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누가복음 9장 46절~62절]
46절 -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절 -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절 -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9절 -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1절 -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절 -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절 -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절 -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절 -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절 -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7절 -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절 -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절 -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절 -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제자들이 누가 큰 자인지를 놓고 다툰 사건은 누가복음 9장에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논쟁한 “누가 크냐”라는 문제는 지극히 세속적인 이 세상에서의 명성과 지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다툰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직까지 제자들에게는 영적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개념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이 세상의 왕국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둘째,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은 자의 부활을 말 그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자신의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상징적으로만 이해해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과 결부시켰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그 땅에 왕국을 세우시고 권좌에 오르실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요직을 차지하려고 다툰 것입니다. 셋째, 제자들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은 자신들이 예수님께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경쟁심과 시기심이 결국 자리다툼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데려와 곁에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스스로 높이는 자가 아니라 타인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관찰과 묵상]
1. 제자들 사이에 어떤 문제로 변론이 일어났나요?(46절)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48절)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어린아이처럼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는 인구 계수에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무시당하는 존재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오는 것을 제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시며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서로 자신이 높다고 주장하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자신을 영접하는 것과 같고, 어린아이를 섬길 수 있는 작은 자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아이의 순수함보다는 어린아이의 연약함과 보잘것없는 신분에 초점을 맞추십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첫째로 겸손입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큰 책임감을 떠안을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힘으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인내와 포기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섭니다.
적용과 나눔
교만한 생각이 들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낮추셨나요? 영적 우월감으로 행하는 일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제자들이 누가 크냐를 놓고 변론했던 이유는 스스로를 크다고 생각하는 영적 우월감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만이 놀라운 영적 체험을 했고 자신들만이 귀신을 쫒아내는 권세와 능력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일에 제자들이 흥분한 것은, 자신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던 영적 우월감을 누군가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영적 우월감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을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요 적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는 예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특권 의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망시킬 것을 예수님께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적 우월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자가 큰 자가 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실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하나요?(59, 61절) 이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답변하시나요?(60, 62절)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황과 형편을 들어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부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는 즉각적으로 결단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하나님 나라 전파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51절은 예수님 사역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행은 배척과 고난을 향한 여행이었습니다. 이 여행은 사마리아 동네에서의 배척으로 시작해 예루살렘에서의 배척, 즉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제자의 조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따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콜루테오’는 ‘제자가 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이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시고, 제자직과 전적 헌신과 즉각적인 결단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순간적인 열정으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자신을 따르는 것은 일상적인 삶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를 따르라’라는 예수님의 부름에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르고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유대인에게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가족들과 작별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그분을 따르는 것이 우선순위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 무엇보다 우선합니다.
적용과 나눔
성도와 제자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예수님의 제자로 서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구원받은 성도는 많지만 제자는 드뭅니다. 성도와 제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8절에서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자기 포기가 가능했던 여러 가지 이유를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사역 초창기에 하나님 나라의 긴박함 속에서 사역했습니다. 바울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이 그대로 오시겠다는 약속의 말씀(행 1:11)에 근거한, 임박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식이 있었습니다. 둘째, 바울은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포기로 얻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자신의 지식을 배설물처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고(빌 3:9), 낡아지는 겉사람보다 새로워지는 속사람에 더 많은 가치를 두었습니다(고후 4:16).
* 영적 우월감이나 특권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어린아이 한 명을 영접하고 섬길 수 있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앞에서도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으로 큰 사람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참조, 요 13:3~15).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의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섬김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개인의 특별한 은사나 체험이 교만한 마음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처럼 낮아져 섬기는 제자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를 소망하게 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며, 자신과 가족보다 하나님 나라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십자가로 섬기신 주님을 본받아 지극히 작은 자를 사랑으로 섬기며, 천국에서 큰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