고 있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전도를 해야 합니다. 온 천하보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섯째, 충성된 청지기가 되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겨 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가 내 것이 아니라 하니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바르게 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가 돈 얘기만 하면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데 신앙이 바로 서지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성경은 물질을 바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경제적으로 바르게 행동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좋은 규칙을 주셨는데 바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를 하나님의 집에 가져오면 하늘문을 열어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실하게 십일조를 해본 사람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성실히 이행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고 축복하시고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학개서와 스가랴에 보면 성전을 건축해야 할 때 회피하고 게을리하면 비와 이슬이 그치고 돈을 벌어도 뚫어진 전대에 넣은 것같이 새어나가고 씨를 뿌려도 거두는 것이 적었는데 물질을 바쳐 건축을 시작한 날부터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십일조나 성전 건축이 하나님께로부터 축복받는 기회로 알고 다 동참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만의 계교로 하루 아침에 전멸 당하게 되었을 때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모르드개가 전달한 얘기가 있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3,14)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에스더, 네가 안해도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 사업을 하시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 네가 받은 축복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으면 너와 네 아비집은 멸망하리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한 구원과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에 충성을 다함으로써 축복받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 아 멘 -

천국 잔치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누가복음 14장 15절~24절]
15절 -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절 -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절 -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절 -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절 -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절 -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절 -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절 -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절 -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절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가 복되다 하니 예수님은 큰 잔치를 베푼 주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잔치에 초대된 자들이 모두 사양하자 노한 주인은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이들, 길 가던 사람을 강권해 들입니다. 전에 잔치에 청했던 자들은 한 명도 잔치를 맛보지 못합니다.

1. 초청을 사양하는 사람들 (15~20절)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약자를 대접하는 사람은 부활 때에 보상을 받는다고 하시자,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가 복되다고 한마디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사람들이 천국에서 복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땅에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에 선지자들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 잔치로 초청하셨습니다. 하지만 막상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자 사람들은 일상을 핑계로 초청을 거절합니다. 일상의 요구는 긴박한 듯 보이지만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진정 긴박한 것은 오늘이라도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영혼의 문제입니다.
* 사람들이 잔치에 초청을 받았을 때 사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일상의 요구를 우선시하며 신앙 생활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지 않나요?

2. 잔치를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 (21~24절)
하나님 나라 잔치의 초청을 거부하면 영원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은 먼저 초청을 받아 잔치에 참여할 우선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온통 땅에 매여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거부하고, 마침내 그분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합니다. 잔치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러나 잔치를 연기하지 않고 종들을 보내 소외된 사람들을 데려다 집을 채우십니다. 구속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이방인들을 향하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했지만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늦추지 못합니다. 초청을 받았으나 거절하는 자는 스스로 영원한 멸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이 거부하자, 주인은 종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 하나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계속 미루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을 믿지 않는 주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소서. 가려진 눈과 귀를 열어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구원을 그들이 얻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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