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시인하는 참신앙인

[누가복음 12장 1절~12절]
1절 -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2절 -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절 -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4절 -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절 -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절 -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절 -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8절 -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절 -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10절 -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1절 -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절 -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분을 두려워하며, 사람 앞에서 주를 시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머리털까지 세시며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세상 권세 앞에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1. 외식을 주의하라 (1~3절)
하나님의 심판 앞에 드러나지 않을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인기에 동요되었을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바리새인과 같은 외식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쉽게 거짓과 위선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그분 앞에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예수님이 외식을 주의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기 위해 어떤 결단이 필요한가요?

2.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4~7절)
하나님을 의지함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몸만 죽이는 사람들이 아닌 영혼까지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한정된 권세를 바라보는 대신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분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우리 삶의 작은 부분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세밀한 섭리로 돌보고 계심을 경험하며 그분만을 의지하나요?

3. 사람 앞에서 인자를 시인하라 (8~12절)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인정을 얻습니다. 심판대 앞에 설 때, 예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지닌 사람은 담대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권세를 두려워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삽니다.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세상 권세 앞에서도 당당하게 신앙을 드러내며, 매 순간 성령께 도움과 가르침을 받습니다.
* 나의 말과 행실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부분은 없나요? 예수님을 온전히 시인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시선에 연연하며 외식하는 자처럼 굳어진 제 마음을 빛 가운데 드러내 주시고, 새롭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늘 기억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영적 지도자는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 37절~54절]
37절 -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절 -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절 -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절 -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절 -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42절 -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절 -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절 -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절 -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절 -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절 -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절 -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절 -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절 -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절 -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절 -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절 -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절 -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예수님이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자, 바리새인들이 이상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은 겉은 깨끗이 하나 속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며,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백성을 막는 율법 교사도 책망하십니다. 이에 그들이 예수님을 책잡고자 노립니다.

1. 바리새인의 외식에 대한 책망 (37~44절)
하나님은 마음의 의도와 일치된 행동을 원하십니다. 한 바리새인이 식사에 초대받은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않으시자 이상하게 여깁니다. 바리새인은 집에 들어갈 때 죄악 된 세상과 접촉한 자신의 부정을 씻어 내려고 손을 물로 씻는 전통을 행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겉과 속이 다른 바리새인의 모습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거룩하게 보이지만 마음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의도가 깨끗해야 모든 것이 깨끗해짐을 강조하십니다. 외식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린 결과며, 이는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스스로 높아지기를 기뻐하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성도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늘 마음을 깨끗이 씻어 그분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내가 드리는 예배, 기도, QT, 구제, 섬김은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의도로 행해지고 있나요? 혹시 다른 의도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세요.

2. 율법 교사의 위선에 대한 책망 (45~54절)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은 영혼을 살립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외식을 지적하자 한 율법 교사가 자신들까지 모욕했다고 반발합니다. 그들이 바리새인의 규범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율법 교사의 문제는 온갖 지식으로 율법의 세세한 규정들을 재정해 성경을 사람들이 지기 어려운 짐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식의 도구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도록 사람들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말씀을 먼저 받은 우리는 바른 진리 위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 율법 교사가 지식의 도구를 가지고 범한 죄악은 무엇인가요?
* 바른 진리와 건강한 해석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 아시는 주님, 지금까지 저는 외적 행위만을 발전시키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 제 안이 거룩하고 정결해지도록 날마다 말씀 앞에 회개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말씀의 빛으로 자신과 세상을 비추는 사람

[누가복음 11장 29절~36절]
29절 -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절 -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절 -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절 -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33절 -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절 -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절 -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절 -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하십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며, 솔로몬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의 등불인 눈을 밝혀 자신 안에 어둠이 있는지 살피라 하십니다.

1.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 (29~32절)
표적을 구하는 것은 악한 세대의 표징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이들을 향해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난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또한 요나가 니느웨에 전한 회개의 메시지도 예수님이 이 세대에 보여 주실 표적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면 구원을 얻고 거부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찾아왔고, 니느웨 사람들도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했습니다. 솔로몬보다, 요나보다 크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는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 표적을 구하던 악한 세대의 모습이 나와 공동체에 있지는 않나요?
*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는 주님 앞에 어떤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2. 몸의 등불인 눈 (33~36절)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참빛이십니다. 하지만 영적인 어둠에 갇혀 있는 사람은 등불을 켜서 움 속에 두듯이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도 거부하고, 자기 의를 드러내며 죄악으로 헤매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 영혼과 삶을 비추시는 그분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 간직하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빛을 비추시어 우리 영혼과 삶이 온전히 밝아지는 것입니다. 눈이 나쁜 악한 세대는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진리의 등불을 감추려 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이 어둡지 않은지 돌아보고 말씀의 빛으로 새롭게 되어 주님을 밝히 깨닫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 설교를 듣거나 말씀을 묵상할 때, 내 영혼과 삶을 비추는 말씀의 빛으로 충만해지기 위해 간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말씀을 제 삶의 바깥에 두고 벽을 쌓으며 스스로 유리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주님의 말씀이 제 안을 밝히며 깨끗하게 하시길, 그래서 다른 이들도 그 빛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귀신의 왕도 굴복시키는 만왕의 왕

[누가복음 11장 14절~28절]
14절 -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절 -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절 -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절 -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절 -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절 -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절 -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절 -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절 -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절 -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24절 -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절 -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절 -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27절 -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에게 바알세불에 힘입어 귀신을 좇는다 하고, 하늘의 표적을 구하는 무리를 예수님이 꾸짖으십니다. 내쫓겼던 귀신이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다시 들어가니, 그 사람의 형편이 더 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 예수님과 바알세불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표적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확실한 표적을 보고도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합니다. 아무리 강한 귀신이라도 더 강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여지없이 굴복합니다. 귀신이 떠나면 사람의 정신이 온전해지고 삶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인생을 다스리시지 않으면 훨씬 더 악한 귀신들이 그에게 찾아와 이전보다 상태가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죄 씻음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삶이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28절). 세상에서 가장 강하신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 인생을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 나라가 내 삶에 이루어지고 있나요?
* 욕심과 죄악에 더는 얽매이지 않고 말씀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기도 응답에 나타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누가복음 11장 1절~13절]
1절 -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절 -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절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5절 -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절 -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절 -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절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절 -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절 -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절 -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절 -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절 -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한 제자가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밤중에 벗에게 떡을 구하는 이의 간절함처럼 끈질기고 지속적으로 기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생선을 구할 때 뱀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1.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1~4절)
기도는 최고의 모범을 보이신 주님께 배워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다른 대상을 향해 기도하거나 기도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 즉 그분의 성품과 능력을 사람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서는 안 됩니다. 그분이 우리와 구별되는 거룩한 분이심을 절대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삶과 공동체 안에 임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매일의 양식을 채우시는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되신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관계를 위해 우리 안에 있는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 용서받은 자로서 남의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다. 내 욕심을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삶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 나의 기도 언어는 어떤지 점검해 보세요. 주님이 본을 보이시고 가르쳐 주신 대로 기도하기 위해, 우리 공동체와 나의 기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2.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5~13절)
우리의 기도는 끊이지 않고, 평생에 늘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본이 되는 기도를 가르치신 후, 지속적인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여행 중에 찾아온 벗을 위해 한밤중에 다른 벗을 찾아가 간청하는 비유를 드시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가 응답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습관을 따라 매일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의 긴급한 필요를 위한 중보 기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긴급한 필요를 자기 기도에 '항상' 올리는 사람에게 우리의 필요는 물론 성령 충만함도 주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 기도가 삶의 습관이 되기 위해 어떤 결단이 필요한가요?
* 내 기도 중에 다른 지체나 공동체를 위한 간구는 얼마나 차지하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이 보여 주신 기도의 모범을 따라, 저 역시 쉬지 않고 날마다 기도하기 원합니다. 저를 위한 기도보다 남을 위한 기도를 앞세우게 하소서.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고, 오늘 주신 모든 기도의 응답을 가장 선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말씀을 보여 주는 삶

[누가복음 10장 25절~42절]
25절 -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절 -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절 -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절 -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절 -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절 -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절 -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절 -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절 -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절 -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8절 -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절 -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절 -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절 -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절 -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는지 묻는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십니다. 강도당한 이를 도운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그렇게 행하라 하십니다. 주님은 많은 일로 근심하는 마르다에게, 말씀을 듣는 마리아처럼 좋은 편을 택하라 하십니다.

1.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25~37절)
사랑은 조건도 자격도 따지지 않고 필요한 도움을 기꺼이 베푸는 것입니다.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되물으시자, 그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율법 교사는 자신의 의를 내세우기 위해 이번에는 누가 자신의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그 답을 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친히, 강도 만난 이와 같이 비참한 우리의 이웃이 되셔서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은 것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며, 주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다 갚을 수 없는 그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도 기꺼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는 율법 교사의 질문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 진정한 이웃이 되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생각과 태도는 무엇인가요?

2.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38~42절)
말씀 앞에 가난한 심령으로 서는 것보다 우선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마르다는 손님 맞는 일로 분주하고, 마리아는 주인이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 들을 준비를 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한 육신의 양식을 준비하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고, 마리아는 예수님께 받아먹을 생명의 양식에 대한 기대로 간절합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은혜를 먼저 누릴 때,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와 섬김이 넘칩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입니다.
* 마르다와 마리아가 각각 예수님을 향해 기대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듣는 즐거움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먼저 주님 말씀을 듣고, 긍휼의 마음으로 약한 자들에게 다가가 섬기게 하소서. 말씀을 깨우쳐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묵상한 말씀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실천될 수 있도록 날마다 저를 단련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늘의 것을 보고, 아버지 뜻을 아는 사람

[누가복음 10장 17절~24절]
17절 -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절 -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절 -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절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절 -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절 -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절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을에 돌아온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이 항복한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것보다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제자들에게 그들이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고 하시며, 많은 사람이 그것을 알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1.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사람들 (17~20절)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전도를 마친 제자 70명이 기뻐하며 돌아옵니다. 사명을 띠고 나갈 때만 해도 그들에게는 어린양이 이리 가운데로 가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들이 현장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자, 귀신들까지 항복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이후로도 제자들이 갖게 될 권능을 약속하시며,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귀신을 쫓는 권능을 행하고도 천국에서 배제됩니다(마 7:22~23).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사람은 하나님 뜻 위에 인생을 세워 갑니다.
*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 내가 소유한 영원한 것은 무엇이며, 나는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나요?

2. 아버지의 뜻을 알고 기뻐하는 아들 (21~24절)
영적 기쁨은 기도와 찬양과 감사로 표현됩니다. 예수님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께서 교만한 자들에게는 영적 진리를 숨기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나타내신 것에 대해 찬양합니다. 나아가 하나님과 자신의 친밀한 관계를 밝히시며 자신의 사역이 곧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라고 고백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신 후, 영적인 현실이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보는 눈이 복되다고 제자들에게 은밀히 알려 주십니다. 유명한 옛 선지자들과 임금들조차 메시아를 대망하기만 하고 보지 못했는데, 때가 되어 평범한 사람들이 메시아를 실제로 만나게 된 것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성령을 통해 영적 진리를 깨닫는 것은 하나님 백성만이 누리는 참된 복입니다.
* 예수님은 무엇을 기뻐하시며, 기쁨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시나요?
* 나는 성경을 통해 어떤 것을 보고, 구분할 수 있게 되었나요?

오늘의 기도
다른 어떤 것보다 계시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은혜를 사모합니다. 하늘의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소서. 힘들고 답답한 일들 속에서도, 제 이름을 주님의 손바닥에 기록하시고 불러 주시는 그 세밀한 사랑 때문에 기뻐하고 찬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평안과 심판을 가르는 기준

[누가복음 10장 1절~16절]
1절 -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절 -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절 -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절 -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절 -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절 -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절 -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절 -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절 -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절 -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절 -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절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절 -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절 -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절 -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절 -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70인을 세워 복음 전도를 보내시며,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전하는 평안을 받으면 그 집에 평안이 머물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다가올 심판에 대해 말씀하시며,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듣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라고 하십니다.

1. 추수할 일꾼을 영접하는 동네 (1~9절)
복음 전파의 성패는 주님을 얼마나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이 복음 전파를 위해 70명을 세우십니다. 홍수 후 노아 후손에서 세상 열국이 나뉠 때 그 수가 70이었습니다(창 10장). 예수님이 70명을 보내신 것은 열방을 향한 선교 원리를 가르치신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십니다. 교회는 물리적인 힘의 우위로 세상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할 수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충분한 지원을 받거나 더 나은 환경을 옮긴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 전도의 기본은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부름받은 일꾼의 몫입니다.
* 추수 밭에 보냄받은 일꾼들은 어떤 원리를 따라야 하나요?
* 우리 공동체와 내가 전도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추수할 일꾼을 영접하지 않는 동네 (10~16절)
복음에 대한 반응이 구원과 심판을 가릅니다. 세상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복음 전도자의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많은 권능을 행하신 예수님도 고라신과 벳새다에서 사람들로부터 회개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배척당하셨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기에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예수님의 대리인이기에, 세상이 복음을 거부한다 해도 사적인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전도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했다는 것을 선포하고 미련 없이 돌아서면 됩니다.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복음을 전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 복음을 전할 때 무엇이 가장 힘든가요?
* 나를 대하는 상대방의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복음 전도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이 보내신 어린양으로서의 본질을 잊지 않는 전도자가 되게 하소서. '내 믿음'이 옳다며 소리 질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음과 온유함으로 묵묵히 주님의 길과 방법을 따르는 제자가 되길 원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생명 길을 걷습니까, 땅의 길을 걷습니까?

[누가복음 9장 46절~62절]
46절 -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절 -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절 -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9절 -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1절 -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절 -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절 -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절 -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절 -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절 -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7절 -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절 -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절 -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절 -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큰지 변론하자, 예수님은 그들 중 가장 작은 자가 큰 자라 하십니다. 사마리아에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야고보와 요한이 저들을 멸하게 하자 하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1. 제자들의 변론 (46~50절)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을 안다는 표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까이하시며 자신을 알리셨고,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은 경험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주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자기들 중에 누가 크냐는 변론을 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크신 분이지만 가장 작은 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들이 진정 예수님을 알았다면 어린아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했을 것입니다. 막상 함께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에 합당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데, 외부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느냐가 아니라 같을 곳을 바라보느냐입니다.
* 제자들의 변론과 배타적인 태도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어떻게 다르나요?
*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요?

2.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 (51~62절)
생명 길은 위로 향해 있습니다(잠 15:24). 예수님은 승천하실 날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기로 결심하십니다.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고난도 기꺼이 직면합니다. 반면 생명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땅의 길이 전부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인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길을 내주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저들을 멸하고 싶어 합니다. 땅의 길에 대한 주도권 싸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꾸짖고 다툼을 피해 다른 마을로 돌아서 가십니다. 예수님의 거처는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이기에, 그분은 이 땅에서 안락함을 추구하지 않으십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땅의 길에서 지체하거나 예수님을 따르다가도 뒤를 돌아봅니다. 하지만 생명 길은 뒤로 나 있지 않습니다.
*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 있나요?
*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내가 예수님 따르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이 세상에서의 큼과 작음이라는 틀에 매여, 주님이 제게 허락하신 사람과 사건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많은지요! 예수님처럼 제 삶을 십자가의 분명한 초점으로 바라보며, 온전한 생명 길을 걷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누가복음 9장 46절~62절]
46절 -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절 -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절 -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9절 -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1절 -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절 -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절 -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절 -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절 -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절 -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7절 -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절 -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절 -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절 -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제자들이 누가 큰 자인지를 놓고 다툰 사건은 누가복음 9장에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논쟁한 “누가 크냐”라는 문제는 지극히 세속적인 이 세상에서의 명성과 지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다툰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직까지 제자들에게는 영적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개념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이 세상의 왕국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둘째,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은 자의 부활을 말 그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자신의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상징적으로만 이해해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과 결부시켰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그 땅에 왕국을 세우시고 권좌에 오르실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요직을 차지하려고 다툰 것입니다. 셋째, 제자들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은 자신들이 예수님께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경쟁심과 시기심이 결국 자리다툼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데려와 곁에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스스로 높이는 자가 아니라 타인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관찰과 묵상]
1. 제자들 사이에 어떤 문제로 변론이 일어났나요?(46절)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48절)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어린아이처럼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는 인구 계수에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무시당하는 존재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오는 것을 제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시며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서로 자신이 높다고 주장하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자신을 영접하는 것과 같고, 어린아이를 섬길 수 있는 작은 자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아이의 순수함보다는 어린아이의 연약함과 보잘것없는 신분에 초점을 맞추십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첫째로 겸손입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큰 책임감을 떠안을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힘으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인내와 포기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섭니다.
적용과 나눔
교만한 생각이 들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낮추셨나요? 영적 우월감으로 행하는 일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제자들이 누가 크냐를 놓고 변론했던 이유는 스스로를 크다고 생각하는 영적 우월감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만이 놀라운 영적 체험을 했고 자신들만이 귀신을 쫒아내는 권세와 능력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일에 제자들이 흥분한 것은, 자신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던 영적 우월감을 누군가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영적 우월감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을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요 적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는 예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특권 의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망시킬 것을 예수님께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적 우월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자가 큰 자가 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실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하나요?(59, 61절) 이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답변하시나요?(60, 62절)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황과 형편을 들어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부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는 즉각적으로 결단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하나님 나라 전파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51절은 예수님 사역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행은 배척과 고난을 향한 여행이었습니다. 이 여행은 사마리아 동네에서의 배척으로 시작해 예루살렘에서의 배척, 즉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제자의 조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따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콜루테오’는 ‘제자가 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이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시고, 제자직과 전적 헌신과 즉각적인 결단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순간적인 열정으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자신을 따르는 것은 일상적인 삶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를 따르라’라는 예수님의 부름에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르고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유대인에게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가족들과 작별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그분을 따르는 것이 우선순위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 무엇보다 우선합니다.
적용과 나눔
성도와 제자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예수님의 제자로 서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구원받은 성도는 많지만 제자는 드뭅니다. 성도와 제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8절에서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자기 포기가 가능했던 여러 가지 이유를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사역 초창기에 하나님 나라의 긴박함 속에서 사역했습니다. 바울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이 그대로 오시겠다는 약속의 말씀(행 1:11)에 근거한, 임박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식이 있었습니다. 둘째, 바울은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포기로 얻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자신의 지식을 배설물처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고(빌 3:9), 낡아지는 겉사람보다 새로워지는 속사람에 더 많은 가치를 두었습니다(고후 4:16).


* 영적 우월감이나 특권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어린아이 한 명을 영접하고 섬길 수 있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앞에서도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으로 큰 사람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참조, 요 13:3~15).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의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섬김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개인의 특별한 은사나 체험이 교만한 마음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처럼 낮아져 섬기는 제자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를 소망하게 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며, 자신과 가족보다 하나님 나라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십자가로 섬기신 주님을 본받아 지극히 작은 자를 사랑으로 섬기며, 천국에서 큰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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